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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서리
작품등록일 :
2019.04.01 17:47
최근연재일 :
2019.08.1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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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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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4. 제국 전진.

DUMMY

35만의 병사가 전진하는 모습이란 장관이 따로 없었다. 숫자로 따지면 겨우 몇 배지만,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압도적인 힘이 있었다.


후방 부대에서 그 모습 보고 있던 성진도 전율로 몸을 떨었을 정도. 오드는 감탄했다.


“우와··· 인간이 개미처럼 보이네요.”


말 그대로다. 성진은 현대인으로서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걸 몇 번 본 적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35만 명의 병사가 움직이는 걸 보진 못했다.


그것은 하나의 물결이었다.


그리고 물결은 벽과 충돌했다.


“···방금 충돌로 얼마나 죽었을지 상상도 안 되는데.”


공작이 내놓은 전략은 갈고리와 사다리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설치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성벽 아래로 가는 것만 해도 이미 무수한 노예병과 병사들이 죽은 상황.


물결과 벽의 충돌은 벽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돌격. 그러나 성진은 볼 수 있었다.


숫자가 성벽을 넘어서는걸.


“저게 사다리하고 갈고리로 넘어갈 수 있긴 하군.”


병사들이 꾸역꾸역 올라간다. 사다리는 수십 개. 가져온 것도 있고 만든 것도 있다. 성벽에 걸쳐진 것도 있으며, 넘어가 버린 것도 있다.


갈고리가 걸리면 안간힘을 쓰고 올라가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돌에 머리가 깨진다. 성벽 밑에 시체가 쌓여 벽을 올라가는 병사도 있었다.


궁수들은 연신 상대방 궁수들을 견제하며 활을 쐈다. 자신이 쏜 화살이 아군에 맞춰 죽이는 일도 비일비재. 그러나 사소한 일이다.


목숨이 갈려 나갔다. 성진은 그제야 자신이 제대로 된 공성전을 겪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국가 간의 전쟁. 사람을 통째로 갈아 넣는 공성전.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숫자였다.


“힘을 모아 사다리를 떨쳐라! 갈고리의 줄을 끊어라! 기름은 아직이다! 더 많이 모였을 때 부을 것이다!”


가이론 백작에게 부상을 안겨준 6 장로가 열심히 소리쳤다. 과연 수정룡 비루스의 능력으로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적들은 대단했다. 그러나 제국군에게 후퇴는 없었다. 애초에 공작의 연설에서 성을 함락시킬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 공약했다.


병사들은 필사적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전진하면서 적을 죽여야 했다. 적들은 한 몸처럼 움직였지만, 이쪽은 짐승처럼 움직였다. 자섬국의 병사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움직였지만, 제국군의 병사들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공격했다.


그들의 장점과 최대의 무기는 숫자 앞에 휩쓸렸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각.


경먹 성은 제국의 손에 들어왔다.






경먹 성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제국군이 피해를 안 본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면 힘 싸움으로 뚫었기에 훨씬 큰 피해를 입었다.


총 병력 35만. 그중 사상자가 3만. 중상자가 8만. 세튼 가문이 동원한 병력 이상의 군사가 무력화됐다.


그러나 공작은 개의치 않았다.


“중상자라고 해도 반 이상이 한두 달이면 제 몫을 하지. 남은 병력은 수비로 남기면 되고.”


그는 어떻게 해야 병사의 한계까지 뽑아먹을 수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경먹 성을 차지하고 정비하는 한 달간, 치료해서 괜찮은 장병은 데려가겠다는 소리였다.


이것은 치료가 편하기에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연금술사가 만든 포션은 싸고 효과가 좋다. 보통 중상자가 2~3달간 요양해야 할 부상도 1달로 압축할 수 있었다.


물론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등, 영구적인 상처는 치료할 수 없었다. 이런 이들이 수비를 맡게 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공략이 끝나고 정비하는 중. 성진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까뜨롱 가문의 장녀. 네일 까뜨롱이다.


“결국 찾아오지 않아서 내가 직접 오게 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이래 보여도 레이디다.”


“실례를 저질러서 죄송합니다.”


성진이 그녀를 찾아가지 못한 건 별것 아니었다. 그냥 바빠서 시간이 안 난 거다. 오자마자 회의에 참석하고 공작의 밑으로 들어가서 병력을 정비하고. 도무지 개인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지금도 병력을 온전한 대가로, 온 종일 성 내부 정리를 하고 온 길. 이후에도 보고서를 준비한 뒤, 내일부터 시작할 성벽 수리에 투입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사실은 네일도 알고 있는지, 조금 뾰로통한 표정 외에는 큰 불만이 없어 보였다.


“찾아오신 건 ‘그 일’ 때문이겠군요.”


천막은 소리가 잘 샌다. 대놓고 난쟁이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네일고 눈치로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으음. 당장 영지에 거래가 끊긴 건 아니지만···”


“더 큰 거래를 원하시는 모양이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격적인 거래가 하고 싶다.”


제국에서 난쟁이와의 거래는 정해진 상단만 할 수 있다. 개인이 개인용품을 사는 걸 막진 않지만(사기 어려우니까), 난쟁이들이 팔아 치우는 실패작은 꼭 공증 상단만 가능하다.


참고로 성공작은 황실에서 산 뒤, 경매품으로 나온다. 그나마 나오는 물건도 중하급 정도로, 정말 좋은 건 창고에 넣는다.


까뜨롱 가문이 원하는 건 공증 상단 수준의 거래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한 자루의 보도가 아니라 많은 병사가 쓸 양산품이었다.


난쟁이에게 실패작이라도 인간에겐 명품. 병사한테 들려준다면 순식간에 전력 증강이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팔아서 돈을 버는 방법도 있으리라.


일단 얻기만 한다면 유통하긴 쉬웠다. 까뜨롱 가문의 수많은 경매장이라면 세탁으론 안성맞춤이니까.


그러나 지금 거래량은 소량에 불과했다.


“운송 수단은 괜찮으신 모양이군요.”


“그 부분이 불안했다면 말도 걸지 않았겠지.”


즉, 조건은 준비됐다. 남은 것은 상대가 거래량을 늘리는 것뿐. 그걸 위해서 성진을 찾아온 것이다.


난쟁이가 그토록 찾던 사람이니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물론 성진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득도 없이 챙겨주고 싶진 않았다. 그는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마법 물품과 난쟁이에게서 얻은 물품 일부를 저희 영지에 원가에 팔아주십시오. 운송비와 명분은 저희가 만들겠습니다.”


“···황실에서 그대의 가문에 많은 주의를 기울인단 소리는 들었다. 너무 많은 양만 아니라면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난쟁이가 만든 물품 중에 하나를 이 전장으로 가져와 줬으면 합니다.”


첫 번째 조건은 알기 쉬운 내용이라 넘어갔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두 번째 조건에 고개를 갸웃하는 네일 까뜨롱. 그러나 성진은 답해주지 않았다. 아니. 알려줘도 믿지 않으리라.


누가 알겠는가. 이곳에 용이 있고, 그 용을 죽일 무기를 운반해 달라고 할 줄.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리하지.”


네일 까뜨롱은 의문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거래를 받아들였다. 썩 유쾌한 거래는 아니지만, 적어도 손해는 아니었다.


“이후로도 시간이 나면 종종 만나지 않겠나?”


“그러죠. 시간이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벼운 거래를 끝으로 네일과 헤어졌다. 용을 잡을 무기가 뭘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후작가에서 운반한다면 여러 가지 위험은 사라질 것이다. 난쟁이 마을은 거리가 있고, 백작가는 여유가 없으니 괜찮은 선택이었다.


‘나라면 중간에 빼돌리는 것도 알 수 있고.’


그는 고민을 끝내고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한 달 동안은 공작 밑에서 쉴새 없이 일해야 했다.






경먹 성의 공략은 제국에게 의미가 컸다. 적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알 순 없지만, 제국의 힘을 이길 순 없다는 것과, 드디어 자섬국의 속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만 공작 군에도 고민은 있었다.


“6 장로란 녀석을 잡지 못한 게 크군.”


경먹 성의 지휘관인 6 장로를 잡는 데 실패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수의 무사도 데리고 후퇴한 상황. 게릴라의 가능성이 있는 만큼 골치가 아팠다.


“군을 뭉쳐서 천천히 전진하는 것이···”


“그럼 가장 먼저 관문을 뚫은 의미가 없지. 세 갈래로 나눠서 전진한다.”


경먹 성을 넘어 드러난 자섬국의 속살은 꽤 컸다. 당장 세 갈래면 충분하지만, 뒤로 갈수록 부족할 것이다. 결국 진행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공작은 욕심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병력으로 가능한 많은 곳을 차지하길 원했다.


“적어도 1/5은 완벽하게 점령할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나쁘지 않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아슬아슬했다. 다른 것보다도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반항할 수 있다는 게 제일 골치였다.


거기에 달아난 6 장로까지.


성진이 입을 열었다.


“공작 님의 말씀대로만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들도 반항을 할 겁니다. 특히 가장 먼저 관문을 넘어섰으니, 장로들의 집중 타격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후퇴할 기준을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으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군. 하지만··· 있을 수 있겠어.”


공작은 자신이 원하는 최소한의 범위를 밝혔다. 1/10. 성진이 보기엔 여차하면 무너질 선이지만, 공작에겐 최대한의 양보였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전진 방향을 고르는 곳에서 가이론 백작과 함께 바닷가를 지원했다. 안전한 방향이지만, 한편으론 미지수가 가득한 바다. 제국인 중에서는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도 허다했다.


그들은 고민하다가 성진과 가이론 백작에게 후방을 넘겼다.


편한 곳을 차지한 성진은 콧노래를 부르며 준비했다. 설정을 생각하면 상대방의 전략이나 공격 방식을 알 수 있으니, 편한 전쟁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귀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속살이 왜 속살이라 불리는가. 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작의 군대가 자섬국을 파먹으리라 생각했다.


그 상상이 깨진 건 열흘 뒤였다.






제국군의 진군은 단순했다. 전진. 공성. 정복. 자섬국의 속살이라고는 하나 성은 있다. 그 성을 차례차례 함락시키며 나아가는 게 제국의 방식이었다.


각 군은 처음 성을 점령했을 때, 일이 아주 쉽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반항은 있었지만 너무나 약했고, 유약한 성주들은 항복하거나 자살했다. 자섬국의 국민들은 불만 있는 표정으로 그들을 받아들였다.


우려하고 있던 반항은 미약했다. 특히, 알 수 없는 기술을 썼던 6 장로를 생각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국군은 그들이 후방에서 대비한다고 판단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주민과 병사들이 밤사이에 병사가 되어 제국군을 기습했다. 성벽을 포기한 병사들이 일반 민가에 숨어든 것이다.


첫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밤사이 큰 승리를 거준 자섬국은 다시 성을 탈취하여 방비를 갖췄다. 이번에는 모든 주민이 함께 움직였다. 경먹 성에서 봤던 그 전략이 또다시 펼쳐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을 피해간 사람도 있었다.


‘상태창이 정말 좋군.’


혹시 암살자라도 있을까 싶어서 주민에게 상태창을 열어본 결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정룡 비루스에 의해 감정이 증폭된다는 걸.


성진은 모든 주민의 말소를 선택했다. 공작의 병사가 극도로 저항했지만, 집 한 채에 불을 지르자마자 조직적으로 대항하는 모습에 식겁하며 창을 내질렀다.


그렇게 성진은 도시 하나를 완전히 말소시켰다. 당연히 다음부터는 그냥 조직적인 저항이 튀어나왔다. 그들과의 전투는 치열했으며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런 다른 제국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쨌든 승리했다. 제국의 병력과 힘은 겨우 일개 소국이 감당할 만한 게 아니었다.


4개월. 어느새 완연한 여름이 된 시절.


자섬국은 영토의 1/5만 남겨놓은 상태가 됐다.


작가의말

원래 성진이 상태창 보는 걸 넣을 생각이었는데... 전쟁이 늘어지고 길어지는 느낌이라 조금 앞당겼습니다. 이제 곧 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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