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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최근연재일 :
2019.07.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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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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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8쪽

42화 만주국(滿洲國)

님의 침묵




DUMMY

4권



제22장 만주국(滿洲國)




349.


이끼 틈에서 꼴꼴 솟아오르던 샘물은 여러 갈래의 도랑과 합류한 후 골짜기를 벗어날 무렵에는 물줄기가 담대해진다. 개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가 바람결을 따라 하늘거린다. 쌍봉계곡의 창공은 구름 한 점 없이 광활하다. 짝짓기를 하려는 잠자리 떼의 불안정한 군무를 배경으로 곡예비행을 하는 제비 무리가 요란하게 먹이활동을 펼친다.

풀을 뜯는 말들을 배경으로 광휘와 초희가 앉아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만들고 있다. 이윽고 야생화의 줄기를 꼬아 만든 꽃반지가 완성된다. 광휘가 초희의 손가락에 꽃반지를 묶어준다. 신이 난 초희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폴짝폴짝 뛴다. 독립이도 덩달아 껑충껑충 뛰어오른다.

광휘는 풀잎을 물고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얼마 만에 만끽하는 망중한(忙中閑)이던가. 초희가 잠자리를 쫓으며 말들의 주변을 맴돈다. 껑충거리며 깨금발로 손을 뻗은 초휘가 마침내 해바라기에 앉은 잠자리를 낚아챈다. 그러곤 잰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오빠! 오빠!”

광휘는 귓등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그저 풀 입사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로만 여긴다.

“오빠, 오빠!”

무심히 듣고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어오는 초희의 입에 그의 시선이 고정된다.

“오빠, 오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두 팔을 벌려 초희를 끌어안는다.

“초희야! 너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그를 응시하는 초희의 눈망울이 똘망똘망하다.

“오, 오······, 빠······”

“초희야! 그래, 내가 바로 네 오빠란다!”

광휘는 초희를 그러안고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아버지, 아버지!”


자작나무 등걸에 기댄 채 쉬고 있던 경덕은 뛰어오는 광휘 쪽으로 돌아앉는다. 의용군의 숙영지를 순찰하던 주찬도 때 아닌 소란에 고개를 돌린다. 초희를 그러안은 채 뛰어가는 모습을 본 그녀가 덜컥 겁이 난 듯 얼굴이 새하얘진다.


“초희가 또 낙마한 모양이군요. 많이 다쳤습니까?”

헐레벌떡 뛰어온 주찬이 다짜고짜 초희의 무릎을 살펴본다.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자 그녀가 비로소 한숨을 내쉰다. 광희는 경덕 앞에 초희를 내려놓는다. 독립이가 초희의 주위를 맴돌며 끙끙거린다. 혀를 차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던 경덕이 마른기침을 삼킨다.

“난 또 낙마한 줄 알고 걱정했구나.”

“아버지! 초희가 말을 했습니다.”

“그럴 리가······, 했으면 벌써 했어야지.”

경덕은 시큰둥하다.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초희와 눈을 맞춘다. 그러곤 또박또박 제 입을 움직이며 발성을 유도한다.

“초희야! 아까 나를 뭐라고 불렀지?”

눈을 되록거리던 초희가 찬찬히 주위를 일변한 뒤 입을 오물거린다.

“오······, 빠아······”

제 눈을 의심하던 경덕이 손을 뻗어 초희의 양팔을 부여잡는다.

“초희야! 지금 뭐라고 한 거니?”

초롱초롱한 눈을 끔뻑거리던 초희가 경덕을 바라보곤 입술을 우물거린다.

“아······, 부······, 지.”

경덕은 초희를 와락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지켜보던 주찬의 눈가에도 그렁그렁 물기가 맺힌다.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어느 새 마적들이 초희를 둘러싸고 제 일처럼 기뻐한다.

해맑게 웃던 초희가 주찬 앞으로 다가온다. 그러곤 뜻밖의 말을 꺼낸다.

“엄······, 마!”


주찬은 초희 앞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그러곤 제 딸이 살아 돌아온 양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린다. 그날 밤 횃불 아래 모인 사람들은 말문이 트인 초희의 앞날을 축하하며 밤새도록 잔치를 벌인다.



350.


1931년 9월 18일 아침 일찍부터 펑톈 시내가 들썩거린다.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는 군용 트럭과 맞닥뜨린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관동군 소속 헌병대가 탄 두 트럭 두 대가 대화호텔 앞에 멈춘다. 트럭에서 내린 헌병들은 호텔 외곽과 로비를 점거한 후 삼엄한 경비를 펼친다.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호텔 앞에 도착한 승용차에서 관동군 참모장 미사와 코우지 소장이 내린다. 그는 경비병들의 경례를 무시하고 곧장 로비를 가로질러 대화호텔 1호실에 마련된 사무실로 총총히 사라진다.

뒤미처 도착한 도이하라 겐지 특무기관장과 이타가키 세이시로, 이시와라 간지, 가타쿠라 다다시 등의 참모진이 1호실로 황급히 들어간다.

사무실에 모인 참모들은 저마다 표정관리를 하며 허투루 인사말조차도 건네지 않는다. 잠시 후 관동군 사령관 혼조 시게루가 부관과 함께 1호실에 등장한다.


“오늘은 귀관들이 수립한 ‘만몽영유계획’이 바야흐로 실천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난 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귀관들의 의견에 적극 찬성하는 바임을 천명한다. 자,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해보게나.”

혼조 사령관은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참모장 미사와 코우지 소장이 목청을 가다듬는다.

“이번 작전을 총괄한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가 요약 보고를 하겠습니다.”

이타가키가 도표가 걸린 작전상황판 쪽으로 걸어간다.

“금일 작전이 개시될 장소는 여기 빨간색으로 표시된 류타오후가 되겠습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작전이 개시된 직후 펑톈에 주둔하고 있는 장쉐량의 동북군을 신속히 제압하기 위해섭니다. 작전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금일 20시경 관동군 독립수비대 소속 제3중대의 지원 하에 폭파전문가 가와모토 스에모리 중위가 이끄는 분견대가 류타오후를 지나는 남만주철도의 노선을 폭파할 겁니다. 관동군은 성명을 통해 철도 폭파사건의 주범은 장쉐량의 동북군임을 천명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관동군을 급파하여 펑톈에 주둔하고 있는 동북군 제7여단을 포위할 겁니다.”

“장쉐량이 만주 일대에 산재하고 있는 동북군에게 총동원명령을 내려 관동군과 전면전을 고사할 경우 대책은 있는가?”

비스듬히 앉아 있던 혼조 사령관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질문을 던진다.

“장쉐량이 아군에게 선전포고라도 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술책에 능한 그는 섣불리 도발하지 않으리라 판단됩니다. 가뜩이나 정국도 혼란할뿐더러 소련과의 패전 이후 또 전쟁을 불사하면 민심이 이반할 게 뻔한데, 교활한 그가 무리수를 두겠습니까?”

“그렇다고 전면전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지. 동북군이 제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그 수가 23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네. 관동군은 고작 1만5천명이 전부인데, 전면전이 펼쳐질 경우 대안은 있나? 아직 도쿄 내각의 인준도 받지 않은 걸로 알고 있네. 군사작전이 확대될 경우 정치적인 문제도 감안해야 되지 않겠나?”

미사와 참모장이 거듭하여 작전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타가키와 시선을 교환한 이시와라가 한 발 앞으로 나선다.

“이미 관동군 1개 사단을 펑톈에 배치하여 장쉐량의 본거지를 포위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전면전에 대비하여 동북군의 보급로 및 후방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특무부대를 배치해두었습니다. 펑톈 및 만주 주요 도시에 헌병대를 파견하여 민심의 동요를 차단할 계획입니다. 설령 전면전이 개시되더라도 개전 초기에 아군의 우세한 화력을 이용하여 동북군을 궤멸시키면 됩니다. 게다가 정보부를 이용하여 동북군의 유력 장성 여러 명을 포섭해두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장쉐량 본인이 전면전커녕 국지전조차도 꺼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쿄 내각의 승인 여부인데······”

이시와라는 민감한 사안을 언급하기 전에 숨을 고른다.

“비록 도쿄 내각과 대본영이 이번 작전에 반대하더라도 철저하게 관동군 차원에서의 자위권 발동으로 끝까지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리고 작전이 개시되자마자 우리 측을 지지하는 육군성의 정보 5과 소속의 장교들이 지휘관들을 찾아 작전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하고 설득할 겁니다.”

혼조 사령관과 미사와 참모장은 슬그머니 눈빛을 교환하며 부하들의 눈치를 살핀다. 그들은 딱히 더 캐물을 의지가 없어 보인다. 류노스케를 추종하는 정보 장교들이 관동군뿐만 아니라 대본영의 정보국과 속속들이 연계된 사실을 인지한 이상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군!”


혼조 사령관은 혼잣말로 웅얼거리며 하품을 한다. 사무실 안으로 줄줄이 음식이 배달된다. 회의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다.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핸더슨 중위가 로비의 창가 자리에 앉아 1호실을 주시한다. 경비가 삼엄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그가 외국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척하며 1호실을 힐끔거리는데, 막 음식을 배달하고 나온 웨이터와 눈이 마주친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그는 얼마간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곤 자신과 교류를 해온 중국인의 얼굴을 하나 둘씩 떠올린다.

갑자기 무릎을 치던 그가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방을 가로지른 그는 호텔 뒷골목으로 빠져나간 웨이터의 뒤를 쫓는다.


“이게 누구시더라?”

등을 돌린 웨이터가 가슴에 손을 꽂으며 적의를 드러낸다.

“나를 아오?”

“나요! 빅터 한 소령 밑에서 일하는 핸더슨 중위!”

웨이터는 아직도 믿지 못하는 듯 여전히 가슴에 손을 꽂고 있다.

“사람을 그리 못 믿어서야······”

핸더슨이 수염을 뜯어내며 배시시 웃는다. 웨이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동안 살펴본 뒤에야 알은체를 한다.

“미국 해군정보국 요원이군요. 그런데 여기는 웬일이오?”

“이게 다 천청 장군의 오지랖이 아니겠소?”

“내가 여기에 급파된 것은 일급비밀이오. 함부로 천 장군을 입에 담다니, 불쾌하군요.”

“우리 이러지 맙시다. 난징정부와 워싱턴의 공조가 확고하다는 것을 일선에 있는 우리들이 보여주면 다 국익을 위해 좋은 게 아니겠소?”

웨이터는 주변을 살핀 뒤 다급하게 묻는다.

“궁금한 게 뭐요?”

“1호실의 분위기!”

“보완이 엄격해서 얻은 소득이 별로 없소. 다만, 혼조 사령관과 미사와 참모장 그리고 이타가키와 이시와라 등 관동군의 실세가 전부 모인 것으로 추축건대 뭔가 큰 일을 도모하는 것만은 틀림없소.”

“혼조와 미사와는 허수아비라고 들었소. 그런데 이타가키와 이시와라가 동석했다고요?”

“그렇소!”

비좁은 뒷골목으로 연결된 환기구에서 흰 연기가 배출된다. 인기척을 느낀 웨이터가 잔뜩 몸을 사린다.

“헌병이 오고 있습니다. 그만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소.”


웨이터가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간다. 핸더슨은 길을 잃은 척하며 헌병의 검문을 받는다. 그는 사업차 왔다며 여권을 보여준 뒤 무사히 검문을 통과한다.



351.


류탸오호수는 펑톈에서 북쪽으로 7.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드넓게 펼쳐있다. 쪽배들이 조류의 움직임에 따라 수면을 떠다닌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어부들이 그물을 걷어 올리기 시작한다.

돌연 호수에 깃든 정적이 산산조각이 난다. 호숫가를 끼고 길게 뻗어 있는 궤도 위로 기차가 연거푸 기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객창에서 새어 나온 알전구의 불빛이 검푸른 수면에 총총 박힌다. 기차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수면에 난반사된 불빛은 마치 반딧불이가 춤을 추며 이동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휘영청 밝은 달빛에 노출된 선로는 이슬이 내려 유난히 반질반질하다. 관동군의 독립수비대가 호숫가 주변을 에두르며 철통 경계상태를 유지한다. 폭파전문가 가와모토 스에모리 중위가 이끄는 분견대가 선로 곳곳에 소형 폭약을 설치한다.

폭탄 매설이 끝난 선로 주변으로 동북군 복장을 한 시체 3구와 군장들이 띄엄띄엄 널브러져 있다. 대원들이 자작나무 숲으로 안전하게 물러난 것을 확인한 가와모토 중위가 기폭 장치에 선을 연결한다.

쇠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궤도 사이로 들쥐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길차게 뻗은 나무줄기에 터를 잡은 수리부엉이가 잔뜩 목을 움츠린다. 먹잇감을 지켜보던 주황색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빗살모양의 발톱을 세운 채 나무줄기를 쥐고 있던 수리부엉이가 막 날개를 펼치려는 찰나 가와모토 중위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기폭 장치와 연결된 발화점 세 개가 동시에 폭발한다. 졸지에 후폭풍의 파장을 얻어맞은 수리부엉이는 중심을 잃고 호수에 곤두박질친다.

철로는 삽시간에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침목과 궤도가 폭염과 함께 밤하늘에 치솟는다. 움푹 페인 철로는 곳곳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뒤틀리며 살풍경하기 짝이 없다.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30분경에 발생한 ‘류탸오후 폭파사건’ 이후 관동군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한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을 실행에 옮긴다.

가와모토 중위는 ‘동북군이 철도를 폭파하고 독립수비대를 공격했다’며 상급부대에 보고한다. 그는 곧장 동북군 북부사령부 소속의 경비부대와 교전을 벌인다. 독립수비대는 즉각 관동군 사령부에 보고를 취한다.

미리 사령부 작전상황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자위권 차원에서 동북군에 대응 발포할 것을 명령한다. 또한 관동군에 동북군 사령부와 펑톈의 주요 군사기지를 접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동북군 총사령관 장쉐량은 관동군의 확전 의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며 동북군에게 후퇴할 것을 명령한다. 폭파 현장 인근에 주둔하던 동북군의 제7여단은 독립수비대의 중대 병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만다. 제7여단 소속 3개 연대 가운데 2개 연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장쉐량의 명령에 따라 철수한다.

철수명령을 받지 못한 620연대는 교전을 벌이던 중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도주한다. 이는 급박한 전황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장쉐량의 지도력 부재와 동북군의 기강해이가 얼마나 만연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오백여 명에 불과한 중대병력에게 1만 명이 넘는 여단급 병력이 패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동북군은 전의를 상실한다. 펑톈 주둔 동북군사령부는 별다른 저항 없이 관동군에게 점령당한다.

결국 관동군의 자작극으로 벌어진 만주사변(滿洲事變)은 23만 명에 달하는 4개 군단급의 동북군이 불과 2개 사단급의 1만5천여 명의 병력에 패배하며 싱겁게 끝난다. ‘만주사변’은 동북군 측에게는 패전의 치욕을 안기지만 관동군에게는 전사(戰史)에 기리 남을 역사적인 변곡점을 제공한다.

예상 밖에 대승을 거둔 관동군 사령부는 한껏 고무되어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과 더불어 만주식민화정책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동북군의 패퇴로 장쉐량은 정치적인 입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는다. 반면 이타가키와 이시와라 등 ‘만주사변’을 성공적으로 이끈 관동군 참모들은 군국주의의 기치를 높이 쳐들고 승승장구한다.


대화호텔 1호실에 집결한 혼조 사령관과 참모진은 샴페인을 터트리며 “동북 점령 후 식민통치 실행방법”을 제멋대로 주무른다. 관료주의에 젖어 책상물림이나 하고 있는 내각에 이골이 난 그들은 애초부터 본국의 훈령이나 추인 따위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전장에서 획득한 전리품은 목숨을 걸고 싸운 야전군만의 전유물이 되어야한다는 신조로 똘똘 뭉친 그들의 앞길을 단죄하거나 막을 세력은 당분간 없을 듯하다.

류노스케는 별실에 연회장을 마련하여 ‘카지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이타가키와 이시와라 등 추종자들을 따로 불러 모아서 공로를 치하한다. 연회가 무르익을 즈음 연락장교가 들어와 류노스케에게 귀띔을 한다. 취기가 오른 탓일까. 불콰한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다. 이타가키가 힐끔거리며 그의 심기를 살핀다.


“장군님, 대관절 무슨 일입니까?”

류노스케가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비죽이 내민다.

“건방진 놈! 제까짓 놈이 뭐기에 감히 나한테 오라 가라 하는 거야?”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그의 주위로 장교들이 모여든다.

“감히 누가 장군님께 그런 무례한 짓을 하는 겁니까?”

궁금해 하던 이시와라가 되묻는다. 장교들이 덩달아 흥분하며 맞장구를 친다.

“장군님! 무슨 일인데요? 하명만 내려주십시오. 소관들이 처리하겠습니다.”

“모리시마 모리도 펑톈 영사가 나를 보자고 사람을 보냈다는군.”

이타가키가 발끈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선다.

“영사 주재에 감히 천황 직속의 장군님을 오라 가라 하다니,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이타가키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도를 매만진다.

“자네가 나설 일이 아닐세. 아무래도 이번 일로 본국에서 영사한테 훈령을 보낸 듯하네!”

장교들이 그를 에워싼다. 이타가키가 목청을 돋운다.

“장군님이 나서시면 모양새가 흐트러져 보입니다. 소관한테 맡겨주십시오.”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는 ‘류노스케 사단’의 맏형 격이다. 따라서 그의 의견은 곧 ‘류노스케 사단’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입장에 동조한다.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님께 맡기십시오. 소관들도 힘을 보태 장군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내가 나선다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

“그렇다마다요. 장군님께서는 애초부터 아무 것도 모르는 일입니다.”

“알았네. 이번 일은 귀관들한테 맡기지. 난 대본영과 연락을 취해서 진의를 파악하겠네.”

“예!”



352.


모리시마 모리도 펑톈(奉天) 주재 일본 영사는 본국의 방침에 따라 만주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그는 관동군의 숨은 실력자인 카지 류노스케 소장을 영사관으로 초청한다. 그러나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가 앳된 소위와 함께 나타나자 적이 놀란다.


“류노스케 카지 장군을 보자고 청했는데, 자네가 모시고 온 모양이군!”

모리시마는 애초에 카지가 나타나지 않을 것을 짐작했다. 따라서 그의 언중에는 불쾌한 심기가 역력하다.

“장군님은 안 오십니다. 아니 못 오십니다. 지금 만주 상황이 얼마나 중차대한데, 사사롭게 영사관이나 드나들어서야 체면이 서겠습니까?”

이타가키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영사의 목울대가 불거진다.

“몹시 불쾌하군. 여기가 사사로운 공간인가? 이곳은 대일본정부를 대신하여 치외법권을 인정받은 일본의 영토야.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어서 장군을 모시고 와! 그렇지 않으면 훈령을 거역했다고 본국에 보고하겠다.”

영사의 강경한 태도에 이타가키가 피식거리며 조롱한다. 부동자세로 지켜보던 하야 다타시 소위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지금 외교부 소속 공무원이 대일본제국의 광영을 위해 피를 흘리는 관동군 참모에게 겁박을 하는 겁니까?”

앳된 장교가 핀잔을 주며 영사의 화를 돋운다.

“겁박이라니? 일개 소위 나부랭이가 나설 일이 아닐 텐데······, 어서 장군이나 모시고 와!”

“장군님은 천황의 직속부대를 지휘하는 수장이십니다. 감히 어디서 장군님을 오라 가라 명령을 하시는 겁니까? 엄중한 천황의 권위에 도전이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소위는 고개를 꼿꼿이 쳐든 채 눈을 부라리며 아랫사람 다루 듯 나무란다.

“말이 안 통하는군!”

영사는 전화기를 들고 비서를 호출한다. 그러곤 이타가키를 의식하곤 목소리를 높인다.

“대화호텔로 지금 갈 테니, 당장 차를 대기시켜!”

영사가 전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이타가키가 호통을 친다.

“이미 통수권자가 결정을 내린 사안인데, 영사란 작자가 통수권에 항명하겠다?”

이타가키의 고성이 실내에 쩌렁쩌렁 울린다. 다타시 소위가 성큼 앞으로 나와 허리춤에서 칼을 빼든다.

“통수권에 도전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소위, 군대에 근무한지 1년이나 됐나? 난 공직에 나선 지 올해로 30년째야. 애송이 주제에 함부로 어른들 얘기에 끼어들지 마.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영사가 홉뜬 눈으로 다타시 소위를 쏘아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기 품은 소위가 쇳내를 풍기며 칼등을 영사의 목에 들이댄다.

“다타시!”

이타가키가 소위의 과잉 충성에 제동을 건다.

“적은 전선에 있다. 같은 동포끼리 피를 봐서야 쓰겠나. 칼을 거둬라!”

“하이!”

다타시 소위가 칼을 거두며 뒤로 물러선다.

“통수권자가 결정한 일에 일개 외교관 따위가 왈가왈부하는 꼴은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 본국에 전하라! 천황의 통수권을 받들고자 관동군 전원은 ‘만몽영유계획’에 사활을 걸고 용맹정진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타가키가 돌아간 직후 모리시마 영사는 몸을 벌벌 떨며 잔뜩 움츠린다. 제1차 세계대전을 야기한 독일에서 유학한 터라 그는 군국주의의 망령이 저지른 만행을 몸소 체험한 바다.

군부가 천황의 통수권을 등에 업고 의회나 내각의 권고를 무시하고 전횡을 일삼는 것을 목도한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군국주의의 망령이 부활한 것을 지켜본 듯 그는 제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분루를 삼킨다.


만주사변 이후 국제사회는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며 만주에서 군대를 당장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 국제여론에 내몰린 일본 정부는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벌여 책임자를 색출한다.

훗날 만주사변을 모의한 주범으로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총대를 메고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시와라 간지 중좌는 우익 청년 장교들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그는 만주사변을 주도한 죄로 본국으로 송환된다. 그러나 처벌은 고사하고 센다이 주둔 제4연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오히려 대좌로 승진한다.




353.


장쉐량의 동북군이 와해된 이후로 만주는 그야말로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다. 빈자리를 꿰찬 관동군은 파죽지세로 주요 도시를 휩쓸며 만주를 독차지한다. 불과 만주사변을 일으킨 지 수개월 만에 만주 전역을 점령한 관동군은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성립을 만천하에 선포한다.

신징(新京)이 만주국의 수도로 낙점된다. 세 살 때 청나라의 12대 황제로 등극하여 부침과 질곡을 겪은 푸이(溥儀)가 만주국의 초대 집정(執政)으로 추대된다. 그가 머물 황궁이 신징에 건설되면서 집정부도 구색을 갖춘다.

펑톈에 주둔하던 관동군의 사령부도 오사카성을 본떠서 만든 새로운 청사로 이주한다. 신징이 수도로 채택된 이유는 만철이 운영하는 북동쪽 노선보다 북서쪽 노선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시점과 궤를 같이 한다. 즉 펑톈과 하얼빈으로 이어지는 북서쪽 노선의 중간 기착지가 바로 신징이기 때문이다.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주를 접수한 관동군은 민심의 이탈을 막기 위해 청조(淸朝)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집정(執政)으로 옹립하지만 그는 친일파가 장악한 집정부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중국과 조선, 만주, 몽골을 통합하여 ‘오족협화(五族協和)’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표방한 만주국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관동군사령관이다. 국무총리와 각부대신에 임명된 만주의 유력인사들도 그저 일본에 부역하는 심부름꾼일 따름이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만철(滿鐵)’이 만주 전역의 철도에 대한 경영권을 독점하고, 닛산(日産)이 주도하는 기업집단이 진출하여 만주개발의 사업권을 독식한다.


일본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자 중국은 국제연맹에 제소하며 도움을 청한다. 리턴조사단이 파견되어 만주사변에 이은 만주국의 성립 과정을 철저하게 조사한다. 조사단은 일본의 침략이 부당하다는 보고서를 국제연맹에 제출한다. 보고서를 채택한 국제연맹은 즉각 관동군의 만주 철수를 권고한다.

국제사회로부터 원성을 듣던 일본은 오히려 초강수를 두며 만주침략을 공고히 한다. 일본은 괴뢰국가인 만주국과 ‘일만의정서(日滿議政書)’에 조인하고 만주국을 엄연한 국가로 승인한다. 게다가 고도의 외교 전략을 펼쳐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에스파냐,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부터 ‘만주국’의 국가 승인을 얻어낸다. 이로써 ‘만주국’은 랴오닝(遼寧)과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러허(熱河)의 동북 4성을 아우르며 인구 3천만 명을 거느리는 신흥국가로 탄생한다.

국제사회의 지나친 간섭과 반대에 이골이 난 일본은 마침내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일본은 정당내각에 종지부를 고한다. 민주주의의 이념을 포기하고 파시즘 체제를 선언한 일본은 급속도로 군부가 독재하는 군국주의체제로 치닫는다.

국제사회는 일본의 만행을 연일 맹비난한다. 하지만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을 입안한 고급장교들과 군부는 만주에서 철군하라는 국제연맹의 권고안을 무시하고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선택한다. 대륙침략을 통해 식민지를 개척하겠다는 원대한 야망에 사로잡힌 그들은 이후 세계를 상대로 도발을 일삼고 전쟁도 불사하게 된다.



354.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치하는 즈단현의 전선에서 ‘국공내전(國共內戰)’의 실상을 참관하던 빅터는 난징(南京)으로 돌아오자마자 펑톈에 급파했던 핸더슨 중위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이번 만주사변은 천 장군의 정보대로 대화호텔에 모인 관동군 참모부에서 계획적으로 기획한 공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혼조 시게루 관동군 사령관과 미사오 코우지 참모장 그리고 가타쿠라 다다시 특무기관장 외에도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와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참석한 점이 특이합니다.”

“이타가키 세이시로와 이시와라 간지가 참석했다고?”

빅터가 중위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모로 튼다.

“현장에서 천청 장군 쪽 요원과 조우했습니다. 그 요원의 말에 의하면 대화호텔의 비밀회합은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와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주도했다고 하더군요.”

“내가 알기로는 두 사람은 정보국 5과 소속일 텐데, 왜 참모들 회합을 주도했다는 거야?”

“바로 그 점이 석연치 않은 부분입니다. 천황 직속 기관으로 불리는 정보5과 소속 장교가 참모들과 모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혼조 시게루 사령관은 관동군의 허수아비에 불과하지 않나. 그런데 이타가키와 이시와라가 참석했다?”

얼마간 골몰하던 빅터가 서류철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중위에게 건넨다.

“혹시 이 자는 나타나지 않았나?”

핸더슨 중위가 사진 속 인물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러곤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 자는 상하이 영사를 지낸 카지 류노스케가 아닙니까? 며칠 동안 대화호텔 1호실 주변을 염탐했지만 이 자의 그림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자가 이번 사건과 연관이라도 있단 말씀입니까?”

“있다마다.”

빅터는 편두통이 도진 듯 이마를 매만진다.

“이 자는 한국을 식민화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천황의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네. 그런 그가 만주에 나타났다는 건 필시 황실 차원에서 중요한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지. 혹시 ‘카지 사단’이라고 들어봤나?”

가물가물한 듯 핸더슨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정보학교에서 교육 받을 때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극우파 청년장교들의 존경을 받는 주요 인물이라고······. 그러나 그 이상은······”

“그럴 수 있지. 자네 담당은 중국이니까.”

핸더슨 중위가 눈알을 되록거리며 호기심을 발동한다.

“그렇다면 이타가키와 이시와라가 ‘카지 사단’ 출신인가요?”

“그렇다네. 그는 천황 직속 정보5과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관동군을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네. 그의 행적이 워낙 비밀에 붙여져 있지만 이번 만주국 설립에 그의 입김이 깊이 개입된 게 분명해.”

두 사람이 정황을 분석하는 도중에 노크소리가 들린다. 기척을 느낀 빅터가 문 쪽을 향해 외친다.

“들어오게!”

통신관 맥도날드 중사가 본국에서 송신된 통신문을 들고 들어온다.

“지부장님, 본국으로부터 통신문이 막 도착했습니다.”

빅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코 대한다.

“간단히 요약해봐.”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당장 귀국하라는 전신입니다.”

“뭐?”

빼앗다시피 가로챈 그가 통신문을 훑는다.

“무슨 내막입니까?”

빅터의 이마에 주름살이 잡힌 것을 본 핸더슨이 걱정 어린 투로 묻는다.

“모레 상하이에서 출항하는 상선을 타고 하와이로 귀국하라는 전보일세.”

“지금 이곳 상황이 얼마나 위중한데, 본부에서는 파악을 못하는 듯합니다. 현지 지휘관을 제 입맛에 따라 오라 가라 하면 일은 언제 하라는 말인지······”

그는 도리질을 치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휴······우······. 본국의 훈령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참 난감하기 짝이 없군요.”

“스팀슨 국무장관이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라는군. 그래서 윌슨 해군정보국장이 극동아시아 정보담당관들을 불러들이는 모양이네. 극동아시아 정보담당관을 모두 호출한 것을 보면 의제가 단지 국공내전뿐만이 아닐 거야.”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눈엣가시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네요.”

“만주국이 탄생한 이상 본국에서도 난징지부를 확장할 필요성을 깨달았을 거야. 지부를 만주로 옮길 지도 몰라. 철저하게 대비하도록 해.”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참, 돌아오실 때 기라델리 초콜릿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두 손을 모은 채 애교를 부리는 그에게 빅터가 핀잔을 준다.

“소풍 온 줄 아나? 정신 차려!”

핸더슨은 개의치 않고 너스레를 떤다.

“꼭 제가 다 먹겠다는 게 아니고, 대원들이 향수병에 걸려 시무룩한 것 같아서 나눠 먹으려고요.”

빅터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책상에 앉는다.

“기대하지는 말게.”

“일찍 주무십시오. 낼 뵙겠습니다.”


핸더슨이 배시시 웃으며 문을 닫고 나간다. 홀로 남겨진 그는 이튿날 아침까지 꼬박 밤을 새우며 보고서를 작성한다.



355.


길차게 뻗은 숲의 우듬지에 둥지를 튼 매가 요란하게 울부짖는다. 불청객의 기척을 느낀 매가 날갯죽지를 퍼드덕거리며 날아오른 뒤 상공을 선회한다. 침엽수림이 내려다보이는 망루에서 꾸벅꾸벅 졸던 초병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부스스한 더벅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눈자위를 비비며 지평선으로 시선을 옮긴다. 멀찌감치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를 보곤 머리채를 흔든다. 쌍안경으로 달려오는 말을 확인한 그가 호각을 힘차게 불기 시작한다.

쌍봉계곡에서 훈련을 하던 사병들은 호각소리를 듣곤 이내 경계태세를 취한다. 정찰대 십여 명이 말에 올라 계곡 입구로 달려간다.

주찬과 광휘가 망루로 오른다. 부하들이 그 뒤를 따른다. 만주사변이 일어난 뒤로 쌍봉계곡은 준전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십여 분가량이 지났을 즈음 정찰대가 말 한 마리를 호위하며 나타난다.


말안장에서 단박에 뛰어내린 사내가 주찬을 알은체한다.

“주찬 대장님! 지림성 자위군 소속 연락장교 왕준 대위입니다.”

대위가 회반죽처럼 뒤집어쓴 얼굴의 먼지를 털어내자 비로소 그녀가 손을 덥석 잡는다.

“카오펑린 장군의 부관이 아닌가? 자네가 이곳까지 어인 일인가? 하얼빈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게로군.”

“만주국 설립 이후 관동군이 어용 만주군을 내세워 3천만 만주민족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미 둥베이의용군의 여러 기지가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카오펑린 장군께서는 항일전선을 형성하여 하루속히 만주에서 관동군을 쫓아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소관이 카오펑린 장군의 명을 받고 주찬 대장님과 서광휘 대장을 뵈러 왔습니다. 장군님은 마적단과 독립군이 둥베이의용군의 연합전선에 당장 참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잘 왔네. 자세한 얘기는 막사에서 나눔세.”


주찬은 왕준을 데리고 막사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광휘와 리쥔이 그 뒤를 따른다. 왕준은 입고 있던 가죽점퍼를 벗어 뒤집는다. 점퍼 내피에는 하얼빈의 주요 기지가 표시된 지도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동북의용대의 작전지도입니다.”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던 광휘가 관자놀이를 어루만진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상을 꿰맞출 때면 으레 표출되는 그만의 습관이다. 얼마간 머리를 쥐어짜던 그가 마침내 입을 뗀다.

“보시는 바와 같이 펑톈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이 신징으로 옮겼습니다. 이는 곧 만주의 허리를 장악하여 하얼빈과 연해주, 나아가서는 몽골까지 장악하겠다는 복심이 깔린 포석입니다.”

리쥔이 눈을 홉뜬 채 주찬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한다.

“대장! 몽골까지 넘본다면 가는 길에 여기를 지날 텐데, 그럼 쌍봉계곡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주찬은 어의가 없는 듯 리쥔에게 면박을 준다.

“이 사람아! 지금 만주가 식민지가 된다는 데, 쌍봉계곡만 무사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럼, 당장 하얼빈으로 진군하여 둥베이의용군에 합류합시다. 관동군이 북진하기 전에 쳐부숴야만 마적이 살아날 수 있잖습니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광휘가 심각한 표정으로 끼어든다. 흥분한 그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선다.

“만주사변에서 패배한 장쉐린의 동북군이 대거 만주국군에 편입될 거란 소문이 자자합니다. 동북군이 합세하면 만주국군은 대병력을 거느리게 됩니다. 그들이 진용을 갖추기 전에 거병하여 예봉을 꺾어놓아야만 둥베이의용군한테 승산이 있다고 장군께서는 판단하시고 계십니다.”

입이 바싹 마른 듯 왕준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던 주찬이 덧붙인다.

“지금 당장 거병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 또한 들은 바가 있다네. 지금 하얼빈이나 펑톈, 장춘 등에서 시위하던 학생과 시민단체를 상대로 회유하려는 공작이 판을 친다고 하더군. 이미 만주국의 편에 선 어용단체가 전면에 나서서 시위대를 급습한다지? 앞으로 만주족의 대동단결을 방해하려는 이간질과 분열책이 전방위로 횡행할 텐데, 거병보다는 의용군 내부의 결속을 먼저 다지고 후사를 도모하는 쪽이 나을 거야.”

왕준이 발끈하며 반론을 제기한다.

“대장님! 동북군이 합세하면 만주국군은 삼십만 명이 넘는 대군입니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느라 시간을 낭비하면, 대군을 상대한 기회를 영영 잃고 말 겁니다.”

장고를 거듭하던 광휘가 비죽이 내민 입을 실룩거린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파미르 고원까지 진격했습니다. 그 길목에서 알렉산더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칸다하르에 주둔하며 대제국을 통치합니다.”

생경한 단어가 나열되자 리쥐과 왕준이 눈알을 되록거리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주찬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경청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서구의 침략은 19세기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영국과 러시아가 척박한 돌산이 전부인 아프가니스탄에 왜 눈독을 들였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 중앙아시아의 중간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입니다. 서구 열강에서 볼 때 보잘 것 없는 아프가니스탄은 대륙 혹은 대양에 진출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관문이었던 겁니다. 일본이 대륙 진출의 거점으로 한국이나 만주를 침략한 이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인내심에 바닥이 난 것일까. 주찬마저도 지루한 듯 하품을 참느라 눈물을 찔끔 흘린다.

“아프가니스탄이 서구 열강의 침략에도 지금껏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광휘는 주위를 일별하지만 반응이 냉담하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격언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알렉산더의 무적군대가 침략해온 이천오백 년 전에 생긴 일화에서 비롯되었을 개연성이 큽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서양인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고 하더군요.”

광휘는 손목에 찬 시계를 내보이며 말을 잇는다.

“‘너희는 시계를 가졌지만 우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제야 말귀를 알아차린 주찬이 무릎을 친다.

“아! 바로 그거군. 역시 서 대장답소!”

주찬이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왕준이 대끔 반기를 든다.

“지금 카오펑린 장군께서는 촉박한 시간을 아군 쪽으로 돌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거병을 논하는 마당에 서 대장께서는 기껏 외국 타령을 하며 시계를 자랑하는 겁니까?”

“마땅히 거병을 해야죠. 거병을 해서 삼천만 만주민의 역량을 보여줘야지요.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아,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요? 카오펑린 장군께서는 서양의 전쟁사에 관심을 쏟을 시간조차 없소이다. 오직 만주의 독립을 위한 시간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오.”

발끈한 왕준이 혀를 빼문다. 난제에 대한 문리를 터득이라도 한 듯 리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끼어든다.

“서 대장, 빨치산을 말하는 거죠?”

왕준이 손가락질하며 리쥔을 꾸짖는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뭐, 빨치산? 도대체 왜 내 앞에서 소련말을 쓰는 거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네.”

리쥔이 왕준의 어깨를 다독인다.

“소련말이 맡긴 맞소. 서 대장 말인즉슨 전면전을 하지 말고 유격전으로 대항하자는 거외다.”

“유격전? 치고 빠지고, 쫓아오면 도망가면서 적의 기를 꺾어놓자는 말씀입니까?”

왕준이 가슴팍을 치며 광휘를 쏘아본다.

“그렇소. 적이 움직이면 숨고, 그들이 잘 때 기습하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겠소만, 난 대장님의 역정을 듣기 싫소. 서 대장이 직접 장군께 말하시오.”


주찬과 광휘는 막사 안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작전을 짠다. 막사 밖에서는 리쥔과 왕준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거나하게 취한 채로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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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3화 고귀한 죽음 +1 19.07.11 90 1 12쪽
132 132화 무지개 +1 19.07.10 90 1 13쪽
131 131화 차관협정(借款協定) +2 19.07.05 98 1 14쪽
130 130화 반공포로석방 +1 19.07.01 112 2 13쪽
129 129화 한일회담 +1 19.06.29 110 2 15쪽
128 128화 폭탄테러 +1 19.06.26 120 2 13쪽
127 127화 카츄샤 +1 19.06.24 107 2 13쪽
126 126화 의사 왕룽 +1 19.06.23 106 3 17쪽
125 125화 빅터 한 재단 +2 19.06.19 116 3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143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114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112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121 3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126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130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123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120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131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174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147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128 2 11쪽
112 112화 금괴수송작전 +1 19.05.19 165 2 10쪽
111 111화 '암호명 A-1' +1 19.05.18 120 2 13쪽
110 110화 악연(惡緣) +1 19.05.17 120 2 14쪽
109 109화 마지막 미션 +1 19.05.16 120 2 12쪽
108 108화 애치슨 라인 +1 19.05.15 118 2 12쪽
107 107화 연적(戀敵) +1 19.05.15 137 2 12쪽
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131 2 12쪽
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13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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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화 남미이주작전 +1 19.05.10 15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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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131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137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127 2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134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132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12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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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133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11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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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0화 홍콩행 +1 19.05.07 12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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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112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110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115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12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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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마루타 +1 19.05.06 110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110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110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112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117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113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113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113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112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113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123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114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113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118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112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115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113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112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113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113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117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117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118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113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118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117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116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110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111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113 2 39쪽
»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121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120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118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120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130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138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135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137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133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131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134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160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134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145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134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135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141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52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140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144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147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145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150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60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65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61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65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77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86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267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245 7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270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294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311 8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324 9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378 12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381 12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430 13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525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645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941 13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820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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