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망한 일본의 선택은 (1)
이 글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쓰여진 글입니다.
73)
*
닷새 뒤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사과를 반대하는 피켓을 든 우익 시위대.
그들을 막는 경찰과 유혈 사태를 걱정한다는 듯한 자위대가 경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또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일본 소속 여행자들도 야스쿠니 신사 경비를 위해 투입되었다.
그 어떤 위험에서도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
일본은 만전을 기하는 것 같았다.
일본의 공식 사과는 야스쿠니 신사 본전 안마당에서 하기로 했다.
카메라 촬영은 일본 NHK 방송국만 허용되고 타국은 보내주는 화면을 중계하기로 했다.
일본의 모든 정치인과 무릎 꿇고 아카미 천황이 사과문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신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인은 단 여섯 명.
상임이사국 대사 다섯 명과 성철이었다.
경호원은 단 한 명만 데리고 들어올 수 있으며 나머지는 본전 외부에서 대기해야 했다.
“부길드장.”
“네.”
행사 30분 전 신사 안쪽에서 대기하던 양춘삼 길드장과 성철.
“이거 좀 찜찜한데?”
“그렇죠?”
“경호와 경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성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사를 위해 배치한 경찰과 자위대 그리고 일본 소속 여행자들.
이 모든 것이 경호와 경비가 목적이 아니라면.
설마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그럴까?
하지만 일본은 항상 설마를 행해 왔다.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뭐 그것도 좋은 것 같네요.”
“그것도 좋다니?”
“명분이 되잖아요.”
“무슨 명분 말인가?”
“저기 있는 정치인들만 사라지면 일본은 그래도 좀 나아지겠죠?”
“당연히 그렇겠지. 내각은 아히로 총리대신 사람들일 테고 중의원과 참의원들도 대부분 우익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곳을 빠져나가야 가능할 것 같은데?”
“겁나세요?”
“내가? 하하. 웃겼어. 지구의 여행자 중 나를 능가할 여행자는..”
없다고 말하려던 양춘삼 길드장은 눈앞의 성철을 보고 다른 말을 했다.
“한 명뿐이지. 그리고 생각해 보니 트윈 헤드 오우거 족장 정도여야 나를 막을 수 있는데 그 누가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트윈 헤드 오우거 족장.
한 마리만 이곳에 나타나도 자위대는 막을 수 없었다. 여행자들로만 이루어진 파티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성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양춘삼 길드장 혼자였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 유취관에 던전이 있었다는 건데.”
“안 닫았나요?”
“아니. 어제 사전 조사 때 닫힌 것을 확인은 했네. 그런데도 찜찜하단 말이야.”
성철은 양춘삼 길드장이 본능적으로 무엇을 느끼는 것을 알았다. 성철 자신도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끈적하고 불쾌한 그 무엇인가가.
마치 비 내리는 여름 장마의 찝찝함이라고나 할까?
비가 내려 시원한 것 같은데 습기 때문에 끈적거리는 그런 느낌.
하지만 성철은 일본이 그 어떤 패를 들고 나와도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마침내 시간이 됐다.
성철과 양춘삼 길드장 그리고 상임이사국 대사 네 명이 지정된 자리로 갔다.
지정된 자리는 일황과 정치인들이 무릎 꿇는 곳의 맞은편이었다.
마치 성철을 향해 무릎 꿇는 것처럼 보였다.
아히로 총리대신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전 세계는 잘 봐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대 일본 제국이 달라지는 모습입니다.”
아주 공손한 태도와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하지만 단어 선택이 이상했다.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고 사죄할 생각입니다.”
사죄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정말 미안하다. 후회한다. 그런 느낌이 강했다.
“먼저 참의원과 중의원들이 무릎을 꿇겠습니다.”
아히로 총리대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의원과 중의원들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비굴하다. 구차하다. 그런 것보다는 기쁨에 가까웠다.
무언가의 희열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한.
“저 역시 무릎 꿇고 사죄할 것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아히로 총리대신이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우리 대 일본 제국의 영웅들에게 사죄할 뿐 지난 과오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경비를 서던 자위대 군인들이 무기를 들어 성철 일행을 겨눴다.
“오늘날 나 아히로는 전 세계에 선포한다. 대 일본 제국의 부활과 대동아 공영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는 것을!”
성철을 제외한 양춘삼 길드장과 상임이사국 대표들은 어이가 없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일본의 처지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당장 러시아만 해도 삼십 분이면 도쿄에 병력을 투입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도 마음만 먹으면 두 시간 안에 일본을 공격할 수 있었다.
미국은 멀리 있어서 그렇다 해도 중국은 또 어떨까.
아히로 총리대신이 지금 한 말은 자폭에 가까웠다.
“소개하겠다. 영웅 도조 히데키 각하를!”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일본 40대 총리이자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었다. 1948년에 죽은 그가 다시 나타날 리가 없었다.
“크르르.”
신사 본당에서 늑대 인간 족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다.
“또 소개하겠다. 이타가키 세이시로 각하!”
A급 전범 이타가키 세이시로.
만주사변을 기획하고 중국을 침략한 주범.
“쿠룩.”
오크 족장이었다. 오크 족장은 늑대 인간 족장 옆에 나란히 섰다.
“마지막으로 기무라 헤이타로 각하!”
A급 전범 기무라 헤이타로.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이자 악랄하다는 말로도 표현 못 할 전범이었다. 그는 제노사이드.. 그러니까 대학살을 자행한 놈이었다.
난징 대학살, 싱가포르 학살, 바탄의 행진, 산다칸 행진, 마닐라 대학살을 저질렀다.
별명은 버마의 도살자.
“쿠어!”
꽈지끈.. 와장창..
신사 본당이 무너지고 거대한 몸체를 가진 트윈 헤드 오우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분들을 따르는 영웅들!”
사방에서 오크와 늑대인간 그리고 오우거가 모습을 보이며 성철 일행을 포위했다.
양춘삼 길드장과 상임이사국 대사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일반적인 대응 방안만 가지고 왔다.
일본이 몬스터를 이용할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네임드 족장 셋은 치명적이었다.
양춘삼 길드장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요!”
“무슨 짓이긴. 곧 이백만 영웅들을 앞세운 우리 대 일본 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하하.”
일본이 성철에게 마나 석 천 개를 받아간 이유는 이것이었다.
일본은 여행자들이 지구에서 능력을 온전하게 사용하게 됐을 때부터 소환사를 이용해 야스쿠니 신사에 잠든 과거의 전범 영혼을 소환하는 연구를 했다.
전범의 영혼을 소환하는 것에 성공한 일본.
하지만 실체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빙의.
곧 전범의 영혼을 몬스터에게 빙의시키는 것도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강력한 몬스터에 강력한 영혼을 빙의시키려면 순도 높은 마나 석이 필요했다.
A급 전범 세 명을 트윈 헤드 오우거 족장, 늑대 인간 족장 그리고 오크 족장에게 빙의시키는 데만 마나 석 천 개가 들어갔다.
나머지 전범 영혼들은 그동안 일본이 모아온 마나 석을 이용해 빙의시킨 것이었다.
“우리 미국까지 또 적으로 돌릴 생각인가?”
리처드 대사가 나서서 소리쳤다.
“미국이 언제 대 일본 제국의 아군이었던 적이 있었나? 힘을 억제하고 이용하기만 했지.”
“핵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핵 공격이라는 말에 아히로 총리대신은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큭큭큭큭. 핵이라. 얼마든지. 이분들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신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나 역시 몬스터의 몸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
리처드 대사는 주먹을 쥐었다. 핵 공격을 해도 A급 전범이 들어간 저 족장 셋은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몬스터와 달리 마나를 이용하는 저들은 물리적인 공격을 방어할 수도 있었다. 이미 전술핵으로 실험해 봤다.
“이제 거꾸로 너희들이 무릎 꿇을 차례다. 대 일본 제국의 영웅들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사죄하라. 그리고 충성을 맹세해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전 세계에 중계되는 방송에서 성철과 양춘삼 길드장 그리고 상임이사국 대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양춘삼 길드장은 성철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부길드장. 이곳은 내가 어떻게 하든 막아볼 테니까 일단 탈출하게.”
양춘삼 길드장은 일본이 성철이 가진 마나 석을 노린다고 생각했다. 귀환 마법으로 성철이 잃어버린 대륙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성철이 대답하기도 전에 아히로 총리대신이 소리쳤다.
“큭큭큭큭. 이곳에서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귀환마법? 왜 야스쿠니 신사로 너희들을 불렀다고 생각하느냐!”
우우우우..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반투명한 무엇인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반투명한 모습.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나 입었던 군복부터 18세기, 19세기 옷들까지 다양한 옷을 입은 사람들.
일본이 소환에 성공한 영혼들이었다.
“대 일본 제국의 힘을 얕보지 마라. 귀환 마법이나 텔레포트 마법 따위는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일종의 영혼 에너지를 이용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백만 이상이 영혼이 모인 이곳은 귀환 마법이 불가능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성철은 귀환 마법 따위를 사용해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이제 다 깐 거냐?”
“?”
뭐를 깠냐는 듯한 아히로 총리대신의 표정.
“말하면 진짜 이해를 못 해요. 멍청하게.”
너무 당당한 성철의 말투와 모습에 당황한 아히로 총리대신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소리쳤다.
“뭐뭐.. 머라?”
“이제 준비한 것 다 내보인 거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더 자랑할 것 있으면 지금 보여 짜증 나게 찔끔찔끔 꺼내지 말고.”
“네.. 네놈이!”
“그래 너부터 하자.”
성철은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만병이 검으로 변했다.
“무.. 무슨 짓..”
서걱.
어느새 성철이 아히로 총리대신 뒤에 서 있었다.
“무슨 짓이긴. 너희들이 잘하는 짓이지. 너희들 모가지 자르는 것 좋아하잖아.”
아히로 총리대신은 그제야 자신의 목이 잘린 것을 알았다. 의식이 사라지고.
툭.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쿠어어.”
오크 족장이 거대한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너 따위는 내가 상대할 필요도 없다. 흑표.”
크앙!
거대한 몸짓을 가진 상태로 소환된 흑표가 나타나 달려드는 오크 족장의 목을 순식간에 물었다.
으드득.
허무하게 목을 물어뜯긴 오크 족장.
흑표는 반격 따위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 그대로 오크 족장의 몸을 박차고 뛰었다.
드드드득.
머리와 척추가 뽑히자 오크 족장은 그대로 쓰러졌다.
피잉.
빛나는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그리고 오크 족장의 몸에서 빠져나가려는 A급 전범 이타가키 세이시로의 영혼을 꿰뚫었다.
키에에엑.
괴로워하며 불타듯 사라지는 A급 전범 이타가키 세이시로의 영혼.
성철은 하이 엘프의 활을 들고 서 있었다.
“성불은 모르겠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다.”
그때 성철을 향해 조용하고 조심스럽지만 엄청난 빠르기로 접근하는 존재가 있었다.
늑대 인간 족장.
기습에 성공한 줄 아는 순간.
퍼억.
[이놈들 뭐냐. 주인?]
아서가 나타나 거대한 철퇴로 머리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피잉.
다시 성철이 하이 엘프의 활로 늑대 인간 족장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영혼을 소멸시켰다.
“쿠어어어.”
족장 중 마지막으로 남은 트윈 헤드 오우거.
아니 가장 악랄한 A급 전범 학살자 기무라 헤이타로는 모두 성철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방에서 몰아치듯 덤비는 몬스터들과 하늘에서 폭격하듯 내리꽂히는 영혼들.
[어쭈. 웃기는 놈들이네.]
아서는 바로 해골 병사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성철은 베히모스도 소환했다.
바로 소환되자마자 상황을 파악한 베히모스.
[저놈들 상대하면 됩니까! 주인님?]
“유령은 유령이 상대해야겠지.”
[저런 놈들이야 뭐 숫자만 많지 별것 아닙니다. 바로 해결하겠습니다.]
베히모스도 부하 유령들을 소환했다.
아서와 해골 병사 그리고 흑표는 몬스터를 상대하고.
베히모스는 내리꽂히는 영혼들을 향해 부하 유령과 함께 솟구쳐 올라갔다.
자위대 군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명령을 내려야 하는 아히로 총리대신은 목이 잘려 죽었다. 성철의 주변에는 아카미 천황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다 있었다.
그런 자위대 군인들을 양춘삼 길드장과 경호원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본 소속 여행자들은 그제야 움직였다.
“아카미 천황.”
아카미 천황은 아히로 총리대신의 목이 잘릴 때부터 눈을 감고 있었다. 성철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목이 잘려도 할 말이 없다는 듯.
“눈을 뜨고 잘 봐라. 앞으로 당신이 일본을 잘못 이끌면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니까.”
아카미 천황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볼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수많은 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성철의 검은 인정 사정이 없었다. 내각 관료들과 중의원 참의원이 순식간에 모두 죽었다.
“나를 살인자라 욕해도 좋아. 하지만 여기 있는 정신병자들을 다 죽여서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의 전쟁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딴 욕 따위는 얼마든지 들어주지.”
털썩.
아카미 천황은 주저앉았다. 그리고 흐느껴 울었다.
“크흐흑.”
동시에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목이 날아갔다.
[주인! 이놈 도망간다.]
휘익.
성철이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A급 전범 기무라 헤이타로를 향해 활을 쐈다.
피잉.
‘키에에엑.’
성철은 엄청난 숫자 때문에 고전하는 베히모스를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광휘의 기도! 성스러운 화살.”
순수한 광역 치유 신성 마법인 광휘의 기도는 악기에 찌든 영혼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더군다나 끊임없이 생성되는 성스러운 화살은 기관포처럼 날아갔다.
영혼이 이백만이든 삼백만이든 상관없었다.
십 분도 되지 않아 일본이 모든 것을 투자해 만든 것들은 사라졌다.
자위대 군인과 일본 소속 여행자들도 무릎 꿇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다 죽인 아서와 해골 병사 그리고 흑표를 당해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아서.”
[저놈들 다 죽일까? 주인?]
“아니. 항복했잖아. 대신 이곳을 가루로 만들어.”
[흐흐. 그런 거라면 내 전문이지. 가자!]
아서는 해골 병사들을 이끌고 야스쿠니 신사를 진짜 가루처럼 부수기 시작했다.
추천과 선호작 등록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우연인지 몰라도 오늘 일본 백색 국가 지정 결정이..
영혼까지 없애려고 조금 끌었습니다.
이제 진짜 몇 편 안 남았습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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