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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치선생
작품등록일 :
2019.04.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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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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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위기의 그람제일 (4)

DUMMY

한 차례의 폭우가 지나가고 땅은 다시 굳는 법. 평안을 되찾은 모험가 길드로부터 아딤은 고양이가 생선을 낚아채듯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칸 일행들이 있었던 2층으로부터 내려오는 중이었다.


“좋아, 지금이다.”


그녀는 몰래몰래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건물 밖을 나갔다. 아딤은 자신의 눈을 간질이는 석양빛에 눈을 찡그렸다. 땅에 먹혀들어가는 태양이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듯 마을을 자신의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딤은 석양을 등져가며 건물 뒤편으로 향한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은 죄인과 같이 무거웠다. 그녀가 지금 하려는 일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꽤 그럴싸한 비유라고 할 수 있었다.


“왔는가.”


건물의 뒤편에서 가슴을 울리는 투박한 저음이 아딤의 귀속을 파고든다. 이런 특이한 목소리를 지닌 자는 당연히 크라이브 뿐이었다.


아딤과 크라이브가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길드에 거친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칸이 길드를 떠나고서 크라이브는 그의 정보를 강하게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는 당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회는 원리와 철칙으로 움직이는 생물이다. 모험가도 아닌 외부인에게 함부로 정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가 모험가로 등록했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험가에는 엄연히 랭크라는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랭크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모래알과 황금덩어리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얻을 수 없는 정보가 있다. 그것은 모험가 길드의 최고 전력이자 기밀임무를 도맡는 그랜드마스터 티어들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상당히 아쉬운 상황이었으나, 이것이 옳은 것이다. 한 순간의 감정에 휘말려 그대로 정보를 얻었다면, 그건 싸구려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은 언제나 차갑고 규칙에 순응한다.


‘그러나 명예가 짓밟힘에 분노하고, 악행을 참지 못하는 자도 있기 마련이도다. 세상은 그런 정의를 가진 자들에 의해서 조금씩이지만 변화되어왔느니라.’


크라이브는 아딤의 눈빛을 살폈다. 그녀의 여린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호흡은 흔들리며 마음은 갈대처럼 꺾이고 휘기를 반복하겠지. 다만 그녀의 눈이 비추는 현재는 망설임이 없었다. 곧바르지는 않더라도, 올바름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정말 이 몸에게 정보를 전해주어도 괜찮겠는가?”


아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지켜야하는 규율과 해야만 한다고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가 저울질을 벌이고 있었다.


수 초 간의 정적. 아딤은 자신의 뺨을 쌔게 때리며 크라이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선택했다.


“저도 확실하게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몰라요. 그래도 VIP실에 남아있는 자료를 대충 훑어보고 말씀을 드리는 거니까, 여기서 크게 벗어난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우선 이야기를 하기 전에, 크라이브 씨는 그람제일의 이웃마을인 ‘버파로 마을’을 아시나요?”


버파로 마을.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것도 꽤나 최근에······.


“기억이 났노라. 이곳에 오기 전에 이 몸은 악단과 만났도다. 그들은 버파로 마을로 향한다고 말했도다.”


자신들과 짧은 시간 길동무가 되었던 케이틀린과 그 일행들. 헤어지기 전에 분명히 그들은 버파로 마을로 향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그 마을의 이름이 언급된단 말인가.


“버, 버파로 마을로요? 지금 이 시국에? 부디 별일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무슨 일인가.”

“그, 그게······ 서류를 읽어보니까 그곳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딤은 침을 꿀꺽 삼키고서 조금은 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람제일의 서쪽으로 가다보면 분지형태를 이루는 산맥이 하나 나와요. 그 분지 속에 있는 마을이 ‘버파로 마을’이에요. 사방팔면 산맥 모두가 통째로 광산이라 이를 기반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라서, 이 일대를 통솔하는 ‘4급 귀족’이신 ‘젠하이트’ 영주님도 그곳에 살고 계세요.”

“4급?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남작이나 자작, 후작 같은 계급이 아니던가?”

“네? 철지난 만우절 농담하시는 거죠? 그게 몇 세기 전의 명칭인데요. 역사책에서나 간간이 언급되는 정도잖아요?”


아딤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크라이브가 장난을 치는 것으로 넘겼지만, 정작 그에게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 많은 일들을 겪고 듣다보니 차츰 내성이 생기는지 충격은 생각보다 덜했다.


“이야기를 계속해도 될까요?”

“이야기를 끊어서 미안하도다. 계속 해주기를 바라노라.”

“네.”


입술에 침을 바르며 아딤은 긴 이야기를 준비했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실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지점장님은 버파로 마을에 그랜드마스터들을 파견 보낼 생각이셨나 봐요. 사실 한 달 전부터 그 지역에서 고블린이나 놀, 오크 같은 하급몬스터들이 자주 목격되기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모험가들이 퇴치 가능한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당하는 모험가들도 많아졌어요. 특히, 여성 모험가들 같은 경우는······ 실종문제도 심각해요. 듣자하니 ‘무장한 몬스터들’을 보았다는 소문도 있었고 말이에요.”

“······.”


무장한 몬스터들이라면 그도 짐작되는 게 있었다. 지난밤 자신들을 노렸던 몬스터들도 장비를 맞추고 있지 않았던가. 거기다 전술이라고 말하기는 미흡하지만, 어느 정도 훈련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서류에서는 버파로 마을이 몬스터들에게 점령됐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어요. 그 근거는 2가지로, 첫 번째는 버파로 마을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없다는 거예요.”

“나오는······ 사람들 말인가?”

“네. 들어가는 이들은 있어도, 다시 나오는 이들은 없었데요. 저는 그람제일에서 나갈 이유가 없고, 어차피 다른 마을이니까 솔직히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점장님은 5일 전부터 버파로 마을에 사람들을 파견해서 유동인구를 파악시켰던 모양이에요. 고산지대이기 때문인지 ‘안개’가 항상 껴있어서 마을 내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거래를 위해 타 마을에서 단체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돌려보내고서, 개인이나 소규모의 집단은 들여보냈다고 써져있었어요.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나온 사람이 없었다고 해요.”


확실히 기묘한 일이다. 들어오는 이들은 있어도 나가는 이 하나 없다니.


“두 번째로 근거는 버파로 마을이 근 한 달 동안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을에서 유출되는 금속자원들이 0에 수렴하게 되었다는 거죠. 사실 이건 어느 정도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에요. 저희 그람제일에는 지금 금속이 부족한 실정이거든요.”


대장장이의 푸념이 머리 주위를 겉돌았다. 그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자재가 없어서 지금 다른 대장간들도 장사를 접고 있다고.


“한 달 전에 저희 그람제일에는 영주님의 서신이 왔어요. 그 내용은 이번에 금속의 거래량이 많아서 그람제일에는 자원을 보내줄 수 없다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그람제일은 한 달을 자력으로 버텼는데······ 지점장님이 유동인구 파악을 하는 동안에 버파로 마을과 거래를 하는 다른 마을들에게 연락을 취했나 봐요.”

“그들과도 거래를 하지 않았던 것인가.”


아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서류에 정리된 내용으로는 다른 마을들도 젠하이트 님에게 똑같은 서신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지난 한 달 동안에 다른 마을들은 다른 곳에서 자원을 거래를 했다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그람제일만 철자재가 부족한 실정이죠. 지금까지는 가까운 거리에 자원을 공급해주는 버파로 마을이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은 예상을 못했거든요. 아무튼······ 결국 영주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긴데, 그럴만한 이유를 현재의 상황과 겹쳐보니까······.”

“몬스터들에게 점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인가. 꽤나 합리적인 의심이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었다. 네이브에게 들은 바로는 하급 몬스터들은 하나하나의 전투력이 약한 대신에 엄청난 번식력을 기반으로 무리를 이룬다고 들었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 몬스터들은 충분히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자원들을 이용해서 군대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점장님은 사태가 꽤 심각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세요. 그래서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하필이면 여기에 온 게 지 잘난 맛에 사는 싸가지 없는 녀석이었다니.”

“그렇군. 훌륭한 정보였노라. 이제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갈피가 잡혔도다.”


과연 어째서 칸 일행들이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명확히 이해가 됐다. 그리고 이 그람제일이 지금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블랙본즈님이라도 계셨다면, 그딴 놈들도 안 왔을 텐데.”

“크흠흠!”


여기서 블랙본즈를 끼얹다니. 크라이브는 헛기침으로 그녀의 푸념을 흘려들었다. 아딤은 그를 향해 뭔가가 또 생각난 듯 박수를 쳤다.


“아, 맞다! 칸 일행에 대한 정보도 아주 간략하게 있었어요. 칸은 6년 전에 모험가 길드에 등록된 마법사래요. 젊은 나이에 7서클에 오른 대마법사요. 특이사항으로는 그 옆에 끼고 다니는 에르민이라는 단검수하고 아린이라는 궁수 있죠? 그 사람들하고는 같은 마을 출신이래요. 마지막으로 그 착한 사람 있잖아요. 레그? 그 사람은 정보가 별로 없더라구요. 세 사람하고 동향은 아니고, ‘반 년’ 정도전에 합류했대요. 딱 그거 뿐이었어요.”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기억.


‘실력이 미숙한지라 소꿉친구인 칸에게 빌붙어서 모험가 일을 하고 있죠.’


의심은 확신을 얻는다.


“······ 알았노라. 그 정도면 충분하노라.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이도다.”


크라이브의 말에 아딤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칸의 정보를 알아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역시 혼내주실 거죠?”

“그럴 셈이도다. 잘못을 했으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몸은 지는 싸움은 하지 않노라. 그 애송이는 이 몸을 이길 수 없노라.”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역시! 크라이브 씨는 엄청난 강자가 맞았군요.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랜드마스터에게 대들 생각을 하겠어요? 더 많은 정보를 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니, 괜찮도다. 이렇게 정보를 주는 것은 분명히 규율위반일터. 이 정도가 딱 좋도다. 이 몸은 그대가 신경 쓰이는구나. 이렇게 정보를 발설해도 괜찮겠는가?”

“물론이죠. 누구든지 그 놈을 때려줄 수만 있다면 뭐를 못하겠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큰소리를 내주셨잖아요. 생판 모르는 지점장님을 위해서요. 그 마음에 대한 저의 보답일 뿐이에요.”


아딤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하여 행한 용기에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으나, 아쉽게도 그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몸이었다.


“흠, 생각해보니 하나 있도다.”


크라이브는 아딤의 앞에서 돈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손에 매달린 가죽주머니가 좌우로 덜럭 거린다.


“이건 뭐에요?”

“약소하지만 이 몸의 마음이도다. 지금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어떠한 것도 없구나.”


피는 피로써 씻으며 인간의 도리는 인간의 도리로 갚는다. 그것이 바로 그의 신념 중 하나였다. 어떠한 방식일지라도 그는 인간의 도리는 지키고 싶었다.


“뭐에요? 제가 이런 거 받고 싶어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돈을 받아버리면 이건 정말 범죄잖아요! 저는 이런 거 필요 없어요!”


아딤은 역정을 내며 크라이브의 손을 양손으로 밀어냈다. 크라이브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녀의 다짐을 물질적인 것으로 뒤덮어버리는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것이었다.


“미안하도다.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그대의 명예를 실추하기 위함은 아니었도다.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대신에 이 빚은 이 몸이 어떤 방식이로든 반드시 갚도록 하겠노라.”


그는 돈주머니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그녀를 언젠가는 꼭 돕자고 다짐하며 뒤돌아서는 크라이브를 향해 아딤은 허리를 굽혔다.


“저희 지점장님을 받아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지점장님에게 큰 빚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분이 다치고, 짓밟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크라이브 씨, 고마워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용기를 내는 모습에 정말 감동했어요.”


아딤은 그람제일의 길드 지점장, ‘아마란테’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아니, 악연이었다.


아딤은 브라리근 왕국의 수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던지,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하지만 신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수도에 떨어져 떠내려가던 그녀를 ‘도적길드’의 사람들이 구해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기구한 팔자로 목숨을 건진 그녀의 삶은 예상 그대로 흘러갔다.


아딤은 주위의 영향을 받아 수준급의 도둑으로 성장했다. 빠른 달리기를 이용한 소매치기 실력은 다른 도둑들 사이에서도 그 악명이 자자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타인의 하루를 훔쳐서 자신의 하루에 사용하는 나날이 반복되던 때였다.


‘아직 애면서도 손이 더럽구나. 죄를 갚을 준비는 되었겠지?’


그녀는 아마란테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우연히 물색한 사냥감이 설마 ‘수도기사단’의 ‘부단장’이었을 줄이야. 필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아딤. 그러나 아마란테는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악착 같이 살아서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으로 갚아. 앞으로 지켜보겠어.’


그날 이후로, 아딤은 도둑질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마란테는 정말로 그녀를 하루도 빠짐없이 감시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의 진심과 관심에 패배한 아딤은 정당한 노동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노동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을, 그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꽃을 선물하자.


아딤은 다가오는 아마란테의 생일에 ‘꽃’을 선물해주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운명의 그날이 찾아왔다. 양손으로 들기도 힘든 꽃들을 들고서 아딤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기사단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딤을 기다리는 것은 참혹한 현장이었다.


아마란테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런 그녀의 앞에는 새로 취임한 ‘기사단장’이 서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니,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싸늘한 눈매로 자신을 쳐다보던 ‘색이 바랜 금발의 그 남자’를 말이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은 아마란테가 키워온 씨앗이었다. 기사단의 부단장이면서도 아딤을 비롯한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범죄자들에게 선처를 베풀고 갱생을 위해 몰래 지원해왔던 것이다. 인간으로써는 훌륭했지만, 기사단의 관점으로 보자면 직권남용을 행사해왔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쓰러진 아마란테의 숨통을 확실히 끊으려는 듯 검을 치켜든 그를 향해 아딤은 달려들었다. 기사단장은 악독하게도 그런 아딤을 공격했고, 아마란테는 온몸을 던져 그녀를 구해냈으나 그 대가로 왼쪽 다리가 잘려나가고 말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라스’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마음이 바뀐 것인지, 아마란테를 전역시키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날의 일은 아마란테, 아딤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고 말았다.


아마란테는 그날을 기점으로 폭삭 늙어버렸고, 여전히 총명하지만 스스로가 뭔가를 시도하는데 있어서 겁이 많아졌다. 아딤은 아마란테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날이 있은 후로, 각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은 퇴역한 군인이 맡는다는 룰에 따라서 아마란테는 제일그람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고자 아딤도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이런 사정이 있었으니, 아마란테를 위해서 화를 내준 크라이브가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의 마음을 그 자도 알 것이노라.”


크라이브는 그 말을 남기고서 마을을 뒤덮은 오렌지 빛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뒷모습은 석양에 삼켜져 흐려지고 말았다.


“후, 눈치채기 전에 빨리 돌아······.”

“아딤.”


건물 2층의 창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억양과 높낮이는 아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지, 지점장님? 듣고 있었어요?”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자, 2층 창고가 위치한 방의 창문에서 지점장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래. 너는 정말······.”

“죄, 죄송해요.”


기어가는 아딤의 목소리에 아마란테는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서는 아딤에 대한 일말의 분노도 찾아볼 수 없었다.


“됐어. 영업정리나 도와줘.”

“네!”


허겁지겁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마란테는 주먹을 쥐었다. 그 동안 잃어버렸던 무엇인가를 되찾은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져 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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