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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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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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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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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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제4장 - 왕의 길 - 6

DUMMY

에르난디가 오두막의 중앙에서 마치 춤을 추듯, 몸을 움직여 주먹을 내뻗었다.

파황신공의 기초가 되는 파왕권의 12연환식을 펼치고 있었다.

마룻바닥에는 서른 두개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고, 그 위를 일정한 순서에 맞게 정확히 밟으며 파왕권을 펼쳐내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녀는 꽤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녀가 마지막 발을 내 딛고서 긴 한 숨을 내쉬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 모습을 탁자에 앉아 바라보며 노인으로 분한 레이진이 말했다.


“많이 좋아졌구나.”


그의 말에 에르난디가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제 보다도 좋아진 것 같지요? 스승님?”


레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잘할 필요도 없고, 지금처럼만 꾸준히 행하도록 해라. 운기는 어떻더냐?”


조금 전까지 미소가 한가득 하던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힘없이 고개를 내젓는 그녀를 바라보며 레이진이 다시 웃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의미 없어 보이는 호흡을 계속하게 될게다. 그러나 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기다림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심공을 운기하고, 남은 시간에는 파황신보에 맞춰 파황권의 12연환초식을 꾸준히 행해야한다.”


그녀가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떠나야 할터...”


에르난디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오래 걸리시나요?”


“네가 내단을 형성할 때쯤에는 돌아오겠지. 그 후에는 네게 새로운 검술을 알려줄 테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절대 검을 들어선 아니 된다. 그리고 행여 내가 오기 전에 너의 단전에 내단이 생기는 일이 생긴다면, 그 후부터의 행공은 절대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운기 중에는 작은 충격에도 내상을 입을 수 있어 위험하다. 늘 염두해 두고 있거라.”


“다음에 뵐 때는 내단을 만들어서 보여드리겠어요.”


그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돌아오마.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 되지만, 조급함은 더욱 안 된다 알겠느냐?”


다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에르난디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인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


“고집도 대단하군. 정말 가려는가?”


마치 통보하듯, 작별 인사를 고하는 레이진을 바우안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왕세자전하께서는 어떠십니까?”


레이진의 물음에 그가 노기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자네 덕분에 그래도 한 고비는 넘긴 듯하네.”


레이진의 적극적인 참여로 왕국군의 새 지도자는 루지아트가 되었다.

왕위의 전통성을 대놓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왕국군의 태생이, 왕당파.

왕국시절부터 루지아트왕세자를 중심으로 세를 이루던 집단이 그들이었다.


문제는 루지아트 왕의 의지.

그러나 루지아트의 생활태도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을 복용해야했고, 어두운 방안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이 은둔 아닌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금의 변화가 있다면 이제는 가끔씩 줄리어를 만나 담소를 나눈다는 것. 그러나 그것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타노아를 되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바우안스가 여전히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확실한 승기를 잡아 밀고 나갈 만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언제 떠나는가?”


“내일 아침에 출발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갑자기?”


레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남의 일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진을 괘심한 듯, 바라보다 바우안스가 이내 혀를 차며 참았다.

사실 그가 있었어도 달라질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난세에 내단이 없는 아리오스공작은 새로운 왕에게 있어서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아! 그리고 자네 가문에 혹시 칼트 라는 이름의 마법사가 있었는가?”


“칼트 로비엔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저희 가문의 수석마법사셨던 크르타트님의 제자입니다”


“대단한 젊은이더군.”


“그의 스승이 대단한 분이셨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가 타노아에 있네. 볼튼경과 연락을 받는 연락책이 그였네. 볼튼의 정체를 알렸고, 자네의 생환소식도 전했다네. 타노아에 가면 그를 먼저 만나게 그가 도움이 될 게야.”


레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허긴 그곳에는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있을 터였다.


“파이완에게서 탈출한 우리 가문의 마법사들에게 우연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진고문을 말이네 아주 잘 견뎌냈다더군. 원래 마법사들이란 고통에 취약한 법인데 말이야. 마법사의 기질도 아리오스를 닮았어.”


“그런 칭찬을 듣기에는 볼튼으로 인해 너무 민망해집니다.”


“그런 자는 어디에나 있네. 이곳에도 있지 않던가?”



* * * *


내일 떠난다고 하니, 베네크와 오든은 그간 친분을 나누었던 기사들과 해지기 전부터 술자리를 가졌다.

레이진도 오랜만에 술병을 들고 사람들과 섞였다.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소리들이 뒤섞여 들려왔다.

이런 공간에서 파티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오히려 더 밝고 활기차고 씩씩했다.

이럴 때는 그저 같이 웃어주는 것이 미덕이다. 그런 것 하나하나를 딱하고 안쓰럽게 바라보면 인간은 살수가 없다.


“어 줄리어님이시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오든이 창밖을 가리켰다.

줄리어는 로브를 눌러쓴 채로 두 명의 기사들과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역시 세 개의 저택이 있는 쪽.

세 개의 저택 중, 중앙의 저택에 새로 마련 된 루지아트 왕의 거처였다.

그녀도 헤어지는 순간을 즐겨야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레이진이 조용히 읊조렸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답니다. 줄리어님.”


오든의 확성기 같은 목소리고 들려왔다.


“내가 내단만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오늘 술값은 .....”


꺽꺽 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오든을 바라보며 레이진이 슬그머니 자리를 나왔다.


* * * *


어두운 방 안.

여전히 검은 커튼이 드리워진 방에서 침대에 기대 누운 한 남자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 전, 로에나의 새로운 왕이 된 루지아트 폰 로에나였다.

문밖에서 기사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줄리어 넷 리틀리안 양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가만히 술잔을 바라보던 남자, 루지아트가 말했다.


“들라 해.”


옆에서 마약 파이프를 손질하던 시녀가 달려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붉은 드레스의 여인을 맞았다. 줄리어가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전하.”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든다.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루지아트가 술병을 들었다.


“같이 한 잔 하자.”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다가와 왕의 옆에 앉았다. 왕은 여전히 삐쩍말라 뼈만 남은 하얀 다리를 부끄러움 없이 내놓고 누워있었다. 그러나 줄리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루지아트가 새로운 유리잔에 술을 부어 건넸다.


“감사합니다. 전하.”


두손으로 잔을 건네 받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가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말했다.


“깍듯하긴... 내일 떠난다고?”


“네, 마침 아리오스 공작도 떠난다고 하시어...”


“그 아이는 어떻게 꼬신게냐?”


아리오스의 이름을 듣고 그가 눈을 치켜뜬다. 줄리어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분이 전하를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요.”


“그래?”


그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변했더라.”


그의 말에 줄리어가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전하.”


“눈빛부터 달라. 아밀리아가 있었다면 좋았을 걸.”


줄리어가 내민 잔에 그가 술을 채웠다. 술을 받는 줄리어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곧, 공주님도 모시고 와야지요.”


잔을 채우던 술이 중간에서 멈췄다.


“너는 이 왕국에 희망이 보이느냐?”


“그럼요. 천년을 이어온 왕국입니다.”


그녀가 여전히 잔을 높이 든채로 말했다.


“천년이면 망해도 아쉬 것 없는 왕조다. 로에나의 왕조는....”


“아니요. 앞으로 천년을 더 이어갈 왕조입니다.”


흥, 루지아트가 다시 코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잔에 술을 마저 채웠다.


“시우르토, 그 아이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게 맞다.”


“발콘백작은 파이완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예요. 아시잖아요.”


“너는 참 희한한 아이구나. 너와 나는 정략혼일 뿐이었는데. 어리석다. 줄리어.”


그녀가 입을 가리고 제법 크게 웃었다. 그녀의 나이다운 미소가 오랜만에 그녀의 입가에 그려졌다.

그때, 대전의 문이 열리며 작은 키의 노인이 들어섰다. 칸세르의 영주 발콘백작이었다.


“백작?”


줄리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지아트 왕이 이밤에 발콘을 불렀다는 것이 의외였다.

줄리어의 고개가 루지아트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루지아트의 눈에도 의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줄리어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문 쪽에서 두 개의 신형이 날아와 바닥을 뒹굴었다.

깜짝 놀라 두 물체를 바라보던 줄리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레인경! 다톤경!”


그녀를 호위해 온 리를리안가의 기사였다.

곧 발콘백작의 뒤로 다섯 명의 기사들이 도열해 섰다.

어제 새로 왕의 호위를 맡은 왕국 근위대기사단 소속의 기사 다섯 명이었다.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리를리안가의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루지아트가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발콘.”


“보시는 바와 같소. 왕자. 그대가 이끄는 왕국을 나는 인정할 수 없소.”


루지아트가 담담히 술잔에 술을 부어 마셨다. 그의 담담한 모습에 발콘이 잠시 움찔 놀랐다.

역시 왕가의 피가 흐른다는 것인가?

허긴 그가 허리를 다치기 전에는 어린 왕자의 몸이었지만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지곤 했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한 모두의 처지가 못내 씁쓸해졌다. 그라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


“왕자...우리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지 않소. 하반신이 마비되어 걷지도 못하는 왕에게 의지해야하는 국민들....”


“그래서?”


“시우르토왕과 함께 왕국을 되찾을 것이오.”


왕자가 가래 끊는 소리로 웃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정말....”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웃었다.


“적어도 약에 취해 폐인이 된 왕보다는 잘할 자신이 있소.”


루지아트가 술잔을 비우고서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좋아 발콘.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원래 왕위에 욕심이 없었으니. 하지만 줄리어는 놓아줘. 그녀는 앞으로 왕국을 이끌어 가는데 나보다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인물이니.”


그러나 발콘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늦었소. 왕자.”


발톤을 잠시 바라보다 루지아트가 줄리어에게 속삭였다.


“이리로 와.....”


영문을 몰라 얼떨떨하게 서있는 그녀에게 루지아트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걸음을 내 딛는데 뒤에서 벌벌 떨며 쪼그려 앉아있던 시녀가 벌떡 일어나 침대 옆에 늘어져있는 푸른색 줄 중에 하나를 힘껏 잡아 당겼다.

그러자 침대가 기울어지며 순식간에 돌아갔다.

침대가 뒤집어지는 순간 루지아트가 재빨리 줄리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의 신형이 침대 뒤로 나타난 어두운 통로를 타고 계속 미끄러져 내려갔다.



한동안 멈추지 않고 내려가던, 두 사람의 신형이 어두운 복도 바닥에 볼 품 없이 내동댕이 쳐 졌다.


“으.....”


줄리어가 겨우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빛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 바닥을 뒹굴고 있는 루지아트의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줄리어가 그에게로 기어가 그의 목을 안았다.


“이곳은 바우안스가 만들어 놓은 비밀통로야. 곧 그가 올꺼다. 줄리어 어서 도망쳐.”


그가 삐쩍 마른 손으로 줄리어의 몸을 계속해서 밀쳐냈다. 그러나 여인 한 명도 밀어내지 못할 만큼 그는 힘이 빠져있다.

잠시 그런 그를 바라보다 줄리어가 루지아트의 몸을 들어 안았다.


“뭐하는 짓이냐! 줄리어! 어서 도망쳐.”


“조용히 좀 해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통에 어지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루지아트도 말문이 막혀버렸다. 줄리어가 다시 소리쳤다.


“죽는 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당신만은 마음대로 죽지 못해. 죽어도 나와 함께 죽어. 알았어?”


말을 마친 그녀가 그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붉은 드레스의 치맛단을 찢어 그것으로 왕자와 자신의 몸을 함께 감아 단단히 묶었다.


위에서 텅텅! 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구멍 위에서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린 줄리어가 그 길로 긴 복도를 내 달렸다.

이곳은 저택의 2층, 아래로 내려가면 대 회의장.

그곳이라면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몰랐다.

줄리어의 등에 기대어 루지아트가 중얼거렸다.


“귀족은 옷차림하나에도 위엄을 지녀야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팔자 좋을 때 소리.”


크크. 그가 힘없이 웃었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만약.. 살아난다면.... 말 좀 잘 듣겠다고 맹세하세요.”


그녀의 걸음이 느려졌다. 뒤쪽에서 작은 불빛들이 뒤엉켰다. 통로를 타고 기사들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이미 그녀는 걷는 것도 아닌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뒤에서 기사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가 땀으로 젖은 그녀의 등에 얼굴을 기대며 속삭였다.


“그래.. 맹세하마.”


루지아트의 다짐과 함께 줄리어의 신형이 무너졌다. 두 사람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앞에 두고 다시 뒹굴었다.

금새 기사들이 쫓아와 두 사람의 길을 막았다.

겨우 상체만을 들어올리고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두 사람을 애워싼 기사들 틈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발콘백작이었다.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다가와 두 사람을 내려다 보았다. 줄리어도 루지아트도 모두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죽어도 명예로운 모습으로 죽어야지.”


“곧 바우안스가 올 거야.”


루지아트가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편 계단 아래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일은 없소.”


청년 하나를 가운데 두고 십여 명의 검은 복면인들이 다가왔다. 하나같이 검은 마물의 얼굴을 한 탈을 쓰고 있었다. 청년을 향해 발콘백작이 소리쳤다.


“시우르토님!”


청년, 시우르토가 발콘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도 정말 대단하군.”


청년의 말에 발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우르토님...”


대체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

그때 시우르트의 옆에서 있던 검은 복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꽤 묵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여간 이번 토벌전에 당신의 역할이 아주 컸소. 팔콘”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우르트와 복면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발콘을 등 뒤의 기사가 검집 채로 내려쳤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의 신형이 루지아트가 누워있는 곳으로 날아가 엎어졌다.


“이게 무슨.....?”


입가에 붉은피를 철철 흘리며 그가 시우르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이 쓰러져가는 왕국을 내게 떠넘기려고 했지.”


발콘이 믿을 수 없어 소리쳤다.


“무슨 소리를....! 이제와서....”


“평소에는 찾아오지도 않던 놈들이.”


시우르트가 옆에선 복면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면인이 발콘에서 시선을 거두어 루지아트에게로 옮겼다.


“이제 왕국은 파이완 공왕께서 잘 다스리실 거다. 너무 심려치 마라. 너의 나라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될 테니.”


그가 기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이 검을 빼들었다.


“하! 정말 개판이군?”


막 검을 들고 나서려던 기사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모두가 복도에 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창문 틀에 앉아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청년 하나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청년 시우르토가 중얼거렸다.


“니가 어떻게 여길...?”


그러거나 말거나 창틀에서 뛰어 내린 레이진이 루지아트에게로 다가갔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발콘을 바라보며 혀를 찬다.


“꼴 좋군.”


발콘이 고개를 떨궜다. 그때 시우르토의 옆에 선 복면인이 입을 열었다.


“왕국의 쓰레기들이 모두 모였군.”


“쓰레기?”


레이진이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쓰레기가 아닌가? 대를 잇지 못하는 다리병신 왕에 검을 쓰지 못하는 검가의 자식. 거기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욕심쟁이 귀족까지. 모두 어디 쓸 만한 게 있던가? 아! 저 계집은 사창가에 넘기면 돈은 조금 받을 수 있겠군.”


그런 복면인을 잠시 바라보던 레이진이 루지아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루지아트 페하.”


루지아트가 허리를 세워 상체를 일으켰다. 줄리어가 그의 뒤에서 그의 등을 받쳤다.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레이진이 말을 이었다.


“아리오스의 검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이제 로에나의 의지도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루지아트에게서 시선을 거둔 그가 한 발, 복면인을 향해 내딛었다.


"그렇지 않으면 로에나를 향한 아리오스의 검은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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