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제국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최근연재일 :
2019.07.31 21:32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120,911
추천수 :
2,088
글자수 :
472,916

작성
19.04.26 23:06
조회
1,714
추천
29
글자
10쪽

제4장 - 왕의 길 - 1

DUMMY

길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지만,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노란 풀들이 곳곳에 자라기 시작한 길을 한참동안 지나갔다.

2시간쯤을 그렇게 나아가자 결국 길은 노란 풀잎들로 모두 덮여버렸다.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그러나 도적, 아니 왕국군의 일행들은 능숙하게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상단과 헤어진 후에 레이진이 바로 이들의 정체를 알려주어 베네크와 오든은 오해를 풀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안감은 여전했다.

로렌은 그대로 아리오스가문의 이름만으로 그들, 외지인을 본진의 아지트로 데려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풀잎들은 무성해지고, 길은 험해졌지만, 그럼에도 풀잎으로 덮인 벌판을 지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풀잎들은 거친 말발굽과 수레바퀴가 지나친 후에는 다시 살아나 듯 일어나 지나온 길의 남은 흔적을 모두 지웠다.

오든의 설명으로는 계절이 넘어가면 풀잎들은 사람의 키만큼 높게 자란다고 하니 그때는 더욱 분간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마치 누군가를 보호하듯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한 시간 쯤을 더 나아가자 드디어 풀잎들이 걷히고 거대한 호수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제야 로렌이 입을 열었다.


“이곳이 일차 관문입니다.”


센달까지 이틀의 여정이 남아있었으니, 센달과는 제법 가까운 거리였다. 공왕이 있는 라이프스와도 넉넉히 열흘 정도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인데, 이런 곳에 왕국군이 숨어있었다니.

거기다 이정도 크기의 대형 호수라면, 이곳 주위는 제법 알려진 곳일 텐데, 배짱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위의 관경을 쓸어보는 레이진의 곁으로 마차에서 내린 줄리어가 다가왔다.


“언제 봐도 아름답군요.”


“줄리어님께서는 이곳에 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레이진의 질문에 줄리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이맘 때 쯤에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질 테니.”


줄리어가 고갯짓으로 레이진의 발밑을 가리켰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왠지 물이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로렌이 레이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이곳은 바다처럼 물이 빠집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호수 중간에 위치한 저희의 지부는 적으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지요.”


금세, 어린아이의 키만큼 물이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 푸른 대리석 모양의 둥근 원판의 구조물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저 멀리 낮아지는 수위를 따라 조그만 돌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 그곳에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로렌이 붉은 깃발을 들어 흔들자, 돌섬 위에서도 누군가 같은 색의 깃발을 흔들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푸른색 대리석 위에 붉은 불빛이 잠시 맺히더니, 둥근 원기둥모양으로 불빛을 뿜으며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위로 붉은 색 마법사 로브를 입은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녀오셨습니까?”


인사를 건네는 마법사에게 로렌이 고개를 숙여 답례를 보낸 후에 레이진을 소개했다.


“네르넨 경, 이분이 아리오스의 가주이신 레이진 덴 아리오스공작이십니다.”


왕에게 정식으로 공작의 서임을 받지 못했으니 공작이라는 호칭은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로렌은 레이진을 그렇게 소개했다.

잠시 레이진을 바라보던 마법사 네르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 소공자. 나를 기억하겠소?”


레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언젠 뵈었는지요?”


“부친, 아리오스 공작님의 마흔 아홉 번째, 생신 때 만나 적이 있지요. 소공자가 그때 열 살쯤이었으니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저는 그때 거의 견습마법사나 다름이 없었지요. 바우안스 후작님과 함께였고.”


“아! 바우안스 후작님과 계셨던 마법사님이셨군요.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때 모인 사람이 천명은 되었을 터, 날 어찌 기억하겠습니까. 우선 들어갑시다. 잠시만 더 기다려주시오.”


소탈한 성격의 네르넨이 다시 돌아서 하얀 동판위에 섰다. 마법지팡이를 들고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 주문을 외우자 그의 주위로 다시 붉은 기둥이 솟아오르며 이내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한 뼘쯤 더 수위가 내려갔을 때, 멀리 보이는 돌섬에서 기계음이 들리더니 돌섬의 뒤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서히 커지는 그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였다.

돌섬 건너에 있던 나무다리가 천천히 앞으로 기울어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길이가 족히 30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나무다리가 180도로 펴져 일행이 서 있는 곳으로 넘어왔다.


쿵!


지축을 울리며 다리가 바닥에 고정되었다.

로렌이 레이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몰아 앞장섰다.

그 뒤를 레이진과 리를리안가의 마차와 챠우들이 끄는 수레가 차례로 지나갔다.

돌섬 위에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 네르넨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일행들을 반겼다.

돌섬에 다다르자, 돌섬의 건너로 다시 지금 넘어왔던 나무다리의 두 배는 됨직한 다리가 놓여있고, 그 끝에 거대한 크기의 섬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높은 성벽이 둘러 쳐진 웅장한 모습이었으나, 그 모습이 어쩐 일인지 호수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다리를 모두 건너자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사람이 손을 흔든다.

그리고 굳게 닫혔던 성문이 열렸다.




“와....”


오든의 입에서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섬의 모양을 따라 높은 성벽이 둘러쳐진 섬에는, 듬성듬성 나무로 된 오두막들과 그 주위로 잘 정비된 경작지들이 가지런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동쪽으로 난, 작은 성문으로 뱃길이 나있고, 그 뱃길로 작은 배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마을 중앙의 광장에는 세 개의 같은 모양의 저택이 놓여있고, 잘 닦여진 도로 사이로 작은 목조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멀리 언덕 위에서는 한 참, 나무를 베어내고 사람들이 그 나무를 나르고 있었다.


레이진일행이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몇 명의 사람들이 다가와 일행을 맞았다.

말에서 내린 로렌이 수염을 길게 기른, 역시 붉은 로브를 걸친 노 마법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로렌경.”


로렌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노마법사에게 레이진과 줄리어가 다가갔다.

로렌에게서 고개를 돌린 노마법사가 줄리어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에 레이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마법사에게 레이진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습니까? 바우안스 후작님.”


데이클 젠 바우안스.

로에나 왕국의 유일한 7서클 마법사이며, 대륙 전체에 스물두 명뿐인 7서클의 대마법사였다. 그 중 8서클을 이룬 마법사들도 3명이 있었으나, 그래도 기사의 나라인 로에나에서 7서클에 이른 것은 쉽지 않은 업적이었다.

일예로 스물 두 명의 대마법사의 대부분이 제국과 지금은 사라진 마법왕국 루기온왕국에 편중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무리한 영토확장 중인 제국도 이 대마법사들에게는 늘 예우를 깍듯하게 차렸다.


“살아있었구나. 레이진.”


잦은 왕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늘 친할아버지처럼 온 마음으로 레이진을 대해 준 탓에 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레이진이 검을 놓았을 때에는 자신의 가문의 서고에 있던 책들을 한 수레 실어 보내주기까지 했었다.


아리오스가와 친밀했던 만큼 바우안스 후작가도 대표적인 국왕파.

파이완 공작이 아리오스 공작만큼 두려워하던 존재였으니, 분명 바우안스 가문도 아리오스가만큼의 환란을 겪었을 텐데 그가 무사한 것도 레이진 자신이 살아있는 것 이상으로 의외인 점이었다.


긴 한숨을 내쉬고서 그가 말했다.


“우선 들어가세. 밤새 고생하신 로렌경과 일행들도 이제 좀 쉬시고, 우리도 편하게 지난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보세.”



* * * *


작은 오두막에 소박한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서 7서클의 대마법사 데이클과 레이진이 마주앉아있었다.

데이클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찌...”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바라보며 레이진이 설명을 이어갔다.


“천운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저를 바다로 보내주셨습니다. 작은마을까지 떠내려가 다행히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였던가? 볼튼...”


“네, 혹시 볼튼 그자가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까?”


데이클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와 접촉은 하고 있지만, 아직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네. 그러나 우리도 그리 큰 의심 없이 그를 대하는 터라, 걱정이군. 그와 만나고 있는 우리 사람들이 적지 않아...”


이 섬은 바우안스가의 오랜 마법연구실이라고 했다. 겨우 사람들이 정착해 자리를 잡았는데 파이완공왕에게 들켜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것만큼 참담한 일도 없을 터였다.


“바우안스가가 멸문하는 날까지도 나는 이곳에서 마법연구를 하느라 알지 못했네.”


7서클의 벽에 막혀 있던 그는 오랜 선조가 만들어 놓은 이곳에서 홀로 8서클의 벽은 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서 물러나, 일종의 폐관수련을 하고 있던 샘이었다.


“살아남은 바우안스가의 마법사들과 이곳에 은신해 있다가 1왕자 전하께서 도피 중이시라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래서 어렵게 1왕자 전하를 모시고 이곳으로 돌아와, 이리 자리를 잡았네.”


한 명, 두 명, 살아남은 왕당파의 사람들을 찾아 이곳에 정착을 한 후, 성벽을 쌓고 다리를 놓았다. 그게 3년 동안 그들이 한 일이었다.

그사이 이곳에 인구만 이천 명 가까이 불어났다.


“1왕자 전하께서는 ...”


“곧 뵐 수 있을 것이네. 만나 뵙게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오랜 도피생활로 몸이 좋지 않으시다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마의 제국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주기 변경공지 입니다. 19.05.27 265 0 -
공지 연재주기 공지, 감사인사드립니다. 19.04.13 1,737 0 -
82 제 11 장 - 점의 고양이와 왕국의 운명 - 1 +1 19.07.31 419 12 13쪽
81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3 +1 19.07.27 382 13 14쪽
8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2 +1 19.07.25 372 10 13쪽
7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1 +1 19.07.22 399 13 15쪽
78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0 +2 19.07.19 498 15 13쪽
77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9 +1 19.07.16 513 11 12쪽
76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8 +1 19.07.12 538 12 17쪽
75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7 +1 19.07.12 559 12 14쪽
74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6 +1 19.07.09 559 11 16쪽
73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5 +4 19.07.07 618 12 13쪽
72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4 +1 19.07.04 697 12 14쪽
71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3 +2 19.07.03 768 13 13쪽
7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2 +1 19.07.01 696 16 12쪽
6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1 19.06.29 817 20 12쪽
68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0 +2 19.06.27 792 20 10쪽
67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9 +2 19.06.25 798 17 12쪽
66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8 +1 19.06.23 852 17 14쪽
65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7 +1 19.06.22 835 18 11쪽
64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6 +1 19.06.21 815 17 12쪽
63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5 +1 19.06.19 919 19 13쪽
62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4 +1 19.06.18 907 17 13쪽
61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3 +1 19.06.18 961 21 16쪽
60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2 +1 19.06.14 998 20 12쪽
59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 +2 19.06.13 1,101 21 14쪽
58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9 +2 19.06.10 1,033 21 15쪽
57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8 +1 19.06.08 1,143 22 13쪽
56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7 +1 19.06.07 1,034 23 12쪽
55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6 +2 19.06.05 999 22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