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데이(On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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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작품등록일 :
2019.04.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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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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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1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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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업무가 종료되고 각자 내일의 일을 준비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저녁밥을 기다릴 때, 막내 김익수는 주방이모라 부르는 눈빛이 날카로운 여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두부 모자라다.”

“예!”

“파 아직이니?”

“다 썰어갑니다.”

“양파 열개 더.”

“예!”


취사병 출신이란 말을 내뱉은 것을 후회하며 김익수는 눈물을 흘렸다.


“너 우니?”


담배를 문 여인이 팔에 새긴 문신을 꿈틀거리며 묻자 김익수는 환하게 웃었다. 여인이 칼을 쥐고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양파가 매워서요.”

“쯧! 곱게 자란 놈.”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모님이 대학졸업 후 용돈도 주지 않으셨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김익수는 여인이 마침 절구 방망이를 들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공장을 순회하면 팀원들에게 식사시간을 알린 김익수는 급히 주방으로 뛰어가 앞치마를 입고 배식준비를 했다. 배식을 하던 중 그는 한 번도 배식을 받지 않았던 주포가 보이자 다른 이들처럼 경직된 채 국자를 들었다.


“막내, 밥 먹고 보자.”

“예.”


김익수가 퍼 들고 있던 제육볶음을 받지 않고 지나갔기에 왜 부르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마침 뒤따라 온 차트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돼지고기 안 먹어.”

“아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차트가 가까이 몸을 기우리며 속삭였다.


“서민음식이라고.”


‘미친놈.’


속으로 욕하며 환희 웃은 그의 어깨를 차트가 두드리며 지나갔다. 힘내서 일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것은 김익수가 가장 싫어하는 특공이었다.


“고기 많이 줘.”


김익수는 막내라고 하지 않아 준 것에 감사하며 고기를 듬뿍 퍼 식판에 올렸다.


“내가 돼지새끼냐. 뭐 이리 많이 줘.”


투덜대며 특공이 지나가자 김익수는 국자를 힘껏 움켜쥐며 헤실 거렸다.


“새끼, 쪼개기는.”


국자가 빙글 돌아 특공의 머리를 강타하고, 식판을 떨군 특공위로 올라탄 자신이 주먹질을 한다는 상상을 하던 김익수는 누군가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막내야. 난 야채 많이.”

“흐, 예. 누님.”


누님인지는 모른다. 몇 없는 여자 팀원이었고, 미모도 뛰어났으며, 늘 웃는 얼굴로 이것저것 시켰기에 김익수는 누님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밥은 해주지만 설거지는 각자가 해야 한다. 그건 주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룰이었기에 배식을 끝낸 김익수도 차트 옆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일 할 만해?”

“응.”


주포가 함께 앉아 있어 김익수는 조용히 답하고 밥을 우겨넣었다.


“이모가 뭐라고 안 해?”

“응.”

“전에 가서 뭐라고 했는데?”

“그냥, 증권사 취직했다고.”

“으음... 취직할래? 형이 넣어줄게.”

“내가?”

“어, 형 그 정도 능력 있다. 그러려면 주식공부 좀 해야겠는데... 선배?”


젓가락으로 식판을 뒤척이던 주포가 차트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내 이야기 들었어?”

“뭐? 아아... 네 마음대로 해. 막내 우리 식구잖아.”

“크. 그렇지? 이 녀석 꽤 괜찮지?”

“어어.... 나 먼저 간다.”


주포가 일어나고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김익수가 속삭였다.


“무슨 일 있어?”

“어? 어어... 전에 네가 뭐 주고 온 놈.”

“어...”


김익수는 제대로 전달한 것인지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보자 차트가 미소를 보였다.


“별일 아냐. 자존심 문제지 손해가 큰 것도 아니고. 아, 너도 이건 배워둬야지. 자 이 밥을 봐. 주식이 총 200만주야. 이렇게 덩어리가 있지. 처음엔 이걸 이놈저놈 나눠가지고 있지. 큰 덩어리는 대주주가, 그 다음은 이사들이. 그리고 나머지 개미들이. 공모하고 한동안 내비두는 게 좋은데, 이건 좀 다른 주식이라서 선 작업을 했어. 선 작업은 공모하기 전부터 작업하는 건데, 증권사 애들한테 상장하기 전에 평가 좀 잘 해달라고 떡고물 돌리는 일이야.....”


차트는 유아이피에너지의 주가의 흐름에 맞춰 자신들이 해온 일들을 간략히 설명했다.


“.....오늘이 히트지. 양도세법이 개정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정부발표가 나왔지. 불안해하던 개미새끼들이 바글바글 몰려들겠지? 쌈짓돈, 담뱃값 탁탁 털어서 떨어진 주식 사려고 눈독 들일 때 뭘 고르겠어?”


“올라가는 거?”


“캬, 이 녀석 내 동생 아니랄까봐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네. 그렇지. 주식 별거 아냐. 사고 싶은 놈이 많아지면 오르고, 아니면 내려가는 것이지. 간단해. 그러니까 오늘 이 주식도 사고 싶어지게 만들면 되는 것이거든. 전에 대주주가 시장이 불안할 때 슬금슬금 가진 거 털어냈잖아. 충분히 이익도 봤고. 이게 이정도로 끝날 주식이 아니거든. 그러니 이제 다시 사들여야지. 그래야 회사도 안 뺏기고. 아, 사모펀드 같은 애들 끼어들면 다 된 밥에 좆 되는 거야. 그 새끼들 자금으로 매집해버리면 끝나는 거지. 그런 놈들 안 끼게 잘 관리해야지, 딱 보기에도 가망 없다. 뭐 그렇게?”


“응.”


“그런데 오늘 웬 날파리가 끼어들었네?


“날파리?”


“어, 왜 밥 차려놓으면 날아와서 쳐 먹는 개새끼들 있잖아. 오늘 온 놈은 하루살이새끼지만.”


‘하루...’


김익수는 그 이름이 평택에 몇 명이나 있을까 다시 생각했다.


“그런데 이놈이 어디서 자금을 끌어왔는지 평소엔 10억으로 굴리다 오늘은 50억으로 우리가 내놓은 걸 쫙 빨아먹었잖아. 그래서 주포가 저렇게 열 받은 거야.”


“아아...”


김익수는 주포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깨달았다. 이번에도 경고를 할 모양이구나 생각할 때, 차트가 일어났다.


“누님 밥은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적응이 안 되네.”


-차트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이크, 들었나보다. 농담입니다! 저 식사 약속 있는데도 누님 밥 먹고 나가는 겁니다.”


-좆까고 올 때 보드카 몇 병 사와. 나 먹는 거 알지?


“예, 물론이죠. 익...막내야 나중에 보자.”


주포가 부른다는 것을 김익수는 말해야할까 말까 망설였다.


“왜?”

“어, 아냐. 다녀와. 형.”


머리를 헝클이고 식판을 들고 나가는 차트를 보곤 다시 식판에 눈을 뒀지만 김익수는 식욕이 사라져 버렸다.


‘10억.... 촌놈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다른 놈일까.’


파출소에 끌려갔을 때 김익수는 반성하는 마음이 있었다. 운동화의 가격을 제대로 알게 되자 일이 커졌다 느꼈다. 겁주기 위해 무기를 꺼내들고 휘두르는 동작을 한 것도 부끄러웠었다. 열심히 사는 촌사람이 운 좋게 운동화를 샀고, 그것을 부러워하며 멸시하려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왜 놀래? 이거 겨우 운동화잖아.


경매에 내놓으면 삼천만원이 넘는 운동화를 신고 나타나 하루가 말했을 때, 김익수는 패배감을 느꼈다. 그리고 느껴본 적 없던 굴욕감을 느꼈다. 시청자의 요구로 만원을 받기 위해 팬티를 뒤집어쓰고 춤을 출 때보다 더 큰 굴욕이었다. 언젠가 떳떳하게 굴욕을 되갚아 주고 싶었다.


‘치졸한 새끼.’


하루를 발견하고 그의 차에 주포가 주고 오라던 것을 놓고 온 것은 하루가 주포가 노리는 대상이갈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김익수는 깨달았다. 그건 치졸한 복수심이었다. 왜 당당하게 나서서 주지 못했을까, 김익수는 후회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하자. 제대로...’


*


주포의 사무실에 도착한 김익수는 주포의 책상에 놓인 서류봉투를 보았다.


“보고 외우고 분쇄기에 넣어.”

“....예.”


주포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김익수는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서류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꺼낸 사진을 멍하니 보았다.


“뭘 놀래, 이미 봤으면서.”

“아... 예.”


하루의 차량, 멀리서 찍은 하루의 모습 등이 찍힌 사진들이었다. 밤에 찍었는지 흐릿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픽업트럭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미 알겠지만, 혹시나 해서 준비한 거야. 맞지?”

“....예.”


제대로 전달했음을 알게 되었는데 김익수의 마음은 더 무거웠다. 사진 뒤에는 주 이동경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경로에 있는 다리 위에 X표시가 되어 있었다.


‘헙.’


그 의미를 김익수는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막내야.”

“예...”

“너도 내 식구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라 김익수는 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통과의례라는 것이 있다. 믿을 수 있으려면 믿게 해줘야지.”


김익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뒷수습은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 넌 마음껏 해.”

“저는....”


거부할 생각으로 눈을 들었던 김익수는 주포의 얼굴을 보고 굳어버렸다.


“막내야...”

“....예.”


겁먹은 김익수의 몸은 주포에게서 멀어지려는 듯 뒤로 기울고 있었다.


“몸조심하고.”


주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무나 기이한 그 미소에서 급히 눈을 돌린 김익수는 벌떡 일어나 분쇄기에 사진과 자료를 넣었다. 그리고 주포가 또 부를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그는 숨을 쉴 틈도 없었다.


“차는 송탄역 인근 주차장에 있다. 일 끝날 때까지 핸드폰은 맡기고 이거 쓰고.”


차키와 핸드폰을 받은 김익수는 손을 내민 원사를 멍하니 보다 급히 말했다.


“핸드폰 수리 맡겼는데요?”

“뭐? 언제?”

“어제. 그래서 임시로 이거 쓰는데요.”


사실이었기에 김익수는 핸드폰수리업체의 영수증도 꺼내 보일 수 있었다.


“쯧! 하는 수 없지. 이틀 전에도 검사했으니까.... 조용히 다녀오고, 무슨 일 있으면 거기 저장된 번호로 연락하고. 차트에게는.... 말 안 해도 알지?”


‘형은 모르는구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김익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익수는 갈아입을 옷을 가져가려고 했지만, 그의 숙소로 따라온 원사는 다 준비 되어 있다고 말했다.


“목적지까지 특공이 데려다 줄 거다.”

“...예”


하필이면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김익수는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시동을 걸고 기다리던 특공은 김익수가 조수석에 타려하자 입을 열었다.


“뒤에 타.”


기분이 나빠졌지만 김익수는 다시 참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


“내 뒤쪽으로. 니가 사장이냐?”


속으로 인내를 되새기며 자리를 옮기자 특공이 말했다.


“눈에 띄지 말라는 거야. 순찰차나 검문 나오면 자는 척해. 카메라 안내 나오면 아예 고개 숙이고. 선팅 되어 있지만 사람 탄 것은 보이니, 옆 차에 눈길 주지 말고.”

“예.”


긴 이동 중에 특공도 김익수도 말이 없었다. 수직교를 지나 내천삼거리에 들어서 송탄역으로 가기 위해 우회전 할 때, 특공이 돌연 입을 열었다.


“막내야.”

“...예, 흠, 예.”


걱정과 근심으로 목이 잠겼던 김익수가 목을 가다듬었다.


“네가 나보다 나이 많은 거 안다.”


‘알면서...!’


화난 표정을 지었던 김익수는 룸미러에 특공의 얼굴이 보이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크큭. 쫄기는... 나 열아홉에 군에 들어가서 너보다 나이 많은 후임 많이 만났다.”

“예에...”

“음, 뭐 변명은 아니고, 그게 편해서 그리 한 거야. 그게 규칙이기도 하고. 알지? 주포는 센터라 부르지만 우린 작전회의소라고 부른다. 군대나 마찬가지야. 하루라도 먼저 오면 무조건 선배고, 선임이지. 군대보다 더 심하지 규율은. 큭! 그래도 나보다 어린 년놈들도 많으니 그리 열 받지는 않겠지. 나도 늦게 왔다고 그런 년놈들이 반말 찍찍할 때 아주 뒤집어지던데.”


몰랐고, 알고 싶지 않았다고 속으로 말할 때 특공이 신호에 맞춰 차를 세웠다.


“옷 껴입어. 박을 때 핸들 틀지 말고. 세팅 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다친다.”

“무슨....?”

“말하지 마. 무슨 지령 받았는지 알면 안 돼. 대충은 예상하니 하는 말이야. 그리고 너 혼자 아니다. 감시하는 놈들 있어. 그러니 괜히 튀려고 하지 마. 그땐 네가.... 걱정 되서 하는 말이야. 나 그래도 너 좋게 봤다. 이 바닥 처음이지만, 벌써 다섯이나 흔적 없이 사라졌다.”


김익수는 급히 주변을 살피다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 마. 보려면 백미러로 봐.”

“예... 그런 저는....”

“해야지. 안 할 수 없어. 발 들인 순간부터... 넌 차트 빽 있어서 안 시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주포랑 차트 사이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살아 돌아온 후에 하자.”


‘씨발... 이 새끼는 겁주려는 거야, 걱정하는 거야!’


조금 전보다 더 긴장된 상태가 된 채 김익수는 송탄역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성을 들었다.


“근데 누구냐?”

“예?”

“아니. 그냥 궁금해서.”

“잘... 모르겠네요.”


김익수는 특공이 자신을 떠본다 생각하고 감췄다.


“....그래. 알았다.”


김익수를 내려준 후 특공은 바로 시흥으로 돌아왔다. 센터는 청소하느라 분주해져 있었다.


“주포는?”

“나갔어. 왜?”

“아니. 주포 방도 청소했어?”

“왜 해주게?”

“다 했네 뭐. 쓰레기나 줘. 내가 소각할 테니.”


여기저기서 모인 쓰레기를 가득 짊어지고 특공은 소각장으로 향했다. 지하에 위치한 소각장은 쓰레기를 태운 열로 온수를 만들어 공장 안에 공급하는 곳이다. 여기저기 굴뚝에서 연기가 솟는 공장지대라 의심받을 일 없이 은밀한 자료들을 소각할 수 있는 곳이다.


특공은 쓰레기를 넣고 불을 붙인 후, 검은 비닐봉투를 살펴보았다. 따로 빼 놓은 사무실과 센터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 안에서 찾던 것이 보이자 특공은 크게 한줌 쥐고 옷 안에 감췄다. 소각을 마친 후 위층으로 올라온 그는 계단 끝에 앉아 있는 원사를 보고 멈춰 섰다.


“잘 데려다 줬냐.”

“예.”

“수고했다.... 그런데...”


원사가 말을 끌자 특공은 옷을 탁탁 털며 위로 올라가 그 옆에 앉았다.


“왔으면 쉬지 왜 고생이냐.”

“가드 막내지 않습니까.”

“쓰읍. 눈치 보지 마. 가드는 가드야.”

“예.”

“....쉬어라.”


어깨를 두드리며 원사가 일어나자 특공도 급히 일어나 서서 원사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샤워를 하러 가기 위한 준비를 하며, 옷 안에 숨긴 종이뭉치를 꺼내 타월로 감쌌다. 샤워장에 도착한 그는 칸막이 문을 닫고 샤워기를 연 후, 타월에 싼 종이에 물을 묻혀 문에 하나씩 붙였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각이었지만, 그는 연신 밖의 동태를 살피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사진은 몰라보겠군. 이건... 픽업트럭 같은데...’


어디서 본 듯하다 여기며 그는 다시 다른 종이들의 퍼즐을 짜 맞춰 보았다. 그렇게 알아낸 것은 일이 진행되는 곳이 다리 위라는 것과 픽업트럭의 번호판 두 자리뿐이었다.


‘평택이라서 혹시나 싶었는데...’


붙인 종이를 떼어내 입에 넣고 물과 함께 씹어 삼키며 증거를 없애던 그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들었다. 급히 종이를 떼어내던 그의 눈이 순간 확 커졌다.


“안에 누구냐?”


원사의 목소리였다.


“접니다!”

“특공이냐? 여태 씻냐?”


원사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특공은 급히 문을 열었다.


“제가 좀 오래 씻지 말입니다.”

“크크큭. 새끼 물건 좋네? 알았다.”


특공은 원사의 눈이 내부를 훑는 것을 깨달았다. 모른 척 돌아선 그는 문을 연 채 물을 잠그고 수건을 탁탁 털어 몸을 닦았다.


“더 씻지?”

“다 씻었습니다.”

“그래, 어서 자라.”

“예.”


‘감시하는 것일까.’


멀어지는 원사의 발소리를 들으며 그는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어렵겠어. 내일...’


*


준비된 차에 올라탄 김익수는 그 안에 있던 옷으로 갈아입고, 주차장을 나왔다. 앞쪽에 범퍼가 달린 사륜구동 경유차는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차가 아니지만, 튼튼해 보여 그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그는 차를 몰고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이차선의 도로를 따라 두 차례 왕복하며 왕래가 적은 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시계를 보고 나서 자신이 뭘 착각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시간에 차가 다니겠냐. 이 멍청아...”


김익수는 이번엔 하루의 아파트로 알려진 곳 인근에 차를 세웠다. 길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와 논밭이 마주보고 있었기에, 그가 세운 검은색 차는 눈에 잘 띄고 있었다. 20분 후, 일찍 집을 나선 이들의 눈초리를 보며 그를 깨닫고 김익수는 차를 이동시키기로 했다. 그는 대형 트럭들이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깜빡 잠이 들었던 김익수는 여전히 밖이 어두웠기에 이상을 느끼고 시계를 보았다.


“두시?!”


급히 일어난 그는 차를 가리듯 선 큰 트럭들을 보고 기막혀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앞뒤 옆까지 막아버린 차들 때문에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익수는 옆을 막은 차량을 기어 올라가 보드 위에 놓인 명함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내려왔다. 전화를 걸기 위해 품에 손을 넣었던 김익수는 두개의 핸드폰을 보고 난감해졌다.


‘들키면 안 되는 거잖아?’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는 것을 떠올리며 고민하던 그는 수리하는 동안 쓰고 있던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했다.


-예.

“예에? 지금 예라는 말이 나와?”

-허, 누구냐?

“누구냐? 이런 씨발놈이. 니 차 때문에 갇힌 사람이다. 당장 와서 차 안 빼면 니 차 개박살 날줄 알아.”

-.....우리 기사님 차가 차량을 막고 있습니까.

“예? 아.... 차주... 아니신가요.”

-지입차 알선센터입니다.

“아아.... 그럼... 여기 경기 라에....”


차량번호를 불러주자 무뚝뚝한 남성은 친절하게 기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받아 적을 것이 없던 김익수는 다른 폰을 꺼내 그곳에 번호를 적었다.


“죄송했습니다. 오해를 해서.”

툭!


상대는 답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불쾌해진 김익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손에 쥔 다른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고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엔 화를 낼 수 없었다.


-여보떼요.

“어, 어어... 아빠 있니?”

-아빠, 자요. 왜요?

“어, 엄마는?”

-엄마 시장에. 누구세요?

“어, 아빠 친구인데... 아빠 깨울 수 있니?”

-...아빠아! 착착! 착착!

“허으...”


살을 때리는 찰진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다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누군데...

“차 때문에 제 차가 못 나가서요.”

-아, 내 자리에 차댄 놈이군. 너 잘 걸렸다. 거기 딱 대기해.

“크크... 예, 오세요.”


20분 후 김익수는 차량 내부를 자세히 살피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잔뜩 젖혀진 의자를 보았다면 상대가 거구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멱살을 잡혀 번쩍 들리는 경험을 한 김익수는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 트럭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형님.”


트럭커는 그의 깍듯한 인사에 침을 내뱉고 차를 빼주었다.


‘그냥 뛰어 내릴까.’


사고를 일으킬 현장인근에 차를 세우고 김익수는 다리 위를 오가며 생각했다. 회의감이 느껴진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던 그는 마주 오는 이를 보았다. 평범한 차림새지만, 잘 단련된 몸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김익수는 알 수 있었다. 그런 가드들과 함께 지냈으니까.


보도가 없는 다리였기에 폭이 1미터도 안 되는 차도 밖 갓길로 걸어가던 김익수는 상대와 부딪히지 않으려 최대한 다리 난간 쪽으로 붙었다. 그런데 상대는 배려 없이 갓길 중앙을 걸어오고 있었다.


‘개새끼.’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김익수는 난간에 엉덩이를 대고 붙어 섰다. 상대가 자신을 보기에 눈도 돌려주었다.


“지랄 떨지 말고 숨어, 새끼야. 생각 없는 새끼.”


남자가 지나가며 하는 말에 멍해졌던 김익수는 이내 상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특공이 말해준 감시자라는 생각을 한 그는 급히 차로 돌아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젠장!”


운전대를 내리치며 화를 풀어봐야 손만 아플 뿐이었다. 모든 게 짜증나고 분했던 김익수는 그 화를 하루에게 돌리기로 했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11월 26일>


하루는 이상한 번호가 찍혀 있는 부재중 표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도 적당히 벌었네.”


정리를 한 후 책장 문을 닫을 때 하루는 주머니의 진동을 느꼈다.


“음...”


두 개의 핸드폰 중 울린 것은 이전에 쓰던 것이다. 새론 산 번호를 업무용으로 쓰기에 가족과 친구 외엔 연락 올 일이 없는 전화였다. 그렇기에 하루는 긴 번호를 보고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주식에서 손 떼.


방송에서나 듣던 변조된 음성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누구십니까.”

-다치기 싫으면 손 떼고 빠져.

“협박인가...”

-협박이고 뭐고, 빠지세요.


전화가 끊겼다.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던 하루는 컴퓨터에 해당 번호를 검색해 보았다.


“시흥시?”


하루가 놀란 것은 낯선 곳에서 온 전화라는 것보다, 해당 번호가 공중전화로 등록된 번호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게 되어 하루도 최근에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빠지세요...? 협박이 아니라 충고였나. 그런데 누가...”


그는 주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 중에 공중전화로 음성변조까지 해서 충고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의문이 든 하루는 사무실 문이 잠겼는지 확인 한 후, 홀린 듯 움직여 김서현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타탁.


나오는 정보들은 하루(日)에 대한 것이었고,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은 일본의 작가에 대한 것으로 최근 해당 작가의 신작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타탁.


이번엔 가까운 이들의 정보를 넣고 검색해 보았다. 불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법일 뿐 특별한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주식에서 손 떼.’


타탁. 타다탁.


‘다치기 싫으면...’


타탁! 탁! 탁.


‘협박이고 뭐고....빠지세요!’


하루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차번호를 쓰고 있었다. 화면을 가만히 보던 하루는 떨리는 손을 움직여 엔터를 눌렀다.


탁!


떠오른 기사들을 본 하루가 급히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그런 사실도 모르는지 하루는 마우스를 움직여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29살 A모씨의 차량이.....추락.”


마우스를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작가의말

재미있다면 선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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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돌이// 어떤 전개를 예상하셨는지 알겠지만 조금 빗나가셨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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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데이(One day)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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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섬지기 3 19.06.18 246 9 23쪽
70 섬지기 2 +1 19.06.17 222 8 22쪽
69 섬지기 1 +3 19.06.14 243 11 23쪽
68 11시간 4 19.06.08 257 7 17쪽
67 11시간 3 19.06.07 245 9 20쪽
66 11시간 2 +2 19.06.05 260 8 27쪽
65 11시간 1 +1 19.06.04 251 10 32쪽
64 꼭 필요한 사람 5 +2 19.06.03 248 9 24쪽
63 꼭 필요한 사람 4 +2 19.06.02 245 9 31쪽
62 꼭 필요한 사람 3 +4 19.05.29 304 11 21쪽
61 꼭 필요한 사람 2 19.05.25 296 8 28쪽
60 꼭 필요한 사람 1 +2 19.05.23 318 10 16쪽
59 취미생활 2 19.05.22 308 9 32쪽
58 취미생활 1 19.05.20 313 9 24쪽
57 평범한 사람 3 +1 19.05.20 326 9 28쪽
56 평범한 사람 2 19.05.19 297 6 23쪽
55 평범한 사람 1 19.05.18 295 4 25쪽
54 핸드폰 7 19.05.17 307 8 21쪽
53 핸드폰 6 19.05.11 334 7 17쪽
52 핸드폰 5 19.05.11 289 6 21쪽
51 핸드폰 4 +3 19.05.09 317 5 11쪽
50 핸드폰 3 +2 19.05.07 312 9 22쪽
49 핸드폰 2 19.05.06 311 5 26쪽
48 핸드폰 1 19.05.05 355 7 29쪽
47 미래 고정하기 2 +4 19.05.04 312 7 25쪽
46 미래 고정하기 1 19.05.04 311 5 23쪽
45 미래는 시작되지 않는다 2 +1 19.05.03 320 7 23쪽
44 미래는 시작되지 않는다 1 19.05.02 314 5 16쪽
43 실종 +8 19.05.02 331 8 19쪽
» 추락 7 19.05.01 329 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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