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최근연재일 :
2019.07.12 16:22
연재수 :
134 회
조회수 :
21,592
추천수 :
411
글자수 :
1,432,999

작성
19.04.14 06:23
조회
157
추천
4
글자
49쪽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님의 침묵




DUMMY

94.


1907년 고종 황제의 신임장을 받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이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도착한다. 그들은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자격으로 참석하려고 시도하지만 일본의 공작으로 거부당한다. 특사들은 본회의장 밖에서 각국 대표를 상대로 을사늑약의 강제성과 부당함을 고발함과 동시에 한국의 주권 회복을 호소한다.

비록 본회의에서 주제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각국의 언론을 통해 일본이 저지른 한국 침략의 불법성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이 사실을 본국으로부터 통보받은 이토 통감은 7월 18일 외무대신 하야시 다다스(林董)와 함께 고종 황제에게 특사파견의 책임을 추궁한다. 1907년 7월 20일 강제 퇴위를 당한 고종 황제의 후임으로 순종 황제가 등극한다.

끝까지 일본에 저항하던 고종 황제가 퇴출되자 일본은 숨겨둔 발톱을 드러낸 채 한일병합의 수순을 노골적으로 진행한다. 7월 24일 일본군 혼성 1여단 병력이 궁궐을 포위한 가운데 ‘제3차 한일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일본은 대한제국의 통치에 관한 내정간섭을 공식화한다. ‘법령 제정 및 주요 행정상의 승인권과 고등관리 임면 동의권’ 등을 확보한 통감이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통치권자로 부상한다. 7월 27일에는 언론탄압을 정당화하는 ‘신문지법’이, 7월 29일에는 집회, 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이 공포되고, 7월 31일에는 마침내 대한제국을 무력화하는 마지막 수단인 군대 해산령이 내려진다.


군대가 해산되자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 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惜)’라는 유서를 남기곤 ‘대한제국만세’를 외친 뒤 권총으로 자결한다. 이를 기화로 시위대 병사들이 강렬히 저항한다. 일본군 1여단 병력이 전격 투입되면서 도시 곳곳에서 시가전이 펼쳐진다.

한성에서 시위대와 일본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국 각지에 흩어졌던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투쟁에 적극 가담한다. 현역 군인이 편입되자 의병부대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룬다. 의병군은 훈련을 통한 전투 기술이 향상되면서 제법 군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일본은 원주수비대를 해산하려고 시도한다. 민긍호는 군인 300여 명을 이끌고 경무분견소를 습격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곤 제천으로 이동한다. 이강년의 의병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제천은 허위에 이어 민긍호까지 합류하면서 항일무장단체의 산실로 부상한다.


제천의 산기슭에 똬리를 튼 군영은 연일 항일투쟁에 관한 작전회의로 분주하다.

“일본의 정예부대가 부산항으로 상륙할 거라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그리고 구축함 두 척이 인천항에 입항했다고 합니다. 놈들의 속셈은 인천과 부산에서 동시에 양면작전을 펼쳐 의병부대를 무력화시키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민긍호가 분노하며 탁자를 내려친다.

“본국의 군사자원을 총동원해서 이번 참에 합방을 하려고 할 테지······. 흠!”

이강년의 숨소리가 거칠다.

“이대로 있다가는 놈들한테 합방의 구실을 제공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오. 전국에 흩어진 의병장과 해산한 군대에 연락을 취해야 하오.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일본의 정예 병력이 상륙하기 전에 총공세를 펼쳐 주요 도시를 점거한 뒤 거사를 도모해야만 하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정예군대가 한반도에 영구 주둔하는 빌미를 주게 될 것이오. 그것은 곧 망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소?”

허위는 냉정한 어투로 조목조목 제 의견을 피력한다.

“대감, 거사라 함은 혹시······?”

민긍호는 한쪽 눈을 치뜬 채 궁금증을 드러낸다.

“맞네. 황해도의 권중희, 경상도의 신돌석, 전라도의 문태수, 평안도의 방인관, 함경도의 정봉준 등과 합의를 봐두었네. 나머지 의병장들과 연통하여 한성으로 진격할 셈이네. 일본군과 대전을 불사할 것이야. 앉아서 망국의 멍에를 뒤집어쓰고 사느니,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국권을 되찾는 데 일조해야 하지 않겠나?”

“대감의 지략에 감복했습니다. 허나 전국 13도에 분산된 의병부대와 어떻게 연통을 하실 생각입니까? 방방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이동이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모든 사정을 고려해서 이미 연락장을 낙점해 두었다네. 신 동지?”

허위가 고개를 틀면 천막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상원이 성큼 탁자 쪽으로 다가온다.

“인사하시게. 독립협회 서기와 아리랑 조직을 이끈 신 동지일세.”

“처음 뵙겠습니다, 민 대장.”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나눈다.

“혹시 한성에서 전차를 전복시키고 탈출했다는 바로 그분 아닙니까?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민 대장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다.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장본인께서 엄살이 심하시군요. 하하핫!”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난 네 사람은 모처럼 환하게 웃는다.


이강년과 허위의 친서를 지닌 상원은 13도에 분포된 의병부대를 찾아 대장정에 돌입한다. 그에게는 연합참모장이라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다.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의병부대를 단일지도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연합전선을 형성한다는 안을 두고 의병부대 내부에서도 무모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명성황후시해사건(明成皇后弑害事件) 이후 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전력이 있는 허위는 자진해산을 해야만 했던 당시의 사정을 두고두고 후회한 적이 있다. 따라서 그는 의병을 한 데 묶어 간헐적인 전투가 아닌 집중적인 전쟁을 통해 일본주둔군을 섬멸해야만 국권회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신상원과 구업동은 때론 장돌뱅이가 되기도 하고, 각설이패로 분장하면서 각 도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나 갈수록 검문이 강화되자 그는 호랑이가 출몰하는 백두대간의 준령을 이동수단으로 택한다.


그는 경상도에서 평민 의병장 신돌석과 만난다.

“모든 대신들이 친일파로 돌아서서 나라를 팔아먹는 판에 허위 대감은 일본을 비판하다 철창신세까지 지지 않으셨습니다. 대감의 영이라면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전라도의 문태수도 동참을 천명한다. 이후 육로를 벗어난 험한 바닷길이 이어진다. 황해도에 도착하여 권중희로부터 확약을 받은 뒤 평안도의 방인관, 함경도의 정봉준, 북청의 홍범도 등과 잇따라 회합한다. 각 경향의 의병장들은 허위가 제안한 ‘13도연합의병부대’의 창설에 흔쾌히 응한다.




95.


경무청 감옥서의 육중한 철문이 닫힌다. 높은 담장에 가로막힌 바람이 회오리를 일으키자 덤불이 사방으로 나뒹군다. 석방된 수감자들이 줄줄이 흩어지고 홀로 남겨진 경덕만이 제자리에 붙박인 채 맹탕 허공을 바라본다. 갓난아기를 강보로 둘러멘 미라가 인호를 앞세우고 경덕 앞으로 다가간다.


“아빠다, 아빠!”

인호가 종종걸음을 치며 경덕의 허리춤에 매달린다. 그는 성가시게 구는 아이를 떼어놓지도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

“여보, 저예요.”

미라의 반응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멀거니 흐르는 구름만 바라본다.

“엄마, 아빠 왜 그래? 이상해! 칫!”

시무룩한 인호가 뒤로 물러나 혀를 빼문다.

“아빠, 이상하지 않아. 다만 조금 아파서 그런 거야. 어서 가자. 집에 가면 나으실 거야.”


인호가 그의 손을 잡고 끄는 시늉을 한다. 그가 멀뚱히 서 있자 미라가 등을 떠민다. 그는 마지못해 어렵사리 발을 떼며 아들을 따라간다. 둘째를 업은 미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곤 뒤를 따른다. 인호는 저만치 전차가 지나가는 대로 쪽으로 경덕의 손을 잡고 이끈다.

전차가 멈추자 가족들이 올라탄다. 말이 없는 두 사람과는 달리 신이 난 인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창밖 풍경에 몰두한다. 서대문 정거장에서 내린 가족은 서걱서걱 겉도는 발걸음으로 애오개를 넘는다. 인호가 달려가 용케 빗장을 풀고 싸리문을 연다.

구석구석 무너지고 기울어진 초가는 허름하기 짝이 없다. 반란수괴란 죄목의 수감자를 가장으로 둔 가족에게 서촌에서의 번듯한 한옥생활은 호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한낱 추억거리에 불과하다.

옥바라지를 하는 통에 서촌의 신혼집은 물론 장안에 명물이었던 돈버거마저 잃은 미라에게 남은 것이라곤 쌍가락지와 비녀 등 패물 몇 가지가 고작이다. 박규수의 수양딸로 입양한 탓에 고책 몇 권을 물려받은 것이 있어서 그나마 살림에 보탬이 된다. 그녀는 박규수와 연암 박지원의 고책을 판매한 돈에 패물을 보태 공덕동 언덕에 초가 한 채를 장만한다.


그럭저럭 반년의 시간이 시나브로 흐른다. 경덕은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숟가락을 쥐어주면 밥을 먹고 아이를 안겨주면 멀거니 바라볼 뿐이다. 그가 먼저 대문 밖을 나서는 경우는 뛰어노는 인호와 함께 할 때다.

그는 마포나루가 한눈에 조망되는 공덕동 언덕에 서서 바람에 몸을 내맡긴다. 지그시 눈을 감은 그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상념에 사로잡힌다. 간간이 지난날의 편린들이 스쳐지나가는 듯 눈꺼풀로 뒤덮인 눈동자가 꿈틀거린다. 그가 과거의 기억들과 조우할 즈음 인호가 다가와 보챈다.

인호는 무뚝뚝한 친구를 대하듯이 경덕의 주위를 맴돌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일쑤다. 딱지와 자치기, 팽이 등의 장난감을 펼쳐놓고 실컷 놀던 인호가 제풀에 지친 듯 시큰둥하다. 경덕은 어느새 아들의 반대편이 되어 맞장구를 쳐준다. 그는 인호가 찬바람에 침을 흘리자 손수건으로 입가를 쓱 닦곤 코를 팽 풀어준다.

부자가 외출을 하면 미라는 아이를 업고 슬그머니 집을 나선다. 그녀가 정동 교회에서 야학을 연 지도 벌써 1년째로 접어든다. 그녀는 남편의 옥바라지와 두 아이의 양육을 도맡으면서도 계몽운동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야학은 암담한 현실에 불씨를 살리는 그녀만의 몸부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매일 밤 정동과 공덕동을 오가며 다시 꾸리게 될 가정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야학이 없는 주말이면 손탁호텔에서 시간제 근무를 한다. 손탁 여사의 배려로 통역업무가 그녀에게 주어진다. 돈버거의 무상양도 이후 딱히 돈벌이가 없었던 그녀에게 주말의 일자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셈이나 마찬가지다.

카지에게 넘어간 돈버거는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룬다. 다만 기존 단골이 떠난 자리를 일본인들로 메워진 사실만 다를 뿐이다. 미라는 퇴근할 때마다 일부러 정동을 에둘러 돌아가곤 한다. 돈버거의 간판만 봐도 제 잘못인 양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96.


1907년 12월 전국의 13도에서 활약하던 의병부대들이 경기도 양주 계곡으로 속속 모여든다. 연석회의의 결과 ‘13도의병연합부대’를 이끌 총대장으로 이인영(李麟榮)이 추대되고, 참모 역할을 맡은 군사장에는 허위(許蔿)가 임명된다. 관동의병대장 민긍호, 호서의병대장 이강년, 교남의병대장 박정빈, 경기·황해·진동 의병대장 권중희, 관서의병대장 방인관, 관북의병대장 정봉준, 호남의병대장 문태수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낙점된다.


“현재 양주에 주둔한 병력은 해산 군인 삼천 명을 포함하여 대략 만 명에 이른다. 병력은 이십사진으로 편재할 것이다. 각 진은 동대문 밖에서 대오를 정비한 뒤 한성으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격파하고 국권을 회복한다. 각 진을 맡은 대장들은 진격작전에 대한 전략을 계획한 군사장과 협의하도록 하라!”

회의에 참여한 대장들이 총대장 이인영의 발언을 신중하게 듣고 있다. 말석에 앉은 상원만이 고개를 모로 튼다. 그러곤 손을 들어 의견을 펼친다.

“총대장님, 만 명의 병력으로 일본 정예사단을 상대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가 따릅니다. 작전을 연기해야 합니다.”

몇몇 지역의 대장들이 곁눈질하며 혀를 찬다.

“연석회의의 결정을 거스르는 근거가 뭔가?”

총대장이 짜증스러운 듯 반문한다.

“병력도 부족할뿐더러 신식무기로 중무장한 정예부대와 정면승부를 펼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따라서 유격작전으로 일본수비대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신돌석 대장과 홍범도 대장을 ‘13도의병연합부대’의 돌격대로 편성하여 적의 예봉을 꺾은 뒤 한성진격작전을 도모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탐탁지 않은 듯 곳곳에서 헛기침이 새어 나온다.

“여기 모인 대장들은 전부 유생이나 관료, 군인 출신이 아닌가? 평민 출신인 신돌석과 홍범도를 대장으로 임명하면 유생들이나 전직 군인들이 명령에 복종하겠는가? 자네의 충정은 이해하지만 이미 상부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마라!”

관료 출신의 대장들은 총대장의 의견에 동조하는 표시로 상원에게 눈을 흘긴다. 불편한 기류가 흐르자 허위가 나선다.

“수적으로나 화력으로 볼 때 전면승부는 아군의 피해를 키울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신돌석과 홍범도가 이끄는 돌격대를 한성에 침투시켜 부대와 무기고를 습격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허위까지 나서자 총대장의 민낯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흠! 군사장의 의견이 정 그러시다니, 그 안건에 대해서는 따로 회의를 거쳐서 의논합시다. 자, 그럼 오늘 확대회의는 이만 마칠까 하오.”

총대장이 벌떡 일어나서 막사를 나간다. 대장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른다.

휑한 막사 안에 허위와 상원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열정은 넘치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구먼!”

허위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상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상부의 결정을 성토한다.

“양반 출신은 되고 평민 출신은 안 된다니, 기가 막힙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데, 신분의 고하가 뭐가 중요합니까?”

“내가 나서서 총대장과 지휘관들을 설득하겠네. 자네는 더 중요한 일을 맡아줘야겠어.”

“신돌석과 홍범도가 빠지면 저도 이번 거사에 동참하지 않겠습니다.”

“어허!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쉬잇!”

허위는 막사 입구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춘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계획한 한성진격작전도 선봉에 설 진격대보다는 후방을 교란할 돌격대에 중점을 두고 있네. 머지않아 수뇌부에서도 신돌석과 홍범도의 쓰임을 알게 될 걸세.”

“군사장님만 믿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자네한테 막중한 비밀임무가 부여될 걸세.”

“무슨 일이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한성에 잠입하여 각국의 공사와 기자를 만나게. 그리고 이번 진격작전이 침략국에 대항하는 국제법상의 군사단체에 의한 정당한 무력행사임을 설명하게. 외국인들이 상주하는 손탁호텔에 가서 손탁 여사를 찾으면 도움을 줄 걸세.”

“손탁 여사가 끓여주는 커피를 간만에 마시게 되겠군요.”

“누룽지 태운 게 더 낫지, 그 쓰디쓴 사약 같은 맛이 뭐가 좋은지, 내 원 참!”

“대감님, 그렇다면 사약을 드셔 보셨다는 말씀인데?”

“어허, 이 사람이? 허허헛!”

두 사람은 동시에 실소를 터트린다.

“지금도 수배 전단에 자네 얼굴이 실렸다고 들었네. 부디 몸조심하게. 그리고 손탁 여사에게 안부 전해주는 거 잊지 말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97.


‘13도연합의병부대’의 특명을 받은 상원은 봇짐장수로 분장하여 동대문으로 접근한다. 그의 봇짐에는 거적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는 동대문 밖으로 길게 늘어선 인파 틈에 뒤섞인다. 그를 바라보는 주위 시선이 곱지 않다. 그는 걸쭉한 함경도 사투리로 입담을 늘어놓는다.

“아주메는 물괴기는 먹지 않습메? 뭘 그리 콧방귀를 쿰쿰거리며 유난을 떠우?”

봇짐장수가 거무튀튀한 낯짝을 내민 채 비린내를 풍기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자 뭇사람이 코를 막고 자리를 피한다.

“거 참 한성 인심 박하다고 하더니만, 그것도 아닌 게비지? 이리 자리를 비켜주지 고맙지 않이오?”

그는 사람들을 뒤로 물리고 헌병대가 지키고 있는 검문소로 다가간다.

“등짐에 뭐가 들었나?”

헌병의 질문에 그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지게를 내려놓는다. 그러곤 거적 사이에 손을 쓱 넣는데, 권총의 손잡이가 쥐어진다. 그는 냉큼 거적 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뒤 잽싸게 위에 얹은 거적을 바닥에 펼친다. 소금에 절인 명태 열댓 마리가 땅바닥에 널브러진다. 비린내가 훅 끼치자 헌병들은 코를 막고 손사래를 친다.

“이토 히로부미 통감님도 아침상에는 꼭 올려야 한다는 명태 아니메?”

그는 명태 한 마리를 허공에 쳐들곤 짐짓 큰소리로 떠벌린다.

“빨리 짐 싸서 꺼져!”

그는 어슬렁거리며 짐을 싼다. 화가 난 헌병이 총부리로 위협하며 그를 밖으로 내몬다.

“행색이 아무리 비렁뱅이 같다고 하지만 그리 괄시하는 게 아니지 않소? 내같은 사람이 없으면 어찌 생선 중의 으뜸인 명태를 맛보겠나, 이거우다!”

검문소를 통과한 그가 코를 벌름거리며 소매를 들고 냄새를 맡는다.

“괜히 썩은 생선기름을 발랐나? 좀 심하긴 하네. 우웩!”

지게를 지고 가던 그가 헛구역질을 한다. 그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종로 쪽으로 잰걸음을 놓는다.


종로통을 가로지른 그는 서소문으로 재빠르게 이동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서소문 일대에 자리 잡은 외어물전(外魚物廛)이다. 어시장은 장을 보러 나온 사람과 생선을 팔려는 상인 사이의 흥정으로 시끌벅적하다. 시장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슬그머니 상점에 들러 술 한 병을 산다. 그러곤 급히 골목으로 몸을 튼다. 혹시 밀정이 따라붙었는지 알아보려는 행동이다.

뒤쫓는 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가 시렁가래에 층층이 생선을 걸어놓은 곳간으로 들어간다. 그러곤 재빨리 옷을 벗은 뒤 수건에 소주를 흠뻑 적셔 얼굴과 몸을 닦기 시작한다. 말끔해진 얼굴에 백분을 바르고 턱에 덥수룩한 수염을 붙인다.

명태가 담긴 거적을 걷어내자 지푸라기로 싼 권총과 탄창이 드러난다. 탄창을 끼운 권총을 내려놓고 보자기를 푼다. 그 안에는 옷 한 벌과 중절모자가 들어있다. 옷을 입은 뒤 중절모를 쓰고 성경까지 손에 들자 영락없이 서양 선교사다.

어수선한 시장 거리로 나서자 서양인을 처음 본 어린아이들이 신기한 듯 그의 뒤를 졸졸 따른다. 겨우 어린아이들을 물리친 그는 덕수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대오를 갖춘 일본군들이 대한문 앞에서 열병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구경꾼 틈에서 대담하게 바라본다. 그의 눈가에 분노가 차오른다. 그는 망국의 한이 무엇인지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얼마간 일본군의 절도 있는 재식을 바라본 뒤 그는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을 걷는다. 정동 교회 앞에서 잠시 멈칫한다. 가로등이나 전봇대마다 현상금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맨 위에 큼지막하게 ‘일금 십만원(一金 十萬圓)’이란 현상금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군수자리가 5만 원이라는데, 내 목에 붙은 현상금이 겨우 군수 자리 두 몫밖에 안 된단 말이야? 적어도 대신자리는 돼야지 체면이 서지, 에잇!”

그가 입엣말로 볼멘소리를 하자 지나가던 행인이 삐딱하게 고개를 들고 쳐다본다. 이상한 낌새를 차린 그가 행인을 향해 영어로 길을 묻는다. 행인은 그제야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코를 팽 풀고는 종종걸음을 친다. 그는 손가락을 헤아리며 잠시 맹탕 허공을 바라본다.

“내가 기자 할 당시 받았던 월급이 30원이었으니······, 가만있어 보자!”

얼추 계산이 되었는지 그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린다.

“그럼, 5만 원짜리 군수가 되려면 139년간 고스란히 쓰지 않고 모아야 하고, 현상금이 그 두 배이니, 장작 278년 동안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단 말이야!”

그는 믿기지 않은 듯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남자라면 적어도 현상금이 저 정도는 돼야지! 기분이 묘하네. 나쁘지가 않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금방 양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전단지에 실린 제 사진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감옥소에 수감되기 전에 찍힌 사진이라 잔뜩 찌푸린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가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요리조리 바라본 뒤 입술을 비죽 내밀곤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이 사진이라니······. 개자식들, 저러니까 나를 못 잡지! 잘 생긴 사진을 내걸어도 잡힐까 말까한데, 저 사진으로 누가 나를 알아보겠어? 에잇!”

이번에도 지나가던 행인 두 명이 그 앞에서 멈칫한다. 그러곤 전단지에 붙은 사진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본다. 그는 일부러 보란 듯이 눈을 크게 뜬다.

“아니야, 영 딴판이야!”

“그걸 말이라고 해? 이 사람아! 저기 저놈은 도적 떼처럼 생겼고, 여기 신부님은 서양 사람이잖아?”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긴 한데, 하여튼 알쏭달쏭하단 말이지!”

양 볼이 발그레한 사내가 구리텁텁한 술내를 풍기며 여전히 힐끔거린다.

“Can You speak English?”

장난기가 발동한 그가 영어로 묻자 취객이 대뜸 대꾸한다.

“영어 할 줄 아냐고? 몰라! 사연이 깊으니 내 곡절을 알려고 하지 마시오! 나는 바빠서 이만······”

“저기 돈버거점방에서 정종을 판다고 하니, 딱 한 잔만 걸치고 가세!”

두 사람은 어깨동무한 채 비칠비칠 걸으며 정동으로 사라진다.

“거봐! 저 사진으론 어림없다니까!”

그는 쓰윽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 뒤 손탁호텔이 있는 언덕 위를 오른다.




98.


카지가 집무실에서 일진회 간부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돈버거의 매출이 두 배로 껑충 올랐다면서?”

자금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맞장구를 친다.

“어찌나 인기가 높은지 매일 재료가 동날 정도입니다. 예장동과 용산에 매장을 낼 생각입니다.”

“매장을 너무 늘리면 통감부에서 눈치를 챌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기존 매장만 관리하도록 해! 이익금은 모조리 금으로 바꿔서 내게 가져오도록!”

“하이! 바로 실행에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다른 금광업자를 찾아야 될 판입니다. 이러다가 대장님께서 조선 제일의 부자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핫!”

일진회 회장이 아부를 떨자 그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목소리를 낮춘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라잖아? 정말 그렇게 장사가 잘 된단 말인가?”

“이르다 뿐입니까? 밤새 돈세탁을 해도 일손이 달립니다.”

“크크큭······”

모두들 입을 다문 채 웃는다.

“자, 수고들 했으니 한잔하세.”

술이 몇 순배 돌고 난 뒤 취기가 오른 카지가 턱을 뺀 채 천천히 주위를 일별한다.

“내 다음 목표가 뭔지 아나?”

간부들은 되록되록 눈동자만 깜빡일 뿐 섣불리 입을 놀리지 않는다.

“내 이 손으로 직접 그 손탁 년을 추방시키고 말겠다. 그리고 호텔을 압수해서 조선 제일의 기생집으로 만들 것이야.”

간부들은 그의 말투가 도를 넘어서자 안절부절못한다.

“나보다 조선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냔 말이야? 통감한테 조선을 통치하라고 해! 난 조선의 밤을 통치할 테니까! 하하핫!”

“그럼요! 영웅호걸이라면 의당 밤의 황제가 되셔야지요!”

“그렇지? 내가 누군가?”

회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찡끗거린다. 모두들 입을 모아 한목소리를 낸다.

“카지 대장님이십니다!”

실실 웃음을 짓는 입술 사이로 카지의 금니가 번뜩인다.

“머지않았어! 꼭 손탁 그 년을 끝장내고 말거야! 그래야 내 세상이 도래한다고!”

거나해진 그는 막무가내다. 섣불리 화를 자초할 것이 두려워 누구도 말을 못 하는 상황이다. 서로 눈치만 보고 전전긍긍하는데, 반가운 구원의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성가신 듯 카지는 문을 향해 큰소리를 친다.

“밤의 황제를 방해하는 작자가 대관절 누군가?”

후지하라가 절도 있는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선다.

“뭔가?”

“지금 말씀드리긴······”

그가 주위를 흘깃거리자 이때다 싶은 회장이 나선다.

“대장님, 조만간 조선 최고의 기생이 모인 명월관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손탁호텔을 접수하는 날까진 명월관을 애용하는 수밖에야! 그럼 그 날을 위해 오늘은 참는다!”

“하이!”

일진회 간부들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카지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통감이 부르는 일 아니면 오지 말라고 했잖아!”

“대장님, 첩보에 의하면 전국의 의병들이 지금 경기도 양주로 속속 집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해?”

“‘13도연합의병부대’란 명칭으로 결성된 군대가 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놈들이 왜 모였다는데?”

“양주라면 동대문에서 3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의병 만여 명이 공격해온다면 지금 한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각 지역의 부대에게 명령하여 병력을 충원해야 합니다.”

“흠! 당장 정보과 인력을 양주로 급파해서 상황을 파악하도록 해! 난 지금 통감님을 뵙고 병력증강에 대해 의논하겠다.!”

“하이!”

후지와라가 나가고 난 뒤 그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입을 헹군다. 그러곤 책상 위에 있는 벨을 두 번 누른다. 부관이 정복을 들고 들어온다. 카지가 담배를 문 채 두 팔을 벌린다. 부관이 화려한 견장과 훈장이 달린 상의를 입힌다.




99.


호텔 로비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상원은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그가 굳이 창가에 자리를 잡은 것은 수상쩍은 동향에 대비하려는 몸에 굳은 습관 때문이다.


“커피 나왔습니다.”

“예!”

그는 바바리안 찻잔을 매만지며 한동안 잊고 지낸 미각을 되새김질한다. 그가 한동안 콧잔등을 벌름거리며 그윽한 향기를 만끽할 즈음 익숙한 라벤더향이 희석되며 후각을 자극한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 라벤더향이 이끄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니, 손탁 여사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녀가 허리를 숙이곤 귓속말로 속삭인다.

“삼십분 뒤 이층 사무실로 와요.”

그녀는 로비를 순회하며 손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홀연히 사라진다. 그는 천천히 커피를 음미한 뒤 주변을 살핀다. 별다른 낌새가 없자 그는 로비를 가로질러 계단을 오른다.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정확히 세 번 들리자 손탁 여사가 문을 연다.

“어서 오세요!”

두 사람은 비로소 손탁 여사의 사무실에서 반갑게 포옹을 한다.

“‘13도연합의병부대’ 이인영 총대장과 허위 군사장께서 손탁 여사님께 밀서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상원이 속주머니에서 밀서를 꺼내 내민다. 그녀는 돋보기를 걸치고 밀서를 읽기 시작한다. 간간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드디어 전국에 흩어졌던 의병들이 연합하여 출병을 하는구려. 비록 내가 외국인의 신분이지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 전부 고종 황제와 조선 백성이 베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소. 당연히 조선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이 한 몸 바치겠소!”

그녀는 한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곤 커다란 눈을 끔벅거린다.

“여사님께서 각국의 공사관과 긴밀히 연락을 취해주셨으면 합니다. 여사님께서 다리만 놓아주시면 제가 밀서를 들고 각국의 공사를 직접 만나 연합의병부대의 향후 계획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난색을 표한다.

“각국 공사를 직접 만난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예요. 호텔 입구에도 선생의 몽타주가 걸려있는데, 만약 공사관이 밀집해 있는 정동을 활보하다가는 언제 체포될지 몰라요.”

상원은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추어올리며 대꾸한다.

“여사님, 진정 전단지에 붙은 사진이 저란 말입니까? 누가 봐도 전 외국인 선교사인걸요?”

말뜻을 알아챈 여사가 피식거리며 웃는다.

“물론 나도 전단지를 보곤 선생이 동명이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차대한 거사를 앞둔 터라 긴장을 놓으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여사의 말에 그가 짧게 답한다.

“선생은 이곳 사무실에서 머무세요. 곧 외교구락부 주최 파티가 열릴 예정입니다. 파티가 열리면 각 나라의 공사와 자연스럽게 면담을 주선할까 합니다. 이목을 피하고 밀담을 나누기에는 2층 테라스만한 곳이 없습니다.”

“손탁 여사님의 탁월한 판단은 늘 경이롭습니다.”

“참, 돈버거 소식은 들었죠?”

“그쪽은 워낙에 밀정들이 많아서 가보지 않았습니다만······”

“곧 미라양이 올 겁니다. 공사관 부인들과 함께 바자회를 개최하기로 했거든요.”

“미라양이요? 연락이 닿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정말 잘 됐습니다.”

“난, 저녁 만찬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여사님!”


손탁 여사가 나가고 난 뒤 그는 테라스 쪽으로 다가간다. 커튼 뒤에 반쯤 몸을 숨긴 그는 덕수궁을 멀거니 바라본다. 석양에 빗긴 궁궐은 마치 슬픈 사연을 간직한 비석처럼 처연하다. 어둠이 내리자 궁궐 곳곳에 불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온화한 기운이 감돈다. 돌담길을 따라 정동으로 이어진 외교가에도 가로등이 연달아 불을 밝힌다. 마차와 자동차들이 박석이 깔린 외교가를 지나칠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음을 내뿜는다.










제8장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100.


일찍이 한성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남산 자락 일대에 거주지를 형성한다. 일명 왜성대(倭城臺)라 일컫는 예장동과 회현동 인근은 통감부를 포함한 주요 건물과 고관대작의 관저가 즐비하여 늘 헌병대의 경비가 삼엄하게 이루어진다.

회현동의 언덕길을 힘차게 오른 마차가 통감부 앞에서 멈춘다. 마차에서 내린 카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양악 부위의 근육을 자극하며 여러 차례 쇳소리를 내뱉는다. 그럴 때마다 관자놀이가 불거진다. 미리 주눅이 들 경우를 대비하여 사전에 긴장을 이완시키는 그만의 오래된 버릇이다.

경비초소 앞에서 3층 높이로 우뚝 선 통감부 건물을 얼마간 바라본 그는 결심한 듯 잰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이 밤중에 웬일인가?”

파자마을 입고 있는 이토 통감의 목소리가 차갑다.

“통감님! 지금 의병들이 경기도 양주 근처에 집결하여 연합부대를 결성했다고 합니다.”

“그까짓 화승총으로 무장한 의병들이 뭔 대수라고 이 시간에 호들갑을 떠는가?”

“자그마치 그 수가 일만 명을 헤아린답니다.”

“그들이 일만, 아니 십만 명이 집결한다손 치더라도 구식총으로 무장한 일개 오합지졸들이 뭘 도모하겠는가? 그리고 한성에는 일본의 최정예 군대 2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지 않나. 지나친 기우는 정신건강에 해로운 법이야. 대일본제국의 장교가 그까짓 일로 의기소침해서 쓰나!”

이토가 못마땅한 듯 눈을 흘기며 호통을 친다. 고개를 숙인 카지는 입을 크게 벌리며 양악을 자극시킨다. 그러곤 고개를 쳐들고 빳빳한 자세로 답한다.

“혹시라도 의병연합부대가 한성을 공격한다면 후방 지원도 필요하고, 또한 향후 내선일체를 위한 전략 차원에서도 병력보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본국에 파병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의병연합부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한성을 지키기 위한 경비부대를 증원한다고 하면서 내각의 승인을 얻어내면 외교적으로도 명분이 서지 않겠습니까?”

카지는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동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술 더 뜬다. 구미가 당긴 듯 이토는 잠시 턱을 괸 채 정치적 계산에 몰두한다.

“조선 내각의 추인을 받아 본토의 병력을 상륙시킨다면······, 식민정책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야! 그렇게 되면 눈엣가시인 외국공사들의 비판도 수그러들 테지. 조선의 내각이 승인한 사안을 두고 외국공사가 반박하면 우리는 내정간섭불가침의 국제법을 들먹이며 거부하면 될 테고······”

“이를 빌미로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외국공사들을 모조리 철수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통감님께서 조선의 초대 총독으로 영전하시어 합방정책을 계획대로 추진하시기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카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이토의 심기를 살친다.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겠어! 이 시간에 온 걸 보면 그럴듯한 작전이라도 구상해왔을 테지?”

“지금 정보요원을 파견하여 정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의병연합군이 한성을 진격한다면 앞마당을 활짝 열어놓을 계획입니다.”

“덫을 놓자는 얘기군!”

“구미가 당기는 미끼일수록 덥석 무는 법이죠! 의병연합군이 한성 근처까지 진군했다는 소문이 돌면 큰소리치던 각국의 공사들도 먼저 피난을 가겠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 뻔합니다. 이때 본국으로부터 도착한 군대를 한성 일대에 매복시켜 놓는 겁니다. 의병연합군이 한성을 함락했다고 승리에 도취될 무렵 매복해둔 군대를 동원하여 오합지졸인 의병연합군을 일망타진할 계획입니다. 호랑이도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조차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철저하게 작전을 수립하겠습니다.”

“정보통에서 잔뼈가 굵었다더니만 역시 치밀한 구석이 있군. 자네를 과소평가했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있는 힘껏 총독님을 보좌하겠습니다.”

“총독이라? 그거 듣기 싫지 않은걸? 하하핫!”

이토와 카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린다.



101.


샹들리에 불빛 아래로 여인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마치 주광성(走光性)에 이끌린 부나비처럼 여인들은 저마다 형형색색의 옷으로 한껏 자신을 드러낸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가운데 남의 흉을 보는 무리는 머리를 맞댄 채 소곤거리고, 소원했던 이들은 깔깔거리며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다.

2층 난간에 비스듬히 기댄 상원은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부나비의 군무를 감상하는 듯 아래를 내려다본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띵동’ 소리와 함께 호텔의 현관문이 열린다. 그는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일순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며 칵테일 잔이 넘쳐흐른다.

화려한 부나비의 만찬에 검정색 두루마기를 입고 나타난 여성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미라를 한눈에 알아본 그는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다가는 얼른 거둔다.


손탁 여사가 외국의 귀부인들에게 미라를 소개한다.

“이번 바자회에 참여할 조선 측 여성단체 대표입니다.”

미라가 깍듯이 예를 갖춰 인사를 한다. 귀부인들이 다가와 그녀에게 악수를 청한다.

“교회에서 야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독일 공사 부인이 말은 건넨다.

“다음 학기부터는 독일어 강좌도 개설할 계획입니다.”

“독일어 강좌는 제가 후원하겠습니다. 매년 우수 학생을 뽑아 독일로 유학을 보내겠습니다.”

미국 공사 부인이 끼어든다.

“한 발 늦으셨군요. 저는 벌써 우수 학생을 뽑아 제 모교에 유학을 보냈답니다.”

“프랑스어 강좌를 열면 학교건립비용을 대겠습니다.”

여자들의 질투가 동한 탓일까. 각 나라의 공사 부인들은 다투어 선심성 공약을 마구 남발한다.

“인문적인 소양과 교양을 겸비한 귀부인들이시라, 역시 씀씀이도 남다르네요. 호호홋!”

손탁 여사가 웃음을 유도하자 모두들 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야학이라 교실이 추울 텐데, 학생들한테 이걸 걸쳐주세요. 제가 직접 짠 목도리랍니다.”

영국 공사 부인이 수줍게 미소 지으며 자기 이름이 새겨진 목도리 십여 장을 내놓는다.

“정말 고맙습니다. 요새 날이 쌀쌀해지면서 결석하는 애들이 많은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미라는 영국 공사 부인과 가볍게 포옹을 나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손탁 여사가 미라에게 다가가 귀띔한다.

“조금 있다가 2층 사무실로 와!”

미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사는 뒤로돌아 부인들의 대화에 참여한다.



102.


방으로 돌아온 상원은 만감이 교차한 듯 소파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윽고 노크 소리가 들리고 미라가 등장한다. 소파에 앉은 사내의 뒷모습을 본 그녀는 헛기침을 한다.


“죄송합니다. 누가 계신지 몰랐습니다.”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어디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게 얼마만인가?”

그녀는 제 귀를 의심하며 서서히 돌아선다. 껑충한 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그를 단박에 알아보곤 황망한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선······, 생······, 님!”

“용케 알아보다니 내 분장술이 형편없는 게로군!”

“어떻게 여기에 계신 거예요? 헌병대에 체포됐다는 소문이 무성해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내 직업이 뭔가? 전직 기자 출신 아닌가? 내 행방이 궁금하거든 소문이 아닌 신문에서 찾아야지!”

“입담이 여전하신 걸 보면 건재하단 말씀이시죠?”

“허세가 있어야 남자지! 하하핫!”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로 시작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밤을 새울 지경이다. 그동안의 정황이 대화를 통해 대충 가닥이 잡힐 무렵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멀뚱히 주위의 사물에 시선을 돌린다. 정작 궁금한 점에 관하여 묻고 답할 자신이 없는 듯하다. 어렵사리 운을 뗀 쪽은 상원이다.


“한 동지가 옥고를 심하게 치렀다고 들었네만······”

“겨우 사람을 알아볼 정도인데, 선생님을 알아볼지는 모르겠어요.”

“나쁜 놈들! 집회, 결사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사람을 반역수괴로 몰아 갖은 고문을 가하다니, 가만두지 않겠어!”

“지금은 때가 너무 안 좋아요! 일본 밀정들의 감시도 심하고 애들 아버지 건강도 좋지 않고······”

“돈버거를 일진회에서 운영한다고 들었네.”

“카지한테 무상 양도하는 조건으로 넘겼어요. 애 아버지를 막무가내로 일본으로 이감시킨다고 하니, 도저히 어쩔 수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사업이야 또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멀쩡한 사람의 영혼을 짓밟아 놨으니,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클 텐가?”

“그나저나 얼마나 머무실 거예요?”

“지금 경기도 모처에서 ‘13도의병연합부대’가 결집한 상태라네. 곧 ‘한성진격작전’이 시작될 거야. 나는 사전에 각국의 공사에게 이번 작전이 독립 쟁취를 위한 합법적인 무력투쟁임을 알리고 국제적으로 지지를 얻어내고자 밀사로 파견되었다네.”

“꼭 성공해야 할 텐데······, 제가 도울 일을 말씀해주세요.”

“자네 가족은 주요 사찰대상이니 이번 작전에는 모른척하게.”

그녀는 다소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이번 거병은 군사작전이라 무고한 백성들이 죽는 걸 원치 않네. 군사작전은 의병한테 맡겨두게.”

“네.”

“한 동지를 만나고 싶네. 지금 거처하는 곳의 약도를 그려주게!”

미라는 펄쩍 뛰며 정색한다.

“안 됩니다, 선생님! 지금도 밀정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염탐을 하고 있어요!”

상원은 고개를 모로 튼 채 허공에 시선을 던진다. 생각을 정리하고자 할 때 줄곧 쓰는 그만의 습관이다. 시간이 정지한 듯 방 안에 정적이 흐른다.

“한 동지가 집 밖을 나설 때가 언제인가?”

그가 묘수를 찾은 듯 대뜸 묻는다.

“음······, 인호가 나가자고 보챌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이 손을 잡고 동네를 한 바퀴 돕니다.”

“그래? 주로 어디로 가든가?”

“공덕동 언덕으로 가더라고요. 인호가 다른 아이들과 놀면 멍하니 서서 한강을 바라보곤 하죠.”

“알았네. 공덕동이라면 대충 지리를 아는 곳이니, 언덕에서 기다리겠네.”

“조심하셔야 해요. 카지가 이중삼중으로 감시를 하거든요.”

“걱정하지 말게나.”



103.


카지가 테이블 상석에 앉아 정보과 요원의 보고를 듣고 있다.

“경기도 양주 계곡에 대략 8천명이 모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중에 해산군인 3천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보고를 듣던 그의 민낯이 붉으락푸르락하다.

“뭐라고? 해산군대가 연합부대에 합류했다고?”

“예!”

“예상한 바지만, 3천 명이나 합류하다니······. 중위!”

옆자리에 앉아 있던 후지하라가 부동자세를 취한다.

“하이!”

“해산군인 중엔 분명 한성에 배치됐던 진위대가 주력 부대를 이룰 것이야. 그들이 무장한 화력을 집중 분석하게!”

“하이!”

“그리고 만 명의 병력이 한꺼번에 쳐들어오지는 않을 거야. 필시 별동부대 역할을 맡은 선발대를 먼저 파견해서 우리 쪽의 대응전략을 간 보겠지. 전국 13도에서 의병들이 모였다니, 유격전에 능숙한 신돌석이나 홍범도가 선봉에 설 게 분명해.”

카지의 눈빛에서 적의가 뚝뚝 묻어난다.

“대장님,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정보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점을 드러낸다.

“이상한 점이라니?”

정보원은 전국에서 활약하는 의병장의 몽타주를 테이블 위에 펼친다. 몽타주마다 커다란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는데, 유독 두 명의 몽타주에는 아무런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총대장 이인영을 포함해서 경기도의 허위, 황해도의 권중희, 충청도의 이강년, 강원도의 민긍호, 전라도의 문태수, 평안도의 방인관, 함경도의 정봉준 등을 모두 확인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강원도의 신돌석과 북청의 홍범도가 보이지 않은 점입니다.”

“그게 사실이야?”

“예! 진영에 첩자를 잠입시켜 탐문한 결과 24진으로 편성된 지휘부 전체가 유생과 군인 출신으로 충원됐다고 합니다. 평민 출신인 두 사람이 배제된 점을 두고 의병 내에서도 불만이 팽배하다고 합니다.”

“그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윗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며 그 사이로 금니가 번뜩인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모인 의병들이 신분을 따지고 있다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군영을 짜야 서릿발 같은 영이 선다는 병법도 모르는 놈들하곤! 하하! 그나저나 사령부가 하달한 이번 작전명이 뭔가?”

후지하라가 허리를 곧추세운 채 힘껏 말한다.

“‘한성방어작전’입니다!”

“그렇지, 한성방어작전!”

“하이!”

“서류에서 이번 작전명을 당장 바꾸도록 해!”

“예? 무슨 말씀이신지······?”

후지하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번 작전의 공식명칭은 ‘한성방어작전’이 아니라 ‘의병섬멸작전’이다.”

그제야 그의 속내를 알아챈 후지하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카지는 채찍으로 제 장화를 톡톡 건드린다. 그가 손을 까닥거릴 때마다 폐부 깊은 곳에 농축되어 있던 이산화탄소가 가늘게 새어 나온다.




104.


손탁호텔 입구에 ‘공사중’이란 표시가 내걸린다. 2층 객실로 연결된 계단이 천으로 가려지고 직원들의 출입도 금지된다. 손탁 여사는 사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등의 공사 부인을 통하여 공사들과의 밀담을 주선한 터다. 각국의 공사들은 손탁 여사의 주선에 흔쾌히 응하기로 한다.

밀담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성탄절을 앞두고 성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어느 누구도 호텔 내부의 공사를 의심하지 않는다. 밀담에 응하기로 한 공사들은 십분 간격으로 돌담으로 가로막힌 후원에 도착한다. 손탁 여사는 공사들이 도착할 때마다 직접 비상계단을 통해 2층 회의실로 안내한다.

마지막으로 독일 공사가 도착하자 회의실에 마련된 테이블이 꽉 찬다. 손탁 여사가 상원과 함께 등장한다.


“이분이 바로 ‘13도의병연합부대’의 이인영 총대장과 허위 군사장의 밀서를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신상원 연락장입니다.”

소개를 받은 상원이 한 발 앞으로 나서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러곤 총대장과 군사장의 직인이 큼지막하게 찍힌 밀서가 담긴 두루마리를 펼친다. 공사들은 밀서를 차례로 돌려본다. 몇몇 공사는 외눈 안경을 끼고 직인을 꼼꼼히 살핀다. 한 바퀴 순회를 한 밀서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상원이 주위를 일별한다.

“먼저 이렇게 밀담에 응해주신 데에 대해 ‘13도의병연합부대’ 이인영 총대장을 대신하여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는 인사말을 마친 뒤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한다.

“‘한성진격작전은 일본제국에 의해 침탈당한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전쟁임을 밝히는 바다. 단순히 의병이 아닌 구국의 일념으로 뭉친 정규군임을 또한 밝힌다. 한성진격작전에는 일본제국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진위대 군인 3천명도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 독립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합법적인 군대의 군사작전임을 천명하며, 전쟁 이후의 법적 효력은 국제법상의 독립국가의 군대가 행한 전쟁으로 간주 될 것’이라는 것이 ‘13도의병연합부대’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상원이 모두 발언을 끝낸다. 공사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눈치를 살핀다. 극동아시아의 맹주로 급부상한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셈법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고종 황제가 퇴위한 후로 황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는데, 이름뿐인 순종 황제의 칙명이라도 받았단 말이오? 물론 그 칙명이란 것도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겠지만.”

탐탁지 않은 자세로 시종일관하던 독일공사가 직격탄을 날린다.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 공사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상원을 노려본다.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다는 뜻이 아니오?”

상원은 이탈리아 공사의 반박에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 순종 황제의 칙명을 받았더라면 굳이 ‘13도의병연합부대’의 명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공사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의견이 모아지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다. 국제정세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외교관은 때론 국제사회의 신사로 통한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이 결부된 사안과 맞닥뜨릴 때는 굶주린 하이에나의 습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토시 하나, 단어 하나마다 강력한 치악력(齒握力)으로 빈틈을 비집고 공략한다.

“설령 한성을 탈환한다손 치더라도 황제의 추인이 없으면 당신들은 일개 폭거로 전락할 수도 있는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처신할 생각이오? 아무리 외교적으로 동의를 얻는다 해도 군사작전은 본국의 추인 없이는 원천무효가 되는 것이 국제법상의 관행이오!”

프랑스공사는 상원을 풋내기로 취급하는 듯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13도의병연합부대’는 나라를 전복시키기 위해 거병한 혁명군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13도의병연합부대’는 국제법상으로 빼앗긴 독립국가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정규군입니다! 만약 황제의 추인이 없으면 ‘13도의병연합부대’는 자진 해산할 겁니다. 1896년 당시 의병에 가담한 현 허위 군사장께서는 고종 황제가 내린 ‘내밀봉서’를 받은 즉시 의병을 해산한 전력도 있습니다. 따라서 본 부대는 현 황제의 뜻을 거스르는 혁명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주장하는 바입니다!”

다소 상기된 듯 상원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황제의 칙명이 없는 이상 본국은 ‘13도의병연합부대’의 작전을 승인하지 않겠소. 사후에 황제의 추인이 있을 것이란 가능성만으로 의병부대의 작전을 정규군의 전쟁 수행으로 인정하기는 곤란하오!”

독일 공사는 완강히 반대의견을 피력한다.

“본국은 ‘13도의병연합부대’가 수행하는 모든 무력행위를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군사작전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국제법상의 국가 간의 전쟁으로 규정하여 국제사회에서 귀국의 군대가 합당한 권리를 인정받기를 원하오. 단, 이 모든 권리는 순종 황제의 추인이 있고, 본국에 승인을 받는 절차에 따라야 할 것이오.”

프랑스 공사는 알쏭달쏭한 수사법으로 결국 거절의 의사를 전한다.

“본국은 누구의 편도 아니오! 다만, 이기는 편에 선다는 것만 아시오! 국제사회에서 동정은 금물이오. 지금 바로 입장표명을 하지 않겠지만, 작전 개시 후 한성을 점령하면 이탈리아는 그대가 속한 군대를 지지할 것이오!”

이탈리아 공사는 피식민지의 항거가 불발에 그치는 것을 줄곧 경험한 터였다. 따라서 그는 속물근성을 드러내며 조건부 지지를 선언한다.


밀담(密談)의 결과는 정글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당사국과 자국의 이해득실을 비교하여 기울기가 상승하면 취하고, 하락하면 버리는 구조다. 일본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독일은 반대표를 던진다. 일본의 대륙진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프랑스는 절반의 찬성표를, 그리고 일본과 모호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탈리아는 중립을 선택한다.

세 시간에 걸친 밀담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을 맺는다. 그저 자신이 처한 입장을 확인한 공사들은 독이 든 술잔을 잠시라도 함께 돌린 동료의식이라도 생긴 듯 등장할 때와는 달리 퇴장할 때는 행동을 같이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라도 이익이 부합되면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는 표범의 털갈이를 몸에 지닌 터라 순간의 동료의식 따위에는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상원만이 휑한 회의실에 홀로남아 식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극명한 국제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할 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12 mail510
    작성일
    19.04.15 12:22
    No. 1

    영걸이 왔니 무눙이는 어찌 아이 왔니
    아바이 아바이 밥 잡쉈소 어
    명태 명태 라고 흠흐흐흐 쯔쯔쯔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강산에, 명태중에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최장르
    작성일
    19.04.15 12:47
    No. 2

    ㅍㅎㅎ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가수가 저놈이라서. ㅎㅎㅎㅎ 개인적인 치부를 알고 있어서, 마음만 받겠습니다. 행여 사감으로 독자님과 괴리가 생길까 심히 우려되긴 합니다. 죄송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2 mail510
    작성일
    19.04.15 13:01
    No. 3

    평생에 치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ㅜㅜ 노래는 노래로 작품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ㅇㅇ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최장르
    작성일
    19.04.15 17:38
    No. 4

    No comment! 상대방에게 얼마나 크나큰 상처를 주었는가가 핵심. ㅎㅎㅎ
    더 이상 남의 얘기는 사절합니다.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님의 침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4 134화 악마의 최후 +3 19.07.12 153 1 16쪽
133 133화 고귀한 죽음 +1 19.07.11 87 1 12쪽
132 132화 무지개 +1 19.07.10 86 1 13쪽
131 131화 차관협정(借款協定) +2 19.07.05 94 1 14쪽
130 130화 반공포로석방 +1 19.07.01 109 2 13쪽
129 129화 한일회담 +1 19.06.29 106 2 15쪽
128 128화 폭탄테러 +1 19.06.26 115 2 13쪽
127 127화 카츄샤 +1 19.06.24 103 2 13쪽
126 126화 의사 왕룽 +1 19.06.23 103 3 17쪽
125 125화 빅터 한 재단 +2 19.06.19 113 3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139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111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109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118 3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123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126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120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117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128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170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145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126 2 11쪽
112 112화 금괴수송작전 +1 19.05.19 163 2 10쪽
111 111화 '암호명 A-1' +1 19.05.18 117 2 13쪽
110 110화 악연(惡緣) +1 19.05.17 116 2 14쪽
109 109화 마지막 미션 +1 19.05.16 117 2 12쪽
108 108화 애치슨 라인 +1 19.05.15 116 2 12쪽
107 107화 연적(戀敵) +1 19.05.15 133 2 12쪽
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129 2 12쪽
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134 2 15쪽
104 104화 한국은행 +1 19.05.11 135 2 14쪽
103 103화 비밀거래 +1 19.05.10 156 2 12쪽
102 102화 남미이주작전 +1 19.05.10 151 2 13쪽
101 101화 트루먼 독트린 +1 19.05.10 124 2 11쪽
100 100화 숙명의 라이벌 +1 19.05.10 130 3 18쪽
99 99화 Jane Doe +2 19.05.10 128 2 13쪽
98 98화 앙숙, 이승만과 김구 +1 19.05.10 128 2 12쪽
97 97화 반도호텔 +1 19.05.10 123 2 13쪽
96 96화 좌익과 우익 +1 19.05.09 123 2 13쪽
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129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135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125 2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130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129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117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112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117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112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114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112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118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130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112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113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119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110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108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106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112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118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112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107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106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106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106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109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112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110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110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109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109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110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120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111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109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114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109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112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110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109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110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110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114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114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112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110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115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113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113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107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108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110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116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116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114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115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121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130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130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134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130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128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130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153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131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141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130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132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137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48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136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139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144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142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147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55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60 3 46쪽
»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58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60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74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81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263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242 7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263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289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305 8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317 9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371 12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376 12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423 13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516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637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927 13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795 19 12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최장르'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