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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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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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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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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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 타노아로 가는길 - 3

DUMMY

“우선 우리 바이델른의 레이델백작이 계시고, 리를리안백작가 그리고 볼튼의 아리오스. 아리오스님의 외가인 이슬린 백작가가 그리고 로에나스의 바르치란 사람입니다.”


그가 잠시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루벤의 이슬린가는 저희와 직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닙니다만.”


레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로부터 그랬으니까요. 딱히 당파에 얽매인 분들이 아니셨으니.”


혹자는 비겁하다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국경에 있으므로 국가에 봉사하고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로에나스의 바르치는 누굽니까?”


제록이 설명을 이어갔다.


“특이한 자이죠. 오래 전부터 로에나스의 유흥가를 장악하며 온갖 패악질을 일삼던 자였는데....”


로에나스는 로에나왕국의 수도이다.


“그런 자가 왕가를 돕는다구요?”


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옛날부터 왕가에서 그자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도 찾아내지 못했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정체를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자가 공왕도 모르게 매달 지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위험한 자로군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제록을 바라보다 흥미를 잃은 레이진이 말을 돌렸다.


“루벤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요?”


제록이,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일어나서는 책상 위에서 돌돌말린 종이를 하나 들고 왔다.

탁자 위에 펴니 로에나왕국의 지도가 펼쳐졌다.


“로덴을 지나 바쿨로로 길입니다. 특별한 돌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상단을 꾸려도 보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말없이 지도를 내려다보는 레이진을 보며 그가 덧붙여 말했다.


“아시다 시피 서부는 이곳 동부보다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공왕파의 세력이 많았던 중동부와는 다르게 서부는 거의 가 왕당파의 가문들이어서 그곳에서 살아남은 가문은 전무한 상태였다.

거기다 공왕을 도와 세력을 잡은 새로운 귀족들은 대부분 제대로 지역을 장악하고 있지 못했다.

잠시 지도를 바라보던 레이진이 혼자 중얼거렸다.


“라이프스....”


최단 거리는 공왕이 있는 수도 라이프스를 지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제록이 알려준 길은 라이프스를 아래로 돌아 지나는 길. 그가 한동안 지도를 바라보다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 지도 한 장이면 되겠네요.”

“상단을 꾸려도 됩니다만.”


얼굴에 근심을 드리운 채 제록이 말했지만, 레이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 새로 합류한 동료들이 쓸 수 있는 암정도만 새로 마련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행분들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제록에게 지도를 살펴보던 레이진이 말했다.


“며 칠은 함께 동행 할 것 같네요.”


더 말을 이으려다 잠시 머뭇거린 후에 제록이 입을 열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습니다.”


“그럼....?”


제록이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로 레이진을 바라봤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잠시 레이진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로덴의 바이델른 지부를 찾아 연락을 주십시오.”



* * *


다음날 아침.

20골드의 금화와 몇 가지 생필품을 준비해 준 제록이 마지막으로 암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정말 이 인원으로만 움직이실 겁니까?”


그의 시선이 잠시 레이진의 뒤에 서 있는 다섯 사람을 훑고 돌아왔다.


“이 정도면 인원이 꽤 늘은 편 아닌가요?”


그도 그렇지.

제록이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세 사람만으로 며칠을 버틴 걸 직접 목격했으니.


“로헨의 지부에는 될 수 있으면 꼭 들려주십시오.”


레이진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제록의 눈에는 전혀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는 고갯짓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레이진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또 뵙지요.”


말을 마친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끌고 멀어져갔다. 그를 따라 다른 인원들도 모두 한 마리씩의 말을 이끌고서 그의 뒤를 따랐다.



* * *


레이진 일행의 이동 속도는 제록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빨랐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들은 벌써 3할 가량의 거리를 지나 온 상태였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헤이라 그녀가 무척 서둘고 있어서 조금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를 않았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난 헤이라가 모닥불을 향해 나뭇가지들을 던져 넣고 있는데 그녀의 옆으로 레이진이 다가와 앉았다.


“내일 로덴에 도착하면 헤이라님은 라이프스쪽으로 가야합니다. 공왕이 있는 곳이니 조심하세요.”


헤이라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암도 잘 챙겨두시고....”


헤이라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그려졌다.

3일 간, 조금 친해진 헤이라는 이렇게 가끔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보여 주었는데 그녀 딴에는 정말 호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쩔 때는 환하게 웃는 웃음보다 진솔해 보일 때도 있는 법이니.


“렌더스 왕국은 내단 때문에 가시려는 건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란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공작이 그 걸 어떻게 알았지?”


그녀가 놀라건 말건, 모닥불을 바라보는 레이진의 표정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금이 간 내단을 고치는 방법이 있던가요?”


레이진을 향해 불신의 눈빛을 보내며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어떻게 그걸 알지?”


레이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충 둘러댔다.


“아, 저도 예전에 비슷한 처지여서 그쪽으로 조금 공부를 했었습니다. 나름 제 전문분야라고 할까요?”


그녀의 내단은 금이 간 상태로, 어지간한 내공심법을 익힌 자라면 그것으로 한동안 내상을 치료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장시간의 휴식을 통해 치료가 가능했다. 그런데 그녀의 내단은 조금 특별해서 치료가 되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 그가 느끼기에도 그녀의 상태는 요 짧은 며칠의 시간에도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담담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진을 잠시 바라보던 헤이라가 자신도 모닥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 말처럼 내 내단에 문제가 생겼다. 치료사의 말로는‘원단의 씨앗’만이 유일한 치료제라고 하더군.”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원단의 씨앗’이라...”


원단의 씨앗이란 오랜 세월 기가 축적되어 응집된 하나의 열매였다. 중원의 천년설삼 쯤 되는 영약이다.

가끔 원단의 씨앗을 먹은 동물이나 마물들이 내단이 생겨 순식간에 각성하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탁월한 영약이고, 종종 사람들도 기연처럼 그것을 얻어 오러의 기사가 되고는 했다.

모든 영약이 그렇듯, 원단의 씨앗 역시 사람들의 발길이 닫지 않는 오지의 산속에서 발견이 되는데, 설삼이나 기타의 영약들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표식조차 없이, 땅속 깊은 곳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발견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원단의 씨앗을 먹고 내단을 얻는 사람은 한 세대에 한 명 정도 나올까 말까했다.

그러니 무턱대고 원단의 씨앗을 찾아 이리 방랑을 하는 것은 아닐 테고.


“렌더스 왕국에 원단의 씨앗이 있습니까?”


“몇 년 전에 랜더스 왕국에서 발견 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레이진이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내게 그 외에는 희망이 없다.”


점점 부서지는 내단, 고칠 방법은 없이 시간만 가고 내단은 하루가 다르게 부서지고 있었다.


“첫 번째 원단의 씨앗은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아리오스공작!”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놀라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역시나 담담했다. 놀라 일어 선 그녀가 민망할 만큼 침착한 그의 모습에 헤이라가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 다시 주저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여왕님을 지키는 기사로 키워졌다. 그런 나를 여왕님은 유독 사랑해 주셨다. 나는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단은 생기지 않더군. 그런 나를 딱하게 여긴 여왕께서는 나를 위해 원단의 씨앗을 찾는데 힘을 쓰셨고, 결국 원단의 씨앗을 구해 그것을 내게 아낌없이 베푸셨다. 나는 그 씨앗을 먹고 오러의 기사가 될 수 있었지.”


잠시 말을 끊은 그녀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 년 후, 내가 소드마스터가 되었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었는데, 그런데 그때부터 내단에 이상이 생겼다. 그대는 모르겠지만, 마스터가 되면 내단의 기운을 운용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오러의 기사들이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아니 오러의 기사들은 진정한 내단의 효능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러를 쓰면 쓸수록 급격히 커져가던 내단이 어느 순간 부서지기 시작하더군. 나는 그것이 마스터가 되는 또 다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더군. 점점 내단에서 기운은 뽑아져 나오지 않고, 점점 기운이 사라져갔다 그제야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고칠 방법이 없었다. 치료사는 내 오러의 기원이 원단의 씨앗이니 원단의 씨앗을 먹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


헤이라의 이야기를 듣던 레이진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헤이라는 그의 탄식이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종류의 안타까움에서 기인한 탄식이었다.


원단의 씨앗은 일종의 마기가 응집된 영약이다.

내단이 없는 사람이나 마물이 먹는다면 내단이 생기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일종의 마공을 얻는 것과 같았다.

보통 기사들의 수순한 내단과는 그 곁이 다른 것이었다.


아마, 그녀는 이미 내단이 생겼거나 거의 생성되는 과정에서 ‘원단의 씨앗’을 복용한 터였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복용 된 원단의 씨앗이 그녀의 순수한 내기와 충돌을 일으켜 일종의 주화입마의 단계에 접어든 상태와 비슷한 지경이 된 것이었다.


“욕심이 과하신데요? 원단의 씨앗을 두 개나 드시겠다니.”


천년설삼을 두 개나 먹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그렇지...”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헤이라는 이런 부분에서 담백한 면이 있었다. 정말 제대로 된 기사도를 아는 여인이었다.

물론 레이진 본인이야 단전을 고치는 게 전문분야였고, 거기다 그녀의 단전이 마기에 속한 것이었으니 조금만 마음을 쓰면 못 고칠 일도 아니었지만, 그녀를 위해 자신의 내력을 써 고쳐 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이대로 갈수 없어. 여왕폐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이렇게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다.”


* * *


로덴의 성벽은 무슨 이유에선지 마치 벼락이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검게 그을린 채로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마물들의 습격에 도시를 지키려면 성벽은 잘 정비가 되어 있어야 했지만, 공왕시대에 접어들어 급격히 기운 국력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는 이렇듯 기본적인 정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멀리 허물어진 성벽을 내려다보던 헤이라가 레이진에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나는 로덴으로 입성하지 않고 바로 떠나겠어.”


레이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웠다. 아리오스 공작.”


“무운을 빌겠습니다.”


덴션과 아우리도 짧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베네크와 오든의 인사를 받은 헤이라가 가벼운 고갯짓을 보내고는 말의 박차를 가했다. 세 사람을 태운 말이 석양이 지는 황무지를 달려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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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1 19.06.29 817 20 12쪽
68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0 +2 19.06.27 792 20 10쪽
67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9 +2 19.06.25 798 17 12쪽
66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8 +1 19.06.23 852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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