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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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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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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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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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 타노아로 가는길 - 6

DUMMY

여인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인 것은 흔들리는 낮은 천장이었다.

마차 안...?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검은색 시녀복을 입은 여인이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다가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후마마.”


시에린 폰 파이완

제국 라이타리카 황제의 열네 번째 딸이며, 4년 전, 열일곱 살의 나이에 쉰다섯 살의 파이완 공작과 혼인한 여인.


“엘.”


“네, 저에요 왕후마마.”


잠시 시에린을 바라보던 시녀 엘이 마차의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리아크라경 마마께서 깨어나셨어요.”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행진을 멈춰라!”


곧 마차의 흔들림이 멈추고 문을 열고 은빛 갑옷을 입은 남자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좁은 마차 안에 갑옷을 입은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왕후마마.”


“어떻게 된 거지? 리아크라경?”


“도박장 앞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발견하여...”


“도박장 앞에?”


“네... 그 위험한 곳에.... 제가 곁에서 모셨어야 했는데...”


“아....레이...”


시에린에게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반문하며 고개를 든 기사를 향해 시에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시에린이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여전히 머리는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그러면서도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들이 마치 꿈처럼 지나쳐갔다.


“리아크라경”


“그대도, 그대 자신을 아끼나?”


“네?”


리아크라가 멀뚱멀뚱한 눈으로 시에라를 쳐다보다 고개를 다시 숙였다.


“저의 모든 것은 제국과 왕후 마마의 것입니다.”


잠시 기사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시에린이 고개를 저었다.


“흠, 역시 재미없어.”


그녀가 시녀 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엘. 여긴 어디지?”


“왕후마마의 상세가 심상치가 않아서 리아프스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이 그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마마 무리하시면....”


“괜찮아. 바람을 쐬고 싶다.”


시에라가 마차 밖으로 나왔다.

새벽 녁, 떠오르는 태양빛에 붉은 황무지가 더욱 붉게 보였다.


꿈을 꾼 거 같군.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이 쑤셔오고 두통이 밀려오는데도 그녀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계속 떠올랐다.


“왕후마마...”


“걱정마. 아무 일도 없으니.”


그녀가 목석처럼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기사 리아크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갔던 일은....?”


“붉은 발 오크는 제대로 잡아왔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리아크라가 마차 뒤에 하얀 천으로 덮인 수레를 바라본다.

자랑스럽게 빛나는 그의 눈빛을 따라 잠시 수레로 향했던 시에린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아쉬움에 얼굴을 굳혔던 그가 다시 표정을 밝히며 말했다.


“더 대단한 선물을 챙겼습니다.”


“선물...?”


리아크라의 얼굴에 다시 자랑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리튤라왕국의 여기사 헤이라의 신변을 확보했습니다.”


시큰둥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왕후를 바라보며 리아크라가 덧붙여 말했다.


“그녀는 소드마스터입니다.”


“그랬군. 수고했어.”


여전히 그녀의 표정에서는 조금의 흥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콜로시스경은?”


“아, 헤이라를 노예시장에 팔고 오겠다고 그곳에 갔습니다. 아마 지금쯤 일을 마치고 이리로 출발했을 겁니다.”


피곤에 젖은 얼굴로 시에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쉬었다 출발해.”


엘의 부죽을 받으며 마차에 오르려던 그녀가 마차 안으로 한 발을 들어 올리다 동작을 멈췄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돌린 시에라가 소리쳤다.


“리아크라경!”


휴식을 알리기 위해 기사들을 부르던 리아크라가 고개를 돌렸다.

마차에서 내려선 시에린에게 리아크라가 급히 다가갔다.


“마마...”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 선 리아크라를 향해 시에린이 소리쳤다.


“마차를 돌려.”


“네?”


“노예시장으로... 빨리!”


미간을 구긴 시에라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차올랐다.



* * *


레이진이 낡은 건물 앞에서 고개를 쳐들고 지붕 위를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도 노란 지붕의 색깔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술의 노예> 라는 이름의 술집이었다.

코웃음을 치며 레이진이 나무문을 밀었다.


꽤 넓은 식당 안에 열 개가 넘는 테이블이 있었지만 모두 텅 비어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뭐 드시겠습니까?”


시큰둥한 눈으로 주문을 받는 남자에게 레이진이 말했다.


“여기가 노예시장인가?”


레이진을 살펴보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러나 레이진은 다시 남자의 눈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천천히 물었다.


“여기가 노예시장! 맞나?”


* * *


남자가 열어 준, 창고의 한 편에 작은 선반이 있고, 그가 그 선반 위에 놓인 술병을 만지작거리며 조작하자 벽이 뚫리며 계단이 나왔다.


“이...이리로 가시면 됩니다.”


레이진이 남자의 목을 쥐었다 풀고는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풀썩

목이 반대로 꺾인 채 남자가 쓰러졌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불이 밝혀진 굴이 나타나고 굴 끝편에 네 명의 남자가 서서 다가오는 레이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레이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초대장을 주시겠습니까?”


꽤나 정중한 태도였지만 목소리에는 잔뜩 위압감이 담겨있었다.


“노예시장을 구경하고 싶은데?”


잠시 레이진을 바라보던 남자가 뒤에 서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대륙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외모이기는 했지만,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로브나 풍기는 분위기가 결코 평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초대장도 없는 사람을 들일 수는 없는 일.

그가 다시 정중하게 말했다.


“처음이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레이진이 손가락으로 굳게 닫힌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을 통과하는데 그리 번거롭나?”


“그렇습니다. 저희도 규율이 있으니까요. 공자께서 상품을 구경하시고 싶으시다면, 초대장을 받으시고 후에 오시면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노에시장이 맞다는 거지?”


레인진의 막무가내의 태도에 참고 있던 그의 표정에 금이 갔다.

그러나 레이진은 그런 그의 표정변화는 상관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는 들어가야겠다.”


지금까지 정중한 태도로 그를 맞았던 남자가 레이진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가드 세 명도 각자 어깨를 들썩이거나 주먹을 쥐어 보이며 다가왔다.


레이진이 그런 그들을 향해 한 걸음, 천마군림보의 일보를 내딛었다.

쿵!

다가오던 남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가슴 속이 터질 듯이 아파왔다.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입에서 붉은 핏물이 쏟아졌다.


“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네명의 몸이 쓰러졌다.

거침없이 걸음을 내딛은 레이진이 잠겨 진 문을 두 손으로 밀었다.

뿌드득!

잠금 장치가 부서지며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제법 넓은 공간 안에는 거대한 홀이 있고, 그 홀을 둥글게 둘러 놓인 의자에 수십 명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앉아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은 홀의 중앙.

그곳에 높게 솟은 둥근모양의 단상이 놓여있고, 그 위에 두 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얇은 천으로 겨우 몸을 가린 여인이 공중에서부터 늘어진 줄에 두 손이 묵인 채 매달려있고, 그 옆에는 하얀 가면을 쓴, 정장을 빼입은 중년의 남자가 여인의 팔을 흔들며 서있었다.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르니아성국의 여사제입니다. 여사제의 품질은 얘기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인 남자가 여인의 몸을 손으로 밀었다.

줄에 매달린 여인의 몸이 천천히 돌아가고 여인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술렁거렸다.

그 소리가 잠잠해 지기를 기다려 남자가 소리쳤다.


“1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남자의 외침과 함께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4골드”


“5골드.”


레이진이 문을 부수며 들어왔는데도 누구도 레이진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어이없는 광경에 분노가 일던 레이진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지어졌다.


“친절하게 가면들을 쓰고 계시다니까.”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이 제국의 귀족들이라는 표식.

확인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쓰레기일 테니.


레이진이 검을 들어올렸다.

모두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쏠려있어 그 때까지도 누구도 레이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발을 구르는 순간, 문 앞에 서있던 레이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천마비행보의 보법을 밟으며 사람들 속으로 뛰어든 레이진의 검이 그의 손 안에서 춤을 춘다.

아수라공간참이 펼쳐지며 108개의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남녀의 구분도 없이 순식간에 사람들이 반 이상이 쓰러졌다.

그때서야 단상위의 남자가 노래진 얼굴로 소리쳤다.


“누구냐!”


살아남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흩어지고 호위무사들이 검을 들고 달려든다. 둥근 벽쪽에서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검사들이 검을 들고 뛰쳐나왔다.

그런 중에도 레이진의 신형은 멈추지 않았다.

또 다시 108개의 검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쳐 날아갔다.

검을 들고 달려오던 자들의 목이며 팔이며 허리가 그대로 베어져 두, 세 동강이로 나뉘어져 날아갔다.

검에 오러를 그리며 달려드는 자는 오히려 더 처참하게 찢어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천마비행보를 밟는 그의 신형은 범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새 한 바퀴를 돌아 제 자리에 멈춰섰을 때는,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레이진 단 한사람만이 서 있었다.


레이진이 검을 휘두르며 단상위로 날아올랐다.

천장에서 내려 온 줄이 끊어지며 여인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레이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달아나려고 몸을 돌리는 남자의 앞에 레이진이 나타났다.


헉!


그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레이진이 그런 남자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반쯤 벗겨진 가면 아래로 드러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레이진이 속삭이듯 말했다.


“다른 노예들이 잡혀있는 곳으로 안내해.”


침을 꿀꺽 삼킨 남자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성국의 사제라는 여인이 소리쳤다.


“저깁니다. 저곳에 아직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잡혀있어요.”


여인이 가리키는 곳에 두 겹으로 철창이 내려간 채 닫혀있는 문이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레이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여인이 비틀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서 레이진이 철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목이 부러져 저만치 날아가 뒹구는 남자에게 다가간 여인이 남자의 얼굴을 발로 짓밟았다.


레이진의 검이 몇 번의 움직임으로 철창을 잘라냈다. 나타난 문을 부수고 들어서니 복도 사이로 감옥처럼 철창이 드리워진 방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떤 곳에는 남자들이, 어떤 곳에는 여인들이 손과 발에 족쇄를 찬 채, 서너 명씩 앉아있었다.

복도 중간에서 가면을 쓴 남녀 몇 명이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쳤다.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감히 죽고 ....”


이미 밖의 사정을 전해들은 탓인지 노예상인들로 보이는 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진이 그들을 향해 가차 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뒤돌아 달아나던 복면인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레이진이 복도를 지나가며 철창이 부쉈다. 처음에는 몸을 웅크린 채 나오지 못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다 하나 둘 복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레이진이 부수고 들어 온 문으로 성국의 여인이 뒤따라 들어오며 소리쳤다.


“모두 나오세요. 영웅께서 우리를 구해주러 오셨어요.”


사람들이 여인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레이진이 그런 여인을 바라보며 마지막 철문을 향해 검을 긋는데, 뒤쪽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진이 급히 허리를 비틀며 날아온 물체를 쳐냈다.

허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푸른색 창.

기둥 뒤에서 자신의 키보다 긴 푸른색 창을 든 남자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레이진을 노려보며 나타났다.


“또?”


레이진이 기가 막혀 헛웃음을 흘렸다.

이 작은 도시에서 소드마스터를 둘이나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거기다 눈앞에 선 자는 지금까지 만났던 검사들과는 사뭇 그 급이 달랐다.

완숙한 절정에 이른, 제대로 된 소드마스터였다.

레이진이 상대를 살피는 사이, 창을 세게 움켜 쥔 라이타리카의 기사 콜로시스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얼마 만에 긴장감인지.


대륙 전쟁 중 작은 부상을 입은 그가, 휴식 차, 부여받은 임무는 파이완 공왕에게 시집 온 황제의 열네 번째 딸을 호위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제대로 쉴 수 있어서 좋았었지만, 이 년쯤이 지나가자 단조로운 생활에 지루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며 칠 전, 오크의 왕을 때려잡을 때 조금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지만, 그런 일 한 두 개로 그의 성이 찰 리가 없었다.

그렇게 무료함을 탓했던 그였는데.

다 망해가는 이런 소국에서 자신을 긴장하게 만들 검사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검은 머리에,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고운 얼굴은 이제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아니 더 어려 보인다.


그런데 내 창을 피했다고.....?

하물며 온 힘을 다 쏟은 건 둘째 치고 기습까지 했건만 상처하나 입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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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4 +1 19.07.04 697 12 14쪽
71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3 +2 19.07.03 768 13 13쪽
7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2 +1 19.07.01 696 16 12쪽
6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1 19.06.29 817 20 12쪽
68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0 +2 19.06.27 792 20 10쪽
67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9 +2 19.06.25 798 17 12쪽
66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8 +1 19.06.23 852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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