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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서리
작품등록일 :
2019.04.01 17:47
최근연재일 :
2019.07.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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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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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5. 흡혈귀로.

DUMMY

어두컴컴한 장소.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불편하고 몸이 무겁다. 마치 심해처럼. 성진은 끝없이 빠져들었다.


‘난··· 죽었군.’


본능적으로 알았다. 거대한 흐름에 휘말려 가라앉는 감각.


한 명의 인격체가. 영혼이. 섞이고 섞여서 거대한 하나의 흐름이 되는 과정.


그는 이곳에서 정신을 잃으면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흐름에 저항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가라앉았고, 주변을 감싼 압력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압박하듯 더 강해졌다.


‘이대로 사라지는 건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살고 싶나?]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


성진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봤다. 흐름의 한가운데서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고 싶나?]


그림자만 보이는 존재. 그러나 확실하게 흐름에 저항하는 존재. 성진은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태초의 흡혈귀.”


[···이건 예상 밖이군.]


대번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게 놀라운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흐름을 헤쳐 성진에게 다가왔다.


[뭐, 좋아. 녀석에게 들은 걸 테지.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나와 거래하겠나?]


그는 흡혈귀가 뭘 말하는지 잘 알았다. 먼치킨 주인공과 맺은 계약이다. 피의 군주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태초의 흡혈귀와 거래가 필요했다.


거래 내용은 흡혈귀를 부흥시키는 것.


인간들에겐 꽤나 위험한 거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성진은 존재조차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곧장 받아들이진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지.”


[오호라. 여유가 넘치시는 군. 그럴만한 상황이 되시나?]


“세상엔 죽는 것보다 힘든 삶도 있어.”


노예로 살 생각은 없었다. 삶의 주체를 빼앗긴다면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는 태초의 흡혈귀를 노려봤다.


얼굴의 형상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태초의 흡혈귀는 흐름에 오래 노출되어 형상을 잊은지 오래됐다. 그냥 형체를 노려보는 것이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죽는 것보다 힘든 삶이라. 맞는 말이군. 좋다. 거래 내용을 말해주지. 사실 별것 없다. 내 일족을 부흥시켜 달라는 거지.]


당초 성진은 다른 제안이 나올거라 생각했다. 흡혈귀가 말한 ‘녀석에게 들은 걸 테지’란 문장이 뇌리에 남은 것이다. 반지의 원래 주인은 먼치킨물 주인공. 그가 먼저 거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거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좋은 일이었지만, 호기심이 솟아서 물어봤다.


“그건 이미 거래한 내용이 아닌가?”


[역시 알고 있군. 그래. 그 남자랑 거래했지. 하지만 이미 파기된 일이다. 일방적인 파기였지.]


“···의뢰로군.”


써 놓은 시놉시스와 다른 내용이었다. 원래는 먼치킨답게 흡혈귀를 부하로 삼는데, 파기로 바뀐 것이다.


그가 모르는 내용에 궁금증과 분노가 뒤섞였다.


“사정을 들려줄 수 있나?”


[미안하지만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계약이 연결을 뜻하는 건 아니니까.]


“아쉽군.”


[그래. 내가 아는 이야기는 전부 들려줬는데. 어떤가. 거래할 생각은 있나?]


“그러지.”


사정은 대충 알았다.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을 뿐, 죽는 걸 바라진 않던 성진에겐 더 이상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태초의 흡혈귀가 형체를 꿈틀거렸다.


[아주 기쁘군. 좋아. 계약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몇 가지 제약에 대해 말해주지.]


“제약?”


[한번 사기를 당한 몸이라서 말이야. 배신당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필요하거든.]


성진은 침음을 흘렸다. 설정과 시놉시스엔 이런 게 없었다. 본래 태초의 흡혈귀는 계약만 하면 조건 없이 힘을 빌려줬다. 그러나 먼치킨물 주인공 때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계약을 하진 않은 상황. 들어볼 순 있었다.


“말해봐.”


[네가 부활하면 흡혈귀가 될거나.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어.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을 걸어서 봉인한 거니까.]


그의 머릿속으로 세 가지 봉인이 스쳐 지나갔다. 원본 설정엔 없던 것. 왜 그런 게 생겼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세번째 조건이 죽음이었군.”


[저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이 파괴되는거다. 흡혈귀가 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동의한다. 다른 것도 있나?”


[나한테 사기친 개새끼를 죽여다오.]


“아주 마음에 드는 군. 하겠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녀석은 강하다.]


“알고 있어. 녀석한테 죽은 거니까.”


[···후하하하하!]


고개를 주억이며 하는 말에 태초의 흡혈귀가 요동치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걸작이군! 이렇게 좋은 대상도 없을 거다! 제약은 이걸로 끝이다! 자, 계약하겠는가?!]


“하겠다.”


어쩔 수 없거나 성진도 하고 싶은 일이 조건이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수락하자마자, 흡혈귀의 형체가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심장에 자리 잡았다.


[이걸로 계약은 끝이다. 후후. 기분 좋군. 마치 신이 안배(按排)라도 해둔 듯한 인연이다.]


성진의 몸이 떠올랐다. 내려가는 흐름과 찌그러트리려는 압력에 저항하며 자신이란 존재를 굳건히 했다. 그는 위에 있는 빛으로 향하며 말했다.


“안배는 아니야. 하지만 운명이라 할 수는 있겠네.”


피의 권리는 처음부터 노리던 물건 중에 하나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태초의 흡혈귀가 뭐라 하기 전에 빛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성진. 글론 세튼은 흡혈귀로 부활했다.






카앙!


“···뭣?”


그가 정신이 들자마자 한 일은 먼치킨물 주인공의 검을 쳐내는 거였다.


물론 오러 소드를 맨손으로 쳐내는 건 자해행위다. 그러나 지금의 성진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하아아···”


숨을 내쉰다. 떨어진 주변 온도와 함께 시린 입김이 뿜어졌다. 검을 막아낸 손에는 붉은색 덩어리가 맺혀 있었다.


‘이게 흡혈귀의 감각인가.’


혈액이 잘 돌지 않는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온도를 떨어트린다. 입안에서 뾰족한 송곳니가 느껴지고, 주변 사람의 피부에 핏줄이 비쳐보인다.


피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 흡혈귀의 시점은 인간과 조금 달랐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 피부보다는 혈액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 증거로 성진의 시야에 보인는 건 배경보다 사람. 사람보다 흩뿌려진 피였다.


“글론 씨!”


[너··· 어떻게···]


아직 익숙하지 못한 그의 눈 앞에 아닐라가 뛰어들었다. 피를 흘리는 피온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설명은 나중에. 우선은 치료부터.”


성진은 설명보다 행동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아닐라에게 건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피온에게 다가갔다.


“이젠 더 이상 감추지 않을래요.”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나의 믿음 오로니아시여. 당신의 앞에 쓰러진 가여운 존재에게 자애를. 생명의 불길에 환호를.”


파앗!


피온의 상처에서 하얀빛이 머물렀다. 그러자 이리저리 찢어지고 부러졌던 검은 고양이가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신성 치료?]


눈을 동그랗게 뜬 피온. 동시에 남자가 소리쳤다.


“아닐라! 그 힘을 쓰면 안 된다고 누누이···”


“닥쳐! 내 동료야! 동료가 죽는데도 감춰야 할 힘이면 무슨 소용이야! 이젠 내 마음대로 하겠어!”


부녀의 싸움 장면. 신성 치료 때문에 살짝 피했던 성진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오른다.


‘내가 죽었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직 명확한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일단 아닐라가 편을 들어주는 건 좋은데, 오해를 푸는 게 아니라 부친과 싸우는 건 어해가 잘 안 됐다.


그의 머릿속엔 아닐라와의 관계가 아직 미적지근하다고 봤기 때문.


성진을 죽인 분노로 대적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기습···은 관둘까.’


남자와 말다툼을 하는 아닐라. 기습 기회긴 했지만, 관뒀다. 뭐라고 해도 남자는 아닐라의 부친이다. 기습으로 죽이는 건 좋지 못한 생각이었다.


대신 잠깐 생긴 틈을 이용해 상태창을 확인했다.


-

이름 : 스트레이트 킴(김정만)

배역 : 먼치킨물 주인공

나이 : 35세

육체 등급 : 6단 1급 - 보정 +7급

신비 등급 : 7단 3급 - 보정 +5급

숙련도 : 오러 소드(S), 서클 마법(오행(五行))(a), 행운(s) : 저주 보정 - 4단계 하락

운명 :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으며 재능도 넘치는 청년.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너무 쉬워서 질린다’는 말을 뱉을 수 있는 존재. 그러나 예정된 세계에서 벗어나며 비틀렸다.

지금은 그저 한 집의 가장일 뿐이다.

저주에 걸려 시간에 따라 행운이 떨어진다.

*에러 - 다수의 □□□가 이야기 끝에 □□를 내렸다.

-


어마어마한 능력치. 이런 상대와 싸웠다는 걸 깨달은 성진이 혀를 찼다. 동시에 피온에게 오드의 치료를 부탁했다.


“그 힘을 드러내면 위험해! 성령왕국에서 널 쫓아올거다!”


“아빠보다 위험하진 않아!”


뿌득.


30대 남자. 정만이 이를 갈았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딸 대신, 성진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깨달은 성진이 코웃음을 쳤다.


“대충 무슨 생각인지 알겠네. 날 죽이고 싶다는 거지?”


“뜻이 통해서 다행이군.”


“아빠!”


“넌 가만히 있어라!”


“! 누구 맘대로!”


중간에 끼어든 아닐라가 성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는 아닐라의 허리춤을 껴안아 옆으로 돌렸다.


“글론 씨!?”


“이젠 제가 해결하죠.”


성진은 앞으로 나섰다. 굳은 표정의 정만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불똥이 튄다. 칼 대 칼이 아닌, 칼과 피의 덩어리가 충돌했음에도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쪽 다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역시. 계약했군.”


“덕분에.”


“무슨 소리지?”


“설마 발뺌하는 거야? 먼저 계약 파기했다며?”


“무슨 소리냐. 나는 파기한 적이··· 설마?!”


정만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뭔가 깨달은 표정이었지만, 성진에겐 상관없는 일. 피를 다루는 게 조금 익숙해진 성진이 얼추 월도 모양을 만들었다.


“[달빛 아래 춤추어라]”


흡혈귀의 육체로 무술이 펼쳐진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속도로 달려간 성진과 정만이 충돌했다.


꽈앙!


“크흑?!”


날듯이 뒤로 빠지는 정만. 애초에 육체 강화가 약한 오러 소드다. 흡혈귀로 부활하며 강화된 육체에, 무술까지 쓴 성진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자신이 밀린다고 판단한 정만이 레이 소드를 사용했다. 그러나 성진은 물러서지 않으며 달려나갔다.


“전과 같으리라 생각하지마.”


쩌어엉!


주르륵!


정만이 뒤로 밀린다. 그 대가로 월도가 반 이상 잘려나갔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스르륵.


피로 만들어진 월도는 순식간에 복원됐다. 덧붙여 인간보다 강한 흘혈귀의 육체는 신비력의 부담도 손쉽게 받아냈다.


“[초승달엔 선을 긋는다.]”


성진이 뛰쳐나갔다. 거침 없이 월도를 휘둘렀다. 정만은 레이소드로 받아냈지만, 몸이 밀리는 걸 막진 못했다. 그가 이를 갈았다.


“개 같은 녀석! 딸을 데려하는 걸 두고 볼것 같으냐!”


목걸이에서 상징물을 꺼내 외쳤다.


“오로니아여!”


파앗!


하얀 빛 덩어리가 쏘아졌다. 가장 기초적인 신성 마법이었지만, 흡혈귀가 된 성진에겐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만과 성진은 육체의 수준이 달랐다.


사악!


고작 고개를 비튼 것으로 신성 마법을 피한다. 그리곤 빈틈을 놓치지 않고 월도를 휘둘렀다.


서걱!


“크악!?”


정만의 왼팔이 떨어져 나갔다.


작가의말

용량도 적은데 자꾸 시간도 몇분씩 늦어지네요... 집 주변에 공사가 있어서 집중이 어려운 상황이라... 그저 죄송합니다. ㅜ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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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1. 괴도 소녀. +2 19.07.02 223 8 12쪽
80 80. 난쟁이. +1 19.07.01 221 9 11쪽
79 79. 경매.(2) +1 19.06.29 225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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