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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7.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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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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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DUMMY

오래된 경첩이 거칠게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빛을 등지고 있는 자는 얼굴에 십자 흉터가 있는, 만침살이라는 별호를 지닌 남자였다.


“···흥! 네놈 같은 쓰레기는 진즉 꼬리를 말고 도망친 줄 알았는데, 설마 아직까지 이곳에 어슬렁거릴 줄이야. 소졸.”


빛을 등진 채 만침살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대 자로 뻗어있는 소졸이라 불렸던 남자, 대장부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대꾸했다.


“···오히려 쓰레기는 내가 아니라 네놈이다. 그리고 내 이름은 대장부다. 만침살.”


평소 같았으면 정중하게 대답하는 것으로 끝났어야 했을 장부의 말은 더 이상 한 줌의 자비나 배려조차 없었으며, 또한 만침살 역시 장부를 과거의 동료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네놈의 그 가증스러운 세 치 혀를 뽑아버리기 전에 조금이나마 고분고분해졌으면 좋겠군?”

“하하하! 설령 내가 당장이라도 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비열한 살수에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할지언정 차라리 무인답게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겠다!”


대장부의 신랄한 대답에도 냉정하게 분노를 억누르는 만침살.

이미 양 손에는 그의 대표적인 무기인 침이 수십 개나 들려있었지만, 대장부를 향해 쏘려고 하지는 않았다.


“···단주의 명이 있었다.”

“그딴 거 더 이상 들을 필요 없··· 끄아악!”


장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부의 귀를 스쳐 지나가는 몇 개의 침.

교묘하게 귀를 스쳐지나가면서 마치 불에 댄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하는 놀라운 솜씨였다.

아마 마음만 먹으면 귀가 아니라 고통에 민감한 급소 등을 노릴 수도 있었으리라.


“···다시 말하지, 단주의 명이다. 이건 절대적이다.”


만침살의 말에 장부는 귀를 감싸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후부터 장부의 말에 따라서 만침살에 양 손에 들려있는 수십 개의 침들이 쇄도할 것을 상상하면서 말을 조심스럽게 골라야 했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했다고 해도 정말로 죽음을 선택하기에 장부는 인생에 미련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은 버려진 배신자에게 단주가 명령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지?”

“우리 같은 도구에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단주의 명이 있다면 충실하게 복종하는 거다.”


장부가 생각하기에 만침살은 월영단주를 강하게 신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월영단주가 어째서 배신자에게까지 명령을 내리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따르지 않으면 즉각 죽음이 찾아올 것이고, 그건 장부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비록 무인답게 죽을 땐 죽더라도, 미련을 남기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일단 들어보도록 하지.”

“지금부터 연맹으로 잠입해서 연합맹주를 포획한다.”


연합맹주.

월영단의 말단인 대장부라도 알고 있을 정도로 동방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서, 그가 가진 무력은 월영단주를 포함해도 가히 동방국 안에서도 손가락에 들 정도로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무인 중의 무인이다.

그런 엄청난 실력을 가진 자를 포획한다니, 장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 하하하! 설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 끄아악!”


이번에는 반대쪽 귀를 스치는 침.

명령을 전달한 만침살은 매우 진지했고,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곧바로 침을 날린 것이다.


“제정신이냐는 등, 불가능하다는 등··· 네놈 같은 배신자에게는 그런 쓸데없는 감상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다시금 단주에게 도구처럼 쓰일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장부 또한 만침살의 행동이나 감정으로 미루어보면 그렇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연합맹주의 포획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치 아이에게 칼을 쥐어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수련 중인 무인을 기절시켜서 데려오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장부는 다른 식으로 이해했다.


“···그렇군. 결국은 배신자를 처리하기 위해 이런 귀찮은 방법을 쓰려는 건가?”


한 번은 월영단주에게 죽을 뻔한 목숨을 니제르 하우사에 의해 살게 되었다.

그 대신 원치도 않는 저주를 달게 된 셈이지만, 그래도 월영단주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죽음을 유도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을 내려서 자칫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유도하는 게 월영단주의 계획이라 생각했다.


“크크크.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지만, 단주의 의도는 좀 더 단순하다. 단지 남아있는 부하 중에 우연히 네놈이 살아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네놈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만침살의 말에 의문을 느낀 장부가 의아스럽게 생각할 무렵, 문득 깨달았다.

월영단의 본거지로서 항시 소란스러워야 할 문 너머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바깥에 무슨 일이 있었지?”

“크하하하! 설마 이제야 눈치를 채다니, 정말 둔해빠졌군!”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장부가 어둠을 뚫고 문 바깥으로 걸어서 나오려 하자 만침살이 순순히 입구에서 비켜주었다.


“세, 세상에···!”


문 바깥은 그야말로 시체뿐이었다.

어떤 자는 아무런 저항조차 못한 채 즉사했으며, 어떤 자는 미처 칼을 빼들지도 못한 채 전신이 침으로 꿰뚫렸고, 어떤 자는 도망치려고 했다가 다리부터 공격을 당한 후 결정적으로 머리가 관통된 자도 있었다.

이렇듯 일류 살수인 만침살이 마음만 먹는다면, 설령 동료라 한들 가차 없이 죽일 수 있다는 게 장부에게 확실한 사실로서 다가왔다.


“여기에 있는 놈들은 단주의 명에 따르지 않거나 마녀의 종복뿐인 놈들이었다.”


만침살의 말에 장부는 각오를 다지며 대답했다.


“···그 마녀가 진노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건가?”

“하하하! 아무래도 네놈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군? 지금 월영단은 단주와 부단주로 두 개의 파벌로 갈려서 은연중에 서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월영단의 주인인 월영단주와 명목상 부단주 자격을 갖춘 마녀, 니제르 하우사의 대립.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장부로서는 내부분열 정도로 인식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을 벌이기에는 만침살의 행보가 무척 신경 쓰였다.


“제 아무리 네놈이 살수라 해도 한때 동료였던 자에게까지 이토록 심한 짓을···!”

“···저들은 동료도 아니고, 하물며 도구조차도 아니다! 모두 그 빌어먹을 마녀에게 세뇌되어서 한낱 괴뢰로 전락해버린 적들이다!”


만침살의 말에 장부는 크게 놀랐다.

장부 또한 엘리자베트에게 세뇌된 기억이 있는 만큼 니제르 또한 타인을 세뇌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저주만 걸었던 게 아닌, 장부 본인에게 세뇌마저 걸었던 게 아닐까라는 불안한 생각이 떠오르자 장부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단주의 명에 따라서 아직까지 세뇌를 받지 않은 단원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 네놈이 유일하더군.”

“···그런 걸 네놈이 어떻게 알 수 있지?!”


그 질문에 만침살은 한 손에 든 침을 위협적으로 보이도록 교묘한 손기술을 사용해서 감췄다가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대답했다.


“자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자아가, 세뇌된 놈들에게는 없더군? 말 그대로 괴뢰처럼 조종당하는 것처럼 말이지? 마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죽일 듯 덤벼오고, 신이라도 섬기는 것처럼 추앙하고, 하나 같이 매우 극단적이야.”


만침살은 일생 동안 살수를 해오면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에 민감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자들은 저마다 소중한 것이 있는 것처럼 목숨을 구걸하거나 타인을 지키려 하는 등 여러 반응을 보이지만, 니제르에게 세뇌된 자들은 하나 같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며 공통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월영단에서 절대적인 존재인 월영단주의 명령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 또한 그에게 있어서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했기에 현재와 같은 참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월영단의 대부분은 그 마녀의 간사한 술수에 넘어가서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지? 그래서 단주에게 신뢰받고 있는 이 내가, 단주의 명을 받아서 연합맹주를 포획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래서 연합맹주를 포획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할 땐 하더라도, 설령 일회용 도구라도 뭐하러 쓰이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닌가?”


장부의 말에 만침살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양 손에 든 침을 사라지게 한 뒤 묵묵히 대답해주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저 단주의 명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만,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연합맹주를 비장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닐지···?”


무엇에 대해서, 라고 장부는 말하기도 전에 깨달았다.

동방국에서도 월영단주와 비견되는 강자 중에 강자, 그런 엄청난 자와 월영단주가 합심한다면 설령 그 니제르 하우사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행동에 나서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그렇군! 월영단의 대부분이 그 마녀의 손에 넘어갔다면,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 월영단주와 연합맹주의 힘이 합쳐져서 극적인 해결을 이루게 된다는 건가?!”

“···물론 단주가 대놓고 정체를 드러낼 일은 없겠지. 마치 독에 중독된 부위만을 잘라내는 것처럼 연합맹주라는 극단적인 칼이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면 월영단주가 계획한 모든 게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부단주의 등장으로 월영단이라는 세력이 커지긴 했지만, 그로 인해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버렸다면 이후부터는 연합맹주가 끼어들어서 옛날에 일어났었던 소탕전처럼 일련의 무리들을 일소하는 것.

그러면 정체를 숨긴 월영단주만이 살아남게 되고, 부단주이자 희대의 마녀인 니제르 하우사가 대신 월영단의 오명을 뒤집어써서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마녀 녀석이 한 발 앞서 선수를 친 모양이더군. 이미 연맹에는 마녀가 심어놓은 세뇌된 무인들이 많았고, 맹주는 반각 전에 폭발에 휘말렸다더군.”


과연 니제르 하우사도 바보는 아닌 게, 순순히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을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월영단주의 노림수를 간파해서 연합맹주를 암살하려는 것 같았다.


“비록 지금은 연맹 내부에서 살아남은 연맹 소속 무인들이 마녀 놈의 괴뢰 무인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정작 월영단의 인원이 부족해서 연합맹주를 포획하는 게 힘들다더군.”

“···그래서 나 같은 배신자의 손이라도 빌리려 한다는 소리인가.”


그러자 만침살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설마 여기까지 전부 다 듣고서 이제 와서 무섭다느니 무리라느니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소졸?”


한때 장부는 월영단주에게 반항하면서 죽음마저 각오했었다.

그러나 니제르 하우사에게 잡혀가면서 동료이자 파트너인 무명이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버리게 되는 것으로 죽을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시정잡배로서 악랄한 일에 몸을 담갔던 악인이었다 해도, 지금은 엘리자베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용인으로서 무명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고로 친우로서 무명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엘리자베스에게 명령받은 대로 위험에 빠질 시우 일행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이름은 대장부다. 그리고 이토록 구차하게 얻어낸 목숨, 끝까지 부려먹을 수 있도록 발버둥을 쳐주지.”

“크, 크흐흐! 그래, 설령 일회용 도구라도 일개 무인으로서 아직까지 자존심이 남아있는 건가? 아무튼 연합맹주 포획에 쓸 수 있는 장기말이 하나 늘어서 기쁘군!”


그렇게 장부는 만침살과 함께 연합맹주를 포획하기 위해 연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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