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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서리
작품등록일 :
2019.04.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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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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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기습 계획.

DUMMY

*


화목 성을 함락은 달콤한 미주와 같았다. 소국인 자섬국. 그러나 자연이라는 천혜를 등에 업고 20년간 제국을 막아온 나라. 그 일각이 무너진 것이다.


물론 화목 성 하나 무너졌다고 해서 이기진 않는다. 갈 곳은 많았고, 이보다 더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성도 존재했다.


중요한 건 상징성이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뚫지 못한 성을 뚫어냈다는 것. 그것은 제국군에게 커다란 자극이었다.


다만 그 자극은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불러왔다.


“···어렵다는 건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마치 화목 성을 점령하는 걸 기다렸다는 듯, 제국에서 전해지는 보급선에서 연락이 왔다.


앞으로는 보급에 시간이 걸린다는 소리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막 점령한 곳에서는 생산이 불가능했고, 보급로는 길어졌다. 전보다 보급이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가이론 백작이 인상을 찌푸린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보급을 늘리기 어렵다는 말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군대가 멀리 나갈수록 보급은 커진다. 거리. 늘어난 호위. 비용 등을 따졌을 때 작게 여러 번 가는 것보다 큰 한방이 좋다.


물론 보급이 너무 많으면 걸음이 늦고, 빼앗겼을 때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등, 부작용도 존재한다.


그 균형을 잘 잡는 게 핵심. 그런데 양을 늘리지 못하겠다는 답변이 온 것이다. 이대로라면 진군에 불안감이 생긴다.


가이론은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잘 알았다.


‘다른 쪽의 견제로군.’


사실 제국군 전체를 보자면 세튼 백작가의 병력은 정말 보잘것 없었다. 대부분 20만 이상의 병력을 보유했으며, 둘 이상의 귀족가가 힘을 합쳤다. 기사단부터 시작해서 말단 병사까지. 압도적인 차이.


다만 그만큼 대병력이 모였기에 상대도 대병력을 갖추긴 했다. 그렇더라도 황실이 실질적으로 기대한 것은 다른 공격로 였다.


그 예상을 깨고 세튼가가 선전한 것이다.


다른 귀족들이 질투를 할 만도 했다. 황실도 이 이상은 곤란할 테니, 입을 다물 수 있다. 무엇보다 아슬아슬하게 이해할만한 범위의 방해라는 게 컸다.


“보급은 언제 더 늘릴 수 있지?”


“현재 황실에서 결과가 지지부진한 전선을 고착화하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는 보급이 줄고, 이쪽으로 넣을 걸 생각하면 대략 2~3달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의 가을이군.”


중세의 전쟁은 길다. 지구의 현대전이야 막강한 화력. 어마어마한 자원 소모로 인해 길게 이어가기 어렵지만, 중세의 보급이라 해봤자 식량과 소모품 정도다. 계절 용품을 고려해도 장기적인 보급이 가능한 것.


따라서 전쟁이 길어지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가이론 백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3개월 동안 이곳을 완전한 제국의 것으로 만들어 놓지.”


“제국의 빛냈다는 찬사를 얻게 되실 겁니다.”


사라지는 전령을 바라보며 가이론 백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찬사는 내 아들이 얻어야 할 몫이지.’


그는 더 이상 아들을 철부지로 보지 않았다. 혼자 여행을 하며 원하는 걸 얻어 오고, 성장한 뒤, 훌륭한 결과를 보였다. 당장 백작 위를 물려줘도 문제가 없는 인재. 그것이 가이론의 평가였다.


‘···보급 일도 알려줘야겠군.’


그는 막사로 글론을 불러들였다. 간부 회의 전에 먼저 아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






“슬슬 빠지시는 게 어떻습니까?”


“무슨 뜻이냐?”


성진은 보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단호하게 판단했다.


“아버지께서도 이번 일이 다른 귀족들의 견제 때문에 벌어진 거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물론이다. 황실에서도 눈감아 주는 부분이 있겠지.”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그런 홀대를 받아 가며 이곳에 남을 이유가 있습니까?”


“음.”


가이론 백작이 침묵했다. 이 상황에 대해서 홀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세세하게 따져보면 홀대가 맞다. 전쟁의 최고 공로자에게 더한 지원은커녕, 발목을 잡는 거니까. 다만 가이론 백작이 인식하지 못한 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귀족들의 방식에.


그러나 성진은 당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쯤에서 빠지는 게 가장 큰 이득이었다.


‘단물은 충분히 먹었다.’


화목 성이 방어의 중심지지만, 이후로도 이런 속도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무엇보다 세튼가의 활약이 너무 컸다. 앞으로는 엇비슷한 병력이 아니라, 압도적인 병력을 이겨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여태껏 피해를 억제해 왔던 게 무의미한 상황이 된다. 굳이 그럴 때까지 싸울 필요가 없다. 성진은 지금이 물러설 만한 최적의 타이밍이라 보았다.


“중앙에서도 전선에 서고 싶은 귀족이 많을 겁니다. 처음에야 지지부진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좋은 성과를 얻었으니까요. 다른 귀족과 자리를 바꾸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면목 상으로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저희가 참전한 이유는 명예의 회복. 그 목표는 충분히 이뤘습니다. 공도 충분히 세웠고··· 이젠 빠져서 적당히 결과를 먹는 게 최선입니다.”


“···황실에서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죠. 스크롤을 되파는 일이 없어질 테니.”


마법 스크롤은 전쟁을 위해서만 쓰기로 되어 있다. 쓰지 않은 스크롤은 되파는 게 계약. 뒤로 빼돌리는 것도 한두 장이 고작이다.


그런 스크롤을 인질로 잡아둔다. 황실의 입장에서는 건드리기 애매하리라. 직접 치자니 자기네가 잘못한 게 있고, 놔두자니 스크롤을 넘겨줄 순 없고.


귀족들은 양쪽으로 갈리거나 두고 볼 가능성이 높았다. 언제나 황실을 두려워하는 것이 제국의 귀족들이다. 유력한 귀족 후보와 싸우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적었다.


“···.”


가이론은 침묵했다. 그리곤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네 말대로 발을 빼는 게 좋겠다.”






새로워진 의사를 전령에게 전달했다. 최고 공로자가 빠지겠다는 말에 죽을 표정이 된 그는, 어떻게든 보급 부대를 닦달하겠다며 사정했다.


보급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성진은 그를 잘 타일렀다. 보급은 문제가 없으며, 가문의 목적을 이뤘기에 교대하는 거라고. 전령은 가이론 백작의 편지까지 받은 뒤에야 안심하고 돌아갔다.


그 후, 가이론 백작과 성진은 간부 회의를 열어 화목 성을 다스리는 걸 이야기했다. 교대하면 떠나갈 땅이지만, 적어도 세네 달은 있어야 한다. 통치를 소홀히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빠르게 불을 끄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후발주자가 고생 좀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하는 게 맞다. 여태껏 제국군이 밟아 본 적 없는 곳까지 공짜로 입성하는 거니까.


회의까지 끝나고. 성진을 비롯한 간부들은 조금 이른 시간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전날 밤새 전투를 치렀으니 당연한 일. 성진 일행은 화목 성의 관저. 동양풍의 목조 건물로 들어갔다.


어떤 적의를 감지하지 못한 채.






*


“···이제 어쩔 겁니까.”


화목 성이 공격당할 때. 그 자리를 먼저 벗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김정만을 중심으로 한 상급 무사들이다.


적의 공격을 막아주리라 기대하고 파견된 그들. 그러나 결과는 허무하게 성을 내줬다. 원수인지 뭔지 몰라도 한 방에 쓰러진 데다가, 그를 대피시키느라 수성에 도움도 되질 못 했다.


상급 무사들의 눈초리가 험악해진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김정만은 실실 미소를 흘렸다.


“충분한 성과를 얻었으니 괜찮아.”


“···성과? 암(暗)의 인원이 둘이나 당했는데?”


김정만과 함께 한 상급 무사들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제국의 수준으로 견줘 보자면 완숙한 숙련자. 3단에서 4단 사이의 정예 중의 정예다.


그런 이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김정만을 살리기 위한 것.


분노가 더더욱 끓어 올랐다.


하지만 김정만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물었다.


“그 글론이란 녀석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보였나?”


“···”


딱 한 문장. 그러나 무사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한 문장이었다.


“···그건 이상한 놈이야.”


처음 그들은 글론 세튼을 발견하고도 그게 긴장하지 않았다. 20살도 안 된 청년.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성진은 그것을 뛰어넘었다. 강렬한 번개를 뿜어내던 무기를 빼더라도 막기 어려울 정도.


경이로운 신체 능력. 무기를 맞대면 통째로 잘려 나간다. 실제로 한 명은 그렇게 죽었다.


“4단에 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맞다. 나도 쉽게 밀린 이유지.”


김정만이 몸을 일으켰다. 강렬한 전기가 휩쓸며 지나갔던 충격은 어느새 완치됐다. 숨겨놓은 목걸이를 빼서 상급 무사들을 치료했다.


“녀석에겐 두 가지 비밀이 있다. 그중 하나 흡혈귀라는 것.”


“뭣!? 그런 저주받은 괴물이 실존한단 말인가!?”


“녀석 말고도 다른 놈을 본 적도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종족이야. 문제는 이 흡혈귀란 놈들이 밤에 신체 능력이 두 배쯤 뛴다는 거다.”


“···그걸 믿고 새벽에 기습한 건가.”


상급 무사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김정만은 말을 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있다. 녀석이 끼고 있는 반지.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이지.”


“그것도 힘을 키워주는 건가?”


“맞지만, 그 이상의 능력이 있다. 걸려 있는 마법을 쓰면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상대가 안 되지. 잘만 쓴다면 달인 수준이다.”


“···그럼 이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무사 중 한 명이 이를 갈았다. 조국의 도움이 되겠다고 달려왔건만 무력하게 패배했다. 애초에 상대가 안 된단다.


무력감과 분노가 그들을 휘감는다.


김정만이 그들 사이로 희망을 던졌다.


“그 두 가지의 장점은 이제 쓸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지?”


그는 차분하게. 희열을 억누르며 답한다.


“가장 골치 아픈 건 반지의 마법이다. 능력은 총 세 가지. 그 중 한 가지가 방금 말한 것. 능력을 달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거다. 하지만 거기에는 약점이 있지.”


“약점?”


마치 함정에 빠진 쥐새끼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사용 대기 시간이 있다. 기준은 2주에 한 번. 녀석은 나와 싸우며 기능을 썼다. 확실하게 봤지.”


“···그렇다 하더라고 한가지 문제점이 남았다. 흡혈귀라는 특성. 지금 네 말투로 미루어보아 기습할 모양인데, 낮에 기습은 거의 불가능해.”


타당한 이론.


김정만은 자신의 목걸이를 흔들었다.


“물론 방법을 찾아왔지.”


그는 이전에 성진과 싸워봤다. 흡혈귀의 능력을 보곤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닫고 후퇴했다.


대책도 없이 다시 싸울 리 없다. 똑같이 패배할 테니까.


그는 아내에게 부탁해 흡혈귀의 힘을 억누를 방법을 찾아왔다.


“반경 150m에 부정한 것의 힘을 억누르는 신성 마법을 담아왔다. 이걸 쓰면 녀석은 더 이상 흡혈귀가 아니야. 겨우 초급의 숙련자에 불과하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는데. 효과는 보증할 수 있나?”


“한번 써 본 적이 있다. 아내와 함께 이종족들을 죽이는 임무였지. 다른 종족이면 모를까, 흡혈귀에겐 극약이다.”


김정만은 과거를 떠올린다. 자신의 아내와 동료들. 이젠 갈라선 노인과 함께였던 시절. 이종족들이 모인 회의장을 덮쳤다. 각기 다른 열 명의 이종족. 그들을 죽인 기억에는 흡혈귀도 있었다.


그때 똑똑히 봤다. 모여있는 이종족의 절반이 제대로 힘도 못 쓰는 걸. 그중 흡혈귀는 일반인에 가까울 정도였다.


“준비는 끝났다. 따라오란 말은 하지 않겠어. 나 혼자서라도 간다. 녀석만 죽일 수 있다면 나머지는 내 상대가 아니야.”


“···가이론 백작도 마찬가지인가?”


“녀석에게선 도망치겠지. 너희가 도와준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자잘한 상처가 모두 치료된 무사들이 입을 닫았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각오가 서려 있었다.


“결전은 내일 저녁이다.”


성이 함락된 시각. 한쪽 구석에서 이뤄진 은밀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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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8. 6장로.(2) +1 19.07.23 308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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