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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
작품등록일 :
2019.04.01 21:15
최근연재일 :
2019.04.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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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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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참군인 (1)

DUMMY

“실장님. 말씀하신대로 지시 해두었습니다.”

“그래.”

“근데 실장님....”

“뭐.”

“저기.. 괜찮겠죠?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이중구가 신문에 눈을 꽂은 채 무심히 대답했다.


“응.”

“아 예.... 그래도 좀 걱정이....”

“겁나?”

“아닙니다.”

“문제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

“예, 알겠습니다.”

“가봐.”


강배신 차장이 나갔다.

이중구 감찰실장은 피라미드를 방문한 고위 공직자 40명에 직원들을 배정시켰다.

3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신원조사는 감찰실이 아닌 다른 국의 권한이지만.


갈림길에 선 이중구는 고민 끝에 오른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조금만 내딛자.

아니다 싶으면 뒤돌아 돌아와, 다시 왼쪽으로 가자.


“오 대리. 취조실에 진 과장 앉혀놔.”



*



텅 빈 방, 시계도 없이 그저 커다란 거울 하나가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철제책상에 의자 하나, 반대쪽에 의자 두 개.

취조실은 그렇게 적막했다.


“나 알지?”

“예....”

“야위었네.”

“저.... 내규 상 감찰기간은 한참 지나지 않았습니까?”

“맞아.”

“언제 끝납니까.”

“끝났어.”

“....”


이중구가 담배 하나를 꺼내 진 과장에게 건냈다.


“난 그냥 물어보러 온 거야.”

“다 진술했습니다.”

“오피셜 말고. 니가 처음 만났을 때 분위기가 이상했다며.”

“거짓말 아닙니다.”

“그러니까 말해봐.”


진 정보관은 감찰실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했고, 이중구는 그런 그를 끝까지 배려해줬다.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진 정보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중구.

취조실을 나오니 육사 선배이자 과거의 상관에게 전화가 와있었다.



*



늦은 저녁 남한산성 기슭, 조용한 찻집.

장관직을 물러난 전 국방장관 장수호와 육사 후배인 이중구가 차를 마시고 있다.


“장군님, 적적하지 않으십니까.”

“장군은 무슨. 이 사람아. 아직도 그렇게 부르나?”

“제가 모실 때 소장이셨으니, 제겐 언제나 장군님이십니다.”

“됐네. 이제 예비역 노인네니 편하게 대해.”


찻잔에서 올라오던 김이 사라질 때 즈음 어렵게 입을 연 장수호.


“중구야.”

“예.”

“너는 외계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이중구가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뜸을 들였다.


“허허. 제가 뭐, 그런 거 신경 쓸 자리에 있습니까. 집안 단속만 해도 정신없습니다.”

“오랜만에 동기끼리 인사 나누어라.”


다다미 문이 열리고 육사 동기 이재찬이 들어왔다.


한 시간 뒤,

찻집의 물레방아가 회전을 멈췄다.

다른 방에 불이 모두 꺼지고 주인이 문 닫을 준비를 했다.


“장군님, 그럼 살펴 들어가십쇼.”

“그래, 옛날처럼 언제 청계산이나 한번 오르자고.”


전 국방부장관 장수호 예비역 대장이 떠나갔다.

잠시 후 이중구와 이재찬이 서로 반대 방향을 보며 걸어 나왔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그들, 이중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눌러 있다가 별 하나는 달아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게 말이다.”

“그러게가 아니고 임마....”

“그냥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해.”

“뭘 못 들은 걸로 해!”

“니 관할도 아니잖아.”

“아니지. 내 관할이기도 하지.”

“간다.”


이재찬이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나가고, 한참을 운전석에 앉아 고민하던 이중구.

예비역 대장과 대령이 나타나서 흥미롭던 삶의 여유를 빼앗아 버렸다.

지금이라도 돌아가 왼쪽으로 가야 하나.

복잡한 마음에 담배를 문 채, 강배신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보다 더 안절부절 못하는 강배신 차장의 목소리가 차안을 채워갔다.



***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작곡한 치고이네르바이젠.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는 제법 어려운 곡.

진아의 연주는 서툴렀지만 내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다.

연주를 마치고 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말없이 샤워실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나왔다.


“에이~ 뭐야 오빠. 재밌는 거 좀 틀어봐.”

“왜, 재밌잖아.”

“대선 토론이 뭐가 재밌어. 진짜 이 아저씨야~~~”

“너도 삼십대 되면 뉴스랑,”


진아가 입술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달콤함

촉촉함

따스함

모텔의 은은한 조명아래 키스 소리가 얌전히 퍼져간다.

그녀가 내 다리 위로 올라와 앉아 장난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무거워?”

“어, 엄청.”


진아와 나.

우리는 얼마 전부터 사귀기로 했다.

남녀가 벽을 깨고 친해지기는 쉽지 않지만, 한번 가까워지면 그 속도는 멈출 줄을 모른다.

남자가 여자를 구해주고 여자가 반한다는 레파토리.

진부한 스토리일수록 발현률은 높았다.


“오빠. 불 꺼줘.”


우리는 TV에서 나오는 대선 토론 소리를 뒤로 한 채 서로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선거 전 마지막 대선 후보자 토론을 시작합니다]

다섯 명의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

장덕근은 TV앞에서 완벽하게 표준어를 구사하는 기염을 토했다.

토론은 후보자들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했다.


“저, 주만기. 대한민국 실업률을 잡고, 모두가 상생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희망입니다. 모든 후보가 실업률을 잡는다고만 하지,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김희망은 실천 방안을 정책으로 구상해 실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네, 용무소. 무소속입니다. 그래서 당론이니 정치 논리니,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민생안전과 행복사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 장덕근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여당의 수장으로서, 전 대통령님을 보좌하지 못한 점 역시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경제, 살리겠습니다. 실업, 잡겠습니다. 임금, 올리겠습니다.”


“저는 일 안해도 살 수 있게 해드릴게요.”


외계인의 강공.


“마의 후보자에게 질문 드립니다. 요즘 사회에서, 피라미드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이상해졌다. 뭐 그런 얘기가 돌고 있는데요. 뭐 우리 가지고 실험하고 그런 건 아니죠?”

“네. 실험할만한 유전자는 아니라서요.”


“김희망 후보자가 질문 드립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뭐, 백인종의 기원이다. 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셨다는데요.”

“그런데요.”

“확인도 안 되는 이야기 막 한다고, 그게 진짜인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그거 이용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거 아니요?”

“이해하려고 하지 마요.”

“여기는 철저하게 후보자 자질을 검증하고 증명하는,”

“좋아요.”


외계인 마의가 박수를 쳤다.

후보자들 뒤에 ‘제 26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라고 써진 패널이 하얗게 변했다.

곧 어느 외국 노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익숙한 인물이죠? 갈릴레오 갈릴레이.”


다시 장면이 바뀌며, 화려한 강당에 수많은 성직자들이 나타났다.

그중 한 근엄한 노인이 이탈리아어로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하자 마의가 동시 통역사처럼 통역 했다.


-피고는 약속을 어기고 금서인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지지했습니다. 피고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확인할 수 없는 사실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교황을 모독했습니다.

-이에 본 검사성성은 피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유죄를 구하는 바입니다.


“고령의 나이로 갈릴레오의 재판은 궐석으로 진행됐어요. 여기가 포인트라고 전 생각해요.”


방청석에서 어느 성직자가 크게 소리쳤다.

-그 놈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는 미친놈이요!


또 다른 성직자가 맞받아쳤다.

-어렸을 때 한 번도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본 적 없나 보군.


방청객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1633년, 이 일도 역시 우주로 뻗어 나갔지요. 좀 덜떨어지지만 이 정보를 받은 문명이 있는데, 한동안 코메디 프로에 사용되었어요.”


곧, 다른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1992년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이 재판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했어요. 갈릴레오가 죽은 지 350년 후에요.”


패널이 다시 ‘제 26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문구로 돌아왔다.


“김희망 후보자.”

“예?”

“겨우 철봉에 거꾸로 메달린 경험 가지고 지구가 평평하네 뭐네, 그런 소리 할 거야?”

“아....”

“그러고 한 350년 뒤에 후손 시켜서 사과하게?”

“....”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지 마요.”


김희망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요! 그래서 제가 왔잖아요. 도와드릴게요!”


마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덕근 후보자가 질문합니다.”

“네, 좋아요!”

“모두가 일을 안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하셨는데. 나라에서 모든 걸 지원해준다는 이야기인가요?”

“구상중이에요. 비슷할 거 같네요!”

“부의 균형. 모두가 똑같이?”

“아아, 무슨 의도인지 알겠어요. 시장경제를 부정하냐고요?”

“뭐,”

“네.”

“부정한다고 했습니까?”

“네!”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네요.”

“그래요?”

“우리 헌법은,”


“화폐 자체를 없앨 계획이에요.”


이후에도 토론회는 마의를 상대로 한 장덕근의 외로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김희망과 용무소는 후보자 등록 기탁금을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토론을 하던 그 시각.

동해, 서해, 남해에 거대한 구조물이 생겼다.

형태는 정십이면체.

웬만한 제철소 다섯 개를 합친 크기였다.


각 당에서는 ‘민생안정’, ‘살리자 경제’,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 ‘외계문명심판’ 등 익숙한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거리를 점거하고 있었다.


반면 개혁시대당은 모든 행정구역에 현수막 하나씩을 내걸었다.

「무인공장가동대기중」



***



한편, 사회에서 한창 선거 열기가 치솟는 동안 경기도에서는 26명의 사람들이 수상한 행적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도 시흥의 어느 폐공장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창문은 모두 검은 페인트칠로 막아 두었고, 국군 위장 천으로 덮여진 것들이 벽면에 가득했다.

곧, 철문이 열리며 들어온 세 명.

전 국방부장관 장수호, 예비역 대령 이재찬, 젊은 소위.


“모두들 어려운 결정 해줘 고맙다.”


23명의 사람들이 대열을 맞추고 장수호의 앞에 섰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모두들 철저히 보안 유지하고.”


다양한 부대 출신의 군인들.

모두들 최근에 전역한 군인들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라.”

“없습니다!”


퇴역 군인들이 입을 맞춰 대답했다.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후배들이 이 길을 걸을 것이라 믿는다. 군인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자유인 신분으로 돌아온 우리다. 역사가 우리를 비난하더라도, 여기 모인 26명만큼은 그 진의를 알아줄 것이다.”


장수호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재찬 예비역 대령이 마저 브리핑을 시작했다.


“선거일 새벽에 다시 모인다. 그때까지 되도록 집안에서 시간 보내고. 지금 시간부터 새롭게 합류하는 인원은 없다. 모두들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브리핑이 끝나자 군인들이 흩어져 분주하게 마지막 마무리에 들어갔다.


“장군님. 왜 이중구에게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필요하니까.”

“이중구 믿습니까?”

“믿지.”

“사람은 누구나 변합니다. 젊은 시절 우리가 아는 이중구가 아니면 어떡합니까. 아쉬울 것 없고 잃을 것 많은 중년이 다 버리고 우리 편에 서겠습니까?”

“자네도 그래서 퇴역 했잖아.”

“저는 군인입니다.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삽니다.”

“우리 다 한 때에는 군인이었지. 자네 말처럼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 모습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지 않겠나.”

“혹시라도 잘못되면 다른 24명의 청춘도..”

“중구는 그럴 놈이 아니야.”



*



폐공장 밖, 한 사람이 벽에 붙어 이야기를 듣다 공장을 떠났다.

제법 멀리 이동해 전화를 걸었다.


“예, 실장님. 장수호. 이재찬 다 있습니다. 예. 확인했습니다. 선거일 새벽에 다시 모인다고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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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hapter 2. 모던보이 (2) 19.04.18 13 1 13쪽
19 Chapter 2. 모던보이 (1) 19.04.17 21 1 13쪽
18 Chapter 1. 복벽주의 (2) 19.04.16 22 1 12쪽
17 Chapter 1. 복벽주의 (1) 19.04.15 27 1 12쪽
16 Chapter 1. 만남 (3) 19.04.12 36 2 12쪽
15 Chapter 1. 만남 (2) 19.04.11 35 0 12쪽
14 Chapter 1. 만남 (1) 19.04.10 38 0 12쪽
13 Chapter 1. 새로운 몸 19.04.09 55 0 13쪽
12 Chapter 1. 참군인 (2) 19.04.08 51 1 12쪽
» Chapter 1. 참군인 (1) 19.04.07 62 0 12쪽
10 Apocrypha 1. 백인종의 기원 19.04.06 76 0 13쪽
9 Chapter 1. 뇌 19.04.06 82 0 13쪽
8 Chapter 1. 탄핵 (2) 19.04.05 88 0 11쪽
7 Chapter 1. 탄핵 (1) 19.04.05 89 0 11쪽
6 Chapter 1. 피라미드 19.04.04 112 2 12쪽
5 Chapter 1. 간웅 (2) 19.04.03 149 3 12쪽
4 Chapter 1. 간웅 (1) +4 19.04.02 178 2 12쪽
3 Chapter 1. 그들 (2) +1 19.04.01 202 3 11쪽
2 Chapter 1. 그들 (1) 19.04.01 261 3 11쪽
1 프롤로그 19.04.01 275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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