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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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4
최근연재일 :
2019.07.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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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글자수 :
30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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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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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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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모이다

DUMMY

우빈이 한창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쯤 수연은 지훈이 준 무전기를 품에 감춘 채 아지트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녀 역시 큰불이 날 뻔했다는 말에 달려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룸메이트가 지나가는 말로 ‘네 침대 어딘가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던데’라고 했다. 지훈에 대한 일은 청소년 대학 안 누구에게도 비밀이었다. 어차피 정오부터 10분 동안밖에 연락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간은 방 안에 숨겨두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지훈이 급한 일로 연락했는데 룸메이트가 방에 와 있기라도 하면? 대체 이 커다란 걸 어디에 숨기면 좋단 말인가. 그녀는 아지트 코앞까지 왔지만 망설이다 결국 다시 방으로 내려왔다.


매트리스 속에 넣어서 낮에는 베개랑 이불을 그 위에 올려놓으면 소리가 거의 안 날 거야.


그런데 하필이면 층계를 다 내려가기도 전에 수연은 우빈과 마주쳤다. 그녀는 무전기를 겉옷 속에 숨기고 팔짱을 낀 채였으나 우빈이 반가워하며 가까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뒤로 한발 뒤로 물러났다.


“아지트로 가자.”


수연은 당황했다.


“지금?”


“여기선···”


그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끊임없이 살폈다.


“음, 그럼 그냥 말할게. 긴 얘기도 아니니까. 우리가 속인 걸 들켰어. 그 애들에게···”


우빈은 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정, 보, 원, 이라고 말했다. 수연은 조금 놀랐다.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빨랐다.


“그 정도밖에 못 버틸 줄은 몰랐는데.”


“알아. 내가 바보짓을 좀 했거든.”


우빈은 두 손으로 양 관자놀이를 감싸 쥐며 낮게 신음했다. 그러나 그의 잘못은 아니다. 적어도 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제 몫을 다해줬다. 이제 그녀가 나설 차례였다.


“다들 아지트로 모이게 해.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시차를 두고.”


수연이 차분히 말하자 우빈의 표정도 한결 침착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우빈이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잽싸게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 무전기를 숨기고 아지트로 올라왔다. 곧 아이들이 하나둘 위로 모였다. 그들 중 수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자 남우와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아이들이 전부 모이고 수연이 이름을 말했을 때 대다수가 ‘아, 그 홍수연···’하고 반응한 이유도 거기 있었다.


“그럼 남우 형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른 거야?”


성민이 질문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천천히 아지트에 모인 아이들을 한 명씩 둘러보았다. 우빈을 빼면 총 다섯 명이었다. 장미, 성민, 청소 담당인 아이, 식사담당인 아이, 그리고 경비대원까지. 모두 남우와 사이가 데면데면한 아이들이었으며 연구동에서 밤낮없이 진행되고 있을 식물 괴물에 관한 연구에는 접근 권한이 없었다. 수연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계획에 없던 상황이지만 계획에 있던 것처럼 보이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그녀와 우빈이 원래 손에 넣고 싶어 했던 그림은 오히려 이런 것이었다. 남우라는 매개체 없이 직접 뭉치는 것.


“식물 괴물에 잡혀간 어른들의 행방 말이야. 남우 오빠는 자기 선에서 모든 게 정리되기 전까지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야. 그 생각에는 다들 동의하지? 관련된 질문만 하면 그 위원회 얘기만 하잖아.”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응, 그렇지, 라고 대답했다. 그중 한 명이 그런데 누나랑 남우 형은···하며 또 연애 관련 질문을 ‘꺼낼 뻔’ 했지만 우빈 이 그 아이를 째려보았다.


“내 가설을 말해도 될까. 다만 이 얘긴 다른 데선 한 적 없는 얘기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어. 겁이 나는 사람은 이 아지트 밖으로 나가 줘.”


그 말에 경비대원과 급식담당인 아이가 아지트를 빠져나갔다. 장미, 성민, 그리고 청소 담당인 또 다른 아이는 아지트에 남았다. 마지막 아이의 이름은 이소예였다. 수연은 그들의 눈빛에서 의지를 보았다. 아마도 그들이 아끼는 어른들 때문이리라. 그녀는 목을 가다듬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나리오에 나오는, ‘식물 괴물에 잡힌 살아있는 어른들을 제거하려 한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빈이 노트북으로 자료화면을 제공해 주었다. 수정되기 전 첫 번째 시나리오. 그것을 백지단이 정말로 실행하려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백지단에 가게 된 계기를 얘기할 때는 우빈이나 그들에게 마찬가지로 ‘우연한 계기’라고 둘러댔다. 지훈에 대해 털어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는데’, 식물 괴물에게 잡아먹힐 뻔한 것을 남우가 구해줬다고 했다. 모든 설명을 마치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조우빈이 남우 오빠에게도 얘길 해 봤어. 확실한 증거 없이 말하지 말라면서 들어주지 않았대. 나는···나랑 조우빈은 백지단이 큰일을 벌이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속여서 미안해.”


아이들은 잠시 각자 생각에 잠겨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사람은 장미였다.


“그럼 앞으로 어쩌고 싶은 거야?”


수연은 바로 그 질문을 누군가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내 계획은 크게 세 가지야. 하나는 항체 보유자를 백지단에서 빼낼 것. 두 번째로 치료제 개발법을 알아낼 것. 마지막은 어른들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찾아낼 것. 최종적으로는 항체 보유자의 도움으로 치료제를 만들어서 어른들에게 투입하는 게 목표야.”


“여기에는 백신 얘기도 있는데.”


성민이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아, 난 백신은 이미 개발 중일 거라 생각해.”


우빈이 말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리자 그는 부담스러운 듯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여기 시나리오에도 나와 있지만 높은 확률로 우리도 보균자일 거란 말이야? 그럼 백신을 맞아야 우리가 성인이 되어도 괴물한테 잡혀가지 않겠지. 백지단이든 우리든 백신은 꼭 필요하다는 뜻이야. 당연히 개발 중이겠지."


“다들 모이라고 하긴 했지만 내 계획에 무조건 함께하자는 얘긴 아니야. 솔직히 지금도 혼란스럽고 무서워, 단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더 무서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장미가 말했다.


“하지만 김남우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얘길 해야겠다. 너희가 말한 건 전부 추정에 불과하단 것.”


수연은 뜨끔했다. 장미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말을 이었다.


“다만 조금 미심쩍은 부분은 있어. 네가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인데 김남우가 모를까? 그 사람 평소 성격을 보면 백지단을 그냥 놔뒀을 것 같지 않은데 멀쩡하게 세력만 키워 가고 있잖아. 거기다 항체 보유자도 그쪽에 있다며?”


“그러고 보니 백지단 관련 얘기를 누가 꺼냈다가 화내는 걸 본 적이 있어.”


소예도 한마디 했다.


“그거 나였을 거야. 사실 한번 말해본 적 있거든.”


장미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럼 우선 남우 형부터 조사해 보는 거야? 지금 뭔가 수상해 보이기 시작했어.”


성민이 말했다. 우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네. 물론 조사 중인데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어. 어떻든 간에 상황 돌아가는 걸 파악하기에 남우 형을 직접 조사하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지. 그럼 형이랑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 정보를 빼낼 만한 사람이 필요한데.”


네 아이의 시선이 일제히 수연을 향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여기 모인 아이들 중 그녀가 남우와 가장 친한 건 사실이었다.


“알았어. 어떻게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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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월~금 아침 7시 30분 연재합니다. 19.04.08 110 0 -
73 외전 - 죽은 이의 이야기 19.07.08 102 1 9쪽
72 에필로그 19.07.05 82 2 8쪽
71 살아줘 19.07.04 70 2 9쪽
70 화승총(花勝銃) 19.07.03 66 2 8쪽
69 모두 모이다 19.07.02 81 2 7쪽
68 그들의 싸움 19.07.01 276 2 9쪽
67 내막 19.06.28 78 2 8쪽
66 비밀 선물 19.06.27 69 2 8쪽
65 행운은 적에게 19.06.26 68 2 10쪽
64 각자 행동하다 19.06.25 64 2 7쪽
63 심장에는 혼자만 19.06.24 74 2 9쪽
62 꼭대기로 19.06.21 112 2 8쪽
61 맹수 19.06.20 70 2 7쪽
60 어느 편 19.06.19 82 2 9쪽
59 민우 19.06.18 66 3 8쪽
58 거대한 나무로 19.06.17 94 3 8쪽
57 준비 19.06.14 87 3 8쪽
56 합작 19.06.13 82 3 7쪽
55 협박 19.06.12 76 3 7쪽
54 지키기 위한 선택 19.06.11 86 3 7쪽
53 1+1=? 19.06.10 48 3 7쪽
52 감정의 방향 19.06.07 62 3 8쪽
51 살인 동기 19.06.06 65 3 8쪽
50 녹음 19.06.05 63 3 8쪽
49 완성 19.06.04 62 3 8쪽
48 영웅 19.06.03 70 3 9쪽
47 다른 비밀? 19.05.31 57 3 9쪽
46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1 19.05.30 71 3 9쪽
45 위로와 소망 19.05.29 60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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