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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서리
작품등록일 :
2019.04.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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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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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4황녀.(2)

DUMMY

‘···이건 뭐지?’


4 황녀의 말을 들은 성진은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밀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귀족들의 눈빛을 보며 알게 됐다.


‘황가와 접촉이 있다는 표현인가.’


성진의 발언을 밀어준다. 그것도 결혼 적령기의 황녀가. 그것이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황실이 세튼 가문에 관심을 표하는 것이다.


아니. 그 정도로 착각하면 양반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한 명은 이미 세튼 가문과 황실의 결합까지 나갔다.


4 황녀의 노림수가 그것이었다.


장수를 떨어트리기 위해 말을 쏘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해자부터 메워가는 것. 비록 그것이 성진과 접점이 적은 귀족들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었다.


게다가 그걸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후작을 떼어 놓기 위해서라도 감수해야겠군.’


“제 생각으로는 벤젠 백작님의 말씀이 객관적이라 생각합니다.”


뿌득.


성진이 벤젠의 편을 들자 후작이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황녀를 모시던 사람들이 들어와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을 무작위로 선별해 물었습니다.”


그들은 전선에 있던 병사들의 입장을 물었다. 주변의 상황. 기세. 누가 활약하고 명령했는가. 정보를 종합한 황녀가 코웃음을 쳤다.


“아룬드 후작. 전장에서 다른 귀족을 모함하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 모르나?”


“그, 그건···”


“알고 있겠지. 후작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도 모르면 안 되지. 그러니 탄원을 요청했겠고. 편들어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판결받고 싶었겠지.”


정확한 판단. 그러나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귀족이란 명예와 자존심이 강한 놈들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후작이 부들부들 떨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당장 대들지 않은 건 한 가닥 남은 이성이 상대가 황족이란 걸 자각 시켰기 때문.


결국 그는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잘 해결된 모양이군.”


“감사드립니다, 황녀님. 황녀님이 아니었다면 큰 곤욕을 겪었을 겁니다.”


“황실의 자제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다. 그래도 은혜를 느낀다면··· 본녀가 그대들의 행군에 끼도록 해줬으면 한다.”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회의는 그걸로 끝났다. 백작과 자작은 행군을 위해 회의실을 나갔다. 성진도 나가려는 찰나.


“그대는 남아서 본녀와 이야기를 하지 않겠나?”


황녀가 그를 붙잡았다. 동시에 손짓으로 하인 한 명을 내보냈다.


“그대의 일행은 걱정하지 말아라. 방금 나간 이가 잘 전달해 줄 테니.”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원하시는 대로.”


사실상 퇴로를 봉쇄당한 성진이 회의실 테이블에 앉았다. 4 황녀는 양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수십 초간 말도 없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음.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내 취향이로구나.”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1 황녀 언니는 능력도 없고 운도 없어서 소국의 왕비가 됐지. 못 생기고 배 나온 남자에게 시집가는 걸 보며 나도 저렇게 되는 게 아닐까, 무던히도 걱정했었다.”


“그것참 심려스러우셨겠군요.”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운이 좋구나. 능력이 부족한 건 언니와 같은데, 운이 좋아서 꽤 마음에 드는 남자를 유혹하게 됐으니.”


“···실례지만, 황녀님. 너무 솔직하신 게 아닐지.”


적당히 맞장구치던 성진은 그녀의 솔직한 발언에 한마디 했다. 아예 대놓고 유혹하는 꼴이지 않은가. 아닐라와의 관계를 감추지 않았던 성진에겐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유혹이었다.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구설수에 오르기 좋았으니까.


4 황녀도 그 사실을 알았다.


“일부러 말하는 거다. 앞으로는 더 대놓고 할 것이고.”


“저는 아닐라라는 연인이 있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이 연인을 여럿 만드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 않나?”


“으음.”


성진이 침음성을 흘렸다. 아닐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반응을 보려 했는데, 꽤나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연인은 여럿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건 즉, 첩의 가능성도 생각했다는 소리다.


황녀의 입장을 따져보면 황실의 입장을 느낄 수 있는 수준.


4 황녀는 곤란한 성진의 표정을 즐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실에서 지원이 이어지는 동안, 같이 다닐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 하마.”


그리곤 회의실을 나갔다. 대놓고 유혹할 거라는 선전포고를 당한 성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황녀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득이 없단 말이지.’


4 황녀는 뛰어난 인재가 아니다.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모르겠지만, 고난물의 주인공으로서 도움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아닐라와의 관계를 망치기만 할 것이다.


당연히 거절하는 게 맞았다.


‘···상태창도 특별한 건 없고.’


4 황녀 마네모라. □도 없고 특출난 능력치도 없다. 원작에서도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주인공과 약간의 적대적 협력 관계라는 건 애매하기 짝이 없는 포지션이니까. 그에 걸맞은 희미한 개성과 위치로 몇 마디 나오고 사라지는 조연.


결혼이란 카드를 쓸만한 인재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의 입장만으로도 성진을 귀찮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땐 귀족이란 게 문제가 되는군.’


원작의 글론 세튼은 몰락 귀족의 떠돌이. 정치적인 부분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되면 떠날 준비를 했으니까. 물론 충돌할 때도 많았다. 고난물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어떻게든 이겨나가면서 강해지는 게 중심 내용이고.


그러나 지금 성진은 다르다. 귀족으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상황. 그냥 훌렁 버리기에는 좀 아까운 게 많다. 소설과는 다르게 귀찮게 얽힐 일을 피할 수도 있고.


그렇기에 황녀의 유혹이 부담스럽고 곤란했다.


‘어떻게든 떨쳐 내야지.’


성진은 황녀를 내보낼 생각을 하며 막사로 돌아갔다.






막사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한가지 예상된 상황과 한가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주쳤다. 예상된 건 일행이 행군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고, 예상치 못한 건 4 황녀 마네모라와 아닐라가 웃으면서 대치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얼이 빠진 그에게 오드가 달려와 물었다.


“스승님,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갑자기 저 여··· 아니. 황녀님이 오셔서 ‘글론 세튼과 헤어지세요.’라고 말하던데. 아닐라 누나가 저렇게 화난 건 처음 봤어요.”


“맙소사.”


이마를 쳤다. 마네모라의 행동력은 그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아니, 상식 외다. 아무리 황실이라 해도 연인 사이에 끼어들어 헤어지라고 강짜를 놓지는 않는다.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니까.


마네모라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건, 아닐라가 평민이기 때문이다. 황녀와 평민. 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아닐라가 일반적인 평민이라면.


“돈과 지위를 줘도 싫다라··· 더 큰 욕심은 본인에게 해가 될 텐데?”


“돈과 지위 때문에 그의 연인이 된 게 아니에요. 애초에 그깟 돈하고 지위 따위 내 힘으로도 얻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본녀보다 더 많은 걸 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반대로 잃게 하는 것도 많겠죠.”


“···사랑 같은 진부한 소리를 할 셈인가?”


“사랑은 기본이죠. 그 외에도 덤이 아주 많아요.”


“재미있구나. 구체적으로 들려주지 않으련?”


“본인이 더 잘 아실 텐데요?”


“···후후후.”


“호호호···.”


황녀 앞에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한다. 그 무례함을 따져야 할 주변 인물들은 이미 쓰러져 있다.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기들이 동강 난 채로 기절해 있으니까. 아닐라가 직접 처리한 것이다.


그렇기에 황녀도 말대꾸를 받아준다. 무력으로 상대가 안 되는 데다가 아닐라가 한 수가 있다는 걸 알아챘으니. 아마 앞으로 쉽사리 찍어 누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승님. 안 가세요?”


냐옹.


오드와 피온이 그 모습을 보곤 성진을 등 떠밀었다. 그는 정말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떨 수 없이 발을 뗐다. 서로 견제하고 있던 두 여성이 반색했다.


“글론! 어서 와요! 행군 준비는 끝냈어요.”


“이제 왔는가? 시간이 남는 것 같으니 차나 한잔 마시는 게 어떻겠나?”


“회의는 어땠어요?”


마네모라가 권유하는 걸 무색하게 만들려는 듯 아닐라가 팔짱을 끼고 자기 옆자리로 끌어당긴다. 4 황녀의 입술 끝이 삐죽삐죽 움직였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 생각대로 안 된다는 마음이 튀어나온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닐라의 능력은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이번 전장에서 좀 활약한 여성이 황실까지 제대로 된 보고가 갈 리 없으니. 가이론 백작과 성진의 활약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차는 괜찮습니다. 황녀님. ···무엇보다 타줄 인원이 없을 거 같군요.”


거기에 성진이 아닐라의 편을 들었다. 마네모라는 주변을 둘러보고 더 이상의 권유를 포기했다. 그녀의 시중과 호위를 담당하는 인원들은 이미 기절해 있었으니까. 최소 숙련자인데 안타깝게도 상대를 잘못 만났다.


“그렇게 하지. 얼굴 볼 일은 많은 테니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쓰러진 인원을 발로 툭툭 차서 깨우곤 사라졌다. 곧 행군이 시작될 테니, 한구석에서 좀 쉬다가 움직일 것이다.


“···대체 저 여자는 뭐예요?”


마네모라가 가라지자 아닐라가 한층 더 달라붙으며 물었다. 살짝 뾰로통한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귀여운 모습에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줬다.


“4 황녀 마네모라. 황실에서 지원 온 병력의 지휘관.”


“그럼 병력이나 지휘해야지 왜 여기로 왔죠?”


“밀명을 받은 모양이야. 나를 유혹하라고.”


아닐라의 눈동자가 동그래진다. 감추고 싶었지만,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이미 느끼고 있을 테니까. 오히려 솔직하게 답해주는 편이 나았다.


“아예 대놓고 유혹하겠다고 말하더군.”


“···. 저런 여자가 좋아요?”


“아니.”


“···.”


아닐라는 침묵했다. 그러면서 팔에 힘을 줬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끼며 기댔다. 성진이 속삭였다.


“난 저 여자 싫어. 아닐라가 좋아.”


뻔한 대답이었지만, 그녀를 안심시키기엔 효과적이었다. 긴장과 힘이 풀리는 걸 느끼며 한 번 더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엑.”


냐아옹.


느끼하다는 표정의 소년과 검은 고양이를 한손으로 내쫓으며 그대로 시간을 보냈다.






행군은 점심을 먹고 진행됐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병력이 이동하는 것보다 공성 병기가 움직이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경먹 성의 공략은 공성 병기에 달려 있었다.


다만 속도가 느리다 보니 군의 체력과 여유가 넘친 게 문제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진에게만 문제였다.


4 황녀 마네모라가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죠?”


“본녀가 어디 있을지 정하는 건 본녀 마음이다.”


“좋아요. 그건 인정하죠. 하지만 왜 글론의 팔짱을 끼고 있는 거예요! 당신과 글론은 그냥 군신 관계잖아요!”


“군신 관계에 팔짱을 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험··· 황녀님. 병사들 앞에서 이러는 모습은 저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대가 걱정할 건 없다.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매달린다는 데 무엇이 문제더냐.”


안하무인이라고 할까.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성진이 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달라붙는 게 안쓰러웠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굴욕이었다.


적어도 늙고 이상한 취향의 중년에게 첩으로 팔려 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녀는 나름대로 필사적인 것이다.


물론 성진과 아닐라에게는 민폐가 따로 없었다.


주변에 행군을 같이하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 미녀가 양쪽에서 팔짱을 끼는데, 나는 남자들 사이에서 걷고 있다니.’

‘귀족이고 황녀고 뭐고 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소한 문제를 품은 행군이 끝났을 무렵.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먹 성 앞, 세튼 가문의 병력과 합류했을 때. 전령이 성진에게 다가왔다.


“도련님. 백작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이유를 들었나?”


“그것이···”


전령이 힐끔 아닐라를 쳐다봤다. 해석은 쉬웠다.


아닐라의 부친. 김정만에 대한 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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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 편지들. +1 19.07.27 237 6 13쪽
101 101. 편지들. +1 19.07.26 236 9 12쪽
100 100. 잠깐의 귀향. +6 19.07.25 265 8 12쪽
99 99. 퇴각 준비. +3 19.07.24 255 9 13쪽
98 98. 6장로.(2) +1 19.07.23 274 8 12쪽
97 97. 6장로. +4 19.07.22 288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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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4황녀.(2) +3 19.07.19 296 12 12쪽
94 94. 4황녀. +2 19.07.18 307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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