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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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최근연재일 :
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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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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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DUMMY

날이 완전히 저물자 만유국의 광란은 잦아들었고, 저마다 정신을 잃고 기절해 있거나 안전한 곳에서 몸을 웅크려 두려움에 떠는 등 조속히 사태가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울음뿐이었다.

이 상황에 동방국을 대표하는 무인들의 집단, 연맹마저 내부분열이라는 명목으로 혼란이 가중되었으며, 현재는 연합맹주의 활약으로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는 표면적인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물론, 진상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아함~ 오랜만에 진지하게 일 했더니 엄청 피곤하네. 니제르 두들겨 패랴, 전신에 퍼졌던 독을 해독시키랴, 반쯤 정신 나간 사람들 진정시키랴··· 게다가 배고 고프고 말이지.”


그렇게 투덜거리는 가나였지만, 정작 가나의 앞에는 이미 무수하게 쌓아올린 요리에 쓰였던 접시가 간신히 균형을 유지한 채였다.

사건을 해결한 후로부터 대량의 음식을 주문했고, 주문받은 음식들이 나오자마자 식히지도 않고, 심지어 씹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삼키려 하는 등 폭식을 즐기더니 지금에서야 겨우 말문을 연 것이다.


“···시, 식사는 입에 맞으셨는지요?”

“응! 지금까지 먹은 거에 10배 정도만 먹으면 끝날 것 같아! 그러니 추가 주문!”


개인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주문에 점소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마치 괴물에게서 도망이라도 치려는 것처럼 부엌으로 달려가서 주방장에게 비명에 가까운 주문을 전했다.

그렇게 객잔이 혼란스러울 무렵, 지금에서야 정신을 차린 연합맹주가 진화랑과 진수련의 부축을 받으면서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가나를 향해 말했다.


“···이, 이번 일로 멸망에 위기에 직면했던 본국이 아칸 공에게 아주 큰 은혜를 입게 되었소. 이 노부가 고개를 숙여서 아무리 감사를 해도 모자랄 지경이오···.”

“이토록 미숙한 소녀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해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본국의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중독되었던 할아버님과 진 소협을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낭자는, 아니 그대는 본국의 영웅이오! 부디 식사 이외에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보시오! 본국에 퍼져있는 모든 무인들이 그대의 요구를 들어드릴 것이오!”


가나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릴 동안 얘기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어쩐지 과도한 감사에 슬슬 부담스러워진 나머지 머리를 긁적이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 아하하. 아니, 뭐··· 이렇게까지 과하게 감사를 받는 건 좀 부담스러워서 말이지. 난 그냥 맛있는 음식만 실컷 먹고, 저기 있는 니제르에게서 알고 싶은 정보만 얻어갈 수 있으면 딱히 상관없어.”


그렇게 가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밧줄로 전신이 휘감긴 채 포박당한 니제르가 불평스러운 표정으로 가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본인이 마녀인 만큼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는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밧줄을 여러 번 겹쳐서 빠짐없이 구속한 상태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객잔의 탁자를 한데모아서 길게 늘어놓는 것으로 월영단주인 강두천이 마찬가지로 밧줄에 구속된 상태로 멍한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흠··· 아칸 공의 요망이 그러하다면, 굳이 이 이상의 보수를 억지로 강요하진 않겠소만··· 진 소협의 말대로 아칸 공은 본국을 구한 영웅인 만큼 부디 나중에라도 무엇이든 말씀만 해주시게.”


가나가 마지못해 긍정하자 그제야 자리를 떠나게 된 연합맹주.

이번에는 니제르 쪽을 향하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더니 아까와는 달리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구태여 확인하겠네만, 그대가 월영단의 부단주인 게 진실인가?”


사실 가나가 니제르와 덤으로 강두천을 끌고 왔을 때 이미 자초지종을 전부 들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기력을 회복한 연합맹주는 재차 물어보는 것으로 악인을 벌하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것이다.


“케헥··· 이제는, 더 이상 아니지. 그러니 나를 부단주라고 부르든, 마물이라고 부르든, 그쪽이 편하실 대로 불러.”


니제르는 몸 속에서 솟구쳐 올라온 모닥불의 영향으로 내부가 까맣게 타들어가서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졌고, 대화조차 힘겨워보였다.

최소한의 도리로 니제르가 입고 있는 검은 드레스는 남겨두었지만, 그 밖에는 상처도 치료해주지 않았으며, 나아가서 도망칠 수 없도록 다리의 힘줄을 잘라낸 상태였다.

그래도 용케 죽지 않은 것은 비록 죽은 자의 피로 무력화가 되어 있다고 한들 역시 마녀로서 불사성이 남아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마녀 공이라 부르겠네.”


그것은 연합맹주이자 무인이 강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로서 동방국의 적인 월영단의 부단주가 아닌, 또한 모든 인간의 적인 마물이 아닌, 하나의 종족으로서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니제르는 마녀라고 불리는 것에 반사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거칠게 대답했다.


“···그럼 그러든가! 하지만 다 죽어가는 인간 늙은이 따위가 내게 무슨 볼 일이야?”


니제르의 뻔한 도발에 양 옆에서 부축하고 있는 진수련과 진화랑이 발끈했으나 연합맹주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진정시켰고, 비교적 차분한 마음으로 니제르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이런 노부라도 저기 있는 월영단주를 전장에서 단 한 번이긴 해도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실력을 겨뤄봤던 적이 있다네. 그가 다루는 기묘한 극한의 얼음 세례는 실로 위력적이라 노부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 그런 자를 저렇게 만든 게 마녀 공이신가···?”


연합맹주는 예전에 강두천과 검을 섞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강두천 정도의 실력을 가진 무인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구석에 몰리는 것은 상당히 우위에 선 자가 일방적으로 공세를 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리라 판단했고, 그 자리에 있는 강자는 가나와 니제르 정도였지만, 정작 가나는 본인이 한 짓이 아니라고 부정했었다.

그럼 남아있는 자는 오로지 니제르 뿐인데, 니제르는 월영단의 부단주이기에 의문이 남았던 것이다.


“···난 아냐. 물론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보시다시피 나는 그럴 만한 상태도 아니고, 그 전까지 인간 꼬맹이와 놀거나 가나 아칸에게 보기 좋게 휘둘리고 있었거든?”


니제르의 말이 끝나자 연합맹주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그런가, 먀우 공과 행동을 함께한 타국의 동료에게서 듣기로는 본능적으로 몸서리가 치게 될 정도의 위압감을 가진 무언가라고 하던데··· 마녀 공의 짓이 아니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로군···.”


가나와 니제르를 제외한 월영단주 정도의 초고수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고수의 짓이라 한다면, 장차 동방국에 다시금 혼란을 불러올 수 있으리라고 연합맹주는 짐작한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본맹의 고수들을 다시금 소집하게 됐을 때 말하기로 하지. 그러면 월영단주를 대신해서 다음 질문이네만, 대체 무슨 목적을 갖고 월영단을 지휘한 것인가? 월영단의 이념인 불로불사를 위한 것치고는 쓸데없이 난폭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같은데 말일세.”


월영단의 목적이 불로불사라는 것은 이미 연합맹주도, 진수련도, 진화랑도, 연맹의 무인들도 전부 다 아는 상식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이 정도 수준의 엄청난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 월영단주나 혹은 그에 가까운 중심인물에게서 진실을 전해 들어야만 했다.


“후후후. 불로불사? 역시, 너희 인간들도··· 특히 당신 같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은이도 죽는 게 두렵나 봐?”


그 노골적인 비아냥에 진수련과 진화랑은 분노를 끝까지 참아내야 했고, 잠시 침묵한 연합맹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노부라도 죽음은 두렵다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 동안 유구한 세월 동안 쌓아올린 본맹의 명예와 신뢰가 끝없이 실추하여 본국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해서 악인이나 마물들에 의해 붕괴하는 것일세.”


그런 최악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세운 연맹이었고, 본인이 직접 연합맹주라는 자리를 자처했었던 것이다.


“···혹시 불로불사라는 것을 갈구해야 할 정도로 아픈 사람이 곁에 있는가? 혹은 단순히 금전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서 불로불사라는 것에 매달리려 하는가? 아니면 허무맹랑한 개념을 밝혀내기 위해 주체하지 못하는 탐구심에? 노부는 그저 이토록 무시무시한 참상을 만들어야 할 정도의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일세.”


연합맹주의 질문에 니제르는 침묵했고, 옆에 누워있는 강두천은 도저히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만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가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니제르~ 정말 말 안할 거야? 그러면 내가 대신해서 죄다 불어버린다?”


가나는 니제르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알게 되었다.

시우와 함께 아지트로 돌아가기 위해 니제르에게 손을 대서 텔레포트(전이) 장소의 마력을 역산하려 때, 우연스럽게도 니제르의 목적을 무의식중에 읽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니제르는 작게 혀를 차더니, 길게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쯧, 하아. 저기 누워있는 녀석의 목적은 나도 몰라. 내 앞에서 말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가깝게 접근하게 두지도 않아서 말이지? 내가 추측하기로는 본인이나 누군가를 위해서 불로불사 같은 걸 찾으려던 것 같은데··· 뭐, 이제 와서 불로불사라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니제르의 대답에 연합맹주를 포함한 진수련과 진화랑이 의외였던 탓에 적잖이 당황했고, 대화를 시작했던 니제르가 대답을 계속했다.


“나는 말이지, 원래부터 마녀인 탓에 불로불사 같은 건 별 흥미도 없었어. 어차피 지겹도록 오래 사는 마당에 뭣 때문에 그 이상을 갈구하겠어? 나는 단지 장소가 필요했을 뿐이야.”


그러자 연합맹주가 식은땀을 흘리며 침묵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진수련이 반문했다.


“장소라니, 대체 무슨 뜻인지요···?”

“···설마 동방국 사람이면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뻔뻔하게 모르는 척을 하는 거야? 그야 당연히 살 곳, 즉 보금자리지.”


그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진화랑이 결국 격분했다.


“···고작,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본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토록 끔찍한 일을 겪게 만들다니! 그렇게 살 곳이 필요하다면, 마물의 나라인 남쪽으로 돌아가···!”

“아하하···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러자 니제르는 진화랑의 대답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너희 인간들 같은 바보도 아니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진즉 돌아갔을 테지? 내가 왜 마물들과 싸우려 드는 인간들의 나라에서 월영단이라는 소꿉놀이나 하면서 지내야 했던 건지··· 그 덜떨어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나 봐?”


니제르의 말에 연합맹주가 줄곧 유지하던 침묵을 깨고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이해하네. 만일 마녀 공의 말이 진실이라면, 아마도 남쪽은 더 이상 마물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지···?”

“아하하하! 정말 바보 같아! 그걸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이 더럽고 어리석은 추악한 인간 놈들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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