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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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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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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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사진 속의 남자, 사진 밖의 여자 (4)

DUMMY

web-판타지-대체역사


잘 나온 사진



제22회



소리글



Ⅲ 사진 속의 남자, 사진 밖의 여자 (4)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 4


늠이는 경인열차 일반 남자승객 칸에서 본 잘 생긴 청년신사가 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은옥이는 나이가 여나믄 살 될 때까지 골목에서 봤어. 그래서 기차에서 기모노 입은 은옥이를 봤을 때 바로 알아봤어. 은석이는 은옥이와 다르지. 예닐곱 살 정도 때 먼저 남의 집 양자로 팔려 갔으니까.


그런데 오늘 기차에서 본 청년이 은석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 어린 것이 쌍둥이 여동생 보러 가끔 이 골목에 나타났었어. 청관 거리에서 이 골목까지 혼자 타박타박 걸어서. 그러다가 걸음을 딱 끊었어. 양자 간 집에 무슨 변동수가 생긴 것이겠지, 했어. 그 애일지도 몰라. 그 애인 것 같아.


무엇보다 중요한 단서는 그가 중국에서 중국 배를 타고 왔다는 점이었다. 그의 양부가 청관 상인이었고, 한성의 청관 상권이 일본 상권에 밀리면서 중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양부 따라 중국으로 떠났다가 잘난 청년이 되어 귀국을 한 거야! 제물포에서 한성까지는 내가 복무하는 기차를 탔던 거고!


늠이는 그 이야기를 김정우 기자에게 해주고 싶었다.


“언닌 다 끝났으면 나가.”


어느새 밀고 들어온 남이 때문에 그 이야기를 김기자에게 하지 못 하고 밀려나왔다.


“뭐 좀 건졌어요?”


김정우의 방에서 먼저 나온 국화가 늠이를 평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쓸모가 없는 걸 물어왔다고 퇴짜 놓데.”

“매일 마음에 드는 얘기꺼리가 있을라구요. 김기자가 솔깃해 하는 얘기꺼리가 없어야 좋은 세상이지.”

“넌 뭐 해다 바쳤니?”

“협률사.”

“그게 아직도 있어?”

“그 협률사가 아니고, 협률사 칭경예식에 불려 올라왔다가 잔치도 못하고 한성에 주저앉았던 사람들.”

“응, 그 사람들.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 사람들 중에 한성의 부잣집 잔치에 춤추고 소리하러 불려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일 없이 노는, 한성까지 와서 눌러앉았는데 일꺼리는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협률사를 조직했대요.”

“그 전의 협률사는 나라의 관청 같은 거잖어. 칭경예식 나라 큰잔치 주관하는 관아. 그런데 이 협률사는 사람들이 조직을 했다고?”

“떠돌이 연희패. 유랑극단 같은 거. 이름만 협률사지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생활을 하겠다는 거예요. 칭경예식으로 유명한 그 협률사에서 연희하던 사람들이다, 이거 선전해서 구경꾼 불러모으자는 거죠, 협률사 이름으로.”

“한성에도 안 있고 떼지어 떠돌아 다니면서 이 장터 저 장터에 뜨내기 연희를 하는 유랑패거리?”

“먹고 살려니까 그거라도 하자는 거죠. 그것도 한성에나 올라왔으니 그런 작당들을 하지. 제각기 시골에 따로 있었어봐, 뭘 하겠어요, 작당이나 되겠어요? 그냥 기생집 신세거나 무당 가방모찌지.”

“가방모찌가 뭐야?”

“일본사람들이 그런 말을 쓰잖아요. 한성사람들 중에는 그 말 따라서 하는 사람이 있데?”

“하여튼 한 줌도 안 되는 일본 것들이 한성 물 다 흐려놓고 있어, 썅!”

“언니 말씀도 순하지는 않으셔.”

“허긴 부산포 앞바다 절영도에 귀양 가 있는 배정자 여사도 그런 말씀을 하긴 하셨어.”

“잘 난 여잔가봐요. 여자가 귀양까지 가긴 쉽지 않은데.”

“잘 나셨지.”


늠이는 한숨 한 판 푸지게 내쉬었다.


“그런데 국화가 협률사 소문 전하니까 김기자가 뭐래?”

“괜찮은 소재라고, 좀더 속속들이, 거 뭐라더라, 심층취재를 해오라 그러데요.”

“그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설마 김기자가 우리를 역적질에 끌어들이기야 하겠니. 매일매일 김기자 지도를 받다 보니까 무언가 세상 돌아가는 게 다 의미가 있어 보이고, 그 전하고는 사는 게 달라. 녹주도, 아니지 국화도 그렇지?”

“돈도 받잖아요.”


-----


가다 보니 그 길이었다. 은석은 걷고 있었다.

은석은 끌린 듯이 한성 동부 연화방의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모모야마 쇼샤쿠의 집이 있던 골목이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사람만 그때 사람이 없구나.


지금은 일본인 거리가 된 옛날 청관거리에서 이곳까지 여섯 살 소년은 거의 매일 타박타박 걸어서 왔다. 기쁜 생각도 슬픈 생각도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냥 타박타박 걸어서 왔다. 호주머니에는 청관거리에서 파는 호떡 하나가 들어 있었다. 호주머니에 넣어서 걸어오다보니 돌돌 만 밀떡덩어리가 되는 호떡이었다.

도착한 골목에는 여섯 살 은옥이 동무들과 심심하게 놀고 있었다. 은옥이 은석을 돌아보았고, 은석은 호주머니에 넣어온 호떡을 불쑥 은옥에게 내밀었다. 은옥이 받았다. 여섯 살 어린 남매는 주고받을 말이 없었다. 은옥은 은석이 쥐어준 호떡을 받아 먹으면서 동무들과 놀았고, 은석은 온 길로 돌아서 갔다. 타박타박. 무료하게 걸어갔다. 호떡을 다 먹은 은옥이 돌아보았다. 은석이 골목길의 끄트머리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은옥은 동무들과 다시 심심하게 놀았다. 골목 가득 심심한 평화였다.


----


동부 연화방 근처를 가마 타고 지나가면서 은옥이 떠올렸다. 무료하고 평화롭던 어린 날의 그 골목.

그 골목의 평화와 무료가 사라진 것은 은석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먼저 청관 상인 루(陸)대인의 양자가 되어 모모야마의 집을 떠났던 은석은 2년 뒤 양부를 따라 아주 조선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5년쯤 뒤 은옥도 송병준의 양녀가 되어 일본으로 떠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헤어져 사는 어린 쌍둥이남매가 아무런 할 일도 할 말도 없이 그냥, 무료하게 평화롭게 멀거니 얼굴만 보고 그냥 오빠는 돌아서고 누이는 돌아앉아 하던 짓 하던 그 골목을, 오랜 세월 그리워 하며 살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그 조용하고 무료한 골목.


------


은석은 골목을 돌아나가면서 만복상회를 보았다. 그다지 변함이 없는 듯한 가게였다.


-은석아.


만복상회 식구들은 골목에서 은석이 보이면 그렇게 불러주었던 것 같다.

루대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도 루이(陸一)가 되었을 때, 그 때도 은옥을 보기 위해 심심하게 탈래탈래 하염없이 걸어서 오면


-은석이 왔구나.


만복상회 식구들은 그렇게 말해 주었다.

루이. 그 이름은 루씨 가문에서나 불리는 이름이었다. 루이에게는 언제나 이은석, 그 이름 뿐이었다.


-잘 살겠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모모야마 쇼샤쿠를 찾아야 했다.


-어디에 있나요. 모모야마 쇼샤쿠 씨, 당신을 루이가 찾고 있습니다.


루이.

모모야마가 은석을 루대인의 양자로 보내버릴 때부터 그는 루이가 되었다. 루대인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이름이 ‘이(一)’였고, 성명은 루이였다.

그런데 참 옛말 그른 데가 없지.


-삼신도 시샘을 한대요, 글세. 아이 없는 집에서 양자를 들이고나니 바로 삼신이 시샘을 해서 그 집 부인한테 자손을 점지해줬대잖어.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은석을 양자로 들인 루대인 부부였다. 그런데 은석, 루이를 입양한 이듬해에 루부인이 임신을 하고 친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가 루쩐(陸진)이다.

친아들 루쩐을 낳고도 루대인과 루부인은 입양한 루이를 무시하거나 구박하지 않았다. 루쩐과 루이, 어느 한쪽도 편애하지 않고 고루 자애를 베푼 루대인 부부였다.


-어떨 땐 루쩐보다도 나한테 더 자애로우셨어.


루이는 루대인의 아들로서 유족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풍족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마침 중국 상해의 중국 군관학교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상해에서 근무를 하는 제국익문사 특별 통신원에 지망할 수도 있었다.


-----


양주사가 모모야마 쇼샤쿠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다.


“은옥이 쌍둥이오빠는 아직 못 찾았나.”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호텔 빈관 여각 다 뒤졌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름을 가명으로 쓰는지.”

“가명이 아니라 본명이다. 중국 이름을 쓸 것이다. 양부의 성이 루, 한글로는 육이다. 대륙, 육지라고 할 때의 그 육이다. 육을 중국말로는 루라고 한다. 그러니 은옥이 오빠 은석이는 루라는 성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성이 루인 중국인도 찾아보아라.”

“한 며칠 걸릴 것입니다.”

“하루라도 당겨라. 급하다.”


양주사가 돌아가고 있는데 은옥이 나타났다.

양주사가 가마에서 내리는 은옥을 향해 입을 벙긋 했지만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모모야마가 반가운 표정을 만들며 은옥을 맞이했다.


“어쩐 일이냐, 갑자기.”

“흥인군 할아버님의 천도재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흥인군이라면 황제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형님이 아니냐. 바로 네 시할아버지.”


은옥은 그 말의 대답은 하지 않았다.


“꿈을 꿨어요. 오빠 꿈이었어요. 여태껏 한번도 꾼 적이 없는 오빠 꿈인데, 꿈에 오빠가 보였어요.”

“절에서 흥인군 천도재를 지냈다면서 스님한테 여쭤보지. 해몽해 줍시사 하고.”

“그럴 사정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많은데.”

“꿈에서 본 오빠를 내가 어쩌겠니.”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꿈이 하도... 선명히... 오빠가 아주 가까운 데 있다고 꿈에서 손짓을 했어요.”


모모야마가 끄응, 신음소리를 냈다.


“너도 딱하고 나도 딱하다. 없는 오빠를 어디서 찾아와야 되겠니.”


은옥의 눈치를 살피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느이 양아버지 송병준 상한테 말 좀 해보면 어떻겠니.”

“무슨 말을요...”

“사실 느이 집 일은... 내가 지금까지 이 말만은 안 했는데... 이 말은 정말로 하기 싫었는데... 느이 진짜 부모의 일은 나보다도 송병준 상이 더 잘 안다는 말이지.”

“그게 무슨... 어떻게 아버지가 우리 친부모님을...”

“그러게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고... 송병준 상이 잘 알 테니까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야 하는데...”

“아버진 어디에 계십니까? 오다니 장군이 한성에 오신 뒤로 부쩍 바쁘신 듯 합니다.”

“아마도 한성에는 없을 걸?”


모모야마는 송병준이 일본 육군 병참감 오다니 기쿠조 소장을 모시고 압록강으로 갔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송병준에게 오다니 장군과 함께 압록강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던 모모야마였다. 그런데도 송병준은 그를 따돌리고 압록강으로 떠났다.


-압록강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먼저 말한 것이 송병준 그 자다. 그런데 내가 가고 싶다고 하니까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들 끼리 가 버렸다. 그런 자와 무슨 일을 같이 도모한다는 말이냐.


모모야마는 은옥이 송병준을 의심하게 만들 꼬투리 하나를 슬쩍 던져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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