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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최근연재일 :
2019.07.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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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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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53화 음악회

님의 침묵




DUMMY

416.


미국 공사관의 2층에 있는 서재는 전과 달리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볕뉘조차 틈입할 공간이 없다. 빅터와 수잔이 공사 내외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헨리는 서재 바닥에서 공사의 막내아들과 기차를 갖고 놀고 있다.


“아무래도 오 경부가 낌새를 챈 듯해요. 귀가하는 길에 불쑥 나타나서 협박을 하더군요.”

수잔이 숨을 몰아쉰다. 왓슨 여사가 그녀의 손을 꼭 잡는다. 커튼을 살짝 들추고 밖을 살피던 공사가 덧붙인다.

“최근에는 밀정으로 의심되는 두 사람이 공사관 앞을 배회하고 있어. 오 경부가 작심이라도 한 모양이야. 직위가 해제되었다고 하더니만 분풀이라도 할 생각인가 봐. 아예 내가 출퇴근할 때마다 다가와 모자까지 벗으며 대놓고 인사를 하더군. 그 작자 때문에 공사관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네. 여간 성가신 게 아니야.”

가끔 고개를 끄덕이던 빅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러곤 테이블 주위를 서성거린다.

“저 때문에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배편만 확보되면 당장 밀항을 하겠습니다.”

왓슨 여사가 성경에 손을 올린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우라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은 예수님의 보살핌 아래 행해질 겁니다.”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공사가 반색을 한다.

“퍼시픽호가 열흘 뒤 상해로 떠난다고 들었네. 그런데 문제는 자네가 제물포까지 가는 방법이야. 기차는 물론 도로까지 검문이 이중삼중으로 강화되었거든. 게다가 저 작자가 밀정까지 동원해서 감시하는 바람에 공사관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여의치 않네.”

빅터가 수잔의 손을 꼭 쥔 채 공사를 주시한다.

“세 자리가 필요합니다. 수잔과 헨리를 남겨두고 가면 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온갖 고문을 해서라도 내 행방을 캐물을 게 뻔합니다.”

왓슨 여사가 글썽거리며 수잔의 어깨를 다독인다.

“감동적이에요. 가족은 영광의 길이든 고난의 길이든 함께 해야 하는 법이죠.”

공사가 잔에 브랜디를 따른다. 왓슨 여사가 잔을 들어 단박에 마신다.

“아니, 당신, 언제부터 술을 마셨어?”

공사가 놀란 눈으로 왓슨 여사를 바라본다.

“레미제라블에서 탈옥한 장발장을 자베르 경감이 집요하게 추적하잖아요. 지금 그 대목이 생각나서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서요. 너무 긴장돼요.”

왓슨 여사의 뺨이 홍조를 띤다. 그녀는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힌다. 공사가 잔을 흔들며 서성거린다.

“그나저나 세 사람을 어떻게 제물포까지 이동시킨다?”

왓슨 여사가 잔에 가득 술을 따른다. 취기가 오른 탓일까. 그녀는 점점 대범해진다.

“이번에 정박한 퍼시픽호에 친선사절단의 일행으로 뉴욕 오케스트라가 승선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공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상하이 주재 알버트 공사가 미중 친선음악회를 주최하며 오케스트라를 초청했다고 하오.”

잔을 마저 비운 왓슨 여사가 불콰한 얼굴로 말을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왓슨 여사가 잔을 내밀며 공사를 바라본다. 공사가 혀를 차며 술잔을 뺏는다.

“당신, 이미 많이 취했어.”

왓슨 여사가 도로 잔을 빼앗는다.

“오늘 같이 흥분되는 날에는 수면제도 듣지 않아요. 내버려두세요.”

왓슨 여사가 술을 붓고 한 모금 마신다.

“여보,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축하공연을 하는 게 어때요?”

참신한 발상에 공사가 손가락을 튕긴다.

“제물포항에서 하자는 말이지?”

“그렇죠. 각국의 외교사절도 초청하고요.”

“제물포가 시끌벅적하겠는걸! 기자들로 몰려들 테고 말이야.”

“한껏 멋을 낸 외교사절의 부인들까지 합세하면 볼 만할 테고요.”

공사가 잔을 내밀어 왓슨 여사와 건배를 한다.

“그렇다면 수잔이 부인들 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도 있단 얘기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들으시네. 이래도 취했다고 나무랄 거예요?”

“하하핫! 역시 당신은 내조의 여왕이야! 오늘 밤 유독 매혹적인걸.”

공사가 부인의 뺨에 입을 맞춘다.

“제물포항에서 성대한 축하공연을 개최하겠네. 내외 귀빈과 기자들도 초청하자고. 참, 수잔은 이화학교 아펜젤러 교장과 보아란 듯이 동행하게. 일그러진 오 경부의 얼굴이 떠오르는군. 아주 볼 만할 거야!”

공사가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담배에 불을 붙인 왓슨 여사가 천장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 부인도 초대하세요. 총독부 만찬에서 만났을 때 조선에는 오케스트라가 없다며 실망하더군요. 이번에 귀호사를 제대로 하게 해주죠, 뭐.”

“그거 참 묘수 중에 묘수군. 총독 부인이 참석한 음악회라? 그렇다면 고등계 형사들도 감히 귀찮게 달려들지 않을 테고 말이야.”

공사 내외가 손을 잡고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빅터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이렇게 힘을 써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밀항한 사실을 알게 되면 공사님 내외분께서 곤욕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공사가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말을 가로챈다.

“난 아메리카합중국의 대통령이 임명한 공사라네. 자네와 수잔 그리고 헨리는 미합중국의 국민이고. 난 의회에서 헌법에 손을 얹고 아메리카합중국의 국민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일세.”

양 볼이 발그레한 왓슨 여사가 성경에 손을 올린다.

“남편이 선서문을 읽을 때 난 성경에 손을 올렸더랬지요.”

왓슨 여사가 슬그머니 공사의 손을 그러쥔다.

“왓슨 여사님, 정말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수잔이 눈물을 훔친다.

“모든 건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공사가 커튼을 들추고 바깥 동정을 살핀다.

“수잔과 헨리는 부인과 함께 동행하면 되지만, 자네가 걱정이야. 저 작가가 이 늦은 시간에도 저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고 있지 않은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빅터의 말에 공사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럼, 난 음악회를 계획대로 주최하겠네.”

“그럼, 난 각국 공사 부인들한테 전화를 걸어야겠어요.”

“여보, 총독부에서 외선을 도청한다는 소문이 있소. 주의해야 할 거요.”

“일부러 도청하라고 외선으로 하려고요. 호호홋!”

“당신의 아이디어는 술에서 나오는 것 같군! 하하핫!”


가볍게 웃음을 나눈 왓슨 부부가 서재를 나선다. 빅터와 수잔이 가볍게 입맞춤을 한 뒤 기차를 갖고 노는 헨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417.


1932년 11월 17일의 아침이 밝는다. 밤새 내리던 눈발도 주춤하고 자명종(自鳴鐘)처럼 단잠을 깨우던 폭격기의 굉음도 들리지 않는다. 돌격대 이백여 명은 비장한 눈빛을 번뜩이며 슈양쳉바오의 뒷산으로 숨어든다.

바위와 계곡에 은신한 돌격대는 서광휘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더딘 시간도 차면 이지러지듯 중천에 치솟은 태양이 차츰 기울기 시작한다. 어느덧 서녘하늘이 노을자락에 물들며 온통 검붉게 타오른다.


“현재 성안에는 관동군의 중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 독립군부대는 성곽 경비병을 제압하고, 마적단은 곧장 성 안으로 진입하여 관동군을 제압한다.”

광휘가 비장한 각오로 명령을 하달한다. 각각 독립군부대와 마적단을 이끄는 고봉림과 리쥔이 대원들을 이끌고 이슥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광휘와 주찬이 말에 올라 시찰에 나선다.

“서 대장, 어째 안색이 좋지 않구려.”

주찬이 군대를 점검하는 광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응시한다.

“너무 조용한 점이 내키지 않습니다.”

주찬이 그를 위무한다.

“다 하늘이 돕는 뜻이 아니겠소. 이번 작전만 끝나면 아버지와 초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좀 쉽시다. 이러다간 나라를 되찾기 전에 몸이 남아나질 않겠소.”

“소만국경에도 인간사냥꾼이 깔렸다는데, 걱정이 됩니다.”

“수란은 명민하고 용감한 여자라오. 설령 놈들이 접근한다손 치더라도 잘 대처하리라 믿소.”

“두목님이 옆에 계셔서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나야말로 서 대장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지 모르오. 아마 서 대장이 없었다면 둥베이의용군은 그저 덩치만 큰 웃자란 소년에 불과했을 것이오. 아무쪼록 이번 작전만 성공하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기력을 회복합시다.”

“고맙습니다, 두목님!”


말에 오른 두 사람은 말머리를 돌려 산기슭으로 내려간다. 성 밖에 도착한 광휘가 허공에 대고 조명탄을 발사한다. 정점에 다다른 조명탄이 낙하산을 편 채 촉광을 내뿜기 시작한다.

고봉림이 이끄는 선봉대가 순식간에 외곽 경비병을 제거하고 성문을 연다. 뒤따르던 마적단이 내처 성으로 진입하여 관동군의 주둔지를 습격한다. 뒤미처 나머지 연합부대가 성의 동문과 서문을 부수고 입성한다.

간헐적으로 박격포의 지원을 받은 관동군이 저항을 해오지만 사방에서 좁혀오는 입체적인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공격이 개시되고 두 시간 남짓이 지난 여덟 시에 성루(城樓) 꼭대기에 연합군의 깃발이 펄럭인다.

관동군 중대를 일거에 섬멸한 연합군은 한껏 고무된다. 하지만 광휘만이 내내 시무룩하다. 카오펑린이 긴급 지휘관회의를 연다.


“오늘로써 둥베이의용군은 만천하에 종이호랑이가 아님을 증명했소. 군사작전도 능한 진정한 만주의 맹주란 사실을 대내외에 천명한 날이외다.”

모두들 카오펑린의 찬사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백주(白酒)가 담긴 술동이들이 지휘관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서 대장! 이라 와서 한 잔 받게!”

불콰해진 카오펑린이 광휘에게 손짓을 보낸다. 그에게 다가간 광휘가 술잔을 받고는 입술만 축인다.

“대장군님! 아직 승전보를 울릴 때가 아닙니다. 해가 뜨면 적이 파죽지세로 쳐들어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콧잔등이 벌겋게 달아오른 훙창대 사령관이 거들먹거린다.

“굴을 떠난 늑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오. 내일의 걱정일랑은 접어두고 이리 와서 내 잔을 받으시오.”

광휘는 정중히 거절한다.

“오늘은 사양하겠습니다.”

그러곤 카오펑린에게 나직이 속삭인다.

“판을 깨기 싫어 먼저 자리를 뜨겠습니다.”

“이거 왜 이러나. 주인공이 빠지면 쓰나?”

카오펑린이 그의 어깨에 손 올린다. 광휘가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성곽에 경비병을 배치하고, 정찰병을 보내야 합니다. 사병들의 눈치도 있으니까 술자리는 일찍 파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광휘의 뒤로 주찬이 따른다. 카오펑린이 술동이를 가로챈다.

“오늘은 이만하는 게 어떻겠소. 사병들은 주먹밥 한 덩이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래서야 쓰겠소.”

“대장군의 말씀이 옳소. 승전보는 성을 완전히 접수한 다음 사병들과 함께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각자 부대로 돌아가서 불침번을 세우고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합시다.”

“오늘은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병사들을 위해 내가 불침번을 서겠소.”


지휘관들은 일제히 대장군의 의견에 찬성한다. 그들은 술잔을 내려놓고 제가끔 위수지역으로 떠난다.



418.


공사관의 응접실이 왁자지껄하다. 영국 공사 부인이 도안을 마치자 프랑스 공사 부인이 팔을 걷어붙인 채 등사기로 음악회의 팸플릿을 찍어낸다. 수잔은 팸플릿을 3등분으로 접어 봉투에 담는다. 그러곤 밀랍을 떨어뜨린 뒤 아메리카합중국의 독수리 휘장이 새겨진 인장으로 봉인한다.

왓슨 여사는 소파에 앉아 몇 시간째 전화를 붙들고 수다를 떨고 있다. 대체적으로 상대편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들은 왓슨 부인은 감사의 말을 거듭하며 전화를 끊는다. 얼추 음악회에 초청할 인선이 마무리된다. 왓슨 여사는 손수건으로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한숨을 돌린다.

로열 알버트 찻잔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부인들이 한담을 나누고 있다. 왓슨 여사는 상대방이 말을 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몰래 찻잔에 위스키를 조금씩 따른다. 프랑스 공사 부인이 슬쩍 찻잔을 내민다. 수줍어하던 영국 공사 부인도 따라한다. 마지막으로 수잔이 수줍게 웃으며 찻잔을 내민다. 왓슨 여사가 찻잔에 차례대로 위스키를 따라준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몸살 기운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술기운을 살짝 빌리기로 했답니다.”

왓슨 여사가 잇몸을 살그머니 드러내며 너스레를 떤다.

“두통에 이만한 민간요법이 어디 있겠어요? 호호호! 제 나라 벵쇼보다 훨씬 낫네요.”

프랑스 공사 부인이 한술 더 뜬다. 내내 말을 아끼던 영국 공사 부인이 영국식 유머로 답한다.

“다음에는 우리 공사관으로 초대하겠어요. 단, 오실 때 고열로 오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스카치가 영국이 빚은 명약이라도 고열은 당해낼 재간이 없거든요.”

교양과 우아함이 몸에 밴 부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위트와 유머를 창과 방패로 삼아 사교적 만담을 이어간다. 외교관을 아버지로 둔 수잔도 뒤질세라 빈틈을 파고든다.

“이번 음악회 만찬의 식전주로 사케가 어떨까요?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 부인도 오신다니 말이에요.”


여성 네 명이 앉은 자리에 핀 웃음꽃은 금방 가지를 뻗고 움을 틔워 화원(花園)을 이룬다.



419.


경성중앙전화국을 정보수집 창구로 활용하던 종로경찰서에 비상이 걸린다. 미국공사관을 담당하던 교환수가 여느 때와 달리 왓슨 여사가 이례적으로 연락망을 동원한 정황을 보고한 것이다. 하세가와 서장이 정보과 소속의 고등계 형사를 소집한다.


“미국 공사 부인이 각국 공사 부인과 선교회, YMCA 등에 연락을 취해 제물포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초청한다며 아침부터 법석을 떤 모양이야.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해. 음악회에 대해 들은 얘기 있나?”

입을 비죽이 내민 서장이 정보과장을 바라본다.

“정동 외교가를 사찰하였습니다만, 정동 교회에서 바자회를 연다는 얘기 외에는 특이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조 경부가 왼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음악회를 제물포에서 연다고요?”

서장이 되묻는다.

“음악회랑 제물포랑 무슨 연관이라도 있나?”

“미국 공사관에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빅터란 작자 말입니다.”

“그자가 왜?”

“제 관측으로 놈은 곧 밀항을 시도할 것으로 봅니다. 경성에서 제일 가까운 항구가 제물포 아닙니까?”

“그렇지.”

“제물포를 다녀온 조 경부가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퍼시픽호가 의심스럽다고 하더군요.”

하세가와 서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러곤 고개를 숙인 채 십여 초가량 서성거린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단초에 연결고리라도 찾은 듯 그가 명철에게 얼굴에 들이민다.

“조 경부! 그러니까 자네 말로는 퍼시픽호가 빅터가 밀항할 배라 이거지?”

“다른 배가 있긴 하지만 퍼시픽호가 가장 유력합니다.”

서장이 손가락을 튕기며 가소롭다는 듯 냉소를 머금는다.

“딱 걸렸어. 야마구치?”

말단 형사가 반사적으로 부동자세를 취한다.

“당장 제물포 항만관리소를 연결해.”


하사가와의 심중을 들여다본 것일까. 정보통으로 잔뼈가 굵은 형사들도 서장의 직감에 주먹을 불끈 쥔다. 하사가와는 짐짓 태연한 척 책상 위에 다리를 꼰 채 손수건으로 권총을 닦는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마침내 항만관리소장과 연락이 닿는다.


“서장님, 항만관리소장입니다.”

야마구치가 서장에게 수화기를 건넨다. 서장은 여전히 다리를 꼰 채로 거들먹거린다.

“나, 종로경찰서 하세가와 서장이다. 퍼시픽호에 탄 승객들의 명단이 필요하오.”

서장은 앵무새라도 되는 양 항만관리소장과의 대화 내용을 큰 소리로 복기한다. 자신이 유추한 얼개가 딱 들어맞으리라는 확신에 찬 행동이다.

“그러니까 퍼시픽호에 탄 승객이 총 백오십삼 명이고······, 대부분 일반 승객인데, 오케스트라 단원이 스물네 명이 승선했다?”

서장이 형사들 쪽으로 몸을 튼다. 수화기 너머의 항만관리소장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린다.

“퍼시픽호와 항구를 연결하는 통통배를 통해 제물포로 입항한 사람은 정박신고서를 낸 갑판장과 물자를 구입하려는 선원 세 명 말고는 없다?”

서장이 담배를 물면 수사과장이 퍼뜩 성냥을 켜서 불을 붙인다.

“그런데 삼일 후 오케스트라 단원 전원이 입항한다는 신고서를 냈단 말이오?”

일순 실내에 탁한 공기가 훅 끼친다. 날숨 속에 연소되지 않은 이산화탄소가 그대로 배출된다. 전화를 끊은 서장이 부하들을 독려한다.

“조 경부의 추측대로 빅터란 놈이 퍼시픽호를 밀항선으로 택한 게 확실해. 미국 공사 부인이 음악회를 가장하여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놈을 배에 태우려는 속셈인 게야. 자네들은 수사진을 꾸려 제물포로 갈 채비를 하게. 난 경무국장님께 보고하고 승낙을 받겠네.”


정보과 소속 고등계형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뜬다. 홀로 남은 하세가와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시곤 허공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내뿜는다. 손으로 거머쥐자 연기는 순식간에 형체를 남기지 않고 허공에 흩어진다. 그는 꽁초를 바닥에 던지곤 구둣발로 담뱃불을 비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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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28화 폭탄테러 +1 19.06.26 144 2 13쪽
127 127화 카츄샤 +1 19.06.24 126 2 13쪽
126 126화 의사 왕룽 +1 19.06.23 129 3 17쪽
125 125화 빅터 한 재단 +2 19.06.19 134 3 13쪽
124 124화 인천상륙작전 +1 19.06.13 170 2 15쪽
123 123화 메모리 가든 +1 19.06.12 133 2 15쪽
122 122화 겹생 +3 19.06.10 130 2 16쪽
121 121화 하와이 +1 19.06.07 141 3 14쪽
120 120화 소령 맥나마라 +4 19.06.06 144 2 15쪽
119 119화 한초희 +1 19.06.05 149 2 14쪽
118 118화 맥아더 원수 +1 19.06.04 141 2 14쪽
117 117화 기만방송 +1 19.06.03 139 2 13쪽
116 116화 코리안 커넥션 +1 19.06.01 149 2 12쪽
115 115화 잠수함 +1 19.05.30 204 2 13쪽
114 114화 6.25 전쟁 +1 19.05.29 162 2 12쪽
113 113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명 1호 ‘폭풍’ +1 19.05.21 14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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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5화 마돈나 다방 +2 19.05.13 150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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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2화 김일성 +1 19.05.09 149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149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137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130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135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129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132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130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137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147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130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129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138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127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124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124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131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138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130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125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124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123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127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131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133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126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128 1 8쪽
65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127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127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127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140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133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128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133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126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131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131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128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130 2 18쪽
» 53화 음악회 +1 19.05.02 132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132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135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138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127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134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134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131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124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125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133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141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138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140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145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159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156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158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155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150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148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151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179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152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164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151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150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158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69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159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161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163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162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171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78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80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77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83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96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211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289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272 7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292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319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341 8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358 9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418 12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424 13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472 14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577 12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707 13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1,046 14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2,032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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