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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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최근연재일 :
2019.07.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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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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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4장 - 왕의 길 - 7

DUMMY

큭큭, 복면인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

레이진을 향해 권태로운 눈을 들어 올린 그가 옆에선 복면인들에게 낮은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왕자와 여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여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복면인 다섯이 계단을 뛰어 넘어 레이진에게로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은빛의 오러를 두른 다섯 개의 검이 레이진의 목과 가슴, 그리고 두 다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눈앞에 서 있던 레이진이 한 발을 내딛었다. 천마비행보가 펼쳐지며 그의 신영이 순간 앞으로 쏘아지듯 날아들었다.

검을 향해 달려들다니.

그러나 방심은 없다. 다섯 개의 검이 레이진의 몸을 확실하게 뚫었다.

그런데.


“어?”


네 개의 검이 레이진의 몸을 관통하는 순간, 그의 신형이 공중에서 사라졌다.

분명 방금까지 눈앞에 있었는데.

자신들의 검이 허공을 찔렀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의문을 풀 사이도 없이 눈앞이 어둠으로 덮였다.

투 두 둑...

다섯 개의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들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 없이 몇 걸음을 더 걸어가던 다섯 개의 몸이 피분수를 뿜으며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느긋하게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복면인이 팔짱을 끼우다 말고 그 자세 그대로 어정쩡하게 멈춰 섰다.

레이진의 검이 부하들의 목을 어떻게 베었는지 보지도 못했다. 아니 그의 움직임은 그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단 한발을 내딛었을 뿐인데.

검이 움직이는 것도, 하다못해 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그가 서있던 위치만 앞으로 조금 나와 있을 뿐, 레이진의 모습은 출수하기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뭐....뭐야!”


침묵을 깬 건 시우르토였다.

소리를 따라 레이진의 시선이 시우르토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 발을 내딛었다.

지래 놀란 시우르토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때서야 레이진의 손에서 움직이는 검의 모습이 복면인의 눈에 어렴풋이 보였다.


“흡!”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기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기파를 검을 들어 겨우 막아낸 그의 신영이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시우르토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뒤에 서있던, 남은 부하의 머리 네 개가 다시 계단 바닥을 튕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복면인의 얼굴에 식은땀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등 뒤쪽으로 시우르토를 따라 목 없는 네 개의 시신이 계단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복면인은 감히 뒤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으악! 으악!”


목이 떨어져나간 시체 속에 파묻힌 시우르토가 시체를 발로 헤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은 그저 한 걸음 뒤로 물러났을 뿐인데,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자신 혼자뿐이었다.


계단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레이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미소를 바라보는 복면인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내 상대가 아니다.


“소...소드마스터.”


아루카경

그는 언젠가 멀리서 아루카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신형이 움직이는 곳에 시체가 쌓여갔다. 그는 그가 검을 어떻게 휘두르는지 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때와 같다.

이자는....

새 아리오스의 가주는, 소드마스터다.


“아...!”


아리오스...


“허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리오스의 가주인데...


웃음을 지우고 그가 입술을 깨물며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레이진을 향해 겨누어진 검은 자신의 눈에도 보일 만큼 덜덜 떨고 있었다.

아니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와 서있는 것조차 어려웠다.

어디서 나타난 괴물이냐...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돌덩이를 지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레이진이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다 복면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에 석상처럼 굳은 다섯 명의 기사들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들도 오러기사.

그들의 눈에도 자신들과 레이진의 격차가 그대로 보였다.

단지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 다섯이 함께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 섬에 도망갈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맞는 말이다. 이 섬에서 왕을 향해 검을 뽑은 이상 목숨을 거는 것이 당연했다.

뒷걸음질 치던 걸음이 멈췄다.

검을 들고 기사답게 달려들어야 했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이러기 위해 왕을 배신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이 길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아리오스공작님...”


흔들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

레이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가 가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자신도 아직 인정하지 못한 왕이니. 그러나.


“이제와서 그런 눈빛을 해봐도...”


슥!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퍽!

플레이트메일을 단단히 챙겨 입은 기사들의 몸이 복도 중간까지 날아가 쳐 박혔다. 반짝반짝 윤이 날 만큼 잘 닦여진 바닥에서 먼지가 일었다. 그러나 나자빠진 기사들 중에 움직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루지아트도, 줄리어도, 발콘마저도 그저 입을 벌릴 채 이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누구도 말을 꺼낼 수 없었고, 숨소리조차 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만치 나가떨어진 기사들을 바라보던 루지아트의 고개가 다시 레이진에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친 레이진이 검을 검집에 넣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검을 집어넣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레이진을 바라보며 복면인이 검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잘 봤소 아리오스 공작, 그러나 나도 기사. 이제 내가 가진 최고의 기술을..."


레이진의 주먹이 복면인의 얼굴을 강타했다. 뒤늦게 검을 들어 올렸지만, 레이진의 주먹은 그 검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날아들며 검날까지 그대로 후려쳤다.

분명 오러를 잔득 주입해냈건만...

어느샌 검은 멀리로 날아가고 빈손을 허우적대는 사이 그 틈으로 무수한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그...그..만...그만...”


계단 아래서 남자의 처절한 외침이 한동안 들려왔다.

그 소리에 복도에 기대앉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순간 사위가 조용해지더니 레이진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두 손에 목덜미가 잡힌 두명의 남자가 질질 끌려왔다.

이미 복면은 벗어진 채로, 붉은 피 칠을 한 얼굴로 가늘게 숨만 쉬고 있는 남자와 기절한 시우르토를 짐짝처럼 끌고 와 발밑에 내려놓고서 레이진이 발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발콘이 발을 버둥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발콘!”


레이진이 손가락을 뻗었다.


“으악!”


버둥거리는 그의 하얀색 바지 가운데가 노란색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죽어도 명예로운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레이진이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발콘이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를 보며 고개를 젓는데 이번에는 복도 저 편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쾅!


굉음이 울리며 복도 한 켠의 벽이 부서졌다. 부서진 구멍으로 붉은 얼굴의 노마법사가 뛰쳐나왔다. 그의 뒤를 따라 수십 명의 병사들이 따라 들어섰다.

바우안스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놈들 감히 반란을.......!”


오랜 세월의 떼가 묻은 검은 마법지팡이를 높게 치켜들고서 소리치던 그가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기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일찍 오신 거 아닙니까? 바우안스님!”


레이진과 바닥의 기사들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루지아트를 발견하고는 그에게로 달려갔다.


“폐하!”


다가오는 바우안스를 루지아트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레이진에게로 향해 있었다.

몸이 상하기 전, 아주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오러를 다룰 정도의 기사였다. 그리고 지금 레이진이 보여준 신위는 또한 오러 기사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임을 그도 알 수 있었다.

아리오스는 그의 말처럼 정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깊어진 눈으로 그가 레이진을 바라본다. 레이진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내가 보여줄 차례인가?


줄리어의 손을 잡고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 *


“무운을 빌겠습니다. 아리오스공작.”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 만났던 바우안스가의 마법사 네르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작이라.

하긴 누가 그런 호칭에 신경이나 쓰겠냐만은...

누구하나 배웅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레이진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네르넨의 손짓에 성문이 열렸다.


“가자!”


레이진의 말에 오든도 베네크도 긴 심호흡을 내뱉는다.

네르넨을 따라 성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줄리어였다.


“잠시만요. 아리오스공작!”


달려온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성공하길 빌어요. 아리오스공작님.”


원래 함께 떠나기로 했었지만 그녀는 며칠 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레이진이 말없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줄리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이었으나 이제는 그의 타노아행이 전혀 무모해보이지 않았다.


“페하께선 다시 돌아오실 거예요.”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레이진을 향해 그녀가 다시 덧붙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요.”


레이진이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돌아섰다.


“고마워요. 아리오스 공작.”


그의 등을 향해 줄리어가 손을 흔들었다. 오든과 베네크가 줄리어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레이진의 뒤를 따랐다.

성문 너머, 물속에 잠겨있던 나무다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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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2 +1 19.07.01 696 16 12쪽
6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1 19.06.29 817 20 12쪽
68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0 +2 19.06.27 792 20 10쪽
67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9 +2 19.06.25 79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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