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라 6
은하 기획과 할라 멤버들과의 계약은 올해로 만기였다. 이것은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
장 사장은 할라와 계약 연장을 원할 것이고 난 장 사장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계약 연장 따위, 전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라 멤버들은 나와 계속하자고 졸랐다.
그래서 난 이 모든 문제를 장 사장과 나 그리고 할라 멤버들까지 같이 모여 한 번에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장 사장에게 따질 것은 따져야 했다.
"장 사장이 하연이 접대하라고 시켰다던데. 맞아요?"
장 사장은 무슨 소리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접대? 얘가 그래? 내가 접대시켰다고? 야!"
"그게 접대 아니면 뭐에요."
하연은 장 사장의 으름장에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 사장님. 애들한테 그렇게 막말하지 마시고요."
"아니 없는 말을 하니까 그러지."
"그럼 접대가 아니라고 하시니까. 뭡니까? 무슨 자린데요?"
장 사장은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이런 걸 꼭 지금 애들 앞에서 말해야 하나?"
"그렇게 비밀스런 자리였나요? 애들 앞에서 말도 못 할 정도로요?"
장 사장은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아니 뭐 비밀스럽고 그런 자리라는 게 아니라. 아주 높은 분들이라 보안이 필요하다 이거지. 뭘 꼭 말을 그렇게 해?"
"아주 높은 분요? 누구요? 그런 자리일수록 더 오픈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참 답답해서.... 아니 사업하는 사람이 이런 것도 모르나? 일일이 설명을 해 줘야 해?"
난 더 들을 것도 없을 것 같아 갖고 온 계약서를 펼치며 말했다.
"여기 보면 '할라의 모든 스케줄은 상호 합의하에 진행된다'고 되어있어요. 여기 보이시죠?"
장 사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계약 위반하신 겁니다. 저번에 필리핀 투자다 뭐다 해서 CF 건도 그렇고. 아시겠어요?"
고개를 돌려버리던 장 사장이 다시 날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건데? 애들 데리고 와서."
난 계약서를 치우며 말했다.
"이제 이 계약서도 다 끝나가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의해야 하지 않겠어요?"
장 사장이 나와 그리고 할라 멤버들을 쓱 쳐다봤다.
"아이들은 저와 같이 가고 싶다고 하네요. 맞지?"
할라 멤버들은 나의 말에 장 사장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환이는 군대 갔으니까 제외하고. 창민이하고 여욱이는 올해로 계약만료. 유나도 일단 1년 계약으로 들어왔으니까. 올해로 계약만료. 하연이만 장 사장님하고 2년 더 남았네요."
"그렇지."
"그래서."
난 장 사장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사장님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계약을 연장하실 계획이세요. 아니면...."
"아 연장해야지!"
장 사장은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바로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이건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니까."
장 사장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그럼 김 대표 본인은 할 마음이 없는데. 아이들 때문에 연장하겠다? 지금 이 말인가?"
난 숨기지 않았다.
"네 솔직히 그래요."
할라 멤버들의 원망 어린 눈총을 받으며 난 말했다.
"할 마음이 없다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장 사장님 때문에.
방금처럼 계약에 어긋나게 자꾸 애들 빼돌리려고나 하고. 이러는데 어떻게 서로 믿고 일을 해나갑니까? 안 그래요?"
그런데 이때 장 사장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발언을 했다.
"그럼 하지 마!"
"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 마라고. 나 혼자 데리고 하지 뭐."
할라 멤버들은 놀라움과 공포로 완전히 울상이 되어 나를 쳐다봤고 나는
"정말요? 하실 수 있겠어요?"
하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 왜? 못 할 거 같아? 천만에! 두고 봐."
난 아이들을 쳐다봤다. 도살장이라도 끌려 갈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하연은 살려 달라는 듯 마구 고개를 내저으며 날 쳐다보았다.
"근데 말입니다... 여기 이 애들이 과연 사장님한테 갈까요?"
이번엔 장 사장이 아이들을 쳐다봤다. 애원의 눈으로 날 쳐다보던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난 그런 아이들의 정수리에 대고 말했다.
"야. 너희 장 사장님 회사로 갈래? 갈 사람 손들어봐."
역시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그럼 우리 회사로 올 사람!"
하연, 유나, 여욱이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창민이는? 넌 왜 손 안 드니?"
나의 말에 창민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그냥 지금처럼 두 회사가 같이 해서... 그래서 다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창민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자 장 사장이 말했다.
"그렇지! 사내새끼가 그래야지. 너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자식."
호기롭게 그렇게 외치더니. 장현동은 날 보며 으스대듯 말했다.
"창민이 저놈은 나랑 갈 수밖에 없거든. 우리 사이엔 김 대표가 모르는 그런 끈끈한 뭔가가 있다고. 그런 건 김 대표가 죽었다 깨도 모르지."
뭐라고 심한 말을 해줄까 하던 차에 이어지는 장현동의 말에 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여욱이 너 이 노므새끼. 너 우리 가게에서 미성년자 애들 따먹은 거. 그거 내가 불어버리면 너 어쩌려고 그러냐 응?"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여욱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푹 숙였다. 장 사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김하연이! 요년 요거 아주 많이 컸다. 너 이 년아. 옛날에 모델하면서 빤스만 입고 찍은 거. 그거 내가 다 가지고 있어. 그거 인터넷에 올릴까? 요새 PC통신에 사진도 다 올릴 수 있다며?"
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근데. 이 자식이 돌았나? 뭐? 당신?"
"그래요. 당신!"
맞다. 난 정말 돌았는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살의를 느꼈다.
"아무리 주먹으로, 약한 사람 협박해서 먹고사는 조폭이라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지금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지금 애들한테 공갈 협박하는 겁니까?"
장현동은 잠시 날 가만히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공갈? 협박? 내가 뭐 없는 말 하는 줄 아나 보지? 그라믄 애들한테 물어보라고. 어디 내가 거짓말했나."
난 여욱에게 말했다.
"김여욱! 너 정말 미성년자랑... 그랬니? 거짓말이지?"
여욱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현동은 그 모습에 껄껄껄 웃었다.
"이봐 김 대표. 내가 저놈아 생명의 은인이야. 생명의 은인이라고! 어느 날 가출한 년이 우리 가게서 일하겠다고 찾아왔더라고 그래서 내가 내쫓았거든.
영업정지 당하면 누구 손핸데? 그랬더니 저놈이 그날 그년을 끼고 잤네. 다음날 이 년이 어떻게 했는 줄 알아? 여욱이 저놈 아주 삐삐에 천 원짜리 한 장까지 탈탈 다 털리고. 나중엔 나한테 찾아와 우는거라. '사장님 나 정말 감옥 가요?' 이러면서. 그래서 내가 깨끗이 해결해 줬지. 그때 내가 해결 안 해줬으면 저 마 저놈 '할라'가 어딨어? 소년원 출신에 어디 취직도 못 하고 나이트 삐끼나 하고 있겠지. 야 김여욱이! 내 말이 맞아 안 맞아? 하하하!"
이제 실내에는 현동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난 참담한 기분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장현동씨. 여욱이한테 그렇게 약점 잡고 협박해서 데려가겠다는 말입니까?"
"그럼! 당연하지. 나랑 안 하고 김 대표한테 가겠다는데. 그럼 내가 가만히 있을까?"
나를 이긴 것에 기세등등한 현동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물어보자고. 누구한테 갈 건지. 야! 이창민이! 너 누구한테 갈 거야. 아까처럼 뭐 우리 둘이 같이했으면 좋겠다. 그런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하지 말고. 딱 부러지게 말을 해! 김 대표하고 나하고 누구한테 갈 거야!"
창민은 꽤 뜸을 들여 생각하더니 결국 대답했다.
"전... 장 사장님하고... 죄송합니다."
"거 보라고! 하하하!"
껄껄 웃으며 장현동은 이제 여욱에게 물었다.
"너는! 넌 누구한테 갈 거야. 넌 뭐 물어보나 마나지 만."
"... 저도... 죄송합니다."
현동은 나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과장되게 큰 소리로 한참을 껄껄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그럼 재계약 문제는 다 끝난 거지? 두 놈은 나한테 온다고 했고. 하연이는 계약 남았으니 뭐 물어볼 것도 없고. 유나는? 유나 넌 어떻게 할래? 우리 회사 와서 다시 '할라'할래? 아니면 그냥 쉴래. 어쩔래? 생각 좀 해봐. 잉?"
아이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현동의 껄껄거리며 웃는 소리를 참고 들어야 했다.
갑자기 웃음소리가 멈추는가 싶더니 장현동이 내게 말했다.
"참! 김 대표한테도 물어봐야겠네. 김 대표! 어떻게 할래? 내년에도 나랑 또 같이할까? 정 원하면 껴주고. 단 저번엔 6대 4. 내가 4였으니까. 이번엔 7대 3. 내가 7! 어때? 할래?"
난 일어났다. 그리고 현동을 경멸의 눈초리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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