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검제의 무림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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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충동
작품등록일 :
2019.04.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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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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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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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아닌 시간

DUMMY

- 퍼억


돌처럼 단단한 건물의 외벽이 형편없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파편이 흩날렸다.

제때 피하지 못했다면 터져나간 것은 자신의 육신이었다고 생각하니 움찔 소름이 돋는 검일이었다.

작지만 화포에 견줄만한 위력이 아닌가!


“그만둬!”


급히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총구였다.


- 타타타탕.


다시 피했다 싶은 순간.

이번에는 총구가 연속적으로 불을 뿜었다.

그리고 다시 형편없이 터져나가는 건물벽.

미처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설마 재장전도 없이 연속으로 발사되는 화포라니!

한번 피했다고 멍청하게 멈춰섰다면 그대로 피떡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꼴이 꼴이니만큼 소녀의 반응도 전혀 이해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목숨을 노리고 흉악한 화포를 난사해대는 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이제는 체면이고 예의고 가릴 단계는 지나갔다.


“이 망할 계집이!”


버럭 노성을 내지른 검일은 그대로 몸을 날려 지면을 향해 내달렸다.


지면에 수직으로 선 건물 외벽을 타고 내달리는 믿지 못할 곡예에 화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스파이더맨도 아니면서······!”


기겁을 해서 총을 겨눠 봤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달려 내려오는 데다 중간중간 방향까지 멋대로 바꿔대는 통에 도무지 조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휘갈겨대기에는 탄이 부족하다.

10발들이 탄창에 남은 탄은 겨우 두 발뿐.

절망이 그녀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 타악!


어느새 2층 높이까지 내려온 변태가 벽을 박찼다.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조준을 완성하려 했지만, 중간에 단풍나무 가지를 박차고 다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겨우 젓가락 굵기도 안 되는 가지를 디딤판으로 삼다니······.


하지만 납득을 하든 못하든 상황이 그랬고, 벌거숭이 남자는 벌써 화우의 코앞에 들이닥친 게 현실이었다.


“으아아악! 죽어!”


반착란 상태에 빠져버린 화우가 무작정 방아쇠를 당겼지만······.

당겨도 당겨도 탄이 나가주질 않았다.

총성도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손가락에 방아쇠가 걸리는 느낌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빈손으로 허공에 공기총을 쏘고 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은 벌써 벌거숭이의 손에 빼앗긴지 오래였던 것이다.


“언제?”


황당한 나머지 공포조차 잊고 말았다.

손에 느낌조차 없었다.

양손의 단단히 쥐고 있던 라이플을 빼앗기는 동안 느낌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귀신에 홀린 기분이 이런 걸까?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멀뚱하니 서 있는 꼴이 우스웠는지 벌거숭이가 피식 웃었다.


“돌아!”

“안 되요, 제발······ 죽이지 마세요.”

“안 죽일 테니까 돌아!”

“강간하지 마세요.”

“나도 싫으니까 돌라고!”

“네?”


싫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잠시 혼동이 와서 눈을 꿈벅이는 화우를 보며 벌거숭이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뭘 계속 보고 있어! 쪽팔리니까 돌아서라고, 좀!”


버럭 내지르는 고함에 정신이 번쩍 난 화우가 급히 몸을 돌려 시선을 피했다.


“정말로······ 안 그러실 건가요?”

“뭘 안 그래?”

“그러니까······ 그거······.”

“안 한다니까!”


벌거숭이가 버럭 짜증을 냈다.


“지가 무슨 천하절색이라고······. 사내도 계집도 아닌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 주제에.”


들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투덜투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귀에 피도 덜 말랐다느니, 눈에 염기가 없다느니, 피부가 거칠어 보인다느니 하는 달갑잖은 외모 품평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이어서는 어디의 무슨 아가씨가 매달려도 우습게 봤다느니, 무슨 강남 제일의 기녀 쯤 되지 않으면 눈에 차지도 않는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제 자랑이 계속됐다.

모르긴 해도 허세가 상당한 작자가 틀림없었다.


‘진짜 짜증나는 게 누군데······.’


들을수록 울화가 치밀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속을 다 내보일 수도 없고, 화우는 죽을 힘을 다해 웃는 표정을 꾸며내 다시 벌거숭이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죽이지도 않으실 거죠?”

“일단은.”

“가진 거 전부 넘겨드려야 하나요?”

“별로. 혹시 검이나 입을만한 옷가지 가진 거 있나?”

“없는데요.”

“그럼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빼앗아간 대(對)몬스터용저격라이플을 돌려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훑어보고 만져보는 게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깝긴 하지만 그래 봤자 신외지물.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라이플 정도는 대단한 것도 아니다.


“저기······.”


벌거숭이의 태도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 화우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또 뭐?”

“죽이거나 그런······ 거 아니시면, 슬슬 가도 보내주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가려고?”

“네, 날이 저물면 더 위험해지는 곳이라서······.”


물론 날이 저물기 전에도 충분히 위험한 곳이라 될 수 있으면 빨리 벽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방금 전의 소동으로 ‘왕’이 돌아올지도 모르고, 또 오크놈들이 언제 사라진 동료를 찾아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이곳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더구나 방금 전의 총격으로 주변 몬스터들의 주의가 이곳으로 쏠리고 있을 터.


“그럼 저는 이만······. 만나서 반가웠어요.”

“거기 잠깐.”



굽신굽신 인사를 건네고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는 화우였지만, 안타깝게도 벌거숭이는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함께 가도록 하지.”

“네?”

“너 사는 곳에 나도 같이 가겠다고”

“왜······요?”

“내가 이곳은 처음이라 한동안 묵을 곳이 필요해서.”


울상이 된 화우를 보고도 안쓰러운 생각조차 들지 않는지, 벌거숭이가 뻔뻔스럽게 웃었다.

생각 같아서는 수염투성이 턱에 강펀치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괜히 까불다 험한 꼴 당하기 십상이니 알아서 참을 수밖에.

꽉 움켜진 주먹이 우두둑거리며 대신 울어주었다.


“주거문제는 우주선을 다시 부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요.”

“우주선?”


잠시 갸우뚱거리던 벌거숭이였지만 이내 깨달았는지 “아!”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우주를 항해하는 선박이란 뜻이로군! 좋은 명칭이다. 어울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다시 불러서······.”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 물건은 내 것이 아니라······.”


벌거숭이는 슬금슬금 벽을 향해 이동하는 화우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주절주절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당대의 천하제일검이었던 조부가 어떻게 검신이란 작자에게 패배했는지, 또 그 검신을 꺾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훈련시켰는지, 마침내 무공을 완성해 강호에 나설 때의 포부가 어땠는지, 억울하게 당한 친우의 복수를 위해 악명높은 도적들을 척살한 무용담에, 명성이 높아진 자신을 만나기 위해 금은보화를 뿌려댄 명사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제 입으로는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수라는데, 화우가 보기에는 검보다 자화자찬의 공력이 더 대단한 작자였다.

마음 같아서는 하품하는 시늉으로 면박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약한 게 죄라 그냥 “네, 네.” 하면서 듣는 시늉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은 한 귀로 듣는 즉시 다른 귀로 흘려버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어져, 마침내 벽에 뚫린 개구멍을 빠져나올 때쯤 화우가 들어줄 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북해의 빙원을 헤매게 됐는데, 3년의 수고 끝에 마침내 운석을 발견하게 된 거지.”

“운석이요? 아까 타고 온 우주선 얘기하는 거죠?”

“우주선? 그건 잘 모르겠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 순간 이후로의 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거든.”


화우의 질문에 검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현재 아무 건물에서 뜯어낸 방수포로 몸을 둘둘 감은 상태.

일단 벌거숭이 신세를 면한 터라 화우도 훨씬 대하기가 편해졌다.

입고 있는 검일 자신은 영 불편한 모양이었지만.


“기억이 지워졌다고요? 단기기억상실?”

“딱 그 부분만.”

“그런 상태로 아까 그 우주선 안에서 깨어났고요?”

“그런 셈이지.”

“깨어났을 때 우주선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우주선 주인 말예요. 외계인.”

“아무도 없었는데?”


검일이 자신만만하게 진술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우주선이라는 장소 내부는 통째로 하나의 방이었지만,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가 볼 때는······.”


잠시 곰곰 생각을 거듭하던 화우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 같네요.”

“시간?”

“그러니까 아저씨는······.”

“듣기 거북하군. 아저씨라니 아직 혼인도 정해지지 않은 청년을 두고······.”


쓸데없는 부분에서 딴죽을 거는 검일.


“싫으면 뭐라고 불러드려요?”

“사신, 삼절사신.”

“사신님······ 이요?”

“신(神)이라는 단어 자체가 최상의 존경을 담고 있는데 굳이 님이니 뭐니 존칭을 더할 필요 있나. 그냥 ‘사신’이면 되지.”

“어쨌든, 다시 돌아가서.”


호칭에 대한 검일의 요구 따위에는 시큰둥한 화우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뭔가의 이유로 외계인들이 사신님을 우주선에 재워뒀다는 거죠, 수백년을.”

“뭔가의 이유가 뭔데?”

“저야 모르지만, 당연히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사람이 수백 년을 잘 수 있나?”

“우주선을 만들어 별 사이를 여행하는 자들인데 그 정도 기술이야 당연히 있겠죠.”

“그럴······ 수도 있겠군.”


잠시 생각하던 검일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이었다.

거대한 금속구조물이 깃털처럼 둥실 떠올라 날아가는 걸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그 정도 기술력이면 사람을 수백년 재워두는 것도 아예 불가능 한 일은 아니리라.


“그러니까 내가 세상 밖의 세상으로 떨려 온 게 아니라, 수백 년 세월을 건너뛰어 미래의 세상에 도달한 상황이다?”

“제 생각은 그래요.”


검일의 정리에 화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가는 가설이었다.

살던 세계와는 기술의 수준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


“그렇다면 기억의 일부가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일 수 있겠군. 오래 재우는 동안 이상한 약을 쓰거나 해서!”


드디어 뭔가 그럴듯한 생각을 해낸 게 자랑스러웠는지 환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는 검일이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화우는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주입식 교육의 부작용일 가능성이 커보이네요.”

“주입? 부작용?”

“그러니까 사신님 지금 제 말 바로바로 이해되시죠?”

“그렇지.”

“저랑 같은 말 사용하시고요.”

“그렇잖아.”

“그게 원래 쓰던 말은 아닐 거 아녜요. 장소가 바꼈든 시대가 바꼈든.”

“흠.”


화우의 이야기를 듣던 검일이 침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처음 전음을 듣던 순간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언어가 아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해됐고, 또 지금껏 쓰던 말 이상으로 편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 외계인이란 작자가 이 곳의 언어를 내 머릿속에 강제로 집어넣어 마음대로 쓰게 만들어 줬다고? 그렇게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바람에 기억의 일부가 날아가 버렸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제 짐작으로요.”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은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거리까지 나와 있었다.

기묘할 정도로 반듯하게 펼쳐진 초원은 자연스럽지가 않아 검일의 눈에 거슬렸다.

짐작하건데 과거에는 농경지였을 것이다.


‘도시의 인구를 부양하던 농경지가 도시와 함께 버려진 끝에 지금은 풀밭이 되어버렸겠지.’


맥수지탄(麥秀之嘆)이라 했던가?

왠지 갑자기 서글퍼지는 검일이었다.

잠들어 있는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후계자가 돌아가지 못한 가문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다시금 천하제일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무쌍의 절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또 검신은······.


‘아, 이제 영영 검신을 꺾고 설욕할 방법은 없겠구나!’


검일의 가슴 한 구석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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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계중계(計中計) 19.04.14 181 3 15쪽
13 검선생 19.04.13 203 2 10쪽
12 전하는 말 19.04.12 184 3 16쪽
11 흑선풍의 도끼 19.04.11 202 4 9쪽
10 박천조의 액운 19.04.10 200 3 15쪽
9 도리촌(桃李村)에서 19.04.09 202 4 10쪽
8 청부 19.04.08 225 3 12쪽
7 양산박(梁山泊) 19.04.07 253 4 11쪽
» 공간 아닌 시간 19.04.06 257 3 13쪽
5 멀리서 속삭이는 소리 19.04.05 290 5 10쪽
4 오크에게 이화접목(梨花接木)을 19.04.04 294 5 11쪽
3 이매망량(魑魅魍魎) 도깨비의 세계 19.04.03 345 6 13쪽
2 검제의 귀환 19.04.02 438 10 11쪽
1 유성의 남자 +2 19.04.01 644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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