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붕어빵으로 대박을!
조선의 풍운아 허균과 최고의 의협셰프 한극 콤비가 펼치는 밥의 전쟁. 아스라히 묻혀버린 그들의 웅혼한 의지(意志)가 현대의 절대미각 소녀 한그루에 의해 되살아난다.
입학식 날 눈이 내렸다.
3월인데도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황등의 J여자상업고등학교.
여상고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살짝 숙녀 티가 났다.
정(貞), 숙(淑), 현(賢), 진(眞), 선(善), 미(美)
학급 이름도 예뻤다.
대개 미인대회 순위는 진, 선, 미, 정, 숙, 현 순인데 여성의 심성이나 마음가짐의 미덕부터 앞세운 학교의 발상이 참신했다.
아라비아 숫자로 반(班)을 정했던 중학교와는 역시 차원이 달랐다.
대학진학을 소망하는 여학생들은 전주나 익산 같은 도시로 나갔다.
황등의 J여상은 취업이 우선이었다.
가난한 농촌의 여학생들을 사회로 진출시키는 징검다리였다.
익산 인근의 부안, 군산, 김제, 완주 출신 여학생들도 꽤 많았다.
한그루는 별다른 고민 없이 여상을 선택했다.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또 천막교회를 다니면서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미션스쿨 J여상을 당연히 가야할 것 같았다.
“우리 학교에 참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J여상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인성을 가꾸게 될 것입니다. 학생은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 영, 수 과목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게 공부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이 교정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리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즐기고 싶은 취미를 한 가지씩 개발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답게 성장하는 여러분들을 지역사회의 금융기관이나 중소기업이 항상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30대의 젊은 교장 선생님은 축사를 간단하게 전했다.
신입생들이 와아~ 환호성을 올렸다.
한그루는 첫날부터 선배들의 눈길을 끌었다.
선교부와 합창단에서 서로 영입하려 했다.
요리를 통해 불우이웃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봉사하는 앞치마 클럽 선배들도 절대미각 신입생을 예의주시했다.
한그루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아주는 선배들이 고마웠지만 첫날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두드러지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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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등역.
오후에 한그루는 기차역으로 나갔다.
눈이 가득 쌓인 역 앞 공터에 어린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한 구석에 조그만 붕어빵 손수레가 보였다.
손수레 가장자리로 엉성하게 천막을 두른 포장마차.
그 안에서 키다리 목사님이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목사님이 붕어빵을 구울 줄 아세요?”
“할아버지한테 배웠지.”
키다리 목사님은 보란 듯이 노란 양은 주전자의 묽은 반죽을 틀에 부었다.
며칠을 배웠다는데 틀 바깥으로 넘치거나 부족하거나 엉망이었다.
“어휴, 키다리 목사님은 엉터리 목사님!”
다른 건 몰라도 한그루의 눈에 먹거리를 엉터리로 만들면 불꽃이 튄다.
한그루가 손수레 안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감시하기 시작했다.
과연 목사님이 붕어빵을 제대로 만드는지 끝까지 지켜볼 태세였다.
불기가 있는 손수레 안이어도 공기는 차가웠다.
귀 덮개가 있는 국방색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털목도리까지 칭칭 동여맨 키다리 목사님의 코가 빨갰다.
하얀 목장갑을 끼고 쇠꼬챙이로 연신 틀 뚜껑을 뒤적이는 그의 손놀림이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했다.
“모양은 나지 않아도 내가 만든 붕어빵은 속이 알차단다.”
키다리 목사님이 붕어 안에 단팥소를 듬뿍 넣었다.
너무 양이 많아서 밖으로 삐져나오기 일쑤였다.
한그루는 혀를 끌끌 차면서 일단 계속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다 구워진 붕어빵은 제각각 색깔이 달랐고 절 반 이상은 배가 터져 내장이 노출됐다.
“이 붕어빵을 누가 사 먹어요?”
“안 팔리면 천막교회로 가져가서 우리가 나눠 먹으면 되지. 너희들 여고생이 됐으니 입학선물로 안성맞춤이잖아?”
“아멘!”
한그루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키다리 목사님이 머쓱하게 웃었다.
원래 이 자리 손수레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붕어빵 할아버지로 통하는 분인데 오늘 하루 자리를 비웠다.
손자가 전주의 명문대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라 짜장면을 사주러 간 거였다.
눈 오는 날에 붕어빵 매출이 올라간다며 키다리 목사님이 대타로 나섰다.
그는 황등역을 오갈 때마다 천막교회의 여학생들을 위해 붕어빵을 사곤 했다.
그렇게 친해진 할아버지를 위해 일일판매원을 자처한 거였다.
“빵을 그렇게 만들면 할아버지를 돕는 게 아니라 욕보이는 거예요.”
“그래? 네가 보기에 진짜 엉터리니?”
“어떤 건 설 익고 어떤 건 타고 단팥이 다 튀어 나오고!”
“그래도 맛은 좋을 텐데......”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있는 거예요.”
“좋아. 그럼 너랑 같이 새로 만들자.”
“지금까지 만든 붕어빵은 어떡하고요?”
“방법이 있지.”
키다리 목사님이 손수레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가 붕어빵 두 개씩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애들아. 손 시릴 텐데 이 붕어빵으로 손을 녹이렴.”
무쇠 빵틀에서 갓 구워낸 붕어빵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났다.
아이들은 차례로 인사를 꾸벅 건네고 빵을 받아갔다.
“후훗, 그래도 양심은 있으시네. 붕어빵을 먹어라 하지 않고 손을 녹이라 하시니.”
“하하 빵으로 구실을 못하면 손난로 구실이라도 해야지.”
“아아, 안되겠어요. 목사님 풍금은 잘 치면서 왜 빵은 못 굽죠?”
한그루가 빵틀 앞으로 가서 목사님을 밀쳐냈다.
“목사님께 빵틀을 맡기면 주인 할아버지 재료만 거덜 나겠어요. 땜빵을 하시려거든 욕은 먹지 말아야죠.”
“그루야. 이거 아무나 할 수 없어. 나도 하루를 꼬박 배웠는데.”
둘이 티격태격 빵틀을 놓고 다투다가 협업(協業)하기로 합의했다.
키다리 목사님이 반죽과 쇠꼬챙이를 쥐었고, 한그루가 단팥 수저를 맡았다.
눈발이 조금씩 그친 오후.
썰렁했던 황등역 붕어빵 손수레에 하나둘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순간 한 무리의 아주머니 부대가 들이닥쳤다.
“어? 붕어빵 할아버지가 어디 갔다요?”
아주머니들이 손수레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물었다.
키다리 목사와 한그루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워메? 천막교회 목사님 맞지라우?”
“네, 할아버지는 전주에 가셨어요. 저는 일일대타입니다.”
“그라믄 목사님이 우리 아들 붕어빵을 줬는갑소잉?”
한그루는 혹시나 그 붕어빵이 잘못된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아주머니들의 사투리가 굉장히 강하게 들렸기 때문에.
그런데 그 센 억양 뒤에 부드러운 미소가 따라왔다.
그녀들이 앞 다퉈 한 마디씩 던졌다.
“애들 손 녹여부라고 붕어빵을 공짜로 나눠줬담서요?”
“와따 그란다고 귀한 붕어빵을 막 줘불믄 안되지라우. 덤으로 몇 개 더 주는 건 괘않아도!”
“목사님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 그랬을까라우? 우쨌든 내 새끼 손 녹이라고 마음을 써주셨당께 고맙소잉.”
“그랑께 말이여. 얼른 빵을 찍어부씨요. 우리가 전부 사불랑께.”
그녀들은 시장 부녀회원들이었다.
아이들이 공짜로 붕어빵을 받았다는 소릴 듣고 감사를 표하러 왔다고 했다.
붕어빵 하나 값이야 하찮아도 아이들 손을 녹이라고 베풀어준 인정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녀들이 앞치마 전대나 괴춤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키다리 목사님은 쩔쩔 매며 돈을 받았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 기억하기도 어려웠다.
그 사이에 한그루는 그의 쇠꼬챙이를 뺏어 빵틀을 뒤집었다.
그녀들의 주문량을 구우려면 몇 판은 더 뒤집어야 하리라.
반죽이 다 떨어지고 붕어빵도 다 팔렸다.
목사와 소녀는 손을 부딪치고 마감을 축하했다.
“우와, 엉터리 붕어빵으로도 이렇게 장사를 하네요?”
“그럼, 상술의 기본은 막 퍼주는 거야.
“어, 그 말은 우리 집 가훈인데요?”
어둠이 내릴 때 황등역 앞 손수레 천막이 접혔다.
수레를 키다리 목사님이 끌고 한그루가 뒤에서 밀었다.
수북히 쌓인 눈길이라 수레바퀴는 부드럽게 굴렀다.
소설로 소통하는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 작가의말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하루의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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