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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림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5
최근연재일 :
2019.05.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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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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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play W&W online(37)

DUMMY

“안 돼! 이럴 순 없어. 안 돼!”


백(白)은 절규하며 유현의 손을 붙들었다. 그녀의 눈 속에 있는 불꽃은 통제되지 못하고 온 몸으로 번져나가 스스로를 태우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끝낼 순 없어. 간다면 모두 함께 가는 거다.”


백(白)은 자신을 잡아먹는 불길을 잡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에센스 스톤에 과부하가 걸리며 과열돼 모두가 그 빛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에센스 스톤은 진동으로 맹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 지나면 폭발할 터였다.


“이, 이런.”


유현은 에센스 스톤을 바깥으로 꺼내려 손으로 움켜쥐었다. 열기로 손이 타들어갔다. 백(白)은 유현의 팔꿈치를 단단히 붙들었다. 손을 더 깊숙이 넣을 순 있지만 빼기는 힘들도록.


“죽는 거다. 모두 길동무로 가는 거야.”


에센스 스톤의 균열이 더 심해졌다. 돌이 폭발하는 순간, 유현이 손에 낀 의수에서 회색의 빛이 나왔다. 그 빛은 폭발을 삼키고 풍선처럼 부풀며 주변을 뒤덮었다.


*****


득······드득······득.


백(白)은 눈을 떴다.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가 두텁게 앉은 선반에 어지럽게 책들이 쌓여있었다.


“여기는······!”


백(白)은 몸을 일으켰다. 천오백년 간 쌓아온 지식 덕에 여기가 어딘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E의 틈새차원. 잊힌 신의 세계였다. 봉인되어 규모는 한없이 작아져있었지만 형태는 그대로였다.


그녀가 그것을 깨닫자 책의 미로는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거대한 존재의 앞으로 이동했다. 소용돌이치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태가 그녀를 보고 손을 멈췄다. 들고 있던 양피지 긁개에서 굳은 왁스가 떨어졌다. 백(白)은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전승 그대로군요, 당신의 종이 인사 올립니다. 양피지 긁는 자. 저울눈을 속이는 자. 기만자. 신비의 폭로자이자 주사위의 주인이신 분.”


백(白)의 외침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거체를 가리고 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걷혀나갔다. 글자가 미이라화 된 말라붙은 살가죽 위에 빼곡하게 덮여있었다. 존재는 수분이 사라진 찌그러진 눈동자를 돌려 백(白)을 바라보았다.


“제게 힘을 주소서. 당신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백(白)이 외쳤다.


“넌 졌다. 승부는 정해졌어.”


“······무슨 말씀입니까?”


“계정자가 쉐도우 건틀렛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


백(白)의 두개골 속 불꽃이 배신감으로 타올랐다.


“이것이 충성의 대가인가? 평생을 봉인에 매달린 대가가 고작 이거라고?”


“너는 내가 아니라 내 힘을 숭배했다. 목적에 맞는 결과인 셈이지.”



“웃기지 마! 고작 그런 말을 하기 위해 나를 여기로 부른 거냐?”


“널 여기로 부른 이유······누군가는 봉인에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처럼 강대한 존재가 봉인되어있다면 아이톤의 눈을 속일 수 있겠지. 적어도 며칠 정도는.”


“이······이······.”


백(白)은 기만자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봉인되었던 오른쪽도 정상으로 돌아와 마법을 쓰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마법을 퍼부었어도 거대한 존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 차원을 네게 물려주겠다. 넌 늘 내 힘에 관심이 있었지. 여기서 내 힘에 대해 깊이 탐구해보도록. 평생 동안 말이야······.”


“웃기지 마!”


백(白)은 절규하며 기만자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창백한 녹색 광선을 맞은 기만자의 몸은 형체도 없이 분해되어 사라졌다. 텅 빈 책상과 먼지가 앉은 책들을 남기고.


백(白)은 그 모든 것들과 홀로 남겨졌다.


정적과 무한의 시간이 그녀를 내리눌렀다.


*****


갑작스런 빛에 멀었던 눈이 서서히 회복되었다. 유현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白)은 사라지고 없었다. 백(白)이 걸치고 있던 넝마 같은 옷쪼가리만 땅바닥에 굴러다녔다.


“모트, 아직 있냐?”


“그래. 아직 멀쩡해. 사실 아까보다 상태도 좋군.”


“백(白)을 찾아봐.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모트는 투덜거리면서도 유현의 명령을 따랐다. 모트가 주변을 수색하는 사이 유현은 옷가지를 더듬어 의체가 있는지 살폈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가 사용하던 크리스탈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없어. 젠장. 전부 다 없어.”


옷가지를 더듬던 유현은 자신의 왼손에 있던 의체들도 모두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엄지의 의체는 원래 제대로 보인 적도 없지만 그래도 희미하게 금속 관절이 미끄러지는 느낌은 있었다. 지금은 그런 감각도 없었다. 손가락을 연달아 굽혔다 폈지만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다 사라졌어. 전부 다.”


유현은 울먹이며 넝마쪼가리를 몇 번이고 뒤집었다. 최소한 백(白)이 추출해낸 자신의 크리스탈은 되찾아야 했지만 그조차도 없었다.


말세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에서 떨어졌다. 그를 꿰뚫었던 그림자는 삭아 없어졌다. 그것 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그림자 전체가 천천히 닳아 없어지며 자연적인 풍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말세스는 울고 있는 유현을 잠시 지켜본 뒤 자신의 턱뼈를 향해 기어갔다. 그는 그것을 집어 원래의 자리에 끼었다.


“가진 능력들을 다시 점검해봐.” 말세스가 말했다.


“입 닥쳐! 난 망했어. 전부 다 사라졌어. 이젠 집에 돌아갈 수도 없어.”


“필요한 일이다, 계정자. 백(白)이 의체의 지배력을 상실했다면 결정화 된 능력들도 전부 분해돼 원주인에게 돌아갔을 거다. 아니라면······아직도 어딘가 숨어서 반격을 노린다는 뜻이겠지.”


유현은 반신반의하며 스킬창을 열었다. 비어있던 스킬창에 리얼리티 리커버 능력이 돌아와 있었다.


“있다!”


유현은 환호성을 질렀다. 말세스도 유현의 말에 긴장을 풀었다.


“집에 갈 수 있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고!”


“기쁜 건 알겠는데 잠깐 도와줄 수 있나? 저기 굴러다니는 내 다리 좀 주워다 줘. 땅벌레들이 갑옷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게 신경 쓰여 미치겠군.”


유현과 말세스, 모트는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모였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말세스는 어두운 구석에서 뭔가를 집어 유현에게 내밀었다.


“난 이제 필요 없으니 네게 주지.”


말세스는 유현의 손 위에 두 병의 엘릭서를 놓았다.


"엇······.“


유현은 심하게 훼손된 두 구의 시신에 시선을 돌리며 말세스의 눈치를 보았다.


“아까는 미안했어.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


“신경 쓰지 마라. 넌 옳은 일을 했다.”


“다시 좀비로 일으켜볼까? 그 다음에 약을 먹이면 살아날 지 모르잖아.”


말세스는 고개를 저었다.


“진작 안식을 찾았어야 했어. 내가 미련을 가져 가족들의 고통이 더 길어졌다.”


“그렇담 사양하지 않을게.”


유현은 엘릭서를 품속에 넣었다. 그들은 통로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왔다. 먼발치에 범죄자들의 도시 로그로치가 보였다. 유현은 몸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했다. 지하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맑은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웠다.


“으~~~아. 필드의 공기는 좋구만.”


유현은 스킬창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리얼리티 리커버 스킬이 활성화되어 빛나고 있었다.


“어? 뭐야. 살아있었네, 유현.”


리얼리티 리커버를 쓰려는 데 낯익은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노섹이 보였다. 머리 위에 비슷하게 키릴문자 이름을 단 몇몇 파티원과 함께였다. 말세스는 자연스럽게 대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유현은 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노섹은 두 팔을 벌리며 파티원들과 함께 다가왔다.


“뒤에 해골바가지들은 뭐야? 카타콤에서 네크로맨서 전직이라도 한 거야? 용아병은 그렇다 쳐도 공포의 기사를 부리는 건 처음 보는걸.”


“부리는 거 아냐.”


“그래?”


노섹은 유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녀는 캐릭터 정보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진짜 한 번도 안 죽었네. 엔드리스 길드한테서 잘 도망쳤나봐?”


“어······그거에 대해서 말인데. 우리가 습격당할 걸 예상했나?”


노섹은 키득거리며 다른 파티원들과 함께 웃었다.


“엔드리스 길드가 널 찾는 건 비밀도 아니었잖아. 그 상황을 이용한 것뿐이야. 그리폰기사가 너 잡겠다고 길드 애들 몰고 다녀서 본진이 비었거든. 그래서 우리 길드가 좀······걔네 창고에 있는 잉여생산물을 평등하게 분배해준 거지.”


노섹은 손을 들어 유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너한텐 감사하고 있어. 생각보다 시간을 더 많이 끌어줘서 일이 쉽더군.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마. 피차 이득 본 거래잖아. 그렇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파티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 좋은데 내 엘릭서는 돌려줬으면 좋겠군.” 유현이 말했다. 노섹은 그 자리에 서서 다시 유현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품속에서 엘릭서를 꺼내 약을 올리듯 흔들었다.


“어째 꽁으로 만렙 단 건 아닌가보네? 미안하지만 이건 네가 가지기엔 너무 비싼 물건이야, 애송아.”


“그러시겠지.”


유현도 품속에서 칼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노섹은 자신의 허리춤을 살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이 사라지고 칼집만 남아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노섹의 파티원들이 유현을 향해 무기를 뽑았다.


“말세스, 모트.”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잠시 후, 노섹과 그 파티원들은 전부 바닥에 누워있었다. 노섹은 다 죽어가면서 간신히 고개를 들어 유현을 바라보았다.


“너······어떻게 그렇게 강해졌······크헉.”


유현은 철퇴로 노섹의 머리를 찍었다. 노섹은 죽으면서 엘릭서와 함께 자신의 아이템까지 뱉어냈다.


“시비 붙을 것 같으면 무기부터 훔치라고, 애송이.”


유현은 노섹의 파티원이 살아 돌아오기 전에 자리를 떴다. 남쪽으로 향하는 길이 나오자 말세스가 입을 열었다.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군. 나는 이쪽 길로 해서 가면 될 것 같다.”


“어디로 가는데?”


“성도 유테룬드. 아직도 도시가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뭘 하려고?”


“잘 모르겠군. 일단은 아내와 딸의 묘를 만들려 한다. 한동안은 가족을 추모하며 거기 머물 생각이야.”


“그래, 잘 가라고. 죽지 말고.”


“너야말로.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와. 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울 테니.”


“그래. 어이, 모트. 너도 같이 가라.”


“엑? 왜?” 모트가 물었다.


“왜긴······맨날 착취타령 하지 말고 자유를 줄 때 즐겨. 어차피 난 당분간 못 볼 거야. 솔직히 진이 다 빠져서 이 게임 쳐다보기도 싫어.”


모트는 눈치를 보면서도 말세스의 뒤를 따랐다. 유현은 둘이 멀리 가는 것을 지켜보다 여행을 시작했던 언덕으로 되돌아왔다. 언덕에는 알크레오의 시체가 쓸쓸히 버려져있었다. 유현은 리얼리티 리커버를 외쳤다. 몸이 빨려나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모니터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불을 때지 않아 바닥은 차가웠지만 익숙한 방 안의 풍경이 그를 반겼다.


“돌아왔다. 드디어 돌아왔어!”


유현은 침대로 쓰러지며 환호성을 질렀다.


유현은 방전된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해놓고 몸에 걸친 장비들을 벗어던졌다. 그는 편한 속옷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날짜는 들어간 때로부터 3일 뒤를 표시하고 있었다.


“어라?”


카타콤에는 시계가 없었지만 사흘보다는 훨씬 오래됐다는 느낌이었는지라 의외였다. 말세스가 열이틀동안 있었다고 한 것도 기억났다.


“게임 속 시간은 실제 시간이랑 다르게 흘러가는 건가······.”


어쨌든 시간을 절약한 셈이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유현은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부재중 통화와 문자의 쓰나미가 몰아쳤다. 어머니와 친구들의 연락처였다. 결혼한 뒤로는 친구들과의 연락도 뜸했는데 어머니가 유현을 찾아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젠장.”


유현은 충전기에서 전화를 뽑고 엘릭서를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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