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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서리
작품등록일 :
2019.04.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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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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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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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3. 프레뷔옹 자작.

DUMMY

다음날. 성진은 기사단엔 아무 말도 않은 채 떠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새벽 때라도 말해줄 수 있었지만, 괜히 부산스러워지는 걸 막기 위함이다.


‘감시가 있을지도 모르니.’


순찰대는 예정대로 가는 척을 해야 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던 것이, 무기는 찬 데다가 증거가 내 손에 있기 때문이다.


기사단이 영문 모를 표정을 해도 움직이게 할 패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걸 믿고 프레뷔옹 자작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오, 도련님.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자작. 오히려 제가 닥트에 피해를 줬죠.”


성진은 기사들이 끌고 온 암살자와 용병을 훑었다.


“가는 날까지 이렇게 짐을 맡기니 마음이 부척 불편합니다.”


“하핫! 심성이 깊으시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프레뷔옹 자작, 다친 기사의 치료와 포로의 처분쯤은 당연한 일입니다!”


프레뷔옹 자작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본다면 마음 좋은 도련님에게 감탄하는 것이라 할 정도였다.


‘연기가 수준급이군.’


사정을 모르면 짐작도 못 할 만큼 훌륭한 연기. 보통 귀족이 연기를 잘한다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출날 정도였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자작님은 정말로 충신이군요.”


성진은 마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프레뷔옹 자작의 웃음이 한층 더 진해졌다.


“저희 가문을 3대째 가신으로 삼아주셨지 않습니까. 이 정도 충성은 당연합니다.”


프레뷔옹 자작은 단승 귀족이다. 그렇기에 봉신이고, 도시를 다스릴뿐 가진게 아니다. 백작가에 충성해야 할 입장.


세튼 백작가는 그런 프레뷔옹의 가문을 3대째 봉신으로 삼았다. 분명 초대는 충성스럽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도 변했다. 특히 핏줄이란 것은 우수한 아비 밑에 무능한 자식이라는 변수도 곧장 나왔다. 프레뷔옹 자작은 충성스런 가문에서 나온 반군이었다.


성진이 그것 밝히기 위해 운을 뗐다.


“그렇게 충성스러운 분께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군요.”


“···어떤걸 말씀이십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프레뷔옹 자작. 성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왜 저를 암살하는데 동조했다는 말입니다.”


촤촤촹!


암살과 동조라는 말이 울려 퍼지는 순간, 기사들이 검을 뽑았다. 자작과 병사들은 당황했다. 자작은 숙련자고 병사의 숫자가 많긴 했지만, 두 개 기사단에 맞먹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도련님, 아무래도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정확히 조사해 보시면···”


“이미 조사는 끝났습니다. 하롤드 경.”


“예! 도련님!”


“프레뷔옹 자작을 포박하십시오. 반란죄로 다스리겠습니다. 증거는···”


“알겠습니다!”


성진이 설득을 위해 편지를 꺼내려 하니, 하롤드가 휘하의 기사들을 움직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자작을 끌어 내리고,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어떠한 언급도 없었는데 모두가 충실히 명령에 따른 것이다.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던 만큼 성진은 좀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헛기침을 한번 하면서 받아들였다.


‘나름 신뢰가 쌓였나 보네.’


사실 순찰대의 지휘관이라는 위치와 백작가의 장남이란 걸 생각하면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프레뷔옹 자작은 순식간에 죄인이 되어 묶였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란이라뇨, 도련님! 동조라뇨!?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이건 적의 음모입니다!”


“자작. 이미 증인과 증거가 모였습니다.”


성진은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프레뷔옹 자작. 3대가 백작가의 개로 지내며 떨어져 나오는 떡고물이나 주워 먹는 신세가 어떤가? 충성하지 않으면 잘리는 신세. 자식에게 신분을 물려줄 수도 없는 안타까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대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계승 자작이다.”


“이, 이게 무슨!?”


프레뷔옹의 가면이 깨지기 시작했다. 자신만 알아야 하는 은밀한 비밀이 폭로되고 있었다.


“나는 곧, 세튼 백작가를 집어삼킬 생각이다. 그때 자네가 도와준다면 계승 자작으로 만들어 주겠다. 방법은 걱정하지 마라. 올라간 장본인이다.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긍정적인 대답에 예를 표한다. 그 용기가 그대의 후손에 전해져 역사가 될 것이다. 자, 이제 날 돕는 방법 말인데. 가능하면 도시 전체를 넘겨줬으면 한다.”


편지는 여러 장이었다. 봉투는 하나였지만, 그 속에 든 내용은 상당한 시일에 걸친 것이었다.


자작이 하나에 몰아넣었는지, 127호가 하나에 몰아넣어 가져왔는지 알 순 없었다. 중요한 건 이게 진실이고, 프레뷔옹 자작의 얼굴은 점점 새파래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약속된 날짜에 성문을 열어줬으면 한다. 자, 프레뷔옹 자작. 더 할말은 있으신가?”


성진이 편지를 다 읽었을 때, 주변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미 어떻게 공조할 건지도 나온 상황에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편지의 출처를 들이대며 함정이라 되치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허망한 저항에 불과했다.


“암살자 중에 자네가 조력자라는 걸 밝힌 이가 있다. 그가 이 편지도 가져왔지.”


“암살자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적어도 자네보다는 믿음직해. 하롤드 경! 자작의 저택을 조사하라! 특히 끌려간 암살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라. 정말로 동조자라면 풀어주거나 증거 인멸을 위해 죽였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 2 기사단이 저택으로 향했다. 그 사이 제 3기사단은 병사와 시민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곤 자작을 연행해 저택으로 갔는데, 제 2기사단이 증거를 발견한 뒤였다.


“암살자는 모두 살해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집무실에서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프레뷔옹 자작이 쓰다만 답장이었다. 내가 가고 나면 보낼려고 써둔 모양이었다.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에 그는 고개를 숙였다.


“자작의 일가는 어떻게 됐나?”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도, 도련님! 저희 가족은 이 일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글세.”


자작은 항변했지만, 성진은 회의적이었다. 그의 슬하에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는데, 각각 스물하나, 스물로 장성(長成)했다. 계획을 알아도 이상할 것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지구에선 연좌제가 없어도, 성진의 설정 속 세계관엔 존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작의 자식이 남는 게 싫었다.


‘복수 씨앗 따윈 남겨두고 싶지 않아.’


당장 성진의 육체인 글론부터 힘을 키워 가문의 복수를 이루는 이야기다. 그의 입장에선 용납하기 어려웠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내와 자식만은!”


“그럴 순 없어. 가족이란 것부터가 이미 죄다. 하롤드 경. 죄인을 감옥에 가두도록. 내일 오후. 광장에서 처형하겠다.”


갑자기 자작이 잡히면서 시민들이 동요할 게 분명했다. 성진은 공개 처형으로 그걸 무마할 생각이었다.


상당히 야만스러운 방법이지만, 성진이 만든 세계에선 꽤 평범한 대처였다.


당연히 이견 따윈 없었고, 프레뷔옹 자작은 지하로 끌려갔다.


‘여기서 할 일이 마무리됐군.’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깔끔하게 처리돼서 기지개라도 켜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진은 하롤드에게 말했다.


“하롤드 경. 아무래도 아버지께 편지를 한 번 더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병사를 시키셔도 될 겁니다.”


“그래야죠. 순찰대는 내일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훌륭한 판단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제 2기사단장 하롤드. 순찰대의 임무를 맡아 완수하겠습니다.”


‘응?’


성진은 갑작스러운 하롤드의 선언에 당황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했다.


마치 빛나는 태양을 보는 듯한 느낌. 부담스러울 정도로 격한 감정이 실려서 차마 되물을 수가 없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하롤드 경.”


“넵! 그럼 저는 출발 준비를 하겠습니다!”


하롤드가 기사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할일이 없어진 성진은 뭘 할까 잠시 생각했다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구경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크고 고풍스러운 게 좋네.’


성진에게 백작성은 너무 컸다. 생활 반경으론 1/4도 못 쓸만큼 큰 곳이었다.

그러나 저택은 그의 맘에 딱 들었다. 지구 기준으로 커다란 저택이란 말이 어울렸다. 꽤 컷지만, 모두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집이었다.


지구에 있을 때는 이런 곳에서 사는 게 꿈이었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공간. 그러나 그는 내일 순찰대와 함게 떠나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입맛이나 다시며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찰나.

우연히 집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어휴. 서류 장난 아니구만.’


책상 한쪽에 쌓인 서류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골반보다 낮은 책상에 가슴께까지 온 서류. 종이가 두꺼운걸 감안해도 엄청났다. 성진은 처리할 사람을 동정했다.


‘···잠깐. 자작이 잡혀들어갔는데, 이건 누가 처리하지? 집사가 하는 건가?’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하는데 피온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냐오옹.


[야, 너 순찰대 빠지는 거냐?]


“···뭐?”


주변에 사람이 없어, 마법을 쓴 피온의 발언에 성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하롤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간신히 이해했다.


‘내가 순찰대를 맡기는 거로 착각했구나!’


물론 성진은 순찰대에서 빠질 생각이 없었다.


“아니. 내가 왜 빠져. 내일 같이 갈 거야.”


[내일? 그건 아니지. 네가 가면 이 도시는 누가 맡고? 기사들이 하는 일 들어보니까, 네가 이 도시에서 행정 잡을 거라 하던데.]


“···누가? 내가?”


성진이 자신을 가리키며 묻자,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 말고 누가 행정을 보냐? 자작이 죽는데.]


“집사라던지···”


[조언이야 해주겠다만, 도시 하나를 맡기기엔 좀 그렇지 않아?]


“···아버지가 빨리 행정관을 보낸다던가···”


[그래도 일주일은 넘지. 인원 선별하면 더 걸릴 수도 있고.]


“기사는···”


[글자나 읽을지 모르겠네.]


“허허허허···”


그제야 사태파악이 된 성진은 헛웃음만 터트렸다.


도시 닥트. 몬테 파브르 자작이 가장 먼저 쳐들어오는 곳에, 꼼짝없이 묶인 것이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분명 후임이 올 거야.”


그는 행복 회로를 돌렸다.


[글세. 내가 들어보니, 너 책 좀 읽었다며. 어차피 영지를 물려받으면 실컷 할 서류 작업, 한두 달은 맡기고 판단하지 않을까?]


“으아아안돼애애애!”


행복 회로가 터졌다. 성진이 괴롭게 울부짖는다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뭐야? 왜 이렇게 싫어 하는 거야? 돌아다니면서 순찰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영지전이 벌어질거야.”


그는 조심스럽게 감춰왔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예언자라 알고 있는 피온에게도 감춘 건, 그가 도망갈 걸 염려해서였다. 그러나 이젠 털어놓지 않으면 설명이 안됐다.


“가장 먼저 공격 받는 곳이 이 도시야.”


[망했네.]


아니나 다를까 검은 고양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한발 먼저 창문을 닫고 문 앞을 봉쇄한 성진이 외쳤다.


“피온! 우리 같이 적을 무찌르자!”


[꺼져, 이 미친놈아! 인간들의 싸움에 고양이를 끼워 넣지마!]


“내가 있어야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어!”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뒤지는 것보단 고양이인 채라도 사는 게 낫다는 거야. 그러니 비켜! 난 이곳을 탈출하겠다!]


한동안 다투던 둘은 얼마 안있어 흥분을 가라앉혔다. 잠시 숨을 고르며 침묵을 유지한던 둘 중에서 피온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대책이 있는 거지?]


“생각해 둔거야 있지. 하지만 잘 될지는 몰라. 변수가 너무 많아. 그리고 잘 된다 해도 여기서 막진 못해.”


본래 영지전이 벌어지면 닥트에서 막는 게 정석이었다. 허가가 떨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걸 이용해서, 병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몬테 자작은 허가를 날림으로 받아낸다.


당연히 병력은 집중되지 못하고, 병사만 있는 닥트로선 적을 막지 못했다.


그걸 알고 있는 성진은 닥트에서 온전히 막을 생각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서 후퇴해야지. 안전을 챙기면서.”


[당연하겠지만, 쉽지 않겠네.]


“그래도 해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성진은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내가 이 도시를 샅샅이 파악하는 게 우선이야.”


그는 서류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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