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혼무적 - 흑룡이 봉인된 검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대체역사

한온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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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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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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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5화 - 뇌천대

DUMMY

“으아앗!”


괴명성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흥건한 땀으로 옷이 축축했다. 그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의 풍경이 낯설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 곳이 군막 안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일어났군. 악몽이라도 꾸었나?”


막사의 입구를 열며 노인이 들어왔다. 강감찬이었다. 그는 의자를 끌어 괴명성이 누운 침상 옆에 앉았다. 그를 본 괴명성은 망연자실하여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꿈은 무슨. 어서 현실을 자각하게나.”


강감찬이 핀잔을 주자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악몽의 한 가운데 서 있음을.


“큭.”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화끈하고 쩌릿한 통증이 속을 쑤셨다. 괴명성은 가슴을 움쳐 쥔 채로 강감찬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뇌리 속에 자신을 강타하던 강감찬의 손바닥이 떠올랐다.


“그건... 뭐였죠?”


“그거라니? 뭐 말인가?”


“저를 강타했던 장법... 대체 어떻게 사람의 손에서 벼락이 뿜어질 수 있는 거죠?”


“클클클. 굉뢰장(轟雷掌) 말이군.”


“굉뢰장... 그게 어제 저를 날려버린 무공의 이름인가요?”


“그래. 뇌천강문의 무공 중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장법이지. 어제 자네가 맞은 건 굉뢰장의 삼 초식 중 두 번째 초식인 지옥굉천뢰(地獄轟天雷)였네. 내 성명절기라 할 수 있지.”


지옥에서 터져 나와 하늘을 떨어 울리는 벼락. 과연 그 이름처럼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굉뢰장에 맞았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가슴을 뜨거운 불칼로 헤집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뜨겁고 강렬했던 그 느낌!


괴명성은 새삼 강감찬의 힘을 실감했다. 누가 그를 예순이 넘은 노인으로 볼 것인가. 그런 자가 있다면 발바닥으로 따귀를 백 대쯤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진행하도록 하지. 서류와 절차는 모두 해결해뒀으니 바로 떠나면 되네.”


“떠나다니 어디로 말이죠?”


“멍청한 질문이군. 당연히 자네가 ‘새로’ 배치 받은 부대로 가야지.”


“으윽.”


가슴이 열 배는 쓰렸다. 그는 부들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을 찾았다. 시원한 물이락도 마셔야 답답한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목이 마른가 보군. 자, 여기 있네.”


강감찬이 손수 물을 따라주었다. 괴명성은 그가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릇을 든 괴명성의 두 손이 내미어졌다.


쪼르륵.

빈 그릇에 물이 채워지는 소리가 막사에 울려 퍼졌다.

꿀꺽꿀꺽.

천천히 물을 마신 괴명성이 잔을 입에서 뗐다. 타는 갈증이 조금 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다른 부대로 가는 건가요?”


그의 물음에 강감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마침내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나 보군. 좋은 자세일세. 암, 발버둥을 쳐도 바뀌지 않는 사실을 외면해봤자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지.”


강감찬이 계속해서 그를 놀렸지만 괴명성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감찬은 꿋꿋하게 괴명성을 약올리기를 계속했다. 그의 얼굴에 무척 자애로운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재입대를 축하하네, 괴명성.”




“뇌천대라.”


괴명성은 강감찬의 명령에 따라 뇌천대를 찾아 가는 중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뇌천대는 서경에 있다고 했다. 괴명성은 별수 없이 개경에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정말 대단한 결심을 하셨군. 사문의 전력과 비전을 내놓다니 말이야. 근데 내가 꼭 거기로 가야 하나? 듣자하니 창술을 쓰는 기병대라고 하던데. 광풍패를 완성시키려면 차라리 보병이 더 나을 것 같은데. 헤유, 내 팔자야.”


뇌천대는 강감찬이 자신의 문파인 뇌천에서 뽑은 사람들을 하나의 부대로 만든 일종의 별무반(別武班)이었다. 특이하게도 사병을 정식 군대 내에 편입시킨 것이다. 거란의 침략이 계속되고 있는 비상상황이 아니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려가 멸망 직전까지 갔던 거란의 2차 침입에서 유일하게 항복이 아닌 피난을 주장했던 강감찬은 거란의 3차 침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전쟁이 끝난 후 강감찬은 그 어떤 것보다 군사력의 강화와 나성의 축조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거란의 기병들을 이길 비장의 수로 무림인으로 구성된 기병대를 구상했고 수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당연하게도 별무반의 구성과 훈련 등 모든 권한과 책임은 강감찬에게 주어졌다. 강감찬은 대규모 부대가 아닌 정예화된 부대를 원했고 결국 자신의 사문인 뇌천의 무인들로만 별무반을 구성하게 되어다. 그래서 그 별무반의 이름이 뇌천대인 것이다.


강감찬은 별무반을 만들기 위해 뇌천강문의 구성원 3할을 투입했다. 150여 명의 뇌천강문 사람이 뇌천대를 이루었고 이후 150명을 더해 총 300명으로 이루어진 별무반인 뇌천대가 창설되었다.


뇌천강문의 주무기는 창이었고 창은 활과 함께 기병대의 주요 병기였다. 뇌천대원은 뇌천강문의 절기인 뇌전경혼창(雷電驚魂槍)을 군용으로 간소화시킨 뇌혼창(雷魂槍)을 익혔다. 뇌천대야말로 거란과의 일전에 대비해 강감찬이 심혈을 기울여 키우고 있는 비밀부대기에 당연히 뇌천대의 대장 역시 강감찬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고 또한 뇌천강문의 무공을 익힌 고수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뇌천대의 대장은 강민첨. 강민첨은 2차 고려-거란 전쟁 때 거란의 총공세로부터 서경을 지켜내어 그 이름을 떨친 용장이었다. 그는 수나라 문제의 30만 대군과 싸워 임유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명장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이었다. 강이식은 수나라와의 전쟁 당시 고구려 최고 사령관인 병마원수(兵馬元帥)였다. 뇌천강문의 무공은 강이식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의 직계 후손인 강민첨이 뇌천강문의 무공을 익힌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괴명성은 서경에 도착한 후 강감찬이 알려준 길을 따라 뇌천대의 비밀훈련소를 찾았다. 그는 강감찬의 명을 받고 왔기에 간단한 확인절차만 거친 후 곧바로 뇌천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혹시나 곽주성에서처럼 신분확인에 실패해 쫓겨나서 재입대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다는 기대 따위는 허무하게 흩어져버렸다. 강감찬은 괴명성의 꼼수에 당할 정도로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괴명성의 새로운 군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그 시작은 뇌천대의 대장인 강민첨과의 대립이었다. 괴명성은 부대에 도착한 첫 날부터 강민첨과 날을 세웠다. 대립의 원인은 광풍패였다.


“뇌천대에 들어온 이상 창을 배워야 한다.”


첫 인사를 받자마자 강민첨이 던진 말이었다. 당연히 괴명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군대에 온 이상 광풍패를 완성시킬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리석고 어이없는 말을 당돌하게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부대의 대장에게. 그것이 괴명성의 꼬인 군생활의 시발점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광풍패를 쓸 겁니다. 그게 제 무기니까요.”


괴명성의 말은 들은 강민첨과 부관들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했다. 감히 탈영으로 잡혀온 놈이 부대에 들어오자마자 지휘관의 말에 항명하다니. 아니, 저런 놈이기에 탈영을 했겠지. 이런 생각을 하던 부관 한 명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새파란 신병 놈이 항명이라니!”


“그럼 신병이 아니면 항명해도 되는 건가요?”


“뭐, 뭐라? 이 미친놈이...”


뒷목을 부여잡고 열을 내는 부관을 무시한 채 괴명성이 강민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무병은 그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개인 무기를 사용하는 걸 허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괴명성이 하는 꼴을 지켜보던 강민첨은 그의 반박이 가소로운지 냉소를 지었다.


“그 말이 맞다. 여기가 일반적인 부대라면 말이야. 허나 이 곳은 뇌천대. 모든 부대원이 무공을 익힌 무병들로 구성된 별무반이다. 별무반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특별히 조직된 최후의 비밀부대. 때문에 모든 병과 중에서도 최강인 기병으로만 이루어진 부대이며 전쟁에 가장 적합한 무기인 창을 쓴다. 또한 가장 파괴적인 무공인 뇌천강문의 무공을 익혔고 말이야. 이곳에서만큼은 무공을 익혔다는 게 특별대우를 받을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소리지.”


자부심이 깃든 강민첨의 말에 괴명성이 울컥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장 강한 무공이 뇌천강문의 무공이라는 말은 동의할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이 강감찬의 일수에 패배하긴 했지만 그건 자신의 역량과 경험의 부족 때문이지 결코 무공의 수준 차이 때문이 아니라고 여겼다. 어느새 괴명성은 본래의 목적을 잊고 감정에 휩쓸리고 있었다.


강민첨은 노련한 장수이며 무공의 고수. 괴명성의 생각 정도는 진즉에 꿰뚫어보고 있었다.


“강감찬 행영병마사께서 천둥벌거숭이를 보내셨군.”


그가 괴명성의 오만함에 철퇴를 내리치기로 결심했다.


“곽주성에서야 몇 명 되지 않는 무병 개개인이 비밀병기의 역할을 한답시고 따로 움직였겠지. 그러나 뇌천대는 부대 자체가 고려가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한 수다. 군대는 홀로 강한 건 의미가 없어. 구성원들 전체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움직인다. 군대에서 개개인의 역량보다 중요한건 일치단결과 일사분란한 움직임. 헌데 네놈 혼자 자신만의 무기를 쓰겠다고? 천만에. 뇌천대에, 군대에 예외란 있을 수 없다.”


강민첨은 일체의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괴명성 또한 쉽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강민첨에게 강한 반발심이 생겼다. 그는 삐뚤어진 음색으로 퉁명스레 내뱉었다.


“이제 와서 제가 창을 익힌다고 해봤자 얼마나 제대로 익히겠습니까? 어설픈 실력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만 될 텐데요.”


“잘 아는군. 그러니 너는 잠잘 시간을 줄여서라도 창술을 연마해야 할 거다. 개죽음 당하기 싫다면 말이야. 뇌천대는 창기병대니까.”


울컥. 개죽음이라는 말에 괴명성은 발끈하고 말았다.


“흥. 창술을 익히지 않아도 제가 광풍패를 쓴다면 개죽음 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강민첨의 부관이 당장이라도 그를 베어버릴 태세로 검을 잡았다.


“이 건방진 놈이 보자 보자하니까 정말 끝을 모르고 날뛰는구나.”


“장군, 당장 이 놈을 베어 부대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합니다.”


괴명성은 그들의 과격한 반응에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의 강함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확실하게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광풍패를 쓴다면 강감찬을 상대할 때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 병마사께서 직접 보낸 놈이다. 섣불리 죽이는 건 그 분의 뜻을 그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손을 들어 부관들을 제지한 강민첨이 괴명성을 노려보았다. 강민첨의 몸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벼락의 기운이 괴명성의 전신을 압박했다. 괴명성은 저도 모르게 광풍패의 끈을 움켜쥐고 있었다.


강민첨의 눈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그의 입에서 싸늘한 말이 흘러나왔다.


“건방지기 짝이 없도다. 병마사의 일장을 맞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쯧쯧쯧. 장군께서는 항상 너무 관대하셔서 탈이시지. 내 너에게 자신의 분수를 일깨워주겠다. 어디 그 광풍패라는 걸 가지고 힘껏 덤벼 보아라.”


이렇게 해서 괴명성은 재입대를 하자마자 부대의 지휘관과 한바탕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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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화 - 뇌천대를 떠나다. 19.07.17 115 0 12쪽
53 53화 - 재도전 19.07.04 142 0 12쪽
52 52화 - 설죽화의 깨달음 19.07.03 126 0 12쪽
51 51화 - 인연 19.07.02 104 1 11쪽
50 50화 - 살수2 19.06.27 120 0 11쪽
49 49화 - 살수 1 19.06.26 123 0 12쪽
48 48화 - 설죽화2 19.06.25 144 0 11쪽
47 47화 - 설죽화 19.06.20 132 1 11쪽
46 46화 - 강민첨 19.06.19 135 1 12쪽
» 45화 - 뇌천대 19.06.18 164 2 12쪽
44 44화 - 노인의 정체, 그리고... 19.06.13 159 3 13쪽
43 43화 - 탈영병 괴명성 19.06.12 150 2 13쪽
42 42화 - 개경에서 19.06.11 158 1 12쪽
41 41화 - 이별 (2) 19.06.06 181 0 12쪽
40 40화 - 이별 (1) 19.06.05 166 0 12쪽
39 39화 - 심의원 19.06.04 166 0 13쪽
38 38화 - 월명회와의 혈투 (2) 19.05.30 179 1 11쪽
37 37화 - 월명회와의 혈투 (1) 19.05.29 176 0 12쪽
36 36화 - 다시 만난 은나운 +1 19.05.28 185 0 12쪽
35 35화 - 전쟁이 끝난 후 19.05.23 203 0 12쪽
34 34화 - 은랑의 최후 19.05.22 200 1 11쪽
33 33화 - 구리가라검의 비밀 19.05.21 183 0 11쪽
32 32화 - 멸문 19.05.16 182 0 12쪽
31 31화 - 낭림산의 무병들 19.05.15 177 0 11쪽
30 30화 - 진광과의 첫 만남 19.05.10 178 2 12쪽
29 29화 - 애전전투, 고려군의 의혼 (2) 19.05.09 177 0 12쪽
28 28화 - 애전전투, 고려군의 의혼 (1) 19.05.08 194 0 12쪽
27 27화 - 양규장군 19.05.07 177 1 14쪽
26 26화 - 곽주성 탈환 19.05.06 20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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