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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레전드 오브 히어로즈(L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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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e88
작품등록일 :
2019.04.0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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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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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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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 - 첫눈에 반했어요. 04

DUMMY

혐오, 경악, 공포, 애원.


인큐베이터 용액 안으로 넣어진 다이렌은 뭐라 형용치못할 눈빛으로 세준을 바라보며 잠겨들어갔다.

힘이 다했는지 그렇게 잠겨들다, 뿌연 액체에 가려 형체만이 희끄무레 해 보일 정도가 되었을때에서야 조용히 눈이 감겨들었다.


아바타에 누적된 데미지를 감당하지 못하고서 마침내 영육이 분리된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망.


고요하다.

다이렌을 마지막으로 공동의 모든 소란이 잦아들었다.

수백의 괴수와 테노스 소속 특공대 15인은 모두 사라지고 세준만이 남아버렸다.


방금전까지도 묘하게 들뜬 어조로 다이렌을 끝까지 조롱하던 세준이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일변해 있었다.

다이렌의 숨이 멎어가는 모습을 별다른 감상없이 그저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손을 들어서는 머리를 향해 가져갈 뿐이었다.


제대로 깽판쳐놨으니 현실로 복귀한 다음 며칠은 버텨볼 작정이었다.

이름모를 대양에서 벌어진 이번 전장은 기세가 기울어지다 못해 부러진 수준.

3일 정도 버티다보면 마땅히 군주 테노스가 패배했을테니까.


밀리고 밀리던 군주 테노스의 패배는 이제와서는 결코 피하지 못할 운명과 맞닿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준의 욕심이 과했던 모양이었다.

어느정도 욕망을 채웠으면 서둘러 자리를 떠야만했다.

욕심에 눈이 뒤집힌 이들이 흔히 저질러버리는 실수를 그도 따라가고야 말았다.


다이렌을 끝까지 모욕하려던 생각에 시간을 너무 끌어버린 것이었다.

세준의 현실도피를 막아설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그는 잊고 있었다.


챙-


방아쇠에 맞닿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기전, 뒤에서 소리없이 날아든 암습이 권총을 날려버렸다.


대경한 세준은 곧바로 옆으로 구른다음 몸을 바짝 수그리며 자신에게 공격을 날린 대상을 찾았다.



어렵지 않았다.

상대는 몸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그리고 파악된 상대의 정체는 세준에게 작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 젠장... "


무언의 의사교환 끝에 잠정적으로는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자신의 착각이었나보다.

세준은 내심 알량했던 자신의 생각을 자조하며 괴수를 피해 달아날 공간을 찾다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체급 차이, 전투력 차이 어느 면을 보아도 세준은 괴수의 상대가 될수 없었다.

그러니 괴수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삽시간에 오체분시되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 괴수는 세준과 시선을 마주하고서는 그의 시선에 따라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진로를 가리고만 있었다.


세준의 자해를 막아서고 도망치지도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 이봐. 뭐하자는거야? "


" 그륵... 그륵? "


심지어는 세준의 물음에 제딴에는 대꾸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비록, 그가 알아들을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벼운 대치를 통해서 괴수는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어내고야 말았다.

정신이 팔린 세준을 붙잡아두고서 필요한 시간을 끄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철썩-


철퍽-


뒤에서 뭔가가 물살을 가르고 다가오는듯한 소리가 들려올 때에 세준은 심장이 멎어버릴 뻔했다.

방금전에 그가 시선을 돌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시체였다.


' 그러고보니... 아바타가 붕괴하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


숨이 끊어질때까지 모욕을 가했던 다이렌이 눈을 감는 것은 확인했지만, 영육이 분리된 아바타가 소멸하는 것은 확인하질 못했다.

그렇다면 다이렌이 숨겨둔 한수를 꺼내들었던 걸까?


확인은 오래 기다릴 것 없는 일이었다.


털푸덕-


생각이 미치자마자 즉시 잽싸게 몸을 한번 더 굴리며 세준은 방향을 바꿔서 일어났다.


그리고,


" 흐어어어억!!! "



저도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야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그의 눈앞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가 서 있었던 것이다.




굴곡있는 여성체가 알몸으로 서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세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랬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170cm라는 키가 큰편은 아니긴해도 여성 평균 키보다는 높을 터인데 지금 세준을 내려다보는 여성체의 키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


묘하게 다이렌의 얼굴을 기억나게 만드는 인상에다 백설같이 흰 피부만 보자면 미인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이마에 자리한 두개의 자그마한 뿔과, 여성체의 허리께에 살랑거리는 것을 보자면 동족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몸 곳곳에는 왠지 도마뱀의 비늘과도 같아보이는 것들이 반짝거렸다.


더구나, 못해도 2.5m는 가볍게 넘어설듯한 거인이었다.

다이렌의 시체가 아니었다.

인간도 아니다.



" ... "


저벅-


할말을 잊은 세준의 발걸음이 무의식중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자 거인 여성체도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걸음 따라붙는다.


긴장한 세준의 눈에 여성체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 ...가... ㄴ...나... ㅅ...ㅏ... "


뭐지?

의문이 더해가지만 대답을 들려줄 이는 없다.

세준은 거인 여성체의 앞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다음에 벌어질 일이 부디 너무 충격적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녀석은 언제나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을 좋아하는 법.



인간의 언어를 내뱉는 구강의 구조가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여러차례 웅얼거리던 거인이 수차례의 연습끝에 비교적 명확한 의사를 전달할수 있게 되었을 때 튀어나온 말은 기어코 세준의 심장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 인,간... 나... 도... 너... 사랑... "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다이렌에게 가한 모욕이 최대의 위기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전생과 이번생을 통틀어 절대 누군가에게 기대해본 적도 없는 말을 어째서 이 순간에 듣게된 것일까.


' 오, 신이시여...'


세준은 내심 성인이 된 이후로 단 한번도 찾아본 적없는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욕이라도 퍼부어주어야만 했으니까.


옛 속담중에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풀이하자면 준대로 돌려받는다라고 풀어쓸수 있는 한자성어였다.

내심 찝찝함을 느낄만큼 강력했던 보복에 대한 반작용일까.

그러나 너무 가혹했다.



그렇게 삽시간에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가는 세준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거인 여성체의 눈가가 요사스럽게 휘어졌다.



보이드.

공허의 족속들.

그들의 정체는 자신들의 세계를 잃고서 방랑하며 전장에 기생하는 자들이다.


프린세스.

말그대로 공허 일족의 공주였다.

'퀸'이 될 가능성을 품고있는 일족의 모든 가능성이 집약된 개체.



덧없는 시간의 흐름속에 잊혀진 자들은 공허를 떠돌게 된다.

공허를 떠돌면서도 전장에 진입하여 승리하길 바란다.

끝내는 업적을 이루어 언젠가 그들만의 세상을 다시 갖게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공허룡의 일족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만의 신천지를 얻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않은 일이었다.

전장의 출입자격을 놓고 펼쳐지는 공허속에서의 다툼을 이겨내는 것도 어렵지만 아우터월드의 전장에는 현세의 위대함을 잃지않은 신화속의 존재들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들을 알면서도 자기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얻고 싶다는 욕망은 포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이다.


더없는 고련의 길을 걸어온 끝에 공허룡 일족의 프린세스는 아우터월드의 전장에 진입했고, 마침내는 현신체를 구성하는데에 성공했다.


프린세스에게 이번 일은 수십번의 실패끝에 좌절을 느끼는 순간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군주의 지위를 획득하고서도 여러차례 실패한 일이었고, 이번 전장에서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었는데 일이 어떻게되려는건지 꼬이고 꼬이다보니 완벽한 기회로 탈바꿈한 채 그녀의 앞에 당도한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프린세스는 뒤돌아볼것 없이 즉시 강림을 실행했다.


그래서 프린세스는 기쁨을 감출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이 휴머노이드로 소환된 적 잡병의 역할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공허속으로 도피하여 퇴락했다고하나, 그녀는 본디 용의 일족.

보상에 인색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소망 그 이상의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터였다.


그런 이유로...

이 순간 세준의 운명또한 크게 비틀어지고야 말았다.


노랗게 타오르는 두 눈동자가 세준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간다.

프린세스는 의식치 않았지만 그녀는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대양에서 세 군주의 전쟁이 벌어진지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여타 전장이었으면 한창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어야 하는 시기였지만 오늘의 대양은 에메랄드 빛으로 물든 채 평화로운 분위기만을 내보이고 있었다.


" 빌어먹을... "


기함 컴퍼니 호의 갑판에 선 일스 과장은 욕을 내뱉었다.

이 평화를 도저히 반가워할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본래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일스 과장은 연합한 릭서스의 군단과 함께 신나게 공허 괴물의 본진을 털어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군주 릭서스의 협조를 받아내고 안그래도 부족한 군단의 여력을 쥐어짜내 특공대를 구성, 히어로 구출에 나선 것이었는데.


모든 일이 틀어지고야 말았고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일스는 공간이동 기어를 사용하여 간신히 살아남았다.


' 은혜도 모르는 잡병 같으니라고... '



전날 구출작전을 펼치던 날에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던 일스 과장이 이를 갈아붙혔다.

사실 일스 과장은 세준이 수차례의 전장 진입을 통해 어느정도 기본적인 능력은 갖췄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불가사의하게도 남들과 달리 빈번하게 전장을 찾아왔으니, 지금쯤이면 민병이 숙력병으로 거듭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매번 전투만 벌어지면 순식간에 죽어나자빠졌어도 돌아갈때마다 군주께서 보상을 넉넉히 지급하지 않았던가.


세준의 목에 걸려있던 기어를 확인하던 순간에 그 생각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스 과장이 세준을 고기방패로 내세웠던 까닭은 다른게 아니었다.

그동안의 고까움 반에다 세준을 극한에 집어 던져놓고 일스 자신의 눈으로 자질을 확인해두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스로써는 알수없지만 기이하게도 군주께서 매번 계약을 파기하느데도 불구하고 다시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자면, 오래지 않아서 아우터 월드 내에서도 이름좀 떨치는 전사가 되리라는 것은 불보듯 명확했으니까.


그래, 그랬던 것이다.

이쯤되자 일스는 절대 인정할수 없었다.


망가져 가는 전장의 상황을 뒤집기 위한 한수가 망가진 이유가 일스 자신이 잡병을 홀대해서였음을 어떻게 인정하란 말인가.

그럴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 모든 일은 잡병과 도를 넘게 지랄하던 에올린 출신의 에스콰이어들 때문인 것이다.




더구나 이번 전장은 일스가 모시는 군주 테노스 경께 매우 중요한 판이었다.

영지 개발에 쏟아붓던 카르마 포인트가 고갈되기 전에 잡힌 판이었던 것.

이미 진행된 영지의 개발을 취소하면 그동안 투입했던 카르마 포인트들도 전부 다 날리는 상황이니 만약 패하게 되면 아우터 월드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테노스 경께서는 저력있는 군주이니 어떻게든 상환하시는데에는 문제없겠지만 영지의 개발이 늦춰지고 동맹들과의 관계는 삐걱거리게 될 터.

이 모든 불행한 사태의 원인이 일스가 잡병을 홀대한데서 시작했음을 어찌 인정할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스는 입을 다물었다.

돌아온 기함에서 그는 프린세스의 강력함이 상정외였음을 알리고서 침묵했다.


그렇게 맞이하게된 평화였으니 도저히 즐길수가 없는 것이다.

갑판에 선 일스는 저기 하얀 구름 뒤로 새까만 먹구름들이 몰려오는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얼마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버렸다.




3일 뒤, 저녁.

전장 곳곳에 자리하는 조그마한 섬 근처에 정박하고 있던 군주 테노스 경의 선단을 향해 어둠속에 몸을 가린 그림자들이 쇄도했다.


" 끄아아아악!!! "


" 뭐야, 뭐야! 상대는 공허 족속이 아니었어? 어째서 도마뱀들이! "



상황은 혼란스러웠다.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뭉그러진 형체로 촉수를 쏘아내는, 그들이 그간 익히 접해온 공허 족속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쉬식-


갑판에 올라서 해병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몸에 지닌 것은 손에 들고 있는 냉병기를 제외하고서는 알몸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 사실이 해병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어떻게 봐도 습격자들의 벌거벗은 몸체가 완전 무장을 끝낸 그들 자신보다 위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새까만 금속성의 갑피가 전신을 둘러싸고 어깨에는 퇴화한 날개죽지가 펄럭인다.

아름드리 나무통만한 꼬리는 휘둘러질때마다 공기를 찢는 파공성을 발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공격계 기어를 적용시킨 무기들이 적중해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상황을 함교에서 내려다보던 레기온 간부 갈리사르는 머리속에서 잊혀져 있던 지식 하나를 떠올릴수 있었다.


그리고 치를 떨었다.

자신들의 불행에.


' 이런 거지같은! 하필이면 테노스 경의 전장에서 공허족속의 주박이 풀리다니. '


당황이 가시고나자 일전에 테노스 경이 흘리듯 언급했었던 전장의 숨겨진 진실.

어떤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공허의 족속들은 전장을 주유하다 어느 순간, 주박이 풀리며 자신들의 본모습을 찾아간다.


휴머노이드나 다른 종족들이 전장에서 얻어낸 것들로 보다 더 강력하게 진화해간다면 공허의 족속들은 전장의 경험이 쌓일때마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이다.



무정형의 괴물이 껍질을 벗고서 파충류의 형태를 띄었다.

단순한 사실이고 자신들에게 닥친 운명도 명확했다.


안그래도 1:1에서는 강력한 공허 군단이 한단게 더 강력해졌다는 것.

이는 곧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패망일 뿐이라는 소리였다.




바아아아아-


어둠 속, 불타오르는 선단을 향해 다가서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수십미터에 달할 것같은 거대한 날개를 지닌 파충류가 점점 가까워지는 선단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서 숨을 들이쉬었다.


들숨과 호흡을 따라 파충류의 주둥이 앞 허공에는 어둠이 뭉쳐들며 음습한 분위기를 풍겨낸다.

회전과 집약, 그를 통해 격렬히 반발하는 어둠의 입자들이 아우성쳐대며 주변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했다.


이 거대한 파충류의 이름은, 가오르.

한때는 군주 테노스의 휘하에서 멸사봉공하던 기사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공허룡의 공주를 떠받치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



그리고 가오르의 거대한 머리 위에서 불타오르는 선단의 모습을 떨면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그의 정체는 바로 세준이었다.


공허룡의 공주에게 사로잡힌 순간부터 세준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게되었다.

도주도 불가능하고 자살도 불가능.

다행인 점은 도주와 자살만 아니라면 프린세스도 굳이 그를 억압하려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랄까.


그래도 마음놓을수가 없는 것은, 세준에게는 더없이 불행하게도 프린세스가 그를 자신의 반쪽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름답다고 하나 2.5m라는 거대한 신체에 도무지 인간이라고 여길수 없는 분위기를 지닌 프린세스의 반쪽이라니.


이제는 도망칠수도 없었다.

프린세스는 카르마 포인트가 모이자마자 우선적으로 세준의 오른손 등위에 낙인을 찍어버렸다.

낙인이 찍히는 순간, 세준은 자신과 프린세스의 사이에 생겨나는 연결을 명확히 느낄수 있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끝이었다.

새카맣게 변해버리는 미래의 전망에 세준은 좌절하고 떨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세준은 가오르의 머리위에 앉아 있었다.

이것은 현재의 나약한 자신의 반쪽을 강화시키기 위한 프린세스의 의지였다.


세준은 자신의 기구하기 짝이없는 심정을 입을 열어 토해내었다.


" 발사! "



콰아아아아-!


압축되던 어둠의 구가 선단을 향해 밀려들어간다.

아직도 선체를 보호하는 쉴드가 남아있는 함선들이 몇척 있었지만 어둠의 구에서 쏘아진 폭력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한순간 막아서는듯 보이더니 두부처럼 갈라져 속살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꽈아아아앙- !!!



선단의 몰살이었다.

화려한 폭발속에 군주 테노스가 거느린 여러 선단중의 하나가 몰살했다.



이날부터 매일 밤, 군주 테노스와 릭서스의 선단들이 야습을 당했다.

무방비하게 3~4차례의 습격을 당한후에는 사태를 파악한 군주들이 연합의 군세를 한곳으로 모아들였으나 그때에는 공허룡의 군세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뒤였다.


결국 휴머노이드 연합은 패배했고 공허룡의 프린세스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날부터 아우터월드에는 기묘한 소문 한가지가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이 출현한 공허룡의 일족에 빌붙어 카르마포인트와 기어를 약탈하고 다니는 '인류의 배신자'에 대한 소문이.




충격적인 환경의 변화속에서도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공허룡의 일족과 묶여버린 세준은 그 이후로도 6차례의 전장을 더 경험했고, 어느새 달력은 12월 31일을 지나 1월 1일을 가리켰다.


그날도 한차례의 전장을 버텨내고 복귀한 세준은 기묘한 꿈을 꾸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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