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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림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5
최근연재일 :
2019.05.12 12:10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9,559
추천수 :
210
글자수 :
195,883

작성
19.05.0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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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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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Daydreamer(1)

DUMMY

아버지가 있어야 할 1인실은 비어있었다. 유현은 핸드폰을 눌러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났다.


“엄마? 어디세요?”


“······유현이, 유현이니?”


전화 너머에서 떨리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현은 6인실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버지의 침대 곁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유현을 보더니 눈물을 쏟으며 일어났다.


“이 녀석아. 그동안 어디 있었어? 왜 전화를 안 받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아버지는 왜 또 6인실로 옮겼어요? 간병인은 어디 있어요?”


“간병인이 다 뭐냐. 내가 한다고 했어.”


“네? 왜요? 돈 드렸잖아요.”


“안 썼어. 유현아, 이리 와봐. 너 솔직히 말해. 위험한 일 하는 거 아니니? 갑자기 그 큰돈이 어디서 난 거야.”


어머니는 유현을 외진 복도 끝으로 데려가 물었다. 순간 머릿속에 그동안 겪은 고난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위험하긴 뭐가 위험해요!”


라고 성을 내긴 했지만 한 타이밍 놓쳐서 안 하느니만 못 한 항변이 되고 말았다. 유현의 반응을 본 어머니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역시 뭔가 있구나. 그렇지? 범죄라도 저지른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그동안 왜 연락 안 받았어.”


“······.”


유현은 게임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을 고백해볼까 생각했으나 그런 말을 했다가 컴퓨터도 없는 정신병동에 감금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역시 그런 거지. 나쁜 짓 한 거지?”


“······원양어선 탔었어요.”


“뭐라고?”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유현은 피하지 않고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배 타기로 하고 계약금으로 받은 거예요, 그 돈.”


“배라고······?”


“네. 배 타고 있으니까 전파가 안 닿아서 전화를 못 받죠. 먼 바다까진 전파가 안 터져요. 아시죠?”


“그, 그러니.”


어머니는 잠깐 생각하다 주저하며 물었다.


“근데 어떻게 돌아온 거니?”


“왜요. 이제는 아들이 눈앞에 보이는 게 불만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배······타면 오래 걸리는 거 아니니? 한 몇 개월쯤······.”


“······그게, 음.”


유현은 변명거리를 짜내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때려 쳤어요.”


“때려쳤다고?”


“그래요, 이제 됐죠?”


“······바다 위에 있던 사람들이 너 그만둔다니까 뭍까지 데려다주디?”


“어,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바다에서?”


“콜 때리면 와요. 배로 된 거예요.”


“아까 전화 안 된다고······.”


“아! 엄마는 뭘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 아들 말을 그렇게 못 믿어요?!”


유현은 벌컥 화를 내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얘. 어디 가니? 얘!”


“화장실 가요, 화장실!”


유현은 다시 옷을 붙들려는 어머니의 손길을 뿌리쳤다.


“거짓말 할 때 눈 안 깜빡이는 버릇은 못 고쳤나보네.”


유현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한 초린이가 병원 벽에 기대서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 있냐?”


초린이 1층 벤치에서 캔커피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유현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초린이의 입에 물렸다.


“커피 먹고 담배 피우면 입에서 똥내 나는데.”


유현은 불을 붙여주며 궁시렁 거렸다.


“니나 잘 하세요.”


“잘 하고 있거든. 눈은 또 뭐야. 그것도 신상 패션인 거야?”


초린이는 유현을 잠시 쏘아보다가 말없이 안대를 까뒤집었다. 푸르딩딩하게 부어오른 눈이 드러났다. 유현은 너무나 기뻐서 표정관리도 못하고 실실 쪼갰다.


“그 남자가 그런 거야?”


“씨발새끼. 좋아 죽는 거 봐라. 이제 남이라 이거지?”


초린이는 안대를 되돌리고 커피를 홀짝였다. 유현은 캔커피를 하나 더 뽑아 초린의 옆에 앉았다.


“헤어졌어?”


“나름 안전이별 했지. 불알 한 짝 으깨줬으니까 퇴원할 때까진 못 찾아올걸?”


“그 남자도 여기 입원했냐?”


“니 엄마가 연락했어. 유현이가 전화를 안 받는데 혹시 아는 거 없냐고. 할 일도 없어서 구경이나 해보려고 왔지, 뭐. ex-sea mother가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걸 보면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해보려고 했는데······. 별 일 없는 것 같네.”


“말하는 싸가지 봐라.”


“그게 내 매력이잖니.”


딱히 반박할 말도 없고 해서 유현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저 예쁜 애들은 예쁜 값을 한다는 옛 명제를 속으로 주어 섬겼을 뿐. 초린은 담배를 입에 물고 멍하니 있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냐?”


“······얼마?”


“글쎄, 한 백만 원? 방 하나 구하려는 데 보증금이 쪼끔 부족하네.”


유현은 아무 말 없이 지갑을 꺼냈다. 그는 지갑 속에서 오만원짜리를 스무 장 꺼내 내밀었다. 초린이는 유현의 지갑에 가득한 노란색 지폐를 보고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하지만 이내 예전의 여유 있는 눈빛을 되찾았다.


“어쭈, 제법인데. 나까지 궁금해지는 걸? 그동안 연락도 없이 어디서 뭘 한 거야? 마약 밀수?”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지. 특히 너 같은 애는.”


“내가 어디가 어때서!”


유현은 목소리를 높이며 초린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초린은 다가오는 유현을 흘끔 쳐다보았지만 담배만 빨 뿐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초린아. 다시 합치지 않을래? 이제 돈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아버지도 곧 회복되실 거고.”


“꼭 의사처럼 얘기한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위중해보이시던데. 난 병수발 들기 싫어.”


“회복되실 거야. 내일이라도 퇴원하실 수 있어.”


유현은 확신에 찬 눈으로 초린을 바라보았다. 초린은 유현을 마주보며 당황해 눈을 깜빡거렸다.


“너······좀 바뀌었네. 진짜 유현이 맞아?”


“다시 합치는 거지?”


“글쎄······그닥 끌리진 않는걸.”


“어째서?” 유현이 되물었다. 초린은 시큰둥한 얼굴로 담배연기를 하늘로 뿜어냈다.


“내가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너 같은 남자랑 결혼한 이유는······네가 제일 M이기 때문이었어.”


“M?”


“고통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 있잖아. 난 남편 괴롭히는 건 끝내주게 잘 할 자신이 있었거든.”


“뭔 소릴 하는 거야? 난 M 아냐.”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근데 난 그렇게 느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게 왜 합칠 이유가 안 되는 건데?”


초린은 핸드백 속에 유현이 준 돈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담배꽁초를 손으로 튕기고 구둣발로 비벼서 불을 껐다.


“네가 처음 아버지 쓰러졌단 전화를 받았을 때 기억나? 아니, 못 봤겠군. 거울이 없었으니. 그건 걱정을 하는 눈이 아니었어. 그럭저럭 연기는 하고 있었지만. 표정이야 어찌됐건 네 몸은 기대감으로 떨리고 있었어. 새롭고 알 수 없는 불안을 맞이한다는 설렘으로.”


“뭐?”


유현은 얼굴을 찡그리고 되물었다. 초린은 선 채로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야. 그래서 내가 필요 없게 된 거야. 난 늘 너에게 첫 번째 고통이고 싶었는데 니 아버지한테 밀려버린 거지. 그런 데서 10년이고 20년이고 열등감 느끼면서 살고 싶지 않아.”


초린은 몸을 돌려 떠나려했다. 유현은 일어나 초린이의 팔을 움켜쥐었다.


“장난치지 마. 그딴 이유로 결혼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심한다고?”


초린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거 놔. 아파. 폭행죄로 고소당하고 싶어?”


“아, 미안.”


유현은 잽싸게 손을 풀었다. 초린은 다른 손으로 잡혔던 부위를 연신 주물렀다.


“힘도 세졌네. 어딜 가서 뭘 한 건지. 아우.”


“앞으로 밤일도 잘 할게.”


유현은 겸손하게 손을 앞으로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초린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비웃는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장난이 아냐, 정유현. 솔직히 아까 조금 마음이 흔들렸어. 네가 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너의 제1 고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조금 기대도 됐지. 근데 네 바뀐 태도를 보고 깨달았어. 그렇게 자신감 넘치고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봤거든. 아마도, 짐작이겠지만, 네 아버지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고통을 새로 발견한 거겠지. 난 도저히 상대가 안 돼.”


그녀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돈 빌려준 건 고마워. 한 달쯤 뒤에 통장 확인해봐.”


“가지 마, 제발! 아직 널 좋아한단 말야.”


“꿈 깨셔. 돈도 많아졌으니 가서 새여자나 찾아보는 게 어때? 고분고분 말 잘 들을 사람으로.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니 리더쉽 좀 길러봐.”


초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병원을 떠났다. 유현은 초린이를 붙잡지도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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