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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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4
최근연재일 :
2019.07.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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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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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심장에는 혼자만

DUMMY

세마디 회원들은 동료가 줄어든 것을 슬퍼할 틈이 없었다. 식도의 높이는 약 20m였다. 스포츠 클라이밍 종목에서도 15m가 최대 높이인데 그것보다 5m 높았다. 게다가 이들은 이미 25m 높이의 위 내벽을 등반한 후였다. 물론 수직으로 25m는 아니고 식도에 비하면 완만한 경사였으며 중간중간 기댈 곳이 있으면 쉬었지만, 그걸 고려해도 실로 엄청난 높이였다.


초록빛 여자, 즉 남우의 누나가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정신이 되돌아오진 않았지만 '수연을 도와야 한다'는 명령어만큼은 확실히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지, 수연이 주춤할 때 식도 벽 안으로 녹아 들어간 다음 수연의 밑에서 다시 나와서 그녀를 받쳐 주었다.


덕분에 다음 '지진' 때 손이 미끄러진 회원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버텨낼 수 있었다. 꼭대기에 도달하자 기본적으로 지치지 않는 초록빛 여자를 제외하고 멀쩡한 사람은 모루뿐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완전히 뻗어버렸다. 각자 허리에 찬 권총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50m야."


우빈이 올라온 지 10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헐떡이며 말했다.


"지금까지가?"


"우리가 올라온 게. 이 위로도···한참 더 뭐가 있을 거야···이 나무는···"


그는 말하다 말고 아주 오랫동안 기침을 하고 헛구역질도 했다. 그의 인생에서 이토록 운동을 많이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시청이나 청소년 대학에서 그 많은 건물을 제치고 보일 정도면···그렇지만 저 분 말로는 여기가 꼭대기라고 했어. 그렇다면 이 위에는 일반적인 층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게 있을 수도 있겠군."


수연의 말에 지쳐서 잠이 든 줄 알았던 정이 눈을 반짝 떴다.


"다른 거···어른들···?"


"아마."


"다들 무사하면 좋겠다."


정이 말하자 수연과 우빈은 서로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처치된 식물 괴물의 내장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죽은 어른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구도 정에게 굳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몇 달은 지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되리라.


대화가 끊기고 회원들은 다시 휴식을 취했다. 수연도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정이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누나."


"응···?"


"누나, 모루가 없어."


정의 말에 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급하게 움직이자 두통이 느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손한 자세로 서 있는 초록빛 여자, 그녀와 약간 떨어진 곳에 누워 있는 우빈, 그리고 그녀를 깨운 정. 모루는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심장으로 먼저 내려간 건가?"


"그럼 우리도 빨리 내려가자. 식물 능력도 못 쓰는데 모루 혼자 어떻게···"


대포 소리가 반고리관을 흔들었다. 꼭대기 어딘가에서 철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 나는 방향엔 구멍이 나 있었다. 방금 충격으로 떨어진 게 무엇인지 알아차린 수연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게 만든 밧줄과 밧줄 끝에 연결된 갈고리가 구멍 안쪽으로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안 돼!"


두 번째 대포 소리는 처음보다 컸다. 순간 꼭대기 층의 벽에서 초록색 인간이 둘이나 튀어나왔다. 민우와 지훈이었다.


"나 엄마 아빠를 만나고 왔어."


민우가 말했다.


"찾아주느라 고생 좀 했지. 너희들이 곯아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겠지만 어쩌겠어."


"지훈 씨. 모루가 어떻게 됐는지 보고 와 줄 수 있겠어요?"


수연이 다급하게 물었으나 지훈은 그녀의 질문을 못 들은 척 수연의 다른 동료들을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모루가···!"


"그 앤 이제 너희가 생각하는 모습은 아니야."


지훈의 말에 정이 벌떡 일어났다.


"모루는 이 나무의 심장과 완전히 합쳐졌어. 너희라면 아마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겠지. 그냥 그 애가 심장에 손을 대니까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어. 마치 그러기로 약속한 것처럼 말이야! 이제 곧 어른들도 풀려나고,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의 몸에서도 바이러스가 파괴될 거야. 이젠 상관없는 일이니 너희한테도 말하는 거지만, 난 이 바이러스와···깊게 관련된 프로젝트 문서를 읽었어. 모체가 제거되면 자폭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


정이 지훈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모루가···엄마를···!"


지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나도 그 애가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한 건 알아. 하지만 자기 의지로 뛰어든 애를 말릴 생각은 없다. 어떻게 보면 그 소원도 지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아직 성인들이 풀려나지 않았고, 모루도 나무 일부가 됐으니까. 너넨 너네 걱정이나 해. 백지단이 나무 앞에 와 있어. 서둘러 탈출하면 목숨은 건질 거다."


그는 이번엔 수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뜻대로 어른들이 돌아오게 됐군. 축하한다."


수연은 그를 보고, 회원들을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웃음을 머금고 있는 남우의 누나를 보았다.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난 이쯤에서 빠진다.”


지훈이 말했다.


“슬슬 준연이가 걱정돼서 안 되겠어. 백지는 이 틈에 그 앨 확실하게 공범으로 만들 셈이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수연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고, 민우를 보다가 그의 오른쪽 이마에 뭔가 꽂힌 것을 발견했다. 총알이었다.


“이민우, 그건 뭐야?”


“지훈 형이 알려준 거야. 머리에 상처를 낸 채로 다니면 정신을 차릴 수 있대. 어차피 난 죽었잖아? 흉터가 남을 걱정 같은 건···안 해도 되고.”


민우는 말하면서 또 조금 울먹였다. 정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말을 들은 수연과 우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초록색 여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동의도 받지 않고···”


“우리가 처음 머리에 충격을 줬을 때도 동의는 받지 않았잖아.”


수연은 허리에 찬 권총을 뺐다. 그리고 정확한 조준점을 잡기도 전에 쏘았다. 여자가 달아나려는 낌새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총알은 가까스로 그녀의 왼쪽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 벽을 뚫었다. 여자는 정신이 돌아왔다. 그녀의 귀에서는 아무것도 흐르지 않았고 타격을 받았다는 낌새도 없었지만, 옷은 낡고 몸 군데군데에 상처가 나 있었다. 특히 목에 난 선명한 자국. 수연은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자국이었다.


그렇다면 사인은 질식사인 걸까. 눈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실례지만···


수연은 생각했다. 여자는 자초지종을 듣고 그녀의 머리에 정확하게 겨냥해서 한 번 더 발사해달라고 했다. 총알이 박힐 정도로만 먼 거리에서. 날카로운 물건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총알을 세 발이나 낭비하고 나서야 성공했으므로. 그래도 덕택에 여자가 계속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아깝지 않았다. 여자는 회원들이 모루가 심장에 혼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하자 놀랍게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용감한 꼬마예요. 내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우리같이 죽은 사람들의 사고는 이 거대한 나무에 갇혀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모루가 심장에 뛰어들었으니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지요.”


“그 애를 원래대로 돌릴 방법은 없는 건가요.”


수연이 물었다. 여자는 눈을 찌푸렸다.


“모르겠군요. 난···난 더는 그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낼 수가 없어요. 보이는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에게 전달할 수는 있지만. 혹시 이 나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모루는 어디 있어요?”


“혈관 안에.”


여자와 민우가 동시에 대답했다. 여자는 민우를 보더니 그처럼 어린 소년이 초록빛 몸뚱이를 한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그 애가 완전히 흡수되긴 했지만 죽은 것 같지는 않아.”


민우는 말했다.


“그래요. 어쩌면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되살아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여러분이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느냐 하는 거예요. 저 무리가···”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까요?”


“아무래도요.”


수연은 민우를 시켜 소예, 장미가 무사한지 알아보고 가능하다면 성민이 어디에 있는 지까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그 뒤 정과 우빈, 초록빛 여자까지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새로운 계획을 짤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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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월~금 아침 7시 30분 연재합니다. 19.04.08 110 0 -
73 외전 - 죽은 이의 이야기 19.07.08 102 1 9쪽
72 에필로그 19.07.05 82 2 8쪽
71 살아줘 19.07.04 70 2 9쪽
70 화승총(花勝銃) 19.07.03 66 2 8쪽
69 모두 모이다 19.07.02 81 2 7쪽
68 그들의 싸움 19.07.01 276 2 9쪽
67 내막 19.06.28 78 2 8쪽
66 비밀 선물 19.06.27 69 2 8쪽
65 행운은 적에게 19.06.26 68 2 10쪽
64 각자 행동하다 19.06.25 64 2 7쪽
» 심장에는 혼자만 19.06.24 75 2 9쪽
62 꼭대기로 19.06.21 112 2 8쪽
61 맹수 19.06.20 70 2 7쪽
60 어느 편 19.06.19 82 2 9쪽
59 민우 19.06.18 66 3 8쪽
58 거대한 나무로 19.06.17 94 3 8쪽
57 준비 19.06.14 87 3 8쪽
56 합작 19.06.13 82 3 7쪽
55 협박 19.06.12 76 3 7쪽
54 지키기 위한 선택 19.06.11 86 3 7쪽
53 1+1=? 19.06.10 48 3 7쪽
52 감정의 방향 19.06.07 62 3 8쪽
51 살인 동기 19.06.06 65 3 8쪽
50 녹음 19.06.05 63 3 8쪽
49 완성 19.06.04 62 3 8쪽
48 영웅 19.06.03 70 3 9쪽
47 다른 비밀? 19.05.31 57 3 9쪽
46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1 19.05.30 71 3 9쪽
45 위로와 소망 19.05.29 60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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