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여, 왕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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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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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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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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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영혼의 한타 (3)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25화: 영혼의 한타 (3)


[참나··· 그럼 지금까지 했던 말은 다 거짓부렁이었다는 거냐?]


나이 든 마적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천리군 지휘관은 작은 웃음기 하나 흘리지 않았다.


지휘관은 실실 웃기만 하던 때와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휘관은 나이 든 마적을 설득함으로써 금괴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이 든 마적은 그런 천리군 지휘관을 보며 욕설을 날렸다.


[미친놈···]


[칭찬이 과하시네. 야! 이놈만 빼고 전부 끌어내!]


천리군 지휘관은 나이 든 마적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 저기로 데려가]


이윽고 병사들이 다가와 거동이 불편한 포로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다 일어나. 어서.]


[예···?]


[패잔병 주제에 일어나라면 재까닥 일어날 것이지, 뭔 말이 많아. 안 일어나?]


병사들은 포로들을 멀리 데려간 다음, 나이 든 마적과 정반대 방향으로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는 늘 해오던 일이라는 것처럼 포로들의 뒤통수에 총을 겨누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아...]


곧 포로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색이 되어버렸다.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벼랑 끝으로 몰린 자들이 선택할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포로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증되지 않은 온갖 허위증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라! 아니, 대장님!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저도 그 조선인 마적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장님! 저는 그 자식이 어디 사는지도 압니다! 우리 마을에 살아요!]


[아닙니다! 저희 마을에 삽니다! 토굴에 살면서 구걸을 일삼던 놈입니다!]


[그놈은 애당초 조선놈이 아닙니다! 만주족이에요!]


포로들은 저마다 돌쇠가 자기 마을 출신이라는 둥, 조선인이 아닌 만주족 출신이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살려 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천리군 지휘관의 마음은 이미 나이 든 마적에게 가 있었다.


나이 든 마적의 입만 바라보던 천리군 지휘관은 포로들의 증언을 무시하려는 듯,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리고 넓은 벌판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모두 입 다물어!]


[네...]


[잘 들어. 나는 거짓 따윈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야.]


천리군 지휘관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포로들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위협했다.


[길바닥에서 굴러들어온 잔챙이 거짓부렁은 더 이상 들을 생각 없어.]


포로들은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한 지휘관의 광기 어린 모습에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포로가 침묵을 지키게 된 가운데, 천리군 지휘관은 나이 든 마적에게 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뭔가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나이 든 마적에게 이상하리만큼 집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성의 손에 들어온 금괴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된 것 같았다.


[자, 우리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어디까지 얘기했든 내 답변은 똑같아. 네가 찾는 놈은 여기 없어.]


[자꾸 들었다 놨다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그 조선인 어디 있어?]


[아까 이 근방에 산다고 다른 놈들이 말하지 않았나?]


[난 이제부터 당신 말만 믿을 거야. 사실대로 말하면 내 참모를 시켜주지. 나랑 같이 천리군을 크게 키워보자고.]


천리군 지휘관이 말했다.


포로들을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고 이를 갈던 전쟁광 같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권총을 내려놓고, 나이 든 마적의 대답을 간절한 눈빛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나이 든 마적의 비아냥뿐이었다.


[내 일찍이 들은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이었군.]


[뭐가 사실이었는데? 그 조선인에 관한 이야기야?]


[그렇게 알고 싶나?]


나이 든 마적의 물음에 천리군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만 해. 위치까지 알려주는 거면 더 좋고.]


[네가 정 원한다면··· 내가 들은 소문을 말해주도록 하지. 가까이 와봐.]


옆에 있던 부하들이 위험할 수 있다며 말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도둑맞은 금괴에 눈이 멀어버린 천리군 지휘관은 무장도 내팽개치고 나이 든 마적 옆에 바짝 붙었다.


잠시 후, 나이 든 마적이 입을 열었다.


[내가 들었던 소문은···]


[그래, 어서 말해. 뭘 들었는데?]


[내가 들은 소문은 천리군 총사령의 아들놈이 사리판단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미친놈이라는 것이었어.]


[뭐···?]


[네놈은 방금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했다.]


잠시 후, 조준경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대성의 눈이 커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으아아악!]


천리군 지휘관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나이 든 마적과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나이 든 마적은 오랜 굶주림 끝에 사냥감을 얻은 맹수처럼 적장의 살점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막아! 막으라고!]


곧 천리군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이 든 마적의 돌발 행동을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벼랑 끝에 몰린 포로들 때문이었다.


포로들은 지휘관을 보호하러 가는 천리군 병사들을 온몸으로 막아섰고, 그들과 목숨을 건 혈전을 벌였다.


-탕! 탕! 탕! 탕!-


물론 양손이 결박당한 상태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천리군 병사들을 온몸으로 막아섰던 포로들은 적군의 총알에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하지만 거사를 일으킬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했다.


난리통이 벌어지는 가운데, 붙잡은 천리군 지휘관을 인간방패 삼아 버티던 나이 든 마적은 헐거워진 포승줄을 풀어냈다.


그리고 허리춤에 숨겨놓았던 막대형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천리군 병사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


[도, 도련님! 야 이 머저리들아 뭣들하고 있어! 저놈 끌어내, 아니 쏴버려!]


사색이 돌기는 천리군 지휘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굴 부위 쪽 살점을 여러 번 물어뜯긴 지휘관은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커헉! 야! 야! 모두 총 내려! 총 내리라고 미친놈들아!]


[하하하, 그냥 쏴라! 적군 수장의 아들을 전리품으로 챙겨가는 마당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 쏴!]


[빌어먹을 그런 말 하지 마! 우리 다 같이 살 수 있어! 다 같이 사는 길이 있다고! 모두 총 내려!!!]


[모자란 놈··· 열차는 이미 떠났어.]


[뭐?]


[저승에서 보자!]


-콰앙!-


나이 든 마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들을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폭발음이 들렸다.


-쾅! 쾅! 쾅!-


천리군 병사들이 빈손이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폭발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이어졌다.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다.


“······”


여러 가지 전투 시나리오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대성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마을에 상황을 전해주었다. 그러는 동시에 폭발의 여파가 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벌판을 뒤덮었던 화약 연기와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수류탄이 휩쓸고 간 현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으··· 아주 잘게 조각났군.’


대성은 실로 오랜만에 속이 메스꺼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당장은 비위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는 재난에 가까운 상황을 겪은 천리군의 상태를 숨죽이고 살폈다.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다 죽었나?]


[파편이 조금 박힌 것 같긴 한데···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야.]


[망할, 조금만 가까이 있었으면 황천길 갈 뻔했군.]


[그래도 웬만큼 멀쩡한 것 같은데.]


수류탄 여러 개가 연쇄폭발을 일으킨 탓에 폭발 규모는 상당했지만, 죽은 병사는 예상했던 만큼 많지 않았다.


천리군 지휘관과 그 주변에 모여들었던 충성스러운 병사들 덕분이었다.


수류탄을 덮고 있다시피 했던 천리군 지휘관을 포함하여, 마찬가지로 폭발지점을 둘러싸다시피 했던 충성스러운 병사 몇 명이 사실상 인간 방패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폭발을 온몸으로 받아낸 이들은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지만, 그들 덕분에 적지 않은 수의 병사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남은 병사들 역시 의도치 않게 자신들을 구해준 ‘도련님’과 동료들을 기렸다.


물론 진심에서 우러나온 추모는 아니었다.


[휴···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건만, 도련님이 우릴 구해주셨군.]


[그러게. 우리 개망나니 도련님이 마지막은 성인군자로 가셨어.]


[그런데 이제 어떡하지? 우리 돌아갈 수 있겠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돌아가서 곧이곧대로 보고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살아남은 천리군 병사들의 대답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하나로 일치했다.


천리군 총사령의 유일한 혈육이자 후계자를 잃은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최소 죽음이었다.


그마저도 평범하게 총살만 당하면 다행이고, 수류탄형이나 야포 사격형 등, 별의별 기상천외한 처형 방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더 볼 것도 없네. 그 금괴 훔쳐간 조선놈 출신 지역이 이 근처라고?]


[그렇다는데? 당장 저 앞에 하나 보이는구먼. 저기부터 뒤져보지 뭐.]


[뒤졌는데 없으면?]


[없으면 말고. 환경 좋다 싶으면 저기 눌러앉자고.]


[그래. 바로 가자. 기왕 이렇게 된 거, 새 역사를 만들어봅시다.]


그렇게 천리군 병사들은 새로운 마적단이 되었다. 그들은 여기저기 쓰러진 병사들에게서 총기와 탄약을 회수하고 거병할 준비를 했다.


물론 거병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리는 없었다.


천리군 잔당의 표적이 된 조선인 정착촌 주민들은 마적 하면 일단 숨고 보는 겁쟁이 농사꾼이 아니었다.


-조선인 공동체 방위 요원 전원, 전투배치-


그들은 각자 받은 총기와 탄약을 챙겨 들고 마을 방위에 중요한 진지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대성으로부터 모든 상황을 전달받고 상황에 맞는 전투 준비를 마쳤다.


-작전 명령: 진지 엄폐를 최대한 활용하여 적들의 탄환 소모를 유도할 것-


-백산 정태준은 최전방 진지에서 적군 후방을 교란하겠음-


대성은 저격 소총을 고쳐 들고 적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앞뒤 안 보고 무작정 돌격할 것인가, 아니면 민위군처럼 협조 아닌 협조를 요청할 것인가.’


적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의 대응 방식 역시 달라질 터였다.


[야. 경황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한 게 있는데. 저 마을에 사는 사람들 어디 사람이냐? 한족이야?]


[금괴 들고 튄 놈이 조선인이라며. 조선인 마을 아니야?]


[여기 조선인이나 조선말 할 줄 아는 놈 없지?]


[없어. 아, 그냥 시간 그만 끌고 바로 들어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하긴, 어차피 저 자식들 총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 테니까. 가자!]


[가자!]


천리군 잔당은 고요한 조선인 정착촌을 향해 말고삐를 재촉했다.


대성은 전투를 개시할 타이밍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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