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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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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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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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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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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쪽

15화 춘투(春鬪)

님의 침묵




DUMMY

71.


일본과 러시아는 ‘정동성당폭파사건’ 이후 첨예하게 대립한다. 고종 황제는 1904년 1월 22일 전격적으로 대한제국은 ‘국외중립(局外中立)’임을 선언한다.


1904년 2월 6일

러시아와 단교를 선언한 일본은 우류 제독이 이끄는 함대를 서해로 파견한다. 이미 제물포항에는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의 함대가 정박하고 있다. 항구에 모여든 각국의 군함 사이에 치열한 정보전이 펼쳐진다.

제물포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해로가 비좁아 군함이 드나들기에는 부적합하다. 일본의 순양함 ‘치요다’가 가까스로 러시아 순양함 ‘바랴그’ 옆에 정박한다. 밤마다 양국의 전함은 함포를 개방하고 호시탐탐 상대를 노린다.


1904년 2월 8일

2,200명 규모의 지상 병력 4개 대대를 항구에 상륙시킨 일본 함대의 우류 제독은 러시아 함대에 다음과 같은 선전포고문으로 도발한다.


‘9일 정오까지 제물포항을 퇴거하지 않으면 항구 내에서 교전을 불사하겠다.’


고종 황제는 이미 한반도와 부속 도서를 아우르는 대한제국의 영토를 중립지역으로 선포한 바 있다. 중립국 항구 내에서 정박하고 있는 군함에 대해 교전을 선포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명백히 교전수칙위반에 해당한다. 일본 대본영도 우류 제독에게 중립항에서의 교전을 불허한다는 훈령을 보낸다. 그러나 함대를 이끄는 우류 소장은 본국의 명령을 묵살한다.

항구 내에 정박하고 있는 각국 함대의 대표자격으로 영국 함장이 순양함 ‘다카찌’에 오른다. 그는 우류 소장에게 강경한 어조로 항의한다.

“중립국의 항구 내에서 어떠한 교전도 허용할 수 없소. 만약 교전을 개시하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소.’


그러나 제물포 앞바다에 순양함과 어뢰함 등 총 14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를 포진시킨 우류 제독은 영국 함장의 항의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우류 제독의 목적은 오로지 남하를 노리는 러시아의 태평양함대를 제거하는 데에 있다. 뤼순(旅顺)을 모항으로 하는 러시아의 태평양함대를 눈앞에서 놓아주면 만주진출에 크나큰 장애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발틱함대까지 합세하여 대항한다면 전력상 열세인 일본은 훗날을 기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류 소장으로서는 목숨을 건 도박인 셈이다. 본국의 명령마저도 묵살한 그는 영웅이냐, 역적이냐의 기로에 서기로 작정한 듯하다.

일본의 알력에 일단 철수를 결정한 러시아 함대는 제물포항을 빠져나간다. 순양함 ‘바랴그’와 ‘코레츠’는 제풀포 앞바다의 팔미도 근처에서 일본 함대와 맞닥뜨린다. 러시아 함대의 퇴각을 예상한 우류 제독은 전방에 영국에서 건조한 최신식 순양함 ‘아사마’를 배치한다.

양국 간의 해상전은 교전 15분 만에 싱겁게 끝난다. ‘아사마’의 선방으로 시작된 일본 함대의 함포 공격으로 ‘바랴그’와 ‘코레츠’는 전의를 상실한다. 함교가 박살나고 좌현으로 기운 두 순양함은 부랴부랴 제물포항으로 피난한다.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교전 중 항복한 장교로 기록될 것을 두려워한 루드네프 대령은 자침을 결정한다. 부상자와 수병들이 중립국 함으로 인계된다. 결국 태평양 함대의 주력이던 순양함 ‘바랴그’의 기관실과 선수에 폭탄이 설치된다. ‘바랴그’는 폭발과 함께 격실에 물이 차오르면서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72.


제물포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은 신속히 정국의 안정을 꾀한다. 더 이상 재판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은 상원을 경무청 감옥서로 이감하기로 결정한다.

때 늦은 눈보라가 도심의 교통을 마비시킨다. 헌병대들이 상원이 탄 마차를 겹겹이 엄호하며 호송 작전을 펼친다. 상원이 탄 마차 앞으로 기관총을 장착한 마차가 선두를 호위한다. 호송대가 막 광화문 일대를 지나칠 무렵, 서대문 방향에서 오던 전차가 경적을 울리며 광화문 사거리로 접근한다. 정거장에 멈춰서야 할 전차는 가속을 하며 승객들 앞을 지나친다.

겁에 질린 행인들이 뒤로 물러선다. 당황한 호송대가 전차를 향해 기관총을 겨냥한다. 전차는 선로 위를 지나던 호송대의 선두를 그대로 들이박는다.


급습을 당한 호송대는 탈선한 전차에 가로막혀 둘로 나뉜다. 헌병대가 전차를 사이에 두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종로 쪽 피맛골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복면한 채로 거리로 뛰어나온 단원들은 둘로 나뉘어 총격전을 벌인다. 뒷배를 담당한 단원들이 헌병대와 총격전을 시작할 즈음 전방을 맡은 단원들은 곧장 호송 마차를 경호하는 병력을 제압한다. 그러곤 철창을 덧댄 마차의 문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다. 폭염과 함께 철창의 파편이 허공으로 솟구친다. 단원들은 뒤집어진 마차에서 상원을 끄집어낸다. 건장한 단원이 기력이 쇠한 상원을 둘러업고 피맛골로 내달린다.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거리 곳곳에서 귀청을 찢는다. 전열을 가다듬은 헌병대가 피맛골로 접근한다. 뒷걸음질을 치며 총격전을 벌이던 단원들이 연막탄을 던지고 골목으로 사라진다. 희뿌연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른다. 헌병대는 갈팡질팡하며 눈길 위에서 허방을 딛기 일쑤다.

인천에서 탈출소식을 접한 카지는 땅을 치며 후회한다. 사실 그는 상원의 이송을 반대했다. 이송을 하더라도 본인의 참여 하에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본국에서 온 긴급명령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러시아 함대가 인천항에 정박한 이후로 본국에서는 정보통으로 잔뼈가 굵은 그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러시아 함대의 재원과 병력 규모 등의 동향을 살피는 임무가 주어진다. 결코 일신상의 이유로 거부할 수 없는 임무가 하달된 것이다.

제물포에 파견된 카지는 러시아 함대를 정탐한다. 그는 러시아 수병들이 휴식을 취하는 틈을 노려 육전대 4개 대대로 항구를 포위한다. 제물포전투를 승리로 이끈 카지는 군대와 함께 한성에 진군하여 덕수궁을 둘러싸고 무력시위를 펼친다.


일본의 침략행위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2월 23일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말살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다.


4월 3일

러일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한 일본은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을 편성하여 일본군 2개 사단을 주둔시킨다. 군사력을 확보한 일본은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대한제국의 모든 권리를 조직적으로 침탈한다.


7월 20일

일본군이 치안을 담당한다는 ‘군사경찰훈령(軍事警察訓令)’을 선포하며 대한제국의 치안권을 박탈한다.


8월 22일

‘한일 외국인고문초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고, 10월 ‘메카다 다네타로’가 재정고문으로 초빙되어 ‘재정·화폐정리’를 구실삼아 재정권을 빼앗는다. 이후 군사·경무·학부·궁내부 등에 일본인 고문이 장악하며 이른바 ‘고문정치(顧問政治)’를 시행한다.


9월

진보회와 유신회가 ‘일진회’로 통합되면서 매국활동을 개시한다.


12월

친일파인 미국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외교고문으로 임명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차단된다.


1904년 벌어진 일련의 침탈 과정은 철저한 준비와 정교한 계획에 의한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보호국이란 명목으로 반식민지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을 목격한 전국의 유생이 들고일어나 일본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린다. 7월과 8월에 단행된 치안권과 재정권의 박탈은 의병운동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격발장치로 작용한다.

황제의 밀지(密旨)를 가슴에 품은 이승만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정부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미국은 극동아시아의 맹주로 일본을 낙점한 뒤였고, 유럽의 나라들도 대한제국의 몰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터였다.

상하이에 정박한 프랑스의 극동함대도 불필요한 내정간섭을 삼가라는 본국의 훈령에 따라 일체의 군사 활동에서 손을 뗀다. 이로써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의 나라들을 끌어들이려는 상원의 계획은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과 함께 물거품이 된다.




73.


탈출 사건 이후 불순세력으로 분류된 인사들이 현상수배명단에 오른다. 식민지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될 즈음 카지는 반역자 숙청에 열을 올린다.

카지는 제물포해전의 1등 공신으로 추서되어 대위로 특진한다. 그는 무사시의 죽음으로 공백이 된 특무관으로 임명되며 고문정치 일선에 깊숙이 가담한다. 그에게는 일본에 대항하는 불순세력을 척결하라는 전권이 주어진다.

그는 각 지방에 파견된 헌병대 가운데 수사에 정통한 대원들을 선발하여 특별전담반을 조직한다. 특별전담반은 소속된 기관이 없이 오직 카지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사조직의 형태로 운영된다. 중위로 진급한 후지하라가 특별전담반을 이끈다.

아침부터 남산 예장자락의 적산가옥을 안가로 쓰고 있는 특별전담반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뭣들 하는 거야? 아직도 신상원을 체포하기는커녕 그림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잖아? 너희들의 무능은 곧 나의 무능을 의미한다. 내 이력에 먹칠하는 일이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

카지가 재떨이를 던지며 불같이 화를 낸다. 선뜻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한다. 그는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 뒤 화를 가라앉힌다.

“반장, 보고해 봐!”

머리를 조아리던 후지하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각 지역에 밀정을 파견하여 아리랑 조직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곧 윤곽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그놈의, 같습니다, 같습니다, 같습니다. 꾀꼬리도 아니고 지겹지도 않나?”

“죄송합니다.”

“중위! 앞으로 ‘같다’는 말은 용서치 않겠다.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사항만 보고해!”

너무 긴장한 탓일까. 보고서를 넘기던 후지하라가 엉뚱한 곳을 펼친다. 카지가 책망의 눈길로 그를 보며 혀를 찬다. 허둥지둥하던 후지하라가 제대로 된 쪽을 찾아 보고하기 시작한다.

“‘돈버거’ 건에 대하여 보고 드리겠습니다. 일진회를 동원하여 불매운동을 벌인 결과 매출액이 삼분의 일로 떨어졌습니다. 아리랑 조직의 자금줄에 크나큰 타격을 입힌 게 확실합니다. 향후 전국의 일진회 조직을 활용하여 인천과, 부산, 원산, 군산 등지의 ‘돈버거분점’ 앞에서 불매운동을 펼칠 예정입니다.”

“돈줄을 틀어막아야 쥐새끼들이 밖으로 기어 나오는 법이지. 좋았어. 그건 그렇고 박미라의 남편은 아직도 오리무중인가?”

“집과 점포 근처에 24시간 밀정을 잠복시켰지만, 아직 놈의 행방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카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탁자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대원들은 잔뜩 긴장한 채 어깨를 움츠린다. 카지는 일일이 대원들의 어깨를 힘껏 쥐며 눈을 맞춘다.

“‘역지사지’가 무슨 뜻인지 알지?”

고개만 끄덕일 뿐 누구도 섣불리 대꾸하지 않는다.

“대일본제국의 헌병이라면 모를 리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의 말투가 고분고분하게 변한다.

“괴물과 싸워서 이기려면 스스로 괴물이 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어. 놈들과 싸우려면 우리도 철저하게 놈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놈들의 영혼을 훔쳐봐야 한다는 뜻이야.

그러면 분명 쥐새끼 놈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동선이 파악되겠지.”

후지하라가 선창을 하면 모두가 따라 한다.

“하이! 대장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뭐가 보이지 않겠나?”

흘금흘금 눈치를 보던 후지하라가 의견을 내놓는다.

“대장님, 아리랑조직의 생명력은 바로 돈줄에 있다고 봅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박미라를 탈세혐의로 구속하여 탈탈 터는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점방은 없으니까요. 자금이 쪼들리게 되면 박미라의 근황이 조직 내에 퍼지겠죠. 물론 어린 아들이 홀로 남겨졌다는 얘기도 함께 말입니다. 아비인 이상 한경덕도 모른 척하지 않겠죠.”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내가 부하를 잘 둔 것 같군! 상상력을 발휘하면 이렇게 묘수가 나오지 않나? 당장 실천해!”

“하이! 당장 서촌에 대원들을 잠복시키겠습니다.”



74.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조계사 앞을 지나쳐 전동(磚洞,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 쪽으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다. 노인은 주위를 경계하며 혼잣말로 되뇐다.


‘하필이면 왜 신문사에서 보자고 한 걸까. 그것도 일본의 감시대상 1호인 대한매일신보에서······, 아마 선생님의 깊은 뜻이 있겠지.’


경덕은 길을 걸을 때마다 전봇대에 붙어있는 수배 전단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그가 상원을 만나는 것은 탈출 이후 처음이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갈 수도 있는 거리다. 그러나 그는 지팡이를 짚은 채 전차정거장을 두 번씩이나 지나친다. 그는 수상쩍은 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좌판이 벌어진 거리를 벗어나 신문사의 계단을 오른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왕의 비자금과 애국지사의 후원금으로 창간한 일간지다. 대한매일신보는 연일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일본은 눈엣가시인 대한매일신보를 폐간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번번이 좌절된다.

신문사를 설립한 어니스트 베델이 영국 국적이므로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처지다. 물론 전동 근처의 술집이며 찻집에 첩자를 심어두어 신문사의 꼬투리를 잡긴 했지만 영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두려워 폐간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상원은 과감하게도 신문사를 회합의 장소로 선택한다.


편집실에 나타난 노인을 보곤 모두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나같이 신부와 장사꾼에 여장까지 한 터라 첫눈에 알아보지 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한 동지 어서 오시게. 그동안 부쩍 늙어서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 할 뻔했네! 하하핫!”

신부복으로 위장한 상원이 노인을 반갑게 끌어안는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조직원들도 비로소 웃음을 터트린다. 조직원들은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묻곤 자리에 앉아 회의를 시작한다.

“아리랑의 투쟁노선을 전향할 때가 왔소.”

상원은 조직원을 일별한 뒤 강단 있는 어조로 말을 잇는다.

“대일본투쟁을 본격적으로 할 것이오. 나는 세 동지들을 이끌고 의병운동이 일어난 곳을 순회하며 무장단체를 결성할 것이오. 한 동지는 한성에 머물면서 춘투에 관련한 모든 작전을 총지휘하시오. 전국에서 유생들이 상경하여 대규모 상소를 올린다고 하니, 그들과 연대하여 ‘제3의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시오. 한성에서 한 동지가 민중봉기를 선동하고, 내가 지방에서 무력투쟁의 선봉을 서면 잠잠했던 대일본투쟁의 불씨가 살아날 것이오. 그렇게 되면 일본도 민심을 두려워해 함부로 국권을 찬탈하지 못할 것이오. 동지들의 의견을 듣고 싶소.”

조직원들은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상원의 뜻에 동조한다.

“돈버거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동대문과 부산, 인천 분점에서도 계획적으로 일진회가 개입한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아무래도 돈줄을 죄려고 할 속셈인가 봅니다.”

경덕이 민감한 주제를 던지자 일순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흠······.”

상원의 입에서 날숨이 새어 나온다.

“앞으로 일본의 압박은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네. 더 이상 조직의 자금줄을 박 사장한테만 맡길 수 없네. 위험부담이 너무 커! 게다가 자네 신분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으니, 당분간 대한매일신보에서 대준 후원금으로 군자금을 조달할 생각이네. 그리고 향후 거사는 군자금 담당자를 전국에 파견하여 독립운동자금을 거둘까 하네. 그리고 박 사장은 여성조직을 규합하여 국민계몽운동을 펼치도록 하겠네. 당장 돈버거를 접으면 놈들이 의심할 수 있으니, 한동안 지속하는 걸로 하게.”

“예, 알겠습니다.”

“한 동지, 춘투는 어떻게 준비할 건가?”

상원이 궁금증을 드러내자 경덕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표정을 짓는다.

“경칩에 원구단을 필두로 해서 대안문과 종각, 서대문, 동대문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열 계획입니다. 외신과 외교가에도 미리 공고문을 보내 민주적인 평화집회임을 알리고자 합니다. 한성의 모든 학생대표가 집회에 참석하기로 약조했습니다. 집회 이후에는 특정 날을 지정해서 정기적으로 파업을 강행할 계획입니다.”

“독립협회를 강제해산할 당시 황국회가 동원된 것처럼 이번에도 헌병대를 등에 업은 일진회가 전면에 나서서 방해 공작을 펼칠 걸세. 일부러 도발을 하며 유혈사태를 유도할 테지. 그렇게 해야 집회가 민주시위가 아닌 폭력집회로 비춰질 테니까. 아무쪼록 무고한 시민이 피를 흘리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네.”


상원은 조직원들과 일일이 굳은 악수를 나눈다. 조직원들이 각자 모자와 지팡이 등의 분장 도구를 챙겨 편집실을 빠져나간다. 상원이 지팡이를 쥐려는 경덕의 팔을 잡는다.

“아이 이름이 뭔가?”

“인호입니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대부를 맡아준다고 말만 하고 아직 인호 얼굴도 못 봤으니 할 말이 없네. 아들은 잘 생겼겠지?”

경덕은 가짜 수염을 떼었다 붙인다.

“어딜 봐서 못난 구석이 있겠습니까?”

“하하핫! 분장만 하고 다니니 자네 얼굴을 깜빡했네. 이화학당의 메이퀸을 사로잡은 사실을 깜빡했군! 하하핫!”

“다음에 뵐 때까지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선생님이 무탈하셔야 아리랑도 건재합니다.”

“사무엘 신부님이 그리도 염원하던 춘투의 그날까지 우리 모두 별일 없기를 바라네.”


상원은 거울 앞에서 목에 두른 희고 빳빳한 로만 칼라를 매만지고 있고, 경덕은 수염을 쓰다듬은 뒤 지팡이를 손에 쥔다. 두 사람이 떠날 채비를 할 즈음 편집실의 문이 벌컥 열린다.

“큰일 났습니다.”

배재학당에 재학 중인 청년은 문에 등을 기댄 채 숨을 헐떡인다.

“모임에 지각까지 하고, 대체 무슨 일인가?”

상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나무란다.

“학교를 파하고 이곳으로 오는 길에 돈버거점방 앞을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경무청 순검들이 점방 안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지 정탐하려고 지켜봤습니다. 박 사장님과 순검 간에 실랑이가 오가는 것을 들었는데, 순검들이 탈세를 조사한다며 장부를 내놓으라고 윽박을 지르더군요. 박 사장님이 극구 부인하자 순검들이 박 사장님을 결박하여 경무청으로 끌고 갔습니다.”

경덕은 핏기가 걷힌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상원은 가르랑거리는 숨결을 삼키곤 무거운 입을 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선생님, 제가 가 보겠습니다.”

상원이 경덕의 팔을 붙잡는다.

“흥분하면 안 돼! 놈이 자네를 체포하려고 일부러 덫을 놓은 게 틀림없어.”

경덕은 상원의 손을 뿌리친다.

“집에서 인호가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릴 텐데······, 저라도 가서 아이를 돌봐야죠.”

“바로 그 점을 놈들이 노리는 거야. 절대 속아서는 안 되네.”

“선생님!”

경덕은 고리눈을 뜨고 상원을 쏘아본다. 얼마간 두 사람 간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상원이 그를 끌어안곤 속삭인다.

“박 사장은 내가 손을 쓰겠네. 서촌에도 따로 사람을 보내 유모한테 오늘 밤 아이와 함께 지내라고 연통을 넣겠네.”

경덕이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흐느낀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거야. 놈들은 동지 간에, 부부 간에 이간질을 시켜 미끼를 놓아 아리랑 조직이 밖으로 노출되기를 원하고 있어. 절대 말려들어서는 안 돼. 마음 크게 먹도록 하게.”


그날 밤 상원은 대한매일신보의 사장 ‘어니스트 베델’을 만난다. 그는 미라가 구속된 사실을 알리고, 일본이 ‘아리랑’ 조직을 와해하려는 배후세력이라 주장한다.

베델은 이따금 ‘돈버거점방’을 방문하여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단골이다. 그는 이튿날 사회부기자를 호출하여 돈버거에 얽힌 이야기를 취재하라고 귀띔한다. 기자는 돈버거와 경무청을 탐문하며 저간의 사정을 취재하곤 기사를 작성한다.

며칠 뒤 돈버거를 둘러싼 탈세사건의 전모가 대한매일신보을 통해 밝혀진다. 내용인즉슨 ‘돈버거점방’의 박미라 사장은 그동안 꼬박꼬박 세금도 잘 냈을 뿐만 아니라 학교를 신축하는 등의 자선사업에도 솔선수범했다는 점과 일진회의 지속적인 방해에도 꿋꿋이 사업을 운영했다는 점이 부각된다. 또한 박 사장이 억울한 모함에 얽혀 구속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경무청의 비협조적인 자세를 비난한다. 그러곤 경무청을 상대로 성실한 납세자인 박 사장의 구속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으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경무청 앞은 연일 시끌벅적하다. 시위대는 경무청에서 덕수궁까지 행진하며 미라의 석방을 요구한다. 시위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 고종 황제는 경무사를 불러 크게 호통을 친 뒤 미라의 석방을 명령한다.

미라는 황제의 불호령이 떨어진 직후 바로 석방된다. 서촌 인근에서 잠복하던 후지하라는 결국 한경덕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허탕을 치고 만다.





75.


한성(漢城)이 일본 수중에 들어간 후 각국 공간이 밀집한 정동의 분위기가 들썩인다. 전쟁에서 참패한 러시아는 서둘러 공사관을 철수시킨다. 그 외의 나라들도 주재원의 수를 크게 줄이며 일본의 눈치를 살핀다. 정동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은 고스란히 ‘돈버거점방’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진회 소속의 회원들은 매일 ‘돈버거점방’ 앞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인다. 그들은 ‘돈버거는 식중독의 온상이다!’, ‘세금포탈 악덕업주는 물러나라!’라는 악의적인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노골적으로 영업을 방해한다.

가뜩이나 외국인의 발길이 뜸하면서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사주를 받은 유통업자들이 거래를 끊는 바람에 돈버거점방은 개점휴업상태를 맞이한다. 미라가 하는 일이라곤 일진회 소속의 회원들이 밤새 덕지덕지 붙어놓은 전단지를 떼어내는 일이 고작이다.

의식 있는 학생이나 시민이 일진회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준다는 점은 그나마 미라에게 큰 위안이 된다.


진달래가 수줍게 꽃망울을 틔운 길을 따라 걷는 미라의 표정이 화사하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올려다본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향긋한 새싹의 향기에 취한 듯 얼마간 숨을 고른다. 불길한 예감이라도 감지한 것일까. 그녀가 번쩍 눈을 뜨곤 주위를 힐끔거린다. 어느새 서글서글하던 눈매는 종적을 감추고 눈동자가 움푹하게 꺼진다.

그녀가 막 정동교회 앞을 지날 때였다. 저만치 ‘돈버거점방’ 앞에서 구경꾼들이 웅성거린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발걸음이 점점 심장박동수와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정동에서 장사를 하려면 자릿세를 내야지? 주인이 누구야? 주인 나오라고 해!”

건장한 사내가 비딱하게 앉아 종업원으로 일하는 소녀를 위협한다.

“이게 뭐야? 우웩!”

게걸스럽게 먹던 졸개가 입안에 든 음식물을 바닥에 내뱉는다.

“고기가 썩었잖아? 야, 냄새 맡아봐! 이걸 음식이라고 파는 거야?”

소녀는 졸개에게 먹다 남은 돈버거를 건네받고 코를 내민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오늘 받은 재료로 만든 거라 썩을 리가 없습니다. 정 입에 맞지 않으시다면 새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소녀는 졸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대꾸한다. 건장한 사내가 졸개를 밀어내고 각진 턱을 들이대며 윽박지른다.

“지금 우리가 억지 쓰며 엄한 트집을 잡는다는 거야, 뭐야? 손님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지, 어디서 함부로 토를 달아!”

소녀에게 악다구니를 치던 사내가 잡히는 대로 집기를 가게 밖으로 내팽개친다. 그릇들이 산산조각이 나며 길바닥에 제멋대로 흩어진다.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행패를 부리려면 제대로 해야지, 기껏 꼬투리를 잡은 게 고기가 썩었다는 거냐? 오늘 도축한 고기라서 썩을 틈이 없다. 당장 경무서에 신고하기 전에 썩 꺼져!”

미라가 구경꾼을 밀치고 앞으로 나와 호통을 친다. 기다렸다는 듯 삐딱하게 앉아 있던 두목이 터벅터벅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다.

“쥔장이 신식 여성이라더니, 말투가 당당하군!”

두목은 5초가량 미라를 쏘아본다.

“대접을 받으려거든 예절을 갖춰라!”

미라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저년의 주둥이를 그냥 확 꿰매버릴까 보다. 너, 우리 형님이 누구신지 알아? 동경 신주꾸에서도 일본 야쿠자 열두 명을 상대로 한 주먹으로 평정한 분이야? 어디서 까불고 있어.”

졸개가 거드름을 피우며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다.

“야, 누가 열두 명이래?”

두목이 졸개에게 눈을 흘긴다.

“아, 맞다! 열일곱 명이죠.”

졸개가 맞장구를 치자 두목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평등사상을 신봉하는 신사라고 할 수 있지. 다들 상납금을 받치는데, 어느 한 집만 안 낸다면 불공평하잖아? 그리고 참, 인내심도 없는 편이니, 모레까지 돈을 마련해 놓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야.”

“거지한테 적선할지언정 너희처럼 일본에 빌어먹는 불량배한텐 동전 한 닢도 줄 수 없다!”

“소문을 못 들은 모양이군. 한성 바닥에서 내 말이 곧 법이란 사실을······. 내가 분명히 날짜를 못 박은 이상, 그걸로 계약은 성사된 거야. 긴말은 필요 없어. 이틀 뒤 보자고.”

두목은 가게를 나서려다 멈칫한다.

“참, 돈버거 두 개를 먹었으니 돈을 내야지.”

그는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는다.

“거스름돈은 전차비에 보태 써.”

그는 소녀에게 음흉한 미소를 흘리곤 가게를 나선다.

“더러운 돈은 안 받는다. 더러운 손님도 안 받는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라!”

미라가 지폐를 손에 쥐고 두목을 가로막는다. 옆에 있던 졸개가 주먹을 뻗어 가격하려는 순간 소녀가 달려와 사타구니를 걷어찬다.

“아이고 죽겠네! 아니, 저년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졸지에 낭심을 가격당한 졸개는 움츠린 채 고통을 호소한다. 소녀는 택견의 수비 자세를 취하며 으른다.

“다음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의기양양한 소녀가 일갈하자 두목이 피식 웃는다.

“돈버거와 오딧물을 쌍으로 판다더니, 쥔장과 종업원도 쌍으로 지랄하는군. 계약은 성사됐으니, 이틀 뒤 다시 오마. 난 약조를 어기는 걸 가장 혐오하거든. 자, 가자!”

미라를 노려보던 두목은 부하들과 함께 거리를 횡단한다.

“야, 이 쪼그만 계집애야? 밤길 조심해라!”

졸개가 뒤를 돌아보며 협박을 가한다. 소녀는 당수치기 시늉을 하며 대거리한다.

“나 공덕동에 살거든? ‘공덕동 광녀’라고 하면 다 알아. 언제든지 와! 상대해 줄 테니까!”

졸개는 주먹을 내보이며 냅다 간판을 걷어찬다.


구경꾼들이 뒷걸음을 치며 길을 내준다. 미라와 소녀는 나뒹구는 집기들을 정리한다.

“일진회 소속 깡패들인 거 같아요. 팔뚝에서 문신을 봤거든요.”

빗질을 하던 소녀가 미라에게 말을 건다.

“경단아!”

“네?”

“함부로 무술 쓰지 마. 일진회라면 그 수가 만만치 않을 텐데, 당하고 가만있지 않을 거야.”

“당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다음에 오면 그냥······”

경단은 빗자루를 들고 발차기하는 시늉을 한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 법이야. 다 생각이 있단다.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네, 언니!”




76.


이틀 뒤 일진회 소속의 패거리가 정동 일대를 돌며 자릿세를 거두고 다닌다. 돈버거점방 근처에 다다르자 졸개가 조르르 두목에게 달려간다.


“형님, 점방 안에 서양인들이 가득합니다.”

“뭐? 저리 비켜!”

두목은 씩씩거리며 점방으로 접근한다. 문을 열자마자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다.

“이거 다 뭐야?”

기자 십여 명이 일제히 사진기를 들이대며 마그네슘 조명을 터트린다. 일순 점방 안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로 가득 찬다.

“뭔데 사진을 찍어? 사진기 부숴버려!”

두목이 고함을 지르자 졸개들이 기자들을 제압한다. 서로 뒤엉켜 몸싸움이 일어나고 있을 즈음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순검들이 뛰어오자 패거리는 새문안길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외신기자들이 돈버거점방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붙여 영락없이 남자로 변장한 미라가 껑충한 외신기자들 틈에 끼어든다. 외신기자들이 새문안길로 우르르 몰려간다.

마차를 타고 정동을 지나치던 카지가 창문을 내리며 유심히 관찰한다. 그는 마부에게 마차를 세우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러곤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가로수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특별전담반 소속 오장(伍長)이 마차 쪽으로 잰걸음을 놓는다.


“별 일 없어?”

“아직까지 별다른 동향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장이 부동자세로 보고하는 순간 건너편 돈버거점방의 불이 꺼진다. 경단은 문을 닫고 자물쇠로 단단히 채운다.

“빠가야로! 눈 뜬 장님이 따로 없군!”

화가 난 카지가 손에 든 장갑으로 부하의 뺨을 톡톡 친다.

“조금 전 외국인과 동행한 남자를 뒤쫓아!”

“하이!”

오장은 전차 정거장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외신기자와 헤어진 미라는 종을 울리며 출발하는 전차에 간신히 올라탄다. 그녀는 승객 틈에 자리를 잡곤 호흡을 가다듬는다. 전차가 속도를 내며 궤도를 미끄러져 나간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차창 밖을 내다본다. 정거장을 향해 뛰어오던 오장이 전차와 점점 격차가 벌어지자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발을 동동거린다.




77.


종로에서 내린 미라는 총총걸음으로 전동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녀는 이따금 뒷눈질을 하며 미행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다. 별다른 조짐을 발견하지 못한 그녀는 황급히 대한매일신보사옥으로 몸을 숨긴다.

편집실에는 대한매일신보사의 사장인 어니스트 베델과 시민대표들이 경덕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열띤 토의를 펼치고 있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온 미라는 발뒤꿈치를 든 채 살금살금 빈자리로 다가가 앉는다.


“전국에서 상경한 유생들이 경칩에 대안문 앞에서 상소문을 올린다고 합니다. 김 동지는 학생대표들을 인솔하고 배재학당을 출발하여 대안문으로 이동하세요. 그리고 오 동지는 원구단에서 출정식을 마친 뒤 시민들과 함께 대안문으로 행진하십시오. 유생들과 합류하여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춘투를 개최할 겁니다. 최 군은 청년단을 곳곳에 배치하여 일진회의 습격에 대비하도록 하면 되네.”

“예!”

경덕의 지시에 경청하던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도발해 올 것입니다. 폭력사태를 조장하여 집회 자체를 불법행위로 주장하려는 속셈이니, 불필요한 폭력사태에 휘말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네!”

대표들이 입을 모은다.

“이번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나야만 외국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전국에서 동시에 춘투를 펼칠 겁니다. 신 동지가 의병들을 이끌고 주요 도시에서 봉기하여 일본군대를 분산시킬 계획입니다. 한성에서는 경인선과 전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켜 교통을 마비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일본에 반대하는 대신들이 춘투를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게 될 겁니다.”

학생대표가 의구심을 드러낸다.

“내각이 친일파 일색인데, 과연 대신들이 우리 쪽을 지지할까요?”

경덕이 베델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베델은 황제가 수결(手決)한 친서를 꺼내 보인 뒤 부르튼 입술로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얼마 전 황제를 알현했습니다. 황제께서는 직접 친서를 전해주시면서 시민들의 집회를 지지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격려금까지 하사하셨습니다. 이는 곧 내각에 황제와 뜻을 같이하는 대신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한껏 격앙된 베델이 주위를 일별한다. 친서를 보곤 눈이 휘둥그레진 대표들이 손을 맞잡곤 환한 표정을 짓는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대표들이 편집실을 빠져나간다. 경덕은 그제야 미라를 알은체한다.

“다음부터는 구레나룻은 붙이지 말도록 해.”

미라가 팔짱을 끼곤 홉뜬 눈으로 그를 노려본다.

“쳇! 정동에 깔린 미행을 따돌린 실력인데, 어떻게 알아봤지?”

“입술을 지우지 않았잖아.”

경덕이 지적에 깜짝 놀란 그녀가 손등으로 얼른 입술을 지운다. 그러곤 부끄러운 듯 경덕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남편이 부인을 알아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굳이 남의 부스럼을 들쳐 핀잔을 줘야 속이 편하신지요!”

“내 눈에는 남자로 안 보이고, 그저 오뚝한 코하며 도톰한 입술만 보이던걸?”

그는 공연히 너스레를 떨며 배시시 웃는다. 그녀가 손등으로 그의 팔뚝을 툭 친다.

“여자 보는 눈은 아직 멀쩡하셔.”




78.


두 사람은 효자동 길을 따라 자하문 고개로 접어든다. 인적이 뜸한 탓일까. 미라가 슬쩍 경덕의 팔을 끼며 머리를 기댄다. 화들짝 놀란 그가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춘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두 달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귀한 부부 사이인데, 볼 테면 보라고 하지, 뭐!”

그는 정색을 하면서 손을 은근히 뿌리친다.

“당신 모습을 보라고?”

미라는 제 모습을 훑어보곤 남장한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러곤 이를 드러낸 채 웃음을 터트린다.

“흐흐흣!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라 남남상열지사로 풍기문란죄로 걸릴 뻔했네.”


두 사람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바탕 웃는다. 경덕은 갑자기 웃음기를 거둬드리고 바짝 다가가 미라를 끌어안는다. 그러곤 키스를 퍼붓는다. 별안간 경덕의 품에 안긴 그녀의 팔이 허공에서 버둥거린다.

개들이 컹컹 짓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온다. 두 사람은 격하게 키스를 한 뒤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석벽이 떠받치고 있는 자하문의 문루에 반사되어 사위가 온통 훤하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울퉁불퉁한 성벽을 따라 잠시 여운을 남기곤 이내 사라진다.




79.


전국에서 상경한 유생들은 상복 차림으로 대안문 앞에 거적자리를 깔고 무릎을 꿇는다.


“삼천 리 강토 천오백만 백성을 대표하여 황제 폐하께 고하나이다. 작금의 현실은 가히 삼척동자도 눈 뜨고 볼 수 없는 목불인견의 상황이옵니다. 일본국과 아라사국은 마치 삼천 리 강토가 자기 앞마당인양 거함을 동원하여 전쟁을 할 뿐만 아니라, 국고의 근간인 광산을 개발한답시고 산하를 마구 파헤치고 있사옵니다. 게다가 재정과 병권, 외교권 등을 박탈하여 내정에 깊이 간여하는 꼴은 마치 강도가 안방을 차지한 주객이 전도된 상황으로써 만백성은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내려앉는 비분강개에 생업에 종사할 수 없을 지경이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지난날 대한제국이 탄생하던 광무 원년에 대한국제 제1조 ‘대한국은 세계만국의 공인되온바 자주독립하온 제국이니라’라고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떠하옵니까? 내각의 대신들은 일본국과 결탁하여 국정을 농단하고 황제 폐하의 군주권에까지 누를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황제 폐하! 부디 청하옵건대 다시금 대한국제의 정신을 받들어 천하에 자주국의 위상을 정립하소서!”


유생 대표가 장문의 상소를 읽고 궁을 항해 대례를 올린다. 그러곤 땅바닥에 머리를 세차게 찧는다. 상복을 입은 유생들은 일제히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통곡하기 시작한다.




80.


편전에서 대신들과 어전회의를 하던 황제는 궁 밖에서 들려오는 곡소리에 그만 할 말을 잃는다. 그의 민낯이 새하얗게 변하며 편전의 공기도 급속히 얼어붙는다. 집단적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 누구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통곡 소리가 들릴 때마다 황제의 눈주름이 경련을 일으킨다.


“짐이 직접 나서서 백성의 원한을 풀어줘야겠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각총리가 벌떡 일어나 만류한다.

“황제 폐하, 고정하소서! 모름지기 소나기도 피해 가는 법이라 했습니다. 성난 민심은 마치 뿔난 소와 같아 섣불리 나섰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성난 민심이라고 하셨소? 경은 진정 백성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구려.”

“황제 폐하 통촉하소서!”

대신들은 일제히 황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민심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정녕 경들이 모른단 말이오!”


황제는 대신들을 뒤로 물리고 문을 박차고 나간다. 그는 샹들리에 불빛이 어른거리는 회랑을 따라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다. 근대 양식으로 지어진 중명전(重名殿)의 2층은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테라스로 연결된 문을 열자 함성이 더욱 크게 들린다. 서성거리던 그가 난간을 붙잡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모든 게 다 짐의 불찰이거늘······. 일본의 내정간섭을 끝까지 막지 못한 것도 짐이 무능한 탓이고,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 것도 전부 짐이 부덕한 소치로다!”

대신들이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린다. 친일파 대신들은 입을 비죽거리며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시종은 들으라! 유생들의 상소를 친히 들을 테니, 속히 출궁 채비를 차리도록 하라!”

“예, 분부대로 시행하겠나이다.”


시종이 서둘러 테라스를 빠져나간다. 황제는 멍울이 잔뜩 담긴 눈빛으로 궁 밖의 하늘을 망연히 바라본다.




81.


종로와 원구단, 독립문에서 제각기 시민궐기대회를 마친 군중이 대안문 앞으로 속속 집결한다. 시민대표단은 흥분한 참가자들을 다독이며 평화로운 가두행진을 주도한다. 헌병대와 일진회는 주요 도로를 점거한 채 군중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간혹 몸싸움이 벌어지며 두 집단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황제가 출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중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육중한 돌쩌귀가 꿈틀거리며 쇠붙이의 요란한 울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말에 오른 시위대가 활짝 열린 대안문을 위풍당당하게 나선다. 기마대는 이 열 종대로 석수상(石獸像)을 따라 양쪽으로 도열한다. 뒤미처 군을 통솔하는 원수부(元帥府) 총장과 부장이 눈을 부라리며 기마대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이윽고 프로이센풍의 대례복을 입은 황제가 유생들 앞으로 나선다. 웅성거리던 유생들은 황제를 알아보곤 일제히 엎드려 절을 한다. 일순 대안문 앞 광장은 허리를 숙인 군중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말에 탄 카지는 대안문 옆에서 쌍안경으로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한다. 뭔가를 발견한 것일까. 그는 접안경에 안구를 바투 밀착시킨 뒤 배율을 높여 대상을 쫓는다. 그의 어깨가 움찔한다. 쌍안경으로 경덕을 포착한 그는 지휘봉을 들고 후지하라에게 군중의 한가운데를 가리킨다.


“놈이 나타났다. 어서 체포해!”

석수상(石獸像)에 올라 주변을 살피던 후지하라가 헌병을 인솔하고 군중 사이를 헤치며 나아간다. 카지는 쌍안경으로 군중을 헤집고 접근하는 후지하라의 뒷모습을 확인하곤 다시금 초점을 옮겨 경덕을 쫓는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군중을 선동하던 경덕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진 뒤다. 그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주변을 샅샅이 살펴본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도대체 땅으로 꺼진 거야, 하늘로 솟은 거야!”

씩씩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군중의 함성에 묻힌다.

“대한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어디선가 우렁찬 환호가 터지자 군중들이 열광하며 환호성을 터트린다.

“대한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제가 손을 뻗어 군중을 자제시킨다.

“백성들이여. 여기 모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짐에게는 귀가 있고, 그대들에겐 입이 있으니, 모인 이유를 상세히 고하라! 소상히 경청할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유생 대표가 무릎을 꿇은 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한다.

“황제 폐하께서 광무 원년에 대한제국 국제 제1조 ‘대한국은 세계만국의 공인되온바 자주독립하온 제국이니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소생들이 느끼기에 작금의 현실은 자주 독립, 자주 국권과는 거리가 멉니다. 불충한 대신들은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나라의 곳간을 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백성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던 황제가 고개를 끄덕인 뒤 앙다문 입을 연다.

“모든 게 짐의 불찰이다. 그대들이 올린 상소문을 검토한 뒤 대한제국의 근간을 흔드는 오류를 바로 잡을 것이다. 백성들의 피해를 낱낱이 조사하여 월권한 자를 엄벌할 것이고, 외세와 결탁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한 관료는 그 죄과를 엄중히 물을 것이다. 또한 언론과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황제의 권한과 등가로 여겨 업신여김이 없도록 조치할 것이다. 그러하니 만백성은 부디 노여움을 풀고 일상에 전념토록 하라!”

황제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마자 군중 틈에서 주문들이 쏟아진다.

“구속 중인 인사를 석방하라!”

“독립협회를 부활하라!”

“일본 헌병대는 조선 땅을 떠나라!”

“국정을 농단한 매국노를 처단하라!”


군중이 동요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시위기병대와 헌병대가 총칼을 앞세우고 군중을 압박한다. 황제는 자신을 둘러싼 시위대를 뿌리친다. 군중이 대안문으로 밀려들자 위협을 느낀 원수부 총장은 시위대에게 황제를 엄호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윽고 군중과 시위대 간에 몸싸움이 벌어진다. 시위대는 황제를 호위하며 궁 안으로 철수한다.



82.


해가 서녘 하늘로 뉘엿뉘엿 넘어가자 궁궐의 윤곽이 도드라진다. 덕수궁 앞마당에 진을 친 유생들은 여전히 정부를 성토하며 시위를 벌인다. 대안문 앞에 커다란 화로가 줄느런히 놓인다. 불씨가 치솟을 때마다 궁을 둘러싼 헌병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유시까지 자진 해산하라! 그렇지 않으며 불법시위로 간주하여 강제 해산조치를 취할 것이다.”

말에 오른 후지하라 중위가 화로 사이를 오가며 시위대를 향해 일갈한다.

“황제 폐하께서 친히 상소를 검토하신 후 조치를 취하신다고 했으니, 정부안이 발표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

유생 대표가 꼿꼿한 자세로 대거리한다.

“이후에 일어나는 사태는 모두 당신 책임으로 돌릴 테니, 그리 아시오!”

후지하라가 으름장을 놓는다.

“삼천 리 강토의 주인인 백성이 나라님의 말씀을 듣겠다는데, 웬 일본 헌병이 나서서 간섭하려는 게냐? 당장 물러나라!”

대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뒷배를 지키던 시민들이 가세한다.

“일본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

“헌병대는 즉각 철수하라!”


카지는 마차 안에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그는 결심이 선 듯 지휘봉을 들고 휘젓는다. 그러자 갑자기 군중 속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헌병대의 총칼이 뭐가 무섭더냐? 당장 저놈들을 짓밟고 궁으로 쳐들어갑시다!”

“궁으로 쳐들어가 황제를 폐위하고 서재필 박사를 대통령으로 옹립합시다.”

“미국으로 강제 출국당한 서재필 박사를 옹립합시다!”


군중이 부지불식간에 과격하게 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카지는 미리 일진회 소속의 깡패들을 군중 속에 심어놓았다. 그가 지휘봉을 한 바퀴 휘젓는 것을 기화로 일진회는 다분히 공격적인 발언으로 군중을 선동한다.

평화적인 춘투(春鬪)는 삽시간에 정부를 전복하려는 극단주의자의 집회로 변질된다. 노골적으로 황제를 폐위하자는 망언이 등장하는가 하면, ‘서재필’이란 특정 인물이 거론되는 것으로 추측건대 음해세력이 개입된 정황이 역력하다.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자 묵묵히 지켜보던 경덕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성큼 나선다. 횃불에 노출된 탓에 그의 민낯이 홍조를 띤다.


“어느 단체 소속입니까?”

경덕이 시민대표에게 다급하게 묻는다. 시민대표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경덕은 건장한 사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동지! 의심스럽습니다. 더 지켜보고 결정을 내리는 게······”

경덕은 시민대표의 충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사내 쪽으로 다가간다.


일진회 소속의 건장한 사내들은 ‘황제 폐위’를 외치며 대안문 쪽으로 치닫는다. 당황한 시민들이 얼떨결에 사내들의 뒤를 따르며 동조하기 시작한다. 일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들불처럼 번진다.

건장한 사내가 대안문 앞을 지키고 있는 헌병대를 향해 횃불을 내던진다. 헌병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박석에 떨어진 횃불이 불씨를 내뿜는다. 경덕은 인파 사이를 헤집으며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그러나 몸이 달아오른 군중은 통제력을 잃는다. 저지선 앞까지 간 사내는 갑자기 후지하라 소위에게 달려든다. 놀란 말이 경기를 일으키자 후지하라는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군다.


“일본놈들을 몰아내자!”

사내를 따라 이십여 명이 일제히 저지선을 뚫고 대안문으로 향한다. 마차 안에서 덫을 놓고 기다리던 카지가 밖으로 나와 말에 오른다. 그러곤 허공을 향해 총 한 발을 발사한다. 군중은 총소리에 놀란 잠시 주춤한다. 정동길에 대기하고 있던 전담반이 함성을 지르며 군중 속으로 돌진한다.


“동요하지 마세요. 이러면 저들의 계략에 말려드는 겁니다. 어서 제자리를 지키세요.”

아이를 잃어버린 양 마주치는 사람마다 만류를 해보지만 경덕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러면 일본한테 빌미를 제공하는 겁니다. 제발 뒤로 물러나세요. 질서를 회복합시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깝다. 그는 사방에서 조여 오는 체포조를 인지하지 못한다. 누군가 덥석 그의 손아귀를 잡아챈다. 시민대표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아무래도 덫에 걸린 것 같습니다. 한 동지! 떠나는 게 좋겠소.”

“우리를 믿고 따르는 민중을 두곤 못 갑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빗발치듯 들린다.

“한 동지! 이미 우리 손을 떠났소! 이성을 찾아야 하오!”


경덕은 황망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총에 맞고 말발굽에 밟힌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서로 뒤엉킨 군중은 오도 가도 못 한다. 헌병대와 일진회에 포위된 군중은 마치 토끼몰이에 내몰린 것처럼 그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발을 동동거린다.

경덕은 군중 틈에서 부상자들을 부축하고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말에 탄 카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어느새 체포조가 덩그러니 남은 경덕과 시민대표를 둘러싼다.

카지가 경덕 앞에서 말머리를 돌릴 즈음 청년단을 이끌던 최 군이 포위망으로 돌진한다. 일진회와 청년단 사이에 집단 몸싸움이 벌어진다. 카지가 권총을 쏘며 상황을 정리한다.

경덕은 청년단의 비호를 받으며 가까스로 난장판이 된 싸움터를 벗어난다. 카지가 헌병대를 이끌고 그를 추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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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7화 카츄샤 +1 19.06.24 11 2 13쪽
126 126화 의사 왕룽 +1 19.06.23 21 3 17쪽
125 125화 빅터 한 재단 +2 19.06.19 43 3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55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45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46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53 3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55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56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59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59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69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81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68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73 2 11쪽
112 112화 금괴수송작전 +1 19.05.19 83 2 10쪽
111 111화 '암호명 A-1' +1 19.05.18 69 2 13쪽
110 110화 악연(惡緣) +1 19.05.17 66 2 14쪽
109 109화 마지막 미션 +1 19.05.16 68 2 12쪽
108 108화 애치슨 라인 +1 19.05.15 67 2 12쪽
107 107화 연적(戀敵) +1 19.05.15 68 2 12쪽
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69 2 12쪽
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67 2 15쪽
104 104화 한국은행 +1 19.05.11 76 2 14쪽
103 103화 비밀거래 +1 19.05.10 76 2 12쪽
102 102화 남미이주작전 +1 19.05.10 86 2 13쪽
101 101화 트루먼 독트린 +1 19.05.10 65 2 11쪽
100 100화 숙명의 라이벌 +1 19.05.10 66 3 18쪽
99 99화 Jane Doe +2 19.05.10 67 2 13쪽
98 98화 앙숙, 이승만과 김구 +1 19.05.10 65 2 12쪽
97 97화 반도호텔 +1 19.05.10 62 2 13쪽
96 96화 좌익과 우익 +1 19.05.09 61 2 13쪽
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66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62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60 1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65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63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61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60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63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62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63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60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63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73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58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59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63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60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58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56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64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66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57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57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57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60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59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62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61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62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64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62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63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64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64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63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63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66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63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65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63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64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63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62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65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64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65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64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72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67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67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66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65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66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70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68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68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71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72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80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75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75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73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74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76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83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82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88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83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83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87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00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86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91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88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90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94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01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01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03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03 4 43쪽
»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07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14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167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152 6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167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182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191 7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194 7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238 10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237 11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266 12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333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429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610 12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183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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