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유훈 - 막 퍼줘라!
조선의 풍운아 허균과 최고의 의협셰프 한극 콤비가 펼치는 밥의 전쟁. 아스라히 묻혀버린 그들의 웅혼한 의지(意志)가 현대의 절대미각 소녀 한그루에 의해 되살아난다.
아무도 몰랐다.
열세 살 소녀 한그루 양이 절대미각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훗날 그 능력을 바탕으로 유쾌한 재벌이 될 줄을.
그 기이한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한그루의 몸에 스며들었다.
햇살이 따스한 봄날.
소녀는 강둑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강둑 지천에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개나리꽃과 닮은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소녀의 머리 위를 맴돌며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아이고, 우째야 쓰까 잉!”
강에서 평야로 물길을 낸 수문(水門) 위에 앉아 햇볕을 쬐던 노파가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탄식했다.
“안녕하세요.”
소녀가 노파에게 인사했다.
오갈 데 없이 떠돌아다니는 걸인 노파가 집에 올 때마다 소녀는 쌀 한 바가지씩 퍼주곤 했다.
“네 머리 위에 할아버지가 계신다. 얼른 집에 가봐라.”
소녀는 그때 노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흐트러진 백발에 진달래꽃을 꽂고 다니는 노파를 마을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들 했다.
소녀는 머리 위로 나풀나풀 춤추는 나비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정말 나비가 아주 친근하게 계속 따라왔다.
그러다가 어깨 위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너를 무척 예뻐했나 보다. 저리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
노파가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소녀가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 곡(哭)소리가 들렸다.
마당에 천막이 세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엎드려 통곡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거였다.
황등 삼거리에서 정미소를 운영했던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었다.
정미소 곳간 앞에 커다란 항아리 두 개를 놓아뒀는데 각각 쌀과 보리가 들어 있었다.
누구나 필요하면 퍼가라는 자선 항아리였다.
곡식 항아리는 사나흘이면 텅 비었다.
할아버지는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항아리에 곡식을 채웠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항아리를 비우는 법이 없었다.
가을 추수철이면 그 항아리 앞에 벼와 보리, 콩과 참깨 보따리가 가득 쌓였다.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에 정미소 신세를 진 농민들이 이자까지 쳐서 갚곤 했다.
이른바 환곡(還穀)인 셈이었다.
할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납작 엎드려 진심으로 북망산 가는 길을 추모했다.
소녀 한그루가 상복을 입고 나타나자 어른들이 할아버지의 관(棺)을 열었다.
한그루는 주저하지 않고 싸늘하게 식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만졌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편히 가세요.”
할아버지의 표정은 편안해보였다.
한그루는 할아버지의 볼에 입을 맞췄다.
생전에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손녀의 뽀뽀였다
“이 세상에 내 것은 따로 없다. 나누며 살아라!”
할아버지가 남긴 유언이었다.
한그루의 가문은 대대로 호남평야 황등(黃登)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왔었다.
춘삼월 보릿고개에 굶지는 않을 정도의 중농이었는데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위의 할아버지까지 두루 막 퍼주는 성품을 지녀 부자 될 일은 없었다.
그런 가문의 전통은 임진왜란 직후 한양에서 호남으로 귀양 온 시조 어르신의 유훈(遺訓)에서 비롯됐다.
궁궐 숙설소(熟設所)에서 감관(監官)이었던 어르신은 50여 명의 궁중요리사 대령숙수(待令熟手)를 거느리고 나라의 큰 잔치를 치러냈던 분.
광해군 때 역모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황등에 내려왔다.
한양에서 아득한 귀양지였지만 어르신은 잘 먹고 잘 살았다.
혼자만 잘 먹은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두루 맛난 음식 만들어 나눠 먹었다.
닭 한 마리로도 육수를 내 닭계장 수십 그릇을 뚝딱 만들었고, 산에 널린 나물을 철따라 채취해 삶고 데치고 무쳐서 이웃들과 나누었다.
전란 중이라 팔도의 인심이 각박했는데 황등은 달랐다.
요리의 달인이자 미식가인 한 사람이 마을 인심을 따뜻하게 데운 것이다.
황등 사람들의 요리에 고춧가루를 최초로 첨가한 인물도 바로 그 분이라고 했다.
어르신은 십여 년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의 다채로운 맛을 전해주고 세상을 떠났다.
그 분의 솜씨는 알게 모르게 전파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황등 아낙네들의 손맛은 특별했다.
황등에 뿌리내린 한 씨 가문은 그렇게 마을의 정서(情緖)를 선하게 이끌며 대를 이어왔다.
마을 곳곳에 할아버지들의 선행을 기리는 비석이 즐비했다.
6.25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들이 남하해 황등을 점령했을 때 정미소 집안은 부르조아 계급이라 숙청대상으로 찍혔다.
인민군들이 종가의 기와집에 불을 지르려하자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말렸다.
“이 집안은 대대로 소작농과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펴줬답니다. 제발 지켜주세요.”
인민의 편이라는 인민군이 그들의 청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그루네 기와집은 전쟁의 화마(火魔)를 피했다.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시조 어르신의 유언은 틀림이 없었다.
정미소 할아버지도 눈을 감기 전에 짧고 굵은 유언을 남겼다.
“그냥 다 퍼줘라!”
소녀 한 그루는 할아버지의 시신에 뽀뽀를 한 직후 맥없이 관아래 쓰러졌다.
그리고 이틀 동안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어린 소녀가 쇼크를 받아 기절한 걸로 알았다.
그런데 소녀 한그루는 그 이틀 동안 아름다운 여행을 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전생으로 들어가 기묘한 체험을 한 거였다.
드론처럼 공중에 뜬 상태에서 조선시대 황등 마을을 부감(俯瞰)으로 내려다보았다.
시조 할아버지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요리하는 광경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산나물을 뜯고, 금강에서 숭어를 잡고, 메주를 빚는 등 먹거리 만드는 편력이 하이라이트로 빠르게 스쳐 돌아갔다.
어르신의 손놀림 하나하나가 소녀의 뇌리에 문신처럼 각인됐다.
당신은 많은 것을 보여준 뒤 소녀를 올려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얼마나 잠들었던 걸까?
한그루가 눈을 떴을 때 삼일장이 끝나고 막 할아버지의 상여가 집을 나가고 있었다.
소녀는 기력이 없어 출상을 따르지 못했다.
간신히 일어나 마당으로 나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아지와 병아리들이 소녀를 반겼다.
“일어났구나!”
종가의 대문 밖에서 걸인 노파가 고개를 들이밀며 소녀를 불렀다.
“네,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노파를 보면 끼니부터 걱정하는 소녀였다.
“밥 안 먹어도 너를 보면 배부르다.”
노파의 말뜻을 소녀는 알지 못해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러나 이틀 전 둑길에서 노파는 할아버지의 운명을 헤아렸다.
예사로운 할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에 소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초상 음식을 바가지에 담아내왔다.
“마침 음식이 많아 다행이네요.”
노파는 마다하지 않고 바가지를 받아들었다.
“어유, 착한 것! 그러니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했던 거야. 할아버지가 먼 길 가시면서 너에게 귀한 선물을 주셨을 거야. 큰 축복이지만 복에는 반드시 화가 붙어 있으니까 명심해라.”
열세 살 소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노파의 예언은 바로 다음 날부터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설로 소통하는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 작가의말
절대미각 소녀 한그루의 특별한 여행 함께 동행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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