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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후
작품등록일 :
2013.10.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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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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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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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00. 로베아 가도 - 03

DUMMY

이젠 뒤에서도냐.

갑자기 난입한 이 남자,

우리나 저쪽 19호나 누구 할 것 없이 시선으로 그리 모인 덕분에

겉잡을 줄 모르던 분위기가 한결 수그러드는 덴 효과적이었다.


“당신들 뭔데 남의 집 앞에서 이런 소···란······.”


꽤나 까칠한 인상의 남성이 납득 가능한 불평을 늘어놓다 말고 문득 말을 줄인다.


‘···뭐지?’


근데 이런 의아함따윈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거기 있는 남자 셋 중 하나가 말이다.


‘······크다.’


여기 떡대나 녹라랑은 비교도 안될 정도 체격이나 덩치가 어마어마해서

이 넓은 복도가 꽉 차 보일 정도의 거구가 하나 섞여 있다.

인상은 꽤 괜찮은 인품의 소유자처럼 보였으나

체격이 이만하다 보니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사람을 절로 위압되게 만들 정도였다.

그 셋 중 처음에 말했던 까칠한 인상이 다가온 덩치를 팔꿈치로 툭툭 치니,


“후······.”


분명 대단히 느릿느릿하게 걸어오건만 이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된다.


“바로 옆인 1021호실 사람입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무슨 연유로 이러시는 건진 모르겠으나

여기 이 동엔 여러분 말고도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렇게 소란 피우셔서야 되겠습니까?”


혼났다.

혼나긴 혼났는데 빈틈없는 존댓말로 공손해서 오히려 부끄러움을 자각케하는 일침에 가까웠다.


“그렇지요···.”


부가적으로 층당 30실에 총 10층,

평균 3명 이상은 들어 살고 있을 테니 천 명이라는 건 옳은 계산이다.

여태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그러네.

여태 익숙해져 크게 느껴지지도 않은 건물에 천 명이나 들어산다는 게 새삼스럽기만 하다.

이스칼이 나선다.


“본의 아니게 대단한 민폐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대표로 나서 사과하니 뭐 덩치도 적당히 납득한다.


“아닙니다. 앞으론 주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걸로 정리가 되는 듯하다.

여태 싸우던 것도 슬 김도 빠지고, 이스칼도 그만하라고도 했으니 여기서 매듭짓기로 하면 될,


“넌 뭐야?”


와. 이걸 깽판친다고?


“뭔데 껴서 이래라 저래라야?”


이 도둑년, 진짜 끝까지 말썽이네.

저 봐라. 덩치의 미간이 미미하게 주름진다.

애당초 21호실 쪽은 당사자도 아니어서 자극하지만 않으면 될 일을 굳이 자극해서 일을 더 키운다니,

이 쯤 되면 싸우는 걸 즐긴다고 밖에 안 보인다.


“민폐끼친 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거 사정도 모르시는데 말을 너무 막 던지시는 건 아닌지요.”


이제는 아예 아까 그 떡대까지 합세한다.

그야 말투는 비교적 조곤조곤해도 내용이 이래버리면,


“허?”


그렇겠지.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겠지.


‘잠깐, 이거 잘하면···.’


이 여자들한테 어그로 넘기고 우린 슬쩍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편 21호실의 남은 한 명,

다른 두 명에 비해 평범하게 말끔한, 그리고 나이 좀 있어 보이는 남자가,


“쯧.”


혀를 찬다.


“어휴, 이 오지랖.

그러게 그걸 왜 나서서는.”


덩치를 질책한다.

그리고 이 쪽으로 시선을 둔다.


“우선 진정들 좀 하시죠.”


“아니, 진.”


“리스.”


도둑년이 또 나서려는 걸 꼬마가 제지한다.

하는데, 저 더러운 성깔에 꼬마가 한 마디했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분고분해진다는게 신기할 노릇이다.

이건 좀 소름끼치는군.

저 꼬마의 정체가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걸까.


“후···.

일단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들어가서 얘길 매듭짓도록 하죠.”


“그러시죠.”


“그러죠.”


말끔한 아저씨와 이스칼, 꼬마. 이렇게 셋이서 지들끼리 얘기하는 걸로 얼추 일단락은 지어진다.





근데 왜 하필 우리 방이냐고.


“부득이하게 실례하게 되서 죄송하게 됐군요.”


차라리 말끔한 아저씨는 빈 말이라도 이렇게 하지,

나머지 덩치나 떡대, 도둑년 같은 경우는 그냥 성큼 들어와선 제 방인양 쇼파에 덥썩 앉아버린다.


“여긴 손님 대접할 줄도 모르는 가봐.”


“역시···.”


그냥 치고 받는 해피엔딩으로 쉽고 빠르게 끝내면 안될까.


“조용히 좀 해.”


또또또 꼬마 한 마디에 쥐 죽은 듯이.

이 쯤 되면 뭔가 큰 약점이라도 잡힌 게 아닐까 싶기까지하다.


어쨌든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는 꼬마 덕분에 무쓸모한 기집애들이 좀 잠자코 있어,

덕분에 녹라나 홍라에게 말을 걸만한 여유는 생겼다.


“미안해, 얘들아. 괜히 나 때문에 휘말려서.”


“으휴. 됐네요. 아까 막아준 거나 고마워요.”


“한 식구끼리 어떻게 욕먹는 꼴을 그냥 두고 봐요.”


짜식들.

근데 이 때까지는 몰랐다. 당분간을 홍라 쇼핑 짐꾼 노릇이 될 줄이라곤.


대충 11명이 쇼파와 바닥 등에 적당히 나뉘어 둘러 앉은 뒤,


“자, 그래서.

원친 않았는데 이렇게 관여하게도 됐고.

저는 닉네임, 동네백수형. 나이는 서른 셋입니다.”


자연스레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데,

무슨 자격으로 이럴까 싶었으나 일단 들어는 보기로 했다.

훨씬 형이기도 하고.


“한번 물어나 봅시다.

뭐 때문에 그리들 싸우고 있었습니까?”


단도직입적인 이 물음에 우리 파티 넷도, 19호실 넷도 시선교환을 하며 서로 눈치만 보며 누구 하나 입을 떼질 않았다.

저 쪽이야 꼬마 때문에 그렇겠고 우리 쪽도 이스칼이 언질을 준 부분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더 이상 지긋지긋하다.

이 저녁에 배도 고픈데 싸우다 말고 방에까지 들여서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해서 일이 이 이상으로 커지지 않도록 상대가 어떻게 나올 지만 지켜만보고 대처할 요량이었다.


“흠······.”


근데 저 쪽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저랑.”


그냥 빨리 끝내자 싶어 차라리 당사자인 내가 나섰다.


“저 ㄱ··· 여자분이랑 싸움이 번져 그리 됐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걸,


“정확힌 저 남자가 제가 받으려던 퀘스트를 훔쳐가서 일어난 일이죠.”


“하. 끝까지.”


“워워워워.”


가열될 뻔하던 분위기를 잘 제지시킨다.

한 쪽에 편향되지 않을 지는 두고 봐야할 일이겠지만.


“양쪽 다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은데,

한 쪽 얘기씩 번갈아가면서 들어보기로 하죠.

우선 저 여자분 닉네임이···?”


“플로리스요.”


“네, 플로리스 양.

그리고 이 쪽은···?”


“브리즈번입니다.”


“네, 브리즈번 군.

먼저 플로리스 양 얘기부터 들어보려는데 괜찮겠죠, 브리즈번 군?”


뭐 안된다고 할 이유도 없고.


“그러시죠.”


“그래서 플로리스 양, 어떤 일이 있었나요?”




서로 할 얘기 다 털어놓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 ‘플로리스’라 밝힌 저 도둑년의 얘기에 대해 내 딴에는 그 입장을 이해해보려 노력한 편이다.

근데,


“아니, 분명 내 퀘스트였는데 그걸 그렇게 집어 가버리더라니까요?”


“음···. 이해가 좀 안되는데,

결국 그 퀘스트를 먼저 집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아니 제 거였다니까요.”


“그러니까 먼저 그 퀘스트를 집으셨단 말이죠?”


“제가 먼저 집으려고는 했죠.”


이뭔,


“···네?”


“그러니까 그 퀘스트를 수락하려는 의사가 저한테 먼저 있었단거죠.”


“······.”


행여라도 이 개소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면 그냥 깽판치는 게 낫겠다 생각했었는데,

이 말 한 마디로 사람들 표정을 돌아보니 일단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는 중에 그녀의 말이 완전히 끝났다.


“흠. 그렇군요. 잘 들었습니다.

이번엔 브리즈번 군?”


“후.”


그리고 내 차례가 왔고, 최대한 감정배제한 객관적 사실만 늘어놓는 데만 주력했다.

파티원들이랑 코코아톡 상의 중이었고,

집으려니까 경쟁자가 있어 서둘러 챙기는데 성공했고,

퀘스트를 정식 수락하려니 이상한 정치질로 사람들 이목을 모아 도둑놈이라며 매도했고,

그러는 틈을 타 누군가 퀘스트 지를 훔쳐간 것까지.


“흠······.”


물론 중간에 구데기같은 플로리스가 자꾸 껴서 말 똑똑 잘라먹었으나

듣는 쪽도 거기에 크게 귀기울이지 않아 덕분에 만족스럽게는 얘기한 편인 것 같다.


“그 쪽 분 말씀하실 땐 저희도 최대한 존중하고 들어드렸습니다만.”


이스칼까지 이런 식인 데다,


“플로리스. 일단 들어보자.”


아까는 플로리스랑 의기투합하던 떡대까지 이래준 덕분에 금새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야기를 모두 마치니,


“······.”


누구 하나 말 꺼내지 않고서 그냥 조용하기만 하다.

뭐지, 이거 설마 내 탓이 되어버리는,


“기사 티라제인이라 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본 결과 저희 일행의 오해로 인해 시작된 것 같군요.

서··· 플로리스와는 실제 친구이자 저희 쪽 파티장인 제가 대표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순간 벙쪘다.

그야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렇다.

떡, 아니 이 여기사님이 고개 푹 숙이며 사과하고,


“하.

야, 장아영.”


“서혜야.”


아줌마는 또 무슨,


“이거 너가 잘못한 거 맞아.

얼른 사과드려.”


“하···. 언니까지.”


그러면서 이 아, 아니 누님까지 고개 숙이며,


“우리 동생이 어디서 욕보고 온 건줄 알고 그만···.

잘 알아보지 않고 비난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이러니 너무 거창해서 혹은 부담스러워서 내가 몸둘 바를 모르겠다.


“야, 좀 사고 좀 그만쳐.”


꼬마까지.

근데 진짜 아무리 봐도 야라고 부를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그 쪽도 날 본다.


“뭐.

난 아무 것도 안했어.”


너라고 들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 벌떡.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니 결국,


“······.”


수 초간 날 노려만 보다 결국 제 분에 못 이겨 혼자 씩씩거리는 끝에,


- 쾅!


방을 박차고 나가 버리니 그 누님까지 덩달아 따라 나간다.


“거듭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 친구가 최근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민감한 상태여서···.

이 점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뇨, 아뇨. 저희도 말이 심했습니다.

괜히 일 키우게 되 죄송하게 됐습니다.”


뭐 그런 식으로 한결 얘기가 매듭지어 졌다.

쌓였던 오해도 풀고 원만하게 해결됐고 녹라, 홍라도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이러고 있을게 아니지.”


이제 와서 홍라가 쪼르르 주방으로 간다.

찻잔 달그락거리는 걸 보니 차라도 낼 생각인 듯한데,

들어온 지 꽤 된 시점에 내는 것도 뭐하다.


“잘 해결된 것 같아 다행이군요.”


동네백수형이란 사람까지 기분 좋게 히죽거리고 있는데

이 상황 자체를 매끄럽게 정리해 낸 성과가 뿌듯했나 보다.

뭐, 그럴 만 하지.

나도 신세 진 편이고.

이스칼이 슬쩍,


“이스칼입니다. 덕분에 원만하게 끝났습니다.”


“뭐, 끝이 좀 그러긴 했지만요.”


무슨 조합인지 둘이 짝짜꿍이 척척 맞는 게 의외로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저흰 이만 이 쯤에ㅅ···.”


“그런데 여기서 개인적인 의문이 남는데,

일이 기왕 이리 된 거 물어나 봅시다.

애당초 이렇게까지 싸우게 만든 그 퀘스트가 대체 뭐였습니까?”


말이 미묘하게 겹쳤다.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무리는 아니겠지.

어쨌든 그 일은 당사자인 내가 답하는 게 맞는 듯해 나는 꽤 홀가분한 기분으로 대답,


“대장 반달곰 레이드요.”

“대장 반달곰 토벌 명령입니다.”


했는데 얼떨결에 이스칼과 동시에 대답하게 됐다.


“······네? 지금 뭐라고···?”


근데 반응이 이상하다.


“<대장 반달곰 토벌 명령>이란 퀘스트입니다···만······?”


순간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이 의아하게 동네백수형을 응시하는 와중에,

그는 자신들 팀인 맨 처음 말을 던졌던 그 까칠한 남자와 나, 이스칼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며 대답한다.


“그 퀘스트라면···. 지금 저희가 가지고 있는데요?”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벙쪄있으니 그 소란스럽던 거실이 세상 다 조용하기만 하다.


“마제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물음의 당사자인 ‘마제’라는 사람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군. 이 사람이···.’


도둑 길드에서 그 정신없는 사이에 내 퀘스트 슬쩍해간 사람이라.

어쩐지 처음 봤을 때 그 반응도 그렇고 묘하게 낯이 익다 했다.


“천살마제.”


“워워. 백수야, 진정해. 너무 그러지마.”


덩치가, 아니 덩치 형이 말린다.


“마제도 우리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그리고···.”


나를 힐끔,


“방심했던 쪽도 잘 간수하지 못했던 점도 있으니까.”


······뭐지?

이 한 마디로 분위기가 미묘하게 냉랭해 진다.


- 벌컥.


그 타이밍에 플로리스 저 계집애가 돌아온다.


“······? 뭐야?”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잘 흘러가던 분위기가 다시 묘하게 흘러 삼파전 구도라도 되버린다.

아니,


“하?”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플로리스의 반응 덕분에 순식간에 2:1구도가 되버린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실래요?”


저렇게 싸가지없는 것도 상황에 따라 가끔은 도움이 되긴 하구나.

아무튼 이런 날카로운 추궁에 21호실 사람들이 대처를 주저한다.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사실 도둑질한 사람들이었던 거네요?”


“홍라야.”


“아,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이 말에 다시 정적.

한 쪽은 면목이,

한 쪽은 어이가 없어서인데 어느 쪽이든 뭔가 없는 건 동일하구만.


“저, 그.”


“네, 뭐든 좀 말 좀 해봐요.”


그 누님의 질책에 가까운 말투에 결국 동네백수형이란 사람은 말을 하다가 말아 버린다.


“아니.

결국 당신들이 훔쳐간 거였잖아요.

그럼 당신들이 우리 서혜랑 저··· 브리즈번? 하는 친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중간부터 반말이 되어 버렸음에도 찍소리조차 못한다.


“하씨. 골치 아프게 됐네, 이거.”


그냥 뒷머리만 긁으며 난처하다는 태돈데,

저기요.

난처한 건 저희인 것 같은데요.

우물쭈물하던 것도 한숨 한 번 쉬어 털어 내고는,


“우선 미안하게 됐습니다.

설마하니 그런 내막이 있었을 줄이야···.

저랑 밀러는 진짜 몰랐습니다.”


밀러? 아, 저 덩치 말하는 거겠구만.

어쨌든 도둑놈, 그러니까 그 천살마제가 혼자 잘못했다?


“백수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 밀러가 말을 자른다.

저 말 듣고 이해는 해보려는 중에 이걸?


“뭐, 상황은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하다고도 생각하고 있구요.

근데.”


근데?


“그 상황은 우선권이 있었을 뿐, 실질적인 소유권이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요.

따라서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쪽의 과실도 있다고 보여집니다ㅁ···.”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설마하니 이 플로리스가 든든해 보이게 될 줄은,

그것도 오늘 중으로 그럴 줄은 진짜 꿈에도 상상 못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니 밀러도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래서 어쩌라고.”


“하?”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그 퀘스트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 상태는 아니었잖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뻔뻔함의 극치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ㅊ···.”


“그리고 뒤지게 처맞고 싶지 않으면 말 똑바로 해라.”


“하···. 하···?”


쫄았구만.

근데 저 덩치에 저 태도면 뭐.


- 탁.


“아이고야···.”


천살마제는 뭐가 그리 의기양양한지 들떠 있기까지 했고,

동네백수형은 그냥 세상만사 골치아프다는마냥 골머리나 부여잡고 있다.


한편 이 쪽은 누구 하나 입도 뻥끗 못하고 있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저 위압이라고 해봐야 뭐 게임 안인데.

진심으로 붙는다고 못 이길 상대는 아니긴 하다.


‘근데 뭐가 이리 당당한 거지.’


근데 이렇게 대놓고 배째란 식이니 진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할 말을 잃게 되는 것이다.


“미안하기는 하다고 하신 것만큼은 사실입니까?”


그 때 이스칼이 나섰다.


‘···무슨?’


“그렇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으나 의도했던 건 아니기 때문,

죄송한 점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죄송한데 이따위로 말하냐고.


“물론 그렇다고 퀘스트를 양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이스칼이 깍지끼고 턱을 얹으며 자세를 당긴다.

이 자세는 설마,


“그렇다면 한 가지, 거래를 하시죠.”


그건 우리도 의외였고 저 쪽 방, 상대방에게조차 의외였다.


“거래라.”


그 상대방, 밀러 역시 성의껏 자세를 기울인다.


“들어는 보겠습니다.”


그 성의를 보고 이스칼이 씩 웃더라.

대체···?


“간단합니다. 그 퀘스트, 저희도 껴주십시오.”




“하. 껴달라?

지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이스칼 녀석 특유의 부탁이 아닌 통보에 가까운 이러한 태도,

이걸 처음 보는 사람들이야 황당무계할 따름이겠으나,


‘역시···.’


우리 파티원들은 이미 라파스에서 본 적 있는 상황이라 반응이 한결 옅은 편,

거기까지 본 저 쪽 방 사람들 눈엔 지금 이 상황이 그냥 터무니없기만 해 보인다.


“네.

어차피 그 퀘스트, 21호실 여러분 셋이서 깨는 건 불가능하잖습니까?

탱 하나에 근딜 둘, 화력도 지원도 모든 면에서 부족하시리라고 밖엔 보이지 않는데.”


주변을 슬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저희 파티와 19호실에 사제 두 분,

그리고 보조할 탱도 둘,

거기다 원딜 다수.

이쯤이면 딱 적당한 구색이 갖춰 지리라 봅니다만.”


순간 뭔가 여기사가 말하려다 그 대상에 자신들 또한 포함이 되어 있어 잠자코 상황이 굴러 가는 걸 주시하기만 한다.

그래.

그러면 돼.

가만히 있으면 돼, 우린.


“하하하하하하하.”


실소 한번 참 거하게도 하는데,

이해해.

당하는 입장에선 다들 그러더라구.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어차피 구인하실 생각 아니셨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영 못마땅한 기색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더니,


“적어도 실력 검증 정도는 제 눈으로 하고 받을 생각이지요.”


그러고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너희 데려갈 생각 추호도 없다, 뭐 이런 느낌.


“뭐, 제가 오늘 처음 만난 19호실 분들 실력까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이스칼 시선이 문득 이 쪽으로 오는데,


“제가 꾸려 온 파티 녀석들만큼은 제 직업 최상위권인 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날 가리킨다.


“특히 이번 일의 주인공인 저 녀석만큼은 저희 파티지만 대체 불가능한 전력이라 덧붙여 두겠습니다.”


녀석이 이러니 이 공간에 있는 사람 전부가 날 쳐다본다.

한번은 봤던 상황이라 여유있게만 듣던 중에

갑작스런 주목이며 거기서 내 이야기가 나오니 당연히 당황스럽기만 하다.


“ㄴ···나?”


의도치 않게 과하게 허둥대 버렸다.

그 모습에 우리 파티 녀석들이야 고개를 끄덕끄덕거리지,

다른 사람들은 영 시선이 냉담하다.


“평가가 지나치게 후하시군요.”


그건 그렇지.


“저는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 녀석 솜씨를 직접 보신다면 특별히 귀하의 눈썰미에 하자가 있거나 하지 않는 이상 틀림없이 공감하시겠지요.”


여태 이런 칭찬 하나 한 적 없는 놈이 갑자기 이러니 영 부담스럽기만 하고,

또 이건 대체 무슨 수작인지 영 미심쩍기만 하다.


밀러는 꽤나 날 물끄러미 쳐다봤지만 끝내 못마땅하단 소감을 거두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조금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다.


“흠. 좋습니다.

근데 그런들, 저희가 여러분들을 받아들여서 얻을 게 뭐가 있습니까?”


지당하다.


“두 가지입니다.”


‘그렇게나 많아!?’


나도 그랬지만 물론 밀러 역시 진심으로 의외라는 태도였다.


“호. 두 가지나요?”


“네. 하나는 대장 반달곰 레이드의 경력자의 존재입니다.”


그러니 눈살을 찌푸린다.

참, 그랬지.


“이제 막 처음으로 뜬 레···.”


얘기하던 도중에 뭔가 떠올린다.


“혹시 클베 유저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네. 실제로 저 자신이 클베 때 이 반달곰 레이드를 공략해서 성공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영 못미덥기만 하던 시선들에 조금은 신뢰가 섞인다.

근데 그게 아직 극미량에 불과,

즉 부족하다.


“솔직히 이 부분만큼은 솔깃한 건 인정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하나까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나머지 하나는 바로 여러분들이 찝찝한 일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건 또 뭔.


“하하하하.”


또 쳐웃는다.

근데 그럴 만은 하다.

이런 상황을 이미 한번은 봤던 나조차 저 입장이었음 다르지 않았겠다 싶기만 하니까.


“설마 저희가 여러분들을 거절한다고 양심의 가책이나 느끼고 그럴 인물로 보신 거라면···.”


근데 이제는 아예 노골적이기까지 하네.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문득 깍지 풀고는 다리 꼬으며 뒤로 기댄다.

역시나 녀석 특유의 태도,

다름아닌.


‘끝났다는 얘기라고···?’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기사 자격 박탈이 되는 일이 없게끔 해드린다는 말입니다.”


와.

이 상황에서 이걸 역으로 협박한다고?

어쩐지 믿는 구석이 있다 했더니 이걸 이렇게?


“······.”


살짝 돌려서 협박한 이 내용에 밀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벙쪄있다.

우리 파티 셋은,


- 피식.

- 피식.

- 훗.


실실거리는 시선을 서로 교환하는 가운데,


“말씀드렸듯 전 경험자입니다.

해서 당신네들이 쥐고 있는 그 퀘스트가 진행되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꿰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이 파티원을 꾸리는 틈을 타 퀘스트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도 할 수 있고,

또 당신들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도중을 틈타 방해할 수도 있겠군요.


만에 하나 책임자인 당신이 기사 자격을 영영 박탈당한다면 저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소득이 없는 일인 건 아니겠지요.”


아예 쐐기를 박아 버린다.

그러면 당연히,


“···그게 네 말처럼 쉽게 이루어질까?

그러도록 내버려 둘 것 같냐고.”


이렇게 감정 격해서 반발하기 마련.


“우리 파티 도둑, 브리즈번 저 녀석이 있다면 얼마든지.”


‘아니, 난 왜 자꾸···.’


어쩐지 사람들의 시선이 굉장히 따가워 눈을 둘 바를 모르겠다.

정말이지 날 씹어먹을 것 같은 시선으로 노려보던 밀러는 그러면서 고민을 하고 하며 이어 나가다 마침내.


“하, 뭐 좋아.

이렇게까지 호언장담하는데 그 실력 한 번 안볼 수야 없겠지.”


어, 음···.

이거 잘 풀린 거 맞는 거겠지?


이스칼은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성큼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분배. 전체 분배의 반만 가져가십시오.”


“하?”


“그 반을 다시 반으로 나눠 저희 파티, 저쪽 파티가 나눠 가지면 되겠지요.”


21호실이 반만 가져가는 건 알겠는데 왜 19호실···,


“누구 마음대로.”


“생각 잘 하셔야 할 겁니다.

이걸 거절할 시 당신들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덟 명을 적으로 돌리는 거니까요.”


와. 그렇구나.

이걸 위해서 반의 반, 25%의 분배를 19호실에게 챙겨준 거였다.

분명 처음엔 우리랑 적대적이기만 하던 그 19호실을 끌어들여

이렇게까지 칼자루를 쥔 21호실을 상대로 압박해 거의 삥 뜯다시피 하는데,

와.

진짜 꽤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의 이 미친 수완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내가 다 궁금하다.


물론 눈 뜨고 코 베인 입장에선 당연히 제대로 빡칠 만도 하다.


“그러던가 말던가. 아주 작살을 ㄴ···.”


“밀러.”


근데 이 때 나서는 이가 있다.

다름아닌 여태까지 쭉 잠잠하기만 하던 동네백수형이었다.


“이 제안, 받아들이자.”


“아니, 너까지 왜 이래?”


상당히 격해진 감정의 밀러랑은 달리 침착하게 조목조목 말을 늘여 놓는다.


“말이 공격적이어서 그렇지, 잘 추려 들으면 우리 입장에선 매우 유익한 상황이야.

그만한 훼방을 자부할 정도면 역으로 훌륭한 길잡이가 될 거란 말이잖아?


또 경력자에 능력자, 심지어 그 귀하다는 사제가 둘에 탱도 둘이나 더 생겨.

다들 실력만 확실하다면 구인하는 수고를 더는 셈이니 시간도 절약돼.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가 없지.

그리고.”


이 형도 보통이 아니구만.


“무엇보다 이 일은 우리가 잘못한 게 맞아.

그러니 여기선 못 이기는 척 받아 들여줘보자.

혹시 알아?

이 일 덕분에 이 친구들이라는 사람들을 얻을 수도 있을지?”


와.


“하······.”


“어차피 운 좋게 생긴 기회야.

눈 앞의 작은 돈에 연연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랑은 영 다른 게 도량이 넓다고 해야할 지,

그릇이 다르다는 느낌을 팍팍 받는다.


“맘대로 해.”


밀러는 무슨 토라진 사람처럼 아까 플로리스랑 동일한 과정을 거쳐 우리 방을 나가 버렸고,


“아, 물론. 그 이전에.”


남아 있는 동네백수형이 상황을 정리한다.

그것도 굳이 날 쳐다보면서.


“실력 확인만큼은 철저히 해야겠지?”


결국 모두가 다시 날 쳐다보고 있다.


“······하···.”


왜 하필 나야.


작가의말

감기 몸살 때문에 며칠 고생했네요.

곧 환절기니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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