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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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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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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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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견문록(見聞錄)

님의 침묵




DUMMY

제2장 선비 한성학



013.


반년 동안 6천여 리의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성학은 ‘북경견문록(北京見聞錄)’을 집필하여 조대비에게 상서(上書)한다. 북경견문록은 단순히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신변잡사를 나열한 기행문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은 바깥 세상에 ‘은자(隱者)의 나라’ 또는 ‘아침의 나라’로 소개된다. 언뜻 보기에 ‘은자의 나라’나 ‘아침의 나라’란 표현은 신비감이나 평온한 인상을 풍기는 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문맹의 혜택을 받지 못한 미개한 나라임을 넌지시 얕잡아본 수사법이다.

성학은 머지않아 ‘은자의 나라’, ‘아침의 나라’에도 서구 열강의 철갑선이 등장할 것을 예언하면서 북경견문론에 ‘참서(讖書)’의 기능을 부여한다.

그는 미래에 닥쳐올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방책(方策)’으로 조선이 처한 현실에 입각하여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서구 열강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선진학문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만 하는 이유로 중국과 일본에 대한 견제를 지적한다. 향후 동북아시아의 패권은 과학과 기술에 바탕을 둔 선진문물을 누가 먼저 선점하는가에 달렸음을 누누이 강조한다.


성학은 나인의 안내를 받으며 창덕궁(昌德宮)의 심처에 자리 잡은 대조전(大造殿)으로 향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젖은 이단(二段) 댓돌은 짙은 회색을 띤다. 댓돌 앞에서 몸을 조아린 나인이 나지막이 상궁을 바라본다.


“예조 한 좌랑, 납셨습니다.”

상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대청 안으로 사라진다.

“대왕대비 마마, 예조 좌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궁이 ‘만(卍)’자 문을 사이에 두고 고한다. 뒤미처 내전 안에서 승낙이 떨어진다.

“어서 들라 하라!”

양쪽에 서 있던 나인이 내전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천천히 연다. 연분(鉛粉)을 담은 함(函)의 뚜껑이라도 열린 것일까. 고혹한 향기가 물씬 풍겨 정신이 몽롱하다. 머리를 조아린 채 큰절을 올린 성학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좌랑, 아니, 이젠 정랑이라 불러야겠군!”

사행을 다녀온 후 성학의 품계는 한 단계 상승한다. 이를 알 리 없는 성학은 어리둥절하며 넙죽 절을 한다.

“부끄러운 성과에 성은을 내려주셔서 망극하옵니다.”

“참, 한 정랑! 성균관 대사성과는 구면이신가?”

박규수(朴珪壽)는 성학을 보곤 고개를 까딱한다.

“대사성 대감의 존함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먼발치에서 가슴속으로만 추앙해온 대감을 직접 뵙게 되니 영광이옵니다. 지금껏 제 철학에 척도가 되어준 분이 열하일기를 집필하신 연암 박지원 대감이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예조에 몸담고 있는 한성학, 문안드립니다.”

성학은 박규수(朴珪壽)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다한다. 규수가 성학 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살아생전에 할아버지를 뵌 적도 없는데, 이렇게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애독자를 만나게 되니, 무량하기 그지없네. 나 또한 한 정랑 이름을 늘 들어왔네. 이번에 사행단과 함께 청나라를 방문했다고 하지? 정랑의 장도를 늘 가슴 깊이 응원하고 있네.”

성학이 수줍은 듯 미소를 짓는다.

“작년에 위문사행의 부사직으로 열하에 다녀오신 대감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규수가 정색하며 점잔을 뺀다.

“어디 정랑하고 견줄 바가 되겠나. 나야 함풍제께서 열하로 피난 갔을 때 위로를 하러 간 것뿐이야. 진정한 사행이라면 북경의 진면목을 봐야 비로소 사신 대접을 받았다고 콧방귀를 뀔 것 아니겠나.”

“열하일기를 쓴 연암 선생의 자손이 아니랄까 봐서, 연행도 열하를 다녀오신 겝니까? 하하하!”

조대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대조전 밖까지 들린다.

“익종 선왕께서 박 대감을 어찌나 어여삐 여기셨던지······”

갑자기 울컥한 조대비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콕콕 찍어낸다.

“진주에서 난이 났을 때 안핵사로 파견돼 조속히 난을 평정하지 않았소. 조정에서 박 대감의 공로를 높이 사고 있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오.”

“모든 것이 대왕대비 마마의 보살핌이 있으셔서 가능했습니다. 성은을 입어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든든한 신하들이 곁에 지켜주니, 하늘에 계신 선왕께서 늙은 신첩을 지금껏 돌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오!”

조대비의 심중을 헤아린 듯 규수가 말을 받는다.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마마!”

“오늘 내가 청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선진문물에 지식이 해박하기 때문이오. 앞으로 서로 교류를 하면서 정을 나누시구려.”

“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마.”

성학이 머리를 조아린다.

“정랑의 견문록은 마치 ‘천일야화’를 보는 듯해서 밤을 하얗게 새고 말았네. 가뜩이나 요새 눈꼬리가 쳐지고 목주름이 생기는데, 정랑한테 책임을 물을까 하네. 하하핫!”

조대비는 사방침에 팔꿈치를 괸 채 한쪽 손으로 목을 쓰다듬는다. 상궁의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나직이 스며든다.

“대왕대비 마마, 흥선군 납시었습니다.”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자 하응이 밭은기침을 한 후 큰절을 한다.

조대비가 농으로 그를 맞이한다.

“대군은 어떠셨소? 보아하니 눈이 퀭하신데, 혹여 간밤에 서음에라도 빠진 게요?”

조대비의 뜬금없는 발언에 하응이 눈동자를 되록거린다.

“무슨 말씀이신지······?”

“간밤에 한 정랑의 ‘북경견문록’을 읽으셨는지 묻고 있소.”

비로소 말귀를 알아들은 하응이 맞장구를 친다.

“이미 노쇠한 몸이라 서음에 빠지는 것은 불가한 줄 아룁니다.”

“듣자 하니, 대군의 처소에 호롱불이 밤새 켜져 있다고 해서 하는 말이외다.”

조대비가 자신에게도 귀와 눈이 되어주는 정보통이 있음을 은근히 과시한다.

“한 정랑의 ‘북경견문록’은 도움이 되셨는지요.”

불필요한 언쟁을 피하려는 듯 하응이 본론을 파고든다.

“되다마다요. 역시 인재를 알아보는 대군의 눈썰미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비록 노안 때문에 책은 멀리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심안이 멀쩡하여 사람의 마음만큼은 아직 읽을 여력이 됩니다.”

하응이 심장에 손을 얹고 대꾸한다. 조대비가 곧바로 응수한다.

“대군의 총기는 장정 못지않게 짱짱하거늘, 뭐가 그리 걱정이랍디까?”

살얼음 위를 걷듯 위태위태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내내 규수와 성학은 마음을 졸이며 감히 끼어들 생각조차 못 한다.


성학은 적색저고리에 청색 쾌자를 바쳐 입고 예조를 찾아온 별감을 보는 순간 짐작한 바가 있다. 별감의 관복은 여느 관직에서 흉내도 낼 수 없는 궁내부 소속만이 착용할 수 있는 옷차림이다. 대왕대비가 머무는 대조전에서 보낸 것이 틀림없다.

성학은 조대비와의 알현을 앞두고 사행을 떠나기 전에 만났던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을 떠올렸다. 지금 눈앞에서 궁궐 내 최고 어른인 조대비와 농담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는 하응은 저잣거리의 뒷골목에서 봤던 추레한 노인의 행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하응의 배포에 새삼 놀라며 혀를 내두른다.


“이렇게 궁 안에서 보니 반갑군!”

하응이 고개를 모로 틀어 성학에게 인사를 건넨다. 성학은 마른침을 간신히 넘기곤 목례로 답한다.

“전에 대감님을 몰라 봬서 송구합니다.”

“그때야, 어디, 내가 사람의 몰골이었던가? 능히 그럴 수 있네. 그나저나 부친은 안녕하신가?”

하응은 수염발을 가다듬는다.

“사행을 다녀온 뒤로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조대비가 끼어든다.

“어디, 그래서야 쓰나? 내 친히 특별 고가를 내릴 터이니, 부친을 뵙고 오게!”

성학은 고개를 조아린다.

“대왕대비 마마의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모르겠사옵니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창살문 밖에서 상궁이 아뢴다.

“대왕대비 마마, 소주방에서 안주상을 대령했사옵니다.”

“어서 들이거라!”

“예!”

나인 두 명이 정갈한 안주상을 내려놓고 뒷걸음질로 나간다.

“어서 받게.”

조대비가 은주전자를 들고 술을 청한다. 성학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잔을 든다.

“주상이 국정을 등한시하는 관계로 술을 따를 수 없구나. 내가 주는 술이 어주(御酒)라 여기거라.”

“예!”

은주전자는 규수를 거쳐 하응 쪽으로 옮겨간다.

“대군도 한잔하시구려.”

“국정을 논할 때 술이 빠져서야 어디 대인배라 할 수 있겠······”

조대비가 하응의 말을 가로챈다.

“어허, 대군! 가당치 않게 저잣거리에서나 쓰는 말을······”

“아이쿠! 파락호로 떠돌던 습성이 그만······, 죄송합니다, 대비 마마!”

“구중심처에 머물며 유일한 낙이 무엇인줄 아시오?”

조대비가 세 사람을 일별한 뒤 하응 앞에서 시선을 고정시킨다.

“대군이 안동김씨 일족을 골탕 먹인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르오. 오늘만큼은 초월이 속치마에 난을 쳐서 술값을 대신할 필요가 없소. 맘껏 드시구려!”

하응은 상 앞으로 바투 다가가 젓가락으로 육전을 집어 뭉떵뭉떵 베문다.

“술값 걱정을 하지 않으니, 밋밋한 궁중 음식도 입안에서 벌이 돼 날아다닙니다. 하하핫!”

술이 몇 순배 돌자 홍조를 띤 조대비가 사방침에 팔을 괸 채 성학을 응시한다.

“그래, 청조가 풍전등화에 처했는데, 앞으로 조선은 어떻게 하면 좋겠나?”

목소리를 가다듬은 성학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대비와 눈을 마주친다.

“안타깝게도 청조는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동치제가 등극한 후 서태후가 정국을 주도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 어수선하고, 밖으로는 서양군대가 몰려와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어린 황제를 앞세운 모후(母后)가 친정을 한다는 말에 조대비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짐짓 자신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총기가 번뜩이는 젊은 선비의 직언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심기가 불편한 하응도 오갈이 든 입술을 비죽이 내민다.

“지금 조선 팔도에서는 삼정이 문란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를 지경입니다. 머지않아 백성들은 세도정치에 실망한 원한을 풀 돌파구를 찾을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농업 생산량이 크게 늘고 화폐 유통이 넘치면서 자본에 맛을 들인 상인층도 기존 정치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양반으로 나뉜 신분 사회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한 징후입니다. 따라서 다시 민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격앙된 민심을 수습할 혁파안이 요구됩니다.”

“흐흠!”

지나치다고 생각한 걸까. 지켜보던 하응이 헛기침으로 주의를 상기시킨다.

“정랑은 계속하라!”

조대비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재촉한다.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시장경제와 조세, 군역, 환곡 등의 제도에 손을 보셔야합니다. 정조 대왕 때 신해통공과 같은 혁파가 필요한 때입니다.

“조선은 문호 개방에 관해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상태인데, 덜컥 서양 것을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안방을 내주는 격이 아닌가! 서양군대에 자금성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가? 그리고 아직 영의정 김좌근 대감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비변사를 장악하고 있는데, 제아무리 신해통공 같은 묘책을 쓴다 한들 의결권을 틀어쥔 비변사에서 통과될 리가 없지 않나!”

하응의 목소리에 화가 잔뜩 배어 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어느 한 나라에만 문호를 개방하는 게 아니라 외교를 원하는 나라와는 전부 조약을 체결하는 겁니다.”

성학이 ‘문호 개방’이란 민감한 사항을 발설하자 하응이 못마땅한 듯 눈을 부라린다. 아직 조정을 장악하지 못한 그로서는 외세에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인 까닭이다.

“이번 사행단의 목적이 무엇인가? 비록 동지사란 이름을 빌고 있지만 주청사가 주된 목적이 아니던가! 조선의 이조 오백년의 법통과 종묘사직을 잇고자 하는 데에도 청조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마당에 외세한테 문호를 개방하자니, 도대체 제정신인가?”

일방적으로 호통을 들은 성학은 잠시 움찔한다. 조대비가 끼어들어 자칫 경색될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대군, 이 자리를 마련한 건 조선의 미래를 가늠할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자는 취지가 아니겠소.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한 정랑의 이야기를 더 들어봅시다.”

조대비가 사방침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성학에게 시선을 던진다.

“지금 청조는 안팎으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청조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속히 조정에서는 조선이 ‘중립국’임을 만천하에 공포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외교를 맺은 각 나라의 특화된 선진문물 즉, 영국에서는 조선과 방직을, 미국에서는 기차와 전신을, 법국에서는 총기와 건축을, 덕국에서는 기계와 농업의 신기술을 전수받는 겁니다. 조선이 중립국의 지위를 앞세우면 영국, 미국, 법국, 덕국의 네 나라도 서로 견제하는 관계이므로 조선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겁니다.”

시종 말을 아끼던 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는다.

“말인즉슨 오랑캐로 오랑캐를 견제하자는 이이제의의 방책을 쓰자는 게아닌가?”

“그렇습니다. 영국과 미국, 법국, 덕국 등 네 나라는 지금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외교적으로 적대적인 네 나라의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면 조선에 득이 될 게 분명합니다.”

조대비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눈알을 궁굴린다.

“한 정량 말대로 문호 개방을 하자고 치세. 그러나 청조도 영, 미, 법, 덕의 네 나라한테 무릎을 꿇었는데, 조선이 그들의 마수로부터 무사할 수 있을까?”

성학은 거침없이 의견을 펼친다.

“청조가 당한 것은 문호 개방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영, 미, 법, 덕의 네 나라한테 연합전선을 펼 시간을 벌어줘서 그런 겁니다. 결국 청조를 제외한 네 나라는 머리를 맞댄 채 지도를 펼쳐놓고 입맛에 따라 광대한 대륙을 나눠 먹기식으로 분할했습니다. 조선도 중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미리 철두철미하게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라 사료됩니다.”

조대비와 규수가 눈을 번하게 뜨고 성학의 의견에 동조한 반면 내내 마른기침을 내뱉던 하응은 고리눈을 뜨곤 반격을 가한다.

“비변사를 장악한 영의정 김좌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과연 정랑의 뜻대로 ‘중립국’이나 ‘문호 개방’을 받아들일 것 같나! 씨알도 안 먹힐 걸세. 안동김씨들이 후사가 없는 임금의 대를 잇기 위해 벌써부터 왕손 중에 반푼이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자자하네. 그들은 타협할 족속들이 아닐세. 섣불리 안건을 냈다가는 삼족이 몰살하는 변괴를 당할 테니, 입 함부로 놀리지 말게.”

조대비와 규수가 하응과 성학을 번갈아본다. 얼마간 하응과 눈싸움을 하던 성학이 정중히 고개를 조아린다. 십여 초가량이 지났을까. 그가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하응을 바라본다.

“새로운 혁파안을 삼정의 정비안과 함께 공론화시킨다면 필시 영의정 대감도 자신들의 안을 고수하기 위해 거래를 해올 소지가 큽니다. 그때 슬그머니 줄 것은 주고, 챙길 것은 챙기며 합치를 내세우면, 김좌근 대감 쪽에서도 마지못해 개혁 시책을 수용할 것입니다.”

성학의 입만 좇던 조대비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허! 그것참 묘수가 아닐 수 없군. 정랑의 생각은 같은 사행을 다녀온 정사와 부사의 상계와 어찌 그리도 다르더냐! 정사와 부사는 아직 청조는 건재하니 유교 숭상을 근본으로 내치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했다던데······. 그리고 서양 무리가 아예 조선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각 강마다 어귀에 쇠말뚝을 박아야 한다고 주청했다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겐지, 도통 모르겠군. 요목조목 따져 보니 무조건 외세와 단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생각이 들긴 하다만······, 대사성 생각은 어떠신가?”

허리를 곧추세운 규수가 밭은기침을 삼키며 대꾸한다.

“한 정랑의 의견에 적극 찬동합니다. 열하에 갔을 때 몇몇 청나라 학사들과 교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도 공히 청나라의 때늦은 통상책에 깊은 회의를 드러냈습니다.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농락한 걸 두고, 다음은 일본과 조선이 차례가 될 거라 하더군요. 지금부터라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으흠! 청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그 변방에 속한 조선이나 일본은 얼마나 쉬운 먹잇감일꼬.”

한숨을 쉰 조대비가 하응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대군은 어찌 보시오?”

“소신 생각도 대비 마마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시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은 안동김씨 일족을 하루속히 내쳐 종묘사직의 대통을 잇는 것이 급선무라 사료됩니다. 내실을 공고히 다진 다음에 서구 문명이든 신식 무기든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쪽에서 임금을 옹립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문호를 개방하든지, 제도를 개혁하든지, 할 게 아니오!”

조대비는 가르마에 얹은 용무늬의 첩지 주변을 대바늘로 콕콕 찌르며 잠시 골몰한다. 편두통이 재발하거나 감정이 미묘할 때마다 그녀는 버릇처럼 대바늘을 찾곤 한다.

“이렇게 합시다! 김좌근은 필시 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양을 오랑캐로 몰아 사냥감으로 삼을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겠소. 대군께서는 안동김씨 일족을 몰아내고 법통을 이을 만반의 대책을 세우도록 하세요. 특히 조세나 균역, 환곡 등 백성의 환심을 살 만한 혁파안이 필요할 게요. 그리고 대사성과 정랑은 들으라!”

“예!”

규수와 성학이 머리를 조아린다.

“그대들은 서구 문명에 해박한 문사, 박사, 역관을 끌어 모아 외교 방책을 짜도록 하라! 모든 뒷배는 내가 맡아 줄 것이야. 그리고 안동김씨 일족한테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비밀을 유지하도록 하게.”

“대왕대비 마마의 분부를 받잡겠나이다.”

규수와 정랑은 비장한 각오로 입을 모아 답한다.

“나와 대군은 종실의 의견을 이끌어 뒷말이 나지 않도록 단단히 후사를 점찍어 놓겠다!”

조대비의 강경한 입장을 알게 된 하응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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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50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48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53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60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48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49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52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49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47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45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51 2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53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46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46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47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50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49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53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51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51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51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52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51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52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52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53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53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57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54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54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54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56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54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54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56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57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57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57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63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60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58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59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57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58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64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62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60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62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65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71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68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68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67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69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69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77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75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81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76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75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80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94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80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84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82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81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82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92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92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95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96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97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06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158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142 6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155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169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176 7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180 7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216 10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213 11 24쪽
»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243 12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306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394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565 12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099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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