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데이(On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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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진
작품등록일 :
2019.04.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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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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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0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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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평범한 사람 3

DUMMY

산꼭대기 정자에 앉아 하루는 쓰리고 답답한 속을 풀려 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로 들어올 때마다 냉정을 찾을 수 있었던 그는 입을 벌려 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하아...”

“청승은.”


마루의 말에 돌아본 하루는 마루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물었다.


“뭐냐?”

“도시락.”

“.....만두냐.”

“으응...”


하루가 특히 좋아한다며 스윌리가 잘 싸준 만두를 정자에 두고 마루는 슬쩍 떨어져 앉았다.


“같이 먹자.”

“싫어.”

“이른다.”

“....나쁜놈.”


둘은 서로를 위로하며 동시에 만두를 입에 넣었다.


“음?”

“허?”


평소 먹던 고기 가득, 향신료 가득한 만두가 아니었다.


“김치다!”

“김치야!”


둘은 기뻐하며 만두를 씹었다.


“그건 국이야?”

“응, 먹자.”


기대하며 연 순간 진한 향신료향과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왔다. 뚜껑에 따르니 수분이 적어선지 걸쭉하게 흘러나왔다. 온도차로 인해 표면의 기름이 굳으며 흰 덩어리가 보이자 마루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하루에게 내밀었다.


“먼저 먹어.”

“버리자.”


그러나 곧 정자로 소풍을 온 스윌리로 인해 하루는 화를 풀 겨를도, 느끼한 음식을 피할 수도 없었다. 김치가 조금 들어간 덜 느끼한 만두를 해소제 삼아 기름국을 마신 하루는 뿌듯해하며 스윌리가 내려간 후 다시 크게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분하지.”

“응.”


하루는 주식을 조작한 세력이 일소된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전의 사례들에서도 경제사범들이 큰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음을 알고 있었고, 주포가 워낙 대단한 배경을 등에 업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바란 것은 한 가지, 김익수의 죽음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이었다. 증거도 있었고, 검사도 신영준에 대해서는 풀어줄 생각이 없는지 적극적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로 신영준은 풀려났다.


“용과 알레르기라니.”

“찾아봤는데 외국에도 드문 경우라더라.”


김익수의 사인은 알레르기로 목이 부어 기도를 막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살인자인 신영준이 코와 입을 틀어막은 것으로 김익수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해의도를 가졌다는 것을 집중해주길 바랬지만, 박시만이 용과를 먹인 것이며 알레르기가 있음을 모르고 먹인 죄책감으로 자살한 박시만의 실수로 일어난 비극이라는 검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또 다시 풀려난 것이다. 신영준은 시흥시 구미의 핵심인물로 그가 살인으로 기소되면 형량이 무거워진다. 존속살해라 가중처벌 감이기도 했다.


신영준이 입을 열면 더 많은 관련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상황이라 처음 담당한 검사는 적극적으로 신영준의 유죄를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검사가 바뀌고 앞서 적극성을 보이던 검사는 먼 지검으로 발령이 났으며, 그보다 직급이 높은 검사가 사건을 담당하며 모든 것이 변했다.


“동영상이 증거였는데, 동영상 때문에 풀려나다니.”


마루의 한숨에 하루는 김익수의 방송을 떠올렸다. 그가 타트리아의 VJ로 활동하며 평소 접하지 못한 음식을 먹는 방송을 정기적으로 한 적이 있다. 그런 방송이 유행하던 때라 김익수도 따라한 것인데, 그러다 용과를 먹고 방송 도중 알레르기 증상을 보여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해당 방송은 VJ쩌러를 비방하는 다른 동영상들처럼 녹화되어 남아 있었고, 부검결과를 본 누군가 그 동영상을 찾아내 증거영상으로 내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그 동영상. 몇 년 전 꺼라 흔하지도 않고. 김익수가 VJ쩌러라는 것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때잖아. 그런데 누가 제보를 한 걸까?”


하루는 순간 주포를 떠올렸다. 연락해 캐물어볼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내 생각을 흔들어 털어냈다. 주포와는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그는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무거워진 마음을 털기 위해서, 걱정하는 친구를 위해 하루는 입을 열었다.


“왜?”

“증권사 펀드 매니저들을 구속되었잖아.”

“그것도 재판 끝나봐야 안다던데?”

“음... 그래도 더는 그 이름 가지고 활동 못하잖아.”

“아... 그렇긴 하네. 또 있지 않아?”

“어, 개구리모임.”


핵심인물들이 빠져나가며 수사목록에서도 빠르게 삭제 된 후 떠오른 인물은 개구리모임의 대표 피터 오였다. 미국 국적의 재미동포인 피터오는 개구리모임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하고 자신은 매도하는 식으로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장에서 체포된 20명 가량의 남녀 중 작전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 대부분이 개구리모임이라는 유사투자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그래도 낸 회원비는 못 돌려준단다.”

“정말?”

“어 금감원에서 그걸 왜 돌려 주냐고 반문하더라. 너희가 원해서 돈 내서 투자처 알아본 거라고.”

“피해당한 건?”

“그것도 마찬가지지. 그거 돌려줄 방법도 없고. 어떤 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아내는 것도 몇 년이 걸리니까.”

“참나... 세상 엿 같네.”

“엿 같은 세상이지.”

“....어떻게 할 거야?”


마루의 물음에 하루는 하늘을 보았다.


“잊어야지. 평범한 소시민인 내가 뭘 더 하겠어.”

“그건? 위치추적기나 이전에 찾아온 놈들이나. 도망간 놈들도...”

“운 좋으면 잡는 거고, 그냥 포기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대림형이 말하더라.”

“음... 그럼 우즈벡 가는 건 취소할까?”


하루는 마루를 보았다.


“가야지. 보내야지.”

“넌 안가고?”

“난 조사 때문에 못가. 네가 다녀와. 연말도 푹 쉬고 내년에 와.”

“불안해서 안 간다는 말이 안 나오네...”

“지켜야지. 스완도 스윌리도 놀랬어. 가서 안정 찾고 와.”

“어... 그래.”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까지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 정자.”

“응? 어어.”


마루가 돌아보자 하루는 정자의 천장을 보며 말했다.


“전 주인 아버지가 이 정자는 몰랐다고 하더라고.”

“그래? 어... 일기에도 없었지?”

“응... 그래서 우리도 몰랐잖아.”


겨울이 오고 가지가 앙상해진 후에도 집에서 정자는 보이지 않았다. 산꼭대기까지 갈 일이 없었기에 모르고 있던 중 하루가 속이 답답해 산을 오가다 어제 발견한 것이다. 튀어나온 큰 바위로 가려져 아래쪽에선 보이지 않지만, 정자의 난간에 앉아 내려다보면 집이 보인다. 하루는 집을 만든 사람이 이곳에 혼자 앉아 마당에서 뛰어노는 땅꼬와 아이들을 보는 자신처럼 자신의 가족을 보았을 것이라 여겼다. 그처럼 자신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루는 다짐했다.


“나도 상황 봐서 새해 전에 갈게.”

“이왕이면 크리스마스 전에 와.”

“음... 그건 어려워.”

“왜?”

“나중에 말해줄게.”


결정하지 못한 한가지 일 때문에 하루는 한국에 남아 있으려 했다.


*


시흥시 작전주 세력에 대한 이야기가 매체와 SNS를 통해 급속히 퍼졌다. 실시간 스트리밍사이트를 통해 의식 있는 VJ들이 해당 사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 보통의 방법으로는 감출 수 없게 되었다. 단속 당시 함께 간 방송국과 신문사의 기사들에 의해 촬영된 영상이 방송에서는 더는 나오지 않았지만, 외국계 스트리밍사이트를 통해 퍼진 영향도 컸다.


그런 과정에서 가장 조명 받던 사람은 피터오도 제보자인 VJ쩌러도 아닌 배우였다. 개구리모임의 광고모델인 그가 언론의 뭇매를 맞는 이유는 그가 투자를 권하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 중에. 그 이유로 국민배우로 사랑받던 배우는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사죄드립니다. 피해 입으신 분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이렇게 사과드리겠습니다.”


하루는 방송을 보며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냉정하게 바라보는 그는 불쌍하다는 스완의 말이나, 매니지먼트사의 잘못이라는 마루의 말에 동감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미지가 가진 값어치를 어떻게 쓰는지 정말 몰랐을 것이라고 하루는 믿지 않았다.


-광고모델 알지? 그 배우도 투자하더라. 졸라 손해 봤다고 개구리쪽 누님이 말해주던데 손해 매꿀라고 광고 더 많이 잡았다는 말도 들리고....


김익수가 남긴 동영상에서 해당 배우에 대해 거론하는 대목이 떠올라서다.


하루는 제일 비겁한 사람이 저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지로 먹고 살며, 돈이 되면 이미지를 가져다주고 피해자가 생기면 평소 갈고 닦은 연기로 눈물을 보이고, 잠잠해지면 다시 나오는 사람들. 혐오감이 느껴져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비행기 타야하는데, 다들 안자?”


하루의 말에 담미가 눈치를 보며 스윌리에게 파고든다.


“담미야, 빨리 안자면 잠든 사이에 엉뚱한 곳에 내려.”


하루가 겁을 주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된 담미의 큰 눈이 더 커진다.


“정말요?”

“응, 잠든 사이에 엄마랑 다 내리면 어떻게 하려고?”

“아...아빠한테 전화할게요.”

“국제전화 번호 알아?”

“모르는데요...?”


놀라 눈이 커지고 눈물이 고이자 하루에게 눈총이 쏟아졌다. 너무 심했나 싶었던 하루도 농담이라는 것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자야지. 그래야 하늘도 보고, 비행기 나는 것도 보고.”

“붕 떠요?”

“응...이렇게!”

“꺄하하하하!”


담미를 안고 빙글빙글 돌며 하루는 속에 든 고민을 뿌리려 했지만, 단지 안으로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었다.


*


하루는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족이 남은 상황이었다면, 걱정했을 테니까. 작은 걱정은 있었다. 이들이 수거해간 컴퓨터가 온전히 돌아올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야동은 다 지웠지?’


기다리던 그의 앞에 세 사람이 앉았다. 하루는 어두운 실내를 둘러보다 말했다.


“불 좀 켜 주시죠.”

“허.”


기막히다는 듯 세 사람이 혀를 찬다.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대우해 주시지요. 저 법 모르는 사람 아닙니다.”

“하루씨, 지금 상황 알고 말하는 거야?”

“반말하지 말고... 당신 이름 뭐야.”

“뭐?”

“뭐는 녹취하고 있지? 이거 증거로 제출하게 나중에 복사해 줘.”

“겁이 없네...”


다른 이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하루가 일어났다.


“앉아.”

“싫다.”

“협조 해 주시죠.”


하루는 협조해달라는 말에는 따랐다.


“신분부터 밝혀.”

“수원지청 금융범죄전담팀 팀장 유동욱 경감입니다.”

“...그쪽은?”


하루는 얼굴을 붉히는 두 사람을 노골적으로 노려보았다.


“안 밝힐 거면 꺼져.”

“진짜 겁 없네... 나 국가정보원 소속이다.”

“그래? 그런데?”

“뭐? 허! 이봐,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

“알지. 아무 죄 없는 시민 감사하는 거 아냐. 불법사찰. 그런 것도 모르는 줄 알아?”

“무슨...”

“자자, 그만들 하시고 앉아요.”


유경감의 말에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두 사람이 화를 참으며 자리에 앉았다.


“하루씨, 왜 오셨는지 아십니까.”

“말 안 해줘서 모릅니다. 미란다 원칙도 듣지 못했고, 갑자기 창고로 쳐들어와서 영장도 안 보여주고 컴퓨터 회수해가고. 변호사도 불러주지 않고.... 이게 뭡니까? 이게 법치국가입니까? 국정원에서 나온 분들은 간첩 보듯 보지를 않나. 국정원이 이런 일까지 나서는지도 몰랐군요.”


탕!


책상을 치며 국정원요원이라는 자가 일어났다.


“도주의 우려가 있었고, 체포에 불응했기에 강제로 연행한거 아냐!”

“헛소리는... 거기에 있는 CCTV가 몇 대 인지 알아? 그리고 그거 실시간으로 앱을 통해서 볼 수 있고 외부에 녹화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지금쯤 다들 알아차리고 나 찾는다고 난리 났을 거다. 안 믿겨?”


하루는 자신의 핸드폰을 요구했다. 곧 그의 핸드폰이 도착하고, 하루는 스마트폰의 케이스부터 열어보았다.


“전에 위치추적기가 달려 있더라고. 날 누가 쫓는 건지...”


하루는 국정원요원들을 힐끔 보며 말했다. 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하루는 앱을 열었다. 그러나 컴퓨터들이 모두 수거되어 있기에 앱이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허허, 이거 창고에 50억 상당의 재산이 있는데, CCTV까지 몽땅 회수한 건가? 경호 시스템도 동작 못하게? 나중에 문제 생기면 그쪽에서 처리해 주겠지요?”


하루가 묻자 세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하루에게 죄가 없으면 피해를 보상해줘야 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농사꾼이라고 해도, 농한기라도 해도 하루의 시간을 빼앗았으니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 또 강제로 압수수색하며 발생한 손해액도 하루가 소송을 걸면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할 가망성은 희박하지만, 잡음은 만들 수 있다. 금액이 크면 판사도 무시하지 못할 것을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정말 50억의....”


“나 왜 잡아 오셨습니까? 내 재산 상황알고 잡아 온 거 아닙니까?”


기막히게도 하루는 금융사범 단속 강화지시가 내려와 강제 연행된 상태였다. 그의 제보로 사건이 확대되자 대통령이 몇 마디하고 관리감독 기관은 일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하루가 걸려 든 것이다.


“하루씨. 하루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로또 1등에 당첨되셨습니다.”

“크윽!”


하루가 웃음을 터트리자 세 사람도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생각해도 하루를 잡아온 명목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 내에 여러차례 로또에 당첨된 하루의 행적은 의심이 갈 만했다.


“그뿐만 아니라...”

“배배요? 그거 당첨된 것까지 따지시는 겁니까? 배배가 뭔지 모르시면서 그 자리에 계시지는 않을 테고.... 어떻게 해야 1등 되는지 물으시려고 저 부르신 건 아니시겠죠?”

“너무 비난 하지 마십시오. 틈이 없지만, 그 틈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것이 범죄자입니다.”

“아아... 그래서 컴퓨터 수거해가셨구나. 거기에 무슨 불법 프로그램이 있어서 스포츠배배를 맞추고... 뭐 그럴까 봐요?”


답이 없자 하루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런 프로그램 만들어도 불법 아닌 거 아시죠?”

“무슨, 당연히 불법.”

“예, 압니다.”


국정원 요원은 유경감을 한번 보고 입을 다물었다.


“확률예측 프로그램이 불법이 되는 이유는 프로그램적인 게임일 경우에 한한 것이죠. 사람이 축구하고, 야구하고, 농구하고... 그걸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지만.... 있다고 해도 단속사유는 되지 못하죠. 다들 예측해서 스포츠배배하는 것이니. 로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가져갔다.... 그건 무슨 이유일지.”


“주식거래 때문입니다.”


“허! 저 참 여럿 걸렸군요. 그런데 어쩌죠? 저 이미 소환조사 받았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유경감이 자료를 살피려하자 하루가 말했다.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인 배제상위원과 면담했습니다. 주식거래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서 검찰로 넘기기 전에 대화로 확인해보자고. 주식에 대한 것은 그쪽에 문의하시는 것이 빠를 겁니다.”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유경감이 나간 후에도 국정원 요원 두 사람은 남아 있었다.


“만지지 마십시오.”


하루가 스마트폰을 다시 잡으려 하자 한 요원이 경고했다.


“....후우.”


항의할까 하다 하루는 참았다. 제어해줄 유경감이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얼마든지 위법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판단해서다.


‘국정원이라니...’


하루가 위치추적기를 발견한 후 제일 먼저 떠올렸던 곳이다. 하지만 그런 기관에서 개인인 자신을 감시할 이유가 없다 판단했었다. 오늘 내뱉은 말들에 두 사람이 보인 반응을 보고 의심이 사실이라 짐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루는 여전히 이들이 자신을 쫓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로또에 그렇게 쉽게 당첨되면 다들 로또 사겠죠.”


국정원 요원들도 하루를 더는 도발하지 않았다. 하루도 내심 안심하며 답해주었다.


“운이 좋았겠죠.”

“운이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본인이 생각해도 그렇게 자주 당첨되는 것이.”

“그래서 운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 복권이고요. 아니면, 번호가 정해져 있기라도 합니까?”


반문하자 두 사람이 생각에 잠긴다. 하루는 이들이 로또 조작에 대해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누군가 아는 이가 하루를 주시하라 지시했다는 것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로또가 문제였군.’


괜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 생각하며 하루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던 중 그의 눈이 한 요원의 걷은 팔목에 새겨진 문신이 보였다.


“무슨 문신입니까.”

“알 것 없습니다.”


남자가 급히 소매를 내리며 말했다. 하루가 미소 짓자 요원들의 눈매가 다시 사나워졌다.


“전에... 서울에서 경찰청 소속이라며 두 사람이 절 찾아왔었죠.”


요원들은 의식적으로 표정을 굳혔다.


“둘 다 강력 3반 소속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아보니 그런 사람 없었지요. 그땐, 심부름센터에서 나왔나 싶었고.... 차에 한명이 더 숨어서 사진을 찍던데.... 그때 만난 두 사람 중 한명의 팔에 그 문신이 있던데.... 뭡니까?”


“답할 이유 없습니다.”


“그래요? 흐음... 아시나 모르겠는데, 제가 지금 수사 중인 사건의 중요참고인이거든요. 그래서 수시로 제 위치 확인하는 연락오고요. 반응 보니 모르셨나 보네.... 아무튼 그 사건 때문에 수상한 자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넘겼습니다. 당시 그 강력3반 형사라는 사람들을 찍은 동영상도. 뭐... 곧 밝혀지겠네요. 누가 경찰을 사칭해서 제게 접근 했었는지.”


하루의 말에 두 사람이 속삭이다 밖으로 나갔다. 하루는 그 틈을 타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했다.


“염병할 세상이네...”


스마트폰을 끈 하루는 기다렸다. 유경감이 들어왔고, 그는 배제상과 통화했음을 알렸다.


“그쪽에서 왜 끝난 일을 가지고 들쑤시느냐고 하더군요.”

“그렇겠죠.”

“뭔가 압력을 써서 하루씨를 풀어줄 것처럼 말하던데, 이유를 아십니까?”

“크윽.... 선량한 시민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유경감은 하루를 직시하다 눈을 노트북에 두며 말했다.


“날카로운 반응 이해합니다. 저를 어떻게 보시는지도....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지도 들었습니다. 그쪽에서도 난리지만, 다른 쪽에서도 압력이 들어오더군요. 정말... 평범한 시민이십니까.”


“예. 보시다시피.”


하루는 자신이 잡혀 있으면 누가 겁을 먹을지 잘 알고 있다. 다른 이들보다 주포가 가장 걱정할 것임을 알기에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그래서 당당히 대한 것이다. 하지만 검색하다 발견한 내일의 정보를 보고 하루는 그럴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또와 배배로 거금을 가지게 되셨고, 그걸로 땅을 사시고 집을 사셨습니다. 그 후 주식투자를 하셨고... 찾아보니 손해도 크게 보셨더군요. 그것도 이번에 크게 터진 사건과 관련 있는 주식들로.”


“개구리모임 회원이었습니다. VVIP. 480만원짜리 회원이었죠.”

“흠,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작지는 않지요. 회원비를 돌려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법에 크게 실망했고요.”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가진 재산에 비하면 작은 돈인데... 그렇게 집착하시는 이유가 있나 묻고 싶군요.”

“예,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에 투자실패를 들어 회원비 반납을 요구하자 거기 상담원이 네 잘못인데 왜 돈을 돌려달라고 하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화가 났었습니다.”

“화라.... 사회에 불만이 많으십니까.”


-사회에 불만이 많아?


하루는 같은 질문을 세 번 들었다. 모두 경찰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사기꾼이 잡혀 들어가 조사에 응했을 때, 불법적인 일을 발견해 신고했을 때, 그리고 오늘이다.


“사회가 엿 같으니 불만이 생기죠. 법대로 제대로 처리되고, 제대로 돌아가면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화 낼 일이 생기겠습니까. 강제로 연행되어 오고, 영장도 못보고, 미란다 원칙은 듣지도 못하고. 인격 모독하는 자들이 국정원에서 나왔다고 으시대고. 이게 이 나라의 현실입니까? 사회에 불만? 크흐.... 경찰들은 그 말 자주하네요. 경찰이 하는 일이 그런 불만이 없게 만드는 분들 아닐까 싶은데, 역으로 제게 묻곤 하는군요. 그런 말 한 후에 꼭 하는 말이 빡빡하게 굴지 마라던가, 원리원칙 참 좋아하신 다던가.... 법이 아닙니까? 법! 지키라고 한 공공의 약속. 그걸 지킨 사람에게 지키지 않은 사람을 옹호하며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법의 수호자라니. 참... 아이러니 하군요.”


한마디 했다가 가슴을 찌르는 말을 들은 유경감은 쓴 웃음을 삼켰다.


“나가시면 고소하실 겁니까.”


“나가봐서요. 창고에 문제 생기면 집단 소송 걸 겁니다. 거기 저 혼자 쓰는 곳 아닙니다. 인근에 사는 농민분들이 함께 출자해서 세우고 유지하는 곳입니다. 공동농장이고요. 한사람의 말은 씹히더라도 여러 사람, 그것도 동네에서 잘 사는 영향력 있는 어르신들이 나서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떠들 겁니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방식이죠. 개구리처럼....”


개구리모임의 슬로건을 떠올리고 하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복잡한 사정들이 있습니다. 저도 지시를 받는 입장이라 일단 해야 합니다. 피해가 발생하시면 청구하십시오. 저는 거짓말 하지 않겠습니다.... 나가시죠.”


갑작스런 말에 하루가 의문을 담아 보자 유경감은 먼저 일어났다. 영장이 없어도 24시간은 붙잡아 둘 수 있다. 그리고 주식 건으로 계속 질문 던지며 괴롭히는 방식도 있다. 뭐하나 건지길 바라며 부른 것이라 뭐든 찾아내면 물고 늘어지겠다 예상했었다.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참 다양한 곳에서.... 반대진영에 있는 국회의원 두 분의 문의전화도 왔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라.... 그렇죠?”


유경감의 눈을 보며 하루는 최대림을 떠올렸다.


“당첨금중 20억 수해피해에 기부했습니다.”

“예?”

“자살하려는 사회복지사 달려가 구했습니다.”

“.....”

“평택 미군병사 사건에서 협력해 용감한 시민상 받았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당신보다 내가 더 명예롭고, 당당하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난 평범한 시민인데 내가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않았나 싶군요.”


날카롭게 쏘아보던 유경감이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람 마음 들여다보았다 단정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가서 진짜 범죄자나 잡으십시오.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냥 놔주지 말고.”

“불쾌하군요.”

“....지금 그 심정 제가 지금까지 느낀 감정입니다.”


밖으로 나온 하루는 변호사와 함께 기다리던 최대림을 만났다. 그들은 다시 들어가 증거물로 가져간 컴퓨터의 행방을 물었다. 하루는 분실과 파손을 걱정했지만, 전문가들이 회수했는지 컴퓨터들은 모두 무사했다. 다만 컴퓨터라 생각하고 UPS까지 가져온 것으로 하루가 검찰관계자들에게 화를 터트리긴 했다. 다급히 돌아온 하루는 컴퓨터 세팅을 마친 후 검색을 해보곤 안심할 수 있었다.


“또 소환될지 모른다던데.”


변호사의 우려를 듣고 온 최대림의 말에 하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사건 곧 묻힐 겁니다.”

“무슨 일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날씨잖아요.”

“또 그런다... 이번엔 머리가 아파? 그래서 뭔가 예감이 와?”

“하하, 예. 머리가 아프네요.”


하루는 고기를 굽는 최대림을 보다 물었다.


“능숙하네요. 자주 왔어요?”

“어? 어어....”


하루는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들이 앉은 테이블이 연신 주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30분 후에도 같은 느낌을 받자 하루는 조용히 말했다.


“왜 다들 여기를 보는 걸까요. 저 얼굴 팔렸나요?”

“어? 아.... 그게.”

-대림씨.


하루는 들어선 여인의 복장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대림은 하루의 눈치를 보며 김두라에게 말했다.


“퇴근하고 바로 오는 겁니까.”

“네. 여기 계시다는 제보 받고요.”


김두라는 하루를 가만히 보다 의자를 당겨 최대림 옆에 앉았다.


“어?”

“소개해주셔야지요.”


김두라의 말에 최대림은 볼을 긁적였다. 첫 만남 이후 바빴기에 통화이외에는 얼굴도 보지 못했었기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에게 뭐라고 소개해야할지 난감해하는 것이다. 최대림이 주저하자 김두라는 눈을 흘기곤 하루에게 손을 내밀었다.


“평택소방서 응급구조사 김두라에요.”

“아, 하루입니다. 농사짓고 있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는요?”

“예? 아... 들어본 적 없습니다.”

“푸하하, 솔직하시네요. 대림씨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쵸?”


대림은 두라의 장단에 맞추지 못해 수줍게 웃기만 했다. 하루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활달한 두라의 언변에 장단을 맞춰주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고기 타요.”


가끔씩 최대림에게 지시해 움직이는 것도 눈여겨보았다. 술이 조금 들어가자 최대림도 어색함을 털고 대화에 참여했다. 세 사람은 공통점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9시를 넘어 하루의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할 때 줄어들었다. 김두라도 최대림처럼 TV를 보는 하루의 태도에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나 고민하고 있었다.


“쯧!”


하루가 혀를 차는 순간 두 사람도 TV를 보았다.


“젠장.”


자막만 보고 최대림도 화를 터트렸다. 최대림은 이내 하루를 보았다.


“뭐야. 이번엔 어떻게 알았어?”

“조사 받을 때 느낌이 들더라고요. 뭔가 조급하고... 뭔가 있겠다 싶었는데 저런 일이라니...”

“....이럴 때가 아니다. 나 서에 들어가 봐야겠다.”

“에? 술 이렇게 마시고요?”

“아...”


최대림이 난감해하자 하루가 말했다.


“형수님이 모시고 가시면 되겠네요. 정복 입고 있다고 술 한잔도 안 드셨으니.”

“뭐? 아냐. 그냥 차 두고...”

‘형수님...’


형수님이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은 것에 김두라는 속으로 기뻐했다.


“가요. 바쁜 일이죠?”


두라에게 끌려 나가는 최대림을 보다 하루는 화면에 눈을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두라의 아버지가 볼륨을 높였다.


-유출된 문건은 청와대 비서관실의 박행정관등 10인이 대통령의 보좌관과 비서를 지낸 정회기씨와 만나 국정을 논하며 작성한 것으로...... 이들은 강남의 카페에서 잦은 회동을 가졌다고 합니다. 검찰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이모경위를 소환조사하고 있으며,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서도 혐의를 두고 조사할 방침을.....


소문으로만 간간히 떠돌던, 그래서 찌라시뉴스라 여겨지던 비선실세에 대한 뉴스가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이번 사건으로 경제사범 단속에 대한 검경의 의지는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을 짐작했다. 덕분에 자신에 대한 집중된 관심도 사라질 것이라고 하루는 예상했다. 누군가의 양심선언으로 정의가 실현된 것이지만 마냥 웃고 있을 수 없었다.


“서비스 드릴까요.”


하루는 다가온 남자가 두라의 아버지임을 들어 알고 있다.


“아닙니다. 이제 가려고 했어요.”

“술 많이 드셨는데, 대리 불러드릴까요.”

“예, 부탁드릴게요.”


하루는 아무도 없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땅꼬와 철민이 있는 창고로 향했다. 철민이 대리운전기사를 차도까지 데려다 주러 나갈 때, 하루는 땅꼬를 사무실에 들어오게 한 후 문을 잠갔다. 그리고 비밀스런 공간을 열었다.


“땅꼬야... 나 이런 사람이야.”


술 냄새가 나는 하루가 다가와 안자 땅꼬는 두 발로 코를 문지르며 멀어지려 했지만 취한 하루는 바닥에 쓰러져 땅꼬를 더욱 끌어안았다.


“나 이런 사람이야... 비밀이 많아...”


하루가 잠들자 땅꼬는 서늘한 공기가 나오는 문을 닫고, 책장도 밀어 닫았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다 걸려 있는 두꺼운 점퍼를 내려 하루에게 덮어주고 자신의 몸을 겹쳐 하루를 감쌌다. 하루는 꿈을 꾸었다. 뜨거운 커피를 연신 마시며 얼음바닥에 몸을 문지르는 꿈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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