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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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4
최근연재일 :
2019.07.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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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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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038

작성
19.07.0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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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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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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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에필로그

DUMMY

따뜻하고 조금 바람이 부는 오후다.


수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정원. 병원 옥상에 있는 이 정원에는 잘 다듬어진 정원수 이외에 크고작은 화분들도 놓여 있었다. 통일성을 조금 해치기는 한다. 그래도 색이 알록달록해 나쁘지는 않다.


그녀가 과자를 다 먹고 일어서는데 맞은편에서 준연이 걸어왔다. 그는 얼굴이 약간 핼쓱해져 있었다. 수연이 푹 쉬는 동안 그에게도 여러 일이 많았다.


그렇다. 여러 가지 일이 많았었다.


식물에 사로잡히거나 삼켜진 어른과 아이는 전원 풀려났다. 자유가 된 어른들은 땅 깊숙이, 곳곳에 숨겨져 있던 뿌리로부터 풀려나 정처없이 세상을 헤맸다. 그들에겐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신원이 확실한 누군가가.


말할 것도 없이 청소년 대학이 대표가 되었다. 그들이 모든 걸 설명했다. '이들이 진실을 말하진 않았'을 것이라 예측하겠지만, 다행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모든 게 끝나고 세마디는 두 팀으로 나뉘어 백지단이 쓰던 지프에 올라탔다. 한 팀은 환자들을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른 팀은 곧장 청소년 대학으로 갔다. 청소년 대학으로 가는 팀에는 우빈이 속해 있었다. 수연은 환자였지만 우빈과 함께 청소년 대학 쪽으로 가기로 했다. 준연도 이쪽이었다.


그들은 온갖 상황을 걱정했다. 어쩌면 도착하자마자 총알을 선사받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을 가둬 놓고 각종 상황에 대한 책임을 돌릴 지도.


그러나 막상 청소년 대학에 다다르자 그들이 본 것은 여름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익어가고 있는 남우였다. 그는 살아있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우에게도 일을 맡겼지만 그 일을 햇볕 아래서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주은과 윤서를 포함한 다른 청소년대학미래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남우를 몰아냈다. 그들은 이제 회장을 뽑지 않았다. 회장이 없어도 대학은 제대로 돌아갔다.


세마디는 위원회에게 진실을 말했다. 위원회는 진실을 받아들였다. 그들에겐 남우를 숙청했다는 증거가 있었으므로 손해는 아니었다. 윤서는 수연을 안았다. 수연이 말했다.


"너한테 아무 말 안 해서 미안해."


"네가 뭘 하는 지 내가 알았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다 말했을걸! 괜찮아. 어서 상처부터 치료해."


그러나 상처는 당장 치료할 수 없었다. 아직 병원에 의사와 간호사가 도착하지 않았다. 청소년 대학 보건팀은 다친 채 식물 연결망으로부터 풀려난, 더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를 하느라 바빴다.


도무지 순번이 올 것 같지 않자 준연은 수연에게 함께 지아에게 가자고 했다. 그녀는 약간의 의료 지식이 있었고 거의 별관에 머물렀기 때문에 다른 백지단원들은 그녀를 잘 몰랐다.


과연 지아는 혼자 있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얻은 뜻밖의 소득은 그녀에게 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보도 잔뜩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외장하드에 정리해 두었다.


수연은 준연이 지아와 함께 지내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지아가 준연을 챙기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준연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가 살짝 물으니 지아는 웃었다.


"그 애는 내 동생이거든요. 이부형제? 그런 말을 쓰던데."


임지아의 본명은 임우희로, 임지아란 이름은 본래 백지단에 있던 죽은 인물인 '허지아'와 그녀가 닮았기 때문에 백지가 붙인 이름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마음대로 부르도록 두었다. 이런 집단에서 자신을 드러내봤자 이득될 게 없다고 여겼으므로.


우희는 이전부터 어머니가 바깥으로 나도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를 거의 죽일 뻔한 준연에게 흥미가 생겼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네 험담."


"아."


"농담이야. 아무튼 몸조심해. 지금은 무법 지대나 다름 없잖아, 다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계절은 가을과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었다.


수연은 '무법 지대' 시기를 무사히 넘겼으며 청소년 대학이 어른들에게 그녀의 공을 말해준 덕에 1인실에서 남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연은 이런 대우가 민망했다. 그녀는 영웅이 아니었다.


준연을 포함한 백지단 출신들은 모두 조사를 받고 법정에 출두해 송백지에 대한 증언을 해야 했다. 계획이 실패한 마당에 좋은 말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백지단에서 그를 털끝만큼이나마 괜찮은 인물로 묘사해준 사람은 너무 어려 상황 판단을 거의 못하는 아주 어린 아이들 외에는 최도환뿐이었다.


그조차도 이젠 이 일에 회의감이 드는 상태였다. 그는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이념과 달리 세마디 회원을 발견해 피떡으로 만들어야 했던 상황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가 민우를 때리지 않았다면 민우는 호랑이 때문에 죽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난 호랑이는 그냥 운이 나빴던 거라 생각하지만."


준연이 수연과 함께 하늘정원을 걸으며 말했다.


"나도 그건 맞다고 봐. 호랑이잖아. 너 모루 찾아가 봤어?"


"아니, 이제 가려고. 왜?"


"그럼 나랑 같이 가. 오늘 다들 갈 거 아니야. 정은 매일 찾아간대."


정은 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보다도 모루를 더 자주 만나러 갔다. 모루는 더는 외롭지 않았다. 정은 그녀에게 힘이 되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보다 덜 울게 되었다.


"와."


모루는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식물 괴물이 나타난 시기 동안 그녀와 가까워진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면회를 온 것이다. 원래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모루에게만 특별히 허용되었다. 그들이 오늘 모인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모루의 생일이었다. 모루는 태어나서 한 번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선물을 하나씩 주었지만, 모루가 가장 좋아한 건 정이 준 액자였다. 그 안엔 그녀와 정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들어 있었다. 모루는 병에 차도를 보였고,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살기로 결심했다. 그 소식에 가장 기뻐한 건 역시 그녀의 어머니였다.


"아. 홍수연. 이제 너 뭐 할 거야."


파티를 마치고 나오는데 준연이 수연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보육원 원장님께 가보려고."


"그, 아! 그럼 잘됐다. 언제 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준연은 바지 주머니에서 혈액 주머니를 꺼냈다. 수연은 그걸 마지막으로 본 지 백만 년은 된 것 같았다. 안에는 로켓이 달린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수연이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들이 안식처에서 헤어졌을 때의 일이었다.


"계속 이 상태로 들고 다닌 거야?"


"응. 아니. 매일 들고 다니진 않아. 오늘 너랑 만날 걸 알고 가져온 거야."


그는 거짓말에 서툴렀다. 그의 귓가가 달아오른 게 보였다.


"늦게 줘서 미안해."


"미안하면 밥 사."


그 말은 충동적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준연은 눈을 한 번 깜빡이고, 싱긋 웃었다.


"좋아. 내일은 어때."


수연에겐 이제 로켓 목걸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긴 했지만. 그전처럼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준연이 병원을 나서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거기 머물러 있었다.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았지만 우선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이야기의 끝을 넘겨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며, 그들에겐 이제부터가 시작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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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월~금 아침 7시 30분 연재합니다. 19.04.08 110 0 -
73 외전 - 죽은 이의 이야기 19.07.08 103 1 9쪽
» 에필로그 19.07.05 83 2 8쪽
71 살아줘 19.07.04 70 2 9쪽
70 화승총(花勝銃) 19.07.03 66 2 8쪽
69 모두 모이다 19.07.02 81 2 7쪽
68 그들의 싸움 19.07.01 277 2 9쪽
67 내막 19.06.28 78 2 8쪽
66 비밀 선물 19.06.27 70 2 8쪽
65 행운은 적에게 19.06.26 68 2 10쪽
64 각자 행동하다 19.06.25 65 2 7쪽
63 심장에는 혼자만 19.06.24 75 2 9쪽
62 꼭대기로 19.06.21 112 2 8쪽
61 맹수 19.06.20 70 2 7쪽
60 어느 편 19.06.19 82 2 9쪽
59 민우 19.06.18 66 3 8쪽
58 거대한 나무로 19.06.17 94 3 8쪽
57 준비 19.06.14 87 3 8쪽
56 합작 19.06.13 82 3 7쪽
55 협박 19.06.12 76 3 7쪽
54 지키기 위한 선택 19.06.11 86 3 7쪽
53 1+1=? 19.06.10 48 3 7쪽
52 감정의 방향 19.06.07 62 3 8쪽
51 살인 동기 19.06.06 65 3 8쪽
50 녹음 19.06.05 63 3 8쪽
49 완성 19.06.04 62 3 8쪽
48 영웅 19.06.03 70 3 9쪽
47 다른 비밀? 19.05.31 57 3 9쪽
46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1 19.05.30 72 3 9쪽
45 위로와 소망 19.05.29 60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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