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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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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최근연재일 :
2019.07.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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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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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51쪽

37화 정보국 5과

님의 침묵




DUMMY

308.


현금수송차량을 약탈하여 자금을 마련한 왕리는 관동군의 추적을 피해 아무르강의 발원지로 이동한다. 말과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을 새롭게 한 왕리는 한때 미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왕망파’의 이탈세력을 받아들여 세를 확장한다.

왕리는 관동군에 쫓겨 북만주로 숨어든 독립군과 강기슭을 사이에 두고 이웃이 된다. 관동군을 주적으로 삼은 점과 도망자란 같은 처지는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두 단체의 귀속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거대한 괴물과도 같은 관동군과 맞서기 위해서 두 단체는 불가피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생존이냐, 멸망이냐의 절체절명의 갈림길에서 두 단체는 연합작전만이 살길이란 데에 합의한다.

마적과 독립군은 첫 사업으로 학교를 설립한다. 그리고 마적은 독립군에게 기마술을 전수하고, 독립군은 군사훈련으로 보답한다. 의기투합한 두 단체가 하나의 단체로 거듭날 무렵 아침부터 정착촌이 시끌벅적하다.


한껏 만주족 의상으로 멋을 낸 왕리가 화동들이 뿌려놓은 꽃을 밟으며 파오로 향한다. 짐짓 덤덤한 척하지만 들뜬 기분은 어찌 할 수 없는 성싶다. 연신 실룩거리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드디어 붉은 비단에 금사로 자수를 놓은 치파오 차림의 신부가 장막을 걷고 등장한다. 구경꾼들이 입을 모아 함성을 터트린다.

왕리와 주찬의 결혼식은 대지의 신과 물의 신에게 삼배(三拜)를 드리는 것으로 막을 올린다. 총성 이십여 발이 능선을 타고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등롱을 밝힌 초원 위에서 밤새도록 연회가 이어진다.


화려한 휘장이 내걸린 파오 안은 이따금 불티를 휘날리는 화롯불로 후끈하다. 잉걸불을 뒤적거리던 왕리가 주전자를 들어 천천히 물을 붓는다. 숯을 만난 물은 순간적으로 기화되면서 수증기를 내뿜는다. 적당히 데워진 공기에 촉촉한 수분이 공급된다. 물씬한 살내가 사방으로 훅 끼친다.

호롱불이 꺼지고 떨리는 손이 허벅지를 더듬는다. 손은 허리선까지 이어진 치파오의 이음새를 하나씩 푼다. 이음새가 풀리면서 새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하반신에 키스를 퍼붓던 왕리가 달아오른 손길로 마저 쇠골까지 이어진 매듭을 풀어헤친다.

부드러운 비단이 무너지듯 내려앉으며 적나라한 나신(裸身)이 도도한 빛을 발한다. 쇄골부터 봉긋한 가슴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윤곽은 움푹한 음부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뜨거운 몸이 한데 어울려 다양한 변주를 쏟아낸다. 왕리의 거친 숨결이 닿을 때마다 주찬은 몸짓으로 반응한다. 부부의 사랑은 먼동이 밝아올 때까지 연거푸 이어진다.




309.


정착지의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던 1926년 봄. 혹독한 겨울을 용케 보낸 이주민들은 동면에서 깨어난 곰처럼 어슬렁거리며 볕이 잘 드는 양지를 택해 기지개를 편다. 꽁꽁 얼은 강이 풀리면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십리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요란하던 어느 날 고요하던 정착지에 활기가 돋는다.

이른 시간부터 장정들이 불을 지피고 물을 길어온 아낙들이 솥단지를 가득 채운다. 볼때기가 발갛게 부어오른 아이들이 또랑또랑한 눈으로 파오 주변을 기웃거린다. 깊은 산중에서 출산이란 아이들에게는 흥미 거리를, 어른들에게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어느새 해가 뉘엿거리면서 파오 위로 산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파온 안에서 새어 나온 신음소리가 밖에서 동동거리던 구경꾼들의 한숨소리로 뒤바뀐다. 이어질 듯 꺼져가는 불연속적인 신음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귀가 쫑긋한 구경꾼들이 조마조마해하며 시린 손에 입김을 분다.

사냥을 나갔던 왕리와 부하들이 막 정착지에 들어설 무렵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진다. 부리나케 말에서 내린 왕리가 파오로 달려간다. 종종걸음으로 산모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왕리가 참다못해 안으로 뛰어든다.

왕리와 주찬은 갓 태어난 딸에게 평원의 딸이란 뜻에서 ‘평주’라 명명한다. 대지의 기운을 받고 자란 탓일까. 무럭무럭 성장한 평주는 두 돌이 넘자마자 스스럼없이 말에 올라 고삐를 틀어쥔다. 지켜보는 이들이 걱정하며 혀를 내두들 정도다.


정찰을 나갔던 부관이 숨을 헐떡거리며 황급히 말에서 내린다.

“대장! 적의 기습입니다.”

채찍을 갖고 노는 평주를 바라보던 왕리가 무심히 묻는다.

“아침부터 누가 기습을 한다고 호들갑인 게야?”

“대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같이 나갔던 독립군 정찰병들은 이미 몰살했습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왕리가 멜빵을 추켜올리며 사태 파악에 나선다.

“적의 규모는······”


구릉 너머에서 은빛 섬광이 번뜩거린다. 일순 굉음을 내며 저공으로 날아오는 프랑스제 ‘Potez 25’ 복엽기 두 대에서 기총사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총탄이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진다. 강기슭 건너편으로 기수를 돌린 복엽기는 폭탄을 투하한다. 독립군이 머물던 정착촌은 화마에 휩싸인다.

복엽기가 선회하는 사이 이번에는 프랑스제 ‘르노 FT-17’ 경전차가 돌격해온다. 경기관총이 뿜어내는 화력에 속수무책인 마적과 독립군은 숲속으로 몸을 피한다.

숲속에서 정착촌이 짓밟히는 장면을 목도한 왕리는 분노를 터트리며 주먹을 불끈 쥔다. 거대한 괴물처럼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복엽기와 경전차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른 탓이다.

베이징에서 대학에 다닐 무렵이다. 군벌 간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쭤린은 천안문 광장 앞에서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친다. 일찍이 마적에서 군벌로 변신하며 펑톈(奉天)의 독군(督軍) 겸 성장(省長)으로 급성장한 장쭤린은 만주의 실권을 장악한 뒤 중원으로의 진출을 꾀한다. 장쭤린이 중원을 정복하기 위해 야망을 키우던 1924년에 유럽으로부터 최신형 무기인 복엽기와 경전차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그에게 양도된다.

1925년에야 비로소 일본 본토에 ‘제1전차대(第1戦車隊)’가 편성된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장쭤린의 기갑부대는 당시로써는 아시아의 군사적인 균형추를 뒤흔드는 희대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왕리는 경전차에 탑승하여 전장을 지휘하는 장쉐량을 보곤 뒷목을 잡는다.

“아니, 저놈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구입한 무기로 우리를 궤멸하다니······”

울분을 터트리는 왕리를 따라 생존자들이 혀를 깨물며 총을 그러쥔다.

“일본과 작당한 자는 같은 민족이라 할 수 없다! 자, 나를 따르라!”

왕리는 주찬이 말릴 겨를도 없이 부하들을 이끌고 비탈길을 내달리기 시작한다. 맞은편 기슭에 은신하던 독립군도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폐허로 변한 정착촌으로 진격한다.


동족과 동지가 몰살당하는 광경을 지켜본 마적과 독립군은 분노와 광기로 똘똘 뭉쳐 거칠 것 없이 전장으로 뛰어든다. 지옥에서 돌아온 저승사자인 양 총탄 여러 발을 맞아도 잠깐 멈칫할 뿐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달려드는 통에 토벌대의 방어벽이 무너진다.

왕리는 기관총을 난사하며 장쉐량이 탄 경전차를 향해 맹렬히 질주한다. 질겁한 장쉐량은 잽싸게 육중한 해치를 닫고 전차 안으로 숨는다. 아베 중좌가 이끄는 경전차들이 방향을 틀어 왕리의 앞을 가로막는다. 졸지에 경전차에 포위된 왕리는 비호처럼 날아 장갑판 위에 우뚝 선다. 회전포탑이 좌우로 작동하며 왕리를 떨쳐 내려고 한다. 간신히 몸을 피한 왕리는 해치를 열고 수류탄의 핀을 뽑아 내던진다.

경전차 안에서 연거푸 내폭이 일어난다. 회전포탑이 힘없이 떨어져 나간다. 몸에 불이 붙은 아베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며 비명을 지른다. 사기가 오른 왕리와 부하들은 후퇴하는 경전차에 뛰어들어 수류탄을 투척한다. 경전차 네 대가 연이어 폭발하며 화염에 휩싸인다.

얼추 전세가 뒤집힌 듯하다. 그러나 약이 바싹 오른 장쉐량은 일사분란하게 전열을 가다듬고 경전차를 후퇴시킨다. 그러곤 박격포를 전면에 내세운다. 승리에 도취된 마적과 독립군이 환호성을 터트릴 무렵 길차게 뻗은 자작나무숲 너머로부터 포탄이 날아든다.

십자포화에 무방비로 노출된 마적과 독립군은 도주로를 확보할 겨를도 없이 박격포탄의 세례를 받는다. 살상반경 내에 포함된 모든 사물이 초토화된다. 그나마 갈기갈기 찢겨 나간 살점과 부스러진 뼈마디조차 연이어 쏟아진 포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자작나무숲에서 정착촌의 처참한 광경을 내려다 본 목격자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집단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그들은 벙어리라도 된 듯 괴성을 지르며 아우성을 친다.

평주를 안고 있던 주찬이 미친 듯 구릉 아래로 내려간다. 허방을 딛기 일쑤라서 제풀에 넘어진다. 인기척이 들리자 박격포의 포신이 일제히 숲을 향한다. 쓔웅, 쓔웅, 쓔웅······. 마치 별동별처럼 머리 위로 지나갈 것만 같은 불씨가 정확히 낙오자들이 모여 있는 숲에 떨어진다.

반 토막 난 나무가 나뒹굴고 바위가 쪼개지면서 숲은 난장판이 따로 없다. 얼떨결에 평주를 잃어버린 주찬은 포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비틀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목발을 짚고 나타난 부상병이 그녀를 덮친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부상병이 실성한 주찬의 팔을 잡아끌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주찬은 손목을 뿌리치며 연신 뒤를 돌아보지만 평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포연이 자욱한 사이로 평주가 아끼던 말 인형이 반쯤 불에 탄 채 나뒹군다.

부상병은 어금니를 앙다문 뒤 냅다 주찬의 뺨을 후려친다. 그는 정신을 잃은 주찬을 부축하고 포탄을 피해 능선을 넘는다. 부녀자와 부상자를 포함하여 고작 20여 명만이 사지를 벗어난다.




310.


낙오된 자들이 왕표의 책사로 활동하던 원로를 만난 것은 순전히 행운이 작용한 결과다. 소만(蘇滿) 국경지역에 산채를 열어 밀무역을 통해 세를 유지하던 차해리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귀신에 홀린 듯 차해리와 부하들은 말에 올라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갑자기 멈춘 말이 투레질을 하며 연신 고개를 휘젓기 시작한다. 퍼뜩 잠에서 깬 차해리가 먼 길을 이동하느라 지친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준다. 그런데도 투레질은 끊이질 않는다. 말은 콧김을 내뿜으며 주인의 시선을 끈다.

몸을 기울여 고개를 내민 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잔설을 뒤집어쓴 세 사람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말에서 뛰어내린 그가 부하들을 재촉한다. 화들짝 놀란 부하들이 일일이 옷을 벗겨 온기를 감지한다.


“냉큼 장작을 모아 불을 지펴라!”

차해리가 발을 동동 구른다. 부리나케 흩어진 부하들이 잔가지를 들고 나타난다. 눈꺼풀이 내려앉은 부상병들 주위로 불이 피어오른다. 그와 부하들은 부지런히 뜨거운 차를 먹이고 살갗을 부비며 부상병들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 먼저 정신이 든 사내가 그를 알아본다.


“아니, 책사님이 아니십니까?”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왕리 대장을 모시고 만주를 전전하다 그만 토벌대의 습격을 받고 쫓기는 중입니다.”

“왕리가 살아있다고?”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몰살당하고 겨우 생존한 목숨이 이게 전부입니다.”

“왕리마저 세상을 떠나다니······”

그는 한탄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비록 왕리 대장은 떠나셨지만, 부인이 살아계십니다.”

“왕리가 결혼을 했다는 말이더냐?”

“예!”

사내는 고갯짓으로 담요를 덮고 있는 주찬을 가리킨다. 덜덜 떨고 있는 주찬은 얼굴에 온통 검댕을 묻히고 있는 탓에 온전한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연유더냐?”

“대장이 돌아가시고 어린 따님마저 잃자 충격을 받은 듯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실성한 듯 웃고 있는 주찬에게 다가간다. 요리조리 살피던 그가 무릎을 꿇는다. 손가락에 낀 가락지를 보자마자 덥석 주찬의 손을 잡는다.

“얘들아! 뭐하냐? 이분은 왕표 장군께서 유일한 승계자로 인정한 왕리의 부인이시다. 어서 예를 다해 문안인사를 올리도록 하라!”


차해리와 부하들은 일렬로 서서 큰절을 한다. 반쯤 정신이 혼미한 주찬은 헤벌쭉거리며 침을 흘린다. 처해리는 서둘러 주찬을 말에 태운다. 그러곤 산채를 향해 질주한다.

두목이 옛 동료와 함께 나타나자 산채는 활기를 띤다. 차해리의 부인이 중심이 되어 부녀자들이 들과 숲을 헤집으며 약초를 캐온다. 정성이 극진해서일까. 여러 달이 지난 뒤 창백하던 얼굴이 제빛을 되찾는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던 정신병도 점차 회복된다.



311.


왕표의 기일을 맞이한 산채는 여느 때와 달리 성대한 제단을 차린다. 전통의상에 칼까지 찬 차해리가 제주(祭主)를 맡아 조사(弔詞)를 낭독한다. 경건한 자세로 제사에 임한 사람들이 마지막 절을 올리는 것으로 제례가 끝난다.

뭇시선이 일제히 제단에 우뚝 선 차해리를 주목한다. 근엄한 목소리가 무리를 압도한다.


“오늘은 마적단을 이끌며 만주를 평정한 왕표 대장군의 기일이다. 비명횡사한 대장군을 떠올리면 지금도 터럭이 쭈뼛 서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하다. 허나 마적이 처한 현실은 슬픔에 젖을 겨를도 허하지 않는다. 오늘은 왕표 대장군과 왕리 대장의 억울함을 해원하는 자리이자 마적의 부활을 알리는 뜻 깊은 날이다.”

그는 횃불에 이글거리는 뭇시선을 일별한다. 그러곤 마저 제 뜻을 전한다.

“대를 이을 적자가 없어 마적의 명맥이 끊어지는 줄만 알았다. 허나 조상이 굽어 살피신 결과 암흑과도 같은 우리에게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여봐라! 대부인을 제단으로 모셔라!”

주찬이 부하의 호위를 받으며 제단에 오른다. 차해리는 허리춤에 찬 칼집을 끌러 주찬에게 넘긴다. 주찬을 얼떨결에 칼집을 받아든다.

“대부인을 마적단의 대장군으로 영접합니다. 부디 마적단의 부흥을 이끌어주십시오!”

제단을 둘러싼 무리가 주찬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어느 틈엔가 장정 한 명이 성큼 다가와 주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어릴 때부터 왕리 대장을 모신 리쥔이라 합니다. 끝까지 왕리 대장을 못 모셔서 한이 되었는데, 이렇게 대부인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앞으로 목숨을 바쳐 보필하겠습니다.”

잠시 어리둥절한 주찬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그녀는 리쥔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고맙소!”

리쥔은 마적들을 향해 목청을 높인다.

“주찬 두목을 위해 죽을 때가지 목숨을 바칩시다.’

그의 선창에 따라 마적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주찬 두목을 위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주찬 두목! 만세! 만세! 만만세!”


곳곳에서 주찬을 찬양하는 소리로 산채가 들썩인다. 주찬은 칼집에서 칼을 뽑아 치켜든다. 교교한 달빛이 칼등을 타고 흐른 뒤 도반(刀盤)에서 부서진다.


“마적의 부흥을 위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리다! 원수는 끝까지 찾아 복수를 할 것이며, 의인은 죽는 그날까지 보답할 것을 맹세하리다!”


주찬은 칼을 뻗어 휘적휘적 휘두른다. 그럴 때마다 혈조를 타고 흐르는 달빛이 번쩍거리며 ‘쨍’, ‘쨍’ 우는 소리를 낸다.




제20장 정보국 5과




312.


카지 류노스케는 천황 직속의 육군성 정보국의 특명을 받고 만주로 파견된다. 그의 공식적인 직함은 관동군사령관을 보좌하는 참모역이다. 그는 참모장의 직급에 걸맞게 소장으로 승진한다. 참모장은 표면상의 직책일 뿐이다. 그는 관동군사령관이 주재하는 참모회의에 참석할 의무도 없고, 보고할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비공식적으로 만주의 정보와 전략을 총괄하는 중책이 맡겨진다. 이를 두고 그를 가리켜 ‘무임소장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카지 류노스케 소장은 펑톈으로 떠나기 전에 ‘류노스케 사단’이라 불리는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와 이시와라 간지 중좌를 각각 관동군 작전과장과 육군성 정보국 5과의 연락장교로 임명한다. 이는 만주와 본토를 연결하는 연락망을 구축함으로써 일본정부가 만주식민화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펑톈(奉天)으로 가기 전에 경성을 경유하여 조선총독부의 경무국장 미쓰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미쓰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그는 독립군 색출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고등계 형사들을 경성으로 불러들여 함께 만주행 기차에 오른다.

정보력을 손아귀에 쥔 그가 독립군까지 일망타진하겠다는 계획은 향후 ‘류노스케 보고서’에 입각한 정치군인으로서 입지를 굳히려는 원대한 포부가 깔린 포석이기도 하다.


중국의 중원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분열이 심화되면서 국공합작(國共合作)이 결렬된다. 그리고 국민당 내부에서도 권력 다툼이 벌어지면서 북벌의 취지가 변질된다. 중국을 통일하겠다는 장제스의 야망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일부 해안 지방을 차지하는 것에 그친다. 그나마 장제스의 최대 성과라면 군벌 가운데 최고의 실력자인 북양정부(北洋政府)의 장쭤린을 베이징에서 추방했다는 정도다.

장제스는 베이징 교외의 벽운사에 있는 쑨원의 무덤 앞에서 중국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며 북벌의 완성을 선포한다. 하지만 중국의 대다수 지역은 아직도 서슬 퍼런 군벌이 지배를 하고 있다.

국민당 정부에 복속을 다짐한 군벌들은 중앙정부에 조세를 납부하기는커녕 수입을 빼돌려 사병 양성에만 열을 올린다. 말하자면 장제스의 국민당정부는 표면적으로만 통일정부일 뿐 영향력이 없는 형식적인 정부에 불과하다.


‘류노스케 사단’의 첫 작품은 1928년 6월 4일 펑톈(奉天) 근처의 황고둔(皇姑屯)역에서 발생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쭤린(張作霖)은 마적단을 전전하다 관동군에 부력하면서 차츰 군벌(軍閥)로 성장한다. 중원을 평정하여 중국통일을 이루겠다던 그의 야망은 마침내 빛을 발한다.

군벌과의 쟁탈전에서 승리한 그는 베이징에 진출한 뒤 북양정부의 수장이 된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던가. 그의 야망도 머지않아 부질없는 권력의 저주에 희생된다. 장제스의 불벌군(北伐軍)이 베이징을 점령한 후 그는 황급히 만주로 피신한다. 그가 탄 열차는 황고둔역에서 불의의 폭발을 일으키며 화염에 휩싸인다.

류노스케의 추종자인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의 지휘 아래 관동군이 매설한 폭탄이 폭파하면서 중상을 입은 장쭤린은 펑톈의 관저로 옮겨진다. 일본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마침내 일본의 보복으로 명을 달리하고 만다.

베이징에 머물 당시 일본을 무시하고 줄곧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그의 고자세가 관동군 수뇌부에 미움을 산 것이다. 가뜩이나 국경을 접한 소련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당에 미국까지 만주를 넘보는 상황이 된다면 일본은 그야말로 이방인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본토의 육군성 참모본부는 관동군 소속의 일개 작전장교에게 특단의 조치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극비리에 하달한다. 아버지를 잃은 장쉐량은 암살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추레한 화부(火夫)차림으로 분장하여 장례식장에 참석할 정도로 일본을 두려워한다.


황고둔 사건을 계기로 만주는 정신적인 변혁을 겪는다. 국가의식이 고취되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항일의식이 싹트는 발판이 마련된다. 동북정부의 실력자로 등극한 장쉐량은 스물여덟이란 나이에 동북군의 총사령관에 취임한다.

국제사회는 황고둔 사건을 일으킨 관동군을 암살집단이라며 강력히 비난한다. 국제 여론이 비등하자 천황은 대노하며 관동군을 강력하게 성토한다. 다나카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일단락된다.

정작 명령불복과 직권남용, 암살사주 등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받아 마땅한 암살의 주범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는 예비역으로 편입되는 수순에서 형벌을 면한다. 이후 그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의 이사직으로 수평이동하며 범법자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세탁의 과정을 거친다.

천황이 대노했다는 점과 내각이 총사퇴했다는 행위는 군부와 모의하여 세계를 대상으로 벌인 사기극임을 추측할 수 있다.


희대의 암살사건에도 불구하고 카지 류노스케의 만주식민화계획은 철저하게 실행된다. 1928년 10월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의 후임으로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작전과장으로 부임한다. ‘류노스케 보고서’에 영향을 받은 이시와라 간지는 대일본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만주와 몽골을 식민화해야 한다는 ‘만몽연합설’을 주장하면서, 그 사상적 배경으로 세계에서 일본이 단일민족으로 가장 우수하다는 선민사상을 내세운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그를 우상화하는 추종자로부터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公營圈)’으로 미화되며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데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만주를 호령하던 1기 ‘삼두체제(三頭體制)’ 즉, 군벌의 장쭤린과 마적단의 왕표 그리고 부흥은행의 주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백을 관동군과 만철이 꿰차고 들어오면서 바야흐로 만주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한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公營圈)’의 기치 아래 만주국을 설립하여 제국주의로 도약하려는 일본과 기득권을 고집하며 영원한 만주의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북양군의 장쉐량 그리고 북벌군을 이끌며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 만주를 정벌하려는 장제스가 등장하면서 만주의 ‘2기 삼두체제(三頭體制)’가 출범한다. 특히 ‘2기 삼두체제’에서는 내분에 휩싸여 북벌을 중단한 장제스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전력의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일본이 세력을 확장한다.

‘1기 삼두체제’는 봉건사회를 유지하려는 보수 세력과 서구의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개혁 세력이 대립함으로써 ‘혁명(革命)’이란 성장통을 통해 낙후된 만주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내재적인 힘에 의한 권력 이동과 계층 분화가 일어나면서 만주는 사회진화론적으로 성숙의 단계로 접어드는 듯하다. 하지만 만주 식민화정책에 혈안이 된 일본이 개입하면서 ‘2기 삼두체제’는 각자의 이권에 따라 각종 협정과 밀서가 오가며 만주의 발전을 방해하는 합종연횡이 남발한다.

일본은 매국 군벌에게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간신히 숨통이 트인 권력의 이동 통로를 폐쇄하고, 그나마 다양성을 추구하려던 계층의 분화마저도 단절시킨다. 오직 일본 세력과 결탁된 친일 단체에게만 각종 혜택과 특권이 주어진다. 만주의 발전을 위해 민초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은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강바닥처럼 가뭇없이 증발한다.




313.


장제스가 이끄는 북벌군이 베이징까지 함락하자 일본은 전전긍긍한다. 북벌(北伐)의 완성은 곧 중국의 통일을 의미한다. 베이징을 수중에 넣은 장제스의 다음 목적지는 만주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공산당과의 충돌과 당내의 분열이 점차 가열되면서 국민당 정권은 내홍에 휩싸인다. 내치를 중시하던 장제스는 수도를 난징(南京)으로 천도하는 결단을 내리며 자신에게 등을 돌린 반대세력을 회유하기에 나선다.

마침내 만주 정벌의 교두보를 확보한 국민당은 공산당의 확산을 막기 위해 베이징 이남으로 병력을 철수한다. 자칫 궁지로 내몰릴 수도 있었던 일본은 하늘이 내린 천운이라며 전열을 가다듬는 데 박차를 가한다. 국민당 정권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일본은 산둥반도(山東半島)에 관동군을 급파하여 느슨해진 전선을 구축한다.

류노스케는 만주식민화계획을 점검하기 위해 당직자회의를 소집한다. 일명 ‘류노스케 사단’으로 불리는 이시와라 간지 관동군 작전과정과 고모토 다이사쿠 만철 이사 그리고 정보부 소속의 장교가 탄 차량들이 펑톈 외각에 있는 류노스케의 관저 앞에 멈춘다. 불을 환하게 밝힌 관저의 철통경비가 말해주듯이 접견실의 분위기도 전과 달리 사뭇 엄중하다.


“장제스의 북진을 일단 산둥 파병으로 틀어막았지만, 현재 1만의 관동군 병력으로는 20만에 육박하는 북벌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가부간에 뾰족한 묘수를 쓰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류노스케의 멀쩡한 외눈이 경련을 일으킨다. 주위를 일별한 이시와라가 선뜻 나선다.

“장군님, 장쉐량을 이용할 때가 왔습니다.”

상관의 눈치를 보며 미적거리던 고모토가 슬쩍 끼어든다.

“이시와라! 그건 위험한 발상이야. 내가 황고둔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이번만큼은 자네 의견에 동의할 수 없어. 지금 만주 일대는 반일의식이 팽배하네. 따라서 폭사한 장쭤린의 아들까지 건드리면 사태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될 거야. 그리고 도쿄 참모본부에서도 앉아서 보고만 있지 않을 테고. 나까지는 예비역으로 예편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앞으로는 군법회의에 회부될 지도 몰라.”

고모토가 진지한 어투로 충고한다. 이시와라가 단호한 입장을 내놓는다.

“선배님의 충고 잘 듣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내각은 너무나 유약합니다. 무슨 병정놀이나 하자고 군대를 만주에 파병한 것도 아니고······. 이번 참에 청년장교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독설을 퍼붓는다. 류노스케가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 쓰나. 쿠데타란 카드를 이까짓 일에 쓸 순 없지.”

‘쿠데타’란 고도의 정치적 결속을 요하는 민감한 단어에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예상한 뭇시선은 일순 침을 삼키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뭇시선이 한일자로 지그시 다문 류노스케의 입을 좇는다.

“이시와라!”

“하이!”

“‘육군의 이단아’라 불리는 자네 입에서 쿠데타란 말이 나올 정도라면, 세워둔 계획이 있을 거라 보는데······, 어디 말해보게.”

긴장할 때면 예의 엉덩이를 들썩이던 이시와라가 허리를 곧추세운다. 그러곤 질문이 돌아올 것을 예견한 듯 서슴없이 말을 잇는다.

“정보를 분석한 결과, 장제스의 중국 통일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서양 속담에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장제스는 오합지졸의 군대를 마치 달걀처럼 한 연병장에 집합시킨 꼴이더군요. 명색이 통일 정부를 구성한 국민당은 정부위원이니 주석 혹은 장령이란 직함을 뿌리며 지방의 유력 군벌들을 포섭했습니다. 게다가 국민당 내부에서도 왕징웨이의 개조파와 후한민의 원로파 그리고 추로의 서산파 등의 파벌이 장제스와 각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언제라도 썩은 달걀이 멀쩡한 달걀을 감염시킬 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연합이란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설득력을 획득한 것일까.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그의 다음 말에 촉각을 세운다. 몸이 달아오른 류노스케가 넌지시 재촉한다.

“그래서?”

한껏 기가 오른 이시와라가 거침없이 결론을 도출한다.

“국민당이 만주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장쉐량이 장제스 편에 서야 합니다.”

고모토가 발끈한다.

“아무리 예전만 못하다손 치더라도 장쉐량의 북양군은 그 수가 족히 이십여 만 명을 헤아리네. 그런 그가 장제스와 연합하면 관동군의 병력으로 방어하기에는 중과부적이야. 전쟁에서 이길 승산이 없지 않은가!”

콧방귀를 뀐 이시와라는 고모토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류노스케를 주시한다.

“장쭤린이 사망한 후 장쉐량은 툭하면 만주에서 관동군을 몰아내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다닙니다. 갓 서른 밖에 안 된 그런 풋내기한테 맞서 대거리를 한들 득이 될 건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장제스와 손을 잡으면 내분으로 정신이 없는 난징의 국민당 정부는 자신의 뒷문을 지켜줄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며 만주 진출을 뒤로 미룰 겁니다. 또한 든든한 군사력을 둔 북양군을 국민당군에 편입시킴으로써 여타 군벌을 견제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며 쾌재를 부를 겁니다. 우리는 국민당이 중원의 문단속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벌 동안 관동군을 증원하여 유사시 상황에 대비한다면 우리야 말로 후사를 도모할 충분한 시간을 벌게 되지 않을까요?”

류노스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누가 자네한테 감히 ‘육군의 이단아’라는 몹쓸 별명을 붙였는지 가만두지 않겠네. 내가 본 바로는 자네야말로 육군 최고의 전략가가 틀림없어! 안 그런가?”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반응을 살핀다. 모두 턱이 흔들릴 정도로 동조한다. 고모토만이 의심쩍은 눈빛으로 이시와라를 경계한다.

“장쉐량은 나와 친분이 있으니, 내가 직접 만나 의중을 떠보겠네. 그 풋내기가 북양군 총사령관이 됐다지? 하하핫! 축하한다며 접근해서 환심을 사야겠어. 보아하니 그 친구,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더군. 부관!”

부관이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총사령관에 어울릴 법한 선물을 준비해두게.”

“하이!”

“그리고 만주의 지형도를 다시 그려야 할 테니, 토벌단의 지휘부를 소집하도록!”

“하이!”

부관이 돌아간 뒤 그는 장교들을 둘러보며 덧붙인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겠나? 대장 놀이에 푹 빠진 얼간이한테 말이야! 하하핫!”


응접실 밖으로 새어 나온 웃음소리가 회랑에 공명되며 긴 여운을 남긴다.




314.


장쭤린의 폭사사건 이후 만주는 미증유(未曾有)의 시련을 맞이한다.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힌 민초들은 적개심을 불태우며 연일 거리로 나서 관동군을 성토한다. 낮에는 거리에서 민초들을 위무하는 척 눈물을 흘리던 권력자들은 밤이 되면 제가끔 주판알을 퉁기며 셈법에 몰두한다. 민초들이 고단한 몸으로 까무룩 잠에 취하길 기다린 정객들은 일본의 실력자와 어울리며 밤새 술판을 벌인다.

거처할 만한 초가 한 채나 밭 한 뙤기조차 없는 민초들은 중력을 상실한 채 회오리에 휩쓸려 궁벽한 초원의 방랑자로 전락한다. 노회한 정치가와 야심찬 권력자의 민낯이 두꺼워져 철면피가 될수록 민초들의 삶은 지스러기 하나 없이 무화된다. 여전히 혁명의 불발과 개혁의 실패는 온전히 민초의 몫으로 돌아간다.


1928년의 겨울은 유난히 눈보라가 극성을 부린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들에게 그해의 겨울은 어둡고 긴 터널로 기억된다.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암암리에 벌어지는 권력암투다.

군벌이 베이징에서 출범시킨 북양정부(北洋政府)는 장쭤린의 사망으로 막을 내린다. 장쉐량은 지린성(吉林省)과 랴오닝성(遼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의 동북3성을 통치하는 둥베이정부(東北政府)의 초대 통령으로 취임한다. 난징정부(南京政府)는 장쉐량을 동북변방사령장관(東北邊方司令長官)과 전국육해공군부사령관(全国陸海空軍副司令)으로 임명한다.

실권을 장악한 장쉐량은 류노스케와 밀담을 나눈다. 천황의 선물을 받은 그는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리며 시중을 드는 기모노 차림의 접대부들에게 호기롭게 돈을 뿌린다.

폭풍설이 휘몰아치던 1928년 12월 29일. 그는 이른바 국민당에 복종을 선언하며 둥베이정부에서 난징정부로 깃발을 바꾼다는 뜻의 ‘동북역치’를 선언한다. 이로써 난징정부는 남으로부터 북에 이르기까지 주요 군벌들을 복속시키면서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의 깃발 아래 중국통일의 과업을 완수한다.


지린성에 본부를 둔 정의부가 발칵 뒤집힌다. 장쉐량이 장제스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독립군에게 호재로 여길 만하다. 그러나 장쉐량의 성향을 잘 아는 정의부의 수뇌부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장고에 돌입한다. 러산산맥에서 북벌군과 연합 작전을 펼치기 위해 파견되었던 작전이 취소되는 바람에 귀환한 김도선과 서광휘가 지청천 사령장이 소집한 회의에 합류한다.


“참모장과 특무대장이 없으니 본부가 썰렁하기 짝이 없소이다. 잘 오셨소.”

지청천이 도선과 광휘를 반갑게 맞이한다.

“황고둔 사건으로 어찌나 검문검색이 심해졌는지, 겨우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관동군은 북양군에 비하면 양반이더이다. 글쎄 헌병대 놈들은 이골이 나서 쭉 찢어진 여우 눈깔만 피하면 되는데, 그놈의 북양군 놈들은 냄새나는 손으로 낭심까지 주물럭거리는 게 아닙니까! 하마터면 불알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고 혼났습니다. 하하핫!”

도선은 낭심을 매만지는 흉내를 내며 너스레를 떤다. 그의 입담에 막사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그나저나 참모장! 베이징의 상황은 어떤가?”

사령장이 웃음기를 거둔 채 근엄한 표정으로 묻는다.

“베이징 외교가에도 청천백일기가 나부끼고 있습니다. 곧 국민당 정부를 중국의 단일 정부로 인정한다는 뜻이겠죠.”

고개를 끄덕이던 사령장이 재차 묻는다.

“북벌군 쪽에서는 뭐라 하나?”

“정의부와 연합하여 산해관에서 군벌의 퇴각로를 기습할 예정이었습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장쉐량이 동북역치를 선언하는 바람에 작전은 없던 게 되고 말았습니다.”

도선의 말을 듣고 있던 지대장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한다.

“장제스 장군과 지청천 사령장님은 친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장세스 장군에 복속한 장쉐량의 군대도 우리와 동지적 관계가 되는 겁니까? 이건 영 아리까리해서 말이죠. 그놈들은 관동군의 토벌대에 속해 독립군을 학살한 전력이 있는 악질들 아닙니까?”

사령장과 참모장은 잠시 말을 아낀다.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던 두 사람은 슬그머니 서광휘에게 시선을 옮긴다. 사령장이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

“자네 의견을 듣고 싶군.”

잠시 눈동자를 깜박거리던 그가 대꾸한다.

“비록 일본군이 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지원수일지라도 장쉐량은 이득이 된다면 마주보고 술잔을 비울 인물입니다. 그가 말로는 난징정부에 복속한다고 ‘동북역치’를 선언했다고 합니다만, 그의 속은 아무도 모릅니다. 장제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난징정부의 관료나 중앙군은 산해관 이북으로의 진출을 엄격히 통제받고 있답니다. 장쉐량도 세금을 난징정부로 송금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정보를 종합하건대 장쉐량은 호락호락 어느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을 겁니다. 즉, 국민당이나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제 입맛에 맞는 제안이 오는 쪽으로 등을 돌릴 게 뻔합니다. 장제스와의 교류 때문에 섣불리 장쉐량 쪽과 연계하면 언제 불똥이 튈지 모릅니다. 제 의견을 물으셨으니 답하겠습니다. 우리의 주적은 일본입니다. 따라서 주적과 친분이 있는 자는 우리의 주적일 뿐,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부질없다고 생각됩니다.”

얼마간 골몰하던 사령장이 입을 연다.

“서 대장 말이 맞아. 장제스와 나는 군사훈련을 같이 받은 동지였지. 하지만 아무리 친한 동지의 동지가 주적과 가까운 사이라면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되고말고.”


볼록한 안경알 너머의 눈동자가 유난히 되록거린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딴청을 피우며 애써 지청천의 시선을 외면한다. 외따로 비스듬히 서 있는 서광휘만이 등롱에 어룽거리는 사령장의 그림자를 응시한다.




315.


류노스케는 도쿄와 경성 그리고 만주에 산재한 심복들을 펑톈으로 불러들여 ‘2기 만주독립군토벌단’을 꾸린다. 만주식민화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조직된 속칭 ‘류노스케 사단’이 머리라면 토벌단 조직은 두뇌의 지시에 충성하는 수족으로써 행동대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류노스케는 야망을 실천할 수 있는 완전체를 손아귀에 거머쥔 셈이다.

류노스케의 충직한 사냥개들이 펑톈 외곽의 안가로 모여든다. 안가는 그야말로 간판은커녕 안내판조차 없는 외딴 곳에 덩그러니 방치된 건물이다. 담장이 높고 경비가 삼엄하여 인근 주민들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따금 군용 트럭이 드나드는 것을 보곤 그저 군과 관련된 시설쯤으로 여길 뿐이다.


“어서 오시게, 제군들!”

류노스케가 회의실 앞에서 속속 도착하는 부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타이요우를 포함하여 쥰페이 코우 소좌와 중위로 진급한 나카다 쇼와 미나토 오사무가 류노스케의 환대를 받으며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그동안 참모본부의 특명을 수행하느라 귀관들과 소원했다. 앞으로 일로 보답할 테니, 각오하도록!”

류노스케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주위를 일별한다.

“장군님, 영전을 감축 드립니다.”

벌떡 일어난 타이요우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보직 없는 자리에 영전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가?”

류노스케는 입을 비죽이 내밀며 은근히 상대를 부추긴다.

“‘무임소장군’이란 직함을 갖은 분이 몇이나 됩니까? 대일본제국의 참모본부 소속으로 직책이 없는 분은 장군님이 유일무이하지 않습니까? 이는 곧 천황폐하의 특명을 수행하는 보직 중에 으뜸이 아니면 달리 뭐라 표현하겠습니까?”

그의 왼쪽 뺨이 파르르 떨린다. 긴장할 때마다 칼날에 손상된 안면근육이 경련을 일으킨 탓이다.

“하하하! 경시로 특진을 했다더니만 입심도 정치적인걸! 자네 야망이 어디까지 닿는지 지켜보겠네.”

눈도장을 확실히 받아두려는 듯 그는 류노스케의 시선을 얼마간 응시한다.

“제 야망이라면 의당 장군님 손에 달려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이 사람 보게? 나를 왜 자네 야망에 옭아매는 게야?”

“목숨을 장군님 손에 맡겨둔 지 이미 오래 됐습니다.”

“이거, 어디 눈치 보느라 무서워서 살겠나?”

인공 눈알을 박은 류노스케의 눈자위가 씰룩거린다. 객담에 인색한 편이지만 왠지 아부가 싫지 않은 성싶다.

“그건 그렇고, 제군들의 특진도 축하한다.”

그는 쥰페이와 나카다, 미나토를 일별한다.

“모두 장군님이 보살펴주신 덕분입니다.”

선임 장교인 쥰페이가 대표로 답한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만든 건 독립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첩보가 접수되고 있기 때문이야. 더 우려할 만한 일은 독립군이 마적단과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점이지. 조선에 이어 만주까지 띠를 잇는 식민대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독립군과 마적은 걸림돌로 작용할 거야. 따라서 참모본부가 우려하지 않도록 제군들이 조속히 성과를 올려주었으면 하네. 앞으로 만주식민화정책의 성공 여부에 따라 조국의 사활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만큼, 제군들이 충성을 다해주기를 바라네.”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타이요우가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관동군의 모든 자원을 지원하겠네. 일단 토벌단에 2개 중대를 배정하도록 조치를 취했네. 서둘러 작전에 돌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알겠지?”

“하이!”

네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로 전방을 주시한다.




316.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품고 있는 만주는 식민지개척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 사이에서 매력 있는 처녀지로 떠오른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에게 패한 러시아가 가장 적극적으로 만주 진출에 눈독을 들인다. 그 외에도 금융과 광물개발 등에 뛰어들기 위해 각국의 사업가들이 펑톈으로 몰려든다.

사교계의 중심인 대화호텔은 늘 돈과 권력을 쫓는 이방인들로 북적거린다. 호텔의 단골손님은 낮과 밤을 기준으로 두 부류로 나뉜다. 주로 낮에는 분내를 폴폴 풍기며 가슴을 드러낸 유한마담과 번드르르하게 포마드 기름으로 가르마를 탄 사기꾼이 투자자의 비위를 맞추며 로비를 독차지한다. 이슥한 밤이 되면 웃음을 파는 접대부와 이권을 차지하려는 사업가가 권력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불나방처럼 밀실을 드나든다.


로비 창가 자리에 왕 사장과 러시아 상인이 앉아 있다. 통역관은 왕 사장에게 러시아 상인의 의중을 전달하느라 진땀을 뺀다. 턱을 괸 채 눈을 슴벅거리며 상대의 의중을 간파하려는 왕 사장과 통역관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곁눈질하는 러시아 상인 간의 신경전이 제법 날카롭다.

짐짓 태연한 척하던 러시아 상인의 짙은 눈썹이 움찔한다. 러시아 상인으로부터 귓속말을 들은 통역관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뒤 왕 사장에게 귀띔한다. 왕 사장은 비로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좋소! 펑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물류비용은 월말 정산하는 것으로 하겠소!”

왕 사장과 러시아 상인은 악수를 하며 거래를 튼다.


회전문을 통과한 타이요우가 로비에 발을 내딛는다. 벨보이가 다가와 그의 가죽가방을 받아든다. 레드 카펫에 우뚝 선 그는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샹들리에 불빛이 난반사되며 호텔의 분위기를 한층 화려하게 만든다.

그는 잠시 성공가도에 도취라도 된 듯 횡경막이 들썩일 정도로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러곤 부와 권력을 거머쥔 부류들이 분주히 오가는 로비를 찬찬히 훑어본다.

벨보이를 따라 프런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가 갑자기 멈칫한다. 그러곤 서서히 고개를 모로 틀고 창가를 주시한다. 피사체를 정조준하려는 듯 눈자위가 점점 움푹해진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속엣말을 중얼거린다.


‘아니, 진만이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내가 잘못 본 건가?’


타이요우는 손가락으로 눈자위를 매만진다. 시야가 확 트인 듯 그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창가 쪽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푸른 비단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치파오는 고관대작이나 거상이 아니면 섣불리 소화할 수 없는 의상이다. 불룩하게 나온 배와 번들거리는 낯빛이며, 상대와 호응할 때마다 출렁거리는 턱살은 천생 거상(巨商)의 풍모가 틀림없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럼! 농사일 말고는 아는 게 없는 무식한 놈이 호텔이 가당키나 할까.’


혼잣말을 늘어놓으며 프런트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왠지 부자연스럽다. 제 눈을 통해 본 객체와 심리적으로 부정하려는 실체가 좀처럼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그의 눈이 먹이를 포착한 매의 눈처럼 매섭게 빛난다. 왕 사장과 러시아 상인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거래를 트게 돼서 영광입니다. 앞으로 시베리아횡단열차의 화물은 우리 쪽이 다 책임지겠습니다. 하하핫!”

통역을 통해 왕 사장의 말을 전해들은 러시아 상인도 넉살 좋게 받아친다.

“그거 참 기발한 발상이군요. 그렇다면 우리도 왕 사장을 통해 만주를 넘어 중국 본토까지 지점을 낼 수 있는 게 아닙니까? 양쪽 모두 꿩 먹고 알 먹는 격이군요. 하하핫!”

“만주에서는 거사를 치르고 난 후 손님께 거하게 술상을 베푸는 것이 전통입니다. 자, 오늘은 제가 하자는 대로 따르시죠.”


왕 사장은 한 걸음 나서서 러시아 상인을 안내한다. 로비를 가로지르는 왕 사장은 오른쪽 다리를 살짝 절름거린다. 일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타이요우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을 부르르 떤다.


그랬다. 춘천옥에서 잔뜩 취했던 그는 뒤꼍에서 오줌을 갈기던 중이었다. 유독 달빛이 휘황찬란한 보름달이었기 때문에 그날의 기역은 지금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온기가 빠져나간 뒤라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몸서리친다. 바투 뒷덜미에 밀착된 불길한 기척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달빛을 받은 예리한 칼날이 번쩍이는 순간 핏줄기가 사방으로 치솟는다. 취한 탓에 격분한 상대가 쏟아내는 욕설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노려보던 분노에 찬 그 눈빛만큼은 아직도 선연하다. 정신을 차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뽑아 여러 발을 난사했다. 총을 맞은 진만은 오른쪽다리를 절며 담을 기어올랐다. 지금껏 당시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흐릿한 기억 속에 유일하게 남은 잔상이 지금 눈앞에서 다리를 절고 있다. 타이요우는 칼날에 베인 상처를 어루만진다. 왕 사장이 계단참을 내딛을 즈음 그가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게 누구시더라? 춘천 미천골의 상머슴, 박진만이 아니신가?”

타이요우의 왼쪽 눈언저리가 경련을 일으킨다. 순간 ‘출세’라는 사실을 직감한 진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진만은 반사적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못 들은 척한다.

“나만 보면 버러지처럼 움츠려들던 놈이 이것 보게? 어디서 비단장사 왕 서방 흉내를 내는 거야? 차라리 독수리눈을 속일지언정 내 눈은 못 속이지. 에잇!”

화가 치밀어 오른 그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진만을 겨눈다. 진만은 황망한 듯 만주어를 쏟아내며 어깨를 으쓱한다. 호텔 직원들이 달려와 타이요우를 끌어내다시피 한다.

“뭐하는 짓이야! 내가 누군지 아나? 저놈을 생포해야 한다. 당장 경찰서에 연락해! 이거 놔! 대가리에 총알을 박기 전에 당장 경찰을 부르라고······”


직원들의 손을 뿌리쳐보지만 그럴수록 팔목이 옥죄인다. 왕 서방으로 알려진 진만은 현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호텔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 인물이다. 제아무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보국 5과 소속의 간부일지라도 신분을 알 리 없는 호텔직원에게 그는 그저 주정을 부리는 취객쯤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를 듣고 순찰을 돌던 헌병들이 들이닥친다.


“저놈을 생포해!”

헌병 두 명이 눈을 부라리며 그에게 다가온다. 땅바닥에 떨어진 신분증을 본 헌병이 손을 부르르 떨며 상급자에게 건넨다. 신분증을 받아든 상급자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당장 풀어주시오. 이분은 대일본제국의······”

타이요우는 직원들의 손을 뿌리친다. 그러곤 구겨진 윗도리를 어루만진다.

“계단에 있는 저놈을 당장 체포해!”

“하이!”

헌병들이 계단참으로 오른다. 헌병들이 진만의 양팔을 잡을 찰나 주변에서 구경하던 현지인들이 가로막고 나선다.

“아니, 장쭤린 도독을 암살한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백주대낮에 민간인을 체포한다고? 절대 그렇게는 못 하지!”

현지인들이 어깨를 맞댄 채 헌병들과 대치한다. 약이 바싹 오른 타이요우가 허공에 총을 쏘며 겁박한다.

“지금 저놈을 비호하는 것은 대일본제국에 저항하는 대역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전원 체포하여 중벌을 내릴 것이다!”

현지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대거리한다.

“너희들의 폭정이 아무리 무섭다한들 죄 없는 왕 대인을 내줄 순 없다!”


진만을 두둔하는 쪽이 완강하게 나오자 헌병들도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그사이 진만은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간다. 어느 순간부터 현지인들은 똘똘 뭉쳐 ‘일본은 만주를 떠나라!’를 외치며 실력행사에 나선다. 타이요우는 버럭 화를 내며 헌병들과 함께 호텔을 떠난다.




317.


펑톈역 근처의 창고 앞에 차가 멈춘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진만은 차에서 내려 부리나케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잔뜩 쌓인 화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그가 다짜고짜 화부를 잡고는 묻는다.


“어르신 어디 계신가?”

“모르겠는데요.”

“어르신 못 봤나?”

“좀 전에 초희랑 출타하시던데요.”

“어디로?”

“공원에 가신 것 같은데······”


진만은 화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고를 빠져나간다.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던 기사가 말릴 틈도 없이 그는 황급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공원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한데 뒤섞여 노는 모습으로 활기가 넘쳐난다. 경덕은 아이들 틈에서 아장아장 걷는 초희의 뒤를 양팔을 벌린 채 구부정한 자세로 뒤따른다. 보는 이들은 초희보다는 할아버지로 보이는 경덕 쪽을 더 걱정하는 눈치다.


“서방님! 서방님!”

숨을 헐떡거리며 다가온 진만이 절름거리던 다리를 펴고 숨을 고른다. 경덕은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무심히 대한다.

“바쁜 자네가 뭐 하러 여기까지 찾아왔어. 곧 가려던 참인데.”

진만은 초희를 번쩍 들어 가슴에 품는다. 화들짝 놀란 경덕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대관절 무슨 일이길래 그리 서두르는가?”

“출세 놈이 나타났습니다.”

“출세 놈이라니······”

뱉은 말이 채 입 밖으로 새어 나가기도 전에 경덕의 동공이 팽창한다. 흰자위가 희번덕거리던 시선이 멀뚱멀뚱 허공을 맴돈다. 귀신에 홀려 접신이라도 한 것일까. 그는 주문을 외우듯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그에게 출세 아니, 타이요우는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와 다를 바 없다.


“서둘러야 합니다. 어서요.”

초희를 들쳐 업은 진만은 그의 소매를 잡고 재촉한다.

“그자의 마수가 만주땅까지 미칠 줄이야. 도망간들 그게 무슨 소용이람. 이미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게야.”

경덕은 미망에 사로잡힌 듯 소스라치게 몸을 떤다.

“서방님!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어서요.”


진만은 허방을 딛는 경덕의 소매를 질질 끌며 공원을 벗어난다. 뒷자리에 경덕을 태운 뒤 초희를 안은 채로 서둘러 운전석에 앉는다. 그는 펑톈 외곽의 정양호(丁香湖)로 밤새도록 차를 몬다.

호숫가에 면한 통나무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벽장에 장식된 러시아제 장총 두 정을 꺼낸다. 명중률이 떨어지는 구식이긴 하지만 불청객에게 위협을 가할 만한 무기라곤 그게 전부다.

초희는 의자 위에서 곤히 잠을 잔다. 어안이 벙벙한 경덕은 아직 현실을 직감하지 못한 눈치다. 어쩌면 그는 지긋지긋한 악몽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망각증세를 보이는지도 모른다. 외상 후 충격으로부터 회피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된 듯하다.


진만은 그에게 총과 탄창을 건네며 마음을 다잡는다.

“서방님! 그놈에게 잡힌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이 총이 서방님과 초희를 지켜줄 유일한 무기입니다.”

“알았네.”

진만은 탄창 여러 개에 총알을 장전한다. 곁눈질하던 경덕은 서투른 손놀림으로 그를 따라한다. 탁자 위에는 어느새 탄창이 수북이 쌓여 있다.

“가끔 통나무집에 나타나는 곰이나 늑대를 내쫓기 위해 장만했는데, 이렇게 원수 놈한테 겨누게 될지는 예상 못했습니다.”

총신을 거머쥔 진만의 눈빛이 적개심으로 들끓는다.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닌가? 춘천에 있어야 할 위인이 하루아침에 어찌 만주에서도, 그것도 봉천에 나타났단 말인가?”

“혹시 토벌대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금시초문이네.”

“한마디로 토벌대는 독립군을 사냥하는 특수부대입니다. 그놈들이 쫓는 건 애석하게도 서광휘 대장이 이끄는 특무대를 주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서광휘라면······”

“네, 서방님의 큰 도련님입니다.”

“전해 듣기로 2차 토벌대가 꾸려졌다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타이요우 그놈이 봉천에 다시 낯짝을 내민 듯합니다.”

“인호가 아직 살아 있을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와 지청천 사령장이 이끄는 정의부가 친밀한 관계라 들었습니다. 도련님이 정의부 소속의 특무대를 이끌고 장제스 군대의 일원으로 북벌에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도 포악질을 일삼더니, 만주까지 와서 독립군의 씨를 말릴 참이군.”

비로소 정신을 되찾은 경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넌더리를 친다.

“놈은 인간이 아닙니다. 악마입니다. 이번에 맞닥뜨리면 이 총으로 놈의 영혼까지 산산조각 내놓겠습니다.”


진만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젖힌다. 그러곤 바깥 동정을 살핀다. 괴괴한 달빛을 받은 민낯이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물든다.

이튿날 아침 그는 초희를 품에 안고 곤히 자고 있는 경덕의 머리맡에 편지 한 장을 놓는다.


‘서방님! 봉천에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래도 출세 놈이 나타난 걸 보니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연해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봉천의 창고를 처분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열흘 안에 돌아올 겁니다. 뒤주 안에 옥수수가루와 말린 고기가 들어 있습니다. 변변치 않지만 끼니 거르지 마십시오. 외부인이 접근하시면 절대 문을 열지 마시고 마룻바닥 아래 숨도록 하시고요. 그럼 이만······. 진만 올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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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15 mail510
    작성일
    19.04.25 22:55
    No. 1

    출세이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junjun닷
    작성일
    19.05.10 00:10
    No. 2

    휴 너무 역사적 주장이시더
    답답
    천천히
    서로 즐기는 이야기 처럼
    가시면
    편 할듯
    자기 역사! 자랑 누가 좋아하는 것 없을 것 같아요
    상당한 역사 지식인! 인정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최장르
    작성일
    19.05.10 00:46
    No. 3

    처음 연재하는 거라 문피아의 성격을 파악 못했네요.
    다음에 연재할 경우에는 문피아의 성격에 부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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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4화 악마의 최후 +3 19.07.12 210 1 16쪽
133 133화 고귀한 죽음 +1 19.07.11 111 1 12쪽
132 132화 무지개 +1 19.07.10 104 1 13쪽
131 131화 차관협정(借款協定) +2 19.07.05 115 1 14쪽
130 130화 반공포로석방 +1 19.07.01 126 2 13쪽
129 129화 한일회담 +1 19.06.29 130 2 15쪽
128 128화 폭탄테러 +1 19.06.26 138 2 13쪽
127 127화 카츄샤 +1 19.06.24 121 2 13쪽
126 126화 의사 왕룽 +1 19.06.23 123 3 17쪽
125 125화 빅터 한 재단 +2 19.06.19 129 3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164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128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125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135 3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139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144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136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133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144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197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160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138 2 11쪽
112 112화 금괴수송작전 +1 19.05.19 181 2 10쪽
111 111화 '암호명 A-1' +1 19.05.18 131 2 13쪽
110 110화 악연(惡緣) +1 19.05.17 130 2 14쪽
109 109화 마지막 미션 +1 19.05.16 132 2 12쪽
108 108화 애치슨 라인 +1 19.05.15 128 2 12쪽
107 107화 연적(戀敵) +1 19.05.15 149 2 12쪽
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145 2 12쪽
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148 2 15쪽
104 104화 한국은행 +1 19.05.11 151 2 14쪽
103 103화 비밀거래 +1 19.05.10 174 2 12쪽
102 102화 남미이주작전 +1 19.05.10 169 2 13쪽
101 101화 트루먼 독트린 +1 19.05.10 138 2 11쪽
100 100화 숙명의 라이벌 +1 19.05.10 144 3 18쪽
99 99화 Jane Doe +2 19.05.10 143 2 13쪽
98 98화 앙숙, 이승만과 김구 +1 19.05.10 140 2 12쪽
97 97화 반도호텔 +1 19.05.10 138 2 13쪽
96 96화 좌익과 우익 +1 19.05.09 138 2 13쪽
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145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149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138 2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147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147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133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126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133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128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130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129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136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146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129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128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137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126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123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123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130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135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128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124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122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122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125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129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132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124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126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126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125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126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138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132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127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132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125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128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129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126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129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130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131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134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137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126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132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133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130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123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124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132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140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137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139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144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157 3 45쪽
»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154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155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152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149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147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149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176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150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161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149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148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156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66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157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159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160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160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168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76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78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75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81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93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209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285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269 7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289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315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336 8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354 9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413 12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417 13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465 14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571 12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698 13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1,030 14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2,000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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