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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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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최근연재일 :
2019.07.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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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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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6쪽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님의 침묵




DUMMY

3권



제16장 폭풍성장(暴風成長)




241.


연안을 따라 북상하는 여객선의 항로가 심상치 않다. 늦가을로 접어든 황해는 대륙의 기단이 팽창하면서 거친 바다로 돌변한다. 꼬박 이틀을 항해한 배가 칭다오(靑島)에 도착한다. 다롄(大連)까지 가려던 도선의 계획은 황급히 수정된다.


“중국경찰이 관할하는 상해와 관동군 휘하에 있는 대련은 여러모로 차이가 있어. 아무리 변복을 하고 신분을 세탁한다손 치더라도 ‘마쓰야 협정’으로 눈이 벌건 군벌이나 마적단들의 추적을 피하긴 힘들 거야. 청도에서부터 육로를 이동하는 게 좋은 듯싶네.”

인호는 도선의 제안을 듣곤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선생님의 계획대로 따르겠습니다.”


칭다오항에서 하선한 두 사람은 허름한 객잔에서 행장을 푼다. 도선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홀로 번화가로 나선다. 거리의 모퉁이마다 나붙은 전단지를 본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독일인이 운영하는 술집에 들어선 그는 맥주를 주문하곤 창가에 앉는다. 험상궂은 장정들이 앉은 자리마다 전단지를 안주삼아 호승심을 돋운다.


“상하이에서 발생한 영사피습사건의 범인 목에 무려 삼십만 원이 걸렸잖아? 삼십만 원이면 도대체 어느 정도야? 감이 잡히질 않네. 칭다오 시가지의 건물을 열채도 더 살걸! 이거 구미가 당기는데?”

맞은편에 앉은 덩치가 맞장구를 친다.

“임시정부의 수장 김구 목에 걸린 현상금이 육십만 원인 걸 보면, 이놈이 걸물이긴 하네. 두목! 이놈이 분명 상해를 떴을 텐데, 어디 애들 좀 풀어 수소문해볼까요?”

호피를 걸친 두목이 비스듬히 앉아 넙데데한 턱살을 매만지며 골몰한다. 그러곤 자세를 바로잡고 목청을 가다듬는다.

“만주 군벌 장쭤린이 움직이면 두 가지뿐이다. 그놈이 먼저 잡든지 아니면 범인이 아예 숨어버리든지. 장쭤린이 눈치를 채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 친다. 각 지부에 연락해서 당장 조선족 정착촌에 애들을 심어놓으라고 해! 모든 항구와 역의 구두닦이나 짐꾼들한테도 수상한 자들이 있으면 즉시 연통하라고 하고!”

“예!”


칭다오 군벌을 이끄는 두목에게 인사를 한 부하들이 서둘러 술집을 빠져나간다. 두목은 한 손을 들어 건성건성 인사를 건넨 후 ‘칭다오맥주’가 담긴 잔을 단숨에 비운다. 큼지막한 손으로 소시지를 통째로 든 두목이 우적우적 씹을 때마다 겹친 턱살이 흘러내릴 듯하다.

항구를 무대로 하역과 노조를 쥐락펴락하며 칭다오의 암흑가를 지배하는 조직원들의 얘기를 엿들은 도선의 낯빛이 벌겋게 상기된다. 푼돈으로 구워삶을 수 있는 부패한 경찰과는 달리 막대한 포상금에 현혹된 현상금사냥꾼이 냄새를 맡았다는 것은 도망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모로 불리한 정황임이 틀림없다. 잔뜩 긴장한 그는 맥주를 마시는 척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242.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새 학기를 맞이한 인서는 기숙사와 강의실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가끔씩 수잔이 보내오는 편지와 사진이 그에게는 크나큰 위로가 된다. 주말이면 그는 교포들이 다니는 교회를 방문한다. 예배가 끝나면 선생으로 변신하여 한글을 가르친다. 그가 한글수업을 마치고 교회를 나설 즈음 낯익은 얼굴이 그를 반긴다.


“이젠 제법 유학생 티가 줄줄 흐르는걸!”

“기자님!”

인서는 용만에게 달려가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여긴 웬일이세요?”

“미주협회총회의가 있어서 왔다가 자네 근황이 궁금해서 들렀네.”

“잘 오셨습니다.”

“목사님 댁에 저녁 초청을 받았는데 같이 가지?”

“좋습니다.”

두 사람은 한가한 주택가를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

“전에 미개간지를 구입하기 위해 북경에 다녀오신다고 하셨는데, 잘 다녀오셨습니까?”

“쓸 만한 미개간지를 보고 왔네. 미리 계약금까지 지불했지. 내년에는 그 땅을 개간할 정착지가 들어설 예정이야. 그렇게 되면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설립한다는 대본공사의 원대한 꿈이 첫 삽을 뜨게 되는 셈이지.”

한껏 들뜬 용만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마침내 해외교포들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지는군요. 존경합니다, 기자님!”

“아직 갈 길은 요원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떼야 되지 않겠나? 독립군 양성자금을 마련하는 토대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자강, 자주, 자력의 독립을 이루어 내야지.”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밀알이 되겠습니다.”

“이르다 뿐인가.”


두 사람은 잠시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나저나 임정 대표들과 대본공사계획을 의논하기 위해 사흘 일정으로 상해를 방문했네. 그쪽 상황도 영 심통치가 않더군! 얼마 전 상해 주재 일본 영사가 피격당하는 일이 발생했네. 동석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용케도 영사만이 화를 면했다고 들었네. 그런데 테러 용의자로 한국계 청년이 유력하게 떠오르면서 임정 요인들에 대한 일본 정보부의 사찰이 강화되었다고 하더군. 아직 추측이긴 하지만 테러 용의자가 춘천에서 동맹파업을 주동한 혐의로 현상수배를 받고 있는 춘천고보학생이라고만 들었네.”

뭔가 떠오른 듯 인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혹시 이름이?”

“‘한인호’라고 하더군!”

“예? 누구라고요?”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예감이 적중하자 그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한인호! 그렇고 보니 자네도 한 씨잖아? 아는 사이인가?”

“춘천고보에 다니는 한인호가 확실하다면······, 제 형입니다!”

“훌륭한 형을 뒀군! 자네 형제는 민족의 영웅일세!”

용만이 인서의 어깨를 다독거린다.

“테러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들으셨습니까?”

“상해 곳곳에 수배전단이 붙은 걸 보면 아직 체포되지는 않은 듯하네. 자세한 내막을 알려면 본국에 연락을 취해보는 게 빠르지 않겠나?”

“집안 자체가 춘천에서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터라 연락을 취했다가는 오히려 부모님께 화가 미칠 게 뻔합니다. 그나저나 형이 왜 상해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조선 팔도에 수배령이 떨어져서 상해로 망명을 한 것일 테지. 내가 상해 임정에 연락을 취해 형의 행방을 수소문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감사합니다, 기자님!”


목사 집에 도착한 후 인서는 홀로 거리를 서성인다. 그러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어둠에 자리를 내준 서녘하늘을 넌지시 주시한다.


‘형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를 떠돌고 있을까. 형도 상해로 떠난 마당에 부모님은 누굴 의지하고 지내고 계시는지. 부모형제를 등지고 이곳에서 공부만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어머니, 아버지, 형! 보고 싶습니다. 불효자, 못난 동생을 용서하세요!’


끝내 눈물이 솟구친 그는 주먹을 깨물곤 한동안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인다.



243.


만주의 관문으로 일컬어지는 랴오닝(遼寧)의 경계선 밖으로 말 이십여 마리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비스듬히 기운 경계석 앞에 멈추는 무리는 청도 군벌이 고영한 인간사냥꾼들이다. 우두머리가 말의 고삐를 틀어쥐곤 경계석을 한 바퀴 돌면서 주위를 살핀다.


“여기를 넘으면 곧 만주 군벌 장쭤린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셈이다.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말도록 해! 만주 조선인촌으로 가기 위해선 놈은 필시 이곳을 지나칠 것이 확실하다. 곳곳에 흩어져서 감시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우두머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북쪽으로부터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긴장한 우두머리가 목을 빼들고 전방을 주시한다. 눈으로 뒤덮인 벌판에 햇살이 난반사된다. 저만치 어른거리던 덩어리는 차츰 눈보라를 벗어던지곤 모습을 드러낸다. 말 50여 마리가 땅을 구르며 남쪽으로 남하한다.


“대장! 장쭤린의 수하들 같습니다. 어서 도망칩시다!”

부하가 다급하게 외친다. 총 십여 발이 폭죽처럼 연달아 허공에 메아리친다.

“오라면 오라고 해! 경계석을 넘지 않은 이상에야 켕길 게 뭐가 있나!”


부하들 앞에서 호기를 부리는 우두머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흙먼지를 잔뜩 몰고 나타난 마적단의 우두머리가 여자란 사실을 알아채곤 입술을 실룩거린다.

이윽고 인간사냥꾼의 우두머리와 마적단의 두목이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대거리를 한다. 점박이가 선명한 표범의 가족을 두른 마적단의 두목이 투레질을 하던 말의 머리를 낚아채며 선공한다.


“감히 여기가 어느 땅이라고 허락도 없이 넘으려고 하느냐!”

인간사냥꾼의 우두머리가 일갈한다.

“만주에 사내 씨가 말랐나 보지? 어디 아녀자가 말 먹이가 줄 것이지, 말 등에 올라타 사내 흉내를 낸단 말이냐!”

“만주에서 아직도 나를 모르는 걸 보니, 애송이에 불과하군! 만주 땅을 밟은 연유를 고하고 신분을 밝혀라!”

주찬이 호통을 치자 우두머리는 이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비웃는다.

“허허헛! 굳이 이름을 밝힐 이유가 없지 않느냐! 여기 보시다시피 경계석을 넘지도 않았는데, 무슨 놈의 연유를 밝히라는 거냐!”

사열하듯이 말머리를 돌려 부하들을 둘러본 주찬이 대꾸한다.

“만주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이상 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적의 법도다. 경고한다. 경계석을 넘는 수간 너와 졸개들은 굶주린 늑대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리 알아라!”

사냥꾼은 기죽지 않고 맞장구를 친다.

“그럴 일은 없다! 너야 말로 한 발짝이라도 남쪽으로 넘어오면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두 진영은 눈 속에 파묻힌 경계석을 사이에 두고 진을 친다. 어스름 저녁이 찾아오자 두 진영은 모닥불을 켜고 야영을 준비한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고기와 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상대를 자극한다.



244.


말 수십 마리가 말뚝에 묶인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도선은 능숙하게 말의 주둥이를 벌리고 이빨을 들여다본다. 맘에 들지 않은 듯 그는 말 여러 마리의 정강이와 발목을 확인한다. 그러곤 햇빛을 받아 갈기가 번쩍이는 검정말 앞에 멈춘다. 유난히 갈기가 무성한 말의 잇몸을 들춰 이빨을 확인한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연이어 옆에 있는 갈색말의 등을 두드린다.


“이 놈들로 하겠소!”

“말을 보는 눈이 탁월하시군! 이 놈들은 항우가 타던 오추마와 관운장이 아끼던 적토마의 대를 잇는 천리마올시다.”

말 주인이 뜸을 들이자 도선이 재촉한다.

“흥정할 시간이 없소. 안장까지 얹어주면 이걸 드리리다!”

그는 회중시계를 건넨다. 주인은 회중시계를 들추고 햇빛에 비춰본다. 주인은 금빛이 난반사되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회중시계를 귓바퀴에 갖다 댄다.

“좋소! 에누리 없이 이걸로 거래는 끝이요.”

“좋소이다!”


주인으로부터 안장을 건네받은 도선과 인호는 제각기 말의 등에 안장을 얹는다. 두 사람은 잽싸게 말에 올라타서 인근 시장으로 내달린다.

말린 고기와 물을 구입한 도선은 인호에게 짐을 맡기곤 허둥지둥 건너편 술집으로 향한다. 보드카 두 병을 산 그는 한 병을 따서 벌컥벌컥 마신 뒤 플라스크에 술을 가득 붓는다.

콧잔등이 발그레한 도선은 안장 위에서도 흐느적거린다. 말에 오른 인호가 도선에게 다가간다. 두어 차례 헛발질을 하던 도선도 박차를 가하며 시장을 벗어난다.



245.


요동 땅은 자고로 청나라를 개국한 ‘누루하치’가 말을 달리던 만주와 연결된 요로(要路)다. 행정구역상 청조(淸朝)의 성지로 편입되었지만 황량한 벌판과 혹독한 기후로 인해 황실의 특별행사 외에는 관리들조차 꺼려하는 낙후된 곳이기도 하다. 물론 광활한 만주의 자원에 눈독을 들인 소련과 일본이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만주는 그저 청나라의 시조들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만주로 향하는 여정은 녹록치 않다. 겨울은 만주로 통하는 모든 길을 마비시킨다.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폭풍설은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사흘이 멀다 하고 불어 닥친다. 인가가 뜨문뜨문 있는 초원을 벗어나자 끝도 없는 설원이 펼쳐진다.

잔설이 얼어붙은 탓에 시야를 잃은 말은 연신 허방을 딛기 일쑤다. 모포를 뒤집어쓴 도선과 인호는 돌로 쌓아 만든 헛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양들의 임시 거처로 쓰이던 헛간은 방랑자의 안식처로 맞춤하다. 헛간을 지탱하고 있는 돌담은 바람막이로 손색이 없다.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가축의 분변은 바짝 말라 당장 군불을 지피기에 적합하다.


말에게 건초더미를 던져둔 후 두 사람은 저녁을 준비한다. 말린 육포와 딱딱한 빵에 끓인 차가 고작이지만 추위를 피해 끼니를 때운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불만이 없다. 불가 옆에 잠자리를 준비한 인호는 주변을 정리한다. 조금 전부터 플라스크를 입에 댄 도선은 어느덧 취기가 오른 성싶다.

불콰한 술내가 주위에 훅 끼친다. 서너 차례 마른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도선은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든다. 그러곤 ‘희망가’를 연주한다. 구슬픈 아다지오로 시작된 멜로디는 어느새 알레그로로 바뀌면서 활기찬 음색으로 돌변한다.

한껏 신명난 도선은 손뼉을 치며 ‘희망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덩달아 고무된 인호도 따라 부른다. 이윽고 두 사람은 모닥불 앞에 서서 양팔을 휘저으며 춤까지 춘다. 플라스크를 입에 대고 홀짝거리던 인호도 차츰 취기가 오른다. 두 사람은 한데 어울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희망가를 힘차게 부른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인호가 툭 내뱉는다.

“선생님은 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매력은 무슨······. 그리고 선생님이 뭐야? 앞으론 형이라고 불러!”

“네!”

인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도선의 민낯을 찬찬히 살핀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얼굴이 어째 갈수록 젊어지십니다!”

“형이라고 부르라니깐!”

“네, 형님! 근데 왜 경성에서 처음 뵐 때랑 상해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중늙은이 같았는데, 이곳 만주에서는 달리 보이는 걸까요?”

“상해에서는 어쩔 수 없잖아. 사업가로 신분을 세탁하다 보니, 부득불 내 인생에서 십여 년을 덤으로 얹어서 살 수밖에야. 훌훌 벗어던지고 야인으로 돌아와 내 나이로 산다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은 정말 몰랐어! 이놈의 거꾸로 된 세상에서는 나이도 뒤죽박죽이라니까. 덕분에 상해에선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들이 깍듯이 형이라 부르곤 했는데······. 아, 옛날이여! 김도선의 봄날도 다 지나가는구나!”

“형님도 참! 하하핫!”

“아우! 그런데 아까부터 이상한 기척 못 느꼈어?”

도선이 정색을 하며 귀를 쫑긋 세운다. 덩달아 긴장한 인호도 바람소리에 기척을 솎아내기 위해 손으로 귓바퀴를 감싼다.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술이 취한 건 아니지? 부뚜막에서 강아지새끼가 어미 찾을 때 내는 소리잖아!”

인호가 슬그머니 일어나 마구간으로 다가간다. 건초더미를 헤집은 끝에 비쩍 마른 들개 새끼를 발견한다. 인호가 품에 안고 오자 도선이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품에 안은 폼이 영락없이 첫 애를 받은 애비 같군!”

인호는 먹다 남은 딱딱한 빵조각을 온기가 남은 찻잔에 넣고 불린다. 그러곤 정성스럽게 눈도 못 뜬 새끼에게 먹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몹쓸 짓을 한 모양이야.”

새끼를 품에 안고 불린 빵을 먹이는 인호가 되묻는다.

“왜요?”

누운 채 이를 쑤시던 도선이 지나가는 투로 말한다.

“왜긴 왜? 우리가 오기 전까지 이 오두막은 들개 어미의 안식처란 얘기잖아. 새끼를 보아하니 눈도 뜨지 않았잖아? 급히 떠났다는 얘기지.”

“그럼, 우리가 떠나면 곧 새끼를 찾으러 돌아오겠군요.”

“모르는 소리. 들개는 늑대의 습성을 지니고 있어서 한 번 떠난 자리는 다시 찾지 않는다네.”

“그럼 이 새끼는······?”

“만주의 신이 품은 생명이니 거두는 것도 만주의 신에게 맡겨야지.”


말을 마치자마자 도선은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다. 인호는 지푸라기로 자리를 편 뒤 새끼를 누이고 옆에 눕는다. 온기를 되찾은 양 새끼는 쌔근쌔근 가쁜 숨을 내쉬며 인호의 팔에 코를 묻곤 이내 잠이 든다.



246.


간밤에 영하로 떨어진 설원은 온통 서릿발로 뒤덮여 수정처럼 맑다. 서릿발은 햇살이 대지를 데울 때까지 온전히 시한부의 명줄을 지키다 일제히 모습을 감춘다.

눈부신 햇살을 손차양으로 가린 파수꾼이 지평선의 끝자락을 면밀히 훑어본다. 뭔가를 감지한 듯 사냥개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남쪽 방향으로 연신 턱짓을 한다. 파수꾼이 휘파람을 분다. 사냥개 대여섯 마리가 경주를 하듯이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헛간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파수꾼 두 명은 사냥개를 따라 헛간으로 말을 달린다.


사냥개가 달리는 길을 따라 결빙된 상고대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도 만난 듯 된서리를 맞아 산산조각이 난다. 건초를 씹던 말들이 수상한 기척을 감지한다. 불씨가 사위여가는 모닥불 주변에 보드카와 플라스크가 나뒹군다. 도선은 하모니카를 손에 든 채 엎드려서 드렁드렁 코를 골고 있다. 인서는 모포를 돌돌 말아 잔뜩 웅크리고 있다.

투레질을 하던 말이 다가와 도선과 인호의 얼굴을 핥는다. 먼저 부스스 일어난 인호가 화들짝 놀라며 바위틈으로 바깥 동정을 살핀다. 앙칼지게 짖어대는 개소리와 지면을 통해 점점 다가오는 말굽소리를 확인한 그는 서둘러 도선을 깨운다.


“선생님! 인간사냥꾼이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눈곱을 떼고 기지개를 켜던 도선은 땅바닥에 귀를 갖다 댄다. 그러곤 정신이 든 듯 잽싸게 안장에서 쌍안경을 챙겨 헛간 문틈으로 밖을 관찰한다.

“북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한 마장거리까지 접근해오고 있어.”

부리나케 안장에서 권총을 뽑아든 도선이 인호를 재촉한다.

“서둘러 침을 챙기게. 총알도 장전해두고! 어서!”


말에 오른 두 사람은 헛간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고삐를 바짝 당긴 두 사람은 두 갈래로 좁혀오는 반대 방향으로 눈보라를 휘날리며 도주한다. 설원의 지리에 밝은 마적단이 먼저 두 사람을 따라붙는다. 인간사냥꾼들은 뒤미처 마적단의 뒤를 쫓는다. 도선과 인호의 뒤를 말 삼십여 마리가 서로 경쟁하며 추적에 합류한다.

한 식경이 채 지나지 않아 선두에 선 말 두 마리가 흰 거품을 게워낸다. 어느 틈엔가 도선과 인호는 말들에 포위되어 오도 가도 못하고 궁지에 몰린다. 도선과 인호의 주위를 에워싼 말들이 호를 그리며 양쪽으로 흩어진다. 도선과 인호는 총을 든 채 제가끔 상대를 겨누며 위협한다.


“우리 파수꾼이 먼저 발견했으니, 놈들은 우리 차지다! 길을 양보하라!”

인간사냥꾼의 두목이 장총을 높이 들고 마적단에게 일갈한다. 듣고 있던 마적단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린다. 주찬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대거리한다.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군! 여긴 만주 땅이다. 마적단의 관할구역이란 말이다. 따라서 마적단의 율법에 따라 법을 집행한다.”

도선과 인호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태를 바라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사냥꾼의 두목이 발끈하며 일성을 터트린다.

“사냥에서도 목표물을 발견한 사냥개한테 먼저 고깃덩이를 떼어 주는 법이다. 우리가 먼저 발견했으니, 우리가 임자다! 어서 길을 비켜라!”

주찬은 어이가 없는 듯 혀를 내두르며 비아냥거린다.

“임자고 뭐고 따질 것도 없이 너희는 이미 우리 관할에 들어온 이상 마적단의 법을 의당 따라야 한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 말머리를 돌린다면 책임을 추궁하지 않겠다. 그러나 거역할 경우 너희 목을 도려내 독수리의 먹이로 주겠다!”

두목이 치뜬 눈으로 상대를 노려볼 즈음 옆에서 이를 갈던 파수꾼이 총을 뽑는다. 그러곤 손가락을 까닥하는 것을 신호로 방아쇠를 당긴다. 총격전은 삽시간에 전면전으로 번진다. 초기 총격으로 십여 명이 말안장에서 나가떨어진다. 이윽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로에게 달려든 마적단과 인간사냥꾼은 한데 뒤섞여 일전을 펼친다.

간신히 전투현장을 빠져나온 도선과 인호는 납작 엎드린 채 북쪽으로 내달린다. 마침 북쪽으로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사즉생(死卽生)을 작정한 듯 두 사람은 모자로 눈과 입을 틀어막곤 눈보라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총격전으로 미처 폭풍설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마적단과 인간사냥꾼은 회오리에 휩쓸려 공중으로 치솟거나 설원에 처박힌다.

모진 강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 이십여 구와 말 주검들이 나뒹군다. 온통 눈을 뒤집어쓴 주찬과 부하들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인간사냥꾼들의 머리에 냉정하게 총알을 박는다. 그러곤 마적단의 시신을 수습한 뒤 현장을 떠난다.

 



247.


인간사냥꾼과 마적단의 혈전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도선과 인호는 마침내 한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지린성(吉林省)의 화뎬현(樺甸縣)에 무사히 도착한다.

지린(吉林)은 만주에 흩어져있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와 군정서(軍政署), 광정단(匡正團), 의우단(義友團) 등의 무장단체들을 아울러 독립운동연합체로 탄생한 정의부(正義府)의 본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정의부의 사령장(司令長)을 맡은 지청천은 도선을 반갑게 맞이한다. 서로군정서군(西路軍政署軍)을 이끌던 지청천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과 연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창설하여 초대 여단장을 맡은 인물이다.

그 당시 도선은 대한독립군단의 군자금조달책으로 활동하며 지청천의 밀명을 받아 상해의 임시정부와 교통을 했던 연락장교의 신분이었다.


도선은 지청천을 끌어안으며 잔에 술을 가득 따른다.

“백산, 자네는 아직도 술을 멀리 하나?”

백산은 지청천의 아호다.

“자유시 참변 때 러시아놈들한테 쫓겨 시베리아를 떠돌 무렵에 추위를 잊을 요량으로 보드카를 마시긴 했었지. 그런데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나니, 그놈들이 마시는 보드카가 정나미가 뚝 떨어지더군. 그래서 그날 이후 보드카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네.”

술잔을 단숨에 비운 도선이 너스레를 떤다.

“시베리아와 북만주를 호령하는 정의부의 사령장께서 그까짓 일로 엄살을 부리다니, 실망인걸! 혹시 몰래 담가둔 막걸리를 밤마다 홀짝홀짝 마시며 향수를 달래는 건 아니고? 하하핫!”

“이사람 농지거리는 여전하군! 그나저나 상하이에서의 일은 들었네.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그건 직접 거사를 주도한 장본인에게 듣게나!”

도선은 파오 밖에서 말을 돌보던 인호를 큰소리로 부른다.

“한 군! 이제 그만하고 어서 안으로 들게!”

인호가 쭈뼛거리며 파오 안으로 들어온다.

“상해에서 단독으로 거사를 실천했다는 영웅이 바로 이 청년인가?”

“그렇다네.”

지청천은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인호에게 손을 내민다.

“정의부 사령장 지청천일세! 이렇게 혈혈단신, 단기필마로 대한건아의 위상을 세계 만방에 떨친 애국지사를 만나게 되다니 영광이네!”

“지청천 장군님의 존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야말로 간도의 호랑이로 불리는 장군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악수를 나눈 뒤 지청천은 인호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거린다.

“만주의 독립군이 연합하여 탄생한 정의부의 앞날이 자네 때문에 밝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네! 잘 오셨네, 한 동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돼있습니다.”

인호의 답을 듣던 내내 코를 벌름거리던 지청천이 혼잣말을 되뇐다.

“그런데 아까부터 이게 무슨 냄새지?”

장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도선도 주변을 훑어본다.

“시큼시큼한 냄새가 나긴 나네.”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인호가 슬그머니 품안에서 새끼를 꺼낸다.

“들개 새끼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야?”

도선이 핀잔을 준다.

“버리고 올 수가 없어서요.”

지청천이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민족의 영웅이 들개 새끼를 품었다고? 하하핫! 나도 한 번 안아보세.”

새끼를 받아든 지 장군이 서글서글한 눈매로 묻는다.

“이름은 지었는가?”

“아직······”

“아직 눈도 뜨지 않고 만주에서 방황하는 처지가 우리랑 같지 않은가? 어떤가? 독립!”

“예?”

“개 이름으로 그렇지만 우리의 염원을 담아서 독립이로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잖나?”

“독립이? 괜찮은데요.”


세 사람이 새끼를 차례대로 쳐들며 흔쾌한 웃음을 짓고 있을 즈음 참모장 김동삼과 사령부관 정이형이 젊은 장교들을 대동하고 우르르 들이닥친다. 참모장 김동삼이 장막을 걷으며 큰소리로 외친다.

“올빼미 교관님이 오셨다면서요?”

지청천이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 있을 당시 도선은 학생들 사이에서 엄하기로 악명이 높은 교관이었다. 두 볼에 발그레한 홍조를 띤 도선이 무리를 보곤 냅다 호령을 친다.

“생도 전원 일렬횡대로 해쳐 모인다. 실시!”

“일렬횡대로 해체 모인다. 실시!”

장교들은 비좁은 파오 안에서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생도들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실시!”

“실시!”

“앉았다 일어나 반복 삼십 회 실시!”

“실시!”

절도 있게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장교들의 이마에 땀이 몽실몽실 맺힌다. 지켜보던 지청천이 도선을 향해 눈짓을 하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생도 정원 기립!”

“생도 전원 기립!”

“생도는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교관을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실시!”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교들이 도선에게 달려들어 헹가래를 친다. 노릇하게 구워진 통돼지 한 마리가 상에 오르고 술잔이 몇 순배를 돈다. 장교들은 도선과 인호의 주위에 둘러앉는다. 자리에서 일어선 도선이 무용담의 한 장면을 재연할 때마다 파오 안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248.


난로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깨를 움츠린 진구가 들어오면서 몸서리를 친다.

“어휴, 춥다. 형사님,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듯합니다.”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은 타이요우가 담배를 피우며 진구에게 핀잔을 준다.

“경무국에서 따박따박 나오는 형사 월급에다 때마다 내가 두둑이 특별활동비까지 챙겨주는 데 무슨 놈의 엄살이 그렇게 심해?”

머리를 긁적이던 진구가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듯 화제를 바꾼다.

“그나저나 딸은 순산했다는데, 산모의 건강이 영 차도를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딸이래?”

“예!”

“쳇! 아들만 줄줄이 있던 집안에서 딸이 태어났으니, 한 씨 가문에 경사로구만!”

양심에 가책이라도 느낀 듯 타이요우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곤 서랍을 열어서 돈 뭉치를 꺼내 툭 던진다.

“병원장한테 건네줘! 산모는 신경 쓸 것 없으니, 딸래미는 신경 좀 쓰라고 해! 그리고 내가 줬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잠시 혀를 내밀며 머뭇거리던 진구가 궁금증을 드러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원수 같은 한경덕 딸한테······?”

일순 타이요우의 두터운 눈두덩이 경련을 일으킨다. 상대로부터 예기치 않은 허를 찔리거나 치부가 드러날 때면 으레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버릇이다. 보통 버럭 화를 내며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다반사인데, 웬일인지 그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비록 강제로 잉태케 한 핏줄이지만 천륜이 작용한 성싶다.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한때 같은 담장 안에서 자란 사이다. 거지꼴이 되어 태어난 갓난아이도 건사 못하는 마당에 어찌 내가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냐! 아이가 무슨 죄야! 부모 잘 못 만난 게 죄라면 죄지. 마침 딸도 없으니, 경덕이 함부로 아이를 방치하면 내가 걷어 키울 생각이다.”

“역시 성님의 아량은 넓디넓은 태평양보다 크십니다.”

‘성님’이란 말에 눈을 치뜬 타이요우가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입에 발린 아부가 싫지는 않은 듯하다. 진구는 돈뭉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타이요우는 여전히 책상에 다리를 꼰 채 올려놓고 손톱을 다듬기 시작한다.



249.


상하이 영사를 맡으며 외교관의 신분으로 잠시 외유했던 카지 류노스케가 동경 대본영으로부터 소환명령을 받는다. 그에게 만주 일대를 관할하는 관동군의 정보참모란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다.

1925년 6월 11일 중국의 동북삼성(東北三省)의 지배자 ‘장쭤린(張作霖)’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失宮松)’ 사이에 체결된 ‘미쓰야 협약’ 이후 만주에서의 항일무장단체의 활동은 극도로 위축된다. 그러나 1926년에 들어서면서 지린성 화뎬현(樺甸縣)에 무장독립단체들이 정의부(正義府)로 통합되는 과정을 지켜본 일본제국주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안중근의 ‘이토히로부미암살’과 ‘3·1만세운동’이 중국 대륙의 젊은이에게 항일정신을 고취시킨 점을 잘 알고 있는 대본영으로써는 ‘정의부’의 등장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고심을 거듭하던 동경의 대본영은 마침내 묘수를 찾아낸다.

대본영은 조선에서 악명을 떨친 카지 류노스케를 관동군의 정보를 총괄하는 정보참모로 군에 복귀시킴으로써 만주의 식민지개척에 걸림돌을 등장한 정의부를 제거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카지 류노스케의 권력은 실로 막강하다. 직함은 관동군의 정보참모이지만 천황 직속인 육군성 참모본부의 소속이므로 그는 관동군사령관의 지휘도 받지 않는다. 오직 천황 직속인 육군성의 고위급 장성에게만 직보하면 되기 때문에 그의 손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쥐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항일무장단체를 발본색원하라는 특명을 받은 류노스케는 만주로 가는 도중 중간 기착지인 경성에서 한 달가량 머문다. 그는 ‘미쓰야 협정’을 이끈 총독부의 경무국장실을 방문하여 미쓰야와 밀담을 나눈다.


“미쓰야 국장, 오랜만이야!”

“카지 류노스케가 경성을 다 방문하다니, 대본영에서 뭔가 큰일을 도모하는 모양이군! 반갑네!”

대본영에서 각각 정보국과 육군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두 사람은 한때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호승심을 불태우던 사이다.

“잘 나가는 자네가 나한테 부탁할 일이 뭔가?”

“관동군에 배속 받았네. 조만 국경을 넘나들며 암약하는 독립단체의 자료가 필요하네. 그리고 독립군 체포 경험이 있는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고등계 형사들 명단도 제공해주게.”

“예나 지금이나 자네는 맨입으로 사람을 찾는 일이 없군! 알았네! 곧 지시를 내려 자료와 명단을 제공하겠네. 단, 한때 라이벌인 자네를 위해서 주지 않겠네. 대일본제국의 부흥을 위해서 준다는 것만 알아주게!”

“하하핫! 이사람 여전하군! 아직도 나를 라이벌로 생각하나? 나는 아직 별을 달지 못했어. 자네 견장에 박힌 별을 무안하게 하지 말게.”

“비록 내가 먼저 장군으로 승진했지만, 어디 경무국장인 자리가 대본영의 정보국 대좌와 감히 대적이나 하겠나? 하하핫!”

미쓰야는 겸연쩍은 듯 일부러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곤 느닷없이 눈을 홉뜨며 말을 잇는다.

“한 번 라이벌은 영원한 라이벌 인 법이지!”

류노스케가 한 발 물러선다.

“대좌 류노스케를 라이벌로 받아주다니, 자네는 역시 나의 천적이야!”

두 사람은 호기롭게 웃으며 끌어안는다.

“부관!”

수화기를 든 미쓰야가 부관을 호출한다. 곧바로 부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조만국경일대에서 활약하는 독립단체자료와 경무국 소속 고등계의 형사목록을 작성해서 여기 계신 카지 류노스케 대좌가 묵는 반도호텔로 제출하도록!”

“하이!”

“그리고 명월관에 연락해서 특실을 예약해!”

“하이!”

부관이 나가자마자 미쓰야가 류노스케를 부추긴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지! 동경에서 단판을 짓지 못한 주량을 경성에서 확인해보자고!”

“이 친구,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긴자에서 나한테 엎여간 사람이 누군데?”

“허어, 이 사람아! 누구 들으면 내가 진 줄 알겠네!”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집무실을 빠져나간다.



250.


부동자세로 전화를 받고 있는 히로시 서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하이, 하이’를 연발한다. 그러곤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대에게 응한다.

“아카키 타이요우 형사를 강력 추천합니다. 아무리 악랄한 조센징 독립군이라도 ‘타이요우’란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벌벌 떨 정도입니다.”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이던 히로시가 발뒤축을 소리 나게 맞부딪치며 허리를 곧추세운다.

“경무국장님의 명을 받들어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 하신대로 타이요우 형사에 대한 신상보고서를 바로 보내드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교환수와 연결하여 타이요우를 호출한다. 잠시 후 타이요우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서장님, 무슨 일로 호출하셨습니까?”

“간밤에 길몽이라도 꿨나?”

“예? 무슨 영문이신지······?”

타이요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심히 대한다. 턱짓으로 전화기를 가리킨 히로시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방금 누구랑 통화했는지 아나?”

서장은 자신의 일인 양 서성거리며 조바심을 친다.

“총독부 미쓰야 경무국장이 직접 전화를 주셨네.”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타이요우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관동군 정보부로 파견할 고등계 형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자네를 적극 추천했다네!”

응접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타이요우가 놀라서 커피를 쏟는다.

“예? 경무국장께서 저를 왜?”

“독립군을 때려잡을 적임자가 필요한 게지. 하하핫! 이제 자네는 변방의 고등계 형사가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관동군 소속의 정보원이 되는 걸세! 그게 무얼 의미하는 지 아나?”

믿기지 않는 듯 타이요우는 어안이 벙벙하다.

“자네는 앞으로 대일본제국의 천황 폐하의 심복이 된다는 뜻이네. 더 이상 이등 황국신민이 아니라 일등 천황의 자식이 된다는 말일세! 축하하네! 성공하면 나를 잊어서는 아니 될 거야. 암, 그래서는 아니 되지. 자네를 추천한 사람이 나란 걸 잊지 말게!”

타이요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한다.

“저같이 하찮은 놈을 고등계 형사로 발탁해주시는 것도 모자라,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의 심복으로 추천해주신 서장님을 제가 감히 어찌 잊겠습니까! 이 은혜 무덤까지 지니고 가겠습니다.”

그는 엎드려 큰절을 한다.

“어허! 천황폐하의 자식은 아무한테나 절을 하지 않아! 오로지 천황폐하께만 무릎을 꿇는 것이야! 어서 일어나게!”


히로시는 타이요우를 일으켜 세운 뒤 얼싸 안으며 기쁨을 나눈다.



251.


1926년의 봄은 유독 기승을 부리는 동장군에게 볼모로 잡힌 듯 굼뜨기만 하다. 제아무리 엄동설한이 맹위를 떨치더라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움을 틔우는 매화조차도 잔뜩 웅크린 채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미라는 두 달이 다 되도록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경덕은 퇴원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돈도 거의 바닥을 드러낸 지도 이미 오래다. 비싼 병원비의 내막을 알게 된 미라가 퇴원을 종용한 것도 경덕의 의지를 꺾게 만든 요인 중의 하나다. 간신히 땔감과 식량을 마련한 경덕은 달구지를 빌린다. 짐칸 위에 요를 깔아 미라를 눕히고 강보에 싼 초희를 엄마 품에 맡긴다. 모녀가 탄 달구지는 모진 삭풍이 몰아치는 군내를 벗어난다.

산지로 둘러싸인 미천골에 광풍이 휘몰아친다. 듬성듬성 초가가 자리한 평지를 휩쓸던 광풍은 서로 뒤엉켜 상승기류를 형성한다. 독수리 떼가 상승기류에 편승하여 미천골의 상공을 선회한다.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가 날카로운 눈을 희번덕거리며 폐가를 주시한다.

우두머리를 뒤따르며 활공하던 독수리들이 날개를 접고 상승기류를 일탈한다. 폐가 주위를 선회하던 독수리들이 폐가 마당에 안착한다. 늑대 서너 마리가 시체를 물어뜯으며 으르렁거린다. 독수리들이 엉성한 날갯짓으로 접근해오자 늑대들이 꼬리를 낮춘 채 표독스런 송곳니를 드러낸다. 뒤미처 독수리 십여 마리가 순차적으로 마당 주변에 내려앉는다.

주둥이에 피가 흥건한 늑대들은 독수리 떼가 나타난 것을 보곤 본능적으로 만찬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한다. 수컷이 어슬렁거리며 덤불 속으로 사라지다 무리들이 뒤를 따른다.

시체 주변에서 부리를 다듬고 있는 독수리 떼 사이로 우두머리가 유유히 착륙한다. 우두머리가 정강이에 붙은 살점을 덥석 물어 삼키는 것을 신호로 초대 받지 않은 불청객들의 식사가 시작된다.


동구 밖에서 미천골을 내려다보던 경덕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쉰다. 호랑이가 남기고 간 사체를 차지한 독수리 떼 근처에 까마귀들이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인기척이라곤 굴뚝 대여섯 곳에서 피어오로는 연기가 고작이다.

한때 백호가 넘는 주민들이 북적거리며 지내던 미천골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손에 잡힐 듯, 그러나 이제는 꿈만 같은 시절이 아련한 탓일까. 경덕은 눈앞에 펼쳐진 허망한 정경에 그만 눈시울을 붉힌다.

석 달이 넘도록 손길이 닿지 않은 초가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다. 더께와 이끼로 뒤덮인 문지방은 쥐가 쏠아서 곳곳에 균열이 선명하다. 쥐들은 제 집인 양 기척에도 아랑곳 않고 양지에서 수염을 다듬으며 보아란 듯이 본래의 주인을 능멸한다.

가뜩이나 엉성한 담장에 덩굴이 제멋대로 자라면서 악운의 그림자가 기웃거리는 듯 살풍경하다. 지레 겁먹은 아이들은 귀신이 사는 흉가라며 일부로 고샅길로 에둘러 귀가하기 일쑤다.


경덕은 부리나케 모녀를 안방에 들이곤 대충 마루와 마당을 청소한다. 그러곤 잔가지를 긁어모아 부엌으로 들어가서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그나마 우물이 마르지 않고 온전하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물일 길어 솥에 붓곤 미움을 쑨다. 잠에서 깬 초희가 빽빽거리며 공갈 젖을 빠는 소리가 부엌까지 들린다. 미움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냄비를 들어내곤 쌀과 밤을 곱게 가루를 낸 암죽을 아궁이에 앉힌다. 암죽이 묽게 쒀지자 사발에 담는다. 개다리소반 위에 간장종지와 함께 미움과 암죽이 오른다.

안방으로 상을 드린 경덕은 무릎에 아내의 머리를 받친다. 그러곤 호호 불어가며 미움을 떠먹인다. 미라는 겨우 한 입을 삼키곤 머리를 내두른다. 허기진 초희는 눈알을 되록거리며 입을 비죽 내민다. 암죽을 한 그릇 다 비운 뒤에야 초희는 곤지곤지하며 한껏 재롱을 부린다.

끼니때마다 경덕은 아내의 양생(養生)을 위해 옥신각신하기를 반복한다. 그나마 그릇의 반을 비우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대게 두어 숟가락 뜨는 게 고작이라 지친 그도 입맛을 잃기 일쑤다.


달이 차면 이울 듯 기세등등하던 동장군도 자취를 감춘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미천골은 휑뎅그렁하기 짝이 없다. 손이 모자라 품앗이는커녕 제 집 텃밭조차 가꿀 형편이 못된다. 가을걷이를 한 이후 땅을 다지지 못한 탓에 봄이 와도 종자를 틔울 지심이 부족하다. 보릿고개는 겨우 목숨을 건진 산자에게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온다.

양지골을 지키던 노부부가 맹수의 습격을 받아 백골로 발견되었다는 둥, 숯가마를 지키던 꼽추는 독수리 떼가 달려들어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둥의 흉흉한 소문이 잇달으면서 미천골의 인심은 뒤숭숭하다.



252.


인호와 춘천고보 동창생이던 나카다와 미나토는 춘천에서 3·1파업동맹이 벌어진 후 학교를 떠난다. 동양척식회사의 지사장과 경찰서장을 아버지로 둔 나카다와 미나토는 나란히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구마모토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예과로 편입한다. 동기들보다 두어 살이 많은 두 사람은 이미 유단자의 실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학업과 교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월반을 거듭한다.

2년 과정의 예과를 통과하면 6개월 동안 각 부대에 배치되어 오장(伍長)으로 승진하여 실습과정을 거치게 된다. 본래 2년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1년 만에 마친 두 사람은 배치될 부대를 놓고 고심한다.


교정을 걷던 미나토가 나카다에게 묻는다.

“나카다! 생각해 둔 곳이라도 있니?”

“일단 본토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어.”

“자식! 꼴에 남자라고 호기를 부리기는······”

미나토는 나카다를 툭 건드리며 실룩거린다.

“나도 마찬가지야. 본토에 있으면 편하기는 하겠지. 그런데 턱수염도 안 난 뽀송뽀송한 애들하고 막대기총 들고 총검술이나 가르칠 게 뻔하잖아. 난 결정했다!”

미나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껌뻑거린다.

“육군성에 근무하는 작은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요새 대본영의 수뇌부들이 만주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만주로 갈란다!”

나카다는 한껏 부풀어 있는 미나토를 일별한 뒤 일갈한다.

“넌 언제까지나 나만 쫓아다닐래? 이젠 지겨울 때도 됐잖아! 제발 내 곁을 떠나란 말이야.”

“그럼 너도?”

“이미 원서까지 써 놨다.”

“누가 누를 쫓아다닌다는 거야? 내가 먼저 접수하면 네가 나를 쫓는 꼴이 되잖아! 하하핫!”


미나토가 모자를 손에 쥔 채 달리기 시작한다. 나카다도 뒤질세라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는다. 두 생도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식훈련을 받고 있는 생도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253.


수업을 마친 인서는 서둘러 캠퍼스를 가로지른다. 힘은 들지만 벌이가 좋은 편인 바에서 그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마다 ‘톰’이란 이름으로 바텐더로 일한다. 장학금을 받고는 있지만 LA지역의 물가는 고학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형편이다.

옷을 갈아입은 그는 간밤의 취객들이 남겨놓은 빈병과 깨진 잔을 치우기 시작한다. 홀의 청소를 마칠 즈음 단골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대학가에 있는 탓에 주된 손님은 학생들이다.

주말을 맞은 술집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에 어깨를 맞댄 채 줄느런히 앉아 있는 젊은 취객들은 쉴 새 없이 ‘톰’을 찾는다. 술을 건네기가 무섭게 허기진 손님들은 안주를 재촉한다. 주방에서 나온 그는 능숙한 솜씨로 ‘피쉬 앤 칩스’와 ‘버펄로 윙’을 양손에 들고 춤판이 벌어진 홀을 가로질러 용케도 주문자 앞에 내놓는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일하고 있는데, 사냥한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잔에 술을 가득 따른던 그가 건성으로 답하곤 주문한 손님에게 잔을 건넨다. 그런 다음 방금 자기를 부른 상냥한 목소리를 찾아 뒤돌아온다.


“뭘 주문하셨죠?”

인서는 옆 손님이 놓고 간 빈병과 팁을 챙기면서 상투적으로 말을 건넨다.

“라임을 듬뿍 넣은 모히토 한 잔 부탁해요!”

“아직 3월이라 모히토는 하지 않습니다. 다른 걸로 주문하시죠?”

“하와이에서는 일 년 내내 마실 수 있는데······”

시끄러운 음악소리에서도 말끝이 흐려지는 어감이 귓바퀴에 똑똑히 와 닿은 듯 그가 멈칫한다. 그러곤 기대와 의혹이 깃든 눈빛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한쪽 손으로 턱을 괸 탓에 비스듬히 앉은 여성의 얼굴은 미완성된 크로키의 일부분처럼 흐릿하다. 하지만 그는 조명이 빗겨든 희미한 상태에서도 낯익은 콧날에 주목한다.


“수······, 잔······!”

입을 비죽이 내민 수잔이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쳇! 아내 목소리도 잊어버리다니······, 실망이야!”

수잔 앞으로 다가온 그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내젖는다.

“오, 마이 갓!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없이!”

“아니, 내가 못 올 데를 온 거야? 왜, 연락 안하고 오면 안 되는 거였어?”

“그게 아니라, 전혀 예상 못했잖아! 헨리는?”

“저것 보라니까! 아내는 안중에도 없고 아들만 찾네! 흥!”

토라진 수잔에게 매니저가 다가온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손님?”

“이 웨이터가 맘에 안 들어요. 다른 웨이터로 바꿔주세요.”

매니저는 황망한 듯 눈을 되록거리며 인서와 수잔을 번갈아본다.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톰은 우리 집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인기남입니다.”

아연한 매니저를 보곤 톰과 수잔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매니저님! 이쪽은 수잔이라고 합니다. 제 와이프입니다.”

매니저는 퉁방울눈을 희번덕거리며 두 사람을 자세히 훑어본다.

“뭐? 정말?”

“수잔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매니저님께서 잘 대해주신다고 하더군요. 고맙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잔과 악수는 나눈 매니저는 시계를 본 뒤 인서에게 눈짓을 보낸다.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뭐해? 다른 손님들이 채가기 전에 얼른 늑대소굴에서 와이프를 구하지 않고?”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인서가 두루뭉술하게 답을 하자 매니저가 못을 박는다.

“이곳의 책임자는 나야! 내가 퇴근시간이 됐다고 하면 끝인 거야! 어서 퇴근해!”

“예, 고맙습니다!”


인서와 수잔은 술집을 나선다. 간혹 떠들며 지나가는 취객 말고는 거리는 한산하다.


“헨리는?”

“집에 있어!”

“집이라니,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가 LA로 발령을 받으셔서 당분간 이곳에 머무를 예정이야. 그래서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안 알렸지.”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잖아. 집이 어디야?”

“못 가! 오늘 밤은 둘만 지내라고 부모님께서 문을 안 열어주신다고 했어.”

“싱겁긴! 싱글침대라고 후회하면 안 돼!”

“자기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어!”


인서와 수잔은 어깨를 얼싸안고 저만치 불빛을 내뿜는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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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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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4화 악마의 최후 +3 19.07.12 166 1 16쪽
133 133화 고귀한 죽음 +1 19.07.11 90 1 12쪽
132 132화 무지개 +1 19.07.10 90 1 13쪽
131 131화 차관협정(借款協定) +2 19.07.05 98 1 14쪽
130 130화 반공포로석방 +1 19.07.01 112 2 13쪽
129 129화 한일회담 +1 19.06.29 110 2 15쪽
128 128화 폭탄테러 +1 19.06.26 120 2 13쪽
127 127화 카츄샤 +1 19.06.24 107 2 13쪽
126 126화 의사 왕룽 +1 19.06.23 106 3 17쪽
125 125화 빅터 한 재단 +2 19.06.19 116 3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143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114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112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121 3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126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130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123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120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131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174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147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128 2 11쪽
112 112화 금괴수송작전 +1 19.05.19 165 2 10쪽
111 111화 '암호명 A-1' +1 19.05.18 120 2 13쪽
110 110화 악연(惡緣) +1 19.05.17 120 2 14쪽
109 109화 마지막 미션 +1 19.05.16 120 2 12쪽
108 108화 애치슨 라인 +1 19.05.15 118 2 12쪽
107 107화 연적(戀敵) +1 19.05.15 137 2 12쪽
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131 2 12쪽
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137 2 15쪽
104 104화 한국은행 +1 19.05.11 137 2 14쪽
103 103화 비밀거래 +1 19.05.10 160 2 12쪽
102 102화 남미이주작전 +1 19.05.10 154 2 13쪽
101 101화 트루먼 독트린 +1 19.05.10 126 2 11쪽
100 100화 숙명의 라이벌 +1 19.05.10 132 3 18쪽
99 99화 Jane Doe +2 19.05.10 130 2 13쪽
98 98화 앙숙, 이승만과 김구 +1 19.05.10 130 2 12쪽
97 97화 반도호텔 +1 19.05.10 126 2 13쪽
96 96화 좌익과 우익 +1 19.05.09 126 2 13쪽
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131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137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127 2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134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132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120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114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120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114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116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115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120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133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114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115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123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113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112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110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115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121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115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110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110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110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110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112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118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113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113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113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112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113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123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114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113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118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112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115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113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112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113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113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117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117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120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114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118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117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116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110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111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113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121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121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118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120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130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138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135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137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133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131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134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160 4 47쪽
»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135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145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134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135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141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52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140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144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147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145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150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60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65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61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65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77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86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267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245 7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270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294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311 8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324 9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378 12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381 12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430 13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525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645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941 13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820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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