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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서리
작품등록일 :
2019.04.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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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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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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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2. 프레뷔옹 자작.

DUMMY

127호를 보내고 난 뒤, 성진은 숙소로 돌아가 기사들이 치료받는 걸 확인했다.


기사들을 치료하는 건 대부분 의무병이었다. 요새에 가까운 닥트는 신전이 없었고 의사도 적었다. 의사는 중상자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경상자는 의무병에게 몸을 맡겼다.


“부목을 달겠습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의무병의 실력은 썩 훌륭했다. 완벽한 치료는 못 해도, 응급처치는 거의 달인이었다. 훈련하면서 다치는 일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손에 익은 거였다. 성진은 그들이 쓰는 약초를 확인했다.


-

봉결초.

까지거나 베인 상처에 빻아서 바르면 소독 및 지혈 효과를 갖는다.

-


‘거의 날 것이네.’


대부분의 의무병이 그 자리에서 말린 약초를 빻아 진액을 발라줬다. 무가공 약초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가공한 것보다 효과가 떨어졌다. 군용으로 모아둔 비축분을 대충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내 부하들인데, 그냥 두기에는 좀 그렇네.’


근 한 달간 같이 움직이며 살짝 정이든 성진이였다. 그냥 약초나 대충 바르는 걸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은 도와줄까.’


그는 상당히 좋은 약을 설정으로 만든 적 있었다. 당연히 만들기 위해, 아공간엔 꽤 다양한 약초를 챙겨놨다.


‘목표로 한 건 아직 재료가 부족하지만, 그냥 생 약초보다 나은 것 정도라면야.’


성진은 아공간에서 몇 가지 종류의 약초와 과실을 꺼냈다. 그리곤 약초를 으깨던 의무병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것 좀 빌리지.”


“네? 아, 네에···”


의무병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손절구를 내밀었다. 무려 백작가의 도련님이니, 거절이란 선택지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성진은 의무병이 쓰던 절구에 들고 있던 약초를 넣고 빻았다.


“어? 어엇? 도련님 그러시면···”


“괜찮으니 가만히 있게. 아, 할게 없으면 이거 껍질 좀 까주고.”


의무병이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말리려했다. 그를 말 한마디로 제압한 성진은 과실의 껍찔 제거를 맡겼다.


약초는 물기가 부족해서 퍽퍽한 모양이 됐다. 그대로 바르기엔 조금 어려운 상황. 거기에 병사가 껍질을 깐 과실을 넣고, 다시 빻았다.


그러나 질퍽질퍽해지면서 찰기가 돌았다. 함께 넣었던 약초들은 자잘한 조각들이 녹아서 합쳐졌다. 본래 이렇게 만들려면 약초를 갈고 한참을 빻아야 하지만, 같이 넣었던 과실이 그 과정을 단축시킨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나를 그럴듯한 모양새가 되자, 의무병이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지구에서 의무병은 나름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 성진이 설정한 세계에서는 응급처치만 할 줄 아는 정도였다.


특히 약을 만드는 부분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다를바 없었다.


“기사들에게 약초 대신 이걸 발라주게. 상처를 덮을 정도면 충분해.”


“아, 알겠습니다!”


병사는 군말없이 약을 받아들고 달려갔다. 그 사이 성진은 다른 의무병을 붙잡아 약을 만들었다. 근 50여명이 다른 상황이다. 필요한 물량은 많았다.


그렇게 얼마나 만들었을까.


“도련님. 그만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롤드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제야 움직임을 멈춘 성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주위가 조용했다. 이상함을 느낌 그가 주변을 둘러보니, 기사와 병사. 의사까지 모두 그를 쳐다보는 게 아니겠는가.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성진이 헛기침을 한번하곤 말했다.


“흠. 무슨 일입니까. 다들 저만 보고. 자, 환자들 빨리빨리 숙소로 들여보내세요.”


그의 말이 떨어지니 허겁지겁 움직임이 생겼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에선 방금 전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백작가 도련님이 제약법은 왜 익히신 거지?’

‘그것도 슬쩍 보니까 드문 약초를 쓰시던데. 타국의 제약법이라도 얻으신 건가?’


주변에 있던 소수의 의사는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백작가의 장남이라면 제약법 따윈 필요 없이 신관을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사들은 제약법 따위엔 별 관심이 없었다.


‘도련님이 우리를 위해서 약을 만드시다니.’

‘재료를 준비해 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릴 위해 제약법을 기억하신 거야.’


성진이 가출 계획을 세운다는 걸 전혀 모르는 기사들의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하롤드도 마찬가지였다.


‘도련님은 정말 대단하시군.’


그는 여태까지 성진이 벌여온 일들을 떠올렸다. 고블린 부락, 던전, 암살자. 어느것 하나 겹치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두 감으로 특이점을 찾아냈다.


우연이 세번 겹치면 필연이라 했던가. 여태껏 남겨놨던 마지막 고집이 꺾이는 걸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도련님의 설계였다.’


그렇지 않다면 함정과 제약법까지 배워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불완전 하지만, 해독약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덕분에 의사에게 치료 받을 때까지 기사들의 무사히 버텨낸 상황.


그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앞으로 도련님의 말을 거스르지 말아야겠군.’


성진이 어떤 방법으로 정보를 얻어서 계획을 짰는지, 하롤드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명령을 듣는 기사. 일반적으로 정보는 상관이 다루는 거였다.


그가 판단하는 건 그 명령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느냐 뿐.


그 외에는 주제넘은 생각이었다.


“도련님. 이제 마무리는 저희가 할테니, 숙소로 돌아가 쉬십시오.”




“그럼 한숨 잘테니, 암살자와 용병들이 빠져나가지 않게 해주세요.”


도시에 들어와서 수색하랴, 함정 깔랴, 암살자와 용병들까지 상대하면서 결국 밤을 꼬박샌 성진이 숙소로 들어갔다.


그러자 먼저 침대에 배를 깐 채 자고 있는 피온이 있었다.


“···누군 고생실컷 하고, 누군 마법 몇번 쓰고 편하게 퍼질러 자다니. 세상참 불공평하네.”


펄럭.


냐앙!?


세상에 대한 반항으로 이불을 크게 털었다. 자고 있던 피온이 허공을 돌다가 멋지게 착지했다.


[마,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고양이가 아니면 다쳤을 거라고!]


“안 다쳤으니 됐지 뭐. 같이 자자.”


피곤한 모습으로 이불 속으로 들어간 성진은, 피온이 뭐라 하기도 전에 잠들고 말았다. 단련된 육체로 멀쩡하게 움직였지만, 쌓인 피로를 무시하진 못했다.


[···아, 젠장. 너 일어나서 두고 보자.]


그가 고생한 걸 알고 있는 피온은 그냥 불평 한마디 남긴 채 다시 잠이 들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면서.






시간을 빠르게 흘러 일주일이 지났다. 순찰 일정을 가뿐히 넘겼으므로, 성진은 가이론 백작에게 편지를 부쳤다. 닥트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프레뷔옹 자작이 의심스러웠기에, 일부러 기사를 전령으로 썼다. 가이론 백작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암살자와 용병단은 재앙과 같은 것이다. 피해에 관해서 책임은 필요 없다. 적과 싸워 전사하는 건 명예로운 일이니, 묘만 번듯하게 세우면 된다. 후속 조치는 내가 하마.


-피해를 봤다면 회복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행군이 가능할 정도로 쉬어라. 순찰은 취소하지 않겠다.


-붙잡은 암살자와 용병단은 네 재량껏 처리해라. 건드리지 않으마. 프레뷔옹 자작의 요구는 거절해도 좋다.


-프레뷔옹 자작을 의심한다고 들었다. 그는 3대에 걸쳐 우리 가문에 봉사한 충신(忠臣)이다. 괜한 의심으로 잃어버릴 인재가 아니다. 증거가 없다면 자제해라.


-참고로 아공간 주머니를 유용하게 쓴다는 말을 들었다. 영지에 돌아오면 돌려놔라.


‘아공간 주머니는 역시나 들켰나.’


성진은 머리를 편지를 접었다. 마지막에 쓰인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돌려 놓으라는 소리가 없다는 건, 공식적으로 허락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영지에 안들어 간다면 돌려 놓을 필요도 없지.’


이제부터 아공간 주머니는 성진의 것이었다. 그러나 편지의 모든 것이 긍정적이진 않았다.


‘프레뷔옹 자작을 의심하지 말라라. 이건 어쩔 수 없군.’


일주일간 127호는 귀환하지 않았다. 일류 암살자의 실력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 그는 희박한 확률이었던 탈주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증거도 들어올리 없었다.


‘아쉽네. 개인적으로 좀 수상해 보였는데.’


확신한 건 아니니, 마음을 접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영지가 망해도 상관 없도록 도주로를 짜 놓던 성진이다. 배신을 막으면 좋겠지만, 목숨 걸고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그럼 이제 슬슬 이동할 준비를 해볼까.’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많은 기사들이 회복했다. 경상자는 완치했으며, 중상자의 경우, 몇몇을 제외하곤 상당히 좋아졌다. 일상 생활을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


굉장히 놀라운 회복 속도였지만, 원래 기사들은 회복력이 월등했다. 심장에 자리잡은 신비력이 여러모로 돕기 때문이다.


이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기사는 후유증이 남은 이였다. 그들은 회복 가능성 자체가 낮으니,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방을 나섰다. 마침 복도에 있던 하롤드에게 말했다.


“하롤드 경. 내일 닥트를 떠나 다음 도시로 가겠습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남은 기사들은 어찌하겠습니까?”


“프레뷔옹 자작에게 맡기겠습니다. 아버지께 명단을 보내면 문제없겠죠.”


“용병단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프레뷔옹 자작에게 맡기겠습니다. 똑같이 명단을 만들어서 기사들이 회복한 뒤, 직할령으로 보내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프레뷔옹 자작에겐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이후, 숙소와 자작의 저택이 소란스러워졌다. 순찰대는 준비가, 자작은 배웅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이면 떠나게 된 상황. 잠자리에 든 성진의 방에 누군가가 침투했다.


[···야. 일어나.]


“피온? 무슨 일이길래··· 음?”


피온의 앞발 꾹꾹이에 눈을 뜬 성진은 침대 앞에 무릎 꿇은 사람을 발견했다.


“···127호? 그냥 간 줄 알았는데.”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탈출했었습니다.”


솔직한 발언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게 드러났다. 성진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탈출했는데? 왜 다시 돌아왔지?”


“저 혼자는 도무지 살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127호는 며칠 동안 자유란 걸 느꼈다. 답답한 은신처가 아니라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건 그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그러나 딱 이틀 만에 질려버렸다. 그가 자유를 얻어 행동하기 위해선 필요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돈, 신분, 직업, 목적, 등등. 그는 사회에 처음 떨어진 새끼 오리와 같았다. 암살자로만 살아온 그의 인생엔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성진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약속이 거짓일 때를 대비해 도망칠 준비를 하고서.


물론 그 계획은 초장부터 틀어졌다. 127호가 들어온 걸 본 피온이 마법을 펼쳤기 때문이다.


같은 편이되면 임막음이 가능하고, 적이면 처리하고 증거인멸을 하면 되니, 거침 없이 쓴 것이다. 마법사가 있으리라곤 생각치 못했던 127호에겐 낭패였다.


‘이젠 정말로 약속을 지켜주는 걸 믿을 수 밖에 없군.’


그는 조용히 성진의 말을 기다렸다.


“뭐, 좋아. 아주 늦진 않았으니까 며칠 방황한건 넘어가 주겠어. 그보다, 임무의 보고를 듣고 싶은데.”


임무. 그 단어를 들은 127호는 품 속에서 서류 한뭉치와 편지를 꺼냈다.


“제가 암살 임무를 할때 프레뷔옹 자작이 조력을 해줬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몇 가지 도움을 줬는데, 여기 그 증거가 있습니다.”


닥트는 쉬운 도시가 아니었다. 나름 방비가 철저해서 상인 같은 게 아니면 잠입이 어려웠다. 그런 닥트에 암살자가 대량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개구멍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하. 비상용 도주로로 암살자를 불러들였다고? 완전 미쳤네.”


프레뷔옹 자작의 지원은 상당히 거칠었다. 귀족가 저택에 설치된 비상용 통로를 보여줬다는 건, 나중에 암살자에게 죽여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거기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축성 계획표?”


그는 저택을 허물고 성을 지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건 딱 한 가지 의미밖에 없었다.


“독립이 하고 싶었군.”


“편지에 거래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성진은 곧장 편지를 펼쳤다. 그러나 그곳에는 세튼 백작가를 먹는다면, 계승 귀족으로 추천하겠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영토를 가질 수 있는 건 계승 귀족뿐이니, 독립시켜주겠다는 말과 같았다.


명백한 배신의 증거였다.


“이거라면 아버지도 별말 못하겠군.”


성진은 바로 쳐들어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궁지에 물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하니, 프레뷔옹 자작을 방심시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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