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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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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최근연재일 :
2019.06.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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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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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쪽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님의 침묵




DUMMY

362.


쌍봉계곡은 연일 짐을 꾸리느라 어수선하다. 막사 옆에서 소곤거리던 부녀자들이 마른기침을 하며 나타난 경덕을 보곤 잰걸음을 놓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소쿠리를 이고 가는 아녀자의 팔을 붙잡는다.


“이보게. 그렇게 뒤꽁무니를 뺀다고 내 모를 줄 아나? 비록 병을 얻은 몸이지만 아직 귀는 밝다네. 대관절 무슨 일이기에 이리도 부산하단 말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녀자가 입술을 비죽이 내민다.

“산채를 접는다 하오.”

“산채를 접는다니?”

“나도 더 이상 내막을 모르겠소. 그저 주찬 두목의 명령에 따를 뿐이오.

“무슨 명령이기에 이토록 쉬쉬한단 말인가?”

아녀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막사 뒤로 사라진다. 고개를 돌린 경덕은 비로소 기척을 느낀다. 광휘와 주찬이 성큼 다가온다.

“바깥 공기가 찬데 왜 나와 계십니까?”

광휘가 경덕의 팔을 부축하며 막사 안으로 이끈다.

“오전부터 초희가 보이질 않아. 그래서 나와 봤다.”

주찬이 장막을 걷어 올려 길을 내준다.

“초희는 말몰이를 하며 잘 놀고 있습니다. 안으로 드시죠.”


막사 안의 공기가 냉랭하다. 광휘와 주찬을 번갈아 관찰하던 경덕이 주찬에게 대뜸 묻는다.

“들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하십시오.”

주찬은 화로 위에서 펄펄 끓고 있는 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따른다.

“대인, 만주국이 개국한 뒤 북만주의 상황이 풍전등화에 처했습니다. 해서 출병을 결정했습니다.”

“마땅히 침략자를 물리쳐야지요. 제가 도울 일이 무엇입니까?”

뜸을 들인 주찬이 무거운 입을 뗀다.

“전투 인력을 제외한 부상자와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 모두를 국경 마을로 이주시키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도 포함되겠군요.”

덤덤히 듣고 있던 광휘가 나선다.

“아버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동안 초희를 데리고 함께 지내십시오.”

경덕은 얼마간 고개를 숙인 채 시간을 번다. 그러곤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나와 초희 걱정일랑은 하지 마. 거사를 앞둔 병사가 한낱 집안일에 발목이 잡혀서야 쓰나.”

그가 팔을 뻗어 주찬의 손을 잡는다.

“대장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병이 든 몸이지만 힘껏 아이들을 돌보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주찬이 경덕의 손등을 어루만진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승전보를 알리는 호각소리를 드높이 불며 곧 찾아뵐 테니까요.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시면 리쥔의 아내 슈란과 의논하시면 됩니다.”



이튿날 부녀자와 아이들을 태운 마차와 말들이 쌍봉계곡을 벗어난다. 떠나는 쪽이나 마중하는 쪽이나 공히 말을 아낀다. 그저 눈물을 참으며 부여잡은 손끝으로 온기를 나눌 뿐이다. 초희는 한동안 독립이를 끌어안고 꺼이꺼이 운다. 광휘가 다가와서 독립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초희를 번쩍 안아 말안장에 앉힌다.

이윽고 북으로 향하는 행렬의 마지막이 골짜기를 벗어난다. 마적과 독립군은 군장을 점검하고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선두가 호각소리에 맞춰 계곡을 빠져나갈 즈음 힘차게 땅을 구르는 말발굽소리가 들린다. 주찬과 광휘가 말머리를 돌려 뒤로 돌아선다.

급히 멈춘 말은 투레질을 하며 거품을 내뱉는다. 말을 진정시킨 뒤 초희가 뚜벅뚜벅 두 사람 앞으로 다가온다.


“엄마! 학교에 가서 1등 할 테니까, 축하하러 빨리 와. 알았지?”

말안장에 앉은 초희는 몸을 기울여 주찬에게 몸을 기댄다. 팔을 뻗어 초희를 부둥켜안은 주찬은 애써 눈물을 참는다.

“그럼, 그렇고말고. 대보름달이 뜨기 전에 올 거야. 아버님 말씀 잘 따르고 있어. 선물 사갖고 올게.”

“응, 엄마! 사랑해!”

“나도 우리 딸 사랑해!”

주찬의 품을 벗어난 초희는 말머리를 돌려 광휘에게 다가간다.

“오빠는 무슨 선물 사올 거야?”

뜻밖의 일격을 받은 광휘가 얼버무린다.

“그래, 뭘 사야 하지? 인형을 사야하나? 근데 갖고 싶은 건 뭐니?”

“내가 어린 애야? 인형 같은 거 필요 없어. 한인촌 한국학교에서 쓰는 책이 필요해!”

하도 생뚱맞은 요구를 하는 바람에 주찬과 광휘는 눈빛을 교환하며 웃는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한인촌에 들러 책을 구해 올게.”

신이 난 초희가 방긋 웃으며 광휘에게 폭 안긴다.

“오빠, 사랑해!”

“응, 나도.”

광휘가 초희의 등을 토닥거린다. 입술을 옹송그린 초희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푼다. 초희는 옥으로 만든 쌍가락지 중에서 돌기가 난 수가락지를 뺀다. 그러곤 말갈기 몇 올을 뽑아 능숙하게 엮어 줄을 만든다. 줄에 가락지를 끼운 다음 광휘의 목에 걸어준다.

“오빠, 이게 뭔지 알지?”

“그럼! 엄마 쌍가락지잖아. 나도 어릴 때 이 쌍가락지를 만지면서 놀았어.”

“이 목걸이가 오빠를 지켜줄 거라 믿어.”

광휘가 울컥한다. 그러나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다. 다시 한 번 꼭 끌어안는 것으로 격한 감정을 갈음한다.

“엄마, 대보름 뜨기 전에 꼭 와야 해! 오빠는 선물 갖고 오는 거 잊지 말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울먹거린다.

“엄마, 오빠! 사랑해!”


초희는 고삐를 힘껏 당겨 박차를 가한다. 이내 말은 흙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주찬과 광휘는 눈물을 삼키며 말머리를 돌린다. 그러곤 저만치 앞서간 행렬 쪽으로 말을 달린다.



363.


경성으로 돌아온 수잔은 정동을 거닐며 감회에 사로잡힌다. 십여 년 전 아버지가 공사로 있던 공사관 청사는 여전히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길을 건넌 그녀는 정동교회 쪽으로 내려가며 추억이 깃든 곳에서 멈칫한다.

사춘기 시절에 즐겨 찾던 ‘돈버거 점방’은 또래와 어울리던 곳으로 꼴꼴 샘이 솟듯이 재미가 쏠쏠했다. 정동길에 선 수잔은 덕수궁과 맞닿아 있는 돌담 너머로 시선을 옮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르는 흰 구름이 입체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과거의 특정 시간 속으로 다가간 듯 구름을 쫓는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손을 뻗어 맹탕 허공을 휘젓는다.


발그레한 볼이 햇살을 받아 선홍색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파르르 떨린다. 일순 눈을 뜬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곤 눈살을 찌푸린다. 어디선가 우르르 나타난 학생들이 일본말을 재잘거리며 ‘돈버거 점방’이 있던 곳으로 몰려간다. 일본풍으로 장식한 가게는 모찌떡와 화과를 먹는 일본인들로 북적거린다.

구름 속에서 잠깐 조우했던 남편과 시댁식구의 면면은 학생들이 내뱉은 말풍선과 함께 가뭇없이 흩어진다. 그녀는 정동교회 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선생님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헨리가 저만치 보인다. 선생님과 목례를 나눈 수잔은 헨리의 손을 잡고 이화여자전문학교 내 관사로 돌아온다.


난징(南京) 주재 미국 영사관은 2층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새로운 손님을 맞는다. 찰튼 대령이 이끄는 대원 이십여 명 가운데 빅터 한 소령이 이끄는 다섯 명은 신징으로 급파된다. 다섯 명 가운데 천청 장군이 이끄는 정보국의 짱웨이 중위가 연락장교로 동행한다.

빅터 일행은 미리 신징(新京)에 도착하여 거점을 마련한 스미스 소령과 합류한다. 광물자원회사의 간판을 단 미해군정보국 난징 지부의 신징 지소는 현지인을 고용하며 철저하게 위장전술을 쓴다.

신징 지소에 파견된 요원 중 유일한 동양인인 빅터는 목덜미까지 내려온 장발에 안경까지 착용한다. 수염까지 덥수룩하여 언뜻 보기에 북방민족의 혼혈처럼 보인다. 하얼빈에 파견되었던 핸더슨 중위가 복귀하면서 신징 지부는 활력을 되찾는다.


“아니, 이게 누구시더라?”

핸더슨은 펑톈의 대화호텔에서 공조를 했던 짱웨이를 단박에 알아본다. 두 사람은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그런데, 이사님이 안 보이시네요.”

핸더슨의 질문에 스미스가 사무적으로 대답한다.

“난징에 출장을 갔다네. 참, 자네가 처음 보는 이분은 새로 영입한 중국 통역관이일세.”

핸더슨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내를 훑어보며 연신 뽀로통해 있다.

“부장님, 오늘은 정례 브리핑이 있는 날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사님도 부재중이신데 통역관이 왜 필요한 거죠?”

통역관은 짐짓 안경을 매만지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스미스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빅터의 어깨를 툭 친다.

“이만하면 됐네. 변장술에 연기까지 완벽해. 하하핫!”

핸더슨은 어리둥절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본다.

“정보부 요원의 눈썰미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실망인걸!”

빅터가 안경을 벗으며 핀잔을 준다. 그제야 감쪽같이 속은 사실을 안 핸더슨이 손사래를 친다.

“아니, 생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놓고 뭐가 그렇게 유쾌합니까?”

한바탕 크게 웃고 난 다음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안건을 다루기 시작한다.

“하얼빈의 상황은 어떤가?”

스미스가 핸더슨의 보고를 재촉한다.

“한마디로 일촉즉발의 전시상황입니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에 대해 민심이 이반된 데다가 이봉창, 윤봉길 등 한국독립투사의 거사가 만주족한테 항일투쟁의식을 고취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습니다. 하얼빈 시내 곳곳에서 일본의 침약을 규탄하는 시위가 연일 열리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게다가 카오펑린 장군이 총동원령을 내려 항일의용군의 주둔지로 각지의 저항군이 집결 중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관동군에 쫓겨 분산됐던 한국독립군도 지청천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항일의용군과 연합전선을 형성할 거라는 관측입니다.

관련 사진을 살피고 있는 빅터 너머로 스미스가 작전지도에 빨간 펜으로 표시를 하고 있다. 사진을 넘기던 빅터가 유독 사진 한 장에 집착한다.

“중위!”

“예!”

“이 사진 속 군대들은 한국독립군 소속인가?”

어깨 너머로 사진을 보던 핸더슨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렇지 않아도 사진 속 군대의 복장이 하도 특이해서 캐묻고 다녔지만, 특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마적단 계열의 의용군으로 추측되는데, 특이한 점은 한국독립군 소속의 서광휘 대장이 훈련을 담당했다고만 들었습니다.”

“자네, 지금 서광휘라고 했나?”

“네.”

지휘관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말에 오른 채 병사들에 둘러싸인 기념사진은 흐릿하여 겨우 형상만 구분이 될 정도다. 얼마간 사진을 주시하던 빅터가 턱을 모로 틀며 핸더슨에게 재차 묻는다.

“확실히 서광휘가 맞지?”

“특정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사진을 본 세 사람 공히 말에 탄 여자가 마적 두목 주찬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서광휘일 확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마적단도 이번 총동원령에 동원되는 걸로 분석됩니다. 듣기로는 서광휘란 인물이 만주의 전설이라고 하더군요. 소령님도 소문을 들으셨나보군요?”

길게 날숨을 내뿜던 빅터가 묘한 반응을 보인다.

“안다면 알 수도 있고, 모른다면 모를 수 있는 인물이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쏭달쏭한 답을 들은 핸더슨은 입을 실룩거린다. 작전지도 앞에서 골몰하던 스미스가 주의를 환기시킨다.

“중위의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아무래도 이곳에서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빅터와 핸더슨이 지도 앞으로 다가간다. 빅터가 스미스에게 묻는다.

“근거는?”

“여기 보는 바와 같이 둥베이의용군의 주둔지가 바로 여기가 아닌가? 그리고 한국독립군도 이쪽으로 이동 중에 있고. 그리고 만주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슈앙쳉바오’가 그 중간에 있는데, 과연 우연일까? 내가 장담하지. 둥베이의용군과 한국독립군이 동서로 옥죄고 있는 ‘슈앙쳉바오’에서 곧 전투가 벌어진다는 데에 1달러 걸겠네.”

짱웨이 중위가 스미스의 의견에 동조한다.

“저도 소령님의 의견에 1달러 걸겠습니다. 참고로 지림에 주둔하고 있는 의용부대도 하얼빈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답니다. ‘슈앙쳉바오’가 하얼빈 인근 도시인 걸 감안하면 소령님의 분석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봅니다.”

빅터와 핸더슨도 동의하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소령님의 예측을 어느 정도 뒷받침할 만한 정보가 있습니다.”

짱웨이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민다.

“하얼빈에 정차하는 남만철도의 비정기노선표를 입수한 자료입니다. 최근에 뤼순에서 펑톈을 경유하는 비정기노선이 부쩍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도 야간에만 운행되는 비정기노선의 객차가 하얼빈에 정차하는 날이면 경전차와 대포 등이 하역장에 가득 찬다고 하더군요.”

스미스가 짱웨이의 자료를 유심히 살펴본다. 턱을 괸 채 골몰하던 빅터가 지도 앞으로 다가가 ‘슈앙쳉바오’ 지역에 핀을 꼽는다.

“스미스 소령과 짱 중위의 예측이 맞는 것 같네. 마적의 근거지가 바로 이곳 쌍봉계곡이라면서? 쌍봉계곡은 정확히 ‘슈앙쳉바오’로부터 정북에 위치하고 있잖나. 그렇다면 둥베이의용군과 마적은 출병에 관해 사전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겠지.”

스미스와 핸더슨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얼빈으로 가야겠어.”

“자네가?”

“핸더슨 중위와 짱웨이 중위가 나와 동행할 거야. 아무래도 둥베이의용군 쪽과 직접 접촉해서 진위를 파악해야겠어. 그리고 난징정부의 협력 의사도 전달하고 우리 쪽하고도 정보 공유를 타진해볼 생각이야. 될 수 있으면 한국독립군과도 줄을 대는 것도 앞으로 나쁘지 않을 테고.”

공연히 스미스가 공연히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럼 나만 혼자서 남아 뭐하고 놀란 말인가?”

핸더슨이 작전지도판을 커튼으로 가리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농을 친다.

“놀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부장님께서는 현지 직원과 머리를 맞대고 ‘대륙광물무역회사’의 발전을 꾀하셔야지요.”

“그래, 난 원래 책상물림이라 현장은 체질에 안 맞아!”

스미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능청을 떤다.


네 사람은 각자의 자리를 정리한다. 어느덧 사무실은 무역회사에 어울릴법한 구조로 바뀐다.





제23장 폭풍전야(暴風前夜)




364.


9월로 접어들면서 하얼빈 외곽의 들녘은 황금물결로 출렁인다. 드넓은 평야 곳곳에 노적가리가 뜨문뜨문 흩어져 있고, 아직 추수를 마치지 못한 논에서는 농부들이 줄느런히 늘어선 채 막바지 수확에 여념이 없다. 농가마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당에는 알록달록한 수확물이 가득 펼쳐져있다.

들녘을 굽어보는 야트막한 둔덕 위로 말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갈대만이 나부낄 뿐 고즈넉하다. 농부들이 들쑤셔놓은 바람에 졸지에 터전을 잃어버린 들쥐들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허공을 맴돌던 황조롱이가 곤두박질치며 먹잇감을 낚아채곤 날아오른다.


만주의 가을은 늘 그렇듯이 지방을 축적하여 월동을 준비하려는 상위 포식자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동면을 취하려는 초식동물 간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축소판이다.

말 여러 마리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둔덕에 자리 잡은 게르 쪽으로 다가온다. 이방인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유목민들은 슬며시 자리를 피해준다.

병사들에게 말을 맡긴 카오펑린과 김도선, 주찬, 서광휘가 게르 안으로 들어선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얼싸안으며 인사를 나눈다. 특히 김도선과 서광휘는 한동안 부둥켜안으며 회포를 푼다.


“항일투쟁의 전설인 투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다니 영광이외다. 밀정들의 눈이 하도 많아서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만남을 청할 수밖에 없었소.”

선그라스를 낀 카오펑린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인사말을 건넨다.

“이게 어디 카오 장군의 잘못이겠습니까? 멀쩡한 남의 땅을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는 일본놈들 때문이죠.”

도선이 적개심을 드러낸다. 주찬이 거든다.

“멀쩡한 고향을 등지고 유랑생활을 하는 것도 지쳤습니다. 속히 일본놈들로부터 만주를 탈환하는 길만이 삼천만 만주민족이 살 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이미 연락장교를 통해 통보한 바와 같이 이번에 둥베이의용군의 지휘부는 거병할 것을 만장일치로 의결했소. 이렇게 모임을 청한 것은 이번 출정에 대장들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외다.”

카오펑린이 세 사람을 일별한다. 도선이 맞장구를 친다.

“적의 경비를 뚫고 여기까지 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주시죠.”

“창춘에서 하얼빈 중간에 ‘슈앙쳉바오’란 도시가 있소.”

카오펑린의 말에 도선이 알은체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부대가 주목하는 곳이 바로 ‘슈앙쳉바오’입니다. 만주국 설립 이후 일본의 자본가가 거주하면서 부자 도시라는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또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주국군과 관동군도 주둔한다고 들었습니다.”

카오펑린이 덧붙인다.

“둥베이 지역으로 군사력을 확장하려는 일본의 예봉을 꺾을 필요가 있소. 이번 ‘슈앙쳉바오 작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기세가 등등한 만주국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절호의 기회일뿐더러 중한연합군의 사기를 고취하여 항일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기회이기도 하오.”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고 있던 주찬이 의문을 제기한다.

“‘슈앙쳉바오’는 경제와 군사가 집결된 도시입니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오히려 호되게 반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작전은 치밀한 계획의 여부에 따라 승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작전 계획은 수립되었습니까?”

카오평린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짐짓 여유를 부린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기동력이 뛰어난 마적단과 독립군을 청한 게 아니겠소?”

도선이 의견을 제시한다.

“군사작전이라면 서 대장한테 맡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그걸 바라고 있소. 그리고 지청천 장군이 이끄는 본대하고는······”

카오펑린이 도선에게 답을 구한다.

“지 장군님은 주력부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이동 중이기 때문에 소관을 대신 보낸 겁니다. 출정만 결정되면 언제든지 합류가 가능합니다.”

한껏 고무된 듯 카오펑린이 콧김을 내뿜으며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낸다.

“둥베이의용군의 수뇌부가 작성한 작전 지도요.”

광휘는 건네받은 서류를 꼼꼼히 살핀다. 십여 분가량이 지났을까. 골몰하던 그가 작전 지도를 탁자 위에 펼친다.

“현재 둥베이의용군의 배치상황을 알 수 있을까요?

턱을 모로 튼 광휘가 카오펑린을 주시한다. 카오펑린이 허리를 숙인 채 지도 위에 배치상황을 표시한다.

“‘슈앙쳉바오’는 보시다시피 동서남북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네. 길림자위군 소속 제1군과 제2군이 각각 성의 동과 남쪽 방향으로 이동 중이고, 훙창부대는 이미 성의 북쪽에 진지를 구축한 상태네. 헤이창부대가 곧 그곳에 합류할 예정이고. 그리고 내가 지휘하는 길림자위군 본대가 서문을 공략하기로 했네.”

바투 그의 말을 받은 광휘가 되묻는다.

“배치된 상태로 추측컨대 성의 동서남북을 봉쇄하여 북쪽으로 유인할 생각이시군요.”

“아니, 그걸 어떻게 한눈에 알아본단 말인가? 역시 서 대장은 비범한 통찰력을 지녔군. 하하핫!”

광휘는 카오펑린의 칭찬을 귓등으로 듣는다. 그러곤 허점을 찾기 위해 지도를 꼼꼼히 살핀다.

“훙창부대와 헤이창부대 모두 장쉐량 산하의 동북군에서 이탈한 부대가 아닙니까? 장비나 기동력이 뒤떨어지는 두 부대를 매복시킨 건 전력 운영 상 잘 하신 결정입니다.”

칭찬을 들은 카오펑린은 입을 실룩거리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장군님이 이끄는 본대가 서문을 공략하기로 했다면, 무엇보다도 기동력과 무장면에서 적어도 적보다 동급이거나 나아야 하는데, 어느 정도 확보하셨습니까?”

끄응, 입속에서 가래를 삼킨 카오펑린이 잠시 뜸을 들인다. 아무래도 불편한 속내가 있는 성싶다.

“명색이 길림자위군의 본진은 내가 이끌어야 되지 않겠나? 말 이백 마리로 구성된 기마대가 박격포 부대의 지원을 받으며 선봉에 설 것이네.”

광휘가 대뜸 무안을 주듯 반박한다.

“장군님! 공명심을 얻기 위한 작전은 위험합니다. 서문 공격의 선봉은 관동군과 전투를 한 경험이 많은 한국독립군이 나서는 게 상책이라 생각됩니다.”

자신과 부대가 무시를 당한 듯 카오펑린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일성을 터트린다.

“길림의용대를 믿지 못한다는 건가?”

그의 콧잔등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광휘는 본체만체한다.

“의용군 수천 명의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제가 직접 선봉대를 이끌고 적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기습하여 성문을 개방하겠습니다. 길림의용군과 한국독립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서문을 진입함과 동시에 길림의용군 제1군과 제2군이 남문과 동문을 탈환하면 수세에 몰린 적들은 북쪽으로 달아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 작전은 장군님의 계획대로 승리를 거둘 확률이 높습니다.”

듣고 있던 내내 말을 아끼던 도선이 그의 말에 선뜻 동의한다.

“지천청 장군께 그대로 전하겠네.”

마지못해 카오펑린도 그의 말에 수긍한다.

“알았네! 고기도 씹어본 혀가 맛을 안다고, 관동군과 겨뤄본 자네가 허점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겠네.”

광휘가 주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주찬 대장께서는 저와 기습작전에 참여할 겁니다. 그동안 시가전에 대비해서 훈련한 전술을 활용할 때가 왔습니다. 성문이 폭발하면 대장님께서는 기마대를 이끌고 성내로 진입하십시오. 그리고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적의 기갑부대를 제압하십시오. 중무장한 기갑부대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체될수록 화력에서 뒤쳐진 아군한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게 뻔합니다. 이번 작전은 전적으로 마적단의 기습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겁니다.”

한일자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주찬이 강단 있는 어조로 답한다.

“드디어 복수의 칼을 뽑을 때가 됐군. 걱정하지 마시게, 서 대장!”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를 주목한다.

“일격에 적의 전선을 무력화시키려면 적어도 그들보다 화력이 월등해야 하는데, 현재 아군이 확보한 무기로는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카오펑린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결국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는군.”

카오펑린과 광휘를 번갈아보던 주찬이 손사래를 친다.

“거사를 앞에 둔 마당에 약한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습니까?”

도선이 물끄러미 주찬에게 답을 구한다.

“두목! 그럼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 겁니까?”

“숟가락이 없다고 다 차려진 밥상을 무르는 법이 어디 있소!”

카오펑린이 턱을 내밀고 눈을 번뜩인다.

“필시 묘책이 있는 듯 들리외다!”

“있습니다!”

카오펑린과 도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귀를 쫑긋 세운다.

“신징에 있는 만주철도지부가 열차편으로 거금을 하얼빈지부로 옮긴다고 하더이다. 거금을 탈취하여 이번 출병에 쓸 무기를 구입할까 합니다. 이번 참에 마적이 할 일이 생긴 것 같소.”

도선이 권총을 뽑아 허공에 휘젓는다.

“두목! 열차강도를 하겠단 말이군요?”

주찬이 눈을 흘긴다.

“악덕 자본가한테 돈을 빼앗아 의롭게 쓰고자 하는데 강도라니요? 의적이라 하면 또 모를까?”

빈축을 산 도선이 주찬의 비위를 맞춘다.

“옳습니다. 두목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잠자코 있던 광휘가 끼어든다.

“주찬 두목과 동행하겠습니다.”

주찬이 기겁하며 몸서리를 친다.

“아니 되오, 그건! 선봉대를 이끌 서 대장이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이번 거사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마적을 한 번 믿어보시오.”

카오펑린이 은근히 부추긴다.

“그건 나도 주찬 두목의 말에 동의하외다. 그나저나 위험하지 않겠소? 경비가 꽤 삼엄할 텐데······”

“투전판에 참가한 이상 마적은 절대 밑장빼기를 하지 않습니다.”

무한한 듯 카오펑린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두목! 마적은 아군한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부디, 무사히 귀환하길 바라오.”

광휘가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출병일은 주찬 두목이 귀환한 후 병력의 이동 사항을 점검하고 결정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막사를 나선 카오펑린이 먼저 말에 올라 둔덕을 벗어난다.

“술 한 잔이 이리도 고플 줄이야. 천생 이번 작전이나 마치고 해포를 풀 수밖에야······. 그럼!”


도선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말에 올라 박차를 가한다. 광휘와 주찬도 말에 올라 붉은 노을이 장악한 들녘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내달린다.



365.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신징지부를 출발한 트럭 두 대가 역사로 들어선다. 거금과 금괴가 실린 금고가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특별 화물칸으로 옮겨진다. 기관총을 거치한 무장 객차가 화물칸의 앞뒤로 연결된다.

둥베이평원(東北平原)에 진입한 기관차는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지평선을 횡으로 가른다. 가속이 붙은 기차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며 궤도를 박차고 나간다.

덜커덩거리는 소음에 이골이 난 승객들은 제가끔 소일거리를 찾아 공간이동의 간극을 메운다. 뜨개질을 하는 아낙 앞에는 앳된 새댁이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건너편의 소녀는 줄곧 책을 읽는 대학생을 힐긋거리며 혼자 배시시 웃는다. 군대에 갓 입대한 병사는 애인이 보낸 연서를 몇 시간째 부여잡고 눈물을 찔끔거린다. 병사 뒷좌석에 앉은 핸더슨과 짱웨이는 서로 머리를 맞댄 채 박자까지 맞추며 코를 골고 있다. 줄곧 창밖의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한 빅터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신경을 거슬리는 파열음이 들린다. 눈을 뜬 빅터가 창밖을 내다본다. 기관차의 속도는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귀에 거슬리는 기계음이 서너 차례 이어지면서 기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휘파람을 불며 질주하던 기관사가 저만치 선로 앞에 쌓인 나무더미를 발견하곤 급히 브레이크 레버를 잡아당긴다. 돌연 승객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객차 안은 뒤죽박죽이 된다.


탕! 탕!

총성 두 발이 바람을 타고 오래도록 울려 퍼진다. 이윽고 드르륵거리며 기관총이 난사된다. 빅터가 고개를 들고 밖을 보려는 찰나 총알이 빗발치며 객창을 모조리 부순다. 승객들은 일제히 객차 밑바닥으로 머리를 숙인 채 안절부절못한다. 빅터는 슬그머니 허리춤에 찬 권총에 손을 얹는다.


선로를 기점으로 주찬과 리쥔이 양쪽에서 협공해온다.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접근을 막는다. 객차 안에 일대 소란이 인다. 승객으로 위장한 마적 네 명이 가방에서 총을 꺼내 화물칸으로 달려간다. 마적들은 경비병이 탄 객차에 수류탄을 투척한다. 객차 지붕에 설치된 기관총이 공중으로 치솟으며 반격이 주춤한다.

승기를 잡은 마적은 화물칸에 올라 금고에 갈고리를 건다. 말들이 합세하여 줄을 당긴다. 옆으로 다가온 마차 위로 금고가 실린다. 두 번째 금고가 옮겨지는 순간 전열을 가다듬은 경비병들이 응수하기 시작한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객차 안은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력에서 밀린 마적들이 수세에 몰린다. 게다가 객차로 뛰어든 경비병들이 승객을 방패막이로 삼는 바람에 마적의 공격은 여의치 않다. 당황한 주찬이 픽픽 쓰러지는 부하를 보며 갈팡질팡할 즈음 광휘가 지휘하는 대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마적은 겨우 금고 한 개만을 탈취하고 광휘의 비호를 받으며 달아난다. 객차 안에서 수건거리기 시작한다.


‘저기 흑마에 탄 사람이 서광휘 아니야?’

‘서광휘가 나타났대!’

‘역시 전설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깨진 객창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채 바깥 동정을 살피던 승객들이 저마다 혀를 내두르며 목격담을 늘어놓는다. 짱웨이가 낮은 자세로 빅터에게 다가온다.


“소령님, 저자가 서광휘랍니다.”

빅터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부상당한 마적을 뒤에 태우고는 멀리 사라지는 전설의 뒷모습을 주시한다.

“내 두 눈으로 서광휘를 보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란 말인가?”

눈두덩을 훔친 뒤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라보는 짱웨이가 신기한 듯 핸더슨이 재촉한다.

“짱 중위! 서광휘란 인물이 그토록 대단하단 말이야?”

“그러다마다. 장제스 주석께서도 서광휘와 같은 지휘자가 몇 명만 있었어도 공산당을 단박에 무찌를 수 있을 거라 한탄을 했어.”

핸더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아냥거린다.

“그저 내 눈에는 열차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

짱웨이가 정색하며 그의 입을 틀어막는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 전설을 험담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험한 일을 당하기 십상이니깐!”


두 사람이 서로 눈을 흘기며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빅터는 지평선 너머로 한 점이 되어 사라지는 광휘의 뒤를 좇는다. 그러곤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당신이 서광휘란 말이지······. 처음 조우하는 자리치고는 상황이 좋지 않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먼저 다가가지······. 그때까지 살아만 있어다오.’



366.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에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포식자들이 기지개를 켠 뒤 코를 벌름거리며 대지의 변화를 감지한다. 늑대들이 영역을 주장하며 울부짖는 가운데 유독 푸르스름한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쩌렁쩌렁한 포효가 밤공기를 가른다. 이내 어수선한 기척이 제자리를 되찾으며 태곳적 정막이 사위를 지배한다.

인가와 동떨어진 우리에서 잠을 청하던 말들이 갑자기 투레질을 하며 발을 구른다. 한동안 우리 안을 주시하던 도깨비불이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더니 망아지의 잔등에 올라탄다. 어칠비칠 중심을 잃은 망아지가 휘청거리자 날카로운 발톱이 목을 움켜쥔다. 잽싸게 자세를 튼 호랑이가 망아지의 목줄에 송곳니를 박는다.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두어 번 활개를 치던 말은 곧 숨이 끊긴다. 발톱으로 비교적 연약한 뱃살을 가른 호랑이는 김을 내뿜는 내장부터 먹기 시작한다. 사위에 피비린내가 훅 끼친다. 늑대들과 까마귀들이 곁을 맴돌며 순서를 기다린다.

배를 채운 호랑이가 꼬리를 내린 채 사라질 즈음 늑대와 까마귀의 자리싸움이 한창이다. 저만치 폭죽이 터질 때마다 환히 피어오르는 불똥이 피를 뒤집어쓴 늑대의 안면에 어른거린다. 흉측한 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참혹한 평원의 생리와는 달리 중추절을 앞둔 하얼빈 시내는 화려한 축제로 시끌벅적하다. 오색찬란한 폭죽이 수놓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탈을 쓴 놀이패들이 북과 징의 장단에 맞춰 둘로 나뉘어 용춤과 사자춤을 추며 자웅을 겨룬다. 구경꾼들이 거리로 나와 놀이패와 한데 뒤섞여 덩실덩실 춤을 춘다.

휘황찬란한 네온이 번쩍이는 번화가는 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특히 낭인패가 장악한 홍등가는 값싼 아편과 매춘을 미끼로 내세워 패잔병이나 탈영병을 유혹한다. 영혼을 볼모로 잡힌 그들은 아편을 구하고 여자를 품에 안기 위해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망에 사로잡힌 그들은 무정부주의자가 되거나 방관자가 되어 조국의 현실을 외면한다. 하얼빈은 철저하게 계획된 일본의 말살정책에 놀아나며 범죄의 도시로 전락한다.

하얼빈에 머물며 현실을 직시한 빅터는 혀를 차며 한탄한다. 짱웨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비틀거리는 탈영병의 멱살을 잡고 어르고 달래보지만 외면당하기 일쑤다.


“방황하는 군인들은 어느 소속인가?”

빅터가 묻는다.

“전 동북군 소속 병사들인데, 지금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약에 찌든 패잔병들일 뿐입니다.”

짱웨이가 고개를 저으며 냉소적으로 답한다.

“하얼빈이 만주 최고로 항일의식이 드높다고 들었는데, 오보임에 틀림없어.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폐부 깊숙이 섞어 부패한 내가 진동을 하는군.”

빅터가 고개를 도리질한다. 핸더슨이 슬쩍 짱웨이의 팔을 건드리며 화제를 돌린다.

“짱 중위, 접선 장소는 어디야?

짱웨이가 쪽지를 펼쳐 확인한다.

“저 건물 뒤쪽이야.”

세 사람은 인파를 뚫고 후미진 건물 뒤로 접어든다. 어둑한 골목에는 약에 찌든 군복 차림의 탈영병들이 벽에 기댄 채 빈둥거리고 있다.

“여긴 홍등가가 아닌가?”

핸더슨이 눈을 부라린다. 당황한 짱웨이가 다시 쪽지를 살핀다.

“여기가 확실한데······”

그가 고개를 드는 순간 기모노에 게다를 신고 일본도를 찬 낭인패들이 보아란 듯이 골목을 활보하며 다가온다. 세 사람은 약에 취한 척하며 길을 내준다.

“핸더슨, 골목 밖에 차를 대기시켜 놓도록 해.”


빅터와 짱웨이는 방금 전 낭인패들이 나온 홍등가를 기웃거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좁은 복도를 따라 칸막이가 쳐진 밀실이 빼꼭하다. 넓적다리가 훤히 드러난 치파오 차림의 여자들이 흡입기와 수건이 놓인 쟁반을 들고 밀실을 수시로 드나든다. 간혹 여성들이 내는 교성 사이로 환각에 빠진 비명이 혼재되어 들린다.

짱웨이가 커튼을 들추며 밀실을 살핀다. 땀으로 흠뻑 젖은 남녀가 엉겨 붙어 성교에 몰두하는 벽 너머로는 총구를 입에 문 탈영병이 자살하겠다며 종업원을 윽박지르고 있다.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천장을 응시하는 사병 바로 옆방에서는 여자가 휘두르는 채찍에 흥분한 장교가 엉금엉금 바닥을 기고 있다.

역겨운 광경에 연신 혀를 차던 짱 중위의 손이 멈칫한다. 한 뼘 정도 벌어진 틈 사이로 밀실 안을 살피던 그가 빅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사내의 몸에 올라 타 둔부를 움직이며 절정으로 치닫던 여자가 두 사람을 보곤 황급히 옷을 챙겨 밖으로 빠져나간다. 황홀경에 빠진 사내는 흰자위를 드러낸 채로 천장을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

짱웨이가 사내의 턱을 잡고 신원을 확인한다. 그러곤 얼굴에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붓는다. 축 늘어진 사내는 여전히 혼미한 듯 주섬주섬 머리맡에 있는 흡입기를 들고 두 뺨이 움푹 꺼질 때까지 부리를 빡빡 빨아댄다. 아연한 짱 중위가 수건으로 사내의 낭심을 덮는다.


겨우 정신을 차린 사내가 알은체를 한다. 짱웨이가 다짜고짜 사내를 다그친다.

“룽하오 중령! 구국의 일념으로 투쟁을 한다더니, 이게 무슨 꼴이요?”

중령은 피식거리며 상대를 조롱한다.

“제정신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나? 하하핫!”

“여기는 일본 낭인패의 소굴이 아니오?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다니 제정신이오?”

중령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뒤 조곤조곤 말을 잇는다.

“열차강도 사건 이후로 하얼빈의 모든 벽에는 밀정의 귀가 달렸네. 심지어 전봇대에도 눈이 달렸다고들 하지. 단, 홍등가를 빼고는······”

중령은 쿨럭쿨럭 밭은기침을 쏟아낸 뒤 말을 잇는다.

“이보다 더 좋은 접선장소가 어디 있어? 여기서는 아무리 큰소리로 떠들어봐야 아편중독자취급만 받을 뿐, 누구도 귓등으로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아.”

지켜보던 빅터가 중령 쪽으로 얼굴을 내민다.

“둥베이의용군하고 끈이 닿는다고 들었소.”

그는 룽하오에게 돈뭉치를 건넨다. 돈을 받은 그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뭐야, 당신들! 이번에 만철의 금고를 턴 강도가 당신들 짓이야?”

짱웨이가 잽싸게 그의 목에 단도를 들이댄다.

“만주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쯤은 알겠지. 총구를 벗어난 총알과 입을 벗어난 말! 명줄대로 살고 싶으면 이 바닥에서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룽하오는 피식 웃으며 이죽거린다.

“알아들었으니 칼 치우게. 그나저나 룽하오 시대도 다 끝난 모양이군! 내 목숨 값이 겨우 이거 밖에 안 되나?”

발끈한 짱웨이가 돈다발을 뺏으려 하자 빅터가 가로막는다.

“룽하오 중령! 이건 선수금이고, 의용군 지도부를 만나게 해준다면 두 배를 더 주겠소.”

중령은 주섬주섬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한다. 그러곤 큰소리로 종업원을 부른다. 조금 전까지 몸을 섞던 여자가 코웃음을 치며 커튼을 젖히고 들어선다. 중령은 지폐 십여 장을 젖무덤이 드러난 여자의 가슴속에 꽂는다.

“넌 내 첩이야. 그러니까 다시 올 때까지 딴 놈 시중들었다간 알지?”

여성은 비웃으며 대거리한다.

“쳇! 겨우 이까짓 지전 몇 장으로 나를 첩으로 삼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중령이 돈다발에서 지폐 십여 장을 꺼내 손에 쥐어준다.

“사흘 이상은 못 기다린다는 거 알지?”

샐쭉한 여성이 콧소리를 흘리며 등을 돌린다. 룽하오가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린다.


홍등가를 빠져나온 세 사람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 용춤과 사자춤이 엉겨 붙은 대로를 가로질러 시내를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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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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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125화 빅터 한 재단 +1 19.06.19 17 2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40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33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36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45 2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46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48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51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50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60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72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59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65 2 11쪽
112 112화 금괴수송작전 +1 19.05.19 74 2 10쪽
111 111화 '암호명 A-1' +1 19.05.18 62 2 13쪽
110 110화 악연(惡緣) +1 19.05.17 60 2 14쪽
109 109화 마지막 미션 +1 19.05.16 59 2 12쪽
108 108화 애치슨 라인 +1 19.05.15 60 2 12쪽
107 107화 연적(戀敵) +1 19.05.15 60 2 12쪽
106 106화 독살(毒殺) +1 19.05.14 63 2 12쪽
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61 2 15쪽
104 104화 한국은행 +1 19.05.11 67 2 14쪽
103 103화 비밀거래 +1 19.05.10 71 2 12쪽
102 102화 남미이주작전 +1 19.05.10 79 2 13쪽
101 101화 트루먼 독트린 +1 19.05.10 58 2 11쪽
100 100화 숙명의 라이벌 +1 19.05.10 59 2 18쪽
99 99화 Jane Doe +2 19.05.10 61 2 13쪽
98 98화 앙숙, 이승만과 김구 +1 19.05.10 60 2 12쪽
97 97화 반도호텔 +1 19.05.10 57 2 13쪽
96 96화 좌익과 우익 +1 19.05.09 57 2 13쪽
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61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56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55 1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60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58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55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56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58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56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57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54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59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68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54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55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58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55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53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51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58 2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61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52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52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53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56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55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59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58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59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59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60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59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59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60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60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60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64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60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62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61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62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60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60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62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63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62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62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69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64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65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64 3 35쪽
»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63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63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68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66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64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66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69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77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72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73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72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73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74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82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79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85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80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79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84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98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84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88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86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85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88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97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96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99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00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03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11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163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147 6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161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175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181 7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185 7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226 10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224 11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251 12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317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407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578 12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123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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