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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서리
작품등록일 :
2019.04.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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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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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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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3. 트롤 경매.

DUMMY

*


성진이 떠난 지 한 달이 된 세튼가. 그곳은 예전과 달리 엄청나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성진의 가출, 황실의 방문, 몬테 자작과 협상 등등. 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중 가장 까다로웠던 황실의 방문은 다행히 쉽게 처리된 상태였다. 주역인 성진이 없다는 소리를 듣곤, 기사단과 가이론에게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빠진 것이다.


이유는 이야기에서 황실도 무시 못 할 내용이 들어간 덕분이었다.


자섬국의 무사의 암살 시도.


세튼 백작가의 저력과 그 후계인 글론 세튼을 확인하러 온 황실 사절단은, 외세(外勢)의 출현에 다급히 돌아갔다.


세튼가에 대한 일은 미뤄졌다. 현 가주인 가이론 세튼은 황실에 대한 충성을 여러 번 증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력을 비교해봐도 자섬국이 컸다.


문제는 몬테 자작과의 협상이었다.


“나는 죽어도 협상할 마음이 없다!”


그는 포로로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았다.


“원로원에 중재를 요청하겠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평소 뇌물을 먹어왔던 원로원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내려줄 거라 생각한 것.


그러나 원로원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쯤에서 잘라내는 게 좋겠지.”

“너무 힘을 써주는 것도 곤란해. 안 그러면 우리를 도구로 볼 테니.”

“혼자 착각하는 건 상관없지만, 원로원이 그렇게 보일 순 없지.”

“먹는 게 좀 아깝긴 하지만, 그 정도야.”


귀족 중에서도 경험 많고 높은 직책에 있었던 이들이 은퇴하며 앉게 되는 자리가 원로원이다. 겨우 몬테 자작의 뇌물로 조종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렇게 몬테 자작의 몰락이 결정되고.

그는 처음에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원로원에서 결정이 나왔다기엔 너무 빠른 탓이다.


본래 왕복으로 두 달은 걸리는 데 한달 만에 결론이 났으니 그럴만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속사정이 있었다.


가이론 백작에게 은혜를 입어서, 영지전이 벌어진 소식을 다급히 들고왔던 라하라트 남작. 그가 다시 한번 바쁘게 뛰어준 것이다.


그 결과. 몬테 자작은 억지스러운 영지전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 남작으로 강등됐으며, 영지의 1/2을 세튼가에 넘겨야 했다.


덕분에 가이론 백작은 저주를 치료하자마자 눈코 뜰 새 없이 돌아다녔다.


누군가 영지에 들어와 뒷조사한 것도 모른 채.


“빌어먹을 영감. 대답해라.”


“시킨 건 끝났나 보군.”


“그래.”


30대 초반의 남성이, 비틀린 공간 너머 노인에게 말했다.


“조사한 결과, 이곳엔 최근 영지전이 벌어졌는데···”


조사 내용은 그리 자세하지 않았다. 정확한 군사 내용이나, 내부 사정을 알아낼 만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출처는 대부분 소문이었다.


그냥 시장을 돌아다니면 알 수 있는 것들. 그러나 노인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본래 그 땅의 운명은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걸 막았다라? 글론 세튼이란 놈과 가이론 세튼이란 놈이 의심스럽군.”


“글론 세튼이란 놈은 여기 없다. 듣자 하니 백작에게 임무를 받고 나갔다는데.”


“그럼 일단 가이론 세튼이란 놈부터 조사해 봐야겠군.”


“평소 하던 거면 충분하겠지?”


“물론일세.”


30대 남자는 품속에서 작은 물건을 꺼냈다. 사람의 눈알. 그것은 공간 너머 노인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마법 물품이었다.


“그걸로 비춰주기만 하면 충분하네. 그럼 운명을 볼 수 있으니, 그자가 원인인지 알 수 있겠지.”


“만약 그자가 원인이면?”


“우선 납치해주게. 실험해 볼게 있어.”


“그러지.”


남자는 공간을 휘저어 통신을 끊었다. 그리곤 자신이 있는 도시를 바라봤다.


‘닥트. 분명 이곳으로 백작이 온다고 했지.’


상대방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자고 마음 먹은 그는 알지 못했다.


그 도시에 운명이 비틀린 무고한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






트롤은 잡기 힘든 만큼이나 값이 나가는 존재였다. 그들의 힘줄은 활이나 발리스타의 재료로 쓰였고, 가죽은 갑옷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중 백미는 위장인데, 트롤의 천능이 깃든 위장은 아공간 주머니를 만드는 재료 중 하나였다.


마법사 길드를 거쳐서 뻥튀기 된다 해도, 상당히 비싼 재료란 건 불보듯 뻔했다.


“글론님. 비율은 9:1이 어떠십니까?”


트롤 사체에 대한 공헌도는 성진이 최고였다. 애초에 그가 없었다면 잡을 수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문제는 용병과 호위병의 몫이었다. 그들도 시선을 끌어준 만큼, 공로가 없진 않았다.


상단주는 공손한 자세로 비율을 9:1. 즉, 성진이 9에 나머지가 1을 나눠 먹는 것을 제안했다. E, F급 용병들이 작게 불만을 터트린 걸 빼면,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


성진도 그 정도면 괜찮았다.


“그게 좋겠군요.”


“만약 저희 상단에 처리까지 맡겨주신다면 수수료를 안 받겠습니다.”


“···그래 주면 손해 아닌가요?”


“트롤 사체를 거래하는 경험만으로도 이득입니다. 그리고 더 비싸게 팔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요.”


상단주가 금액이 아닌 비율을 정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거래가 골치 아팠던 성진은 흔쾌히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럼 판매 후에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상단 짐에 트롤 사체가 추가됐다. 용병과 호위는 곧장 나무를 베어서 커다란 수레를 만들었다. 당연히 제외된 성진은 오드와 피온을 챙겼다.


수레를 만드는 데 하루. 원래 남은 이동 거리가 6일이지만, 트롤 사체가 추가되어 9일. 총 열흘에 걸쳐서 자론드라 자작가에 도착했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꽤 큰 도시였는데, 트롤 사체를 가져가자 경비병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뭐, 뭡니까, 이게?”


“트롤 사체입니다. 오다가 사냥에 성공했죠.”


“맙소사. 사체는 안으로 들일 수 없으니, 등록부터 하시오. 오랜만에 경매가 벌어지겠군.”


트롤의 사체는 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상단주는 시체가 자기 거란 걸 등록하고 호위병을 세운 뒤, 용병들과 함께 도시로 들어갔다.


일행은 일단 용병 계약을 마쳤다.


각자 약속된 금액이 분배됐고, 이제 특별 보수. 트롤의 사체값이 남은 상태였다. 상단주가 용병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특별 보수는 둘 중 한가지 방법으로 줄 겁니다. 이 자리에서 돈으로 받는 것. 경매가 끝난 다음에 비율을 받는 것. 원하는 대로 고르십쇼!”


용병 중 몇몇은 그 자리에서 일정 금액을 받아갔다. 나머지는 상단주를 기다리기로 하며, 각자 숙소를 잡아 말해줬다.


성진 일행은 그날 하루를 쉬기로 했다. 상행하며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은근히 피로가 쌓였기 때문이다.


일부러 고급 여관을 잡아서 그럭저럭 맛있는 음식과 술까지 즐긴 다음 날.


성진은 방에서 아침을 먹으며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영지에 찾아온 건 세 가지 목표를 위해서야. 그중 두 개는 다른 도시니까 넘어가고. 여기서 할 일은 하나야. 보물찾기.”


“오옷?! 여기 어딘가에 보물이 있는 건가요?!”


[도시에? 별로 안 믿기는데.]


“진짜로 도시에 보물이 있어. 다만 문제가 좀 있지.”


[무슨 문젠데?]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물건이 너무 작다는 것.”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려 중지를 가리켰다.


“찾는 물건이 반지거든. 그것도 사람이 끼고 있는.”


“그거, 찾을 수 있나요?”


[찾아도 문제 아냐? 도둑질이잖아.]


“찾기만 하면 돼. 장식품으로 알고 있을 테니, 살 수 있어.”


성진에겐 자금이 많았다. 백작가에서 들고나온 것부터, 오드가 훔친 것, 이번에 트롤 정산금까지. 상대방이 물건의 가치를 모른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찾는 게 어렵다는 것.


검은 고양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언에 나온 건 없어?]


“정확하지가 않아. 적발에 파란 눈을 가진 10대 소녀가 끼고 있는데, 더 컸거나 어릴지도 몰라. 어쩌면 자식한테 물려줬을 수도 있어.”


찾고 있는 반지는 먼치킨 물에서 나온 아이템이었다. 주인공은 그 반지를 순수하게 운으로 찾아낸다. 어떤 소녀와 부딪혔는데, 그 소녀의 반지가 마법 물품이었던 것.


말 그대로 극강의 운빨.


그렇다보니 대상을 좁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가 설정충이라 소녀의 집안 내력은 만들었지만, 구분법은 없었다.


덕분에 성진이 그 반지를 찾으려면 그냥 뒤져야 했다.


“수색은 2주 정도만 할거야.”


[왜? 그 시간이라면 돌아보기도 빡빡할 거 같은데.]


“어쩌면 누가 가져갔을 수도 있거든.”


“···그거 꼭 찾아야 하나요?”


“최소한 찾는 시도는 할거야. 엄청 좋은 거거든.”


설령 능력이 깍여나갔다고 해도 굉장히 좋은 물건이었다.


“그러니 다들 흩어져서 찾아보자. 빨간색 루비가 박힌 반지야. 신비력을 불어 넣으면 드래곤 문양이 떠오르고. 피온은 빨간 반지를 보면 바로 실험해 봐. 오드는 얼굴만 기억해 둬.”


[네이, 네이.]


“네. 근데 스승님. 그거 내일부터 하면 안 되나요?”


“왜?”


“오늘 트롤 경매하는 거 보고 싶어서··· 헤헤.”


성진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상단주는 바쁘게 뛰어다녔다. 트롤의 시체를 분해할 도축사를 고용한 뒤, 고객이 될만한 대상. 대장장이, 연금술사, 마법사 등등을 초대했다.


도축하면서 바로 판매하는데, 흔한 일은 아니었다.


‘구경꾼이 모인다면 반지 찾기도 쉽겠지?’


그는 경매에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가보자.”


일행은 경매장으로 향했다.






성문에 임시 경매장이 만들어졌다. 거창한 걸 만들 순 없는지라, 울타리와 고객이 앉을 자리. 그리고 트롤의 사체를 천으로 덮어놓은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경매 자체가 자주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서 구경꾼이 많았다. 성진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치였고, 피온이 사이를 쓱 훑으며 반지를 확인한 것도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냐옹.


가로로 젓는 고개를 보며 성진은 실망했다. 어린아이도 많이 모여서 은근히 기대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경매가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겨우 하루였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모여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상단주가 급조한 단상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그의 눈은 고객들을 향해 있어서, 성진도 그쪽을 바라봤다.


‘은근히 많군.’


상단주가 뛰어다닌 건 성진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경매에 참석 중이었다.


‘대장장이, 연금술사, 마법사, 도시장··· 정도는 알겠는데··· 나머진 전혀 모르겠네.’


“자, 그럼 경매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성진이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경매가 시작됐다.


상단주의 말과 함께 천이 걷어지고, 트롤의 사체가 드러났다. 구경꾼들은 보기 어려운 트롤의 모습에 감탄과 경악이 섞인 탄성을 뱉었다.


그러나 고객석은 침착하게 사체를 살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보존 상태가 최상급인 사체입니다! 일주일 밖에 안된 녀석이라 부패하지도 않았죠! 거기다 이 상처를 보십시오! 다리와 목덜미를 제외하곤 긁힌 곳도 없습니다! 숙련자 등급의 노련한 용병이 만들어낸 실력이죠! 가죽, 뼈, 내장, 어디 한군데 못 쓸 곳이 없습니다!”


상단주는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가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대장장이가 먼저 손을 들었다.


“등 가죽은 얼마에 팔 생각인가?”


“가죽의 경우엔···”


약간의 대화가 오가고, 대장장이는 등가죽을 사기로 결정 났다. 그러자 도축사가 와서 곧장 등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런. 간도 안 보고 살 줄이야.”


“별수 없지. 완전히 노린 모양인데.”


상처 없는 트롤 가죽은 귀했다. 대장장이가 눈에 불을 켜는 것도 이해는 갔다. 대장장이는 벗겨지는 가죽을 신중히 살폈는데, 연신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조심해서 가져가라.”


“옙!”


따라온 도제들이 가죽을 들고 이동했다. 대장장이는 다시 손님 석에 앉았는데, 그 덕에 다른 고객들도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으로 품질은 보장됐으니, 이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손 가죽은···”

“어허. 손 가죽은 나도 필요해.”

“오른팔에 힘줄을···”

“이보게, 대장장이. 내가 발리스타 하나를 만들 예정이니···”

“뇌는 얼마나 하나?”

“···”

“뼈는···”


활용도가 높은 부분은 경쟁이 치열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여유롭게 팔려나갔다. 그렇게 몇 시간. 어느새 트롤은 시체 쪼가리만 남은 상태.


경매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왔다.


“대부분 구하실 건 구하신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 경매품! 위장을 꺼내겠습니다!”


아공간 주머니의 재료, 위장. 거의 대부분이 욕심내는 부위였다. 마법사의 가공이 필요하지만, 그 가격을 대폭 할인해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객의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응?’


그리고 성진은 발견했다.


손을 든 사람 중에 붉은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을.


로브를 쓴 그 사람의 반지엔, 드래곤의 문양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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