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옴니버스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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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법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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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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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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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DUMMY

“···오랜만이구나. 네가 연맹을 다시 찾았다는 말을 병졸에게 들었을 때는 노부의 귀마저 멀게 된 것은 아닐지 의심했었다.”


연맹 상층부에 위치한 어느 호화로운 개인실.

그 동안의 밀린 정무에 힘을 쓰고 있던 맹주가 병졸에게서 알현 요청, 그것도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소식을 들었을 때 모든 걸 뒤로 미루고 갑작스럽게 휴식을 취하겠다고 선언하며 요청을 수락했었다.

그 정도로 연합맹주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 바로 진수련이었다.


“허허허. 그러고 보면 오라비의 기억을 찾겠다고 본국을 무작정 뛰어나간 지 어언 열 해나 지나갔구나.”


진수련은 연합맹주 앞에서 줄곧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고 하지만, 무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홀로 지내야 했던 것을 말이다.


“···연아야. 무슨 말이라도 말해 보거라, 설마 네 오라비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느냐?”

“그 동안 소녀가 잠적해야만 했던 것과 아무런 기별조차 없이 찾아온 것에 대해서는 부디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연합맹주의 말에 그제야 진수련이 입을 열었다.


“맹주께서 그 어떤 말씀을 하시든 소녀는 그 날 이후로 소녀 스스로와 오라버니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10년 전의 진수련은 평범한 남매 중 세상물정 모르는 여동생 쪽이었다.

그러던 중 하늘로부터 한 줄기 벼락이 떨어져서 남매에게, 정확히는 진수련에게 적중했었다.

그 이후로 남매는 기억을 잃었고, 진수련은 이능작가가 되었다.


“···연아의 마음은 이 노부도, 아니 이 할애비도 잘 알고 있단다. 그러나 본국의 그 어떤 고명한 의원들도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할 수 없었고, 할애비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진수련의 친조부, 연합맹주는 이능작가에 대한 것들 몰랐다.

그래서 하늘에서 떨어진 한 줄기 벼락을 천벌이라 생각하고, 남매의 잃어버린 기억을 그 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한 대가라 치부하며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동방국의 어떤 의원들도 남매의 기억을 되살려내지 못 했고, 최소한 두 사람만은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하오나 제 아무리 세상의 섭리라 한들, 설령 정말로 신이 내리는 천벌이라 한들, 할아버님이 원래의 저희들을 포기하고서 새로운 저희들을 맞이하려 한들··· 소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죠.”


진수련은 오빠와 동시에 기억을 잃었지만, 그 대가로 이능작가라는 힘을 갖게 되었다.

즉 그 동안은 무지하고 무력했을 지라도, 이능작가로서 힘을 기르며 원인을 상세하게 파악하면 기억을 되찾을 방도를 구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설령 친조부라 주장하는 연합맹주가 막아선다고 해도, 더 이상 동방국에서 아무런 방법이 없다면, 그렇다면 그 이외의 타국에서 방법을 찾을 뿐이었다.


“···소녀는 현재 서방국의 어떤 거대한 영지와 계약하여 과거를 틈틈이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샬롯 백작령의 이능작가 엘리자베트 샬롯과 만나게 되었고, 그녀를 후견인으로서 서방국에서 생활하며 과거의 대한 단서와 이능작가에 대한 것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뭔가 수확은 있더냐?”

“적어도 본국에 있을 때보다는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웠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연합맹주의 심기는 불편해졌다.

일찍이 남매의 기억을 포기해버린 이후 본인의 선택이 정말로 최선이었던 것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바뀌게 될 남매의 인생에 대해서 적지 않은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수련을 만나게 된 연합맹주의 일차적인 인상은 예상 이상이었다.


“···그러냐. 정말, 홀로 꿋꿋하게 잘 살아온 것 같더구나.”


연합맹주가 옛날을 그리워하는 눈길을 보내자 진수련은 당당하게 말했다.


“소녀는 더 이상 할아버님께서 걱정하실 정도로 나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전 일은 서로 짐시 잊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연합맹주는 조금 놀랐다.

무려 10년이 넘게 소식이 없었던 친자식이 일부러 찾아온 것에 모종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령 동방국 바깥에서 생활하면서 피로한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또는 의지하기 위해 가족을 찾는 등은 설령 무인이라도 당연하리라고 말이다.


“설마, 오랜만에 노부를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더냐?”

“···그렇습니다.”


연합맹주는 앞서 옛날의 이야기를 꺼낸 마당에 이제 와서 기억을 되찾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다면 그 이외에 진수련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 별 다른 구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렴 10년이나 따로 떨어져 있었던 마당에 갑자기 연맹에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더 더욱 그랬었다.


“그, 그렇구나. 허나 지금은 그런 세상 이야기보다 연아야, 네가 돌아온 것이 노부는 순수하게 기쁘구나. 그럼 식사나 차를 할 테냐? 아니면 오랜만에 오라비를 만나 볼 테냐? 너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준비해서 성대하게 환영해주마.”


10년 동안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기쁨과 본인의 선택에 의한 그 동안의 회한이 줄곧 사무쳐서 그 순간에 터져 나왔다.

연합맹주는 남매를 무척 아꼈고, 그렇기에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것이 자신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기뻤다.

그러나 그 분위기를 순수하게 즐길 수 없었던 건 진수련이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오나 소녀는 일 식경 전에 이미 질릴 만큼 식사를 한 참이며, 아직 오라버니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연합맹주는 오랜만에 만난 친자식의 기쁨이 점차 수그러들었고, 진수련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연합맹주를 쏘아보며 말했다.


“할아버님, 아니 맹주께서는 월영단이라 하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진수련의 충격적인 말에 연합맹주는 두 눈을 크게 뜨면서 경악했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타국에서 10년 동안 잠적했던 소중한 친자식에게서 그런 극악무도한 조직의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연합맹주의 머릿속은 마치 서로가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것처럼 혼란스러웠으며, 한 순간이나마 냉정을 유지하지 못 하기도 했다.


“그, 그럼 알다마다··· 헌데, 연아의 입에서 그 놈들의 일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구나.”

“···본래라면 맹주께 아뢰기 이전에 소녀의 선에서 매듭을 짓고 싶었습니다. 하오나 소녀는 예전보다 강해졌다고 한들 아직까지 신출내기에 불과할 뿐이었죠.”


연합맹주는 먀우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진수련이 월영단의 일에 관계가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서방국으로 건너간 월영단이 서방국에서 활동하고 있을 진수련과 연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게 무슨 말이냐? 서방국에서 월영단 놈들이라도 만난 게냐?”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 서방국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소녀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동방국, 즉 본국의 일입니다.”


연합맹주는 진수련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점점 불안한 기분을 감추지 못 했다.

10년만에 찾아온 친자식이 이토록 불길한 이야기를 갖고 오는 것도 그렇지만, 맹주의 입장에서 본국, 즉 동방국이 다시금 월영단의 창궐로 위기에 빠지리라는 예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실 소녀는 최근 들어, 몇 해 전부터 본맹의 눈길을 피해서 간혹 서방국과 동방국 사이를 오갔습니다. 그러던 중 월영단의 잔당을 확인하였죠.”


그 이후로는 가나 일행에게 했던 말을 연합맹주에게 거의 똑같이 되풀이해서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이능작가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그 다음은 몇 년에 걸쳐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무인들마저 월영단의 잔당이 되어가는 것을, 그리고 월영단에게서 고용된 살수들에게 습격을 받게 된 확신 등을 말이다.

진수련의 이야기가 대략 일 다경 정도가 흐른 후 연합맹주는 전에 없을 정도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설마하니··· 본맹이, 아니 본국 전체에 그러한 사악한 술수가 뻗어나가 있을 줄이야.”

“···무리도 아닙니다. 월영단의 잔당들을 간신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소녀 같은 이능작가 뿐이니 말이죠.”


진수련이 위로의 말을 했지만, 연합맹주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동안의 경험으로 온갖 책략을 궁리하던 도중 무언가가 생각이 난 듯 중얼거렸다.


“그, 그렇군! 타국에 보낸 월영단은 정보 수집 겸 미끼였나! 이미 본국에는 그 동안 늘어난 잔당 놈들이 아무렇지 않게 진을 친 후 기습을 가할 생각이었다니!”

“솔직히 소녀도 서방국에 월영단 잔당들이 출현했다는 말씀은 이번에 처음 듣습니다만, 아마 그런 속셈이겠죠.”


만일 진수련의 말이 전부 사실이고, 이에 더해서 연합맹주의 생각마저 사실이라면 연맹은 물론이고 동방국 전역은 국가 붕괴에 비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희대의 재앙을 겪게 될 것이리라.


“···연아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다! 당장 본맹의 유력한 절정고수들을, 아니 노부 같은 절대고수들도 전부 소집해서 최고위의 비상 체제를 발령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이미 소용없습니다, 맹주님.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보았던 대부분의 고수들은 이미 월영단의 수중에 떨어진 듯합니다.”


그 말을 듣자 연합맹주는 지나친 감정의 이입으로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조금씩 절망했다.


“그, 그럴 수가··· 본국의 명예이자 절대적인 기준이어야 할 연맹이, 이미 월영단 놈들의 수중에 떨어져서 영락할 줄이야! 그 동안 태평하게 지냈던 노부가 너무나 부끄러울 따름이구나!”


그 동안 연합맹주는 연맹을 위해, 더 나아가 동방국 전역을 위해 분골쇄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연맹의 맹주라는 최고이자 정점에 위치하면서 수많은 자들을 중재하고, 설령 가벼운 일이라도 엄하게 다스렸으며, 만일 필요하다면 타국의 문물마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인맥도 넓히려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연맹이라는 근본마저 무위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오나 연합맹주시여. 그래서 소녀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니, 소녀와 본국을 구원해 줄 유일한 희망을 데려온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진수련은 처음에 만났을 때처럼 똑같이 당당하고, 또한 의젓하게 연합맹주에게 대답했다.


“비록 소녀의 목적은 따로 있사오나, 본국 출신으로서 모국의 위기를 모른 척 할 수 없었습니다.”

“···오, 오오오! 연아야! 그 기특한 말이 노부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매우 기쁘구나!”


연한맹주는 진수련의 말과 행동이 순수하게 기뻤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울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연아가 강해졌다 한들··· 예전보다 훨씬 더 강대해진 월영단 놈들에게 맞서기에는 부족할 게다.”

“후후후. 그래서 소녀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유일한 희망을 데려왔다고 말이죠.”


그 말에 연합맹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대체 어디에 있더냐? 노부의 멀어버린 눈과 기감으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구나?”

“우후후! 여기에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소녀와 함께 그 분 곁으로 향하게 될 테니, 맹주께서는 부디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계시기’ 바랍니다.”


진수련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고, 호화스러운 개인실은 텅 비어버렸다.

그 직후 소란스러운 환호성과 탄식이 울리는 비무장에 도착하게 된 진수련과 연합맹주.

특히 연합맹주는 방금 전과 확연히 달라진 풍경에 놀라움을 미처 감추지 못 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기묘한 술수란 말인가?! 이것이 연아가 말했던 이능작가의 힘이란 말인가!”

“후후후. 바로 그렇습니다. 허나 제 아무리 소녀라 한들, 지금 저곳에서 싸우고 있는 분의 힘에 비하면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수준이지요.”


진수련 또한 가나 일행 앞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비무장에 오게 된 것에 놀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비무장에서 싸우고 있는 가나를 보게 되면서 조금씩 진정했다.

가나 아칸은 그런 인물이리라고, 미처 엘리자베트에게 듣지 못 했다면, 그리고 가나 아칸이라는 인물이 이룩한 수많은 업적 등을 생각하지 못 했다면 연합맹주만큼이나 혼란스러웠으리라.


“···저기 있는 낭자 말인가? 저 자가 본맹과 본국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물론입니다. 저 낭자 분의 이름은 가나 아칸이라 하여, 과장을 조금 보태서 서방국 제일의 무인이자 이능작가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그렇게 진수련과 연합맹주는 가나와 진화랑의 비무를 관전하게 되었고, 수십 합을 주고받으면서 치열하고 팽팽하게 겨루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선 가나의 일방적인 승리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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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62화 19.05.28 21 0 12쪽
61 제61화 19.05.27 1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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