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던전: 도시의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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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9.04.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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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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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첫 번째 설득

DUMMY

18. 첫 번째 설득




벤자민의 각오에 찬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처참했다. 마치, 모닥불 위에 물을 끼얹은 것 마냥 분위기가 차갑고 조용했는데, 벤자민은 마치 차가운 호수에 빠져 죽는 기분마저 들었다.


“일단...... 집단 소송이라는 게 뭐지?” 오랜 침묵을 깨고 존이 물었다. 어이없어하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정말 궁금해하는 목소리였다.


그에 벤자민이 용기를 얻으며 말했다.


“해당 피해자들을 모아 단체로 소송을 하는 거죠. 여기서는 보기 드물긴 하지만, 현재 외국에서는 두, 세건 있습니다. 새로운 소송법이라 할 수 있죠.”


“몇 명이나 모을 건데?” 하워드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모을 수 있는 대로. 하지만, 천천히 모을 거야. 괜히 소문을 크게 내면 폭동을 조장한다는 혐의를 받을지도 모르고, 또 브라운 사에 대응할 시간을 줄 테니까.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장 어떻게 할지 구체적이지는 않은데, 일단 내가 아는 사람들부터 의뢰인으로 모집한 다음 점점 수를 늘려갈 거야.”


올리버가 고개를 저으며 이건 도저히 아니라고 말하였다.


“벤, 솔직히 말할게. 지금 네가 하려는 것은 이쪽 바닥에서 금기사항이야. 난 당장 판례만 여덟 개는 읊을 수 있어.”


“솔직히 말해 자살행위지.” 하워드도 웃으며 동의했다.


벤자민은 저들의 반응에 공감했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일단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근래에는 마법사 가문을 상대로 소송을 해 이긴 경우가 다섯 차례가 있어.”


밴저민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 무섭게 올리버가 카드를 찢어버렸다.


“그거라면 나도 알아. 소식지에서 봤으니까. 페이먼, 워터스, 마쉬, 돌로리아, 벤치 같은 사건을 말하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건 소송이었다기보다는 그저 정치 싸움에 불과해. 그저 권력자들의 권력 다툼을 법이라는 포장지로 덮은 것에 불과하지. 그런 건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야.”


벤자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나도 정치 놀이를 할 생각이야.”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번 벤자민에게 집중되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지금 레드캐틀 가문은 황제와 알력 다툼을 하고 있어. 그러던 중 갑자기 황제직할령인 이곳 던전의 시민들을 상대로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제품을 팔았다고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황제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생기지.” 존이 기계처럼 바로 대답했다. 그의 푸른색 눈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더욱이 이곳 던전은 모험가의 수와 역할이 압도적으로 높아. 전체적으로는 중하류층일지는 몰라도 이들이 없으면 당장 이 도시가 돌아가지 않지. ‘가공석’ 없는 마법 도구처럼........ 황제께선 움직일 명분이 생기는 게 아니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명분이 생기게 돼.”


“이거 점점 위험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거 알고 있지?” 올리버가 기겁한 목소리로 말했다.


벤자민도 막상 말하고 나니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애써 떨쳐내며 이빨을 꽉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이야기가 오간 후, 무거운 침묵이 사무소를 지배했다. 하워드가 벤자민에게 물었다.


“설마, 전쟁의 시발점이라도 되고 싶다는 건 아니지? 역사책에 이런 식으로 이름을 남기지 말자고.”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니지. 일단 상황만 그렇다는 거야. 정말 화약고에 불을 붙일 생각 따위는 없어.”


“그럼?” 올리버가 긴장으로 굳은 얼굴로 추궁하듯 물었다.


“화약고에 불을 붙이기 싫은 건 필시 브라운과 레드캐틀도 마찬가지 일 거야. 자기들 역시 이런 시기에 황제와 싸우고 싶지 않을 테니. 난 의뢰인을 모은 다음 적당히 불붙이는 척만 하다가 합의할 생각이야. 치료비 명목으로.”


그러자 올리버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들었다. 허나, 아직 의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실로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벤자민이 하려는 것은 그 만큼 미친 짓이었으니까.


“그들이 과연 쉽게 협상하려고 할까? 네 말대로면 그들도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돈을 많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는 거지. 필시 화약고에 불이 붙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쓸 거야.”


사실 장담할 수 없었지만, 벤자민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다소 허세를 떨었다. 다행히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뒤이어 하워드가 끼어들며 물었다. 이는 좋은 징조였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관심도 많다는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그것만 아니지. 저쪽을 겁먹게 할 정도로 많은 의뢰인을 모은다고 친다면, 필시,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들 텐데. 그 비용은 어떻게 할 거야? 모욕할 의도는 없지만, 내가 모험가라면 이렇게 수상쩍은 소송에 돈을 쓰진 않을 거야.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놈들인데.”


사과의 뜻으로 하워드가 벤자민에게 손을 들어 보였는데, 벤자민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 있었기에 말이다.


“그거에 대해서 나 역시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리고 해답도 내놨지.”


벤자민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품 안에서 겉을 구리고 마감한 무쇠 열쇠를 꺼냈다. 크고 꽤나 묵직해 보이는 무쇠 열쇠는 뒤에는 커다란 고리와 앞쪽에는 이빨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은행 열쇠?” 누군가 말했다.


벤자민이 꺼낸 열쇠는 평범한 열쇠가 아닌 ‘바벨 은행’의 금고 열쇠로, ‘바벨 은행’은 ‘바벨 산’에 사는 꼬마 도깨비들이 건설한 은행이었다.


원래 꼬마 도깨비는 오랜 옛날 ‘고대의 마법사’들의 노예였으나, ‘고대의 마법사’들이 쇠퇴한 후, 자유를 찾았으며, 이후 바벨 산에 모여 자신들만의 터전을 가꾸었다.


그들은 마법사들에게 배운 마법을 이용해 골렘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했으며, 바벨 산의 금을 캐어 부를 축적했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금을 바탕으로 은행을 설립해 전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가장 강력한 은행 중 하나가 되었다.


“여기 내가 그동안 던전에서 모은 전 재산이 있어. 큰 거로 세 장 될 거야.”


“언제 그렇게 많이 모았대.”


“열심히 살았거든. 투자도 좀 하고.”


“대단하긴 한데. 그건 왜?”


“이걸 자금으로 쓰자.”


벤자민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워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물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수임료를 받지 말고 네 돈으로 일을 진행하자고? 네가 무슨 자선사업가야?”


벤자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신, 보상금의 절반을 요구할 생각이야.”


“아, 그럼 자선 사업가라는 말 취소. 하지만 그래도 역시 너무 위험해. 만약, 저들이 응하지 않을 경우 넌 알거지 된다고. 심지어 우리도 멀쩡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고.”


벤자민이 눈을 잠시 감으며 고민하더니 이내 말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동의가 필요하지. 이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여기 있는 모두 위험을 나눠지는 셈이니까. 심지어 중간에 돈이 떨어지면 사무소 경비로 충당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수입은 전부 공평하게 나눌 거라고 약속할게. 생각해봐! 이 도시에 몇몇이나 하프 캔디를 먹었을지, 모험가를 기준으로 잡고 그들의 경제적 피해 규모는? 위대한 황제께서 세금을 더 뜯어내려고 그들의 경제 가치를 높이 잡아준 덕분에 족히 오천은 받을 수 있을걸. 피해자는 최소 네 자리가 될 텐데. 응?”


과장된 계산법일 수 있지만 벤자민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조금 더 과장할 용의도 있었다. 심지어, 하프캔디의 현재 명성으로 봤을 때, 아주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는 없었다.

다들 머릿속으로 숫자를 계산해 봤다. 5000에 최소 1000을 곱하고, 이 중 반이라.


현실 감각 없는 숫자에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벤자민은 자신의 주장이 약간이나마 먹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최소 천명을 모으려면.............. 엄청 힘들겠는데.”


“남들 평생 모을 수입을 단번에 당기는 거니까.”


다들 아직까지는 미심쩍어하는 것 같았으나, 동시에 벤자민이 보여준 거대한 고깃덩이에 흔들리기도 하였다. 마치,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는 고인 물처럼 사무소의 분위기는 종잡을 수 없게 출렁거렸는데, 그때, 존이 냉철한 목소리로 상황을 객관화 시켰다.


“하지만, 벤 네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레드캐틀과 브라운이 실제로 위협을 느낄만한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어야지. 그들 역시 여유가 없는 상황이니,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네 말대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야. 정황 증거만으로는 부족해.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거지?”


벤자민이 존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목소리였다.


“만약...... 제가 증거를 구할 수 있다면 다들 제 의견에 따라 주실 겁니까?”


존이 역시나라는 듯 말했다.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이럴 확률이 아주 높아지지. 하지만, 그걸 해결하지 못한 채로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조차 없어.”


벤자민이 각오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대한 빨리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니, 그럴 수 없어.” 존이 대답했다.


벤자민이 당황하며 물었다.


“어째서죠?”


“넌 당장, 그동안 밀린 일을 해야 하거든. 그리고 우리 모두를 고생시킨 대가로 한동안 잡무는 자네가 맡아야 해.”


존의 말과 동시에 벤자민 앞에 서류의 산이 쌓였다. 하워드가 덧붙여 말했다.


“저기 쓰레기통에 있는 것도 네 일이야.”


그러고서는 모두들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벤자민은 가만히 서류의 산을 바라보고는 급격한 피로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불평을 하였다.


“아, 이 중요한 순간에......... 진심입니까?”


누군가 ‘응’이라고 큰소리로 외쳤고, 벤자민은 허무하게 서류의 산을 바라보았다.


작가의말

이번주는 여기까지 올렸네요. 주중에 공부좀 하고, 글한번 더 탈고해서 월요일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봐주시는 독자분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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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 개 이론 +70 19.06.21 2,570 167 12쪽
61 60. 체포, 초대 +69 19.06.13 2,849 158 13쪽
60 59. 판결 +22 19.06.11 2,544 143 15쪽
59 연재 관련 공지 사항입니다. +18 19.06.10 2,655 55 1쪽
58 58. 협상 시도 +40 19.06.08 2,516 152 13쪽
57 57. 재판(7) +28 19.06.06 2,348 131 12쪽
56 56. 재판(6) +24 19.06.05 2,352 128 11쪽
55 55. 재판(5) +27 19.06.04 2,263 131 15쪽
54 54. 재판(4) +18 19.06.03 2,230 137 10쪽
53 53. 재판(3) +28 19.05.31 2,271 138 15쪽
52 52. 재판(2) +14 19.05.31 2,230 12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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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 매운 샌드위치 +24 19.05.28 2,342 134 12쪽
49 월요일 휴재입니다. +16 19.05.26 2,365 40 1쪽
48 49. 사전 회의 +26 19.05.24 2,420 137 13쪽
47 48. 의도치 않은 전개 +19 19.05.23 2,450 131 8쪽
46 47. 거인의 개입 +26 19.05.21 2,394 138 12쪽
45 46. 폭풍전야 +18 19.05.20 2,360 117 7쪽
44 45. 대치 +24 19.05.18 2,442 140 16쪽
43 44. 후퇴 +26 19.05.16 2,468 131 11쪽
42 43. 공갈단 +34 19.05.15 2,450 130 14쪽
41 42. 새옹지마 +18 19.05.14 2,350 1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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