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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수로공
작품등록일 :
2019.04.01 22:28
최근연재일 :
2019.05.2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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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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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007화. 광기의 침식

DUMMY

007화. 광기의 침식




진한 피의 향기가 진득하게 몰려들었다.

꼬박 이틀을 달려 드디어 적의 등 뒤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참상은 그것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시체들의 벌판.

아군과 적군이 뒤섞인··· 시체들이 가득 쌓인 곳.


으드득.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몇 명을 죽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병사가 대부분이었으나 그중에는 장수로 보이는 자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산맥에 들어서며 죽였던 숫자보다 혼자 활동하며 죽인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건일은 담담하기만 했다.


“개자식들 모두 죽인다.”


확실히 건일의 현재 상태는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인데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다만, 적이 만들어 놓은 이 지경까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처참하게 찢겨져 죽어 있는 시신들이 모두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젠장.”


늦었다는 죄책감.

적을 죽일 때에는 느끼지 않았던 감정들을 새삼스럽게 재료로 취하였다.

그 재료들을 무거워진 가슴 속으로 던져, 이빨을 부서지도록 꽉 깨물고 전의를 불태우는 용도로 삼았다.

적의 피를 장작으로 삼아 마음에 쌓이는 이 울분을 태워 버리고 싶었다.


“끄으응···.”


그때,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신음소리 하나가 귓가에 꽂혔다. 그의 신형身形이 흐릿해지며 근원지를 찾아 풀숲을 헤쳤다.

그리고 그곳에는 양 다리가 잘린 한 어린 병사가 허공을 휘저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턱 밑에 난···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어린 아이가 회색으로 물든 눈동자를 굴리며 구슬피 울부짖었다.


“어무이. 어무이 어디 계세요?”


동공에 힘이 풀린 회색 눈동자는 손에 걸리지도 않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 헤맸다.

건일은 무의식 중에 한 손을 건넸다.

그러자 아이가 그 손을 덥석 잡아챘다.


“어무이···.”


다 죽어가는 아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어무이 저 장군 됐어요. 어? 왜 안 믿으실랑가? 이 갑옷 좀 보셔요.”


아이는 걸레가 된 자신의 가죽 갑옷을 자랑스럽게 매만졌다.

건일은 안쓰러운 아이의 갑옷을 툭툭 쳐줬다.


“헤헤. 이제 믿으실랑갑네.”


아이는 한층 해맑게 빛나는 웃음을 얼굴 위로 떠올렸지만, 눈동자의 생기는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어무이 제가 그··· 광무라는 놈을 잡고 장군이 된 거여요. 그놈이 제 갑옷을 탁하고 쳤는데, 제 갑옷이 그걸 팍하고 막는 거에요. 놈이 당황스러워하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저는 그 녀석이 당황할 때 활짝 웃어줬어요. 그놈이 우리 편 아이들을 다 죽였거든요. 근데 그놈이 살려달라고 하는 거에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살려달라고 하는데 얼마나 가소롭던지···. 여지까지 지는 우리 아이들을 다 죽여 놓고 살려달라고 하대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벌벌 떠는 그 녀석의 두 다리를 확하고 잘라 버렸어요. 지금까지 죽은 우리 친구들에게 무릎을 꿇라는 의미였어요. 잘했죠?”


아이는 방긋 웃으며 건일의 손을 차가운 두 손으로 꾸욱 움켜잡았다.


“어무이 이제 고생 끝이에요. 제가 옆에서···. 헤헤···.”


아이의 웃음이 싸늘히 식어 갔다.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꽉 움켜잡았던 여린 두 손의 힘도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갔다.


“잘했다. 내 아들···.”


건일은 무의식 중에 아이의 두 손을 잡고 그 아이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아이였으나, 죽어가는 그는 이미··· 어미 배 속을 그리워하는 작은 아이와 같았다.


“장하다. 우리 아들···.”


죽어가는 아이의 잘린 두 허벅지가 배 위로 올라왔다.

건일의 손을 잡은 채 그 손을 가슴으로 모았고, 잘린 다리도 모아 태아의 모습처럼 온몸을 웅크렸다.


“어무이··· 광무···.”


아이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그리워하는 사람.

죽을 만큼 죽이고 싶은 사람.


“그래, 내가 꼭 죽여주마.”


찢어진 건일의 볼 사이로 한줄기 눈물이 또르르 스며들었다.


그가 느낀 이곳은···

게임과 같은 가상의 공간일 수도 있었다.

퀘스트를 위해 가상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장치일 수도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진짜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죽는 공간이라면 이 공간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것은 진정성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으며, 살기를 원했고,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생 앞에서는 적과 아의 차이없이 모두 끈질기게 연명을 원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반대의 입장도 있었다.

피를 탐하는 자.

죽이고 죽이는 것에만 집착을 하는 자.


건일의 붉은 눈망울에서 살기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목숨을 담보로 들어온 곳이지만···.

이제는 그 안의 일원이 되었다.

삶을 갈망하지만, 이렇게 생을 원하는 어린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베어 버린 적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특히 광무라는 자가 내뿜던 살기는··· 가슴 속에 웅크려··· 약한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피하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그 살기를 짓누를 다른 살기를 키웠다.


그것은 현실의 그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키우던 ‘반발심’이었다.

합당한 것에는 고개를 숙일 수 있고, 자신의 잘못에 사과할 줄 알고, 미안해할 수 있는 ‘마음’.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불의한 것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마음’.

그런데 그 ‘마음’이 잘못된 색을 입었다.



붉게 타오르는 건일의 두 눈빛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군은 잠도 자지 않고 삼 일 동안 두 개 이상의 부대를 참살하였다.

동굴에서처럼 이번에도 저항의 흔적은 미미해 보였다.


동굴을 확인할 때 느꼈던 것.

적들은 영리하게 장수나 경험이 많은 병사들을 먼저 찾아내 살육을 저질렀다. 그것도 아주 참혹한 방법으로 말이다.


선발대가 버리는 패이다 보니 어린 병사들이 많이 속해 있었다.

입구가 좁은 동굴에서 방어에 나설 때, 죽음을 각오하고 옥쇄를 펼쳤었다면, 그리 허망하게 참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입구가 좁아 그 앞만 막아도 충분히 시간을 끌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적들은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게릴라전을 펼치는 것처럼 들어가는 족족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고, 장수와 노병을 찾아 제일 먼저 죽였다.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참담할 정도로 떨리는, 아직 영글지 않은 작은 두 손으로 무기를 겨우 쥐고 있었을 어린 아이들을 겁에 질리게 만든 이후에, 아주 천천히 더욱 무참하게 도륙을 일삼았다.


이번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잡혔다.

이곳은 밥그릇 모양의 움푹 파인 륭기산지隆起山地였다.

융기에 의해 올라온 작은 산 중앙이 움푹 패여 있어 그 안을 살피기가 힘든 험지였다.

특히 안팎 주위로 수풀이 우거져 정찰을 하기도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적들은 아군이 이곳을 이용할 것이라고 미리 알았던 듯싶다.

그리고, 모여 있는 아군들 중에 노련한 자들을 먼저 죽이고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나머지 병사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결국은 이렇게 죽이고 말았다.


그것은 시체의 온도로 확인을 할 수 있었다.

한군데에 모여 있는 어린 병사들의 시체들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놓인 장수들과 노병들은 차갑디차가운 시체일 뿐이었다.

동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수와 노병들의 외침 소리와 비명 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고, 한동안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선 이번과 같이 살행이 행해졌다.

그리고 건일을 더욱더 살의에 빠져들게 만든 것···.


“인간 같지 않은 놈들··· 다 죽여주마.”


건일은 잠도 잊고 사라진 적들의 흔적을 찾아 다시 발을 놀렸다.

그리고 그가 한동안 무릎을 꿇고 애달파하던 곳에는 어린 병사들의 배가 잔인하게 파헤쳐져 있었다.

마치 사자가, 사냥한 동물의 연약한 내장을 파먹은 것처럼 그렇게.


***


잠시 눈을 붙인 건일이 다시 속도를 붙였다.


“아아악.”


그리고 저기 절벽이 있는 곡지谷地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일은 신중하게 움푹 파인 절벽의 한쪽 끝에서 전황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아군들이 절벽 끝에 내몰려 광무대에게 둘러싸인 형국이었다.

그런데 참 어이가 없는 것은···.

아군의 숫자는 삼백을 훌쩍 넘기고 있었지만, 그들을 포위한 적들은 고작 이백도 안 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흐흐흐. 이제 끝을 낼까?”

“저것들을 확 밀어버릴까요?”


광무의 확정 어린 끝맺음표에 한 장수가 나서며, 절벽 끝에서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어린 병사들을 확 밀어버려 그대로 추락사墜落死시키는 건 어떠냐며 물음을 내던졌다.

이번에도 역시 아군의 장수들과 노병들은 모조리 죽어 있었다.


배수의 진.

탄금대에서 강을 등지고 목숨을 걸었던 우리 선조처럼, 차라리 처음부터 목숨을 걸었다면 이처럼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살고 싶은 마음, 겁을 집어먹은 나약한 마음이 이처럼 위태로운 처지를 만들고 말았다.


적들이 경험 많고 피에 굶주린 포식자인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죽어 있는 시체의 숫자로 보건대 최초의 병사수는 무려 두 배에 달했다.

죽기 살기로 난전을 펼쳤다면 최소한 양패구상兩敗俱傷은 가능했다는 얘기.

이 정도로 밀릴 지경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교활한 적들은 그런 각오까지 집어삼켰다.


힘이 있고 전장을 지배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어미 고양이들을 먼저 물어 죽였다.

그것도 최대한 잔인하게.

이제 남은 것은 냥냥거리는 어린 고양이들뿐이다.

가지고 놀기 딱 좋은 상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연한 고기도 가지고 있다.


“무기를 버”

쏴악~!

『안 돼! 미쳤어?!』

촥~ 촥~.

“끄어어.”


적의 부장 하나가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후방에서 튀어나온 건일이 적들의 안심을 틈타 두 명의 목숨을 앗았다.


“응?”


광무를 포함한 모든 광무대의 시선이 후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웃기 시작했다.

둘의 목숨을 단숨에 앗았으나 상대는 기껏해야 한 명일 뿐이었다.


“캬캬컄. 어디서 이런 미친 놈이.”


병사 하나가 튀어나온 건일에게 대도를 뿌렸다.

광무대는 기본적으로 대도를 주무기로 삼았다.

갑옷까지 우그러트릴 수 있는 중병기였다.


훙!


대도가 공간을 갈랐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며칠 간의 전투.

피와 목숨이 오가는 실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도 훈련장을 열어 죽기를 각오한 것처럼 전투를 복기했던 건일이었다.


첫날 3성에 접어들었던 무공이 벌써 완숙을 넘어 4성을 두드리고 있었고, 2성이었던 보법은 벌써 3성에 들어서고 있었다.

더구나 차오르지 않던 내공도 실전을 경험할수록, 적들의 피를 마셔댈수록 차곡차곡 차올라 이제 곧 3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눈앞의 병사는 이제 막 3성의 수준에 이르렀다.

확연할 수는 없지만, 민감해진 그의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적 병사들의 수준은 대략 2성 끝자락에서 3성 초입 정도였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1~2성은 삼류 수준이라고 하였다.

3~4성은 이류 수준.

5~6성은 일류 수준이라고 했다.

저 대단해 보이는 광무도 고작 5성의 완숙이라 하였다.


이 세계는 무공을 베이스로 한 세상이 아니었다.

입문 무공을 습득한 건일과 비교를 해 봤을 때, 적들의 수준을 그의 입장에서 평가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원 무공이나 삼재 무공과 같은 무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잘 쳐져 봐야, 광도라는 자도 절정이 아닌 일류의 중반 수준이라는 말이 되었다.

물론 건일의 수준으로 헤아려 보건대 그의 수준은 꽤 높은 경지라 할 수도 있었다.

이류와 일류는 고작 한 단계의 차이지만 그 무력의 수준은 결코 한 단계의 차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건일은 적들 사이로 몸을 드러내었다.


안내자는 광무를 피하라는 의미에서 조언을 건네주었던 것인데, 건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쳤어···.』


안내자는 속이 탔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음에도, 이 미친 플레이어는 목숨 귀한 줄을 몰랐다.

방금 전에도, 숨어 있으라고··· 근방에 있는 아군을 데려오라고··· 몇 번의 신신당부를 하며 참으라 다독거렸지만··· 눈이 붉게 물들고 귀까지 닫은 건일은 그의 부탁도 내던지고 죽음을 향해 목을 내밀었다.


“이 새···”

핏.


건일이 대도를 피하자 창피를 느낀 한 병사가 욕설을 내뱉으려고 하던 순간, 그의 목에 미세한 실선이 하나 그려졌다.

그리고 건일은 허물어지는 그의 시체도 확인하지 않은 채 광무를 향해 내달렸다.


“큭큭큭. 재미있구나. 저놈은 또 뭔가?”


광무는 새롭게 등장한 한 병사가 재미있는 장난감인 양 해맑게 웃음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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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031화. 도플갱어? (1) 19.05.13 25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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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25화. 던전 클리어 (1) +1 19.05.04 302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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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화. 새로운 세상 (2) 19.05.01 294 6 13쪽
22 022화. 새로운 세상 (1) 19.04.30 294 8 13쪽
21 021화. 새로운 문 19.04.29 31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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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0화. 동류同類 19.04.12 47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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