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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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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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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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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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DUMMY

“···샬롯 아가씨, 벌써 세 병째입니다.”

“그딴 거 나도 알고 있다고, 그래도 나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그렇게 말한 후 네 병째의 코르크 마개를 따려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에 집사인 알프레드는 작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어제에 이어서 홧김에 마시는 술병을 합하면 현재 따려는 것까지 합해서 무려 아홉 병이다.

제 아무리 문장력을 사용해서 강제로 취기를 해소시킬 수 있다지만, 이토록 일정 간격 없이 마셔대면 사용인으로서 무척 곤란했으니 말이다.


“···푸하! 어제 이후로 그 바보 아칸의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영지 내에서 이런 식으로 풀지 않으면 나에게 대체 어쩌라는 거야!”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을 것으로 푼다. 그 이외의 해소법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딱 한 번은 있었다.

이시우를 가나 아칸에게 빼앗겨서 그들이 영지 밖으로 나갈 때, 엘리자베트는 영지 바깥에 있는 언덕을 날려버려서 이후에 메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크고 넓은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버렸었다.


“으, 으으··· 바보 아칸, 바보 아칸, 그 빌어먹을 왕 바보 아칸!”


엘리자베트의 술주정에 대기 중의 마나가 공명하더니 이윽고 들고 있던 와인잔을 포함해 곳곳에 대기 중인 와인들마저 깨지며 안에 든 술이 폭발하는 등 대참사가 일어났다.

덕분에 머리부터 술을 흠뻑 뒤집어 쓴 엘리자베트에 비해 알프레드는 단안경에 실금이 가고, 오른쪽 장갑이 흠뻑 젖은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무사했다.


“···샬롯 아가씨, 더 이상의 음주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주인님에게 보고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조용히 이를 갈면서 침묵하는 엘리자베트.

옛날에 그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만들었을 때 딸바보인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에 꿀밤을 먹였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맞아봤던 충격적인 순간인 동시에 당분간 서로 대화조차 못한 채 단절되어야 했던 악몽.


“···아, 알았어. 이제 그만 마실게.”


물론 다소의 걱정은 해도 고작 이 정도로 그 딸바보인 바론이 엘리자베트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으리라.

다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아버지이자 영주인 그에게 괜한 신경을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이제부터 청소를 시작할 테니 메이드들에게 명령해서 입욕 준비를···.”

“됐어. 그냥··· 나 혼자 씻게 내버려 둬.”

“···잘 알겠습니다.”


엘리자베트는 전신이 축축하게 젖은 채 방에서 나섰다.

그러자 바깥에는 술병의 폭발음에 당황해서 달려온 마리엘과 마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대기 중이었다.


“가서 청소해. 그리고 나 따라오지 마.”

“···알겠습니다.”

“···예, 엣?!”


오직 동생인 마리만이 당황했지만, 엘리자베트에게 명령받은 이상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그렇게 혼자가 된 엘리자베트는 바닥에 연이어 떨어지는 술방울조차 개의치 않고 개인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짜증나.”


엘리자베트는 몇 번이고 진정하려 했지만,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다.

물론 술이 들어간 탓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어이없고 우스워 보인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샬롯 백작령의 영애이자 이능작가인 엘리자베트 자신이 고작 사소한 말다툼으로 며칠 동안 끙끙 앓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우.”


다행스럽게도 개인 욕실에 도착할 때까지 가나 아칸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 마음에 안도하며 갈아입을 옷을 고르고 욕실로 들어가 온수가 나오도록 청색 결정과 마력석을 조작하는 엘리자베트.

그러자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매끈하고 고급스러운 욕조에 금방 따뜻한 물이 차올랐다.


“그 바보 아칸도 그렇고, 사용인들 앞에서도 그렇고, 그 유명한 샬롯 가문의 귀족 영애가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술에 젖어버린 드레스를 벗어서 천천히 몸을 담그는 도중 자문자답하는 엘리자베트.

그 말에는 미약하게나마 문장력이 깃들어 있어서 혼자 있을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난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처음에는 단순히 가나 아칸을 위로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게 좀처럼 마음먹은 것처럼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가나 아칸이 더욱 침울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자 답답한 마음에 그 동안 쌓아둔 온갖 감정들이 폭발한 것, 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폭발은 이시우를 가나 아칸에게 빼앗긴 이후부터 점차 쌓이던 것이다.


“···이시우.”


그는 엘리자베트에게 생소한 체험을 하게 만들어 준 인물인 동시에 이능작가로서 과거의 기억을 잃은 엘리자베트의 첫사랑이었다.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던 엘리자베트이면서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감정에 당황하면서도 욕심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했다.

고로 엘리자베트는 이시우를 원했다.

그리고 이시우와 함께 영지 바깥을 나가고 싶었다.


“나는 그저··· 나도 시우랑 나가서 모험을 하고 싶었는데···.”


부족한 것이 없었던 인생에서 과거의 기억이 없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불편했지만, 그 이상으로 불편했던 것은 이능작가의 힘을 지닌 탓에 외부와 단절되어야 했던 폐쇄적인 환경이었다.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을 통해 지식으로는 알아도 경험하지 못했던 바깥의 세계.

그것은 기억을 잃은 후였기에 더욱 절실했다.


“그런데 그 바보 아칸이··· 아니지, 원래부터 바보 아칸의 것이었을 테지.”


이시우와의 첫 만남은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 이후에 가나 아칸을 통해 정식으로 소개를 받고나서 끌리게 되었다.

귀족으로 떠받들어주지 않았으면서 또래의 여자처럼 상냥하고 친근하게 다가와 준 남자, 그리고 그 누구보다 다양한 세계를, 그리고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해왔던 남자.

그토록 매력적인 장난감이자 이성은 평생이 걸려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주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로 절친인 가나 아칸이었다.


“하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내가 꼴사납게 질투라니. 게다가 그런 일반인이 이 고귀한 나에게 어울릴 리가 없잖아?”


그러나 미약하게 문장력을 담아낸 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나 감정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 포장하든, 설령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든, 엘리자베트 본인에게 끌리는 것은 여전히 이시우였다.

그런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이나 이성을 갖고 있는 가나 아칸이 침울하는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해도 마치 엘리자베트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하, 하하하.”


엘리자베트는 새삼스럽게 다시금 생각하니 화가 난 모양인지 허탈한 웃음 뒤에 욕조에 담긴 물이 파문을 일으키며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일도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곧바로 진정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였어.”


갑자기 엘리자베트는 납득했다.

욕조에서 일어나 두 주먹을 강하게 쥐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가나 아칸을 대신해서 바깥에도 나가고 이시우를 지키면 되는 거야.”


샬롯 백작령을 지킬 수 있는 이능작가를 원하는 거라면 굳이 엘리자베트 본인이 아니라도 상관없다면, 가나 아칸을 앉혀놓아도 문제는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에 더해 엘리자베트 본인이 바깥에도 나갈 수 있고, 꿈에도 그리던 첫사랑인 이시우와 함께 할 수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었다.

아직까지 취기가 가시지 않은 엘리자베트는 그 동안 이토록 단순하게 해결하지 못 했던 스스로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래, 절망감에 빠져서 기운이 없는 가나 아칸은 더 이상 나보다 강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약해져있어!”


그러자 귀족들이나 이능작가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가나 아칸보다 약하다는 등 이인자 취급을 받는 등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객관적으로 보자면 평소에는 승산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력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위력과 효율이 좌우되는 기술인만큼 먼저 기습을 걸 속셈인 엘리자베트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후, 후후후··· 아하하하하!”


그렇게 정한 엘리자베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입욕을 마치고, 가져온 옷을 입은 채 방을 나섰다.

조용히 중얼거리는 말 속에서 가공할 수준의 문장력이 담겨져 있었고, 양 손의 손가락마다 각자 다른 마법을 미리 걸고서 가나 아칸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가나 아칸이 머무르고 있는 방의 문을 걷어차고 한 손에 담겨있는 다섯 가지 마법이 작렬했다.


“가나 아칸! 이리 와서 나와 싸우자!”


기습인 동시에 선공으로 날린 다섯 가지 마법은 각각 필중 마법, 봉쇄 마법, 약체화 마법, 유도 마법, 공격 마법 등 선제공격에 자주 쓰이는 정석적인 마법들뿐이었다.

그렇게 다섯 가지 마법에 적중한 가나 아칸은 맥을 못 추고 있을 무렵, 이대로 다른 손에 있는 나머지 다섯 가지 공격 마법으로 승기를 기울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아니, 최선일 터였다.


“왜 그래, 마치 예상이 빗나갔다는 표정이네? 샤베트?”


이미 방에는 만전의 태세로 대기 중인 가나 아칸이 다섯 가지 마법을 적중시키기 전에 소멸시킨 후 여유롭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당황한 것은 취기가 남아있는 엘리자베트였다.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저녁 식사 때 누가 이겼었는지 승패를 정하지 못한 채였잖아?”

“뭐, 뭐···?”


엘리자베트는 영문을 모르는 채 반문했지만, 가나 아칸이 시원스럽게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기분도 꿀꿀하던 차에 너랑 못다 한 승부라도 낼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토리가 근처에서 익숙한 마력 반응이 오고 있다고 해서 말이지?”


가나 아칸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엘리자베트는 조금씩 술이 깨는 것을 느끼며 냉정을 되찾아갔다.

상대는 영지에 갇혀있는 본인, 엘리자베트와는 달리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 모험가이자 상위호환에 해당하는 이능작가다.


“엇··· 어, 라···?”


비록 이시우로 인해 다소의 충격을 받긴 했을 지라도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거나 포기할 듯 절망하는 여자가 아니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몇 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테고, 무엇보다 이번에는 영원히 잃어버린 것도 아닌, 그저 단순한 실책에 불과했을 테니 충격 자체는 과거에 비할 게 아니었으리라.

오히려 가나 아칸이라면 그 우울한 기분을 풀어버리기 위해, 더욱 쾌활하게 기운을 차리기 위해, 호전적이 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리라.


“그래도 역시 친구는 친구더라! 나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싸울 태세도 갖춰서 먼저 공격할 줄은 몰랐거든!”


그것은 단순히 가나 아칸의 착각일 터지만, 엘리자베트는 방금 전까지 그 부끄럽고 추악한 생각과 계획을 깡그리 날려버린 후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 그래! 맞아! 그래야 내 평생의 라이벌, 가나 아칸이지! 역시 만만치 않겠네! 당분간 우울한 생각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도록 아주 호되게 공격할 테니 어디 한 번 당해봐랏!”

“아하하! 고마워, 샤베트! 그럼 조금 손대중을 해볼 테니 어디 한번 서로 박 터지게 싸워보자고!”


그 직후 가나 아칸의 방은 수많은 마법의 난사로 인해 성대하게 폭발하여 인근 영지민들에게 두려움을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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