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와 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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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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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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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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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장 이삭줍기 1화 귀환

DUMMY

39장 이삭줍기




1. 귀환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에 대지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첨벙거리는 길 위를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는 사륜 마차의 커다란 바퀴 양옆으로 고여있던 빗물이 촤아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른다. 데니아크는 마차 천장 위로 탁탁거리며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창가를 가리고 있던 가죽 덮개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두 손바닥을 연이어 펼치면 전부 다 가려질 정도로 자그마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콜드베폰 영지의 거리는 가을비 탓인지 평소와 달리 행인들의 그림자 하나 없었다.


데니아크는 시선을 조금 들어올려 창문 너머로 언뜻 비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두어 시간 전 자신이 항구에서 도착했을 무렵부터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어 심상치 않은 빛을 띠고 있던 하늘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막 배에서 내려 콜드베폰 영주가 내려보낸 사람을 따라 마차에 올랐을 무렵만 해도 이리 거세게 내리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위클리암 성을 향해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먹구름으로 까맣게 수놓아져 있던 하늘이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들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비가 내리면 땅이 질퍽질퍽해지기 마련인지라, 이동 중에는 빗줄기가 굵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그의 속마음과 달리 거무스름하게 잠긴 하늘은 그의 사정따윈 전혀 돌아볼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찌뿌둥하게 흐린 하늘에서 하나둘 굴러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점점 거세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시야마저 희뿌옇게 가리고 있을 정도였다. 폭신폭신한 고급 모직 의자에 기대앉아 쉴새 없이 내리치고 있는 빗줄기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데니아크는 어쩐지 마차 안의 공기마저 눅눅하게 젖어드는 느낌에 들고 있던 덮개를 내렸다.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던가.


자신이 뮤켄의 청탁을 받아들여 커런스로 출발했던 것도. 데니아크는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랬다. 아체프렌 왕자에 대한 커런스의 조력 의사를 탐지해 보기 위해 자신이 세레즈를 떠났던 것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난 옛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충실하게 흘러간 시간을 대변하듯, 세레즈는 폭염이 연이어지는 늦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맞이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한달 만에 돌아온 모국의 모습은 어딘지 많이 달라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이런 상황에 세레즈에 변화가 없었을 리 없었다. 태자 전하의 귀환에 대한 소문이 커런스 왕실에까지 속속들이 알려져있는 시점 아닌가? 게다가 제가 커런스를 출발할 즈음 세느비엔느가 도성에서 안타미젤 왕자의 대관식을 치렀다고 하니, 신왕의 등극이 태자의 생환 소식과 맞물렸다면 그간 국내 사정이 얼마나 숨 가쁘게 돌아갔을지는 불문가지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벌써 대관식이 지난지 보름이 지났군. 전하께서는 어찌 계시려나. 모두들 한참 정신 없을 시기겠군.'


데니아크는 팔짱을 낀 채로 두 눈을 살짝 내리감았다.


데니아크를 태운 마차는 세찬 빗줄기 속을 뚫고 야트막한 언덕길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기온이 떨어지는 북부 영지 특유의 한기를 막기 위해 이중삼중으로 단단히 밀폐된 구조의 마차인데도 불구하고, 피부 곁을 감돌고 있는 공기는 이상하리만큼 냉랭했다. 기분 나쁘게 추적거리는 빗소리도 그렇지만, 창문 너머로 아련히 들려오는 바람 소리마저 시원스럽게 터져 나오지 못하는 어린애의 울음마냥 한없이 서글프고 서러운 음조를 띠고 있었다.


그들이 콜드베폰 영지의 본성인 위클리암에 도달한 것은 정오를 훨씬 지나서였다.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처럼 지겹게 내리치던 빗줄기도 그들이 본성으로 들어가는 도개교를 건널 즈음에는 많이 가늘어져 있었다.


머리 위를 두드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빗물에 젖어 미끌거리는 돌계단을 올라서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위클리암 성의 상위 의전관 하나가 곧장 다가왔다. 커런스로 떠나기 직전, 임무를 받고 출발 보고를 하기 위하여 위클리암에 들렀던 그 날에도 저를 안내해준 사내였다.


"어서 오십시오, 데니아크님. "


가볍게 예를 표한 사내는 주저 없는 몸짓으로 마차에서 내려 내성까지 들어오는 사이에 젖어버린 데니아크의 망토를 벗겨내고, 그 대신 들고 있던 모포를 그의 어깨 위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그는 좀 젖어있는 상대방의 망토를 자신의 한 팔 위에 단정하게 걸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리로 오십시오. 아직 식전이실 듯 하여 미리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잠깐만."


마차를 타고 오면서 잠시 눈을 붙였던 탓인지 그리 피곤하지도 허기가 지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왕 다녀온 일에 대해 보고를 먼저 하는 편이 나을 테지. 그리 마음을 굳힌 데니아크는 자기가 전할 말만 끝내고 바로 돌아서 버린 사내를 불러세웠다.


"예. "


"괜찮다면 대공 전하를 먼저 뵙고 싶은데. 그리 해주실 수 있겠는가?"


석고로 만들어진 것마냥 딱딱한 얼굴의 사내가 잠시 입매를 푸는 듯했다. 그러나 데니아크가 그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채 감지해 내기도 전에,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예, 그럼. "


그는 근처에 서있던 청년에게 나직하게 몇 마디 이른 다음, 다시 데니아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응접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저를 따르십시오."


소규모의 응접실에서 시녀들이 내온 홍차를 홀짝거리며 벽 한 편을 장식하고 있는 콜드베폰 영주가의 문장(文狀)을 새삼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던 데니아크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약간 놀란 표정으로 돌아섰다.


한껏 젖혀진 문 사이로 제국내 최연소 대공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영지에 도착한 이상 영주인 뮤켄부터 만나봐야 할 것 같아 의전관에게 그리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조금은 더 기다려야 될 줄 알았는데, 소탈하기만 한 이 젊은 대공은 타인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으로 스스로의 위엄을 드높이고자 하는 사고 방식 같은 건 전혀 없는 듯 했다. 데니아크는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유엘 레 데니아크,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 사이 정말 수고 많으셨소, 데니아크 경."


뮤켄은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추는 그에게 성큼 다가가 그 손을 붙들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번에 경이 보내온 서한을 받고 하루가 열흘인 양 줄곧 경이 세레즈로 어서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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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외전] 청혼 이후 上 - 미드프레드의 이야기 20.02.03 125 2 7쪽
267 [외전] 청혼 下 20.02.01 97 4 7쪽
266 [외전] 청혼 中 20.01.31 121 3 7쪽
265 [외전] 청혼 上 - 브라우웰&미드프레드 이야기 20.01.30 126 4 7쪽
264 39장 이삭줍기 7화 악우 20.01.29 140 5 8쪽
263 39장 이삭줍기 6화 베케이노의 기다림 20.01.28 125 5 8쪽
262 39장 이삭줍기 5화 자금의 출처 20.01.27 119 4 11쪽
261 39장 이삭줍기 4화 희소식 20.01.24 123 4 7쪽
260 39장 이삭줍기 3화 다시, 시작 20.01.23 128 3 8쪽
259 39장 이삭줍기 2화 태자가 던져놓은 포석 20.01.22 133 3 7쪽
» 39장 이삭줍기 1화 귀환 20.01.21 124 4 7쪽
257 38장 적의 적 7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下 20.01.20 130 5 8쪽
256 38장 적의 적 6화 적의 적을 사용하는 법 上 20.01.18 135 5 8쪽
255 38장 적의 적 5화 전쟁이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20.01.17 135 7 8쪽
254 38장 적의 적 4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2 20.01.16 141 6 10쪽
253 38장 적의 적 3화 아직은 버릴 수 없는 패 +2 20.01.15 130 6 8쪽
252 38장 적의 적 2화 공짜가 아닌 성의 20.01.14 117 7 7쪽
251 38장 적의 적 1화 늦은 선물 20.01.13 128 5 8쪽
250 37장 붉은 바람 6화 옥좌란 20.01.11 133 6 9쪽
249 37장 붉은 바람 5화 대관식 직전, 흉몽 20.01.10 111 5 8쪽
248 37장 붉은 바람 4화 뿌리는 자, 거두는 자(회차변동) 20.01.09 128 5 8쪽
247 37장 붉은 바람 3화 왕자의 관용 20.01.08 148 7 10쪽
246 37장 붉은 바람 2화 잠 못 이루는 밤 20.01.07 180 8 8쪽
245 <제3부 다이레비드 공방전> 37장 붉은 바람 1화 기만책 20.01.06 133 6 8쪽
244 [외전] 세월 28 (끝) 20.01.04 129 5 10쪽
243 [외전] 세월 27 20.01.03 102 4 9쪽
242 [외전] 세월 26 20.01.02 102 5 9쪽
241 [외전] 세월 25 19.12.28 92 3 8쪽
240 [외전] 세월 24 19.12.20 101 4 8쪽
239 [외전] 세월 23 19.12.18 100 5 7쪽
238 [외전] 세월 22 19.12.17 105 4 9쪽
237 [외전] 세월 21 19.12.13 112 5 7쪽
236 [외전] 세월 20 19.12.11 104 5 7쪽
235 [외전] 세월 19 19.12.09 112 6 9쪽
234 [외전] 세월 18 19.12.06 110 6 8쪽
233 [외전] 세월 17 19.12.03 127 5 7쪽
232 [외전] 세월 16 19.11.30 113 5 7쪽
231 [외전] 세월 15 19.11.29 121 4 7쪽
230 [외전] 세월 14 19.11.28 118 4 8쪽
229 [외전] 세월 13 +2 19.11.27 113 4 9쪽
228 [외전] 세월 12 19.11.26 119 5 7쪽
227 [외전] 세월 11 19.11.25 123 5 11쪽
226 [외전] 세월 10 19.11.23 126 5 9쪽
225 [외전] 세월 9 19.11.22 114 5 7쪽
224 [외전] 세월 8 19.11.21 115 5 7쪽
223 [외전] 세월 7 19.11.20 124 4 7쪽
222 [외전] 세월 6 19.11.19 125 5 9쪽
221 [외전] 세월 5 19.11.18 140 5 12쪽
220 [외전] 세월 4 19.11.16 155 5 7쪽
219 [외전] 세월 3 19.11.15 152 5 12쪽
218 [외전] 세월 2 19.11.14 170 5 11쪽
217 [외전] 세월 1 -세느비엔느 여왕의 외전 19.11.13 197 6 15쪽
216 36장 선전포고 6화 무혈입성(2부 完) +2 19.11.12 233 7 11쪽
215 36장 선전포고 5화 백성들의 왕 19.11.11 178 8 9쪽
214 36장 선전포고 4화 태자의 대의 19.11.09 193 9 7쪽
213 36장 선전포고 3화 로크라테군의 대응 19.11.08 171 7 7쪽
212 36장 선전포고 2화 전서 19.11.07 192 7 9쪽
211 36장 선전포고 1화 항복 +2 19.11.06 183 8 8쪽
210 35장 붉은 숲 전투 6화 투항 권유 19.11.05 194 7 7쪽
209 35장 붉은 숲 전투 5화 공세 19.11.04 184 7 8쪽
208 35장 붉은 숲 전투 4화 매복 19.11.02 195 6 9쪽
207 35장 붉은 숲 전투 3화 유인 19.11.01 186 6 7쪽
206 35장 붉은 숲 전투 2장 작전과 신뢰 +2 19.10.30 206 8 8쪽
205 35장 붉은 숲 전투 1화 괴물용병 19.10.28 161 6 9쪽
204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6화 첸트로빌 공성군 19.10.25 195 5 10쪽
203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5화 전투 준비 19.10.23 312 5 8쪽
202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4화 요란한 출병 19.10.21 199 7 7쪽
201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3화 관점의 차이 19.10.18 179 7 7쪽
200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2화 백의종군 +4 19.10.16 202 7 9쪽
199 34장 여름 해질녘 향기 1화 아크레이드의 입장 19.10.14 183 7 9쪽
198 33장 흑운의 그림자 6화 급변하는 정세 19.10.11 187 8 8쪽
197 33장 흑운의 그림자 5화 미드프레드와 메이샤드 19.10.09 192 6 9쪽
196 33장 흑운의 그림자 4화 유훈 19.10.07 204 6 9쪽
195 33장 흑운의 그림자 3화 음독 19.10.04 200 7 8쪽
194 33장 흑운의 그림자 2화 번뇌 어린 선택 19.10.02 215 6 7쪽
193 33장 흑운의 그림자 1화 짬짜미 19.10.01 202 8 9쪽
192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8화 줄다리기 하 19.09.30 187 7 9쪽
191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7화 줄다리기 上 19.09.30 183 8 7쪽
190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6화 휘장 너머의 소녀 19.09.28 222 8 9쪽
189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5화 은밀한 초대 19.09.27 219 8 8쪽
188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4화 아비와 딸 19.09.26 206 8 12쪽
187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3화 커런스의 입장 19.09.25 189 8 9쪽
186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2화 공주의 선언 19.09.24 199 8 9쪽
185 32장 보이지 않는 싸움 1화 공주의 결단 19.09.23 243 8 7쪽
184 31장 풍운재자 6화 승부수 19.09.21 226 7 9쪽
183 31장 풍운재자 5화 태자의 특사 +2 19.09.20 232 8 7쪽
182 31장 풍운재자 4화 싸움준비 19.09.19 286 8 7쪽
181 31장 풍운재자 3화 해적이 된 초원의 아이 +2 19.09.18 245 8 11쪽
180 31장 풍운재자 2화 이이제이의 계책 +4 19.09.17 245 12 8쪽
179 31장 풍운재자 1화 혁자생존 +2 19.09.16 280 10 9쪽
178 30장 흐르는 별 7화 거절할 수 없는 청 +2 19.09.12 247 9 13쪽
177 30장 흐르는 별 6화 원유회 19.09.11 244 11 8쪽
176 30장 흐르는 별 5화 이면의 계책 +2 19.09.10 227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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