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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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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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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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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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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쪽

32화 서광휘

님의 침묵




DUMMY

264.


회천, 덕천, 순천 등지를 돌며 주재소를 급습한 2분대가 먼저 평양에 입성한다. 김 중사는 평양 시내를 돌며 정탐에 나선다. 수많은 전장을 호령하며 불사조로 생존했던 김 중사였지만 중앙도로를 중심으로 거리마다 ‘타이쇼 11’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사이드카와 차량이 배치된 검문소를 보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장총을 어깨에 메던 평상시와는 달리 군인들도 바리게이트 주변의 모랫더미에 기댄 채 거총자세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주눅이 든 김 중사가 대원을 소집하여 작전을 하달한다.


“지금부터는 각자 흩어져서 단독으로 이동한다. 두 시간 뒤 접선장소에서 집결한다. 경비가 삼엄한 관계로 특이 행동은 삼가라!”

“예!”

대원들이 나직이 답한다.


부대원들은 서로 목례를 나눈 뒤 제가끔 갈 길로 흩어진다. 김 중사는 오른쪽 가슴에 손을 올린다. 그러곤 독일제 마우저 권총을 어루만지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부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을 확인한 후 그도 행인 틈에 끼어 사라진다.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은 행락객들로 북적인다. 을밀대 주변의 버드나무 숲에 몸을 숨긴 타이요우는 쌍안경으로 행락객을 예의주시한다. 느닷없이 고무라 형사가 버드나무 숲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본 타이요우가 격노한다.


“소풍 나온 줄 아나? 저런 머저리 같은 놈을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쯧쯧쯧!”

혀를 차던 그는 고무라를 벗어나 미나토가 위장한 벤치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곤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한인호! 제발 나타나기만 해다오! 미운 정도 정인가 보군. 이토록 네 놈이 보고 싶을 줄이야!”


그는 행락객 사이에서 낯익은 피사체를 잡기 위해 초점조절노브를 움직인다. 한동안 지루한 시간이 지속된다. 피로도가 누적되어 안압이 상승한다. 눈을 껌뻑거리던 그가 다시 렌즈에 눈을 대는 순간 행락지에 겉도는 사내가 어른거린다. 그는 잽싸게 초점조절노브를 돌리면서 피사체를 뒤좇는다.

덥수룩한 수염과 긴장한 눈동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수상쩍은 거동은 누가 봐도 의심을 살 만하다. 타이요우가 나카다에게 명령한다.


“백기 올려!”


나카다가 백기를 올려 맞은편에 배치된 대원에게 신호를 보낸다. 백기는 경계인물이 출몰했다는 신호다. 타이요우의 입술이 바짝 마른다. 나카다는 빨간 깃발을 만지작거린다. 적기가 번쩍 들리는 순간 곳곳에 배치된 대원들의 생포 작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타이요우는 망설인다. 확신이 서지 않은 탓이다. 그는 재차 초점조절노브를 돌리며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한 씨 문중에서 3대에 걸쳐 더부살이를 하며 자란 타이요우가 아니던가. 그가 한 씨 문중의 유전적인 내력을 모를 리 없다. 넓은 이마에 우뚝한 콧날 그리고 든든한 하관은 대대로 내려온 한 씨 집안의 귀골의 상징이다. 그러나 쌍안경에 잡힌 사내는 덥수룩한 수염에 뒤덮인 넙데데한 턱살로 추정컨대 나이 든 범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다. 요리조리 뜯어보아도 한 씨 집안의 귀골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낯익은 피사체를 찾기 위해 주위를 관찰할 즈음 총성 한 발이 울린다. 순식간에 행인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노무라가 재차 방아쇠를 당기며 김 중사를 뒤쫓는다. 타이요우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저런 병신을 봤나! 그자는 한인호가 아니란 말이다!”


그의 탄성이 쩌렁쩌렁 을밀대까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공명심에 들뜬 고무라 형사는 김 중사의 반격을 피해 나무 뒤에 숨어서 응사한다. 합류한 2분대의 대원들은 김 중사를 따라 을밀대로 몸을 피하여 반격을 개시한다. 졸지에 을밀대 일대는 총격전으로 사상자가 속출한다.

약속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온 광휘와 대원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사태에 아연실색한다. 섣불리 나설 상황도 못 된다. 이미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기동타격대가 을밀대를 포위하고 교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격노한 타이요우가 버들나무에 발길질을 하며 화풀이를 한다.

“빠가야로! 몇 초를 참지 못하고 피라미를 건드리다니. 노무라!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그는 씩씩거리며 다시 쌍안경을 잡는다. 특이한 점은 전투현장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숙인 채 줄행랑을 치는 행락객을 뒤쫓는다. 얼마간 어순선한 현장을 살피던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우르르 도망치는 사람들 속에서 유독 한 사내가 우뚝 서서 교전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우뚝한 콧날에 든든한 하관. 넓은 이마는 햇볕을 받아 더욱 번득인다. 한인호다.


“한인호가 나타났다! 적기 올려!”

나카다가 적기를 번쩍 든다. 그러나 을밀대로 쏠린 병력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타이요우는 권총을 뽑아들고 광휘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나카다도 그 뒤를 바짝 따른다.

광휘는 동지들의 교전을 바라보면서 안절부절못한다. 총을 난사하며 달려오는 타이요우와 나카다를 본 최 하사가 우뚝 서 있는 광휘를 덮친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가 전방을 주시한다.

“소대장님, 철수해야합니다.”

광휘는 최 하사와 함께 응사를 하며 퇴각한다. 타이요우와 나카다는 군인 이십여 명을 데리고 포위망을 좁혀온다.

“소대장님, 몸을 피하십시오.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습니다.”

두 사람은 나뒹구는 마차에 은신한 채 총격을 가한다. 무수히 퍼붓는 총탄 중 한 발이 최 하사의 어깨를 관통한다.

“소대장님, 한시가 급합니다. 어서 피하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최 하사는 허리춤에서 수류탄을 꺼내 손에 쥐고 눈물로 호소한다.

“난 여기서 죽을 운명입니다. 소대장님은 남아서 동지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지켜주십시오. 제발!”

광휘가 부축하려고 하자 최 하사가 뿌리친다.

“제발 떠나라고! 서광휘! 넌 우리 대장이야! 나머지 대원들을 챙겨야 돼. 어서 가! 제발!”

머뭇거리던 광휘는 마지못해 자리를 떠난다. 포위망이 좁혀오자 최 하사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는다. 그러곤 큰 소리로 외치며 웃는다.

“아부이, 어무이! 당신 아들 최명삼, 나라를 못 찾고 떠납니다. 용서하십시오!”


폭음과 함께 마차 주위로 모여든 일본군은 삽시간에 화염 속에 휩싸인다. 타이요우도 공중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널브러진다.

후폭풍의 여파로 바닥에 엎드린 광휘가 땅바닥을 치며 울분을 터트릴 즈음 낯익은 목소리가 귓바퀴에 와 닿는다.


“한······, 인······, 호!”

고개를 든 순간 광휘는 고개를 도리질한다.

“나······, 카······, 다! 네가 여기에 왜?”

총구를 겨눈 나카다가 잠시 머뭇거린다.

“너와 나의 기구한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그러곤 그는 수갑을 던진다.

“어서 차!”

광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곤 수갑을 들고 대꾸한다.

“친구한테 잡혀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쏠 테면 싸 봐!”

광휘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나카다가 방아쇠에 힘을 주며 대거리한다.

“친구한테 총을 쏘게 만들지 마라! 당당하다면 체포된 후 정정당당히 조사에 응하라!”

“넌 날 아직 모르는군! 내 사전에 체포란 없어!”

광휘가 잽싸게 뒤로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나카다는 몇 초가량 망설이다간 이내 방아쇠를 당긴다.

철컥, 철컥······, 공이가 약실을 때려 폭발과 동시에 총탄이 발사되는 작용에 대한 반응이 공허하게 들린다. 재차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헛수고다. 탄창이 빈 것이다. 탄창을 새로 갈고 방아쇠를 연달아 당긴다. 그러나 이미 사정거리를 벗어난 광휘는 보아란 듯이 훌쩍 강둑을 뛰어넘어 사라진다.


을밀대에서 교전을 벌이던 2분대는 김 중사만 남기고 전멸한다. 고무라는 투항을 권유한다. 총 여러 발을 맞은 그는 간신히 총을 쥐고 있다. 사위를 좁혀온 군인들이 계단까지 점령한다.

고무라가 을밀대에 오르는 순간 김 중사는 총구를 입에 물고 외마디를 터트린다.


‘대한독립만세! 독립군단이여, 영원하라!’


김 중사가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승리에 고취된 고무라는 뒤통수가 반쯤 날아간 김 중사의 수급(首級)을 들고 부하들과 기뻐한다.

고무라 형사는 뒤따라온 기자 앞에서 부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곤 마그네슘 조명이 터질 때마다 자세를 바꿔가며 익살스런 표정을 취한다. 마지막 마그네슘 조명이 터지는 찰나 어디선가 총탄 한 발이 날아온다. 먼저 총탄 소리를 직감한 기자가 납작 엎드린다. 일순 승리에 도취된 부하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러곤 일제히 고무라와 그의 손에 매달린 수급을 번갈아본다.


머리에 붕대를 두른 타이요우가 터벅터벅 계단을 오른다.

“이까짓 머리통과 사진이나 찍으려고 명령을 어겨?”

그는 고무라가 쥐고 있는 수습을 향해 연달아 총알을 발사한다. 고무라 손에 남겨진 것은 머리카락 몇 올이 고작이다. 분노한 그가 고무라에 다가가 닥치는 대로 주먹질을 하고 발로 걷어찬다.


“넌 악질 조센징들이 득시글거리는 형무소 교도관이 제격이야! 당장 짐 싸서 꺼져!”




265.


아내의 주검을 안방에 안치한 경덕은 초가에 불을 놓는다. 마루 밑에서 치솟던 불길은 기둥을 타고 올라 서까래로 옮겨 붙는다. 내벽이 오그라들고 외벽이 뻐개지면서 기와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마지막 불씨가 사윌 때까지 지켜보던 그의 눈동자에서 잉걸불이 훨훨 타오른다. 아내의 시신을 정든 집과 함께 화장한 것은 초희를 강하게 키우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홀아비의 비장한 배수진인 셈이다.

아이의 양생이 급선무였던 터라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천골을 떠난다. 무작정 시장 어귀의 문간방에 자리를 잡은 그는 초희를 둘러매고 시장을 전전한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한들 늙수그레하고 추레한 홀아비에게 선뜻 젖을 물릴 아낙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

배고픔에 지친 나머지 까무룩 혼절을 거듭하는 딸을 보자 그는 흰자위를 번뜩이며 아이를 업고 있는 아낙에게 다짜고짜 달려든다. 그러곤 애걸복걸하며 하소연한다. 번번이 퇴짜를 맞자 그의 행동은 거칠어진다.

남의 시선에서 볼 때 거지반 강제에 가깝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농후하다. 아낙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 사내들이 그를 시장 밖으로 끌어낸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태에서도 그의 시선은 애타게 부녀자를 뒤쫓는다.

한때 과거에 급제하여 뭇시선의 부러움을 사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배를 곯아 단내를 폴폴 풍기는 어린 딸 앞에서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비록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괴란쩍은 일을 당한다손 치더라도 방긋 웃는 딸의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그는 장터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숯가마를 전전하며 구메구메 모은 돈으로 동냥젖을 구할라치면, 초희는 보기 딱할 정도로 가짜 어미의 젖에 집착한다. 그나마 알량한 푼돈마저 떨어지면 젖동냥도 여의치 않다. 그는 산모를 수소문하여 근동을 이 잡듯 뒤진다. 그러곤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마다 않고 젖동냥에 나선다.

유두가 퉁퉁 불어 더 이상 유즙을 내지 않을 때까지 초희는 옴팡지게 젖을 빨아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애면글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초희의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점이다. 꽉 쥐어진 어린 고사리 손이 혹여 풀어지지나 않을까, 얼마나 가슴 졸이며 노심초사하였던가. 그러나 순한 입은 물리면 물리는 대로 모유건 미음이건 마다하는 법이 없다.


십일 남매를 둔 정선 댁이 문간방 앞에서 헛기침을 한다.

‘초희 아버지 있수?’

장에서 좌판을 펴고 행상을 하는 정선 댁은 경덕의 사정을 듣곤 틈틈이 찾아와 빈 젖이라도 아낌없이 물리는 이웃이다. 비록 볼품없이 쪼그라든 젖일지언정 십일 남매를 키운 관록은 투정을 부리는 아이를 으르고 달래는 데에는 문리가 텄다.

빈 젖과 씨름하던 초희는 어느새 쌔근쌔근 곤한 잠에 빠져든다. 반쯤 돌아앉은 그녀가 무심히 말을 툭 건넨다.


“이제, 이 빈 젖도 못 물리게 됐구려.”

“예?”

경덕은 제 밥그릇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이 안색을 바꾼다.

“뭘, 그리 놀라시우? 하도 먹고 살기가 빤하니 만주로 떠나기로 했다우.”

“예? 십일 남매를 데리고 만주로 간다고요?”

“아니, 이 양반이 까마귀를 고아 드셨나!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누!”

“식솔이 많으면 운신하기가 녹록치 않을 텐데······”

“아무렴 여기처럼 목구멍에 거미줄이야 치겠수? 사촌 언니한테서 연통이 왔는데, 만주는 여기와는 다르다고 하더이다.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지 않수! 사촌 언니 네도 만주로 떠난 지 2년이 됐는데, 논이 자그마치 백 마지기랍디다.”

“백 마지기요?”

“그것도 형부가 게을러서 그렇지, 바지런만 떨면 천 마지기도 가능하답디다. 여기서 고생하다 배곯다 죽느니,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땅에서 실컷 농사짓고 배불리 먹다가 죽으면 원이나 없지 않겠소.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하지 않소. 초희 아버지도 시장통이나 전전하다 이 예쁜 딸래미한테 몹쓸 짓 하지 말고 만주로 가보시구려. 만석꾼 집에서 머슴이라도 살면 어디, 딸애 하나 못 키우겠소? 듣자 하니 중앙교회에 부임한 선교사가 봉천교회와 연결하여 이주민을 모집한다고 하던데······. 아무렴 교회에서 주선하는 건데 동양척식회사보다는 낫지 않겠수?”

“그렇군요.”


초희를 건네받은 경덕은 골목을 빠져나가는 정선 댁을 얼마간 바라본다. 팔에 안긴 채 쌔근거리며 잠든 딸에게 시선을 옮긴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266.


평양 부내에 통행금지가 즉각 시행된다. 광휘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칠성문 밖 빈민가로 숨어든다. 2차 집결지로 지정된 주막에 모인 인원은 단 네 명뿐이다. 주막은 투전을 하는 장돌뱅이들과 술판을 벌이는 주당들로 시끌벅적하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다가온 주모가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아니, 이 젊은이들 몰골 좀 보드라고. 을밀대에서 독립군이 난리를 쳤다더만 혹시 너희가 한 거니?”

흠뻑 땀에 젖은 대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곁눈질로 주위를 경계한다.

“그런 일이 있었습네까? 우리는 고조 장산 탄광에서 탄 캐다 와서 모르갔시우! 종일 걸어왔으니, 날래 개장국 네 그릇 말아주시라요!”

광휘는 슬쩍 말을 돌리며 주모의 눈치를 살핀다.

“쯧쯧쯧! 철을 씹어 먹어도 모자랄 판에 배가 등짝에 붙었구먼. 잠깐만 기다리라우!”

주모가 코를 팽 푼 뒤 국자를 펄펄 끓는 솥단지에 넣고 휘휘 내젓는다. 광휘가 대원들과 머리를 맞댄다.

“각자 무장 상태를 보고해!”

“전 모신나강 소총과 탄창 세 개가 전부입니다.”

장 상병이 거적으로 돌돌 말은 소총을 내보인다.

“소총은 눈에 띄고 거추장스러우니 처분해!”

“전 마우저 권총과 총탄 삼십여 발이 있습니다.”

보고를 마친 모 하사가 가슴에 손을 얹곤 이내 황망한 표정을 짓는다.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도주하다가 그만 권총과 탄약을 잃어버리고, 수류탄 가방만 챙겼습니다.”

광휘가 모 하사에게 눈을 흘긴다.

“군인이 총을 잃어버리다니······, 총살감이군!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수류탄은 웬만한 중대병력과 맞먹는 무기다. 잘 했다는 건 아니지만, 수류탄을 잃어버린 것보다는 권총을 잃어버린 게 낫다.”

모 하사는 양팔로 가방을 끌어안는다.

“마누라는 버려도 이 가방만큼은 저승까지 갖고 갈 겁니다.”

대원들은 모 하사의 장난기에 실소를 터트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광휘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연락책이 매수를 당한 것 같다. 평양에서 머물면서 추이를 살핀 뒤 독립단 잔존세력과 접선을 시도한다. 그리고 노선이 발각되었을 수도 있으니, 새로운 탈출로를 찾아야 한다.”

모 하사가 궁금증을 드러낸다.

“지금쯤 주요 도로에 검문소가 설치되었을 텐데, 따로 염두에 둔 탈출로라도 있으십니까?”

“살즉생, 생즉사 전략이다. 해상과 육로, 기차 등 닥치는 대로 탈출로를 개척한다.”

“연락책도 없는 마당에 은신은 어디에서 합니까?”

“당분간 이곳 빈민촌에서 은거한다.”

김 병장이 비죽 입을 내밀며 묻는다.

“예? 거지소굴에서 지낸다고요?”

광휘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살고자 하는 데 거지소굴이며 어떻고, 호랑이소굴이면 어떤가?”

공히 세 사람은 눈동자를 되록거리며 입을 꾹 다문다.

“동향을 살핀 후 평양경찰서를 친다.”

모 하사가 놀란 눈으로 말을 잇는다.

“꼴랑 네 명으로 조선에서 두 번째로 큰 평양경찰서를 친다고요?”

광휘가 모 하사의 입을 틀어막는다.

“억울하게 생을 달리한 김 중사와 최 하사 그리고 대원들의 복수다!”

“아, 예!”

대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더 이상 토를 달지 않는다.


주모가 뼈다귀가 수북한 개장국을 한상 차려 내온다. 네 사람은 뚝배기에 고개를 박곤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지켜보던 주모가 혀를 차며 측은한 시선을 보낸다.


“멀쩡한 장정들이 거지패도 아니고 저리 배를 곯고 다니다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난나 야! 이거 더 먹으라우!”

“고맙습네다!”

함지박을 넙죽 받은 모 하사가 바닥을 드러낸 뚝배기에 뼈다귀를 골고루 분배한다.

“아까 전에 장성에서 탄을 캤다고 했니? 봉놋방에서 투전판을 벌이는 노름꾼 중에 장성에서 온 광부가 있는데, 왜 떨어져들 있니?”

배를 불린 네 사람은 눈빛을 교환한 뒤 서두른다.

“주모, 잘 먹었수다!”

광휘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건넨다. 주모가 고개를 갸웃하며 요모조모 뜯어본다.

“근데, 어디서 본 듯한데, 나 모르갔네?”

“글씨요. 내래는 초면인 듯 합네다.”

“어디 출신이니? 내 좋은 처자 소개할 의향이 있다우?”

“고향이 따로 있갔습네까? 그저 조선 팔도를 떠돌아다니다 머물면 그곳이 고향이 아니갔습네까? 하하핫!”

“이름이 어케 되니?”

뒷짐을 진 채 집요하게 캐묻는 주모의 손에 구겨진 전단지가 쥐어져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서광휘라고 합네다!”

“서······, 광······, 휘?”

“주모, 잘 먹고 갑네다!”

“다음에 또 오면 내 개 한 마리 잡아주갔어! 꼭 다시 오라우!”


일행이 저만치 고샅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힐끔거리던 주모가 술잔을 비우던 장돌뱅이에게 전단지를 내보인다.

“지금, 내래 말을 건 장정이 이 놈 아닙네까?”

코에 술독이 잔뜩 오른 장돌뱅이가 손사래를 친다.

“한인호란 작자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데, 내가 못 알아보겠수까? 만약 서광휘였다면 날래 주재소로 달려갔을 겁네다.”

“그렇지? 내가 착각한 게 맞을 거외다.”


평상에 널브러진 술병과 그릇을 치우는 주모는 입술 사이로 숨을 들이켜면서 연신 머리채를 흔든다. 뭔가 께름칙한 눈치다.



267.


평양경찰서에 임시상황실이 차려진다. 경부(警部)란 계급은 경찰 직계에서 중간 관리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말단의 계급일지언정 담당자가 천황 직속의 육군성 참모본부 제5과 정보국 소속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타이요우가 육군성 참모본부 제5과 정보국 소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양경찰서장과 헌병대장은 그의 추궁에 절절맨다.


“평양부의 철통 경비를 맡겼더니 대관절 이게 뭐랍니까? 곳곳에 경비망이 뚫려 놈들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백주대낮에 을밀대를 활보하는 놈들조차 단 한 명도 생포하지 못했으니, 이번 일을 총독부에 뭐라고 보고해야 합니까?”

타이요우가 헌병대장과 경찰서장 그리고 뒷줄에 앉아 있는 간부들을 천천히 일별한다. 헌병대장과 경찰서장은 체면이 깎이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허투루 헛기침을 하는 척하며 시선을 피한다. 간부들은 오금이 저린 듯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고른다. 그의 시선이 고무라 경부보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이번 작전을 사사로운 공명심에 사로잡혀 그르친 고무라 경무보를 당장 보직해임하고 형무소 교도관으로 보내도록 하세요!”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료 형사들이 고무라를 밖으로 끌고 나간다. 고무라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물로 호소하지만 주변의 반응을 싸늘하다.

“현재 놈들은 평양에 머무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부터 경찰은 평양부의 모든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호구조사를 한다. 그리고 헌병대는 평양부로 통하는 주요 도로와 기차역에 병력을 배치하고 통행증이 없는 불령선인은 모조리 체포한다. 이상!”


경찰서장과 헌병대장은 마치 상관을 모시듯이 타이요우 뒤를 졸졸 따라서 회의장을 벗어난다. 자대로 복귀하는 나카다와 미나토가 어두운 밤거리를 걷는다.


“휴······우. 난 또 눈앞에서 한인호를 놓친 네가 강등당할 줄 알고 가슴이 얼마나 조마조마했게.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참모본부 제5과의 위세가 장난 아니다. 일개 경부 나부랭이한테 서장과 헌병대장이 벌벌 떠는 거 봤지? 어우, 지금도 간담이 서늘하다.”

미나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나카다가 무심히 말한다.

“같이 뒤를 쫓다가 놓친 것이니만큼 너한테 죄를 물을 수는 없었겠지.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저 인간한테 잘못 보이면 만주철도공사판으로 징발되는 건 시간문제야.”

미나토가 어깨를 움츠리곤 벌벌 떠는 시늉을 한다.

“그나저나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거야? 초급장교가 될 육사출신이 한인호 따위나 뒤쫓고 있으니, 말이 되냐고? 전장에 나가 소대를 지휘해서 전과를 올려야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게 맞잖아!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보직을 변경해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봐.”

미나토의 푸념을 내내 듣고 있던 나카다가 피식거린다.

“이 깡통하고는······. 우리가 토벌단에 배속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니? 우리가 춘천고보 출신이기 때문에 전속된 거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미나토가 마지막 퍼즐을 조합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곳에 배속된 것도 모두 타이요우한테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란 얘기지?”

“말해 무엇 하겠니? 육사 예비학교 출신의 오장을 제5과 정보국에서 선발했을 리가 없잖아!”

나카다의 논리에 할 말을 잃은 미나토가 궁색하게 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달랑 경찰서장으로 계시는 아버지 빽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겠군. 아······,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데, 이 망가진 기분은 뭐지? 조센징한테 명령을 받아야 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나저나 한인호, 그 새끼가 뭐라 하든? 반갑다고 그러디?”

나카다는 짙은 속눈썹을 5초가량 끔벅거린 뒤 말을 잇는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더라고. 뭐랄까? 우리는 아직 청년 딱지를 떼지 못했잖아.”

“누가 그래? 우리가 아직 청년 딱지를 못 뗐다고!”

나카다는 버럭 화를 내는 미나토를 무시한 채 맹탕 허공을 주시한다.

“그런데 인호는 어른스러웠어. 그것도 멋지게 나이가 든 성숙미가 느껴지더라니까. 앞에 선 내가 초라해 보일 정도였어.”

“야, 너, 미쳤어? 그놈은 이제 춘천고보 동창생이 아니라 대일본천황에 반하는 대반역자라고! 그 따위 치기 어린 상념에 의존하다니! 한 번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소대장한테 보고할 거야. 조심해!”

미나토가 나카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친다.


검문소에 도착한 나카다와 미나토는 장교에게 임무교대를 신고하고 제각기 자리로 돌아간다.



268.


경덕은 시장 어귀의 문간방을 처분하고 노잣돈을 마련한다. 선교사로부터 추천서를 받은 그는 단출한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초희를 품에 안은 채 미련 없이 춘천을 떠난다.

발품을 팔아 경성에 도착한 그는 백방으로 지인들을 수소문한다. 대부분 불령선인으로 낙인이 찍혀 낙향을 했거나, 그나마 남은 지인은 총독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그를 모른 체한다. 그가 낙심할수록 유독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서 알전구처럼 반짝거린다.


그는 한때 미라와 신혼살림을 차렸던 서촌과 공덕동을 둘러본다. 그러곤 정동 시절을 꽃피웠던 ‘돈버거점방’이 있는 돌담길을 걷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망우리다. 정신적인 스승이었던 신상원이 묻힌 묘지는 말끔히 개토되어 온데간데없다.

세월의 무상함을 뒤로하고 그가 도착한 곳은 청진동이다. 마차와 수레가 길게 줄을 선 사이로 온갖 지게들이 삐뚤빼뚤 뒤섞여 있는 청진옥은 해장을 하려는 물장수와 장돌뱅이, 마부들로 빼곡하다.

빼꼼이 열린 문틈으로 고린내가 진동한다. 시장기가 동한 경덕은 침을 삼킨다. 손님들은 애를 업고 기웃거리는 경덕이 거치적거리는지 드나들 때마다 눈살을 찌푸린다. 지배인이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건다.


“손님, 누굴 찾으십니까?”

“아닙니다.”

“그럼······?”

“다른 게 아니라 창가 자리에 앉고 싶어서요.”

뒤를 돌아본 지배인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저기는 단골손님들이라 쉽사리 파하지는 않을 거예요. 갓난애도 있는데, 그냥 빈자리에 앉아 드시죠?”

“아닙니다. 꼭 저 자리여야만 합니다.”

혀를 빼문 지배인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고 돌아선다.

“손님 기다리다가 장국이 다 떨어져도 내 원망은 마시구려!”


반식경이 지나서야 거나하게 취한 객들이 비트적거리며 밖으로 나온다. 마침내 창가 자리에 앉은 경덕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국밥 두 그릇을 주문한다. 그는 국밥을 앞에 놓고 마치 맞은편에 사람이 있는 양 또박또박 말을 주고받는다.

“임자, 기억나? 내가 이 자리에서 당신한테 청혼했었잖아!”

처음에 귓등으로 듣던 손님들은 그저 집에서 쫓겨난 주정뱅이가 주정을 부리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식기 전에 어서 들구려. 첫 아이 배고 입덧할 때, 곡기를 끓었던 임자가 이 집 국밥 먹고 입맛을 되찾았지 않았수.”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나머지 듣는 이들이 제 귀를 의심할 정도다. 혹시나 하고 곁눈질을 하던 손님조차 고개를 갸우뚱하며 혀를 찬다. 한쪽 귀퉁이에서 일행과 밥을 먹던 중년 신사가 경덕를 유심히 바라본 후 일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쯧쯧쯧! 나라를 잃은 백성의 한이 깊군! 그나저나 인서가 곧 상해로 온다고 해서 희소식을 전해주고 싶은데, 내가 부탁한 일은 어찌 돼 가는가?”

맞은편에 앉은 사내가 허리를 숙인 채 중년 신사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춘천지부에 파견된 기자를 통해서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만······, 미천골 한 씨 가문은 패가망신해서 뿔뿔이 흩어졌다느니, 부인과 사별 후 남편은 실성해서 장터를 떠돈다느니, 또 늦둥이 낳다 산모가 죽어서 남편 홀로 젖동냥을 하며 마을을 전전한다느니, 그야말로 소문만 무성합니다.”

사업가로 분장한 박용만은 다시금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경덕을 흘끔거린다.

“임자가 그토록 좋아하던 선지가 오늘따라 때깔이 참 곱구려. 어서 더 드시구려.”

경덕은 선지덩어리를 건져 건너편 뚝배기에 넣는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손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옆에 다가와 지켜보는 지배인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는 뒤미처 말을 잇는다.

“마지막 떠나는 길에도 따뜻한 밥 한 공기 못 해줬는데, 이렇게 임자한테 청혼한 자리에서 국밥을 함께 하니 감개가 무량하구려. 임자! 난 이제 조선을 떠난다오. 부디 우리 딸 초희가 가는 길을 굽어 살펴주구려.”

끝내 눈물이 솟구친다. 경덕은 꾸역꾸역 제 앞에 놓은 뚝배기를 바닥까지 다 비운다.

“아니, 이 양반이, 이제 보니 정신병자구만? 배를 곯았다고 하면 공짜로 한 그릇 내줄 텐데, 웬 방언을 구시렁거려? 남의 업장에 와서 방해를 해도 유분수지. 재수 없게끔. 얘들아, 뭐 하니? 소금 갖다 뿌려라!”


지배인의 말이 듣곤 청년 두 명이 달려들어 경덕을 밖으로 내몬다. 귀퉁이에서 지켜보던 용만이 뚜벅뚜벅 다가와 지배인을 나무란다.

“같은 동포끼리 그리 야박하게 굴 게 뭐 있소. 나라 잃은 백성이 무슨 사연인들 없을라고. 이 분의 밥값을 내가 내리다!”

제법 말쑥하게 차려 입은 중년신사가 나서자 지배인은 허리를 굽실거린다. 그는 지배인에게 두둑하게 밥값을 지불하곤 경덕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대관절 무슨 곡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올 때까지 참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혹시 성함이······?”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 경······”

경덕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순사 두 명이 청진옥 쪽으로 다가온다. 수상한 낌새를 챈 수행원이 용만에게 귀띔한다.

“선생님, 자리를 피하셔야겠습니다.”

용만은 경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곤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다.

“왠지 낯이 익군요. 다시 뵐 날이 있을 듯합니다. 몸조심하십시오.”

그는 안주머니에서 지폐 십여 장을 꺼내 망연자실한 경덕의 손아귀에 쥐어준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던 경덕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곤 방금 전까지 제 앞에 있던 사내가 사라진 것을 더욱 의아하게 생각한다. 잠에서 깬 초희가 보챈다. 그는 초희를 달래며 곧장 경성역으로 잰걸음을 놓는다.



269.


비상령이 내려진 평양부는 바지자락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듯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관공서가 발급한 통행증이 있어도 기차에 오르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속옷까지 수색하느라 거리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전단지에 실린 사진과 비슷한 인물이 출현했다는 신고가 빗발치면서 은신처로 지목된 주택가는 쑥대밭이 되기 일쑤다. 검문검색이 평양부 외곽까지 확대되면서 주막에도 헌병과 경찰로 구성된 합동검거반이 진을 친다.


“주모!”

“아니, 형사님께서 누추한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네까?”

담배를 꼬나문 형사는 전단지를 내보이며 건성으로 묻는다.

“봤어, 못 봤어?”

“며칠 전에 장정 넷이서 밥을 먹고 갔습네다. 게 중에 한 명이 비슷해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닮은 듯 닮지 않았단 말씀입네다.”

“무슨 소리야?”

“장선 탄광에서 왔다는데, 수상쩍어서 물어봤더니만 조선 팔도를 떠도는 ‘서광휘’라고 하고 홀연히 사라졌습네다.”

“서광휘?”

눈을 치뜬 형사가 전단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래, 내가 옆자리 술꾼한테도 물어봤지 않았습네까? 장돌뱅이도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습네다.”

“다시 나타나면 주재소로 즉각 연락해! 비호했다가는 크게 경을 칠 줄 알아! 밥 벌어 먹으려면 두 눈 똑똑히 뜨고 장사하란 말이야!”

“그놈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데, 가만 있겠습네까? 걱정 마시라우!”


봉놋방과 부엌을 수색하던 헌병들이 빈손으로 나온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주모를 뒤로하고 형사는 헌병과 경찰을 인솔하고 주막을 벗어난다.



270.


긴급하게 소집된 점검회의에서 타이요우의 질타가 쏟아진다.


“한인호가 일주일째 종적을 감추고 있다. 그놈이 귀신이라도 되는 게야? 평양부에 주둔하고 있는 헌병과 경찰병력 천여 명이 투입됐는데도 놈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48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놈을 체포하지 못하면 모두 옷 벗을 각오해!”

찬물을 끼얹은 듯 회의실에 정적이 흐른다. 말석에 앉아 있던 형사가 주뼛거리며 손을 든다.

“경부님! 낮에 평양부 외곽을 순찰하다가 주막을 들렀는데, 그곳 주모가 낯선 네 명의 장정을 봤답니다. 게 중에 전단지에 실린 사진과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타이요우의 눈이 칼날처럼 번뜩인다.

“그래서?”

“주모와 주변 진술을 종합해본 결과 한인호가 ‘서광휘’란 가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뭐? ‘서······, 광······, 휘’라고?”

“네.”


턱을 바짝 끌어당긴 채 눈을 치뜬 타이요우가 얼마간 생각에 잠긴다. 삼십여 초가량이 지났을까. 퀭한 눈빛에 살기가 꿈틀거린다. 그는 마치 아시아 정복을 눈앞에 두고 결단을 내려야하는 알렉산더 대왕이라도 된 양 ‘남부 14년식’ 자동권총을 테이블 위에 힘차게 내려놓는다. ‘쾅’하는 소리가 하도 커서 가뜩이나 긴장한 참석자들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는 홍길동으로 부활하여 민심을 아우르려는 속셈이군! 와해된 독립군 세력을 규합하여 무장투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설이 될 필요성을 느꼈겠지. 그래야 민초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제 뒤를 밟을 테니까! 교활한 놈!”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열변을 토한다.

“‘한인호’는 죽었다. 앞으로 ‘서광휘’를 추적한다. 놈은 대일본제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48시간이 중요하다. 48시간 안에 놈을 체포하지 않으면 놈은 살아있는 전설로 부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큰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전 대원은 최고 등급 ‘갑’호 비상령을 발동하고 전투태세에 임하도록 하라!”


타이요우의 결단은 곧 ‘고르디온의 매듭’을 단박에 절단 내고 이윽고 아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추상과도 같은 명령과 다르지 않다. 모두 기립한 참석자들은 그의 결단을 지지하는 뜻으로 함성을 터트리며 박수를 친다.



271.


광휘는 여러 날을 평양에 머물며 추이를 관망한다. 그가 한 자리에 이토록 오래 머문 적은 없었다. 그러나 타이요우의 득달같은 성화에 떠밀려 평양으로 통하는 요로마다 헌병대와 경찰병력이 투입되면서 본의 아니게 발이 묶이게 된 것이다.

경비와 검문이 하도 삼엄하여 탈출로를 확보하기 위해 밖으로 나설 수도 없다. 궁지로 내몰린 광휘는 직접 탈출로를 만들 작전에 착수한다. 그는 김 중사와 최 하사의 복수를 위하여 부대원들에게 언급했던 평양경찰서를 습격하기로 결정한다.


“지금껏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김 중사와 최 하사 덕분이다. 김 중사와 최 하사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버릴 각오가 되어있다. 죽기로 작정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들자면 죽을 것이다. 강요하지는 않겠다. 뜻을 달리 한다고 해서 원만하지도 않겠다.”

광휘의 눈빛이 하도 비장한 탓에 나머지 대원들은 말 대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동의를 표한다.


아침 햇살을 가르며 승객을 가뜩 실은 전차가 도로를 관통한다. 전차가 경적을 울릴 때마다 도로를 횡단하던 마차나 행인들이 선로 밖으로 비켜선다. 중심가를 관할하는 경찰서 앞에서 전차가 멈춘다. 승객들이 우르르 내려 제가끔 일터로 향한다.

승용차에서 내린 타이요우가 전 독립단의 간부와 함께 경찰서로 들어간다. 뒤미처 연달아 멈춘 차 속에서 경찰서장과 헌병대장 등이 차례로 내려 계단을 오른다.

송곳니를 드러낸 군견들이 행인의 소지품이며 가방에 콧등을 들이밀고 킁킁거린다. 이물스런 냄새에 자극받은 군견이 으르렁거린다. 인근을 지나던 행인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헌병에게 몸수색을 당한다. 별다른 위험물이 발견되지 않자 행인들은 한숨을 내쉬며 도망치듯 현장을 벗어난다.

중년 남자의 무릎을 킁킁거리던 군견이 갑자기 도로를 지나던 수레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곤 득달같이 달려가 거적때기로 덮인 화물을 콧등으로 들쑤신다. 수상쩍은 낌새를 차린 헌병들이 똥지게를 짊어진 두 사내의 몸을 수색한다. 두 사내는 두 팔과 발을 벌려 헌병에게 몸을 내맡긴다.

헌병은 소매와 바지춤에 덕지덕지 묻은 얼룩을 피해 건성으로 몸을 더듬는다. 그러곤 수레에 덮인 거적을 걷어낸다. 수색을 지휘하던 장교가 푸르락누르락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젖는다. 비위가 상한 앳된 병사는 헛구역질을 하며 등을 돌린다.

똥통 여러 개가 실린 것을 확인한 장교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경비병이 방책을 올려 길을 터준다. 방책을 통과한 수레가 막 경찰서 앞을 지날 무렵 도롱이를 쓴 두 사내가 똥지게 안에서 권총을 꺼내든다. 그러곤 똥통 속에서 기름종이로 싼 수류탄을 꺼내든다. 경비병들은 등을 돌린 채 코를 막거나 혀를 내두르느라 두 사람의 민첩한 행동을 감지하지 못한다.

수류탄 세 발이 유리창을 깨고 경찰서 안으로 투척된다. 첫 수류탄은 경찰서의 입구를 마비시킨다. 두 번 째 수류탄은 2층 서장실의 창을 뚫고 폭발을 일으킨다. 세 번째 수류탄은 경찰서 옆 헌병대 건물에 명중한다. 도롱이를 벗어던진 모 하사와 박 병장이 나뒹구는 똥통 뒤로 은신하며 총격전을 벌인다.

달려오던 전차가 급정거하는 순간 뒤쪽에서 두 마리 말이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총격을 가한다. 갑작스런 등장에 화들짝 놀란 경비병은 ‘타이쇼 11’ 경기관총을 공중에 난사한다.

빗발치는 총알을 피한 광휘와 정 상병은 경찰서 앞에서 고삐를 낚아채곤 말머리를 돌린다. 말은 시체와 벽돌이 널브러진 계단을 훌쩍 뛰어넘어 경찰서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팔다리가 잘리고 얼굴을 다친 부상병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2층과 연결된 계단이 주저앉은 탓에 부상자가 속출한다. 2층 난간에서 내려다보던 타이요우가 일성을 터트린다.


“서광휘다! 생포하라!”


근거리에서의 총격전은 불발이 나기 십상이다. 특히 말에 오른 대상을 맞추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경찰서 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광휘와 장 상병은 말머리를 돌려 무너진 벽을 훌쩍 뛰어넘어 거리에 안착한다. 똥통을 뒤집어쓴 모 하사와 박 병장이 잽싸게 말 등에 올라탄다.

말 두 마리가 쏜살같이 내달리며 등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용케도 피해 달아난다. 건물 밖으로 뛰어나온 타이요우는 권총을 휘두르며 차량에 오른다. 말을 뒤쫓으며 총격을 가해보지만 총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서광휘를 체포하라!”


타이요우가 외친 일성은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평양에 소문 없는 발이 되어 퍼져나간다.


“봤네?”

“뭘?

“말 탄 영웅이 나타났다 하지 않니?”

“이 시대에 무슨 놈의 영웅이니?”

“서······, 광······, 휘!”

“서······, 광······, 휘?”

“바로 그거야!”

“이름 좋다야! 뭔가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 아니 갔니?”

“고럼, 고럼!”


경찰서 습격 사건 이후 ‘서광휘’는 살아있는 전설로 부활한다. 영웅의 탄생은 순교자의 희생만큼이나 전파력을 지닌다. 이는 곧 결속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서광휘’란 이름 석 자가 들불처럼 번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이요우가 마중물의 역할을 한 덕이 크다.

타이요우가 ‘서광휘’를 부르짖을수록 생명력을 부여받은 전설은 독립을 갈망하던 민초의 가슴속에 희망의 불씨로 자라난다.

그날 이후 총독부 및 관동군 휘하의 모든 부대에 ‘서광휘 전담 체포단’이 설립되고 만주와 한반도 전 지역에서도 ‘서광휘’의 수배전단이 나붙는다. 일종의 ‘서광휘 신드롬’이 몰아치면서 대륙이 들끓기 시작한다.



272.


역사 안은 짐을 실은 수레와 보따리를 짊어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역무원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승객들은 파도에 휩쓸리는 해초처럼 우왕좌왕하며 객차에 오른다.

객차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다. 주렁주렁 딸린 아이들은 저마다 부모의 무릎이나 품뿐만 아니라 비좁은 선반에 웅크린 채 긴 여행을 준비한다. 가뜩이나 비좁은 통로는 울퉁불퉁한 보따리가 꽉 들어차서 통행이 불가하다.

우렁찬 기적(汽笛)이 플랫폼에 울려 퍼진다. 일순 고막이 먹먹해진 승객들은 맞닥뜨린 현실에 눈을 뜬 듯 양손에 쥔 보따리와 어린 자식의 고사리손을 움켜쥔다. 입계치에 다다른 터빈에서 내뿜는 하얀 증기가 낮게 드리우며 사위는 잠시 층구름에 휩싸인다.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승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증기가 규칙적으로 힘을 발휘하면서 피스톤이 움직인다. 피스톤의 전후운동은 그대로 커다란 바퀴에 연결된 크랭크를 회전시킨다. 비로소 기차는 하얀 스카프를 휘날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밤새 달린 기차는 문산과 개성, 사리원을 지나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부로 진입한다. 평양역에 정착한 기차는 승객의 반을 토해낸다. 그러곤 만주로 출병하는 군인들과 보급품을 싣기 위해 객차 십여 량이 꽁무니에 연결된다. 줄느런히 열을 지은 신병들이 인솔 사관의 명령에 따라 승차한다.

빈자리를 찾아 앉은 신병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덕은 두 아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신병과 두 아들의 연결고리는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잔뜩 주눅이 든 신병들은 사지로 내몰리는 신참내기 검투사처럼 막연한 공포에 떨고 있다. 서릿발 같은 장교의 명령이 떨어진다. 신병들은 주먹 쥔 오른손을 내저으며 군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수선한 가운데 열차는 평양역을 벗어난다. 위도를 거스를수록 평지는 구릉으로 바뀐다. 기적소리에 놀란 새떼가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새로 탑승한 관서지방의 승객들은 창밖 풍경에는 아랑곳 않고 질끈 눈을 감곤 잠을 청한다. 특유의 호방한 기질은 온데간데없다. 미지의 땅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선 듯 시무룩한 표정 속에는 양립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혼재된 듯하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면서 침엽수가 울창한 산림지역으로 접어든다. 힘에 부친 열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기관사와 정비사들이 횃불을 밝힌 채 부실한 기차 곳곳을 정비한다. 밤새 숨을 고르던 증기기관은 굶주린 용이라도 된 양 마구 불씨를 삼킨다. 한동안 열량을 비축한 증기기관은 마침내 견고한 동축을 돌리며 질주하기 시작한다.

두어 시간을 달렸을까. 까무룩 단잠에 곯아떨어진 초희가 기지개를 켠다. 객차 안은 이내 아침을 맞는 소소한 소음으로 부산하다. 경덕은 보자기를 풀어 보리개떡을 꺼낸다. 그러곤 한 입 베물곤 오물거린다.

딱딱한 보리개떡이 녹진할 때까지 씹은 뒤 혀를 빼문 초희에게 먹인다. 아비 입에서 법제된 먹이는 그대로 순한 입에서 훌륭한 먹거리로 거듭난다.

부녀가 막 끼니를 마칠 때였다. 별안간 총검을 든 헌병들이 객차 안으로 들이닥친다.


“샅샅이 수색해!”

추상같은 조장(曹長)의 명령을 하달 받은 헌병들은 일일이 표를 검사하며 승객의 신분을 확인한다. 뒤따르던 헌병은 총검으로 보따리를 쿡쿡 찌른다. 별다른 혐의점을 못 찾은 헌병들은 다음 객차로 이동한다. 승객들이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있을 무렵 총성이 울린다.


‘서광휘가 나타났다! 서광휘가 나타났다! 생포하라!’


느닷없이 지휘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총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터진다. 겁을 집어먹은 승객들은 일제히 좌석 밑으로 엎드린다. 연이어 총소리가 들리고 우르르 몰려가는 발자국소리가 요란하다. 경덕은 초희를 품에 안은 채 자세를 낮춘다. 객차 안으로 총알이 날아들어 차창이 박살난다.

뒤쪽 객차에서 뛰어든 사내 네 명이 널브러진 보따리를 건너뛰며 통로를 가로지른다. 뒤미처 들이닥친 헌병들과 총격전이 벌어진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객차 안은 공포감에 휩싸인다. 두건으로 입을 가린 사내 중 한 명이 좌석 안으로 몸을 숨긴다. 일순 몸을 웅크린 사내와 눈이 마주친 경덕은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객차 안으로 ‘피웅’, '피웅' 총알이 날아다닌다. 총소리에 놀란 초희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린다. 사내는 아이를 감싸며 총알을 피한다. 용케도 초희는 울음을 뚝 그친다. 초희와 사내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던 경덕은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눈만 끔벅거린다.

몸을 내민 채 헌병을 저격한 사내는 잽싸게 통로를 벗어난다. 달리는 객차에서 뛰어내린 사내들은 침엽수가 빼꼭한 숲으로 몸을 숨긴다. 멈춰 선 열차에서 내린 헌병들이 그 뒤를 쫓는다. 박 병장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 대원들이 번갈아 엄호를 하며 박 병장에게 접근한다.


박 병장은 단호하게 대원들의 구조를 뿌리친다.

“날래 떠나라요! 난 이미 틀렸수다.”

모 하사가 나무란다.

“무슨 헛소리야? 동지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피를 쏟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박 병장이 옷을 걷어 올린다. 총이 관통한 사입구로 피가 범벅이 된 내장이 흘러내린다.

“내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제발!”


모 하사와 장 상병이 광휘를 바라본다. 광휘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두 사람은 눈물을 삼키며 광휘를 따라 숲속으로 도주한다. 턱과 어깨로 소총을 받쳐 든 박 병장은 끝까지 총격을 가한다. 옆에서 성큼성큼 다가온 장교가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발사한다. 그는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창밖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승객들 사이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터진다.


“저런 인두겁을 쓴 놈들을 봤나! 부상당한 사람을 굳이 총을 쏠 게 뭐여?”

흥분한 승객이 말꼬를 트자 곳곳에서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쯧쯧쯧!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귀하게 살다 간 셈 치자고!”

“그럼, 모질게 살면 뭐 하겠수.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보다 백배는 나은 삶을 살다 갔으니, 여한이 없을 것이오!”

“오메, 그나저나 소문으로만 듣던 서광휘를 보다니, 이게 꿈이여 생시여?”

경덕 앞자리에 앉은 사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서광휘는 일당백이라 수백 명이 따라가야지, 저렇게 이십여 명 갖곤 곤란할 텐데······”

뒷자리에 안은 사내가 거든다.

“서광휘라면 평양경찰서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설 속의 영웅이 아닌가?”

“암만, 그러고 말고!”

“고럼, 서광휘야 말로 민족의 투사가 아니겠니?”

“어제 기차가 멈췄을 때 탔나 보구려. 무사해야 할 텐데······”


마치 제일처럼 반색을 하며 수군거리는 승객들을 지켜보던 경덕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윽고 헌병이 나타나고 객차 안은 평정을 되찾는다. 다분히 흥분을 감춘 의사행동이다.


“서광휘란 사람이 그렇게 유명하오?”

경덕은 조금 전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사내에게 귓속말로 묻는다.

“당신, 조선사람 맞아?”

사내는 퉁명스럽게 되묻는다.

“당연히 조선 사람이오. 도대체 서광휘란 사람이 누구길래 저토록 헌병들이 뒤를 쫓는답니까?”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전단지 한 장을 경덕에게 내민다.

“이 사람이 바로 서광휘외다!”


텁수룩한 수염이 뒤덮은 얼굴로는 본색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경덕은 마치 전단지가 보물지도라도 되는 양 구석구석을 면밀히 훑어본다.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다. 비록 수염에 가려 윤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몽타주 속 눈동자로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경덕은 수시로 드나드는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전단지를 가슴속에 찔러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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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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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125화 빅터 한 재단 NEW 10시간 전 6 1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34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28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31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41 2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42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44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46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46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56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68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55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59 2 11쪽
112 112화 금괴수송작전 +1 19.05.19 70 2 10쪽
111 111화 '암호명 A-1' +1 19.05.18 58 2 13쪽
110 110화 악연(惡緣) +1 19.05.17 56 2 14쪽
109 109화 마지막 미션 +1 19.05.16 55 2 12쪽
108 108화 애치슨 라인 +1 19.05.15 56 2 12쪽
107 107화 연적(戀敵) +1 19.05.15 56 2 12쪽
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59 2 12쪽
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56 2 15쪽
104 104화 한국은행 +1 19.05.11 63 2 14쪽
103 103화 비밀거래 +1 19.05.10 67 2 12쪽
102 102화 남미이주작전 +1 19.05.10 75 2 13쪽
101 101화 트루먼 독트린 +1 19.05.10 54 2 11쪽
100 100화 숙명의 라이벌 +1 19.05.10 55 2 18쪽
99 99화 Jane Doe +2 19.05.10 57 2 13쪽
98 98화 앙숙, 이승만과 김구 +1 19.05.10 56 2 12쪽
97 97화 반도호텔 +1 19.05.10 53 2 13쪽
96 96화 좌익과 우익 +1 19.05.09 54 2 13쪽
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58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53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52 1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56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54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52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52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54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53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54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51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56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65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51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52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55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52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50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48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55 2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56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49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49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50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53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52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56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55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55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55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56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55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56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57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57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57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61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57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59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58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60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58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58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60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61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60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60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66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62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62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62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60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61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66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64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62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64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67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75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70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71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70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71 3 50쪽
» 32화 서광휘 +2 19.04.22 72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80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77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83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78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77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82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96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82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86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84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83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85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94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94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97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98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00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08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160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145 6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159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173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179 7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183 7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224 10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221 11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248 12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314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402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573 12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116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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