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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모전참가작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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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최장르
작품등록일 :
2019.04.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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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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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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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님의 침묵




DUMMY

441.


3월로 접어들자 국경도시 블라고베셴스크에도 봄소식이 전해진다. 극지방의 특성상 봄이라고 해서 움을 틔운 꽃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그저 겨우내 쌓인 눈이 녹으면서 찻길이 열리고 관공서가 업무를 재개한다는 정도다. 마을과 도시를 연결하는 길을 따라 인적이 오가며 저간의 사정을 묻는 과정에서 시베리아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한다.

블라고베셴스크의 공립초등학교 앞이 시끌벅적하다. 아직 기온차가 심해 부모의 손을 붙들고 등교하는 아이들은 두툼한 외투 차림이다. 아이들은 미끄러운 살얼음을 피해 뒤뚱거린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남극의 펭귄을 연상시킨다.

정문 앞에 군용차가 멈춘다. 운전석에 내린 갈라예프가 뒷문을 열고 나타샤가 내리는 것을 돕는다. 그가 가방을 들어주려고 하자 나타샤가 냉큼 가방을 가로챈다. 나타샤는 팔을 휘적거리며 가방을 등에 둘러맨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갈라예프의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갈라예프는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어 나타샤의 목에 친친 감아준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끔벅거리던 나타샤가 중령의 뺨에 입을 맞춘다. 여느 부모처럼 중령도 교실 앞까지 배웅하려하지만 나타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굳이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나타샤는 중령에게 손을 흔든 뒤 한쪽 발로 미끄럼을 타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그 모습이 하도 기특하고 재미있어서 갈라예프가 껄껄껄 웃는데 그만 나타샤가 뒤로 발랑 나자빠진다. 그가 막 달려가려는 찰나 혼자 툭툭 털고 일어난 나타샤가 뒤돌아 씩 웃고는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올라 교실 안으로 사라진다.


만주 평원을 떠돌며 온갖 시련 속에서 꿋꿋이 성장한 나타샤는 또래보다 한 뼘 가량 키가 크다. 발그레한 민낯에 마른버짐이 펴 웃자란 티가 뚜렷하다. 나타샤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수줍어하거나 주눅이 드는 일이 없다. 수줍은 일이 있으면 먼저 말을 걸어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편이고, 주눅이 드는 일이면 도리어 먼저 앞장서서 행동한다.

선생님과 상급생 사이에서도 나타샤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나타샤가 나서는 일이면 보잘 것 없던 것도 이목을 끄는 놀이가 되고 흥미를 유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타샤의 행적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뭇시선을 놀라게 하기 일쑤다.

갈라예프 중령이 작전회의를 위하여 사령부로 아침 일찍 떠난 날이다. 중령의 당부를 받은 운전병이 시동을 건 채 나타샤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나타샤는 십 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다. 운전병이 관사 안으로 들어간다. 나타샤의 흔적이 가뭇없다. 덜컥 겁이 난 운전병은 차에 올라 황급히 학교로 향한다.

정문 앞에 멈추고 나서야 운전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타샤는 중령이 선물한 백마를 타고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나타샤는 ‘스텔라’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백마의 말머리를 휙 돌려 뒤따르는 아이들을 떼어놓는가 하면,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더니만 눈 더미를 폴짝 뛰어넘는 묘기를 연출한다.

어느 날 운동장에 나타난 토끼를 보고 아이들이 몰려든 적이 있다. 독수리가 상공을 선회하며 토끼를 낚아챌 조짐을 보인다. 나타샤가 허리춤에서 새총을 꺼낸다. 그러곤 돌멩이를 얹어 고무줄을 세차게 당긴다. 착륙을 시도하던 독수리가 돌연 왼쪽 날갯죽지를 퍼드덕거리며 운동장에 내려앉는다. 아이들이 달려들자 독수리는 비트적거리며 간신히 돋움을 해 담장 너머로 날아간다.


“갈라예프 중령님 댁입니까?”

수화기 너머로 근엄한 목소리가 들린다. 중령이 사무적으로 대한다.

“예, 제가 갈라예프 중령입니다.”

“저는 블라고베셴스크 공립초등학교 체리셰프 교장입니다.”

“교장님이 왜······, 나타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이상한 일이다. 줄곧 전장에서 적의 심장에 총알을 관통시키던 냉철한 저격수였던 중령이 말을 더듬는다. 다짜고짜 교장이 한숨을 몰아쉰 뒤 툴툴거린다.

“교직 생활 30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도대체 나타샤가 무슨 짓을 했기에······”

중령이 혼잣말처럼 되뇐다.

“나타샤의 기행 때문에 아이들이 도통 선생님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루는 말을 타고 등교를 했더군요. 아이들이 말을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학부형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쳐 학교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두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이혼. 지금의 아내와 별거 중이지만 자식이 없는 중령으로서는 교장의 볼멘소리는 공연한 우스갯소리로 넘길 법도 하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입술이 바싹 마른 그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아이가 기지 내 관사에서 자라다보니 거친 구석이 있습니다. 사내아이처럼 키우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만 워낙 활동적이라······. 다 제 잘못입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번만 기회를 주시면······”

교장은 중령의 말허리를 싹둑 자른다.

“멀쩡하던 독수리가 운동장에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토끼를 잡으려고 선회하던 독수리를 새총으로 명중시켰더라고 들었습니다. 1학년 학생이 그것도 여학생이 말을 타고 새총을 갖고 다니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조준경으로 적의 미세한 호흡조차 놓치지 않던 강심장의 사나이가 안절부절못한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가정교육에 보다 신경 쓰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하하핫!”

교장의 너털웃음이 수화기 너머로 들린다. 제풀에 놀란 중령이 수화기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학생들을 국경수비대에 견학을 보내려고 하는데, 중령님의 의견을 어떠신지요?”

“예?”

뜻밖의 제안을 받은 중령은 어안이 벙벙하여 제 귀를 의심한다.

“학생들이 승마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고학년 학생들한테는 사격도 가르쳐주시면 현장학습에 도움이 클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교장이 통화를 매조진다.

“나타샤의 승마와 사격 실력이 출중한 것은 모두 다 중령님의 덕분이지 않겠습니까? 저희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제야 말길을 알아들은 중령이 한숨을 내쉬며 흔쾌히 승낙한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협조해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는데, 이런 심정이군요.”

“예? 무슨 말씀인지······”

교장이 되묻자 중령이 서둘러 얼버무린다.

“아닙니다. 곧 일정을 잡아 연락드리겠습니다.

“나타샤는 남다른 구석이 있는 아이더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중령이 조심스레 나타샤의 방문을 연다. 잠꼬대를 하듯 나타샤는 이불을 걷어차며 입엣말을 중얼거린다. 침대로 다가간 중령이 이불을 덮어주곤 나타샤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러곤 불을 끄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442.


정부 청사 회의실에서 전군지휘관회의를 마치고 나온 장제스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다. 관자놀이에서부터 불거진 핏줄이 측두근을 타고 이마까지 퍼지며 상대로 하여금 불쾌한 인상을 남길 만하다. 천청이 슬그머니 다가와 손수건을 건넨다.


“주석님, 응접실에서 빅터 한 중령과 필립 해먼드 해군 소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제스는 손수건으로 이마와 콧잔등의 땀을 닦곤 천청에게 건넨다.

“이제 우리가 기댈 곳은 미국밖에 없네.”

신음과도 같은 날숨이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것을 곁눈질한 천청이 그를 위로한다.

“현역 장성을 특사로 보낸 것을 보더라도 루즈벨트 신임 대통령이 주석님께 도움을 주시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두 사람이 마룻바닥을 구를 때마다 발자국소리가 회랑을 따라 묵직하게 들린다. 경비병이 장제스에게 경례를 한 뒤 응접실의 문을 연다. 장제스가 등장하자 빅터와 해먼드 소장이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한다. 장제스는 빅터와 먼저 악수를 나눈다. 빅터가 장제스에게 해먼드 소장을 소개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접 쓰신 친서입니다.”

해먼드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장제스에게 내민다. 장제스는 입을 앙다문 채 친서를 정독한다.

“루즈벨트 대통령께서 본국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감사할 따름이오.”

인사말을 들은 해먼드가 답사한다.

“동아시아의 위급한 정국을 해결할 지도자는 오직 장제스 주석님뿐이라고 루즈벨트 대통령께서는 생각하고 계십니다. 또한 일본의 침략행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 거듭 천명하셨습니다. 작년 국제연맹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미합중국은 만주국에 대한 불승인정책을 고수할 것이며, 일본에 굴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미합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께서는 일본의 팽창을 막기 위해 두 나라가 굳건히 협력하여 대처할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얼마간 턱을 괸 채 비딱하게 상대를 보던 장제스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지금 중국은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소. 알다시피 공산군과의 내전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러허를 점령한 관동군이 남하를 꾀하고 있소.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난징정부 혼자만의 힘으로 일본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항력이오.”

심각성을 깨달은 해먼드 특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대의 요구를 가늠한다.

“아직 군사적인 개입은 불가하다는 것이 미합중국의 입장입니다. 주석께서 원하시는 바를 말씀하시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물론 그럴 테지요.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의 전함을 불러들여 다롄항과 뤼순을 폭격하고 싶은 게 내 심정이오.”

장제스가 탁자를 내려친다. 눈치를 살피던 천청이 넌지시 특사의 의중을 떠본다.

“특사께서는 해군제독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장 미국 해군의 전함을 칭다오 앞바다에 정박시키면 적어도 관동군의 남하는 지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독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입을 비죽이 내민 해먼드가 난색을 표한다.

“전쟁 중인 국가에 군대를 파견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특명을 수행하는 특사로서 제가 드릴 말씀은 원칙론밖에 없음을 밝힙니다.”

장제스가 해먼드에게 시가를 건넨다. 그러곤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주곤 제 시가에 불을 댕겨 뺨이 옴폭할 때까지 빡빡 빨아댄다. 맹탕 허공에 연기를 뿜어낸 그가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상하이 앞바다는 어떻소?”

해먼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헌법상의 권리만 되풀이한다.

“자국민의 보호와 구난을 위해 병력과 함정을 파견하는 것은 전적으로 최고통수권자의 고유 권한입니다. 자국민의 보호와 구난이 우선인 군사작전은 나중에 국회의 추인만 받으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는 미합중국 국적의 시민이나 재산이 일본군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에는 함정과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장제스가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 끈 뒤 버럭 화를 낸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특사로 와서는 고작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소! 지금 당장 4억3천만 중국인이 일본군의 탱크와 폭격기에 죽어나가는 형국인데, 고작 와서는 자국민의 보호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거요? 그렇다면 좋소. 서구 열강이 그토록 눈독을 들인 해안을 개방하겠소. 당장 상하이 앞바다로 전함을 출동시키시오.”

마침내 장제스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천청이 흰자위를 번뜩거리며 천장을 바라본다.

“주석님!”

빅터가 장제스를 정중히 불러보지만 상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빅터는 얼마간 뜸을 들이며 그가 평정심을 되찾기를 기다린다. 좀처럼 분통이 수그러들지 않는지 장제스가 창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연다. 그러곤 복식호흡을 통해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천천히 내뱉는다. 공기청정기라도 작동한 것일까. 그가 훨씬 안정적인 표정으로 탁자로 돌아온다.

“내가 너무 흥분했네. 자네 의견을 말해보게.”

장제스가 빅터에게 공을 넘긴다.

“러허침공에 대하여 일본 내부에서도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국제연합을 통해 압박하면 ‘비확전의사’를 갖고 있는 천황과 국제적인 고립을 우려하는 내각이 군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제동을 걸 겁니다. 그러면 군부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러허에서 철군할 것이고요. 지금으로선 관동군 스스로가 철군하도록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는 소련과 연합하여 외교적인 압박을 가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장제스가 빅터를 빤히 쳐다보며 조롱하듯이 비웃는다.

“한 중령! 문약에 빠져 순진한 건가, 아니면 나를 무능력한 지도자로 치부하는 겐가?”

장제스가 홉뜬 눈으로 상대를 쏘아본다. 그러곤 짐짓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려는 듯 또박또박 단어를 끊어 말한다.

“나는 작년 말 국제연맹 특별총회에 중국대표를 파견했었네. 중국대표는 그 자리에서 ‘국제연맹규약’과 ‘부전조약’, ‘9개국 공동 조약’ 등을 위반한 일본의 사례를 나열하며 만주국 해체와 관동군 철수를 회원국에게 눈물로 호소했네.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고?”

그가 빅터와 해먼드를 번갈아 일별한다.

“참혹하더군. 당신들도 알다시피 일본의 완벽한 승리였지. 그 잘난 강대국들의 조력을 받아가면서······. 그날 제네바의 호텔에서 일본 대사가 찬성표를 던진 미국과 영국 등의 대사를 초청하여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더군.”

장제스가 눈을 흘기며 비아냥거린다. 해먼드가 모멸감을 감당하지 못한 채 주먹을 쥐락펴락한다. 장제스는 작정한 듯 불만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코슬로바키아와 스페인의 대표가 우리 편을 들어주었다는 거였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는 일본은 ‘부전조약’을 위반했으므로 만주국 설립 자체가 세계평화에 반한다고 호소했고, 스페인 대표는 ‘국제연맹규약 제10조’와 ‘제12조’를 위반한 일본의 예외 규정을 인정하면 국제사회의 법과 질서를 해친다며 만주에서의 관동군의 즉각 철군을 주장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엉뚱한 복병이 나타나서 우리의 희망에 물을 끼얹었다네.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미합중국과 미합중국이 연합을 하고자 하는 소련이었네. 이유인즉슨 일본 대표 마쓰오카가 미국과 소련이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국제연맹은 일본을 심판할 수 없다고 주장한 얼토당토하지 않은 궤변이 통했다는 사실이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 아일랜드, 스웨덴 등이 제출한 일본 비난 결의안은 기각되고 말았네. 그런데도 미국과 소련이 연합하여 국제연맹을 압박하자는 방안을 나에게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수 있겠나? 두 나라가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리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장제스가 해먼드의 앞에 놓인 재떨이가 요동칠 정도로 두 주먹으로 세차게 탁자를 내려친다. 어금니를 깨문 채 듣고 있던 빅터가 중재에 나선다.

“주석님, 심리전을 이용해야 합니다. 지금 크렘린 궁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파견한 특사가 스탈린 서기장과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본국과 소련의 공조는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하니 이번만큼은 믿어주십시오. 장 주석님과 루즈벨트 대통령 그리고 스탈린 서기장이 한 배에 오르는 순간 일본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평양에서는 미국이 태풍이 되어 막고, 만주에서는 시베리아 기단이 차단해준다면 일본도 더 이상 중국 본토에 대한 팽창노선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일본은 만주에서 철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국 본토도 안전지대가 되는 겁니다.”

귀가 솔깃한 듯 장 주석이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식은 차로 마른 입술을 축인다.

“물론 자네 말대로 된다면이야 난징정부도 반대할 이유가 없지. 그러나 3국의 동맹이 흔들리면 일본이 다시 침략하지 않겠나?”

“그건 저도 장담드릴 수 없습니다. 국제정세란 게 하루아침에도 적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주석님께서는 금쪽같은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장 주석께서 일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힘을 기르는 길뿐입니다. 시간을 벌고 난 다음 군대에 선진체계를 도입하십시오. 중국군이 체질 개선을 원한다면 우리 쪽에서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는 사안입니다.”

장제스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은 빅터의 진정성에 감화되어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러곤 빅터와 해먼드에게 손을 내민다.

“자네의 제안을 수용하겠네. 속히 루즈벨트 대통령과 스탈린 서기장과 함께 같은 배에 타고 싶네.”

한숨을 돌린 해먼드가 홀가분한 심정으로 예를 다한다.

“워싱턴으로 돌아가자마자 장 주석님의 의견을 대통령께 전하겠습니다.”


1933년 2월부터 진행된 ‘국제연맹 특별 19인 위원회’는 만주의 주권은 중국에 속하며 일본이 동북3성을 지배한 침략행위는 중국의 주권행사를 제한한 것으로 엄연히 ‘국제연맹규약 제10조’를 위반한 사실임을 천명한다. 따라서 위원회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満州鉄道株式会社)’의 부속지와 이를 경비할 병력을 제외하고 만주에서 관동군의 철수를 촉구하는 ‘일본군의 철수 및 만주국 불승인에 대한 결의안’을 제출한다.

일본의 방해로 결의안 표결은 여러 차례 난항을 겪은 뒤 1933년 3월 27일 마침내 ‘만주국 불승인 방침을 담은 총회 보고서안’이 찬성 42표, 반대 1표, 기권 1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통과된다.

미국과 소련의 주도로 국제연맹의 기류가 뒤바뀌자 일본 내각은 국제연맹 탈퇴를 승인한다. 1933년 3월 27일 국제연맹 탈퇴가 전체회의에서 통과된다. 히로히토 천황은 ‘내각과 군부는 서로 그 직분에 충실하고 백성은 각자 일생생활에 매진함으로써 이 정국을 대처하라’는 칙서를 내린다.


일본이 국제연맹으로부터 쫓겨나다시피 탈퇴하자 장제스는 미국과 소련을 동맹관계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를 예견한 빅터를 극도로 신뢰하기에 이른다. 한편 국제사회에서 미아로 전락한 일본은 군부의 독단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그러나 정권 깊숙이 뿌리내린 엘리트장교들이 반발하면서 언론과 내각을 위협한다.

국제사회와 언론의 작용에 대한 군부의 반작용은 오히려 강대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기 위해 군대를 증강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발판의 계기로 작용한다. 그들의 목적은 이제 만주가 아니다.

빅터 한 중령이 보고서에서 예연한대로 일본 군부는 ‘일만(日滿)블록’에 중국본토를 추가하여 ‘일만지(日滿支)블록’을 내세워 일본과 한국, 만주와 중국을 잇는 이른바 ‘동아신질서(東亞新秩序)’의 구축에 박차를 가한다. 이는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의 명분이 되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으로까지 이어져 ‘일본 파시즘’의 초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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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화 트루먼 독트린 +1 19.05.10 124 2 11쪽
100 100화 숙명의 라이벌 +1 19.05.10 130 3 18쪽
99 99화 Jane Doe +2 19.05.10 128 2 13쪽
98 98화 앙숙, 이승만과 김구 +1 19.05.10 128 2 12쪽
97 97화 반도호텔 +1 19.05.10 123 2 13쪽
96 96화 좌익과 우익 +1 19.05.09 124 2 13쪽
95 95화 조선인민공화국 +1 19.05.09 129 2 17쪽
94 94화 일본패망(日本敗亡) +1 19.05.09 135 2 12쪽
93 93화 원자폭탄 +1 19.05.09 125 2 13쪽
92 92화 김일성 +1 19.05.09 131 1 14쪽
91 91화 독수리 작전 +1 19.05.09 129 1 14쪽
90 90화 이승만 +1 19.05.09 117 1 14쪽
89 89화 비밀요원 나타샤 +1 19.05.09 112 2 15쪽
88 88화 OSS(미국전략사무국) +2 19.05.09 117 2 16쪽
87 87화 승전(勝戰) +1 19.05.09 112 2 14쪽
86 86화 진주만공습 +1 19.05.08 114 1 16쪽
85 85화 갈라예프 +2 19.05.08 113 2 16쪽
84 84화 채권(債券) +1 19.05.08 118 2 11쪽
83 83화 다카키 마사오 +1 19.05.08 131 2 12쪽
82 82화 광복군(光復軍) +1 19.05.08 112 2 13쪽
81 81화 육군정보학교 +2 19.05.08 113 2 11쪽
80 80화 홍콩행 +1 19.05.07 119 3 13쪽
79 79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3 19.05.07 110 2 12쪽
78 78화 김원봉과 김구 +1 19.05.07 109 2 16쪽
77 77화 까레이스키 +3 19.05.07 106 2 12쪽
76 76화 탈출(脫出) +1 19.05.07 112 3 9쪽
75 75화 박정희와 최태민 +1 19.05.07 118 2 9쪽
74 74화 중일전쟁(中日戰爭) +1 19.05.07 112 2 13쪽
73 73화 강제이주 +3 19.05.06 107 1 12쪽
72 72화 마루타 +1 19.05.06 106 1 12쪽
71 71화 막후 실력자 +1 19.05.06 106 2 13쪽
70 70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등장 +1 19.05.06 106 1 15쪽
69 69화 천황결사옹위청년단 +1 19.05.05 109 1 15쪽
68 68화 후흑학(厚黑學) +1 19.05.05 112 1 13쪽
67 67화 경몽장(耕夢莊) +1 19.05.05 110 1 12쪽
66 66화 학교(學校) +1 19.05.05 110 1 8쪽
» 65화 국제연맹(國際聯盟) +1 19.05.05 110 1 19쪽
64 64화 나타샤 +1 19.05.05 109 1 11쪽
63 63화 보고서 +1 19.05.05 110 1 11쪽
62 62화 시인과 영웅 +2 19.05.04 120 2 15쪽
61 61화 탄생의 비밀 +2 19.05.04 111 2 18쪽
60 60화 국경수비대 +1 19.05.03 110 2 13쪽
59 59화 제네바협약 +4 19.05.03 114 2 18쪽
58 58화 명백한 운명 +1 19.05.03 109 1 16쪽
57 57화 미두취인소(米豆取人所) +1 19.05.03 112 1 12쪽
56 56화 생포(生捕) +1 19.05.02 110 2 13쪽
55 55화 참패(慘敗) +1 19.05.02 109 2 14쪽
54 54화 향수병(鄕愁病) +1 19.05.02 110 2 18쪽
53 53화 음악회 +1 19.05.02 110 2 18쪽
52 52화 들개 진구 +1 19.05.02 114 2 24쪽
51 51화 가락지 +3 19.05.02 114 2 26쪽
50 50화 덫 +1 19.05.01 112 1 28쪽
49 49화 추격전(追擊戰) +1 19.04.30 110 2 35쪽
48 48화 쌍성보전투(雙城堡戰鬪) +1 19.04.30 115 2 39쪽
47 47화 광휘와 빅터 +3 19.04.29 113 2 33쪽
46 46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 +4 19.04.29 113 2 41쪽
45 45화 만저우리(滿洲里) +4 19.04.28 107 3 35쪽
44 44화 폭풍전야(暴風前夜) +1 19.04.28 108 3 37쪽
43 43화 Boys, be ambitious! +1 19.04.27 110 2 39쪽
42 42화 만주국(滿洲國) +5 19.04.27 116 2 38쪽
41 41화 만몽영유계획(滿蒙領有計劃) +1 19.04.26 116 3 25쪽
40 40화 재회(再會) +1 19.04.26 114 3 30쪽
39 39화 빅터 한 +1 19.04.25 115 3 49쪽
38 38화 박진만 +2 19.04.25 121 3 45쪽
37 37화 정보국 5과 +3 19.04.24 134 3 51쪽
36 36화 마적(馬賊) 왕리 +2 19.04.24 131 3 49쪽
35 35화 삼두정치(三頭政治) +2 19.04.23 134 3 42쪽
34 34화 주찬 +1 19.04.23 130 3 51쪽
33 33화 만주야사(滿洲野史) +2 19.04.22 128 3 50쪽
32 32화 서광휘 +2 19.04.22 130 3 47쪽
31 31화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 +2 19.04.21 155 4 47쪽
30 30화 미쓰야협정(三矢協定) +4 19.04.21 131 4 46쪽
29 29화 출산(出産) +3 19.04.20 141 4 43쪽
28 28화 밀항(密航) +2 19.04.20 130 4 45쪽
27 27화 불령선인(不逞鮮人) +1 19.04.19 132 4 43쪽
26 26화 님의 침묵 +1 19.04.19 137 4 48쪽
25 25화 이민(移民) +2 19.04.18 148 4 39쪽
24 24화 회자정리(會者定離) +2 19.04.18 136 5 44쪽
23 23화 여걸(女傑) 수잔 +5 19.04.17 140 4 46쪽
22 22화 3·1 만세운동 +5 19.04.17 144 4 44쪽
21 21화 천적(天敵) +1 19.04.16 142 5 49쪽
20 20화 아카키 타이요우(赤木太陽) +4 19.04.16 147 5 52쪽
19 19화 망국(亡國) +4 19.04.15 155 3 49쪽
18 18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3 19.04.15 160 3 46쪽
17 17화 한성진격작전(漢城進擊作戰) +4 19.04.14 158 4 49쪽
16 16화 의병전쟁(義兵戰爭) +4 19.04.14 160 4 43쪽
15 15화 춘투(春鬪) +5 19.04.13 174 3 47쪽
14 14화 암살미수(暗殺未遂) +4 19.04.13 181 3 37쪽
13 13화 결혼(結婚) +3 19.04.12 263 6 42쪽
12 12화 돈버거 +9 19.04.12 242 7 44쪽
11 11화 대한제국(大韓帝國) +2 19.04.11 263 7 45쪽
10 10화 김출세(金出世) +7 19.04.11 290 8 42쪽
9 9화 낙향(落鄕) +4 19.04.10 305 8 42쪽
8 8화 혁파안(革罷案) +4 19.04.10 317 9 41쪽
7 7화 증기자동차 +2 19.04.09 371 12 22쪽
6 6화 2차 사행(使行) +2 19.04.09 376 12 24쪽
5 5화 견문록(見聞錄) +5 19.04.08 423 13 19쪽
4 4화 북경(北京) +1 19.04.08 517 11 19쪽
3 3화 만남 +1 19.04.08 638 12 15쪽
2 2화 1차 사행(使行) +2 19.04.08 928 13 14쪽
1 1화 파락호(破落戶) 이하응 +17 19.04.08 1,796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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