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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썩어 빠진 이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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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17
작품등록일 :
2019.04.01 10:31
최근연재일 :
2019.04.29 09:5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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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4
글자수 :
126,574

작성
19.04.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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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던전 (4)

DUMMY

“예. 어머니.”

단장, 에투가 고개를 숙이며 꼬리 끝을 정수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 특이한 인사법도 인사법이었지만, 에투가 여왕을 부른 호칭에 더 관심이 갔다.


어머니? 여왕이 어머니라면, 에투는 왕자라는 것이 아닌가.


그럼 에투와 형제인 에토도 왕자라는 말인가? 세상이 말세였다. 원숭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게 왕자라니!


“이 자가 에토의 사신이냐?”

여왕이 거적 대기 밑에서 얇은 손을 꺼내며 나를 가리켰다. 고개 숙인 에투가 턱을 살짝 흔든다.


“예. 그렇습니다.”


“··· 그런가. 드디어 에토가 찾았구나.”

여왕은 그리 읊조리다가, 몸을 돌려 한 천막으로 들어섰다. 거긴 공동에 거의 유일하게 세워진 집이었다.


“들어오게.”

천막 너머에서 여왕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에투의 인도를 따라 천막 안으로 걸어갔다. 토아즈는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


원숭이들이 가득한 공동을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셀 수 없는 수로 가득 찬 공동에는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고요하다.


고요히, 수백 쌍의 눈동자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들어가겠습니다.”

천막의 천을 걷으며 에투가 내게로 손짓했다. 먼저 들어가라는 뜻인지, 그는 천을 붙잡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천막에 들어서자, 나는 이 천막이 단순한 모양내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왜 설치한 건지도 모를 정도로 천막 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도, 장식품도, 심지어는 바닥에 깔릴 여분의 천조차 없어서 차가운 동굴 바닥에 앉아야만 했다.


“에토의 사신.”


“네.”

앞에 앉아 있던 여왕이 내게 말했다. 에투는 천막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 안은 오로지 여왕과 나만이 있었다.


“에토에게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하였겠지. 그 아이는 언제나 그런 식이니까.”

여왕은 그리 말하며 자조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표정이 대체로 이렇던가? 원숭이와 인간은 다를지도 모르고, 개개인마다 또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여왕이 에토에 대해 말할 때의 표정은 특이했다. 모든 감정을 한 움큼씩 집어 섞어놓은 듯한 애잔, 애증의 얼굴.


“궁금한 것이 많겠구나. 이야기해주마.”


“감사합니다.”

여왕은 자세를 편하게 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메가로스··· 아니, 이리 말해도 자네는 모를 터야, 월드 M의 세계에서 이곳, 오니악스로 넘어왔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포탈을 통해 말이야. 여왕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는 건, 학살자의 대상인 월드 M의 거주민들에 원숭이 무리도 속한다는 말이 됐다.


왜 그렇게 에투와 토아즈가 학살자라는 것에 과민 반응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에게 학살자는 잠재적 살인마였으니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렇지, 본래 우리의 세계는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고, 그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는 것이네.”

지구의 포탈을 타고 온 우리와 거의 비슷한 이유였다. 늘어가는 인구,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원, 다른 세계로의 이주··· 포탈에서 넘어온 종족들은 전부 그런 이유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

여왕은 끔찍한 기억을 회상하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퀘스트 같은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에 맞춰 이상한 괴물들이 우리를 공격했네. 우리는 그 공세에 밀려 본래 우리의 포탈이 있던 이 동굴로 다시 돌아오게 됐고······ 그 괴물들이 포탈이 있는 곳으로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굴 바깥으로 오랜 기간 나가지 않았네.”

이상한 괴물, 그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여왕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힘든지 미간을 찌푸리곤 눈을 빨갛게 충혈시켰다.


블러디 울프 같은 포탈을 넘어온 괴물은 아닐 터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블러디 울프가 있는 포탈이 있는 지역에 들어서지 못했을 테니까. 포탈에서 넘어온 것들은 서로의 포탈에 간섭할 수 있다.


그럼 포탈에서 넘어온 생물들 말고, 다른 것들이 이 세계에 있나? 가령 원래부터 여기에 살고 있던 원주민이라던가···.


여왕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말하기 시작하자, 내 생각은 거기서 끊길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래 나가지 않았지, 한 달··· 그 정도는 됐을 거야. 본래 세계에서 가져온 식량도 있고, 사실 동굴 밖을 나가지 않더라도 이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많았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네.”

여왕은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동굴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 자가 이 동굴이 던전처럼 변했다는 걸 알아챘지··· 우리가 결코 나갈 수 없는 던전으로 말일세.”

여왕이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리며 말했다.


“우리는 이제 던전에서 탈출할 수 없어.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럴 마음도 없네.

우리는 우리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야.”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이상한 말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렸다. 포탈을 사용하면 되잖아? 우리처럼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도 아니고, 안전한 던전 안에 있다면 언젠가 포탈이 열리는 때에 맞춰 들어가면 될 것이 아닌가.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내가 생긴 의문을 그대로 표출했다. 여왕은 망설임 없이, 바로 이것이 본론이라는 듯 짤막하게 말했다.


“포탈이 열리질 않네.”


“네?”


“포탈이, 열리지 않는단 말일세. 우리가 던전에 갇힌 그날부터,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백 년? 저쪽 세계의 원숭이들의 수명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냐. 아니, 원숭이의 장수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백 년이나 포탈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가 우선이다.


내가 알기로, 포탈은 이쪽 세계에서는 결코 열 수 없다. 그러나 상대 측에서 여는 것이라면, 포탈만큼 열리기 쉬운 문이 없다.


포탈의 너머, 그러니까 원숭이들의 경우, 그들의 고향에서 포탈을 열 의지만 있다면 자연스레 열리는 것이 포탈이다.


설령 저쪽에서 그럴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백 년이나 지났으면 실수로라도 누군가가 포탈을 열 수도 있을 텐데.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게 정상인가?


말이 되지 않았다. 좀 더 현실성 있게 만들려면, 그렇지.


저쪽 세계에 포탈을 열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큰일이 일어났다면 어떨까. 혹은 포탈을 열 존재가 없거나, 포탈 자체가 생물이 들어설 수 없는 장소로 이동했거나.


“그래서, 제게 해줬으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여왕은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털썩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고 대답했다.


“포탈··· 포탈을 열어주게. 에토가 자네를 보냈다는 건, 자네는 포탈을 열 수 있다는 것이겠지. 그것을 찾기 위해 에토는 한 몸을 희생해서 나간 것이니.”

희생? 이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여왕의 말에 어찌 큰 틀은 잡혔다.


닫힌 포탈을 열어줘라.


괴물과 싸워라, 하늘을 날아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일만 시키던 퀘스트와는 달리 추상적이지만, 얼핏 편해 보이는 일이었다.


나는 귓불을 만지며 시선을 허공으로 옮겼다.


[탐험가 – 0/100]

어쩌면, 포탈에 대해 조사하면 탐험가 수치가 오를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히 오를 것이다.


학살자는 원숭이와 적대하고, 그들을 백 명 이상 죽이면 완료.

그렇다면 탐험가는 원숭이와 협력해야지만 조사할 수 있는 무언가로 올라갈 수치일 가능성이 높았다.


탐험가와 학살자는 완전히 개별적인 개념이었지만, 그것 이외에는 조사할 것이 없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포탈을 열어보겠습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계산 끝에 날 불안하게 쳐다보던 여왕에게 답했다. 여왕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몸을 축 늘어뜨렸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여왕은 감사를 표하며 울먹거렸다. 원숭이건 인간이건, 누군가가 우는 모습은 신선하긴 했지만 그다지 보고 싶진 않았다.


나는 여왕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막 바깥으로 나갔다. 천막에서 나가자마자 옆에서 보초를 서듯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토아즈가 나를 맞이했다.


“이류 님.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네. 에투 님은 어디 계십니까?”

토아즈가 우리가 들어선 입구 쪽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손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향하자, 저 멀리 입구에 서있는 작은 인형이 보였다.


“안 그래도 에투 님도 이류 님이 나오시면 자신에게 오라 이르셨습니다.”

할 얘기가 쌓였군 쌓였어. 나는 토아즈에게 인사하곤 입구에 서 있는 에투에게 걸어갔다.


이젠 나에 대한 원숭이들의 관심은 조금 식은 듯했지만, 여전히 수백 쌍의 눈동자가 내 몸에 쏘아 박혔다. 백 년, 그들끼리 이 던전에서 산 지도 백 년이라고 했었나.


미칠만도 한데, 대단한 정신력이다.


“에투 님.”

내가 뒤에서 말을 걸자, 에투가 뒤돌아 나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작다.


“자네인가. 그래, 어머님에게서 이야기는 듣고 왔겠지.”


“네. 이 던전에 대한 것과 포탈을 열어 달라는 말도 함께요.”

나는 여왕에게서 들은 그대로 말했지만, 에투는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아.”

에투의 말에 내가 의문을 표하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자네가 포탈을 열 수 있는지도 모르고, 애초에, 포탈에 도착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는 거야.”

내가 포탈을 열고 말고는 시험해봐야 아는 것이니 그건 본래부터 거론되던 문제겠지만, 포탈에 도착하는 게 문제라는 소리는 금시 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포탈은 어디 있지? 동굴 안에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이 공동 어디에도 포탈 특유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포탈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이곳에서 좀 떨어져 있다. 가는 길은 알고 있으니, 걸어가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겠지.”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에투의 표정은 근심과 걱정으로 얼룩덜룩 해져 있었다. 대체 뭘 걱정할 게 있단 말인가. 포탈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내가 조사를 하고, 가능하면 포탈을 열면 되는 문제인데.


“내일 일찍 출발할 테니. 일단 오늘은 좀 자. 주변을 돌아다니고 싶다면 맘대로 하고.”

에투는 얼버무리듯이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가 말하지 않는다면 포탈 공략에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정보겠지. 이 던전을 벗어나는 데에 몸이 달은 녀석들은 자기들이지, 내가 아니었으니까.


잠이라. 그러고 보니 포탈에 넘어오고 나선 한숨도 못 잤다.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지만, 잘 여유조차 없었다.


언제나 포탈 주변에만 있어서 피로감은 그리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느껴지지 않는 피로감이 더 무서웠다. 모르는 새에 쌓여서 폭발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자그마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좀 자자.


“잠은 어디서 잡니까?”


“어디서 자긴, 그냥 바닥에 자. 그리 불편하지도 않을 거다.”

자라니··· 그냥 동굴 바닥에서? 둘러보니 몇몇 바닥에 몸을 뉜 원숭이들이 보였다. 하긴, 백 년이면 일반적인 나무 가구들은 못 쓰겠지.


“... 저, 에투 님.”


“뭐? 그냥 아무 데서나 자.”

에투가 나를 나무라듯 쳐다보며 말했다.


“자는 건 그냥 자는 건데, 배가 고파서··· 뭐 먹을 거 없습니까?”

으득. 에투의 입안에서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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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 빠진 이계행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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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중독 (5) 19.04.28 31 1 13쪽
21 중독 (4) 19.04.28 30 1 12쪽
20 중독 (3) 19.04.27 34 1 11쪽
19 중독 (2) 19.04.26 31 1 13쪽
18 중독 (1) +1 19.04.24 43 2 12쪽
» 던전 (4) 19.04.23 38 2 12쪽
16 던전 (3) 19.04.22 40 2 12쪽
15 던전 (2) 19.04.20 5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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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변화 (2) +2 19.04.12 70 2 12쪽
8 변화 (1) +1 19.04.10 71 3 12쪽
7 절망의 자각 +1 19.04.09 83 2 11쪽
6 튜토리얼s +1 19.04.08 85 3 10쪽
5 경고 +1 19.04.06 100 4 13쪽
4 임시 기지 19.04.05 121 2 13쪽
3 도우미 에토 19.04.03 135 4 14쪽
2 몬스터 +2 19.04.02 152 6 13쪽
1 포탈의 너머 19.04.01 22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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