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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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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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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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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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제30화

DUMMY

문득 정신을 차린 나를 맞이해주는 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사람, 가나 아칸이었다.

“엇, 드디어 눈을 떴네?! 이야~ 그건 그렇고 참 대단하네! 무려 이틀 동안 기절했었다고 하던데?”

그 사람은 내가 이틀 동안 기절해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해맑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런 적당한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좀 슬퍼해주면 덧나나.

“아, 그리고 아직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화상이라든가, 찔린 곳이라든가, 얻어맞은 곳은 제대로 치료가 끝났지만, 혹시 모르니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나 봐?”

그러고 보니 본 적 없는 천장, 이었다.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가나 씨가 여기 데려와 준 것일까?

“가, 가나 씨, 감사, 합니다.”

그러자 가나 씨는 손사래를 치며 손가락으로 내 옆자리를 가리켰다.

“나? 아냐. 아냐. 나보다는 나중에 저 사람에게나 하라고, 너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니까.”

내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있는, 새하얀 시트가 깔린 의료용 침대에 누워있는 붕대를 얼굴이며, 상반신이며, 군데군데마다 칭칭 감고 있는 사람.

“저, 점장, 씨?”

비록 곳곳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그 옷차림, 그 망가진 얼굴은 내가 아는 점장 씨였다.

그런데 어째서 다친 채 누워 계신, 거지.

“이야기를 들어 보니 불타고 있는 잡화점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널 데리고 나오려고 하다가 크게 화상을 입었다는 모양이야.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하다못해 물이라도 끼얹고 들어갈 것이지, 정말 바보 같다니까.”

가나 씨의 말이 무척 매정하게 들렸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서 몸을 던지신, 아니 분명 자기 딸을 위해서 겠, 지?

“점장, 씨는, 괜찮, 나요?”

“글쎄. 널 밖으로 내보내고 갑자기 상점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무언가를 찾는 것도 같았고, 엄청난 화상을 입고 밖에 나와서도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쳤다고도 하고, 난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서 잘 모르겠네.”

아마도, 아니 거의 확실하게 점장 씨는 화상을 입어가면서 미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식을 가져본 적도 없고, 점장 씨가 얼마나 상심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대체 무슨 낯으로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죽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야. 그럼 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

아마 이 때가 처음으로 가나 씨를 냉정하다고 생각했던 때일 것이다.

난 이렇게 슬프고 괴로운데, 가나 씨는 뭐라고 해주지 않는다니.

나 혼자, 대체 어떻게 해야 점장 씨의 마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죄, 죄송, 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는 점장 씨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저 울면서 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점장 씨가 눈을 떴고, 나는 전신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죄책감에 죄송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날 이후부터 몇 주 동안, 나는 점장 씨와 적지 않은 거리감이 생겨나 버렸고, 서로 말을 나누는 경우도 거의 없게 되었다.

이윽고 점장 씨 앞으로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적지 않은 위로금을 보내주어 새로운 잡화점이, 아니 원래대로인 잡화점이 빠르게 다시 생겨났고, 미셸이 없다는 진실만 제외하면 평소대로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아. 드디어 일이 끝났구만.”

이제 가게 문을 닫은 점장 씨의 일은 그저 누군가가 보내준 와인을 따서 혼자 마시는 일이 전부였다.

정리해야 할 상품들은 이전에 전부 타버린 탓에 거의 없었다. 미셸이 없는 탓에 육아의 일도 없어졌다. 꼭 필요한 식사를 제외하면 점장 씨는 혼자 사색할 때가 무척 많아졌다.

“시우 군.”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더니, 느닷없이 와인 병을 내밀었다.

“한 잔 하지.”

점장 씨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거리감이 있는 모양인지 이전처럼 옆집 아저씨 같은 친숙한 목소리 같은 게 아닌, 이제는 명백히 타인과 거리를 두는 목소리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뭐라고 해주었으면 싶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너 때문에 미셸을 잃어버렸다고.

“이제 슬슬 마음을 풀게. 제 아무리 나라도 자네마저 없어지면 쓸쓸하지 않겠나?”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지금까지 쌓아만 두고 있었던 말들을 죄다 쏟아냈다.

“죄, 죄송합니다. 점장 씨! 제, 제가, 제대로 미셸을 지켰더라면, 좀 더 철저하게 막아내고 지키려 했다면!”

“자, 자자. 우선 한 잔 받고서 그 뒤에 말하도록 하지.”

나는 미성년이기에 기껏 권해주시지만 받을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당장 작은 컵을 꺼내 와서 와인을 받아 들고 입 속으로 단번에 넘겨버렸다.

“우선 자네가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네만, 나는 자네에게 별 다른 감정은 없네. 그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금 귀찮은 꼬맹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네. 다만 나 이외에 미셸을 보살펴주는 역할이기에 다른 사람보다도 약간만 마음을 열고 있었을 뿐이니, 그 당시에 내가 말했던 충고를 애써 지키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네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는 자네를 업고 나온 이후로 사라졌네.”

다시금 와인을 따라주는 점장 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흐느꼈다. 그리고 와인을 받아서 곧바로 마셨다.

“물론 우리 딸, 미셸을 데려간 놈들에게는 무척 화가 나는 일이지만, 설마 문까지 부수고 들어올 정도로 난폭하고 어리석은 놈들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네. 그러니 이건 순전히 나의 안이한 생각이 불러온 결과 같은 것이네. 자네가 스스로 책망할 일은 아니야. 오히려 미셸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져가며 막으려 했다는 사실이, 자네를 반 강제로 거둬들이게 된 건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고 소소하게 기쁠 따름이네.”

점장 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 속 어딘가 안심이 되면서도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술이 들어간 탓인지 말과 행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적극적이게 되었다.

“그, 어째서 문이 부서진 거랑, 제가 몸을 던져서 막으려 했다는 걸 아시는 건가요.”

그러자 이번에는 점장 씨가 단번에 와인을 병으로 들이키며 말했다.

“그 전에 자네에게 말해두고 싶은 게 있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아칸 경과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설령 이곳의 백작님이라 할지라도 부디 비밀로 해주게. 그래줄 수 있나?”

그 사뭇 진지한 질문에 나는 취기가 돌아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실은 이전의 집인, ‘광대의 잡화점’ 그 자체에 한 가지 마법이 걸려 있었네. 내 아내가 여기를 떠나기 전에 나에게 걸어준 마법이지. 자세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잡화점 자체를 원격으로 감시하는 마법이네. 덕분에 잡화점 앞에 수상한 자들이 모이는 것을 보고 성으로 가려던 걸 재빨리 되돌리게 됐었지.”

연이어 와인을 입에 물면서 설명하는 점장 씨.

“크으. 아무래도 그 놈들은 내 아내, ‘니제르 하우사’의 행적을 쫓는 놈들이겠지. 자네도 슬슬 눈치 챘겠지만, 내 아내는 ‘마녀’거든.”

“마, 녀? 마녀라면, 제가 생각하는 그 ‘마녀’인가요?”

얼굴이 붉어진 점장 씨는 그제야 와인을 입에서 떼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의, 아니 우리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마녀’를 생각하지 말게. 그녀들은 조금 앞뒤가 꽉 막힌 ‘종족’이긴 하지만, 그래서 희귀하다는 것이네. 마녀들은 마녀들 밖에 소통하지 않고, 결코 외부와 접하려 하지 않지만, 언제인가 아내에게 듣기론, 그녀들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피 등은 그 자체로 뛰어난 마력을 갖고 있는 탓에 매우 희귀한 실험 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미지의 실험에 대한 성공률을 높이거나 마녀들만의 독자적인 마법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체를 숨기고 도망 다니는 경우가 많다더군.”

“그, 그런데 어째서, 지금 그걸 저에게, 저 따위에게 알려주는 거죠?”

다시금 와인을 입에 가져가는 점장 씨,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금 대답을 말하기 전까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셨다.

“그건, 자네를 믿고 있기 때문이네. 비록 몇 개월에 불과하지만, 자네는 귀찮은 꼬맹이 수준에서 내가 신용할 수 있는 꼬맹이 수준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지.”

그 순간, 점장 씨의 입가에서 와인이 흘러내렸다.

아니, 와인이 아니다.

“저, 점장 씨?”

“쿨럭. 제길.”

그건, ‘피’였다.

“저, 점장 씨! 혹시 어딘가 편찮으신 겁니까?! 화상이 다 낫지 않았던 겁니까?!”

점장 씨는 입가에 피를 닦아내며, 와인을 다시 입가에 가져가려 했지만, 느닷없이 바닥에 떨어뜨리자 가게에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시우 군, ‘마녀’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단순히 일반적인 ‘마법’ 따위가 아닐세. 일종의 대가가 필요하다고 할까. 그 중에는 저주와도 비슷한 게 있지. 그리고 아내가 잡화점에 건 마법의 대가는, 바로 내 생명력일세.”

와인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점장 씨의 손이 무척 떨려왔다. 그걸 애써 숨기려는 듯 다른 손으로 잡으려 하는 점장 씨가 무척, 괴로워 보였다.

“하, 하하. 그야 당연하지. 자식을 지키지 못하는 남편 따위 빨리 죽어버리라는 뜻이겠지.”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 점장 씨의 아내분이 그런 생각을 하실 리가 없잖아요!”

“하하하! 정작 내 아내를 만나지도 못했으면서 어떻게 그리 자신하는가. 하지만 내 아내, 니제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겠지. 일부러 자기 종족의 보금자리를 떠나 나와 아이를 가졌으면서 만족스럽지 못하니 집도 나가고, 기어이 내 목숨도 가져가는 것일 테지.”

어느 새 점장 씨는, 조용히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이보게, 부디 나하고 약속해주게. 언젠가 미셸을 찾게 된다면, 그 때는 자네가 책임을 지고 돌봐줄 수 있겠는가?”

“그, 그런, 그런 약속을 할 리가 없잖아요! 저는 할 수 없어요!”

무책임하다. 너무나 무책임하다. 막상 모든 것을 빼앗길 처지가 되니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매달리려 하다니, 무척 뻔뻔했다.

“저런, 그거 안타깝군. 지금까지는 운 좋게도 저주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모양이지만, 아마 나는 머지않아 며칠 안으로 세상을 뜰 것이네. 가장 원통한 건 미셸을 볼 수 없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하하하.”

그 후로 점장 씨는 더 이상 나와 아무런 말을 나누려 하지 않았고, 잡화점의 운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서 와인을 마시며 힘겹게 하루를 겨우 버티는 것 정도였으니.

물론 나라고 그 동안 아무 일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며, 교회에 찾아가서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마녀가 건 저주에 대해서는 여타 마법과는 급이 달라서 마녀 본인이 아니면 풀기가 매우 힘들다는 참혹한 결론뿐이었다.

“여어! 그 동안 잘 지냈어?”

그러던 중 광대의 잡화점의 문이 열리더니, 가나 씨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상처투성이에 엉망진창으로 피칠갑이 된 채로 말이다.

“가, 가나 씨?! 대체 뭐에요, 그 엄청난 상처들은!”

그러자 가나 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아, 하하! 뭐라고 할까, 무심코 젊음의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뭔가 생각보다 엄청 커다란 조직에 정면으로 달려들게 됐더니, 게다가 마지막에는 방심까지 해서 이런 몰골이 됐지 뭐야!”

순간, 가나 씨의 뒤에 누군가가 숨어있는 게 보였다.

마찬가지로 전신이, 특히 입 주변에 피칠갑이 되어서는 허름한 옷차림의 내 또래 소녀가 은근히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저기, 뒤에 있는 그 분은 누구, 신가요?”

“아, 응. 그것 때문인데, 혹시 점장 말이야. 아직도 잘 살아있니?”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가나 씨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으나, 나는 서서히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분하다는 듯 대답했다.

“요즘은 낮이고 밤이고 그저 누워있을 뿐이지만요.”

“그래? 그럼 아직은 괜찮다는 거구나! 이야! 정말 잘 됐다! 이대로 늦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열심히 뛴 보람이 있네!”

그 순간 나는 미처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서 그만 소리를 질렀다.

“대체 뭐가 다행이라는 거에요! 점장 씨가 죽어갈 때 가나 씨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거에요! 왜 이제 와서 돌아와서는!”

그러자 가나 씨의 뒤에 숨어있는 소녀가 순간적으로 놀란 듯 나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누더기를 걸친 채 시선을 피하려는 내 또래 이상의 소녀, 아니 여성?

가나 씨도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미안, 내 상태가 최상이었다면 뭔가 다른 해결책이 있었겠지만, 그 동안은, 그래. 기껏 해야 몇 주 동안 죽지 않게 버티도록 하는 정도가 겨우, 였거든.”

“그, 그게 무슨 말이죠.”

하지만 가나 씨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은 채 내 허락도 구하지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

“여어! 내가 좀 늦었지, 점장! 미안!”

점장 씨의 상태는 날로 악화되더니, 이제는 더 이상 일어설 기력도 없다는 듯 누워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가나 씨를 보더니 힘겹게 대답했다.

“아, 아칸, 경인가. 나야 말로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 했어.”

“아니. 무리한 부탁이라니, 내가 누군데 그래? 이렇게 소중하신 따님을 데려왔잖아.”

그렇게 말하고 가나 씨의 뒤에 숨어있던 소녀를 점장 씨 곁으로 보내려 했다.

그러나 따님, 미셸이라고 하는 소녀는 오히려 점장 씨에게서 거리를 두며 눈을 피하려 했다.

군데군데 꿰매려다 만 것처럼 누더기 같은 모습의 소녀는, 이미 나와 점장 님이 알던 미셸이 아니었다.

“이건, 대체, 아칸, 어떻게 된, 거야?”

“그걸 나도 모르겠어. 내가 찾았을 때는 마치 인형(돌)처럼 자아가 없었거든. 하지만 분명 미셸 본인은 맞는데, 뭔가 미셸이 아닌 게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 마녀들이 쓰는 흑마법 같기도 하고, 북방국의 기술 같기도 하고, 심지어 내가 가진 문장력으로도 이성을 겨우 되찾게 하는 게 고작이었어.”

나는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머릿속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괜, 찮아. 찾아준 것만 해도, 난, 만족해. 쿨럭.”

점장 씨가 다시금 피를 토하자, 가나 씨가 점장 씨의 이마에 손을 대고 조용히 말했다.

“···칫! '몇 주 전과 같이 반복', '내 손을 통해 이마에 스며드는 것은 마나이자, 생명력, 그리고 만물을 정화하는 치유의 기운이니··· 한때 절친이며, 아내인 마녀가 걸었던 저주는 마치 눈이 녹는 듯 사라지고, 다시금 전신에 활력을 찾아가며 기적적으로 부활의 때를 맞이'하, 려니··· 미안, 역시 지금 가진 문장력으로 ‘전개’를 시켜도 듣지 않아.”

“···충분해. 잠시, 잠시만 시간을 벌어줘서, 고마워.”

점장 씨의 손이 그 소녀에게로 향했다.

“우리, 딸, 아빠란다, 알고 있지?”

그 소녀, 미셸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점장 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 빠?”

그 한 마디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 점장 씨.

“미안, 하구나. 널 혼자 놔두는 게, 아니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아빠는, 네가 어떤 모습이 되어버리든, 너를 사랑, 한단다. 아빠와, 엄마의, 귀여운, 딸이니까.”

“아, 빠? 엄, 마?”

나는 정리가 안 된 복잡한 머리를 끌어안고서 그 슬픈 광경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내 탓이다. 내 탓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우, 군?”

점장 씨가 부르자 나는 고민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리고 곧바로 점장 씨 곁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네! 말씀하세요! 듣고 있어요!”

“하하, 미안하네.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네에게, 부탁을 해야, 겠어.”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야만 했다. 서서히 사라져가는 생명, 점장 씨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 우리, 미셸을, 잘, 부탁, 하네.”

그 말을 들은 나는 급기야 참고 있던 눈물을 조용히 흘리며 점장 씨를 향해 소리쳤다.

“큭! 그런 거, 그런 걸 어떻게 수락해요?! 그런 건 점장 씨가 일어나서 본인이 하시라고요! 저 따위 따위 떠넘기고 가버리는 건 치사하다고요! 교회든 가나 씨에게든 맡기라고요!”

그러나 점장 씨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힘겹게 말했다.

“부, 부탁, 하네.”

결국 나는 점장 씨의 인생 중 마지막 순간에 굴복하고 말았다.

“젠장, 젠장!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노력해 볼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걱정 말고, 이제 편히 쉬세요.”

그러자 미셸이 쥐고 있는 점장 씨의 손에서 마지막 힘이 빠져나갔다.

“고, 고맙, 네.”

싸늘한 정적 속에서 나는 조용히, 그리고 원통한 마음을 담아 흐느꼈고, 그에 비해 가나 씨는 미셸을 데리고 침실 밖으로 나가 눈가를 살짝 훔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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